스티브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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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의 추억 (Don Melton)

Memories of Steve
A version of this article about Steve Jobs first appeared in The Loop Magazine on his birthday during February of this year. Jim Dalrymple edited the original down in size and split it into two parts — decisions that didn’t bother me in the least and probably made it easier to read. Thanks, Jim — for that and publishing it in the first place.

But I decided to post the original, unexpurgated version here. Please note that I wrote this during the summer of last year, so adjust some temporal references as you read. And even if you don’t read this, you should download Jim’s magazine and subscribe because it is a delight.

스티브 잡스를 다룬 영화나 월터 아이작슨의 전기를 읽을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

영화나 전기가 그를 다룰만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스티브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안 되는 내 기억이 다른 사람들의 설명 때문에 혼란 스러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스티브에 대한 나만의 이야기 몇 개를 말하고자 한다.

일단 스티브를 잘 몰랐지만 가끔 그의 주위에 있을 기회를 가졌다는 말부터 해 보자. 대부분의 경우 내가 책임을 맡고 있었던 애플리케이션 디자인 리그를 할 때였다. 분명 다른 회의도 있기는 하지만, 그의 집을 방문한 적은 한번도 없었으며 다른 사람들 없이 그와단독으로 대화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분명 자신감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그는 나를 항상 사파리 가이로 생각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사람들을 기억하는 더 안 좋은 방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정도면 괜찮았다.

물론 스티브가 나의 실제 이름을 부를 수도 있었다. 스티브가 당신의 이름을 안다는 사실은 하나의 영광이라고 말해줄 것이다. 다만 애플과 픽사 처럼 큰 기업에서 이름을 안다는 사실은 한편 공포스러운 책임감도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대가이다.

나는 애플의 르네상스 시기 동안 애플에서 일하는 특권을 가졌다. 그래서 날 고용해 주고 스티브에게 날 소개한 스콧 포스탈에게 감사한다.

그렇지만 내가 스티브 잡스를 처음 직접 만났던 장소는 애플이 아니었다. 넥스트 컴퓨터와 넥스트의 소프트웨어이자 나중에 맥오에스텐이 될 넥스트스텝이 나올 때였다. 장소가 어딘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하루종일 컨퍼런스가 있었던 그때는 아마 1988년이었을 것이다.

스티브는 잠재적인 넥스트 개발자인 우리들을 대상으로 점심 발표를 할 계획이었다.그런데 점심 때가 되자 정말 배고팠고 어디 조용한 장소에 가서 빨리 밥을 먹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래서 좀 멀리 떨어진 탁자를 하나 잡았는데,이 탁자는 곧 연설대가 놓일 장소 바로 옆이었다.

스티브는 옆문으로 들어와서 연설대 앞에 섰다.일어나서 두 발짝만 걸으면 악수할 정도로 가까웠다.물론 실제로 그렇게 할 정도로 내가 멍청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는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나중에 청바지를 재발견하기 전까지 아마 그 시절에는 양복을 매우 많이 입었으리라고 본다.매우 전문가스러운 모습이었으며 너무나 심각했었다.그의 태도와 응시로 볼 때 뭔가 대단히 중요한 말을 할 요량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여전히 먹고 있었다.아직 먹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샌드위치 포장지를 벗기고, 포크를 부딪치며 빨대로 후루룩 마시고 소리내며 먹는 광경은 배은망덕할 정도였다.

스티브는 분명 우리가 조용하기를 원했다. 우리 스스로 조용하게 하기 위해 몇 번이고 멈추기도 했었지만 존경심이나 경외감, 어쩌면 공포감으로 우리들은 조용히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지만, 방에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점심을 먹는 소리로 가득했다. 게다가 난 워낙 가까이 앉았기에 특히 더 신경이 쓰였다.

도대체 누가 그를 그때 연설하게 시간을 배정했을까?멍청이 같으니.분명 그 사람은 나중에 불려나가서 총이라도 맞았을 것이다.어쨌든 그날 스티브의 심각함과 조바심을 기억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났다.

2001년 6월,애플에 입사하면서부터 사내 이벤트나 회의,혹은 빌딩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스티브를 봤다.물론 구내식당,Caffè Macs에서도 스티브를 볼 수 있었다.그는 우리들처럼 먹었고,종종 조니 아이브와 함께 자리했었다.

