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스타크와 스티브 잡스의 요트

필립 스타크와 스티브 잡스의 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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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TY FAIR

ACTUINTERNATIONAL
MIS À JOUR LE 29/08/2014 À 14:36 | PUBLIÉ LE 28/08/2014 À 17:45 >Exclusive
Philippe Starck reveals the real story behind Steve Jobs’ yacht
For Steve Jobs worshipers, Venus is no longer the name of the Roman goddess of love. It’s the yacht that the legendary Apple founder designed with Philippe Starck before he died. After years of silence, the French designer remembers with SYLVIE SANTINI the different stages of this secret project. And draws the portrait of a visionary who never surrendered.
필립 스타크는 지금도 7년 전의 그 일만 하면 웃음이 나온다. 직원이 실수했으면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고, 아무도 몰랐을 테니 말이다. 파리의 République 광장 근처 사무실에서 한 직원이 스타크에게 잡스가 전화했었다고 알렸다. 아마 스스로 맥을 쓰고 아이포드에서 음악을 다운로드 받아왔을 텐데, 애니메이션을 혁명적으로 바꿨던 토이스토리도 봤을 텐데, 그녀는 애플의 창업자이자 픽사의 전 소유자, 기술을 욕망과 상업의 객체로 전환한 사내의 전화를 끊어 버렸다. 상사인 스타크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의 이름만 종이에 적었을 뿐이었다. 그녀에 따르면 전화 건 남자가 영어로 말하던데, 자기 번호도 얘기 안 했었다. 스타크는 지금도 빙긋 웃었다. “2007년에 잡스의 아우라를 상상할 수나 있었겠수? 그는 기본적으로 신이었어요! 근데 그녀는 그가 누군지도 몰랐기 때문에 연결을 안 해 줬었습니다! 시작부터 어긋나 있었죠.”
다만 캘리포니아의 신께서는 용기를 잃지 않으셨다. 기적이었던 셈이다. “스티브를 안다면 그런 모멸감을 안고 다시는 전화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수 주일이 지난 후, “신”께서 다시 전화를 거셨다. 다만 이번에는 스타크가 전문 디자이너의 성지인 가구 박람회가 열리는 밀라노로 막 떠나려던 참이었다. 그의 팀은 물론 대여섯 대의 오토바이 택시가 엔진을 켠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론 컨퍼런스 일정들 때문에 이탈리아로 갈 비행편을 놓칠 수도 있는 순간이어서, 늦어서는 안 됐다. “이번에는 숨가쁘게 저를 찾더군요. 막 헬멧을 썼었습니다.” “무슈 스타크! 무슈 스타크! 그 사람 아시죠? 잡스라는 분이요. 얘기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헬멧을 벗고 잡스랑 통화를 했습니다. “보트 한 척 만들어 주시겠소?” 스타크는 “뭐… 그래요.”라 대답했다. 잡스와 스타크는 몇 마디만 나눴을 뿐이다. 대화는 약 15초 정도였다고 한다. 잡스는 직접적으로 어떻게 만드는지 아시냐 물었다. 공항으로 달려가기 전에 그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물론이죠! 저는 손가락 사이에 손바닥이 있고 등에는 비늘이 나 있어요. 제가 양서류이거든요.”
