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그 휘트먼, HP를 되살릴 수 있을까?

메그 휘트먼, HP를 되살릴 수 있을까?

Can Meg Whitman Reverse Hewlett-Packard’s Free Fall?

By Ashlee Vance and Aaron Ricadela on January 10, 2013
Can Meg Whitman Reverse Hewlett-Packard’s Free Fall? – Businessweek

1월 16일, 휼렛패커드는 팔로알토에 있는 본사 사옥에 개조시킨 소비자 만남 센터를 개장할 계획이다. 만든지 1년 된 이 센터의 첫인상은 놀라울 정도다. 1980년대 빈티지 식의 하얀색 입구가 초현대적인 모양으로 바뀌었으며, 열린 공간과 푸른색 조명이 가득하다. 유리벽으로 되어 있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투시해 보면, 이 공간이 옛날 옛적 시골 한 가운데 있던 오크 나무 주변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윌리엄 휼렛과 데이비드 패커드가 1960년대에 심었던 나무다. 같은 빌딩에 방이 있는 메크 휘트먼의 말이다. “과장하지 않더라도 이곳은 오크 나무의 근간에 닻을 내린 휼렛-패커드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HP의 네 번째 CEO가 된 휘트먼은 차분한 인상을 주려 노력중이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출근 전 집 근처의 대중용 수영장에서 수영하려 노력한다. 개인적으로 그녀는 장난기가 많은 듯 하다. 컨트리 뮤직의 벨소리를 설명할 때는 의자에 앉아 춤추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녀는 과거와 HP의 미래에 관해 직설적으로 말한다.

실리콘밸리 바깥의 사람들도 휘트먼에게 정치 경력이 있음을 알 것이다. 이베이에서의 CEO 10년을 지낸 다음 휘트먼은 2010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나갔다가 실패했었다. 또한 그녀의 전임 가정부가 불법체류자임을 사전에 알았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이 논란이 1억 5천만 달러를 들인 주지사 선거에 마지막 일격을 가했지만 휘트먼은 선거 때의 경험으로 배운 점이 몇 가지 있다고 말한다. “선거 경험은 제게 제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만, 도전해야 할 것 같은 뭔가 있으면, 돌아가야죠.”

도전은 다름 아닌 HP이다. HP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제일 어려운 시기가 지금이다. 소비자들은 HP의 제일 중요한 제품인 PC와 프린터를 덜 사고 있으며, 부채는 늘어나고 잘 안풀리는 인수에 수 십억 달러를 썼다. 월스트리트 분석가들은 휘트먼이 회사를 결국 쪼개야 하리라 말하는 것부터 새해 인사를 시작했다. 2010년 8월 거의 680억 달러에 달했던 시가 70%를 잃은 이래, 다우존스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현재 HP의 시가는 290억 달러 정도이다. 매출액이 HP의 1/9 정도에 불과한 Carnival Cruise Lines보다도 5억 달러 정도 더 낮은 수치이다. 하바드 비지니스스쿨 교수이자 엑손모빌, 골드먼삭스, 마요 클리닉 이사이기도 한 윌리엄 조지(William George)의 말이다. “HP가 어떻게 이리도 빠르게 급락했는지 궁금할 겁니다. HP 주가를 보고 농담인가? 이것 밖에 가치가 안 나가나? 하시겠죠.”

HP의 사업 대상인 PC와 서버, 프린터는 이제 범용 제품화가 됐으며 철지난 제품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는 점 자체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사업 다수는 여전히 HP에게 120억 달러 이상의 영업이윤을 만들어주는 사업이기도 하다. 조직도 맨 윗자리를 바꾸는 것 또한 너무 과도했다. 조지의 말이다. “제일 거대한 기업 구조 파괴의 사례입니다. 정말 어려운 결정을 내릴 준비가 되지 않는 한, 주주들에게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죠. 계속 표류할 겁니다.”

휘트먼은 그런 결정을 내릴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5년이요. 이 답변을 싫어하는 분들도 있죠.”

HP가 생기기 전에는 차고에서 뭔가 만들어서 세상을 바꾼 사례가 없었다.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실리콘밸리 역사 프로젝트를 이끄는 역사가인 레즐리 벌린(Leslie Berlin)의 말이다. “HP는 나도 제일 크고 중요한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실현시켜주는 모델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여전히 제일 중요한 개념이죠.”

