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플로피 디스크

file1
file2
Puck Mouse
RFP Apple DuoDisk
미스터 플로피 디스크

The tales of Steve Jobs & Japan #01: Mr.Floppy disk

스티브 잡스가 선불교 신도이자 일본 애호가였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비록 그가 잘 알려진 채식주의자이기는 했지만, 언제나 예외로 스시도 즐겼었다.

소프트방크 회장인 손정의의 트윗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가 먹었던 인생 최고의 식사는 쿄토에서의 스시였다고 한다.

비록 영어로 된 스티브 잡스 책이 무수히 많지만, 서구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잡스 이야기는 얼마든지 남아 있다.

한 번은 Nippon.com에 “스티브 잡스와 일본“이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 필자의 블로그에서는 그 이야기를 보다 더 자세히 알려주고자 한다.

우선 첫 번째 시리즈에서 미스터 플로피 디스크의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스티브 잡스와 ALPS 전자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엔지니어로 있었던 히로세 야스유키(Yasuyuki Hirose)의 우정이다.

필자가 감수한 책을 위해 그와 인터뷰를 했었다. (책 안의 기사 중 70%는 필자가 작성했다.) 이 책의 이름은 “스티브 잡스는 무엇을 남겼는가”이며, 일본어판만 나와 있다.

スティーブ・ジョブズは何を遺したか (日経BPパソコンベストムック)

Steve & Yasu

히로세는 스티브 잡스와 같이 찍은 사진을 가져 왔었다. 이 사진 뒷면에는 “At Rod Holts’ house. June, 1977.”라 쓰여 있었고, 당시 히로세는 32 세, 스티브 잡스는 24 세였으며, 잡스가 그에게 접근하여 애플 II용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요청했었다.

“사진에는 없는데 제 바로 옆에는 바바라 재신스키(Barbara Jasinski)가 앉아 있었어요. 당시 스티브가 그녀와 데이트 중이었죠.”

애플 간부진 모두가 그를 “야스”라 불렀고, 분위기는 대단히 따뜻했으며, 그에게 다들 친절히 대했다. 종종 집안 파티에도 그를 초대했었다. 히로세가 가져온 사진은 그때 찍은 사진들이었다. 로드 홀트는 히로세를 초대하여 자신의 요트 이름을 “애플 I”이라 붙인 후, 자신의 이름을 딴 맥주를 대접했었다.

히로세는 “스티브 잡스가 성격 급한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는 언제나 제게 친절했고, 심지어 수줍어 하기도 했습니다.”라 말했다. 그는 잡스에게 혹시 ALPS의 공장 노동자들에게 강의를 해줄 수 있는지 요청했고, 잡스는 따뜻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강연에서 노동자들 중 하나는 잡스에게 ‘제5세대 컴퓨터가 무엇’인지 물었었다.

제5세대 컴퓨터‘는 일본 정부가 일본제 수퍼 컴퓨터를 만들기 위한 구상이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의 설명은 이랬다. “개인용 컴퓨터가 자전거일 때, 제5세대 컴퓨터는 수퍼-카일 겁니다.”라 답했다.

ALPS 직원들에게 잡스도 솔직한 질문을 많이 던졌다. 특히 그는 ALPS의 자동화 공정에 관심이 많았다. 히로세의 말이다.

“스티브는 특히 제조 공정에 관심을 나타냈어요. 1983년, 그는 후루카와의 자동화 공장을 방문하여 질문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나중에 그가 저를 캘리포니아 프레몬트에 있는 새 공장에 초대했었죠. 그때 스티브가 무엇을 원했는지 비로소 알겠더라구요.”


In the book above, we have nicer pictures of Hirose. But for this blog, I am using the photo I’ve taken with my iPhone

“Sexy!” shouted Steve Jobs

스티브 잡스와 히로세 야스유키는 West Coast Computer Fair에서 처음 만났다.

히로세는 ALPS에서 신사업 기획 책임을 맡고 있었다. 컴퓨터 업계에서는 이렇다 할 사업을 벌이지 않았지만, 동료들 중 하나가 “플로피 디스크”라 불리는 새로운 컴퓨터용 장비가 ALPS의 효자 상품이 되리라 말해줬었다. 그래서 ALPS는 드라이브를 개발하기 시작하여, Fair에서 전시했으며, 미국 내 배급자도 찾을 수 있었다.

나중에 이 배급업자는 애플로부터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주문을 받았다. 그래서 히로세는 애플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몇 번 방문을 거듭한 끝에 애플은 Shugart S390 호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주문하여 ALPS는 1980년 3월, 제품을 전달했다.

히로세는 Shugart S390의 86-밀리미터 두께가 충분하다 여겼지만, 그는 ALPS가 더 얇게도 만들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그는 해냈다.

