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을 다르게 이끄는 팀 쿡

LEADERSHIP WORLD’S GREATEST LEADERS
Apple’s Tim Cook leads diffe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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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은 이후로 쿡은 아이-제국의 재무적인 성공을 훨씬 더 크게 이끌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회사의 문화를 바꿨으며, 지도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냈다.
팀 쿡은 0.7%의 지분을 가진 CEO로서 눈부신 순간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 그는 잡스가 병가로 자리를 세 번 비울 때 그의 자리를 대신 했으며, 결국 잡스가 사망하기 6주 전인 2011년 10월, 애플의 CEO에 올랐다.
다만 쿡이 발견한 사실이 있었다. 전설적인 인물을 계승할 때 어때야 할지, 회사에 전혀 준비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저는 둔감합니다. 그런데 더 둔감해졌죠. 스티브가 사망했을 때는 제가 이론적인, 학문적인 수준만 알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는 정말 믿을 수 없으리만치 우리와 우리 임원진의 보호막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기 때문에, 아마 우리 중 아무도 감사해하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 제품과 회사 운영에만 집중했죠. 하지만 그는 자기에게 던져진 모든 책임을 다 맡았습니다. 물론 칭찬도 그가 챙겼지만, 솔직히 그 강도는 정말 저의 예상 이상이었습니다.”
그동안 거친 시련의 기억은 승리의 순간으로 나타났다. 3월의 화창한 한 일요일, 그는 다음날 발표할 애플 워치(자신이 CEO로 있으면서 완전히 새로 만든 최초의 제품이다)의 리허설을 끝내고 한숨 몰아쉬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야외 카페에 앉은 올해 54세의 쿡은 스낵을 먹으며 그간 애플에서의 경험을 들려줬다. 구글 안드로이드의 발전에 대응하기 위해 애플도 저가형 아이폰을 선보여야 한다면서, “팀의 애플은 혁신할 수 없다”는 주장과 잡스의 마술을 절대로 재현할 수 없을 테니 애플은 “미칠 정도로 훌륭한” 일을 다시는 해낼 수 없으리라는 주장을 그도 알고 있었다.
쿡은 그런 소음을 듣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되새겼다고 한다. “이전에는 저 스스로 그런대로 잘 넘긴다 여겼는데 이제는 정말 잘 넘기게 됐습니다. 트럭이 뒤로 쫓아올 때 이런 기술을 집어들 수 있을 텐데요. 아마 남은 인생의 다른 면면에서도 이 훌륭한 기술을 쓸 수 있을 듯 합니다.”
그 어떤 비판도 영원한 상처를 남기지 않았다는 증거는 이미 나와 있다.애플 워치나 애플페이,혹은 30억 달러가 들어간 헤드폰/음악서비스 업체 Beats 인수가 재무적으로 성공했는지 당분간 아무도 물을 수 없을 것이다. 애플로서는 1997년 길 아멜리오가 해고당한 이래 최초의 비-창업자 CEO 체제로 진군하고 있으며, 그 자체가 증거를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이러한 움직임 자체가 쿡의 리더십을 드러내고 있다. 잡스가 남긴 회사를 관리만 한다는, 널리 퍼져 있는 편견은 적어도 깰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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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of Apple
사실 쿡 치하의 애플이 근본적으로 건전한지에 대한 논쟁은 이제 거의 없다.애플 주가는 주식분리 때의 $54에서 최근 $126으로 치솟았으며, 잡스 사후 시가는 현재 7천억 달러가 넘어섰다. (7천억 달러가 넘어선 회사로는 애플이 처음이다.) 실제로 애플의 시가는 Exxon Mobil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 두 배 이상이며, 이와 동시에 애플은 2010년 이래 현금 보유고를 1,500억 달러 이상으로 불려 놓았다.