애플이 오리지널 아이포드를 발표하기 전이었는지 후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어느 가을 날, 난 켄 코시엔다(Ken Kocienda)와 리처드 윌리암슨(Richard Williamson)과 함께 점심 식사중이었다. 그들 둘 다 사파리 팀의 첫 엔지니어들이었다.

Caffè Macs의 이중문 바로 바깥 탁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때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는 중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프로젝트”얘기를 했다면(사무실 바깥에서는 프로젝트라 칭할 때가 종종 있었다), 항상 조용히, 극도로 주의 깊게 말을 골랐었다. 사파리가 당시 이중의 비밀이었고 소수의 인원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가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먹고 있을 때 구내식당 전면을 감싸고 있는 긴 테라스 다른 끝쪽 탁자에 친숙한 얼굴이 하나 보였다. 버드 트리블(Bud Tribble)이었다.

그 많은 업적 중에서도 버드는 오리지널 매킨토시 소프트웨어 팀을 이끌었고, 리처드가 일하기도 했던 넥스트의 공동 창업자로 유명했었다. 버드는 켄과 나 둘 모두 애플에 들어오기 전에 근무했지만 현재 부도가 난 Eazel에서 날 고용하기도 했으며, 애플에 들어올 때 스콧 포스탈과의 면접도 주선해 준 적이 있었다.

그러니 우리 셋 모두 그를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예닐곱 탁자 바깥에 있던 버드는 마침내 누군가와 앉았고 그 누군가는 등을 돌려 앉아 있었다.켄은 버드가 저기 있다고 말했다.”모두들 버드 봤어? 여기서 뭐하는 거지?”

켄과 나는 Eazel이 문을 닫은 후 수개월간 버드를 못 봤기 때문에 그가 왜 왔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추측에 지친 나머지 내가 일어나서 손을 쥐고 그를 불렀다. “버드! 그 양반하고 얘기 끝나면 여기 와서 옛 친구들 좀 보지!” 버드는 말을 잠시 멈추고 날 쳐다 봤으며, “그 양반”도 뒤돌아서 날 쳐다봤다.

물론 그는 스티브 잡스였다.

그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할 것 같다.약간 한쪽이 처지기는 했지만 굳게 다문 미소와 가늘게 떨린 눈썹으로 보건데,”네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기억하겠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꿀꺽.

다시 앉았지만 두 엔지니어 친구들 앞에서 “나 이제 잘렸네”와 같은 말을 하지는 않았었다. 이제 잘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스티브가 뒤돌아 보자 켄과 리처드는 꽤 재밌게 여겼던 모양이다. 돌아보기 전까지 숨을 멈추고 기다렸던 듯 하다.

스포일러 주의:난 안 잘렸다.

사파리 프로젝트에 투입된지 9-10개월 후,스콧 포스탈은 우리가 사파리의 기능과 사용자 인터페이스,그 외 여러가지를 스티브와 함께 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2002년 늦은 봄 정도였을 것이다.

그때 사파리는 웹을 실제로 둘러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완성됐었지만 이름이 아직 사파리가 아니었다.이름은 그해 하반기, 12월에나만들어졌다.

스콧은 무엇을 그가 기대하는지,그리고 스티브와의 첫 회의와 이어질 회의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줬다. 만약 첫 번째 회의에서 잘 못 보이면 두 번째 회의는 없다는 점도 확실했다.

따라서 스콧이 하는 말을 매우 주의 깊게 듣고 그의 훌륭한 조언을 챙겼다.돌이켜 보면 그대로 됐어야 했는데, 적어도 일반적인 지침은 있었지만 그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 했던 점들이 몇 가지 있었다.

확실히 하자.스티브는 변덕스러운 괴물이나 만화에나 나올 독재자가 아니었다.그는 정말,정말 바빴으며, “예스 맨”을 위한 시간이 없었거나, 자기가 뭘 얘기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쉽사리 분노했었다.

그런 방식으로 보면 그는 여느 CEO와 다를 바 없었다. 적어도 좋은 면으로는 말이다.

스티브는 훌륭함을 기대했으며,그때문에 그가 그렇게 자주 올바르게 이해했었다.

그는 뭔가 옳다고 느낀다 하더라도 정해진 때가 아니면 뭘 원하는지 항상 얘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싫어할 때만은 대단히 분명했다. 과도하게 비판적이라고 잘못 해석하기도 하고 때때로 불편하기도 하지만, 시간을 분명 절약 시키는 분명함이다.

