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아이브, TIME 인터뷰 (2014)

조너선 아이브, TIME 인터뷰 (2014)

Apple’s design chief helped transform computing, phones and music. The company’s secrecy and Ive’s modesty mean he has never given an in-depth interview—until now.

John Arlidge March 17, 2014

Hello. Thanks for Coming’

먹고 마시고 잘 때, 일하고 여행하고 쉴 때, 듣고 보고 쇼핑할 때, 수다 떨고 데이트하고 섹스할 때 우리는 조너선 아이브의 제품을 사용한다. 아예 가족들보다도 그의 화면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이들도 많다. 가족보다 그의 화면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동안 아이브의 자연스러운 수줍음과 그의 고용주인 애플에 대한 편집증적인 비밀주의 때문에, 우리는 아이맥과 아이포드, 아이폰과 아이패드와 같은 혁신의 미래를 만들어낸 사람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지난달, 그는 필자를 애플이 있는 실리콘 밸리 쿠퍼티노로 초대하여 그가 거의 20년 전 디자인 책임자가 된 이래 최초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신들께서도(아니면 혹시 스티브 잡스의 유령?) 이 인터뷰를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잡스는 애플 간부들의 인터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날 캘리포니아는 수개월 째의 가뭄을 깨뜨리고 갑자기 구름떼가 몰려 와 골든게이트 브리지를 어둡게 만들었었다. 실리콘 밸리로 향하는 280번 주간(Interstate) 도로는 갔다 서다를 반복하는 SUV의 긴 행렬 대신 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오전 10시가 지나 애플 본사가 나타났고, 필자는 4번 빌딩 1층에 있는 새하얀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의 얼그레이 티백을 찾으라는 엄격한 명령에 따라 들어갔었다. 그러자 활짝 웃는 아이브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기 잔을 든 아이브는 아마 여러분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중에 제일 눈에 안 띄면서도 띄는 인물일 것이다. 거리에서 그가 지나다니면 아마 알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들 하시겠지만, 아마 그럴 수 없으리라고 본다. 그는 특별히 키가 크지 않지만 몸이 튼튼하고 대머리이며, 이틀 된 그루터기 수염에 주말의 아버지와 같은 차림새다(네이비 폴로 셔츠와 캔버스 트라우저, 부츠). 그는 영국 에식스 억양으로 느리고 부드럽게 말했는데, 거의 20년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 억양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점을 지적하자 그가 웃었다. “의식적으로라도 maths 대신 math를 발음할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mathematics라고 발음합니다. 웃기게 들리겠죠.”

오늘 아이브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47세 생일이어서만이 아니다. 자신을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장인(maker)로 간주하는 인터뷰 주제가 마음에 들어서다. “오브젝트와 오브젝트의 생산(manufacture)은 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만드는 지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죠. 어떻게 보이느냐의 고민을 시작하기도 전에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고, 무엇을 하거나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죠. 수공예의 개념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아이브는 스크루드라이버를 돌릴 때부터 계속 장인이었다. 그는 아버지인 마이클로부터 장인 기술을 물려 받았으며, 아버지는 은세공인으로서 후에 Middlesex Polytechnic의 수공예와 디자인, 기술 교수가 됐다. 아이브는 어린 시절에도 가족의 물건을 분해/재조립을 했었다. “분해함으로써 물리적인 세상에 완전히 매혹당했죠. 라디오는 쉬웠습니다만 알람 시계의 경우는 재조립이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주 태엽(mainspring)을 다시 감을 수도 없었어요.” 30년 후, 그는 아이폰도 똑같이 분해와 재조립을 해봤다. 아직 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만듦의 기쁨은 3년 전 사망한 애플의 전임 CEO도 공유하고 있었다. 덕분에 두 사나이는 현대 자본주의 역사상 최고의 창조적인 파트너십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20년 남짓 한 기간 동안 그들은 애플을 거의 부도 직전의 기업에서 세계 최고의 가치를 가진 기업으로 되살려 놓았다. 현재 애플의 가치는 6,650억 달러를 넘는다.

