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베리의 몰락

블랙베리의 몰락

Inside the fall of BlackBerry: How the smartphone inventor failed to adapt

SEAN SILCOFF, JACQUIE MCNISH AND STEVE LADURANTAYE
THE GLOBE AND MAIL
Last updated Saturday, Sep. 28 2013, 4:45 PM EDT


Former BlackBerry co-CEOs Jim Balsillie and Mike Lazaridis, and current CEO Thorsten Heins in a photo collage.
(Globe and Mail photo illustration)

본 분석 기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준다.

  • 첫 번째 아이폰이 나오자마자, 버라이즌(Verizon)은 블랙베리에게 터치스크린으로 된 “아이폰 대항마”를 만들어달라 요구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패였기 때문에 버라이즌은 모토로라와 구글로 상대를 돌렸다.
  • 2012년, 한 때 공동 CEO였던 짐 발실리(Jim Balsillie)는 이사진에서 용퇴하여 블랙베리와의 모든 연을 끊었다. 창업자인 마이크 라자리디스(Mike Lazaridis)가 반대했던 인스턴트-메시징 소프트웨어에 집중하자는 자신의 계획을 현재 CEO인 토스텐 하인스(Thorsten Heins)가 무산 시킨 데에 따른 저항이었다.
  • 라자리디스는 블랙베리 10을 반대했고, 키보드형 기기를 강하게 밀었다. 그러나 하인스와 그의 간부진은 라자리디스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터치스크린형 Z10을 선보였으나, 그 결과는 재앙적이었다.


지난해 말, Research In Motion Ltd.의 하인스 CEO는 캐나다 온타리오 워털루에 있는 회사에서 이사진과 함께 앉아 새로운 휴대폰의 첫 선을 위한 계획을 검토중이었다. 이 휴대폰에 회사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

그의 무기는 블랙베리 Z10, 얇은 휴대폰으로서 현재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지배하는 애플과 삼성처럼 유리형 터치스크린을 단 기기였다.

그러나 한 이사가 Z10에 대해 실망스러워했다. 당시 방 안에 있었던 한 소식통에 따르면, 그 이사는 RIM에는 문화적인 문제가 있었다면서 Z10이 동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사는 다름 아닌 블랙베리의 천재, 마이클 라자리디스였다. 그는 블랙베리의 공동 창업자이자 전임 공동-CEO였다. 몇 분 전, 그는 하인스가 막 고용했던 마케팅 책임자, 프랭크 불벤(Frank Boulben), COO인 크리스티안 티어(Kristian Tear)와 얘기를 나눴다.

불벤과 티어는 모두 경멸조로 라자리디스를 대했다. RIM의 상징과도 같은, 키보드가 들어간 휴대폰 시장이 죽었다는 얘기였다. 이사진 회의에서 라자리디스는 키보드가 있는 블랙베리를 가리켰다. “난 이걸 압니다. 분명 차별화 돼 있어요.” 그리고는 터치스크린 폰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모르겠습니다.”

라자리디스는, 항상 기업 소비자들로부터 각광 받아 왔던 제품으로부터 등을 돌려 이미 경쟁사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올-터치형 스마트폰 시장에 집중하는 행위는 거대한 실수라 경고했다. 동의하는 이사들도 있었다.

이사진에서의 이 싸움은 Research In Motion의 몰락을 나타내는 광경이었다.

한때 스마트폰 업계의 강자였던 RIM(지난 여름에 블랙베리로 이름이 바뀌었다)은 이제 무릎을 꿇었다. 금요일 발표된 2/4분기에만 9억 6,500만 달러 적자였고, 주된 이유는 팔리지 않고, 누구도 원하지 않는 거대한 Z10의 재고였다. 이미 시장에 나온지 8개월이 흘러 있었다. 회사는 인력의 40%에 해당하는 4,500명 분을 정리해고하고 줄어드는 수입에 비용을 맞추기 위해 필사적인 상황이다.

지난 5년간 회사의 시가 750억 달러 이상이 무너지는 광경을 감내해야 했던 투자자들은 블랙베리가 자신이 만들어냈던 스마트폰 시장에서 어떻게 주도권을 날려버리고 틈새 기업이 되어버렸는지 여전히 궁금해 하고 있다.

전현직 직원 20여 명의 인터뷰를 포함한 본지의 조사에 따르면 간부와 이사 수준에서 깊은 균열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균열이 민첩하고 창조적인 경쟁사들이 야기한 최대의 위기에 맞설 제품 개발에 치명적으로 작용했으며, 캐나다 최대 기술 기업의 몰락에 기여했었다.

한때 재빠른 혁신가로서 경쟁사보다 두 단계는 앞서 있었던 RIM은 자신의 성공에 눈이 가리워져서 다시 성공할 수가 없는 기업이 되어버렸다. 몇 년 전만 해도 RIM은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했었다. 심지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블랙베리 중독자였다. 그러나 새로운 경쟁사들이 시장을 다시 정의 내리면서, RIM은 시장에 늦게 제품을 내놓게 됐고, 그 결과 소비자 시장을 놓쳤으며 조직 내부에 위험한 균열을 노출 시키고 말았다.

이사진 전투 수 개월 전으로 돌아가 보자. 하인스와 라자리디스는 라자리디스의 오랜 사업 파트너이자 공동 CEO, 짐 발실리와 맞붙는 입장에 처해 있었다.

RIM 내부에서 성급한 발실리는 모바일 통신의 최전선에 회사를 다시 놓기 위한 과감한 전략을 내세우는 중이었다. 그의 계획은 단문 메시지 서비스(SMS) 애플리케이션을 RIM의 블랙베리 메신저 인스턴트 메시징 서비스로 교체하자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통신사에게 채택을 추진하자는 내용이었다. 즉, 소비자가 어느 휴대폰을 쓰든지 블랙베리 메신저를 쓰게 하자는 의미였다.