디자인은 스티브와의 반복 절차였다. 주기를 완성할 때까지 그와 함께 몇 번이고 세션을 되풀이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인내심은 가치만이 아니었다.

스티브가 질문을 던지면?뭘 하든지 간에 횡설수설하거나 답을 만들어내면 안 된다.모르면 모른다고 얘기해야 한다.답이 있을 때 그에게 말하라. 다시 말하건데 이런 방식은 누구든 업무에 있어서 좋은 조언이라 할 수 있겠다.

스티브에게 시연을 할 때면, 스스로 박자를 맞춰야 한다.스티브가 멈추라 말하면 정말 멈춰야 한다.손을 내리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그가 화면을 쳐다볼 때 커서를 흔들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분명 죽음이다.

시연용 머신을 직접 다루기 원한다면, 정말 그에게 넘겨줘야 한다.

소프트웨어가 충돌을 일으키면 죄송해 하지 말라. 다시는 그런 상황이 안 생기도록 만들 뿐이다. 다시는.

대부분의 경우 침착해야 한다.침착함이야말로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무튼 스콧은 내게 스티브가 나를 시험할 수 있다며 따로 경고를 내리기도 했었다.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지켜볼 수 있을 때까지 밀어붙인다는 의미였다. 약간 높은 볼을 던져서 타자를 약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재미있는 일이다.

스티브와의 처음 회의는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죄송스럽다.아마 긴장과 관계 없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음 회의에도 초대를 받았기 때문에 처음 회의가 꽤 부드럽게 흘러갔던 모양이다. 별 일 없었기 때문에 확실하다.

추가 검토중, 아마 두 번째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스티브는 즉각 날 몰아세웠다. 얼굴에 대로 직접 질문을 던진 것이다. 사실 그가 내게 질문한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직 나오지 않은 사파리의 북마크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검토중이었고,당시 모든 북마크는 별도의 단일 모덜리스(modeless) 창에 들어 있었다.편안하기는 했지만 구현하기도 쉬웠다.

다만 스티브가 좋아하지 않았다. 창 간을 전환해야 한다는 복잡함을 원치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우리는 다른 맥 브라우저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기 시작했고, 그는 다른 브라우저의 경우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스티브는 내게 직접 물었다.특유의 집중력으로 구부린 채 나라면 어떻게 할지 물었었다.

내 작업물,아니 기술적으로는 내 엔지니어들의 작업물을 시연했기 때문에 정말 곤란했었다.세상 모든 것이 스티브의 얼굴 주위로 흐릿해졌으며,아무 생각도 안 났다.하지만 충격에 빠지지 않았고 숨지도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난 이렇게 말했다.”사실 윈도용 인터넷 익스플로러 방식이 좋습니다.웹 콘텐트와 같은 창에 북마크를 놓는 식이죠.물론 사이드바에 넣는 방식은 안 좋아합니다. 사이드바보다 더 나은 방식이 있어야 하겠지만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나의 짜증나는 답변에 짜증을 내는 대신,스티브는 어떤 식이어야 할지 보여달라 말했다.

당장 윈도를 돌리는 머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다시금 나를 몰아놓은 셈이었다.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사파리 안에서 온라인 스크린샷을 찾아 보여줬다. 점수 획득!

이제 메이저 리그에 있는 셈이었다.

스티브와의 일에서 생긴 좋은 점을 하나 말하자면 이제는 누구도 내게 겁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보너스이다.

스티브와의 검토를 몇 번 거치고 나서,그의 바로 옆에 앉아 사파리의 실제 시연을 할 수 있었다.

보통은 디자인팀 누군가가 스크린샷이나 코딩이 안 된 프로토타입을 매크로미디어 디렉터로 돌리지만,실제 애플리케이션을 시연할 때도 많이 있다.하지만 스콧은 내가 에러나 충돌을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실제 코드상 시연하기를 원했었다. 그래서 엔지니어인 존 설리반(John Sullivan)에게 영광과 절망을 안겨다주기로 했는데, 시작은 나였다.

2002년 여름 하순으로 향하는 시기였다.사파리의 룩앤필에 진전을 보이고 있었는데,사파리 메인 창에 대해 스티브와 다시금 검토를 할 때였다.우리는 상태바(status bar)에 집중했다.