(쿡이 자사주 매입 및 배당을 926억 달러 어치만큼 실시했음에도 이룬 실적이다. 참고로 잡스는 주주들에 대한 배당을 못마땅해 했었다.) 애플은 특히 2014년 내내 380억 달러를 판매한 중국에서 스마트폰 하이엔드 시장을 방어했다. 쿡은 이따금씩 일어난 대혼란(애플 지도가 떠오른다)을 솔직함과 겸손함으로 다뤘으며, 잡스로부터 물려 받은 오랜 경영팀도 조정했다. 핵심 임원을 늘리고 가끔은 핵심 인원을 자르기도 하면서 말이다.
쿡은 특히나 그와 애플에게 중요한 이슈로 관심을 집중되게 만들어내는 등, 단순히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애플의 리더로 올라섰다.지난 10월,자신이 게이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그의 결정은, 한때 조용하고 극도로 사생활을 함구하는 임원에서 세계적인 롤모델로 스스로를 상승 시켰다. 포천지 500대 기업 CEO 중 공개적인 게이는 쿡 한 명 뿐이다. 그리고 쿡은 애플이라는 세계적인 플랫폼을 토대로 인권과 교육 접근권, 월스트리트의 여성 참여율, 이민 개혁, 사생활 보호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심지어 고향인 남부 앨러배마의 주도까지 깊숙이 들어가서 남부의 인종 평등에 대한 한탄도 표현했었다.
쿡은 잡스와 대단히 다른 인물로 자신을 차별화 했으며,그 차별이 단순히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발언을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1998년 컴팩 컴퓨터로부터 애플로 이직했던 쿡은 원래 IBM에서 커리어를 보냈으며 기업 운용의 전문성을 갖고 있었다. 그는 애플에서 제품 개발이나 디자인, 마케팅과 같은 중대한 “핵심 분야 전문가(subject-matter expert)”가 아니었다. 그는 잡스가 그랬던 것처럼 모두를 조절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자기 선수들을 신뢰하는 코치처럼 행동했었다.
CUPERTINO, CA - AUGUST 7: (L-R) Tim Cook, Chief Operating Officer, Apple CEO Steve Jobs and Phil Schiller, EVP Product Marketing, answers questions after Jobs introduced new versions of the iMac and iLife applications August 7, 2007 in Cupertino, California. The all-in-one desktop computers now have a slimmer design in aluminum casings with faster chips and glossy screens and is up to $300 cheaper then their predecessors. (Photo by David Paul Morris/Getty Images) *** Local Caption *** Phil Schiller;Steve Jobs;Tim Cook
CUPERTINO, CA – AUGUST 7: (L-R) Tim Cook, Chief Operating Officer, Apple CEO Steve Jobs and Phil Schiller, EVP Product Marketing, answers questions after Jobs introduced new versions of the iMac and iLife applications August 7, 2007 in Cupertino, California. The all-in-one desktop computers now have a slimmer design in aluminum casings with faster chips and glossy screens and is up to $300 cheaper then their predecessors. (Photo by David Paul Morris/Getty Images) *** Local Caption *** Phil Schiller;Steve Jobs;Tim 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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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는 예기치 않게 수석 임원진의 안정을 가져왔다. 1989년 애플에 입사하여 인터넷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맡고 있는 에디 큐 수석 부사장은 그가 절대로 스티브처럼 되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쿡은 항상 자기 자신이 되려 합니다.우리도 그렇게 하도록 정말 잘 하고 있죠.그는 높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고 참여도 합니다.필요할 때 직접 개입하죠.스티브는 픽셀 수준에서부터 참여하지만요.”
당연히 잡스와 같은 인물을 따라하기 위한 모델은 없다.잡스는 가차 없는 충동성으로 위대한 결과를 반복해서 만들어낸 창업-기업가로 알려져 있다. 더군다나 3년간 꾸준히 성공을 거뒀다고 하여 미래가 보장되지도 않는다. 저명한 와튼 경영대 교수이자, 리더십 및 경영변화 센터(Center for Leadership and Change Management) 학장인 마이클 유심(Michael Useem)의 말이다. “요새 최고 경영에 대한 다른 질문보다 쿡이 애플의 전성기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계속 갖고 있습니다.”
쿡은 비판가들을 상대하기보다는 무시하는 편이 훨씬 더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제가 공직 선거를 뛰진 않잖습니까. 표를 얻을 필요가 없으니까, 제가 올바르다 여기는 일을 해야 해요. 저를 전혀 모르거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을 상대하느니, 그냥 무시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은 삶의 방식이라고 봅니다.”
