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Connie Guglielmo, Forbes Staff
I cover the people and technology driving Silicon Valley
FORBES | 10/03/2012 @ 6:00 |348,395 views

Untold Stories About Steve Jobs: Friends and Colleagues Share Their Memories

This story appears in the 2012/10/22 issue of Forbes.

무엇 때문에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PC와 뮤직 플레이어, 전화기와 태블릿을 재발명했는지, 그리고 자기 인생에 대해 전기작가와 이야기를 나눈 덕택에 우리는 스티브 잡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들어보신 적이 없는 “스티브” 이야기는 대단히 많다. 56세의 나이로 10월5일 타계한 잡스의 서거 1년 후, 기술 업계에서 제일 잘 알려진 선각자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들과 동료들이 알려 주었다.

Hide The Porsches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랜디 애덤스(Randy Adams)는 애플로 축출당한 후, 잡스가 새로이 만든 컴퓨터 회사, 넥스트에 오라는 스티브 잡스의 제안을 원래 거절했었다. 그 때가 1985년이었고, 애덤스는 자신이 원래 만들었던 소프트웨어 제작 회사를 매각한 직후였기 때문에 일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애덤스의 전화 자동응답기에는 잡스의 소리가 들어 있었다. “날려버리고 있군요, 랜디. 이건 인생의 기회에요. 그런데도 당신이 날려 버리고 있어요.” 애덤스는 다시 생각해 봤다.

회사를 매각한 후 애덤스는 그 일부를 갖고 포르셰 911을 구매했었는데 마침 잡스도 같은 차를 갖고 있었다. 자동차 문이 부딪히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은 사이에 두 세 대 정도의 공간을 비우고 나란히 주차하곤 했었다. 어느 날 잡스가 애덤스의 자리로 와서 자동차를 옮겨야겠다고 말했다. 애덤스는 왜냐고 물었다.

“랜디, 포르셰를 숨겨야 해요. 로스 페로가 와서 우리 회사 투자를 생각할 텐데 우리가 돈이 많은 것처럼 비쳐지면 안 되지.” 그래서 그들은 포르셰를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있던 넥스트 사무실 뒤편으로 옮겼다. 페로는 1987년 2천만 달러를 넥스트에 투자했고, 그 후 넥스트 이사가 됐다.

애덤스는 빌 게이츠가 넥스트에 회의하러 왔을 때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1986년 가을, 로비에서 게이츠 씨가 도착했다고 위층의 잡스 자리로 전화했다. “잡스 자리가 제 자리에서 보였어요. 별로 바뻐 보이지 않더라구요. 하지만 그는 일어나지도 않았고 게이츠 보고 올라오라 하지도 않았어요. 사실 로비에 게이츠를 한 시간 정도 방치해 놓고 있었습니다. 경쟁심의 발로랄까요.”

애덤스에 따르면 오히려 넥스트의 엔지니어들이 게이츠가 온 김에, 게이츠에게 몰려가서 질문들을 던졌다고 한다. “재밌었어요. 한 시간 정도 지나고 게이츠랑 얘기하고 나니까 드디어 스티브가 그를 올라오게 하는 전화를 했습니다.”

애덤스는 넥스트 웍스테이션에서 쓰이는 광드라이브 때문에 잡스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넥스트를 나왔다고 한다. 그의 생각에 광드라이브는 너무 느렸다. 그 후, 잡스는 애덤스에게 넥스트용 소프트웨어 사업을 하라며 Sequoia Capital로부터 200만 달러의 투자를 받도록 해줬다. 하지만 사업을 진행하는 도중, 잡스는 애덤스에게 넥스트가 웍스테이션 사업을 그만 두고 소프트웨어에 집중하기로 했다면서 미리 알려주려 한다며 전화를 했다.

“하드웨어 가격이 계속 떨어져서 이제 컴퓨터를 일반 범용 제품이라 생각한다 말하더군요. 그래서 차라리 그럼 PC를 팔지 그래요, 라고 물어 봤습니다. 그랬더니 잡스는 ‘PC를 파느니 차라리 개를 팔지.’라 답했었어요.”

애덤스는 넥스트 시절의 잡스에 대해 많은 기억을 갖고 있었다.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잡스가 하루는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엔지니어들 사이를 지나쳤다. “오, 구워진 동물 살의 냄새라니, 이 얼마나 좋은가!”하면서 말이다. 1986년 잡스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는 직원들에게 $100씩 나눠줬다. 애덤스가 알려준 일화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일을 망치거나 잡스가 안 좋아하는 뭔가를 한 직원들에게 잡스는 항상 “스스로를 해고하시오”라 말했다고 한다. 정말 그럴 요량이었을까? “글쎄요. 해고통지문을 공식적으로 받지 않는다면야 농담이라는 사실을 다들 알잖았을까요.”