비행기 디자인을 했던 엔지니어의 아들인 스타크는 어린 시절 대부분 배를 그리며 살았었다. 15살 때 그는 모를레(Morlaix) 항만의 한 항해학교에서 조난사고 생존법을 가르쳤고, 형제끼리 센 강에서 보트 경주를 벌이기도 했었다. 2012년 Mer & Bateaux 지에서 그가 했던 말이다. “크기와 관계 없이 보트가 항상 있었습니다. 건조대나 개념 단계의 보트도 항상 있었죠. 부인과 저는 보트를 정박 시킬 수 있는 집에서 삽니다. 물 위에서 살죠.” Café Costes와 Mama Shelter 호텔, Meurice와 파리의 Monceau, 뉴욕의 Royalton, LA의 Mondrian, 리오의 Fasano 등 전세계의 호텔과 레스토랑 디자인으로 유명한 스타크는 요트의 경우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디자인했었다. 2003년 퐁피두 센터에서 작품 전시회를 할 때 냈던 선언문에서 그는 보트가 정말 필요한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수영 먼저 해보라 적었었다! 후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근사한 여인이 그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지만(사실 그녀는 사업가이자 레바논의 부총리인 Isaam Fares의 배우자였다.) “구조적으로 저속한” 요트여서 그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었다. 다만 그녀는 저속함을 피한 배를 교묘하게 짓도록 만들었고 그래서 나온 배가 Wedge Too였다. 6년 후인 2008년, 스타크는 러시아 재벌, 안드레이 멜니첸코(Андрей Мельниченко)의 배를 디자인했었다. 119 미터 길이에 6천 톤의 배로서 제일 거대한 모터 요트였고, 비용이 3억 달러에 달했다. 이 배는 너무나 공격적이어서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2008년 1월 23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도대체 이 배가 “세계에서 제일 못 생긴 배”가 왜 아닌지 궁금해 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스타크는 범선 라인을 디자인함으로써 부도 위기에 처해 있던 방데(Vendée)의 Bénéteau 조선소를 구했던 일을 자랑스러워 했었다. 매우 부자인 한 이탈리아인을 위해(공식적으로는 이탈리아의 한 조선 기사가 서명한 계획이었지만) 1997년에 디자인한 단판키의 경주용 범선, Virtuelle을 디자인했던 스타크는 이 미니멀한 디자인의 범선 때문에 스티브 잡스가 자신에게 일을 맡겼었다고 한다. “Virtuelle은 이제까지 본 보트 중에 제일 아름다운 보트입니다.”(Mer & Bateaux, December 2012) 칭찬을 받아들이지 않는 성향인 스타크는 루소의 문장을 인용했다. “편견을 받기 보다는 역설적인 사람이 되겠습니다.” 칭찬을 오히려 도전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잡스 역시 스스로 모순적인 면을 갖고 있다. 1995년 픽사가 성공적인 주식 공개를 한 후, 잡스는 자신이 요트를 살 계획이 없다 말했었다. 물론 비너스(Venus)는 보통의 요트가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THE ASCETIC AND THE BON VIVANT
2007년 4월 28일, 필립 스타크와 그의 배우자인 자스민(Jasmine, 그해 12월 그 둘은 결혼했다)은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북쪽에 있는 팔로알토의 스티브 잡스 자택에 갔다. 동네가 평범해 보였고 문도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파리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12시간에 걸친 비행 끝에 운전사가 데려다 준 곳은 여느 동네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스타크는 “우리가 지금 스티브 잡스 저택으로 갈 겁니다. 아시죠? 애플 사장”이라 말했지만 운전사는 주소가 맞다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차를 내렸죠. 오래 된 1 미터 남짓 하는 철제 문의 디테일이 마음에 들었어요. 배관관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여기가 진짜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었어요.” 스타크는 문을 열고 ‘작은 마당’을 지나 부엌 문으로 보이는 유리를 노크했다. “옛날 타일이 떨리듯 울리더군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열려 있었다. 갑자기 검은 옷을 입은 유령같은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안녕하세요, 필립!”이라 말했다. 잡스였다. “인사를 나눴어요. 바로 앞에, 정말 따뜻한 모습이었습니다.”
“전통적인 미국 교외에 있는 초라하지만 멋진 집”이었다. 스타크 생각에 200 제곱 미터도 안 돼 보였다. “150 정도나 됐을까요.” 두 사내는 서로를 알아 봤다. 그리고 그 후로 4년간 일상적인 일을 하면서 신중하되 서로를 북돋는 우정은 천재적인 디자인 감각과 똑같이 거대한 자아를 가진 둘을 결합 시켰다. 스타크는 간단하게 표현했다.
“잡스는 결벅증의 신이었고, 저는, 저는 그냥 결벽증의 황제 정도죠.” Trocadéro가 보이는 파리의 스타크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는 끈질긴 설득의 결과였다. 심지어 잡스조차 두 번 전화를 걸어야 했던 스타크다. 스타크는 항상 두 대의 비행기나 열 채의 집(그의 집은 파리와 베네치아, Cap-Ferret에 걸쳐 있다) 중 어느 한 곳에 있었다. 그는 어디에든, 딱히 여기다 말할 수 없는 곳에 있기를 원했다. 필립 K 딕(Phillip K. Dick)의 걸작에 나오는 평행 우주에 살고 있는 캐릭터들처럼, 그는 자신의 회사를 Ubik이라 불렀다.