그동안 HP는 항상 민첩하지는 않더라도 성공적으로 사업을 변화시켜 왔다. 과학 도구에서 계산기, PC, 프린터, 데이터센터에 이르기까지 휼렛과 패커드는 연구개발 비용을 충분히 지출하여 신제품을 내면서도 옛 제품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등 균형을 훌륭하게 지켜 왔었다.

게다가 HP는 실리콘밸리 사업 문화도 많이 만들어냈다. 엔지니어가 운영하는 쾌적한 사무실 환경이라든가 회사 실적을 모두 공유하는 것과 같은 문화다. 벌린의 말이다. “HP는 좋은 사람들이 좋은 제품을 만드는 좋은 직원과 함께 만들어낸 회사였습니다. 밸리 지역 도덕의 핵심처럼 기능했죠.”

HP 쇠퇴의 뿌리는 적어도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크 허드(Mark Hurd)의 전임자였던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는 최초의 외부 영입형 CEO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임기 동안 대규모 정리해고에 대한 혐오 같은 HP의 DNA에 들어간 (이미 지지부진해져 가고는 있었지만) 지루한 경영원칙을 깨뜨렸다. 1999년 HP는 HP의 뿌리에 제일 가까운 전자 기기 제조 업체인 Agilent Technologies를 매각했다.

피오리나와 빌 휼렛의 아들인 월터 휼렛과의 험악한 주주(株主) 전투 2년 후, HP는 거대한 개인용 컴퓨터 제조업체인 컴팩을 인수했다. 이 인수로 HP는 거대해졌지만 포괄적인 기업 문화가 약해지고 발명에 집착하는 회사가 아닌, 공급망에 의존하는 노예 회사가 되어갔다. 피오리나는 2005년 초, 월스트리트의 예측치를 너무 많이 놓쳤기에 해고됐다. 그녀 임기 동안 HP는 불발탄이나 일삼는 거대 기업이 됐고 최고 경영진의 음모로 리더쉽 또한 약화됐다.

제일 악명 높은 사례가 있다. 피오리나 이사진들은 자신들이 참가했던 회의를 기자들에게 누출시켰으며, 회사 간부들은 직원과 기자들을 스파이하여 누가 누출을 하는지 알아내려 했다. Delaware 대학교의 와인버그 기업지배구조 센터장인 찰스 엘슨(Charles Elson)의 말이다. “HP는 오랜 기간 동안 이사진의 모델이 됐던 기업입니다. 그런데 칼리가 오면서 바뀌었죠.”

HP는 2005년 3월, 창립할 때의 정체성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면, 원칙을 단일화시킬 수 있었다. 당시 허드가 들어 왔었다. 양복쟁이에 Baylor 미식축구 팬이자 입버릇이 상스러운 사나이인 마크 허드는 HP를 들어가기 전, 2년동안 NCR을 운영하고 있었다. 계산대와 자동화된 텔러 머신과 세계 최대의 기업들이 상품과 고객, 영업매출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NCR 내에서 허드의 실적은 좋았다.

월스트리트 분석가들이 아니라면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허드는 실용적인 인간-현금 계산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스프레드시트에 있는 모든 수치를 기억할 정도였다. HP는 이윤이 낮은 PC와 프린터(거의 잉크를 팔기 위해 거저 내놓는 수준이다), 하이엔드 수퍼컴퓨터, 다중의 라이선스를 통한 소프트웨어, 시간당 요율로 매기는 서비스라는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순간 종종 손실이었던 서버와 PC 사업의 이윤이 매우 좋아졌다. 허드는 월스트리트의 예측치를 22 분기 중 21 분기동안 맞췄고 22 분기 내내 이윤을 늘렸다. HP의 매출은 63% 뛰어 올랐고 주가도 두 배 더 올랐다. Robert W. Baird의 분석가인 제이슨 놀랜드(Jayson Noland)의 말이다. “마크 허드는 비용을 줄이고 그걸로 일을 잘 해냈죠. 하지만 영원히 비용을 줄일 수는 없습니다. 투자자들은 성장을 원했어요.”