“스티브와 저는 제품의 부품 하나만 두고도 몇 개월을 씨름했습니다. 아무도 안 보고 알아차리지도 못 할 부품을 갖고 말이죠.” 애플은 외양은 물론 제품 내부에 대해서도 악명을 갖고 있다. “기능상 차이점이 전혀 없더라도, 신경 쓸 수 밖에 없으니까요. 뭔가 얼마나 잘 만들 수 있는지 알고 있을 때라 하더라도, 보이는 부분이건 보이지 않는 부분이건 충분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실패처럼 느껴집니다.”

만드는 제품마다 아이 뭐라 불리는 물건을 만든 사람이지만, 놀랍게도 아이브는 “i”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끊임 없이 자기 팀이나 잡스를 가리켜 “우리(we)”의 단어를 사용했다. 기업에서 으레 사용하는 “우리”라거나 거짓 겸손으로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저만 따로 주목 받는 건 싫습니다.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그리고 이들 제품 제조는 모두 커다란 팀에서 해야 하니까요.”

아이브는 정말 저자세로 임하고 있다. 적어도 세계에서 제일 급료를 많이 받는 디자이너 치고는 저자세이다. 그의 집은 샌프란시스코의 호화로운 퍼시픽 하이츠 구역에 있는 집 한 채 뿐이며, 이웃 중에는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 Paypal의 공동 창업자인 페터 틸(Peter Thiel),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Nicolas Cage)도 있다. 그는 작가이자 역사가인 영국인 부인인 헤더 페그(Heather Pegg), 쌍둥이 아들 둘과 같이 살며, 그는 대중 노출을 피한다. 그의 그의 디자인 팀이 공개적으로 노출된 적은 단 한 번, 2년 전 런던에서 D&AD 디자인 수상을 할 때였다.

다만 그는 번잡함이 싫고 단순함이 좋을 뿐이다. 그의 제품에서도 그런 면모를 찾을 수 있다. 혁명적인 첨단 기술 제품이지만 외양이 워낙 우아할 정도로 단순해서 처음 보자마자 무엇이 어디에 쓰이고 어떻게 사용할지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다. 아이맥은 복잡하고 사용하기 어려운 PC를 책상에서 없애어 컴퓨터를 보다 쉽게 했고, 자그마한 스크롤휠의 하얀 박스에 천 곡을 집어 넣을 수 있는 아이포드, 너무나 터치 친화적인 아이폰은 성가신 Blackberry를 바로 골방으로 보내버렸다. 심지어 다섯 살 짜리 아이도 아이패드를 어떻게 사용할지 안다.

단순함과 직접성에 대한 그의 선호는 기술 영역을 벗어난다. 그는 알루미늄 블럭 하나로 만들어낸 종류의 자동차를 좋아한다. Bentley 몇 대를 가진 그는 말쑥한 은청색의 1960년대 Aston Martin DB4도 갖고 있다. 10대 시절 그는 자동차를 좋아해서 디자이너가 됐었다. 졸업 후 그는 Royal College를 포함, 런던에서의 자동차 디자인 수업도 고려했지만 마음을 바꿨다. 그는 지금도 수업 광경을 무서워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부릉! 부릉! 소리를 내는 학생들로 가득하더군요.” 그래서 그는 산업디자인 수학을 위해 Newcastle Polytechnic로 진학했다. 그곳에서 그는 전화기와 보청기를 작업했는데, 너무 잘 만들어서 런던의 Design Museum에서 전시회도 가졌었다.

Newcastle 졸업 후, 그는 대학 학비를 지원했던 런던의 디자인 에이전시, Roberts Weaver 그룹에서 일했었고, 1년 후에는 런던의 Hoxton Square에 있는 새로운 디자인 에이전시, Tangerine에 들어갔다. (확실히 그는 과일 이름 들어간 회사에 뭔가가 있다.) 그곳에서 그는 전자레인지 오븐부터 칫솔에 이르기까지 온갖 물건을 다 디자인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고객이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고객을 위해 작업하는 일에 환멸을 느꼈다. 어느 비 오던 날, 아이브는 Hull로 차를 몰고 가는 중이었다. 이상적인 Standard의 세면대와 변기 디자인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BBC의 Comic Relief Day여서 보스는 거대한 플라스틱 빨강코를 붙이고 있었고, 만들기 비싸고 너무 현대적이라는 이유로 그의 디자인을 평가 절하했다.