참신한 계획이기는 했다. 만약 RIM이 BBM을 비-블랙베리 휴대폰 수 억 대에 들여보내서 요금을 받을 수 있다면 RIM은 거대한 새 이윤 광맥을 찾는 셈이었다. 적어도 발실리는 그렇게 믿었다. 동 프로젝트에 포함된 한 직원의 말에 따르면 정말 큰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이 계획은 간부진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2012년 1월, RIM의 CEO로 하인스가 취임한지 얼마 안 돼서, 하인스는 라자리디스의 도움을 얻어 발실리의 계획을 무산 시켰다. 발실리로서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수 주일 후, 그는 이사진에서 물러났고 회사와 모든 연을 끊었다. 본지에 보낸 짧은 성명서는 다음과 같다. 그가 물러난 일에 대한 최초의 공개된 성명서였다. (그는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2012년 3월, RIM 이사직을 물러나는 이유는, BBM의 크로스-플랫폼 전략을 취소하기로 한 회사 결정 때문입니다.”

이사진 일에 대한 언급을 거절한 라자리디스는 이사진의 요구에 따라 은퇴를 1년 늦춰 올해 3월,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현재 블랙베리의 미래는 어둡다. 이번주 토론토에 있는 투자사인 Fairfax Financial Holdings Ltd.는 회사에 대한 47억 달러 어치의 경영권 인수를 추진할 계획임을 발표했다. 단, 지금까지 지지하지 않았던 기관 투자자 그룹이 동 투자사를 지지하여 자금을 제공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다.

라자리디스는 1984년 워털루의 한 베이글 가게 위에서 RIM을 차렸었다. 그로서는 회사의 붕괴에 가까운 상황이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다.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다.

“정말 가슴 아픕니다. 직원들이 뭐라 생각할지 상상할 수도 없어요. 모두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를 얘기합니다. 회사를 쪼개서 부분별로 매각한다는 내용이죠. 캐나다의 워털루 지역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어느 기업이 그 자리를 차지할까요?”

Competition rising

2007년 초, 애플이 아이폰을 발표할 때 라자리디스는 집 안에 있는 트레드밀 위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가 아이폰에 대해 이해하지 못 하는 부분이 몇 가지 있었기 때문에, 그 해 여름, 그는 아이폰을 입수하여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애플이 휴대폰 안에다가 맥을 구겨 넣은 것과 같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이미 컴퓨터와 오실로스코프(전류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를 만들었던 인물인 라자리디스가 보기에 아이폰은 모든 규칙을 깨뜨리는 기기였다. 운영체제 하나만 메모리 중 700메가바이트를 차지했고, 프로세서가 두 개였다. 블랙베리는 프로세서 하나에서 돌아갔고, 운영체제 메모리는 32MB 뿐이었다. 블랙베리와는 달리 아이폰은 완전한 인터넷이 가능한 브라우저를 탑재했고, 그때문에 AT&T와 같은 통신사에게는 부담스러운 기기였다. 이전까지는 통신사들이 허용하지 않던 기기였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RIM은 데이터 사용량 제한 때문에 초보적인 브라우저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의 말이다.

“어떻게 AT&T의 허락을 받아냈지, 하고 말했었어요. 통신망을 붕괴할 텐데 말이죠. 실제로 좀 나중에 그렇게 되긴 했었습니다.”

공개적으로 라자리디스와 발실리는 아이폰을 과소평가하고 배터리 수명과 약한 보안성, 처음에는 없었던 이메일 기능 등을 거론했다. 덕분에 그들은 자만심에 차 있다는 평가를 받아버렸다. 라자리디스의 해명이다. “그건 마케팅이었죠. 약점이 아니라 강점을 내세워야 하니까요.”

그러나 그는 내부적으로 대단히 다른 메시지를 직원들에게 보냈다. “아이폰이 뜬다면, 우리는 노키아가 아니라 맥과 경쟁하는 겁니다.”

RIM은 곧 새로운 경쟁작을 내놓을 기회를 얻는다. RIM의 초기 스마트폰은 미국 내 제일 큰 통신사 중 한 곳인 버라이즌 통신사에서 히트작이었다. 버라이즌으로부터 쫓겨난 애플은 AT&T와 아이폰 독점 제공 협정을 맺었다. 2007년 6월, 버라이즌은 RIM에게 접근하여 “아이폰 대항마”를 개발해달라 요청했다. 물리적인 키보드는 없애고, 터치스크린이 있어야 하는 제품이었다. 버라이즌은 거대한 마케팅 캠페인으로 미국 내 출시를 돕겠다고 했다.

RIM 간부진은 이 기회를 잡아냈다. 한 회의에서 발실리는 양방향 이메일 삐삐 이후로 RIM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기회라 부르기도 했다.

이 제품이 블랙베리 스톰(Storm)이었다. 스톰은 제일 복잡하면서 야심찬 프로젝트이기도 했지만, 한 전직 간부의 증언을 들어보자. 그는 스톰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 “너무 급조된 기술이어서 준비가 안 돼 있었습니다.”

스톰은 수 개월 후, 2008년 미국 추수감사절 직전에 나왔고, 수많은 소비자들이 스톰을 싫어했다. RIM 최초의 터치스크린은 조작하기가 불편했다. 게다가 스톰은 단일 프로세서 상에서 돌아갔고 너무 느렸으며 버그도 많았다. 발실리는 스톰의 등장이 “거대한 성공”이었다고 과감히 선언했으나, 판매량은 아이폰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고, 고객 반납율도 높았다.

하지만 당시 스톰 캠페인이 그리 재앙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RIM이 당시 전세계적으로 팽창 일로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2009년 8월, 포천지는 RIM을 세계에서 제일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로 평가했다. 스톰이 나온지 1년 후, 시장 조사 업체인 comScore는 미국 소비자들이 다음 3개월동안 구매하고 싶어하는 상위 5가지 스마트폰 중 4가지가 블랙베리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스톰은 아이폰 대항마를 원하던 버라이즌을 실망 시켰고, RIM은 곧 스톰을 포기했다. 그래서 버라이즌은 구글과 구글의 새로운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로 향했고, 블랙베리 제품에 들어갈 마케팅 비용을 없앤 체, 2009년 모토로라 드로이드에 대한 거대한 마케팅 캠페인을 펼쳤다. 버라이즌의 “iDon’t” 캠페인은 소비자 친화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갖춘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의 모든 단점을 강조했다.