쿡의 반항적이면서도 자신감 있는 목소리는 그가 CEO임을 드러낸다.잡스가 고안한 애플의 유별난 기업 문화를 쿡보다 더 격렬하게 지키는 이는 없다.물론 그도, 자신의 고유한 관점을 추가하고, 자신의 이미지로 애플을 미묘하지만 분명하게 바꿔가면서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애플을 이끌기 위해 애플 문화를 좀 조절하고 있기는 하다. 잡스가 쿡의 정책을 승인했을지 안 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수수께끼의 창업자는 죽기 직전 쿡에게 결정을 내릴 때 잡스라면 뭐라 결정했을지 떠올리지 말라 했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면, 쿡이 애플을 어디로 이끄는지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을지에 대한 질문은 부질없다.
Moments of Truth
31년간 하버드 대학교에서 기업사를 가르쳤던 리처드 테들로(Richard Tedlow)는 기술 업계 전문이었다.그는 왓슨(Watson) 가문이 지배했던 격동의 IBM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으며,변덕스러운 인텔의 CEO, 앤디 그로브(Andy Grove) 전기를 작성하기도 했었다.현재 테들로는 애플 내의 교육기관(잡스가 사망하기 전에 설립했다)인 애플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애플 대학은 여느 경영기술 학원이 아니다.테들로는 애플 대학을 1990년대 잡스가 진두지휘했던 유명한 광고 캠페인의 어구를 빗대어 “Think Different 기업 대학”이라 부른다.애플 대학은 직원들을 위해 애플의 독특한 방식을 문서화하고 애플 사람들의 생각을 돕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개방적이도록, 비-애플스러운 관점도 고려하게 돕는 목표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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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Ahrendts, Jony Ive, Eddy Cue, Jeff Williams, Lisa Jackson
Courtesy of Apple
테들로는 애플 대학을 “기술과 교양 간의 치료적인(therapeutic) 연합”이라 불렀다. 애플 대학의 수업 주제는 컴퓨터와 기기 사업이 아니라 애플 스스로에 대한 관점인데, 예를 들어서 Stanford 대학교의 정치철학교수 코언(Joshua Cohen)은 유명한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을 녹음하고 또 재녹음했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의 꼼꼼한 노력에 대해 강의하기도 했었다. 오리지널 맥 내부의 완벽한 스크류에 대한 잡스의 유명한 집착도 당연히 수강생의 마음과 멀지 않다.
최근 테들로가 가르쳤던 수업은 Moments of Truth라 불린다. 이 수업은 링컨 대통령의 재임 수락 연설의 유명한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고(with malice toward none)” 부분을 논의하는 내용이었다. 테들로에 따르면 “징벌이 아닌 화해의 순간”을 논의하려 했었다고 한다. 67세의 학자인 그는 애플에 들어온 이후로 일반인의 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마가렛 대처의 포클랜드 전투 결정과 존슨 & 존슨의 CEO인 제임스 버크(James Burke)이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bottle-tampering crisis)을 어떻게 다뤘는지도 수업했다.
테들로는 잡스 사망시 쿡이 처했던 상황을 링컨이나 다른 이들의 진실의 순간과 비교했었다.당연히 피가 난무하고 양분된 나라를 재통합 시키기와 사랑스러운 기기 업체를 이끌기와 사뭇 같지는 않다. 하지만 감정적인 비교는 그럴듯 하다. 테들로의 설명이다. “쿡이 모두의 기대라는 중압감을 안고 올라섰다고 생각합니다.” 캘리포니아 애플 본사 캠퍼스에서의 추도식에서 쿡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의 최고의 나날이 앞으로 올 겁니다.” 당시로서는 어려운 메시지였다. 바로 이점이 깊게 나뉘고 전쟁의 상처로 얼룩진 나라를 안심 시키려는 링컨과 비교할 수 있었다.