Remaking Apple

Tangerine에서 그가 좋아하는 고객이 딱 하나 있었다. 애플이다. 그는 컨설턴트로 애플과 일을 시작했다. 1991년 Powerbook으로 나올 노트북 컴퓨터 초기 디자인에 참여했던 아이브가 처음 애플에 접했던 때는 대학교를 다닐 때였다. 당시 그는 “컴퓨터 다루기에 문제”를 겪었었다. 그는 자신이 “기술-맹”이 될까봐 두려웠는데 애플의 직관적인 마우스-위주의 시스템 덕분에 갑자기 컴퓨터가 간단해졌었다. 애플은 그에게 2년 동안 정규직으로 들어오라 요구하고 있었지만 아이브는 주저했다. 당시 애플에게는 문제가 많았고 지구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입사했고 그때가 1992년이었다.

첫 해는 좌절의 기간이었다. 당시 애플 제품은 지루했다. Newton 기억하시나? 뉴튼의 경우는 아니겠지만 당시 애플은 디자인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는 몇 번이고 사직을 고려했지만, 1985년 이후 축출돼 있던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구하기 위해 1996년 복귀했을 때, 잡스는 아이브의 능력을 알아보고 둘은 의기투합했다. 그래서 결국 둘은 단조롭고 게을렀던 세상을 뒤바꿀 마술 작업에 착수했다. 적어도 그들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여겼다. 컴퓨터에서 카메라, 냉장고 등 모든 제품을 다 만드는 다른 전자 업체들과는 달리, 애플은 컴퓨터와 오락용 기기, 휴대폰만을 만든다.

아이브는 쿠퍼티노 1 Infinite Loop에 있는 애플 본사의 한쪽 구석에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한다. 이 디자인 스튜디오는 애플 빌딩처럼 보이지 않는 지루한 모양이다. (그렇다. 베이지색의 콘크리트다.) 다만 커다란 차이점이 한 가지 있다. 유리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아이브와 그의 핵심 팀, 그리고 애플 최고 중역들만이 이 빌딩에 초대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작업하는 모든 디자인, 모든 프로토타입을 다 볼 수 있는 곳이어서죠.”

그의 팀은 영국과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에서 온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우리 팀은 여러분 생각보다 훨씬 소규모입니다. 15 명 정도에요. 대부분 15-20년 동안 같이 작업해 왔죠. 그 점이 유용합니다. 우리 작업에 대해 극도로 비판적이지만, 개인적인 문제는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죠.” 거대하면서 열려 있는 스튜디오는 아이브의 애플 제품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전부 하얀색이다. 애플 스토어에 있는 것과 같은 커다란 목재 벤치는 새 제품을 올려 놓는 장소이며, 한 쪽 끝에는 다량의 CNCS(프로토타입 제작에 쓰이는 첨단 머신)가 배치돼 있다. “여기서 저와 같이 일하는 모두들 제조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같이 갖고 있습니다.”

아이브는 새로운 종류의 제품이 나와야 하고, 그 제품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상상하면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나오고 나서야 그는 외양 작업에 들어간다. 답변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얻을 때도 있다. 그는 첫 번째 빅 히트작인 오리지널 아이맥의 투명한 사탕스러운 형체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당과류 공장과 협력하기도 했었다. 두껍고 새카만 플라스틱 노트북만 있던 세상에서, 세계 최초의 가벼운 알루미늄 노트북인 티타늄 파워북을 만들기 위해 그는 일본 북부 니이가타로 가서 제련 노동자들이 어떻게 금속판을 얇게 만드는지 관찰하기도 했었다.

“너무나 자명하고 자연스러워서 당연하게 보이기 때문에 거의 알아보지 못 하는 것을 디자인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이맥 데스크톱 컴퓨터의 정확한 모양을 작업하는 데에만 수 개월이 걸렸죠.” 제품 하나를 끝냈을 때, 가령 최초의 아이포드에 딸려 나온 아이콘화 된 하얀색 이어폰이 나왔을 때조차 아이브는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다. “디자이너로서의 저주랄까요.”

그런 저주는 잡스도 같이 갖고 있었다. 비록 잡스는 모든 것에 그 고민을 적용하여 거의 재미나는 결과를 낳았지만 말이다. 아이브는 잡스와의 출장을 끄집어냈다. “우리가 가는 호텔에 가면 체크인을 하면 말이죠. 제 방에 가방을 문 앞에 놓고 풀지 않습니다. 일단 침대에 앉아 있으면 어김 없이 스티브로부터 전화가 와요. ‘조니? 이 호텔 구려. 나가자.’하고 말이죠.”