다만 드로이드 및 안드로이드 휴대폰 캠페인은 애플에게 피해를 입히기보다는 Palm과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RIM에게 피해를 끼쳤다. 2010년 12월, comScore에 따르면 안드로이드의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은 1년 전 5.2%에서 23.5%로 뛰어 올랐고, RIM의 시장 점유율은 10 포인트가 떨어진 31.6%였다. 2011년 하반기, 안드로이드의 미국 시장 내 점유율은 47.3%가 됐고 RIM은 이제 16%일 뿐이었다.

A shift by smartphone users

아이폰이 나온 이후는 RIM으로서 전략적인 혼란의 시기였다. RIM의 전직 영업부 수석 부사장인 패트릭 스펜스(Patrick Spence)의 말이다. “업계의 전체적인 상황이 정신 분열적이었어요. 통신사들이 데이터 사용량을 예측 가능하게 묶어 두려던 시절이 있었죠. 그런데 매력적인 아이폰이 나오면서, 갑자기 여러 다른 요금제로 사용량을 끌어 올리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게임의 새로운 규칙이 있다면 RIM은 새로운 툴도 내놓아야 했다. 스톰이 나온 이후 여름, 라자리디스는 휴대폰용 인터넷 브라우저를 만드는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인 Torch Mobile을 인수한다.

그렇지만 Torch 브라우저를 RIM의 고도로 복잡한 시스템으로 이동, 혹은 “포팅” 시키는 과정이 복잡하고 고된 일이었다. RIM 기술은 1990년대에 세워진 자바 컴퓨터 코드 및 운영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나, 애플과 안드로이드 시스템은 더 새로운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표준을 사용했기에, 더 친화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만들기가 더 쉬웠다. 라자리디스의 말이다. “우리가 미래의 위치에 서 있지 않다는 의미였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RIM은 자신의 DNA 자체를 바꿔야 했었다.

RIM 간부진은 회사를 다시 만들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그들은 여러 도전을 물리쳐 왔었다. 그러나 애플의 공격적인 협상 전술은 통신사들을 애플과 갈라 놓았고, 아이폰이 RIM의 충성스러운 고객 기반인 정부와 사업체까지 위협을 끼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RIM을 받쳐줄 터였다.

그러나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하드웨어 상에서 돌아가는 장비 고르기가 아닌,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Veritas Investment Research Corp.의 연구부장인 몽가(Neeraj Monga)에 따르면 RIM의 전환은 어려웠다. 회사 내 엔지니어링 문화가 기업 고객들을 위한 효율적이면서 저전력 기기를 만들 때에는 잘 작동했지만, 기업의 정보 관리자들에게 어울리는 기능이 일반 대중에게도 어울리지는 않았다. 한 전직 직원의 증언이다.

“우리가 고객들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소비자들 스스로보다 소비자들이 장기적으로 뭘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봤습니다. 소비자들이야 더 빠른 브라우저를 원한다고 말하겠지만, 더 빠른 브라우저를 원해도 더 높은 요금제를 원하지는 않으리라 일깨워줄 수 있겠죠. 거대하고 반응도가 빠른 터치스크린을 원한다고요? 뭐 원하실 수야 있겠지만 오후 2시면 배터리가 죽어버릴 텐데요라 답했습니다. 우리가 더 잘 알고 해결할 거라 말했죠.”

일반 소비자와 기업 사용자라는 두 가지 부류의 고객을 만족 시키기 위해 노력하다가는 두 고객 모두 등을 돌려 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RIM 간부진이 2010년 올란도에서 열린 한 이벤트에서 포천 500대 기업 전산 책임자들에게 카메라와 게임, 음악 애플리케이션을 추가할 계획을 발표했을 때의 역풍은 전혀 준비가 안 돼 있었다. 당시 세션에 참가했던 한 전직 간부에 따르면, 대기업 고객들은 개인용 애플리케이션이 회사용 휴대폰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배터리 수명이나 보안 기능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음이 드러났다. 그들은 앱을 원했다. 애플의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블랙베리의 기술적으로 복잡한 자바기반 시스템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사용이 더 쉬웠다.

캘거리에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 Wmode(블랙베리용 앱을 만든다)를 창업한 트레버 님기어스(Trevor Nimegeers)에 따르면 블랙베리 앱은 현대적인 언어로 프로그램된 앱보다 더 “못생겼고”, 실질적인 경험을 다시 만들어내지 못하는 시뮬레이터를 가졌다고 한다. 더군다나 RIM은 블랙베리용 앱을 승인하기 전에도 개발자들을 강력하게 통제해서 창조성을 억누르고 있었다. 님기어스의 말이다. “개발자들은 통제가 아닌 포용을 원하죠.” 그 결과 인스타그램과 텀블러같은 인기 좋은 앱은 블랙베리용으로 나오지 않았다.

A split company

RIM의 초기 성공의 핵심 요인 중 하나가 기업 구조였다. CEO가 두 명 있는 것 자체가 특이했다. 라자리디스는 엔지니어링과 제품 관리, 공급망을 맡고, 발실리는 영업과 재무, 그 외 기업 기능을 맡았다. 이 체제는 오랜 기간 작동했으며, 라자리디스가 휴대폰을 만들어 발실리가 판매하는 꼴이었다. 둘의 협조 관계는 좋았다.

그러나 그들 밑의 간부진이 항상 잘 어울려 지내지는 않았다. 회사가 연매출 2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하자, 회사는 이제 분명한 업무 분장을 하거나 확정적인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워져서, 결국 RIM의 고질적인 문제, 속도 문제를 야기했다. S&P Capital IQ Equity Research의 분석가인 제임스 무어맨(James Moorman)의 말이다. “RIM은 시장에 항상 느렸습니다. 제품도 언제나 연기를 거듭했죠. 소비자 시장의 변화 속도를 잘못 계산하고 있던 겁니다.