스티브는 상태바를 좋아하지 않았고 필요도 못 느꼈다. “마우스를 링크에 갖다대면 되는데 누가 URL을 보지?” 그는 상태바가 너무 컴퓨터광스럽다고 생각했었다. 다행히도 스콧과 내가 상태바를 기본에서 끄되 옵션으로 남겨 두는 선에서 스티브를 설득시켰다. 그렇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상태바를 숨기면 페이지 로드 상황을 어떻게 나타낸다?

이전에는 상황바가 상태바 안에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장소를 찾아내야 했다.창 모서리에 수직으로 상태바를 만들면 어떻겠냐 등 온갖 실없는 아이디어를 논의했었다.

기억하시라.상태를 나타내는 더 작은 요소가 생기기 이전 시절 얘기다. 아쿠아 인터페이스 시절이어서 바는 있어야 했었다.

회의실 안은 조용해졌다. 스티브와 난 시연용 머신 앞에 나란히 앉아서 사파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우리는 서로를 보고 동시에 외쳤다. “주소 창!”

방 안에 웃음이 만연했다.난 이번주 말까지 돌아가는 버전을 만들어 보여주겠노라 외쳤고 당연히 내 엔지니어링 팀에게는 과도한 약속이었다.그래도 상관 안 했다.큰 인물과 함께 방금 뭔가 만들어냈기 때문이다.당연히 사소한 것이기는 했지만 스티브와 그 사소한 것이라도 공유한다는 느낌 이상 가는 게 없었다.

그 해 하순,전체 기능을 들어내려 했기 때문에 좀 아이러니하기도 했었다. 정확도 테스트에서 사파리가 다른 어떠한 브라우저보다도 더 페이지를 빠르게 읽었을 때조차, 사용자 눈에는 상태바가 더 느리게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비쥬얼이 우리의 명성을 죽이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그 기능을 절대로 없애지 않았으며,상태바의 모양과 작동을 마침내 바꿔냈다.좀 슬프기는 했지만 기쁘기도 했었다.

사파리 디자인 검토 회의 때,종종 거의들 못 봤을 스티브를 보는 특권을 갖고 있었다.

한 번은 방 안의 동료가 초점을 못 맞추고 눈빛이 흐려지는 바람에,스티브는 검토를 중단하고 괜찮은지 물었던 적이 있었다.그는 사과하고는, 집에 사고가 생겨서 딸을 응급실에 데리고 가서 밤새 있었다고 답변했었다.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던 스티브는 검토를 그냥 나중에 하는 편이 더 낫잖겠냐 물었고,그는 감사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그러자 스티브는 몇 주일 전 자기도 아이가 작은 사고를 냈었고 얼마나 놀랐는지 얘기를 들려줬었다.그는 검토 후 그에게 빨리 퇴근하라 얘기했다.

한 번은 스티브 자신의 눈빛이 흐릴 때가 있었다.그는 우리 모두에게 사과하고,전날 밤샜다고 말했었다. 집에서 키우는 개가 죽는 바람에 스티브와 가족들은 새 강아지를 입양했고,이제 가족들이 밤에 잠을 좀 잘 수 있도록 자기 차례가 돼서 부엌 바닥에 강아지를 놓고 아침까지 조용하게 하려 밤을 샜다는 얘기였다.

재밌었고 좋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우리들은 웃지 않으려 애썼다.그렇다.스티브가 좀 격렬할 때가 있기는 했지만 그도 인간이었다. 그 또한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지루하고 평범한 일도 해야 했었고, 어쩌면 즐겼을 것이다.

사파리를 선보였던 2003년 맥월드 기조연설 리허설에 대한 얘기는 이전에도 쓴 바 있다. 당시 1년에 하나 열까 말까 했던 새로운 애플스토어 업데이트도 발표한 날이었다.

우리의 소매점 전략이 대실패를 기록하리라고 기술과 사업 전문가들이 이미 수많은 글을 썼던 때였다.애플에 대한 또다른 멍청한 예언이었던 셈인데,사실 소매점은 우리 예상보다 더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그래서 스티브는 모두가 소매점의 성공을 알기를 원했다.특히 그 전문가들 말이다.