오늘날 그의 사무소와 그가 주로 거주하는 집은 에펠 탑과 하얀 공간이 파노라마 식으로 보이는 1930년대의 걸작 빌딩 3층에 있다. 평상시 입던대로 필립 스타크는 청바지와 스니커즈, 후드를 입고 있으며, 키가 크고 갈색 머리인 자스민 역시 비공식 유니폼인 검정 청바지와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LVMH 그룹의 전직 홍보 담당자였던 자스민은 65세의 남편(그녀보다 23살 많다)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으며 그의 발표를 기록하고 녹화하며, 필요한 경우 끼어들어서 기억을 되새겨 주거나 날짜를 주고 상황을 확인하기도 한다. 비서진이 우리가 인터뷰 할 방 청소를 끝냈다. 말 그대로 “clearing”을 한 것이다. 클리어링은 그의 집념이기도 하다. 어느 날 그는 스티브 잡스가 그렇게 초라한 집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도 이해 못 한다고 말했다. (2008년 포브스 지는 잡스의 재산이 57억 달러, 거의 40억 유로에 달한다고 추정한 바 있었다.) 그래서 스타크는 스티브에게 정말 거기 사냐 물었었다. “응, 왜요?” “그냥… 모든 것이 너무 ‘클린’해서요. 정리돼 있고 정돈돼 있습니다…” 잡스는 엉망진창을 보고 싶냐 묻더니, 그를 자기 사무용 방으로 안내했다. “바닥에 신문이 몇 개 흩어져 있고 스니커즈 두 켤레가 놓여 있었어요. 스티브에게는 이 정도가 무질서의 극단이었던 거죠.”
그의 기억대로 스티브 잡스는 거의 비어 있는 공간에 살았다. 스타크는 그것이 세련된 미니멀리즘은 아니었다고 한다. “차라리 소박하다고 해야죠. 그냥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소파와 팔 달린 의자 3개, 마루의 커피용 탁자… 아무 것도 없었어요.” 스티브 잡스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 또한 가구에 바라는 게 너무 많아서 차라리 빈 상태로 지내는 그를 묘사한 바 있었다. 필립 스타크가 방문했던 그 집 이전에 잡스는 방 14개가 있는 대저택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7년 로렌 파월(Laurene Powell)과 결혼하면서 팔로 알토 집을 샀고, 최소한의 편의만 갖춘 집을 설계해야 했다(침대가 시작이었다). 아이 3명(리드, 에린, 이브)에 맞는 기본적인 시설만 갖춘 집이었다. 동양 철학으로 지탱한 그의 철학은 검소함과 벌거벗음이었다. 이 관점에서 스타크와 잡스는 동조를 이룬다. 스타크도 “채워짐보다 여백이 더 중요하다는 아시아적인 생각에 감화 받으려 노력했다”고 쓴 바 있다. 따라서 1998년 스타크는 유명한 투명 의자를 디자인하여 The Marie라 이름 불었고, 이 의자를 “거의 완벽한 오브제”로 소개했다. 비너스의 탄생을 이루게 된 이 의자처럼 필립 스타크는 “최소한의 우아함”에 도달하려 노력했다.