한 전직 직원에 따르면, 변화를 야기할 소비자 피드백이 중간 관리 층에서 사라져버릴 때가 종종 있었다. 수석 간부진이 동 문제를 라자리디스에게 보고하기 원하지 않아서였다.

COO인 래리 콘리(Larry Conlee)가 2009년 은퇴를 했을 때 회사를 그나마 하나로 이어줬던 힘이 사라져 버렸었다. 콘리는 결정과 시한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인물이었고, 프로젝트 관리 사무실을 세웠었다. 그가 떠난 후, 목표 달성에 대한 느슨한 태도가 회사에 퍼지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으는 직원들이 많다. 지난해 본지와 인터뷰했던 전직 RIM 부사장인 애덤 벨셔(Adam Belsher)의 말이다. “콘리가 떠난 후, 공백이 생겼습니다. 팀을 시한에 맞춰서 내몰줄 아는 인물이 제품 쪽 라인에서 사라진 것이었어요.”

자기 고유 기술에 그토록 오래 의존해 왔으면서, 라자리디스는 회사의 다음 진보는 외부에서 나와야 한다고 결정했다. 2010년 4월, RIM은 오타와-기반의 QNX 소프트웨어의 인수를 발표한다. QNX는 블랙베리 10 운영체제의 기반을 제공할 소프트웨어였으며, 라자리디스는 회사에게 필요한 새로운 플랫폼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겼다.

QNX는 911 콜센터에서 자동차용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돌리는 업계 컨트롤 전문사였다. 그 기술은 RIM의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완벽한 핵심이었다.

라자리디스는 비즈니스 전략 도서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의 “혁신가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를 들여다 보기로 했다. 이 책은 성공한 기존 조직이 작고 격리되어 전체 조직으로부터의 영향에서 베재된 소규모 팀을 허용하여 각자 혁명적인 제품을 만들게 하는 일이 종종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라자리디스는 기존 프로그래머들이 기존 플랫폼인 블랙베리 7용 제품 작업을 계속 하게 하고, QNX 팀에게 새 운영체제에만 집중 시키기로 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QNX의 CEO, 댄 돗지(Dan Dodge)가 이끄는 QNX가 전체 조직을 그대로 유지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RIM은 블랙베리를 QNX 시스템상에서 다시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최선의 방법인가라는 핵심적인 질문에 답해야 했다. 혹시 이전의 자바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약간만 바꿔야 할까,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재작성해야 할까? 자바를 한꺼번에 포기할 경우, 써드파티는 과연 응해줄 것인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라자리디스 조직 내 간부들 사이에서의 논쟁은 1년을 끌었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너무 긴 논쟁이었다고 한다.

결국 결정은 이뤄졌다. 블랙베리 10을 처음부터 재작성한다였다. 단 새 팀이 블랙베리를 완전히 다시 만든다는 신임을 받아야 했고, 오리지널 시스템을 만들었던 팀은 여전히 블랙베리 7 플랫폼에서 작업중이었다. 즉, 회사는 다시금 쪼개졌다. 라자리디스의 말이다.

“강력한 운영체제를 구입했고 그 쪽으로 가야 했습니다만, BB7은 늦었죠. 매주마다 더 많은 고용과 자원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QNX상에서 모든 앱을 재작성해야 한다는데 어떻게 BB7에 투입된 자원을 돌리느냐가 정말 문제였어요.”

PlayBook pain

QNX 팀의 첫 번째 임무는 애플의 성공적인 아이패드 태블릿에 대한 RIM의 대항마, 플레이북(PlayBook)용 운영체제 작업이었다. 라자리디스는 플레이북 운영체제를 블랙베리 10의 선도자 역할로 간주했고, QNX 팀의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고 있었다. 그의 말이다. ‘QNX의 힘과 우아함을 우리 개발자들이 느낄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

하지만 QNX 팀은 플레이북을 완성하기 위해 회사 내 다른 자원을 상당히 끌어 와야 했었다. 원래 2010년 가을에 나올 예정이었던 플레이북은 2011년 4월이 되어서야 나올 수 있었고, 판매도 실패했다. 블랙베리에 대한 어색한 악세서리였던 플레이북 자체는 이메일과 주소록, 앱을 갖추지 않았다. 다시금 RIM은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별도의 기기로도 잘 돌아가는 태블릿이 잘 팔렸었다. 플레이북은 그러하지 못했다.

애초에 플레이북을 만드는 것 자체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불필요하고 비용이 너무 많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게다가 QNX를 별도의 팀으로 만든다는 결정 자체도 회사 내 사기 문제와 갈등을 유발했다. 속하지 못한 직원들이 자신들의 장래를 걱정해서다. 역시 장래를 걱정했던 한 수석 간부의 말이다.

“제가 볼 때, 운영체제 조직을 단일화 시키는 편이 제일 논리적이었습니다. 150명이 둘러 앉아서 앞으로 뭘할지 모르겠다 하고, 다른 150명이 둘러 앉아서 도대체 이해를 못 하겠다 하는 꼴보다는 단일팀이 낫습니다.”

하지만 진보적인 스마트폰이 RIM에 없다 함은 특히 미국에서 애플과 안드로이드에게 계속 시장을 빼앗긴다는 의미였다. 2010년 12월, 버라이즌은 휴대폰용 인터넷을 원하는 고객 수요에 맞추기 위해 4세대(4G) LTE 기술에 투자할 것이라 발표했다. 즉, 4G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을 마케팅에 끼워 주겠다는 신호를 준 것이었다.

RIM의 4G가 바로 블랙베리 10이었지만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다. 그래서 RIM 간부들은 4G 기술이 3G보다 효율적이지 않으며, 현재의 Bold 휴대폰으로도 괜찮다는 기술적인 설득을 통신사들에게 하려 노력했었다. 한 전직 간부에 따르면 이렇다. 라자리디스와 하인스, 기술 수석인 데이비드 야크(David Yach)는 “우리 제품 준비가 안 됐기 때문에 주장을 만들어 보려 노력했던 겁니다. 통신사 [홍보] 프로그램에 남아 있기 위한 싸움이었죠. 결국 채널 지원과 기능 광고를 우리가 잃고 말았습니다.”