이틀 간의 리허설에서 거의 비어 있던 홀의 3번째인가 4번째 줄에 코시엔다와 함께 앉아 있었다.어두운 홀을 밝은 조명이 비추자 스티브는 켄과 나, 혹은 지원 인력이 우리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사파리 시연중 문제 해결이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서 와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앉아서 기조연설의 마술사가 자기 마술을 연습하는 광경을 쳐다보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첫 번째 날 시작할 때 즈음 스티브는 필이 아직 안 왔는지 물었었다.우리의 마케팅 두목,필 실러였다.빠르게 돌아본 다음 누군가 아직 안 왔다고 보고했다.스티브는 우리 모두에게 자기가 장난을 하나 계획하고 있다면서 먼저 보여주겠노라 설명했다. 필이 이따가 들어올 때 전혀 모르게 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랬더니 그는 애플스토어 업데이트 슬라이드 끝에 특별 슬라이드를 하나 끼어 넣었다.

그게 정말 걸작이었다.

슬라이드를 보며 1분 정도 우리 모두 웃음의 도가니였고 기조연설 슬라이드가 맨 처음으로 돌아갔었다. 그때 막 필이 걸어 들어왔기 때문에 타이밍도 기가 막혔다.

스티브는 리허설을 시작했고,”스위처”광고 캠페인 슬라이드에 이어 애플 스토어 슬라이드가 나왔다.그리고 소매점 업데이트가 나온 후였다. “12월 한 달에만 방문객이 140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의심한 언론 관계자 여러분 모두에게…”

그가 클릭하자 스페셜 슬라이드가 등장했다.모두들 한 번 쯤은 봤음직한 짤방이었다.1940년대 스타일의 활작 웃는 사내가 큰 커피 머그잔을 들고 있는 장면이다. 그림 속의 말풍선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쓰여 있었다.

“How about a nice cup of shut the fuck up.”

최고는 그 다음이었다(우리도 그 다음일지 몰랐다). 스티브가 연설을 멈추고는 필 실러를 바라보고 무표정하게 물어봤다.”필,어떻게 생각해?오바인가?”

켄과 나는 웃음을 참느라 바닥에 거의 엎드려야 했었다.

그렇게 노력해서 필을 골탕 먹이는 걸 보면,스티브는 고도의 장난 센스만이 아니라 그 정도 농담은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분명 했을 것이다.잠시 후 필은 내가 보기에 거의 공포스러워 했었다.

스티브가 언제나 청바지와 검정 터틀넥 셔츠를 입지는 않았었다.

애플 들어간지 얼마 안 돼서 1층에 있는 베테랑 엔지니어와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창에 등을 대고 있어서 Caffè Macs로 향하는 멋진 길을 내다볼 수 있었다. 창 밖을 보자 누군가 조니 아이브와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하나 보였다.손 휘두르는 광경을 보면 친숙하던데… 잠깐,도대체 뭐지?

창 밖의 사람을 가리키자,그 엔지니어는 돌아보고는 우리가 바로 여름이 왔음을 아는 방법 중 하나라 말했다.스티브는 그때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위에도 반소매에 거의 열대에서나 입을 단추 달린 셔츠였다.

정말 처음에는 그를 못 알아봤었다.물론 캠퍼스 안에 격자 무늬 킬트를 매번 입는 등(그가 정말로 스코틀랜드 사람인지 확실치도 않았다), 이상하게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언제나 좀 있었다.

적어도 스티브는 자신에게는 쿨한 복장이 딱히 아닐지라도 쿨해 보였었다.돌이켜 보면 그는 우리 긱들보다 훨씬 더 잘 그을려져 있었다.

애플 후반기에는 사파리 개발 초창기 시절보다는 스티브를 덜 봤었다.내 선택이기도 했고 상황도 그랬다.그와 함께 검토할 새 애플리케이션이 더 적었고, 검토를 하더라도 내 대신 다른 직원보고 시연하라 하기 일쑤였다. 참가 인원을 더 줄이는 의미도 있었고, 그에게 스티브와 일하는 경험을 심어 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내가 그 영광을, 혹은 그 절망을 다 차지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 번은 스티브가 없는 회의에서 뭔가 시간이 더 김을 깨달은 적이 있었다. 사실 그 기간 동안 스티브를 구내식당에서 본다거나 산책하는 광경을 본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 스티브와 디자인 검토를 참여하라 호출을 받았다.

회의실에 들어가자 충격을 받았다.스티브가 할아버지처럼 야위었고 창백하면서 초췌했기 때문이다. 표정도 불안했으며 피곤해 보였고 늘상 보던 집중력도 없었다. 우리 모두 스티브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았으며,그는 우리에게 암에 대해 말해줬다. 하지만 그때까지 암이 얼마나 진척돼 있었는지 깨닫지 못 하고 있었다.