2007년 4월부터 2011년 가을(스티브 잡스는 2011년 10월 5일에 사망했다), 스타크 부부는 한 달에 한 번씩 일요일에 팔로알토로 갔다. 보통은 스타크가 “나의 오른팔, 특이한 캐릭터”라 말하는 디자이너 티에리 고갱(Thierry Gaugain)과 함께였다. 갈 때마다 12시간씩 쉬지 않고 일이 이어졌으며, 커피 탁자에 허리를 굽히고 코는 바닥에서 딱 3 피트 높이에 있었다. 그런 방식의 일이 인생을 즐기며 사는 필립 스타크에게는 고역이었지만, 잡스만을 위해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가 디자인한 검정 터틀넥만 입는 금욕적인 스티브 잡스에게는 평상시의 자세였다. 이 억만장자는 스타크 일행에게 마실 것도 안 줬다. “일하던 곳의 공간 위에 커다란 창문이 있었어요. 말그대로 우리가 요리를 했습니다. 가끔 로렌이 와서 저분들 마실 거라도 좀 드렸냐고 물어보면 그제서야 잡스가 가서 물잔을 들고 왔어요. 그의 부엌에는 음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같이 먹었던 적도 별로 없고요.” 스타크는 잡스가 접시에 거의 손을 안 댔다는 점도 기억했다. 아주 견고하고도 강력한 채식주의자인 것도 있지만 이미 잡스가 심각한 병환에 있기 때문이었다. 암은 2003년 이래 그를 갉아먹고 있었다. 스타크 부부는 매번 잡스를 안을 때마다 그가 팔 안에 무슨 종이를 안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기억한다.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포즈를 취한 잡스”나 “으스대는 잡스” 그림을 쉽게 그려내기는 하지만 그의 눈은 사실 기억의 눈물로 글썽거리고 있었다.
A POT OF HONEY EVERY YEAR
월터 아이작슨과의 대화에서 스티브 잡스는 필립 스타크가 내부 디자인에 있어서 자신을 “도왔다”라고만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고 잡스가 스타크에게 감사해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잡스는 완벽하게 평평한 목재 브릿지와 비스듬한 뱃머리를 갖추고, 알루미늄과 유리로 만들어진 떠 다니지만 규명되지 않은 객체의 진정한 아버지로 여긴다. 스타크가 이 프로젝트에서 “첫 번째이자 마지막으로”를 강조한다면, 잡스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그에게 일을 맡긴 이상한 고객의 “보다 조정된 분석”을 제공한다는 의미 뿐만이 아니다, 기록을 올바로 바로잡는다는 의미도 있다.
그에게 있어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두 가지 있다. 첫번째는 필립 스타크 그 스스로이다. 위대한 잡스는 자신의 요트 꿈을 실현 시키기 위해 누구보다도 필립 스타크를 선택했다. 스티브 잡스가 얘기한 한 이야기를 스타크는 지금도 기억한다. “래리 엘리슨[실리콘밸리의 또다른 천재이자 오라클의 창업자이자 2013년 포브스에 따르면 세계에서 5번째로 부자이며, 요트광이기도 하다] 네 보트로 휴가를 매년 간다구요. 매년 말입니다. 나도 보트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2년 전에 하나 만들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을 알아 보고 모두에게 물어봤더니 오로지 한 명이 해낼 수 있겠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당신이었습니다.” 헬륨으로 고양된 자아를 갖고 있는데 그런 칭찬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스타크는 경의의 표현 이상의 성찬이었다고 말한다. 축성이었다. 무신론자 스타크의 입에서 종교 용어가 연거푸 쏟아져 나왔다. 대화하는 동안 그는 심지어 완벽함을 사랑하는 두 영혼이 가진 “철학적 영성체” 얘기까지 꺼냈었다.
그래서, 수퍼 스타크는 첫 번째 회의를 황홀하게 마쳤다. 제일 까다로운 고객이 그에게 안긴 신뢰 때문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제게 백지 수표를 준 셈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는 감화됐다고 말했다. 여기서 두 번째 중요한 사실이 나온다. “제가 모두를, 모든 것을, 한 시간 반 동안 다 디자인했습니다. 전체를 정리했죠. 정말 빠르게 했습니다.” 어디에서? “침대에서죠. 부인이 제 옆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는 제게 스티브를, 스티브가 보트 타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어요… 그래서 해 보자. 그려 보자로 마음 먹었습니다.” 잡스는 그에게 간단한 원칙을 되새겼다. 선체 길이가 정확히 82 미터가 돼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탑승객 수는 가족과 선원이며, 방은 전부 동일한 6개이어야 했다.” 그리고 뭣보다도 하나의 대원칙, 고요함(silence)이 있었다. “스티브는 10대 애들이 보트 앞에, 자기는 뒤쪽에 있기를 원했어요. 하지만 뭣보다 고요함에 대한 집념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아이들은 물론 개도 부인도… 아무도 소음을 내지 않았어요.”