잡스 이후의 시대가 위대하리라는 약속은 쿡으로서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었다.단기적으로는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의 혁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잡스 사망 직전, 제품 발표 때의 음성인식 기능인 시리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한다는 신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리는 구글 안드로이드가 이미 제공하던 기능을 애플이 따라잡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었다. 더군다나 시리가 특별히 좋지도 않았으며, 사용자를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농담의 소재로 전락했다.
1년 후,애플은 모바일 맵이라는 또다른 약한 제품의 수렁에 빠졌다. 애플은 구글 맵이 아닌 애플 맵을 아이폰 기본 지도로 놓았지만, 애플 맵에는 에러가 너무 많아서 사용자들을 잘못된 장소로 인도한다고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 애플 맵은 믿기 힘들 정도로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쿡은 공개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대단히 죄송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제품들보다도 구글 맵을 사용할 것을 권장했으며,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서 쿡은 모바일 소프트웨어 책임자이자 잡스의 오랜 수족이었던 스콧 포스탈(Scott Forstall)을 해임했다.
2013년 초,쿡은 또 다른 임원 문제에 봉착했다. 외부에서 고용한 제일 높은 직위의 임원이자, 전임 영국 전자제품 체인점인 Dixon’s의 수장이기도 했던 존 브로웻(John Browett)이다. 저가 제품 소매범 수장을 애플의 고급 소매점 책임자로 영입한 일 자체가 흥미로운 뉴스였는데(애플 스토어를 처음 열 때부터 책임자였던 론 존슨(Ron Johnson)은 Target 임원이었으며 당시 J.C.Penny CEO가 되기 위해 애플을 떠났었다), 브로웻은 애플에 맞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그의 일정 관리 변경은 직원들의 분노를 자초했었다. 쿡은 2013년 3월 그를 해고했다. (브로웻은 후에 한 연설에서 자신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애플 문화와 맞지 않아서 나가게 됐으며, 이는 충격이었다고 인정했었다. 다만 그는 코멘트를 거절했다.)
되돌아 보면 쿡은 CEO 교육의 일부로서 위의 일화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말이다. “문화가 맞아야 한다는 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겨 주죠. 게다가 문화를 배우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CEO로서 수많은 일에 관여하는 나머지 개별 특별한 부분에 관심을 덜 가질 수 있어요. 즉, 더 짧은 주기에 더 적은 데이터 포인트를, 더 적은 지식과 사실을 가지고 운영해야 합니다. 엔지니어일 때는 아주 많은 것을 분석하기 원하겠지만, 제일 중요한 데이터 포인트는 결국 사람들입니다. 거의 순간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죠.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더 밀어 줘야 하기 때문이며, 다른 누군가가 아니거나, 더 안 좋은 경우, 다른 누군가가 되려 하는 사람들을 더 성장 시켜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제품이 아직 논의할 만한 상황이 아닐 때 애플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일도 또다른 난관이다. 가령 2013년 중순 한 기술 업계 컨퍼런스에서 쿡은 너무나 모호해서 투자자들로부터 도대체 회사의 비전을 갖고 있는지 질문을 공개적으로 받은 적도 있었다. 당시 애플 주가는 쿡이 CEO에 올라섰을 때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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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 by Joe Pugliese
그동안 그 뒤에서 쿡은 세상이 그토록 원하는 신제품 작업을 위해 그의 팀을 아우르고 있었다. 2013년 하순,그는 Burberry의 CEO, 앤젤라 아렌츠(Angela Ahrendts)를 애플 소매점 책임자로 영입해냈다.그리고 1년 후 애플은 대형 화면의 아이폰 6과 더 화면이 큰 아이폰 6 플러스, 새로운 지불 시스템인 애플 페이를 선보이고, 곧 출하할 애플 워치를 소개했다. 다른 뭣보다도 새 아이폰은 애플을 다시금 상승세로 올려 놓았다. 2014년 마지막 분기에만 7,450만 대를 팔았으며 애플은 180억 달러의 이윤을 올려 주가를 급상승 시켰다.