잡스의 무게감은 애플에 여전하다. 아이브와 필자가 만났던 회의실 외부 벽에는 잡스의 말이 커다랗게 인쇄되어 붙어 있다. “뭔가를 해서 꽤 좋게 나오면 다른 것을 해야 합니다. 하나에 너무 오래 묻혀 있지 말고 다음에 뭘 할지 생각하세요.” 그렇다면 어째서 아이브와 잡스는 그렇게 잘 어울렸을까? 뭣보다 그들은 서로 매우 달랐다. 아이브는 부드럽고 느긋한 성격이며, 그의 날카롭기 짝이 없는 격렬함도 유머와 부드러움으로 승화된다. 그러나 잡스 보고 느긋하다거나 자학 개그를 했다고 묘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물체를 같이 바라볼 때 우리의 눈이 물리적으로 보는 것, 우리가 지각하는 것이 정확히 같았습니다. 같은 질문을 했죠. 호기심이 같은 겁니다.”

사람들 말처럼 잡스는 터프했을까? 부하를 모욕 주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최고 간부들에게도 면박을 주기 일쑤라는 잡스 이야기는 사실일까? “스티브에 대한 이야기가 워낙에 많습니다만, 별로 정확하지는 않아 보이더군요. 물론 그는 외과 수술과 같은 정확한 의견을 가졌고 물론 화도 내기는 했죠. 그리고 끊임 없이 ‘이게 최선인가? 맞아?’하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영리했죠. 그의 아이디어는 과감하고 장엄했습니다. 방 안 분위기를 다 휩쓸죠. 그런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 때는, 우리가 결국 위대한 뭔가 만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아. 해냈구나 하는 기쁨이 나오죠!”

이렇게 완고한 장인인 아이브가 아마도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일 아이폰을 만들어내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하실 수 있겠다. 아이폰은 분명 현대 시대에 있어서 아마 제일 많이 복제된 발명일 테지만, 아이브가 제일 좋아한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그에 따르면 자신과 팀은 소비자들이 가격에 집착할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음을 증명해냈다고 말한다.

“허술하게 이름도 없이 만들어진 물건이 도처에 많습니다. 사용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이 만큼 신경 안 쓰니까 그렇다고 생각하시기 쉬운데요. 우리는 사람들이 정말로 신경을 쓴다는 점을 보여냈습니다. 미학만이 아니에요. 잘 만들어지고 완전히 잘 구상 된 제품을 신경 쓴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아름답고 잘 만들어진 제품들을 매우, 매우 많이 만들어서 판매합니다. 우리의 성공은 순수함과 진실성에 중요성을 둔 승리죠.”

그래도 애플 제품은 내재적으로 노후화 된다는 비판이 있다. 비밀스럽게 숨겨진 운영체제도 그렇고, 신제품이 나올 때 충전기도 새로 사야 하며, 가격도 바뀐다는 불만이다. 아, 가격! $20 짜리 플라스틱 충전기 제조 원가는 $2도 안 할 텐데! iOS와 충전기는 애플 소프트웨어 친구들과 애플의 새로운 보스, 팀 쿡이 정말 중요시 하고 있다. 노후화에 대해 아이브는 자신이 가지고 다니는 5세대 아이폰이 겨우 2007년에 발명됐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예. 새로운 충전기가 필요하죠. “우리 제품의 차별성 중 하나는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예전 아이폰을 어떻게 재사용할까? “에, 사실 제 것은 아니고 회사 것이죠.” 그럼 회사는? “재사용합니다. 그리고 분해한 다음 리사이클링을 해죠. 질문 의도는 압니다만, 인간 조건의 근본적인 부분입니다. 더 낫게 하려 노력하는 것이죠. 우리가 하고 있는 역할입니다.”