인터뷰를 벌인 십 수 명의 전임 HP 간부진들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사람들 거의 전부가 마크 허드의 팬이었다. 그는 창립자의 권위를 거의 동일하게 가졌다. 그는 모든 면에서 CEO이자 CFO이자 COO, 그리고 영업 책임자였다. 전 부사장이었던 산딥 조흐리(Sandeep Johri)의 말이다. “마크가 HP에 들어온지 30~45일 내에 마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회사에 없을 정도였어요. 그 효과가 항상 좋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걸 다 느꼈다는 겁니다.”

외부 컨설턴트 요청은 언제나 허드의 결재를 요구했다. HP는 거의 1억 달러어치의 지출을 McKinsey와 Bain & Co.같은 곳에 넘겼지만 거의 안 쓰게 됐다. 연간 보너스 시스템은 이제 분기별로 바뀌었고 보너스를 모두 공유하는 것에 익숙하던 직원들은 이제 성과에 따른 보상을 받았다. 허드는 매년 하위 실적 10%에 해당하는 직원들을 해고 요청했다. 그는 또한 모든 간부들을 인터뷰한 다음, 간부 영입 및 평가 전문사인 Heidrick & Struggles에게 분석을 의뢰했고, 자신이 직접 평가를 검토했다.

특정 종류의 프린터 판매가 떨어지면 해당 제품의 책임자는 곧 허드로부터 잔혹하고 저주에 가득찬 메일을 받았다. 베트남 부동산가가 급상승하거나 브라질 환율때문에 서버 마진이 떨어진다는 소식도 그는 챙겼다. 샌디에고에서 715명의 인력이 수 만 가지의 프린터 드라이버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허드는 그들의 숫자는 64명으로, 작업 대상 드라이버는 몇 가지로 줄여버렸다. 조흐리의 말이다. “30만 명이 있는 회사에서 사람 한 명이 그만한 영향력을 가졌다니 믿을 수가 없죠? 하지만 그가 그랬답니다.”

허드의 영향이 어땠든지 간에 HP 이사진은 그를 소중한 존재로 여기지 않고 2010년 8월 그를 사임으로 몰았다. 이사진은 전임 마케팅 계약자였던 조디 피셔(Jodie Fishcer)이 허드를 고소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허드가 성희롱을 했다고 주장했다. 허드는 주장을 부인했으며 그녀가 고소 내용을 흘려서 놀랐지만 이사진은 허드가 피셔와의 관계를 모호하게 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간부였던 로버트 라이언(Robert Ryan)의 말이다. “허드가 갈린다는 소식을 HP 직원 모두들 예기치 못했고, 허드가 직원들을 실적으로 이끄는 강력한 리더로 알고 있음을 이사진도 알고 있었어요.” HP는 사내 조사를 벌여 허드와 피셔 간의 이메일을 조사했고, 그녀의 성희롱 주장에 별 근거가 없음을 알아냈지만 이사진은 어떻게든 허드를 사임시켰다.


사흘 후 그는 이사진의 압박 아래 CEO 직을 사임하지만 스티브 잡스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는다. 애플 창업자인 잡스는 혹시 대화상대가 필요한지 허드에게 물어봤다. 잡스 또한 예전에 애플 이사진으로부터 유사한 압박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허드와 잡스 둘 다의 친구인 오라클의 CEO, 래리 엘리슨 또한 허드의 축출을 “애플 이사진이 스티브 잡스를 몰아낸 이후로 최악의 이사진 결정”이라 혹평했었다.


익명을 요구하되 둘을 잘 아는 관계자들에 따르면 허드는 잡스를 팔로알토에 있는 잡스 집에서 만났다. 둘은 두 시간 이상 같이 있었고 잡스는 허드를 데리고 나무로 우거진 동네를 산책했었다. 잡스는 여러 번에 걸쳐 허드에게 되돌아갈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해주겠다 말했다. 심지어 잡스는 HP 이사진들 하나 하나에게 편지나 전화를 하겠다고도 제안했다.

5년동안 허드는 HP를 지구상 최대의 기술기업으로 일궈놓았다. 2010년 매출액은 1,260억 달러였다. 주가 또한 야단법석이었고 이윤도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잡스는 허드나 다른 친구들에게 HP 이사진이 HP의 진보를 풀어 놓아버렸으며 회사를 혼란으로 끌고 갈 것이리라 말했다.