플레이북의 대실패와 블랙베리 10의 거듭된 연기는 다른 면으로도 회사에게 피해를 끼쳤다.

그동안 야크와 라자리디스는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평가가 좋았던 야크는 제품으로 언론사의 머리 기사를 장식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관측통에 따르면, 그의 검토의견은 묵살됐고, 자신이 팀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느낌을 줬으며, 관계도 결국 손상됐다고 한다. 2012년 초, 야크는 퇴사했다.

플레이북의 실패는 RIM의 감각이 쇠퇴일로에 있다는 인식만 더해줬다. 2011년은 RIM엑 있어서 중요한 시기였다. 점점 시장에서 밀려 나간다는 인식이 박혀 가는데도 블랙베리 10 프로젝트는 계속 연기중이었다. 이에 따라 주가도 하락, 2월에는 캐나다 달러로 69달러였던 주가가 연말에는 15달러로 급락했다.

발실리와 라자리디스, 이사진에 대한 압박은 심화됐다. 2012년 1월, 그들은 공동 CEO에서 물러나 독일 지사를 운영하고 있던 토스텐 하인스에게 CEO를 물려줬다.

그러나 그순간 블랙베리 10을 두고 균열이 일어났다. 원래의 전략은 올-터치스크린 버전을 먼저 출시하자는 쪽이었다. 블랙베리 7 키보드폰의 판매가 여전히 괜찮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012년이 되면서 블랙베리 7 폰은 활기를 잃었고, 이제 부회장이 된 라자리디스는 블랙베리 광팬들의 수요를 충족 시키기 위해, 회사가 키보드 버전이라도 먼저 내놓아야 하잖냐는 느낌이었다. 그는 회사 간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키보드 폰은 우리의 빵과 버터입니다. 우리의 아이콘이죠. 키보드야말로 블랙베리를 구입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내부 사정을 아는 소식통에 따르면 하인스의 새 경영팀은 완고했다. “그들은 풀터치로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게다가 QNX가 디자인한 시스템은 분명 다른 모바일 운영체제보다 강력했었다.

라자리디스가 보기에 RIM의 경쟁 우위가 키보드에 있거늘, 키보드를 버리고 터치스크린으로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한 전략이었다. 이 일로 지난해 이사진 회의에서 그는 크게 부딪힌다. 결국 RIM은 Q10 키보드폰을 계속 개발하기로 결정 내렸지만, 올-터치스크린 Z10의 출시가 더 먼저였다.

올해 1월, 최초의 블랙베리 10 스마트폰이 등장했을 때, 제품이 2년 늦게 나왔다는 관측이 일반적이었다. 사실 여러 RIM 내부 관리직들도 그렇게 보고 있었다. 스펜스의 말이다.

“QNX 인수가 결국 옳기는 했습니다만, 더 빠르게 움직이지를 못했어요. 새 시스템 구축에 수반되는 복잡한 문제를 모두가 평가절하했었습니다.”

A BBM plan

20년 동안 짐 발실리와 마이크 라자리디스는 서로 협력해 가면서 회사를 운영하여 각자의 능력을 발휘, 파트너십을 성공 시켰었다. 초기에 그들은 사무실도 같이 썼으며, 심지어는 보이스 메일 암호도 같이 사용했었다.

RIM이 성장하면서 그들은 별도의 빌딩에서 일했지만 하루에도 수 차례 대화를 나눴다. 한 중간급 간부의 말이다. “제가 아내랑 저랬으면 싶었던 관계가 그들 관계더군요.”

하지만 그들의 성격은 달랐고 사무실 바깥의 삶은 거의 겹치지 않았다. 회사를 나간 이후로는 대화도 거의 없었다.

라자리디스에게 과학은 일이자 취미였다. 자신만만하고 경쟁심이 강하며 몸이 탄탄한 발실리는 공격적이었다. 심지어 그는 회의중에 몰아부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같은 기술기업 CEO들처럼 외향적인 터프함이 필요하다고 봤다. 한번은 친구에게 이런 말도 한 적이 있었다. “200억 달러 어치의 기업을 만드는 다른 방법이 있으면 알려 주시오. 내가 쉽게 보였다면 그들이 블랙베리를 죽였겠지.”

둘이 같이 있던 마지막 해, 둘은 핵심적인 전략 변경에 서로 동의하지 않았다. 라자리디스는 블랙베리 10이 RIM의 부활을 알리리라 봤고, 발실리는 확신하지 못했다.

발실리는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무료로 풀었기 때문에 스마트폰 시장을 일반 제품 시장화 시켜놓았다고 우려했었다. 2011년, 통신사들도 가격을 경쟁사에 맞춰서 떨어뜨리지 않으면 블랙베리 주문량이 더 감소하리라 경고했었다.

그래서 발실리는 별도의 계획을 추진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RIM 서비스부를 관장했던 애런 브라운(Aaron Brown)이 시작이었다. 2010년, 서비스부의 수입은 분기당 8억 달러였다. 블랙베리 가입자들로부터 통신사가 거둔 요금으로부터 나오는 수입이었다. 그리고 그 중 90%가 순이익이었다. 통신사들은 이 요금부담을 없애려 노력했지만(구글과 애플은 그런 요금을 요구하지 않았다), RIM은 완고했다. 발실리는 특히 이 서비스 요금을 유지해야 한다는 쪽이었지만 회사의 입지가 약화되는 바람에, 간부들은 서비스 수입에 대한 압박이 커지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끔찍했던 2011년 이후에도 RIM은 여전히 장점을 갖고 있었다. 세계 주요 통신사와 관계가 긴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RIM에게는 블랙베리 메신저도 있었다.