이 성공으로 인해 쿡은 실수를 만회할 수 있었다. 2014년 하순,애플의 차세대 화면을 만들기 위해 계약했던 유리 업체, GT Advanced Technologies는 애플이 사용을 거절하자 부도를 선언하고는,애플 계약 때문에 했던 투자로 부도가 났다면서 애플을 제소했었다.애플은 동사의 부도로 오히려 공격을 받았다고 맞섰으며, 양측은 결국 합의했고 애플은 아리조나에 있는 제조단지에 태양광 발전소와 데이터 센터를 짓기로 약속했다. 이로써 애플은 또한 상당한 규모의 대손상각(write-off)을 단행했는데(얼마나 큰 규모인지 밝히지 않을 것이다) 수 십억 달러를 제조 공정에 투자하는 회사로서는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원래 쿡이 맡았던 운영부 수석 부사장인 제프 윌리엄스(Jeff Williams)는 소송 건으로 쿡이 자기에게 세 가지를 얘기해줬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팀에게 보고했을 때 그의 답변은, ‘첫째로 우리가 이 건으로 뭘 배울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둘째로 우리가 대성공을 거두지는 않을 것이며, 셋째로 우리는 고객들을 위해 훌륭한 기술에 계속 투자해 나갈 것이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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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경영에 대한 쿡의 정서적인 접근은 전임자의 접근과는 상당히 다르지만,핵심 제품과 장기적인 방향에 대한 초점은 정확히 같다.이런 맥락에서 애플페이나 새로운 손목시계가 거대한 이윤을 낳는 효자 제품이 되리라는 전망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1980년대 애플 임원이었으며 현재 독자층이 매우 많은 주간 칼럼, The Monday Note로 유명한 장-루이 가세(Jean-Louis Gassée)는 애플에 대해 간단한 관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은 항상 하나의 사업 뿐이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이죠. 이제는 대중소 세 가지 크기로 만듭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그리고 노트북과 데스크톱이죠. 다른 모두는 애플워치가 아이폰 안에 존재하듯, 위의 제품들의 틈을 채워줍니다.” 가세가 볼 때 쿡 치하의 애플은 15년 전, 잡스의 디지털-허브 전략을 방불케 한다. 당시 아이튠스와 같은 제품이 아이포드의 판매를 끌어 올렸으며, 궁극적으로는 맥도 같이 성장 시켰었다. “팀은 자기 방식으로 오랜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쿡은 투자자들이 애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의 논쟁에도 끼어 들었었다. “우리가 찾는 투자자는 장기-투자자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렇게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죠. 만약 당신이 단기-투자자라면 우리 주식을 매각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거대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결정이죠. 하지만 우리가 회사를 그런 식으로 운영하지 않는다는 점을 모두가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Putting His Life in View
애플 제품 선이나 다른 이벤트에서 예전의 팀 쿡은 뻣뻣했었다. 그러나 당시 그가 얼마나 잘 했든지 간에 기조연설의 거장인 잡스와의 비교는 부당했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쿡도 분명히 자기 역할에 적응했다. 시계 발표회 때 그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이벤트를 진행했었다. 그가 패션 모델이자 건강 전도사인 크리스티 털링튼 번스(Christy Turlington Burns)를 안았을 때 그의 행동에 뻣뻣한 면모는 전혀 없었다. 그녀는 장거리 달리기용으로 애플워치를 사용중이었다.
쿡은 심지어 스스로 즐기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제품 소개 다음 날, 그는 쿠퍼티노에서 연간 주주회의를 주관했었다. CEO들이 즐기기보다는 견뎌내야 하는 회의였는데, 쿡은 주주들과 친밀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소탈하게 답변하고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도 즐겁게 피하고 있었다. 애플스러운 자동차 업체이자 널리 사랑 받는 Tesla Motors를 애플이 과연 인수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두 번이나 피한 그는 미끼를 물지 않았노라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했다. 그는 “CEO가 좋은 점도 있네요”라 웃어 넘겼다.