허드에게 조언을 해 주면서 잡스는 단순히 친밀한 상담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빌 휼렛과 데이브 패커드의 유산까지 동원했다. 잡스의 말에 따르면, 건강한 실리콘 밸리를 위해서는 건강한 HP가 필요했다. 애플 이사진이자 Intuit의 사장인 빌 캠벨(Bill Campbell)의 말이다. “HP는 실리콘밸리 자체를 만든 회사입니다.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으시겠죠.”

잡스는 결국 허드와 HP 간의 화해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로부터 약 1년 후 그는 서거했는데, 자신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보고 사망했다. 허드와 잡스가 대화를 나눈지 몇 달 안 있어서 HP 이사진은 새로운 CEO로 레오 아포테커(Leo Apotheker)를 선출했고, 새로운 사장으로는 실리콘 밸리의 오랜 수호자인 레이 레인(Ray Lane)을 선택했다. 레인은 HP가 붕괴되어가는 동안 회사 구조조정이라는 거대한 역할을 맡았다.

운이 다 해 가면서 새로운 CEO들은 허드를 탓해 왔다. 직원들을 해고하고 사무실 공간과 수당을 없앴으며 직원들에게 더 많은 실적을 요구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한 사건을 거치면서 회사가 쇠락해갔다. 허드의 임기가 끝나면서 HP의 내부 기술 시스템은 한 물 갔고 더 이상 HP에는 모바일과 클라우드 컴퓨팅처럼 높은 성장을 이끌어 낼 매력적인 제품이 없어졌다. 더군다나 능력 있는 직원들은 의무적인 순위 시스템을 통해 도태되면서 사기도 떨어졌고 최고 간부들은 허드가 새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이러한 비판들이 상당수 사실이기는 하지만 HP의 전망이 허드 이후로 왜그리 빠르게 훨씬 더 악화됐는지는 그들도 이해하지 못했다.

HP의 매출액이 급감한 이유는 부적절한 제품 때문이라는 인상을 가진 이들이 많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HP는 허드의 마지막 임기일 때 매출액이 1,260억 달러였고 2012년에는 1,204억 달러였다. HP는 전세계 기업 컴퓨터 시장의 지배자로 여전히 남아 있다. 플로리다의 Global Financial Private Capital에 있는 투자 수석, 크리스 버텔센(Chris Bertelsen)의 말이다. 자산이 18억 달러인 그의 회사는 HP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예전의 IBM과 매우 흡사해 보입니다. 메그가 HP를 잘 이끌 수 있겠죠. HP 최대의 난제는 핵심 사업이 아니라 리더십입니다. 빚으로 가득 찬 장부도 해결해야 하지만요.” 모토로라의 전 CEO인 에드 잰더(Ed Zander)의 말이다. “현재 현금 보유고와 하락한 주가때문에 지금이 제일 어두운 시기처럼 보입니다. 살아남으리라 생각하지만 HP가 다시금 주요 기업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죠.”

잡스는 허드에게 HP 이사진을 바꾸라 조언했었다. 허드의 친구이면서 테니스 상대이기도 한 래리 엘리슨은 그에게 복수할 강력한 플랫폼을 제시했다. 허드가 HP를 떠난지 한 달 후, 엘리슨은 그를 HP의 경쟁상대인 데이터센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사업을 맡는 오라클 공동 사장으로 임명했다. (허드는 이 기사를 위한 코멘트를 거절했으며, 엘리슨 또한 인터뷰 요청에 반응하지 않았다.)


허드가 떠나자 HP는 임시 CEO로 원래 CFO였던 캐시 레잭(Cathie Lesjak)을 임명한다. 그녀는 여느 HP 간부들처럼 CEO가 되겠다는 포부가 없었다. 뒤로는 넷스케이프의 공동 창업자이자 벤처 투자자로 변모한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이 이사로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시기 시작했고 다음 리더가 되려 했다. 레잭은 투자자와 언론에게 HP가 허드가 세워 놓은 재정 원칙을 준수하겠다고 확인해 줬다. 다만 그녀는 소프트웨어 개발과 판매를 이해하면서 연구개발도 확대시킬 수 있는 인물을 물색했다. HP는 더 많은 혁신을 일으키고 이윤도 높일 인물을 찾았는데, 완전히 당황스러운 일들이 잇따랐다.