당시 디자인 검토의 주제가 뭐였는지도 기억이 안 났다.검토가 끝나자 난 빠르게 회의실을 나와 사무실로 향했다.

그날 광경이 너무나 신경 쓰여서 내 사무실로 가지 않고, 대린 애들러(Darin Adler)의 사무실로 향했다. 누군가와 얘기를 해야 했다. 관리자로서 나는 내게 보고하는 사람들과는 그런 일을 공유해선 안 됐지만 대린과는 오래 알던 사이이고 그는 겁먹지 않으리라 여겼었다. 실제로 그는 안 그랬다.하지만 그날 이후 우리 둘 다 최고의 결과를 희망하고 최악의 결과를 준비할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그래서 다시 업무로 돌아갔다.

수 개월 후,스티브가 간이식 수술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서야 안심했었다. 아주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지만, 그래도 희망적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수술 이후 복귀했을 때에도 그는 예전의 스티브처럼 보이지 않았다.그래도 그는 이전보다 훨씬 더 나아 보였기 때문에,우리들 다수는 스티브가 계속 같이 있을 수 있겠거니 희망을 가졌다.

스티브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사파리에 대해 얘기할 때였다.

아마 그가 사임하기 전인 2011년 초여름이었을 것이다. 스티브는 그해 1월 이후 한 차례 더 병가를 지냈었다. 다시금 계속 말라가고 약해져 갔을 때에도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위해 사무실로 왔었다.

사파리 신기능의 디자인 검토에서 윈도용 사파리의 주제가 나왔었고,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고 더 경쟁력 있게 만들지를 알고 싶어 했었다.
이때 스티브에 대해서는 다소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에 난 그냥 직설적이었다.

사파리가 의존하는 윈도용 컴퍼넌트 개발 지원을 위해 내부에서 직원을 더 끌어 모으면서도 난 그에게 엔지니어링의 문제가 아니라 말했었다. 광고가 필요했다. 구글이 홈페이지에 크롬 다운로드 버튼을 붙이고 텔레비전과 매체, 웹 광고를 펼치는 통에 윈도용 사파리는 크롬과 경쟁할 수가 없었다.
방에 있던 스콧 포스탈도 내 편이었다. 스콧이 훌륭한 보스라는 또 다른 증거다.

당시 날 위애 사파리와 웹킷을 운영하던 대린 애들러는 홍보가 윈도용 사파리의 문제만이 아니라 덧붙였다. 맥용 사파리도 이익이라는 논리였다.

우리 모두 작은 디자인 검토실에 모여 앉아 있었고, 난 겨우 스티브로부터 몇 피트 떨어져 앉아 있을 뿐이었다. 스티브는 이 문제와 우리의 제안에 대해 고민하는 듯 했다. 그는 실제로 이 문제를 고민했었고, 그점이 위안이 됐다. 다만 스티브는 마음을 바꾸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결국 그는 반대했다.

냉혹한 결정은 전혀 아니었으며, 그는 결정에 구실을 붙이지도 않았다. 아마 그의 반대 이유는 집중 때문이잖았을까 싶다. 당시 우리는 iOS와 아이폰, 아이패드에 집중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가 맥이나 오에스텐을 텔레비전 광고를 하리라는 생각은 나도 안 했었다.

기쁘지는 않았지만 이해가 갔다.

그리고 스티브 정도 되는 비전가가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숙고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었다. 수개월 후, 난 독감에 걸려 집에 있었다. 약 때문에 좀 정신이 나가기도 해서 그 뉴스를 전혀 몰랐다.

우리 모두 기대하지는 않았던 듯 하지만 스콧이 스티브가 사망했다고 전화했을 때 놀랐었다. 당시 얼마나 그 말을 꺼내기 어려웠을지 알았기 때문에 언제나 그에게 감사하고 있다.

게다가 가족에게 둘러싸여 사망한 편이 더 나아 보였다. 좋은 사람이 죽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을 불러서 그들에게도 소식을 알려주고 집에 있는 편이 낫다 여기면 귀가해도 좋다고 일러 뒀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남았다. 홀로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그때 다시 홀로 누워, 이 사내를 찰나의 시간만이라도 알아서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제멋대로 깨달았다.

Posted on Thursday, April 10, 2014 at 8:21 PM
번역 : 위민복
http://donmelton.com/2014/04/10/memories-of-st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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