RIM 개발자들은 2005년, BBM 앱을 만들어서 이메일이 아니라 “개인 식별 번호(PIN)”를 통해 메시지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 무선장비용으로 최초의 인스턴트 메시지 서비스였던 BBM은 급속히 성장했다. 기본적인 문자 메시지와는 달리 신뢰성 있고 무료였으며 항상 켜져 있기 때문에 별도의 비용 없이 원하는만큼 많은 메시지를 언제든 보낼 수 있었다. 게다가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와는 달리 PIN은 랜덤 코드여서 보안도 더 높았다. 덕분에 BBM은 서구 국가들만큼 자유도가 높지 않은 지역에서 대단히 많은 인기를 끌었고, 그만큼 블랙베리가 더 많이 팔릴 수 있었다.

BBM 개발자들은 중독성 있게 만드는 몇 가지 영리한 요소를 추가했다. 가령 언제 전달됐는지와 읽었는지를 D와 R로 표시하여 사용자가 그 여부를 알 수 있었다. 현재도 매월 실제 사용자 수가 6천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BBM은 블랙베리에서만 돌아간다. 애플과 안드로이드가 떴고, RIM에서 일했던 테드 리빙스턴(Ted Livingston)이 창업한 Kik Interactive Inc. 등 BBM을 본딴 제품이 나타난다. 현재 Kik의 사용자는 블랙베리보다도 더 많은 8,500만 명에 달한다(RIM은 리빙스턴이 프로그램을 복제했다면서 고소했다). 또한 WhatsApp의 경우는 훨씬 더 거대했다. 리빙스턴의 말이다. “인스턴트 메시징은 모바일 시대의 킬러 앱입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규모의 기업이 인스턴트 메시징에도 진출하리라 생각합니다.”

RIM의 브라운은 인스턴트 메시징이라는 유행에 올라탈 수 있다고 봤다. 발실리와 함께 다른 프로젝트도 같이 하면서 2010년 하반기부터 2011년 초까지 그는 BBM을 다른 모바일 플랫폼으로 제공한다는 개념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발실리는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 당시 매월 내는 서비스 요금에 리베이트를 추진하는 통신사들도 있었다. 브라운은 통신사들이 RIM에게 자기 사업의 새로운 일부를 열어주기만 하면 기꺼이 응하고 싶었다. 그와 발실리에게는 아예 통신사에게 BBM을 모든 고객에게 제공토록 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느 휴대폰이건 상관 없이 말이다.

통신사 간부들 대부분은 인스턴트 메시징 서비스와 스카이프 같은 “최상단” 앱의 팬이 아니었다. 문자 메시지 수입을 무너뜨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통신사들은 고객들이 문자와 영상, 게임, 그 외 디지털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하는 표준화된 “RCS(rich communication service)” 플랫폼을 공동으로 추진한다. 그렇지만 이 구상은 거의 주목을 못 받았다. 심지어 RCS를 “좀비 기술”로 평한 글도 있을 정도다.

SMS 2.0

발실리는 일부러 표준 플랫폼을 만들 필요 없이 BBM을 제공하면 된다는 아이디어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RIM에게 수입 일부를 주면서 통신사들에게도 수입을 발생 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SMS 2.0이라 불렀다. RIM은 비-블랙베리 사용자들 수 억 명에게도 접근을 허락하는 대신 기꺼이 서비스 요금을 줄일 의도였다.

그와 브라운은 몇 가지 조건을 논의했다. 가령 기본형 스마트폰 사용자용 요금제인 “통화 및 문자” 요금제의 일부로 BBM을 포함시키는 방안이 있었다. 별도의 기능이 있는 BBM이 제공되면, 데이터 요금제를 별도로 가입할 필요가 사라졌다.

아니면 BBM과 함께 사진이나 노래를 담을 수 있는 1 기가바이트 어치의 클라우드 저장용량 등 블랙베리의 다른 서비스도 포함한 고가의 요금제도 제안할 수 있었다. 그러면 통신사는 BBM을 통해 라디오와 같은 별도의 서비스도 판매할 수 있었다. 소비자들은 쉽사리 경쟁 통신상게 데이터를 이동시키지 않기 때문에 통신사 입장으로서는 가입자를 더 자기 통신사로 “고착” 시키는 효과도 일으킬 것이었다.

10년 전, RIM은 통신사와의 파트너십을 맺어서 수입을 나눴었다. SMS 2.0 계획은 그 때로 방식으로의 회귀였다. BBM을 지배적인 챗 메시징 서비스로 만들 기회였으며, 블랙베리 브랜드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기회이기도 했다.

2011년 중순까지 발실리의 초기 요청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보낸 통신사들이 있었다. 발실리는 SMS 2.0이야말로 RIM 최대의 전략이라 불렀다.

추진과 크로스-플랫폼 서비스 구축을 위해 RIM은 인스턴트 메시지 업체인 LiveProfile 등 인수를 몇 건 성사한다. LiveProfile은 1,500만 명의 사용자를 거느리며 애플과 안드로이드 기기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BBM에게 필요한 곳이었다.

하지만 SMS 2.0 계획은 회사를 심각한 분열로 이끌었다. BBM은 여전히 블랙베리 판매의 주된 요소였고, BBM을 널리 퍼뜨린다 함은 이미 감소중이었던 하인스의 RIM 핸드폰 사업에 위협을 가할 수 있었다. 크로스플랫폼 BBM이 합리적이기는 하지만 블랙베리 10이 나온 이후이어야 한다는 관측이 회사 내부에 많았다. 단 발실리와 그의 계획을 옹호하는 이들은 블랙베리 10 이후는 너무 늦다는 주장이었다.

전직 중역인 스펜스에 따르면 핸드폰 판매에 지장을 줄 수 있었다는 우려는 모두들 갖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통신사 문자 메시지 수입이 감소중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웠다. 이들 통신사들은 해결책을 모색중이었으며, BBM이야말로 잠재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었다.