첫째로 레잭은 HP의 다음 분기 지출을 5억 달러로 올려 놓았는데, 2주일 후, 델과의 경매경쟁에서 승리하여 스토리지 회사인 3PAR를 23억 5억 달러를 내고 인수했다. 열흘 후, HP 이사진은 100억 달러 어치의 자사주 매입을 단행했고 이런 소동 끝에 아포테커를 새로운 CEO로 임명하고 레이 레인을 새로운 이사진으로, 그리고 경영 사장으로 임명했다.

아포테커는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업체 중 한 곳인 SAP에서 수 십 년을 보냈지만 CEO로서는 짧은 기간만을 보냈었다. 레인은 기업 컴퓨팅의 해결사로 알려져 있었다. 90년대 오라클에서 8년을 보내면서 그는 엘리슨과 같이 고객 관계 해결을 돕고 자유분병한 영업 문화에 원칙을 적용시켰다. 그와 엘리슨은 사이가 멀어져서 레인은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 투자사 중 한 곳인 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로 향했다. 아포테커-레인 콤비는 하드웨어에서 고마진의 기업 애플리케이션으로 사업이 바뀌리라는 신호를 주었다.

아포테커는 2010년 11월에 업무를 시작했다. CEO로서 첫 번째 달에 그는 HP의 매출 예상치를 높였지만 결국 예상치를 놓쳐서 월스트리트를 실망시키는 패턴을 다시 시작했다. 아포테커는 심지어 미국 바깥에서 HP를 운영하여 언론의 놀림거리가 됐다. 그는 전세계의 고객과 직원들을 만나는 “듣기 투어”를 벌였다. 당시는 캘리포니아에서 오라클과 SAP 간 소송이 있었기 때문에 소환장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말이 있다.

내부적으로 아포테커는 친구를 많이 만들지 않았다. HP 부사장단의 약 절반이 CEO가 되기 위해 경쟁을 벌였고 전직 간부들은 아포테커가 그들에게 다가가서 이겨내지 못 했다고 말했다. 성격의 문제도 있었다. 아포테커의 냉담한 처신과 HP의 세부사항을 알기 꺼려하는 움직임 때문이었다. 서비스 사업부에 있었던 한 전직 고위 간부는 아포테커와의 첫 회의를 이렇게 회상했다. 서비스 사업의 내역을 알려주기 위해 한 회의였는데 회의실에 모인 그와 십 수 명의 간부들은 아포테커가 깜빡 조는 광경만 봤을 뿐이었다. 그들은 15분 동안 불편하게 기다렸으나 아포테커는 깨어 나서는 놀랍게도 사업의 재정적인 세부사항을 그냥 지나키고 싶었다 말했다. 보다 특정적이지 않은 소비자 만족에 대한 구상을 얘기하기 위해서였다. 아포테커의 대변인인 션 힐리(Sean Healy)의 말이다. “보통 그의 업무 시간은 90시간이었습니다. 팔로알토의 무시받아온 연구개발소도 방문했었죠. 이런 일정때문에 그가 참가한 수 백 회의 검토 회의 중 하나에서 존 것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고객만족과 제품 성능 등, 재무 지표 뒤에 있는 HP의 장기적인 집중 대상을 바로 잡기 위해서였죠.”

전직 간부진은 HP가 하드 이전 방식대로, 그러니까 분방하게 지출하는 문화로 빠르게 돌아섰다고 기억한다. 아포테커는 회사 전반적으로 급료를 올리고 컨설턴트들을 다시금 불러들였다. 허드의 축출때문에 그런지 모두 허드가 한 반대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에 따르면 아포테커는 허드라면 저항했을 만한 계획을 거의 승인했다고 한다.

2011년 3월, 이제 CEO 4개월 째가 되는 아포테커는 마침내 언론 기자 간담회를 갖고 자기 계획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HP는 Palm이 만든 모바일용 소프트웨어인 webOS를 자사 PC와 프린터 라인에 설치함은 물론, 새로운 모바일 기기에도 설치하겠노라 말했다. HP는 아직 내놓을 제품이 없긴 하더라도 클라우드 컴퓨팅에도 과감하게 들어서기로 했다.

5개월 후인 8월, 아포테커는 Palm 소프트웨어 계획을 철회했고 스마트폰과 태블릿 기술에서 webOS를 제거하겠노라 발표했다. HP는 또한 McKinsey의 조언대로 연간 4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던 PC 사업부의 매각을 고려하겠다고 발표했다. 분기 예상 수익을 이미 낮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법률과 규정용으로 기업 데이터를 처리하는 소프트웨어 업체, Autonomy를 100억 달러에 인수했다. 연간 매출액의 10배였다.