2008년 7월 11일, 아이폰 3G가 나왔던 날에도 잡스의 집은 불가사의하게 조용했다. 스타크는 그 순간에 특히 매혹당했었다. “전세계가 난리이고 사람들이 몇 시간을 스토어 앞에 진을 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 위대한 순간[애플은 아이폰 3G 첫 판매 3일만에 100만 대가 넘게 팔렸다고 발표했다]에 그는 어떤 입장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전화 벨 한 번 울린다거나 하지도 않더군요. 와우! 정말 완벽한 마스터이자 조직의 진정한 귀족이었습니다.”
다음 회의, 원래는 두 번째로 계획된 회의에서 스타크는 “온갖 스케치”를 다 갖고 도착했다. 커다란(1.2미터, 1.3미터) 가방에 미래 요트의 목업 그림이 들어 있었다. 당혹감을 느낀 잡스는 깜짝 놀란 채로 자기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라 외쳤다. 스타크의 해석은 이러하다. “비타협적이고 고맙다거나 브라보 한 마디 안 하는 것으로 유명한, 세계에서 제일 강력한 사내가 자기도 미처 상상 못 했다고 우리한테 말한 겁니다.”
정말 믿을 수 없었다. 사망 이후에 나온 잡스 전기는 잡스의 다재다능함과 엉큼함, 남에게 창피를 주는 경향, 가장 친한 친구와 동료들에게도 가차 없는 불쾌한 행동(간단히 말해서 자기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는 행동)을 강조했었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나 애플의 역사적인 CEO 존 스컬리도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아이작슨은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혐오받을 수 있는 만큼 자기가 혐오하는 이들에게도 매력적일 수 있는 인물”이라 적었다. 협력이 보다 더 오래 갈 수 있었다면 필립 스타크도 스티브 잡스를 견뎌내야 했을 것이다.
이 부분을 거론하자 스타크는 얼굴을 찌푸렸다. “확신 못 하겠네요. 그는 우리를 좋아했습니다. 보트를 만들 때 그에게 정말 중요한 친구 서너 명을 같이 데려 왔었어요.” 그는 매년 잡스가 집으로부터 꿀통을 보내 왔었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종종 잡스는 막 결혼한 스타크 부부에게 감동스러운 표현도 했었다. 운명의 날, 종교적인 침묵 안에서 잡스는 스타크가 그린 계획도를 스캔하고 또 스캔했다. 잡스는 잠시 동안 모든 측면을 다 검토했고, 그에게 “매우 만족스러운” 말을 네 마디나 했다. 첫째는 “당신들 결혼할 거요?”였고 답변은 “아마도요.”였다. 둘째는 “아이도 가질 겁니까?”였고 더 모호한 답변, “어…”가 나왔다. 잡스는 싱긋 웃으며 “알고 있었어요. 로렌에게도 말해 뒀지.”라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좋아요. 이렇게 합시다. 다음 달에 봐요.”였다. 스타크로서는 이 역시 자랑거리였다. “그가 자기 인생에서 그랬는지 전혀 몰랐죠. 우리는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보통은 다들 말을 안 하잖아요. 뭐든 괜찮다고 보죠. 하지만 그의 사망 이후 나온 책에서 보고 나서, 그가 우리를 어떻게 대했는지 보니까 정말 놀랍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립 스타크는 ‘디테일 광’의 어두운 측면도 몸소 경험한 적이 있었다. 계획도를 밀리미터 단위 급으로 검토한지 4년 후였다. 스타크는 다소 비밀스럽게 말했다. “모든 면에서 제일 높은 수준을 얻기 위해서 말이죠. 첫 스케치에서 수정된 것은 없었지만 모든 것을 다시 논의해야 했습니다. 티에리 고갱과 함께 해양 기술을 다시 발명했죠. 이제까지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전혀요. 그래도 고객님은 모든 디테일을 다 주장했죠. 