CEO이기 때문에 이런 원치 않은 질문에 진땀을 빼야 하기도 하지만,반대로 CEO인 덕분에 설사 애플 관련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른 문제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지난 10월 그의 고향인 앨러배마에서 Alabama Academy of Honor에 그를 초대했었다. University of Alabama의 미식축구 코치인 닉 세이번(Nick Saban)과 제프 세션스(Jeff Sessions) 상원의원도 참석했었지만 연설자로 앨러배마주는 쿡을 골랐었다. 곧 그 선택을 후회했지만 말이다. 쿡은 진부한 말 대신, 인종 평등과 교육의 기회,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에 대한 평등 추진이 느리다는 이유로 앨러배마를 맹공격했다. 쿡은 “이건 옳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치를 반영하지 않습니다.”라 말했다.
지역 방송국에서는 쿡과 공화당 출신 주지사인 로버트 벤틀리(Robert Bentley) 간의 어색한 장면을 잡아냈었다.그 장면에서 벤틀리 주지사는 쿡의 발언을 육성으로 불쾌해 했었다. 본지의 소유주인 타임의 전-CEO이자 팀과 같은 Auburn 대학교 출신인 돈 로건(Don Logan)도 당시 주의사당에 참석했었다. 그는 앨러배마주가 동성혼을 허용하지 않는 법안을 최근 통과 시켰음을 지적했다. “팀은 대단히 용기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풍파를 일으킬 것은 물론, 실내 대부분이 자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뻔히 알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쿡은 Bloomberg Businessweek 지에 칼럼을 통해 공개적으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쿡이나 애플로부터 다른 코멘트는 없었으며,그의 고백은 큰 화제를 일으켰으나 대부분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돌이켜 보면 그는 자신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애들과,자살도 시도하는 사람들,성적인 지향만 가지고 직원들을 해고하도록 허용하는 많은 주 때문에 행동에 나섰다고 한다. 또한 미국 법원이 이 문제에 대해 대단히 빠르게 움직이기도 했다. “저는 사업이 임원실에서만 주도해서 이뤄지지는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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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공직에 나가지는 않죠. 여러분의 표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저는 올바른 일을 스스로 해야 한다고 느끼며, 제가 결정권자라면, 제 결정에 대한 비판을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더 잘 사는 방법이라고 봐요.”
Courtesy of Apple
쿡은 자신이 “꽤 오래 전”에 커밍아웃을 하기로 했으며, 발표문을 내부에서 다듬었다고 한다. 사실 그의 성적 성향은 다소 “지루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었다. 다만 이렇게 크게 나서는 일은 쿡에게도 큰 일이다. 스스로를 극도로 사생활을 지키며,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힘들어 하는 등, 여느 CEO같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다른 이들을 도울 것 같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면 아마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 인생을 공개하는 건 즐겁지가 않죠.” 종종 인용되는 “많이 주어진 자에게는 많은 책임이 필요하다”를 말하면서 쿡은 자신이 분명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쿡은 덕분에 스티브 잡스의 회사를 운영하는 인물 이상으로 유명해졌다. 세계적인 로펌인 샌프란시스코의 Pillsbury Winthrop Shaw Pittman에서 스타트업 기술 회사들을 자문하는 마이크 설리반(Mike Sullivan)도 자신의 성적 성향을 자긍심으로 여기며,자신의 직업을 규정짓지는 않는다 여긴다. “포천 500대 회사에 500명의 CEO가 있는데 그 중 게이가 몇 명인지 장담해 드릴 수 있어요.팀이 보낸 메시지는 ‘너 스스로가 되어도 괜찮고,스스로 내세울 필요도 없지만 굳이 숨길 필요도 없다’는 말이죠.”
쿡이 너무나 유명해진 까닭에 그가 안 보이던 시절은 이제 기억도 안 날 지경이다. 3월 초 유럽에 갔을 때 쿡은 베를린에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와, 브뤼셀에서는 전-에스토니아 총리이자 현재 유럽위원회(EC)에서 디지털 문제를 다루는 최고 책임자인 안드루스 안시프(Andrus Ansip)를 만났었다. 또한 전직 포천지 저널리스트인 브렌트 슐렌더(Brent Schlender)와 릭 테첼리(Rick Tetzeli)가 쓴 새 책에도 그가 나온다. 이들은 쿡이 잡스에게 자신의 간 이식을 제안했었다고 보도했다. (잡스는 쿡의 제안을 거절했다.) 3월, 쿡은 심지어 CNBC의 금융 프로그램 사회자인 짐 크레이머(Jim Cramer)에게 10주년 방송중 전화도 했었다. 크레이머는 놀라워 하면서도 기뻐했었다.