발표하던 주, 아포테커와 그의 팀은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논스톱 회의를 가졌다. 커뮤니케이션 부장인 빌 월(Bill Wohl)과 대외홍보 컨설턴트인 조엘 프랭크(Joele Frank)는 아포테커에게 이 모든 변화가 회사의 주가를 크게 떨어뜨릴 것이며 부정적인 언론 보도가 쇄도하리라 경고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아포테커는 회의를 물리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월에게 의자를 던졌다. 그리고 이사진 회의에서 다시는 프랭크를 보고 싶지 않다고도 덧붙였다고 한다. 아포테커 대변인인 힐리는 의자를 던진 것이 아니라 밀었으며, “시간이 흘러서 수학적으로 과장된 수준으로 올라섰습니다.”라 말했다.

한 달 후, 아포테커는 해고되고 메크 휘트먼이 CEO에 올랐다.

떠들썩 했던 HP의 지난 2년은 이사진 의장인 레이 레인의 시기였다고 부를 수 있다. 레인은 2011년 1월 이사진을 조종하여 휘트먼을 이사로 모셔왔다. (HP를 통해 레인은 이 기사를 위한 코멘트를 거절했다.) 그의 조정 하에 HP는 5명의 새로운 이사를 모셔오고, 허드 시절의 이사진 네 명을 몰아냈다. 관계자에 따르면 레인은 시티그룹과 General Mills, 코넬 대학교의 이사이기도 한 로버트 라이언과 폭스 배리 딜러(Barry Diller)의 제자인 루시 살하니(Lucie Salhany)에게 두 명의 반-허드 이사진을 몰아내고 허드에 충성스러운 이사 두 명을 다시 불러들여서 균형을 맞춰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고별 파티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HP 이사인 잰더의 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저도 확실치가 않았어요. 이 모든 변화를 일으킬 때 일을 제대로 하기는 어렵죠.”


레인 편을 드는 이들도 있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전 CEO인 스콧 맥닐리(Scott McNealy)가 그 중 하나다. “레인은 언제나 직관적이고 쉽게 일을 합니다. 레인은 ‘경제적인 봉사자’에요. HP를 수렁에서 건지기 위해 수많은 세월을 보냈으니까요. 회사를 위해서이지 명성때문이 아니에요.”

전임 HP 간부들은 맥닐리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레인이 권력지향적이라는 의견이다. 조지의 말이다. “레이 레인은 자기에게 가까운 이사진들만 잔뜩 데려왔습니다. 그러면 레인을 자를 수가 없죠. 이사진이라는 개념은 회사에게 자기가 누구이고 뭘 어떻게 할지, 구조적인 기억을 세우는 역할입니다. 하지만 그 본질을 이사진은 잊었다고 봐요.”

레인이 HP 이사진에 들어선 이후 HP는 레인과 제휴된 회사 두 곳을 더 인수했다. HP는 데이터 분석 기업인 Vertica를 3억 5천만 달러에, 보안기술 전문 업체인 ArcSight를 15억 달러에 인수했다. 모두 Kleiner의 이력 페이지 및 투자 대상에 올라와 있는 회사이다.

레인은 또한 날라가 버렸던 Autonomy의 인수를 승인했다. 11월, HP는 Autonomy의 저조한 매출때문에 100억 달러의 인수가를 88억 달러로 낮추겠다면서 Autonomy 회계 관리에 속임수가 있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Autonomy의 창업자이자 전 CEO인 마이크 린치(Mike Lynch)는 그런 혐의를 부인했고, Autonomy 경영진의 주장을 쟁점사항별로 반박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휘트먼은 레인처럼 Autonomy 결정과 자신을 떨어뜨리려 노력했다. 11월 20일 컨퍼런스는 비난의 초점이 아포테커와 전임 인수합병 책임자이자 CTO인 셰인 로빈슨(Shane Robinson, 2011년에 떠났다)에게 집중됐다. 휘트먼의 말이다. “당시 CEO와 이 인수를 맡은 전략 책임자는 모두 떠났습니다. 레오 아포테커와 셰인 로빈슨입니다.”