종종 짜증 이상일 때도 있었습니다. 가식적인 기분도 드는데, 우리는 전문가에요. 로켓[Virgin Galactic]과 오토바이[Aprilia], 전기자동차, 보트를 디자인했습니다… 우리가 솔루션을 내놓으면 그것이 옳다는 점을 우리가 알아요. 티에리 고갱과 함께 매번 회의할 때마다 그를 당혹하게 하노라면, 그는 늘상 ‘아뇨, 아뇨, 아뇨’라 말했죠. 그가 조선소 일정을 생각해냈을 때에서야 아이디어를 하나 집어서 이걸로 하자고 하더군요. 정말 당혹스럽게도 이전 달이나 2년 전에 그에게 이미 보여줬던 아이디어였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스티브…’라 말하는 건 소용 없어요. 어찌 됐든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스티브 잡스 방식으로 보인다. 잡스와 가까웠던 이들에 따르면 이를 잡스의 “현실 왜곡의 장” 신드롬으로 가리킨다. 스타크가 볼 때 제일 거대했던 왜곡의 장은 아이작슨과 잡스가 얘기했던 주된 이야기 중, 스타크에 대한 “거짓말”의 기반이었다. (잡스 전기에 투신하기 전, CNN, 타임에 있었던 아이작슨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벤저민 프랭클린의 전기를 쓴 바 있었다.) 595 페이지를 보면 이렇게 쓰여 있어요. “내부를 갖추기 위해 그는 프랑스 디자이너인 필립 스타크를 고용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팔로알토에 와서 작업을 했다.” 스타크는 지금도 분개하고 있다. “그가 사망하기 두 달 전에 얘기 했어야죠. 어떻게 그렇게 자신의 영광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싶어했을까요? 자아가 워낙 강력해서 그의 안에서 일어난 현실 왜곡의 장 때문에 다른 사람의 저작을 알아볼 수가 없던 겁니다.” 스타크에 따르면 두 번째 회의 때 제시한 것이 채택됐을 뿐이며, 그 이후로 벽이나 뱃머리의 사소한 부분 조차 로스앤젤레스의 한 침대에서 상상했던 것으로부터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4년 동안 모든 부분을 다 검토했지만, 10분의 1 밀리미터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자스민도 한숨 지으며 스티브의 배은망덕함을 아쉬워했다. “그래도 그분은 우리를 크게 신뢰했었죠.”
A PHILOSOPHICAL OBJECT
2009년의 한 일요일, 잡스가 간이식을 했던 해이다. 잡스는 그들에게 석달간 사라질 것이라 얘기했다. “그 후 돌아온 날 오전 10시에 전화를 걸 겁니다.” 그리고 잡스는 수술 후 집으로 돌아오자 팔로알토로 와야 할 시간과 날을 알려줬다. 재회였다. 스타크는 정말 감동 받았다고 말한다. “그는 개인적인 질문을 증오했지만, 그때는 정말 부활이었어요.그래서 삶에 대해 생각해 보셨냐고 안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바꾸고 싶은 게 있는지요. 잡스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더군요. 다른 걸 원하지 않는다고, 정말 생각할 시간이 많았고 보트 생각도 했다면서 말입니다. 그때 잡스는 세 가지가 중요하다 말했어요. 가족과 회사, 그리고 저희들이요. 그가 저와 자스민을 생각하고 있었다뇨! 제 문제는 잡스가 제 동네에 안 산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감동 받은 스타크는 곧바로 커피 탁자에 허리를 굽혀 작업에 들어갔다. 5년 후, 티 하나 없는 이 사무실에서 스타크는 행복감에 젖어 선언을 한다. “이 정도 품질의 보트는 다시는 없을 겁니다. 다시는 두 미친 사내들이 이 작업을 하려고 모이지 않을 테니까요. 이 정도 창조성과 엄격함, 뭣보다도 철학이 보트 창조에 투입될 일이 없을 겁니다. 스티브와 제가 만들고 있던 것은 요트가 아니라 거의 종교적인 절차에 따라 구현된 철학적인 행위입니다. 우리는 뇌 4개가 합쳐진 하나의 두뇌를 만들었죠.”