회사를 대표하기는 CEO의 임무이지만 쿡은 AIDS 전염 방지와 인권, 이민법 개혁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리더십의 기회로 여기기 때문이다.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는 연못의 조약돌이 되고 싶은 것이죠.” 그는 애플 직원들이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해당 이슈에 대해 항상 염려해 왔다고 덧붙였다.
쿡에게 있어서 세상 바꾸기는 언제나 돈벌기보다 더 높은 어젠다였다.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현재 10살인 조카의 대학 학비까지만 지원한 다음 모두 포기할 계획이다.개중에는 자선 프로젝트에 대한 상당한 자금 투입도 있을 것이다.쿡의 총재산은 그의 애플 주식으로 계산했을 때 현재 1억 2천만 달러이며, 권한을 완전히 받을 경우 행사할 수 있는 제한부 주식(restricted stock)이 또 6억 6,500만 달러 어치가 있다. 쿡은 이미 조용히 기부를 시작했지만, 단순히 기부하기보다 시간을 들여 구조적인 자선책을 만들 계획이다.
쿡의 애플이 거의 반인 반신 취급을 받았던 전임자 때보다 훨씬 더 눈에 띄게 개방적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잡스는 직원들과 언론의 접촉을 심각하게 막았었지만, 쿡은 언론 미디어에 개방적이었다. 가령 최근 뉴요커의 16,000 단어 짜리 조니 아이브 특집 기사를 잡스라면 거부했을 것이다. 쿡은 이러한 노출도 자신의 계획의 일부라 말한다. “제 목표는 우리 경영팀과 다른 직원들을 대중에 노출시키는 겁니다. 결국에는 애플에게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개방 정책의 목표는 두 가지다.첫째로 애플에 대해 세상이 계속 얘기하도록 하기이다.건강한 자아를 가진 임원들의 노출 자체가 그들을 가둬 두는 괜찮은 방법이다. 전임 애플 임원이었던 가세는 “진정한 코치는 스타 플레이어의 언론 노출을 오히려 기뻐하죠”라 언급했다. “팀 쿡은 자신의 스타들을 돌볼 줄 아는 진정한 단장입니다. 박스 오피스 성적이 좋은 한, 계속 그럴 겁니다.”
Building for the Future
팀 쿡은 말그대로 엄청난 먼지 위에 서 있다.그는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2016년 말에 끝날 애플의 새 사옥이 들어설 쿠퍼티노의 건설 현장에 들어왔다. 흙이 아래의 거대한 구멍에서 뽑아져 나왔으며, 4층 짜리 건물이 들어설 곳에 눈높이까지 흙이 쌓여 있었다. 여기에 반지형 빌딩을 곧 세울 예정이다. 도너츠 모양의 빌딩은 우주선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래에는 트럭과 일꾼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으며, 쿡은 업무 장소라는, 그가 정말로 관심을 가진 주제에 대해 말했다. 도시의 사무용 고층 빌딩들이 얼마나 칙칙한지 놀라울 따름이며, 애플의 신사옥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창조력을 켜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는 미래의 대학교 졸업생들이 처음 방문할 때 어떤 느낌일지를 생각했다. 기존 애플의 쿠퍼티노 캠퍼스와 San Jose 시내, Levi 스타디움이 눈에 보이는 위치인데, 우연히도 샌프란시스코 49er들이 경기하는 경기장이 우주선 중앙부의 30 에이커 짜리 공원에 딱 들어맞는다.
Apple construction, Cupertino, CA
2015년 3월 3일에 촬영된 애플의 신사옥 건설 현장. 쿡은 이 하이테크 빌딩이 “모든 제품의 어머니”라 불렀다.