로빈슨은 본 기사를 위한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아포테커는 블룸버그 뉴스로 보낸 이메일에서 그 책임이 레인과 나머지 이사진에 있다고 지적했다. 아포테커의 이메일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대규모 인수를 어느 CEO도 자기 혼자 결정 내릴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HP처럼 대기업에서는 이사진의 완전한 지원 없이는 더욱 불가능합니다.”

휘트먼은 실제로 일어난 것 이상으로 이야기가 더 나쁘다고 말한다. 그녀는 내부적으로 검소함과 겸손함을 강조해왔다. 150여명의 HP 간부진 회의에서 그녀는 HP가 포시즌 호텔이 아니라 매리어트 호텔이라 말했다. 야근할 때는 피자나 치포틀 칠리를 주문한다. “무슨 멋쟁이 회사가 아닙니다.”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휘트먼은 수석 부사장들을 으리으리한 사무실에서 일반적인 칸막이로 분리한 사무실로 옮겼다.

휘트먼은 또한 직원과 외부인들을 혁신으로 몰고 가려 노력한다. HP는 이미 새로운 라인의 태블릿과 우아한 노트북(분리할 수 있는 화면이다)을 통해 시장 점유율 하락을 막기 시작했다. 휘트먼에 따르면 정비를 한 서비스 사업 또한 다시 자라날 것이고 HP는 웹-기반 기능을 제품에 덧붙여서 프린트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스마트폰 사업도 HP가 다시 진입할지 모른다. 휘트먼의 말이다. “궁극적으로는 해야 합니다만, 큰 자금 손실 없이 해낼 방법을 알아내야 합니다.”

그녀는 HP가 당장 대규모 인수를 할 수 없지만 외부에서 HP의 현금 보유고에 대해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대 여섯 번 정도의 인수를 꾸짖으며 “제 전임자들은 매우 강력한 자산을 구성해 놓았습니다.”라 말했다. 그동안 인수한 스토리지와 보안, 네트워킹, 데이터 분석 기업들을 갖고 데이터 센터 제품 라인을 세우고 클라우드 컴퓨팅 옵션도 폭넓게 포함시킬 작정이다. HP는 비용 절감과 현대화를 위해 Salesforce.com과 Workday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중심으로 자사 기술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했다.

2010년 이래 계속된 인재 누출을 막는 일이야말로 아마 제일 어려울 것이다. 휘트먼 휘하에서 경향이 좀 누그러지기는 했다. 지난 2년간 적어도 120명의 간부들이 회사를 나갔으며 많은 수는 경쟁사로 향했다. HP는 전임 CTO와 프린터 책임자, 연구 책임자, 하드웨어 책임자, 영업 책임자, 투자 책임자를 모두 놓쳤다. 심지어 General Motors도 HP의 내부 기술팀으로부터 사람들을 빼가기도 했다.

1월 4일, UBS 은행의 투자연구부는 실리콘밸리가 그동안 두려워하던 것이 오리라 경고하고 나섰다. HP 경영층에 대한 논의 및, 회사 분리를 어째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메모였다. UBS는 “기업 부문과 PC/프린터 부문의 분리”를 “선호”한다 말했다. HP의 데이터센터 사업을 하나의 기업으로 만들고, PC와 프린터 사업을 또 다른 기업으로 만들자는 의견이다. UBS의 메모는 여타 HP의 일부를 받으려는 개인자산관리사와 경쟁사들에 대한 루머 또한 적어 놓았다. 실리콘 밸리 기업들의 상당수 최고 간부들이 HP의 조각 조각을 분석하고 있노라 확인하기도 했다.

휘트먼은 HP를 전체로 유지시켜야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HP야말로 기업들에게 기기로부터 데이터 센터까지 모두 다 판매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라 묘사한다. 앞으로는 이 모든 제품을 클라우드 소프트웨어를 통해 묶어서 고객들에게 HP가 최고의 외양과 보안, 스마트 컴퓨팅 시스템을 제공한다고 확신시켜 주리라는 말이다. 승리 전략이다. 물론 실행은 다른 문제다. 휘트먼의 말이다. “어떻게 될지 두고 볼 겁니다. 미국 기업 역사상 최고의 부활이 되잖을까,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Can Meg Whitman Reverse Hewlett-Packard’s Free Fall? – Businessweek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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