한 전직 간부는 발실리가 소프트웨어 위주 전략의 잠재 수입을 과다하게 본다고 느꼈다고 한다. 발실리가 SMS 2.0를 거론할 때 하인스와 그의 팀은 내부적으로 그 결과에 대해 대단히 의심스러워했다. 한 직원에 따르면 이렇다. “하인스는 절대적으로 배후 공작을 통해 그 계획을 죽이려 했습니다.”

경쟁 운영체제에 대한 BBM의 개방을 지지했던 라자리디스는 SMS 2.0 전략 구축에 수반되는 비용과 위험도를 우려했었다. 가까운 소식통에 따르면 라자리디스는 이런 말을 했다. “성공할 경우 수 년간 수입이 없을 텐데, 거대한 자본 지출이 필요한 무료 서비스를 투자할 입장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라자리디스는 핸드폰 판매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발실리는 SMS 2.0이 미래라고 확신했다. 2011년 말, 전세계 거대 통신사 12곳의 CEO들에게 계획을 설명했던 그는 적어도 미국 내 한 곳(내부 관측통에 따르면 AT&T가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과 텔리포니카와 같은 유럽 통신사 한 두곳과 사인할 수 있다고 봤다. BBM을 대량 확산 시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정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단 점차 자라나고 있는 SMS 2.0 팀에 속한 다른 RIM 간부들도 저항에 부딪히고 있었다.

발실리는 2013년 2월 말, 한 업계 컨퍼런스에서 공식적으로 SMS 2.0을 선보이기로 했다. 그러나 최고위 경영진을 교체해야 한다는 압박 하에, 그와 라자리디스는 CEO를 1월 말, 하인스에게 넘겨줬다.

수 주일 후, 하인스는 라자리디스의 지지를 얻엇 SMS 2.0 전략을 죽였다. 이사진에 가까운 한 소식통의 말이다.

“블랙베리 10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러면 이견이 나올 수 없었겠죠. 다른 모든 것이 보류되는 상황에, 맞지 않거나 완벽하지 않고, 자원이 필요한 전략을 보류해야 한다는 의미라면, 하인스의 결정이 옳았다고 봅니다.’

본지는 하인스와 이사회장인 바바라 스타이미스트(Barbara Stymiest)의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인터뷰는 거절당했다. 단 서면 질의에 대한 답변에는 동의했었다.

SMS 2.0을 어째서 보류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하인스는 이메일로 답변했다. “시장에 이미 너무나 많은 [인스턴트 메시징] 대안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차별화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을 때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더 이상 경영진은 아니지만 이사로 남아 있는 발실리는 재고를 요청했지만 이사진은 새 CEO 편에 섰다. 발실리는 결정을 못 견디고 3월 말, 이사직을 사임, 자신의 주식을 모두 매각했다. 그의 사임 이유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심지어 오랜 동안 공동 CEO였던 라자리디스도 그 이유를 몰랐었다.

블랙베리는 실제로 지난주, 아이폰과 안드로이드용 BBM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였지만 별도의 앱으로서 선보였다. BBM 책임자인 앤드루 보킹(Andrew Bocking)은 그룹챗과 사진 공유, 일정 등의 기능이 내장돼 있다면서, “BBM을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올린 겁니다… 인스턴트 메시징을 지배하기 위한 기회입니다. 승리자가 모두를 가져갈 겁니다.”라 말했다.

SMS 2.0 전략을 추구하던 이들 대부분은 현재 회사를 나갔다. RIM은 이미 이 전략을 구현했었어야 했다.

A fizzled launch

애플이 첫 아이폰을 선보인지 6년이 흐른 후에서야 마침내 오래 오래 기다려 왔던 블랙베리 10이 1월, 회사의 “글로벌 광고부장”으로서 알리샤 키스(Alicia Keys)가 나오는 현란한 이벤트를 통해 등장했다. 알리샤 키스는 훨씬 더 큰 이야기의 사소한 디테일에 속하지만, 만들어진 직위와 의미 없는 행사는, 회사 자체가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는데 연예인이나 불러서 주의를 흐뜨린다는 비난을 일으켰다.

Z10 Z10 기기 자체는 긍정적인 리뷰를 꽤 받았다. 블랙베리가 쇠퇴하리라고 예전에 예언한 바 있었던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포그(David Pogue)는 리뷰 기사 첫 문장을, “미안하다. 내가 틀렸다.”로 시작했다. 그러나 8개월 후, Z10은 팔리지 않는 재고를 처분해야 할 정도로 완전한 사업적 실패작이라는 소식 밖에 안 보였다.

마케팅 캠페인도 혼란스럽고 모호했다. 수퍼볼 때 나왔던 광고는 제품 차별성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했다. 이사진에 가까운 소식통에 따르면 광고 상영 전에 이사진이 광고를 못 봤으며, 슬로건인 “Keep Moving”을 이해하지 못한 이사진도 있었다고 한다. 아이폰 새 버전이 나올 때마다 나오는 광란과 같은 줄서기나 제품에 대한 소문도 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시장은 변동했고, 세련된 운영체제가 일반화되고 휴대폰이 저렴해진 시대에 Z10에 대한 수요는 거의 없었다. 블랙베리가 그동안 경쟁품에 대해 지녔던 물리적인 키보드라는 장점이 첫 번째 모델에는 없었다.

S&P의 무어맨의 말이다. “블랙베리 새 스마트폰을 요구하는 유일한 소비자층은 키보드 때문에 원하는 겁니다. 그런데 터치스크린 형이 나오다뇨. 터치스크린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미 다른 데로 가버렸는데 말입니다.”

이전처럼 발실리와 라자리디스는 옳았음이 증명됐다. 하지만 범용 제품화 되어가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블랙베리의 희망을 오히려 앗아가버릴 뿐인 잘못된 제품을 내세운 하인스의 전략적인 실수는 이미 힘들었던 상황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다른 이유로도 Z10은 판매가 어려웠다. 한 내부 관측통에 따르면, 딜러숍에 진열하기 위해 젊은 직원을 따로 교육 시키는 것만 해도 한 시간에 가까운 교육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충성스러운 블랙베리 사용자들 입장에서 새로운 시스템이 전통적인 블랙베리의 경험과 너무나 달랐다. QNX 개발자들은 블랙베리의 과거를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RIM 내부에서 말하는 “기쁨의 순간”을 잊거나 간과했었다. 가령 사용자는 예전의 블랙베리처럼 받은 메시지함에 있는 읽지 않은 메시지를 보기 위해 “u”를 칠 수 없었고, 쉽사리 이전이나 이후의 이메일로 이동할 수 없었다. 포켓-다이얼링은 끊임 없이 골치거리였다.