가격 면에 있어서, 아이브는 이전의 우리라면 상상도 못 했지만, 보자마자 원하게 될, 삶을 바꿀 만한 제품의 개발은 매우 비용이 많이 들어감을 지적한다. 더군다나 애플 방식으로 대량 생산도 해야 한다. 애플 방식은 필요 이상으로 기준이 높기에, 비용 면에서는 폭탄이다. 아이브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제조 공정을 재정적인 이유에 맞춰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그는 자기 아이폰을 보여 주며 기술적으로 아이폰 제조가 얼마나 복잡한지 보여줬다. “본체는 기계로 뽑아낸 알루미늄 한 덩어리에서 만듭니다.” 물론 그는 잡스가 항상 놀리던 영국식으로 알루미니엄이라 발음했다. “아이폰 전체는 우선 연마(mirror-finish)를 하고 그 다음에 애플 로고를 제외한 채 정교하게 다듬어집니다. 부드럽게 다듬은 사각면은 다이아몬드-커터로 잘라내죠. 커터가 그리 오래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대량 생산을 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해야 했습니다. 카메라 커버는 사파이어 크리스탈이죠. 심카드 슬롯의 디테일을 보세요. 정말 탁월하잖습니까!”

그렇다. 예쁘지만 만들기에 비용이 꽤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아이브가 말하지 않은 뭔가가 분명 있다. 애플이 혁신적이고 과감한 제품을 계속 만들건데 다른 업체는 그렇게 하지를 않는다. 애플의 궁극적인 경쟁사인 삼성조차도 아이패드를 따라 잡지 못했다. 물론 노력은 부족함이 없지만 말이다. 애플은 자기가 좋아하는 가격을 얼마든 낼 수 있고, 소비자들은 기꺼이 가격을 지불할 것이다. 애플은 1년에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을 2억 5천만 대 팔았으며, 처음 등장한 이래 소비자들은 아이튠스 스토어에서 250억 곡의 노래와 10억 편의 텔레비전 영상을 다운로드 받아 왔다. 경쟁사들은 전혀 못 따라올 마진으로 말이다.

도대체 그가 왜 기술 분야를 택했는지 이상할 정도로 아이브는 디자인보다는 생산에 대해 훨씬 많은 얘기를 했다. 마술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있는데 말이다. 기술을 터치할 수는 없다. 아이패드나 아이폰에는 휠이나 움직이는 부품도 없다. 아이브는 기술 제품이 독특한 뭔가를, 아주 독특한 도전을 준다고 말한다. “손에 쥔 제품이나 귀에 꽂은 제품, 주머니에 있는 제품은 책상 위에 있는 제품보다 더 개인적입니다. 기술을 워낙에 개인화 시키는 것만큼 어렵고 지난한 일이 없죠. 그때문에 애플에 끌렸던 겁니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에 대해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개인적인 관계를 갖는 이들이 있더군요.”

What’s Next

그 관계는 언제나 더 가까워지고 있다. 차세대는 웨어러블 기술이라고 한다. 구글이 웹 기술을 적용한 구글 글래스를 선보였고, 삼성과 소니는 웹에 링크된 스마트 시계를 소개했다. 애플도 혹시 아이워치를 만들까? “분명 우리가 뭔가 작업중이라는 루머는 있죠. 당연히 말씀 안 드릴 겁니다. 체스 게임이잖습니까?” 마치 그가 찬 Jaeger-LeCoultre 스포츠 워치가 손목을 다 못 감는다는 말로 들린다. (그는 AIDS 자선 경매를 위해 이 시계를 디자인했으며, 이 시계는 세계에 단 3대 존재한다.)

기술의 문제점이 있다. 너무 빠르게 변한다는 점이다. 최고의 기기를 가졌다고 생각한 순간, 더 새롭고 더 멋진 뭔가가 나온다. 그리고 보통은 아이브가 그것을 만든다. 애플의 수 억 팬들도 바라 보고 있다. 더 새로울수록 그들은 더 좋아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람들이 최신 아이폰을 사러 밤새 줄 서는 광경을 봤을 때, 우리가 워낙 최신 “이것 저것”에 집착한 나머지 기술에 무릎 꿇었다고 아이브도 걱정하고 있을까? 전화기는 전화기일 뿐이요, 예수의 재림이 아니다. “사람들 반응은 물체보다 훨씬 거대합니다. 뭔가 흔치 않은 것에 대한 반응이에요. 단순히 일을 잘 돌리는 것 이상으로 해내는 사람들이 최고의 제품을 만듭니다. 사려 없음과 무신경함에 대한 반증이죠.”