정확하게 82 미터 짜리 물리적인 객체가 어떻게 전세계 바다를 다닐 수 있을지 궁금해 할 수도 있다. “우리가 결정을 논할 때 그 질문이 알루미늄이나 철을 이용하는 편이 더 나을지 결정하는 대화는 아니었습니다. 도덕적인 순서에 대한 질문이었죠. 디테일로 말씀드리자면, 미니멀리즘의 높이를 생각해 보세요. 특정한 부분이 염려된다고 해도 그리 큰 일은 아닙니다. 기껏 디자이너들의 제안은 코크피트가 곡면형 유리에 23 미터 길이, 6 센티미터 두께였을 뿐이에요. 애플스토어의 수석 엔지니어에게 맡겼죠.” 스타크는 심지어 27″ 아이맥(보트가 실제로 나온 2012년형)이 조종판에 장착이 돼 있는지 확인도 안 해 줬다. 완성은 암스테르담 남서쪽 Royal de Vries 조선소에서 만들어졌다. (완전히 조용한 전자 컨트롤 블라인드와 아방가르드스러운 공기정화장치, 통합된 자쿠지가 들어간 커다란 테라스와 같은 특징을 볼 수 있다.) 스타크가 Mers & Bateaux에서 설명한 부분이 있다.
“명령에 따라 작동하기는 하는데, 홈자동화같은 복잡한 건 없습니다. 각자 자신의 컨트롤이 있죠.” 이 요트의 사진은 네덜란드 조선소에서 처음 나올 때 같이 나왔지만 내부 사진은 이제까지 외부에 돈 적이 없었다. 스타크의 말에 따르면 외부와 내부의 철학이 같다고 한다. 스타크는 볼멘 소리로 말했다. “스티브 생전에는 권장 가구 공식을 만들 정도였지만, 로렌은 자기가 원하는 가구를 넣더군요. 이 양반들 취향에 제가 간섭할 건 아니죠.”
스타크는 또한 이 특별한 보트의 건조 비용을 확인해 주기 거절했다. 언론에서는 1억 유로라고 언급했지만 그는 확답은 안 한 채 우회적으로 답했다. “종교적인 품질과 맡은 작업에 따른 보통의 가격입니다.” 로렌 잡스나 그녀의 아이들이 요트를 파는 상황을 기대할 수 밖에 없을 테지만 그때에도 실제 가격이 얼마였는지까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애플 창업자 최후의 꿈이었던 인테리어를 걷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망하기 몇 달 전, 아이작슨에게 잡스가 한 말이다. “제가 죽고 로렌이 절반쯤 완성된 보트를 받았다면 가능하겠죠. 하지만 전 계속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죽는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될 테니까요.”
비너스는 당연히 물에 떴지만, 첫 선이 조용하지는 않았다. Royal de Vries 조선소 사람들이 잡스 가족과 친구들, 협력자들 앞에서 보트의 아버지가 자신들이라 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필립 스타크는 격렬히 분노했었다. “좋은 조선소입니다만 거기 인간들은 도덕 개념이 특히 느슨하고 이 뛰어나고 독창적인 보트를 자신들이 디자인했다고 말할 정도로 믿기 어려운 신경을 갖고 있군요. 제 인생에서 거짓말을 통한 그런 폭력은 처음입니다.” 자스민이 더 자세히 말해 보라 재촉했다. “농담이라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실제로 나섰습니다.” 12월 21일 보트를 Aalsmeer 항구에 억류하라 명령했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분노 상태였다. 청구서 두 개가 미납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소송을 제기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의 상속자들은 전체 900만 유로에 달하는 스타크에 대한 지불금 중 300만 유로의 지급을 거절했다. 그들은 상호 미리 동의했던 600만 유로를 이미 지급했다 여기고 있었다.
스타크는 “아마 변호사가 똑똑하게 보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라 속삭였다. 당시 그는 잡스와의 동의서에서 지불 측면을 서면으로 하지 않았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네덜란드의 스타크 대표는 잡스와 스타크가 “디자인을 만들 당시 매우 가깝게 지냈”으며,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인 동의서를 못 만든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3일 후, 양측 변호사들 간에 상호 합의가 있었으며, 억류도 끝났다. 비너스는 항구를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스티브 잡스가 배에 올라선 사진도 없고 그가 조선소에 모습을 나타낸 사진도 없다. 그가 자기 눈으로 보트를 볼 수 있었는지조차 모른다. 필립 스타크 역시, 이 배가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을 결코 보지 못했다.
Philippe Starck reveals the real story behind Steve Jobs yacht | Vanity Fair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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