Courtesy of Apple
스티브 잡스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2년 동안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를 고용하여 신사옥을 디자인하는 등,새 건물에 상당한 시간을 들였었다.건설 현장의 모든 것은 규모이며, 수치에 밝은 쿡은 주요 수치를 모두 암기하고 있었다. 메인 빌딩 자체는 280만 평방피트이며 1만 3천 명의 직원을 수용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인접한 빌딩에 2천 명 이상의 직원을 더 수용할 수 있으며 여기에 10만 평방 피트의 운동 센터와 1만 5천 명의 점심을 줄 수 있는 구내 식당이 들어선다. 그리고 모두 Santa Clara Valley에서 자란 8천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는다.
쿡은 건설 현장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며(애플 임원일 때에도 이미 두 번 방문했었다), 곳곳에 있는 22대의 크레인을 엔지니어의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애플이 신사옥을 “애플 캠퍼스 2″로 부를지는 아직 결정 안 했다고 한다. 빌딩, 혹은 전체 부지의 작명은 아마 분명히 잡스에 대한 헌사를 포함할 듯 하며, 쿡에 따르면 잡스 가족에 달려 있다고 한다.
현장을 90분 동안 보면서 그는 캠퍼스의 세부 사항에 대해 설명했고,이곳이 “모든 제품의 어머니”라 설명했다.예를 들어 애플은 주차장 관리와 같은 지루한 일에 최신 기술을 투자하고 있다.센서와 앱으로 이뤄진 시스템이 직원들 출근할 때의 차 이동량을 조절하여 주차장을 찾기 위한 기름 낭비를 줄이는 식이다.소매점에서도 했듯,애플은 모형을 만들어서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지,잘라서 들여다 보기도 한다.어째서 4층 이상으로 올리지 않냐에 대해서는 기존 캠퍼스와의 고도를 맞추기 위해서라고 한다.쿡의 설명이다. “5층으로 높여서 모형을 만들었을 때는 모양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는 지하에 대해서도 특히 좋아했었다.캠퍼스 남동쪽 구석에 생길 천 명 규모의 강당은 매년 하는 개발자 컨퍼런스를 제외한 모든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곳이다. 쿡은 열정적으로 말했다. “수 개월 전에 미리 일정을 잡아 놓을 필요가 없겠죠.”
새 캠퍼스를 얘기할 때,쿡은 신사옥을 “본부”라 이름 짓기 싫어했다. “저는 ‘본부’라는 단어가 싫습니다. 실제 일을 하는 곳이지 관료 식으로 명령 내리는 곳이 아니죠.” 실제로 어느 그룹이 신사옥에 들어갈지, 누가 기존 사옥에 남을지 애플 직원들은 계속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 쿡은 세 번 정했다고 한다. “아마 세 번 더 정하겠죠.”
1 Infinite Loop에 있는 쿡의 현재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그의 애플워치가 트라이앵글의 딩! 소리를 냈었다. 쿡은 기본형 스포츠 버전의 애플워치에 하얀색 플라스틱 밴드를 차고 있었다. 알림을 받은지 거의 2시간이 흐른 후였다. 쿡에 따르면 비서가 문자 메시지를 보냈으며, 애플 이사인 알 고어(Al Gore)가 자기와 얘기하고 싶다는 보고였다.
전자 알림 때문에 쿡은 주머니의 아이폰을 꺼낼 필요가 없었다.애플워치의 채택으로 애플이 바라는 주요 목표 중 하나이다. 알림 덕분에 마키마우스 워치페이스 외에도 애플워치의 기능을 보여줄 기회가 생긴 셈이다. 미키마우스는 초당 운동량도 재어주도록 업데이트돼 있었다. 운동량 측정광인 쿡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매일 운동량을 보여줬다. 지금까지 운동을 50분 하고, 8,139 보, 그러니까 약 4 마일을 걸었다. 일찍 일어나는 그는 12시간 동안 움직였었고, 아직 오후 3:30 밖에 안 됐었다. 그의 업무 시간은, 그리고 그가 애플을 이끌 시간은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
This story is from the April 1, 2015 issue of Fortune. It originally stated that the Siri product launch occurred days after Steve Jobs died. The event was the day before his death.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http://fortune.com/2015/03/26/tim-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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