한 시간 반 이상 아이브가 스스로 좀 훌륭하다 내세우기는 처음이다. 그가 지닌 신중한 겸손함에는 견고한 강철같은(아니, 알루미니엄같은) 심장이 들어 있다. 잡스는 의도적으로 수석 간부들 사이에서 치열한 다윈주의스러운 경쟁을 일으켜서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냈고, 아이브는 그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테라바이트 급의 신뢰성을 얻어야 했다.

디자인을 다들 참고하고 재작업, 아니 복제하고 있는데, 우쭐해지느냐, 아니면 낙담하느냐를 묻자, 그는 일단 “절도죠.”라 핵심만 말했다. 그의 눈길은 날카로울 정도로 가늘어졌다. “베낀 것은 디자인만이 아닙니다. 고생했던 수 천 시간마저 베낀 겁니다. ‘이 정도면 해 볼 만해.’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를 때가 되어서야 나올 수 있죠. 수 년간의 투자와 수 년간의 고통을 수반합니다.” 구글이 아이폰에 대한 대안을 개발중임이 드러나자, 잡스는 아이브의 분노를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전임 애플 이사이자 구글의 수장인 에릭 슈미트와의 관계를 단절했었다. 또한 잡스는 애플 아이디어를 베낀 혐의로 삼성에게 10억 달러 어치의 고소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아이브는 잡스를 “제 가장 친한 친구”로 묘사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오래 전에 사망했다고 느껴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잡스에 대해 얘기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합니다.”라 말했다. 그런데 아마 또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잡스가 사망한 이래로 애플은 힘든 시기를 거쳤다. 적어도 애플의 터무니 없이 높은 기준에 비하면 그랬다는 의미다. 이렇다 할 만한 히트작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정 오락을 혁명적으로 바꿀 새로운 애플 TV는 없었고 세련된 시계도 (아직) 안 나왔다. 애플의 주가 또한 슬럼프를 겪는 바람에 세계에서 제일 가치가 높은 회사에서 탈락했다. 모두 다 잡스가 없어서 그렇다는 주장이 있다. 안 그래도 전직 월스트리트 기술 기자인 유카리 이와타니 케인(Yukari Iwatani Kane)은 새로 쓴 책에서 애플이 “겁에 질린 제국(haunted empire)”이라 별명을 붙였다. 애플이 스스로 자기 미래를 죽여버렸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비범한 제품을 워낙 많이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이제는 별다르게 새로 내세울 것이 없다는 의미다.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만약 애플이 더 이상 놀랄 만한 히트작을 만들거나 내세우지 못 한다면 아이브도 포기할 텐가? “네. 전 멈출 겁니다. 저 자신과 친구들, 우리집을 위해서 만들어야겠죠. 관계를 다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군요. 우리는 놀라운 시대를 막 시작하고 있어요. 놀라운 제품을 개발할 테니까요. 기술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미래에 우리가 뭘 하게 해줄지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직 한계에 멀기만 합니다. 여전히 그래요. 여전히 새롭죠.”

더군다나 그간의 고생과 그가 만든 모든 엄청난 제품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배고프다. “애플에서는 미처 무식했던 점을 알아내는 기쁨 같은 것이 있습니다. ‘와, 이걸 좀 배워야겠고, 해내고 날 때가 되면 위대한 걸 하고 이해할 수 있겠지’ 같은 식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애플은 불완벽해요. 그래도 우리에게는 흔하지 않은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째서 하는지에 대해, 바로 본능적으로 알 수 있어요. 똑같은 가치를 우리 모두 나눕니다.”

그렇다면 조니 아이브, 그리고 애플의 베스트는 또 나온단 말인가? “그러기를 바랍니다.” 이제 차가워진 얼그레이의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신 후, 아이브는 따뜻한 캘리포니아 비를 뚫고 비밀 연구실로 향했다. 내일을 디자인하는 사나이를 내일은 기다려주지 않는 법이다.

John Arlidge writes for the Sunday Times Magazine. His story on Goldman Sachs, in which Lloyd Blankfein, the investment bank’s chief executive, said bankers “do God’s work”, is the most quoted article of the financial crisis. A version of this story ran in the Sunday Times of London in the UK.

Apple Designer Jonathan Ive Talks About Steve Jobs and New Products – TIM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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