당시 플로피 디스크의 용량은 너무 낮아서 OS와 애플리케이션이 디스크 하나에 다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애플 II 사용자들은 디스크를 교체해가며 사용해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우리가 디스크 드라이브 두께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면, 같은 공간에 디스크 드라이브를 두 개 끼워 넣을 수 있어요. 그러면 하나는 OS, 하나는 애플리케이션을 집어 넣을 수 있겠죠.”

어느날, 히로세는 새로운 더블 드라이브를 손에 쥐고 잡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잡스는 그것을 보자마자 “섹시해!”라 외쳤다고 한다.

그는 곧바로 이 드라이브를 애플 제품으로 팔기로 결정 내렸다.

나중에 이 드라이브의 이름은 “DuoDisk”가 됐으며, 당시 애플 제품 중에서 제일 잘 팔리는 제품 중 하나가 됐다. 너무나 잘 팔려서 ALPS는 공장 자체를 바꿔야 할 지경이었다. 히로세에 따르면 노동자 일부는 심지어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일을 도울 정도였다고 한다.

rival in the closet: the tragedy of the original Macintosh

“DuoDisk” 이후, 스티브는 오리지널 매킨토시 작업을 시작했다.

어느날 잡스는 미야기 현에 있는 후루카와시의 ALPS 공장을 방문했다. 잡스는 어깨에 꽤 큰 가방을 메고 있었다.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잡스는 가방을 열어서 매킨토시 프로토타입을 꺼냈고, 히로세에게 일단 매킨토시 앞에 앉으라고 했다. 그 후 잡스는 쭈그리고 앉은 자세로 이게 무엇인지 설명 하기 시작했다.

잡스는 히로세와 ALPS 전자가 오리지널 매킨토시용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만들어주기 희망했기 때문에, 후루카와 공장에 애플 직원 3명을 남겨 뒀다. 하지만 그때 비극이 일어났고 역사는 다르게 흘러갔다.

당시 매킨토시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팀 리더였던 벨빌(Bob Belleville)은 ALPS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보고, 소니 드라이브가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벨빌은 스티브 잡스의 허락 없이 소니와 계약을 체결하여 오리지널 매킨토시용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받기로 했다.

스티브 잡스 전기 중 하나를 읽어 보면, 아마 이때 일본인이 한 명 벽장에 숨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카모토 히데토시(월터 아이작슨의 전기에는 코모토로 잘못 나와 있다), 그는 소니 직원이었다.

그가 벽장에 몸을 숨어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오리지널 매킨토시에 ALPS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달려야 한다 여겼지만, 벨빌은 소니의 카모토를 애플로 초대하여 작업을 시켰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불운을 돌이키며 히로세가 한 말이다. “벨빌을 이해합니다. 우리는 5 인치 플로피 드라이브 시대(즉, 애플 II) 동안 새로운 작업을 하지 않았었죠. 벨빌은 우리가 마지막에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당시 우리는 매킨토시의 플로피 디스크가 3 인치가 될지, 3.5 인치가 될지 모르고 있었어요. 소니는 자기들이 발명했던 3.5 인치에 집중하고 있었고, 우리는 두 표준 모두를 작업하고 있었죠. 그래서 소니에 품질 우위가 있었습니다.”

reunion at iMac introduction

오리지널 매킨토시가 나온 이후,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떠났고, 히로세는 아마 잡스를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여겼었다.

하지만 1996년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드라마처럼 복귀했고 1997년에는 애플을 다시금 운영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ALPS는 쿠퍼티노 애플 본사로부터 초대를 받았고, 히로세는 애플을 방문했다. 바로 아이맥의 제품 브리핑이었다.

복도에서 스티브 잡스는 히로세를 발견하고는 짓궃게 말했다. “야스, 우리 관계가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때문에 시작됐는데, 아이맥에는 플로피가 없는 거 아슈?” 히로세는 압니다라 답했다.

아이맥은 ALPS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달고 나오지 않았지만, 애플은 ALPS에게 키보드와 원형 마우스를 제작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블로그의 저자인 필자는 1998년 5월, 오리지널 아이맥의 첫 선을 놓쳤었지만, 1998년 뉴욕 맥월드 엑스포와 WWDC ’98는 참가했었다. 그때 스티브 잡스는 공식적으로 아이맥을 일반 공개했다. 아이맥의 공개가 기조연설 때였는지, 이후에 이어진 언론 컨퍼런스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스티브 잡스는 아이맥의 키보드와 마우스가 ALPS에서 만들어졌다고 똑똑히 밝혔었다. 그때 상당히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난다. 애플은 보통 공급업체를 밝히지 않는다. 아마 스티브 잡스와 히로세 야스유키 간의 우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2011년 10월 6일, 히로세는 아침에 받은 이메일을 통해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슬플 소식을 기억하며 히로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무나 짧았습니다. 그런 위대한 인물이 그렇게 삶이 짧았다뇨. 인생이 얼마나 한 순간인지 깨달았죠.”

The tales of Steve Jobs & Japan #01: Mr.Floppy disk | Steve Jobs and Japan | nobi.com (EN)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Leave a Comment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