그동안 RIM이 예전 블랙베리 시스템용 애플리케이션의 이주를 돕는 등, 기업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도 느렸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블랙베리 세계의 일부로 남기 위해 새 시스템용 앱을 재작성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다수가 망설이지 않았다.

블랙베리 10의 성공에 대한 질문을 하인스는 서면으로 답변했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내린 결정은 끊임 없이 바뀌고 경쟁이 극심한 시장의 맥락에서 이뤄졌으며, 언제나 우리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핵심 기술을 전달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블랙베리 10은 우리 회사의 재탄생을 포함하는 중대한 성취입니다만, 우리 기대에 미치지는 못 했습니다.”

하지만 라자리디스는 29년 전에 세운 회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블랙베리 소액주주이고, 그의 이전 기업을 매입하는 그룹에 들어간다는 루머의 주인공으로 뜨고 있다.

라자리디스는 그런 계획에 대해 논하기를 거절했지만, 그의 블랙베리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의 말이다.

“어려운 시기를 겪는 기업은 많습니다. 인텔도, IBM도, 애플도 겪었죠. 우리의 임무는 우리 모두 그렇게 하리라 믿었던 BB10으로 우리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세계 최대 기술 기업 2곳이 경쟁하는 공간에 캐나다 기업이 경쟁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소식이죠. IBM과 애플을 폄하했던 사람들이 틀렸던 바 있습니다. 블랙베리에 대해서도 그들이 틀렸음을 보일 겁니다.”

With reports from Tara Perkins, Omar El Akkad and Iain Mar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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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INTERVIEW WITH CEO THORSTEN HEINS

CEO가 되시기 전에 전략적인 기회 대부분을 만들어 내셨는지요? 올바른 선택을 하셨나요? 다시 생각해 볼 것은 없습니까?

2012년 1월, CEO가 됐을 때, 저는 블랙베리의 우리 모두에게 도전과 기회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가령 LTE 제품이 없었고 OS는 늙었었죠. 블랙베리 10과 BES 10, BBM으로 만든 것은 우리가 계속 혁신과 새로운 기회를 일으킬 믿을만하고 확실한 기반을 구축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지난 2년간 내린 결정은 계속 변하는 경쟁이 심하고 변덕스러운 시장의 맥락에서 한 결정이며, 우리 주주에게 가치를 창출해주고, 고객들의 수요를 맞춰주는 필수적인 기술을 제공하자는 목표와 언제나 함께 했습니다.

블랙베리 10을 선보일 때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떤 느낌이십니까?

우리는 새롭고 다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새 플랫폼을 선보였습니다. 극도의 생산성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사용자 경험이지만 혁명적인 신기술 채택에 따르는 학습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판매가 좀 느려졌다고 봅니다.

블랙베리 10은 어째서 그렇게 늦었나요?

아시다시피 만드는 과정에 연기가 있었습니다만 우리 팀이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은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신기능과 플랫폼의 통합은 예상보다 더 복잡하고 시간이 더 소요됐습니다. 문제는 품질이나 소프트웨어 기능이 아니라 거대한 코드의 통합을 관리하고 전세계적인 사용을 준비하는 데에 들이는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어려우셨는지요?

제 개인이 아니라 우리 직원과 고객들에 대한 일입니다. 블랙베리 최대의 장점은 유능하고 충성스러우며 열정적인 직원들입니다. 그 때문에 최근의 구조조정은 비록 회사에 이윤이 나게 하고, 보다 성숙하고 경쟁력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필요하기는 하지만 특히 더 어려웠습니다.

This interview has been edited and conden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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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the China plan was shelved

RIM에서 내부적인 갈등을 일으키게 된 여러가지 전략 중, RIM의 무선 네트워크 시스템을 아시아에 판매하는 벤처에 중국의 지원을 받는 비밀 계획도 있었다.

2010년 여름, RIM의 사장인 스타이미스트와 당시 공동 CEO였던 짐 발실리는 중국의 국영 투자회사인 CIC(China Investment Corp.)에게 조인트-벤처 제안을 했다. 동 논의를 잘 아는 소식통에 따르면 발실리와 CIC는 2011년 사전계약(preliminary understanding) 단계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계획상 북경은 RIM을 세계에서 제일 크고 급성장중인 시장이면서 해외 경쟁사들에게는 실질적으로 폐쇄된 중국 무선통신 운영체제의 공식 공급업체로 승인한다는 데에 동의했었다.

CIC와 RIM, 그 외 중국 휴대폰 기업들이 소유한 기업을 새로이 만들고 라이선스 계약에 따라 중국에서 만든 핸드폰이 RIM의 핵심 소프트웨어를 돌리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한 관련자의 말이다.

“북경이 매우 바라던 바였습니다.”

발실리는 견고하게 통제되는 중국 시장에 들어갈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내부인들에 따르면 RIM의 공동 CEO, 라자리디스와 여러 간부들이 새 스마트폰인 블랙베리 10의 개발에 집중해야한다면서 중국 계획을 우려했다고 한다.

RIM 간부들이 내부적으로 거의 2년 동안 중국 전략을 토론하는 나머지 중국 파트너들은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중국 파트너 관련자의 말이다. “전혀 결과가 안 나와서, 전체 일이 낭비돼 버렸습니다.”

RIM의 CEO로 새로이 하인스가 2013년에 취임하자마자 중국 계획은 보류됐다. 하인스는 포기한 벤처에 대한 논의를 거절했다.

Jacquie McNish and Sean Silcoff

How BlackBerry blew it: The inside story – The Globe and Mail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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