애덤스는 넥스트를 나온 이후 어도비에 들어가서 어도비 Acrobat과 PDF 개발을 이끌었고, FunnyorDie.com 사이트를 공동 창업했다. 그에 따르면 서거 1년이 지난 지금도 업계는 잡스를 그리워한다고 말한다. “그의 카리스마는 전기와 같았어요. 정말 믿을 수 없는 힘을 풍겼죠.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었습니다. 스티브와 같이 있을 때는 뭐든 할 수 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스스로 믿곤 했었어요. 그가 죽었을 때도 그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인물은 없죠.”

Scuff Mark in the Mini-Store

2004년 췌장의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고 밝힌 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다. 잡스는 필자를 포함하여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스탠포드 쇼핑센터에 기자들을 소집했다. 새로이 750 평방피트 짜리 “미니” 스토어 디자인을 선보이기 위해서였다. 원래의 애플 소매점 크기의 절반인 미니 디자인은 하얀색 천장에 후광이 비쳤으며, 일본에서 만든 스테인리스-스틸 벽과 파워맥 G5를 방불케 하는 통풍구가 달려 있었다. 바닥은 빛나고 새하얀 색이었으며, 잡스의 말에 따르면 “비행기 격납고에서 사용하는 재료”로 만들었다 했었다.

하지만 미니 스토어 앞을 드리우고 있던 거대한 커튼을 열기 전, 겨우 몇 분 전에 잡스는 외부에 스토어를 보여 주고 기자를 맞이하기 거절했다. 왜였을까? 도면상에서야 무척 근사해 보였던 스토어 디자인이 실제로는 도면과 같지 않아서였다. 문제는 벽과 바닥이었다. 개장 준비를 위해 작업했더 사람들 때문에 벽에는 지문, 바닥에는 구두 자국이 묻어 있었다.

잡스는 바깥에 있으라 주지해 놓고 기자들 앞에서 커튼을 내렸다. 바닥을 봤던 필자는 곧바로 옆에 서 있던 잡스를 바라 보며 그가 디자인의 모든 측면에 포함돼 있었는지 물었다. 그가 그렇다고 답하자 필자는, “자기 인생에서 절대로 바닥 청소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스토어를 디자인했음이 분명해요.”라 말했다. 잡스는 필자를 가늘게 쳐다 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수 개월 후, 한 애플 중역이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토요일 개장 후, 잡스가 스토어로 디자이너를 모두 다 불러 모은 다음, 밤새 그들보고 하얀색 표면을 청소하라 시켰다고 한다. 그 후 애플은 현재 애플 스토어 디자인에 널리 퍼진 석재 타일로 바닥을 교체했다.

They’ll Get Used To It

인터넷 브라우저의 개척자이자 벤처 투자자가 된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sseen)에게는 아이폰이 선보이기 조금 전에 잡스 부부와 더블 데이트를 했던 추억이 있었다. “2006년 가을이었어요. 제 부인인 로라와 제가 스티브, 그리고 그의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부인인 로렌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었습니다. 팔로알토의 캘리포니아 거리에 있는 식당의 대기열에 앉아 있었고 실리콘 밸리 특유의 훈훈한 저녁이었어요. 그 때 스티브가 프로토타입의 아이폰을 청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가지고서는 ‘뭐 좀 보여줄게’라 했습니다. 그러더니 온갖 기능을 설명하더라구요.”

“스티브 말에 맞춰서 감탄 좀 해 줬죠. 그리고는 감히 대들었습니다. 원래 제가 블랙베리 광팬이었기 때문에, ‘스티브, 물리적인 키보드가 없으니 문제가 되리라는 생각은 안 하시나요? 사람들이 과연 화면상에서 타이핑하는 것을 문제 없이 할까요?’라 물었어요. 그랬더니 완전 제 눈을 뚫어지라 쳐다보면서 말하더군요. ‘그렇게 될 거야.'”

애플은 2007년 아이폰을 선보인 이래 2억5천만 대 이상의 아이폰을 팔았다. 아이폰은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린 스마트폰 중 하나이다.

Blunt, But With Taste

1984년 맥을 처음 선보였을 때이다. 애플의 수석 에반젤리스트이자 맥 개발 커뮤니티 관계를 맡고 있었던 가이 가와사키(Guy Kawasaki)의 자리로 잡스가 한 사내를 뒤에 데리고 다가왔었다. 잡스는 가와사키에게, Knoware라는 맥 개발사의 프로그램에 대해 의견을 구하러 왔다고 말했다. 자신은 그 프로그램에 대해 잘 모른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바를 말해 드렸죠. 극도로 부정적이었어요. 말한 뒤, 스티브가 뒤의 사내를 쳐다 보고는, 다시 저를 쳐다 봤습니다. ‘가이, 사실 이 분은 Knoware의 CEO야.’, 이러는 겁니다.”

가와사키는 이 이야기야말로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직원을 곤란하게 만들어버리는” 잡스의 성격을 드러내는 일화라 말한다. “일반적으로 스티브를 말해주는 사례이죠. 스티브의 팬이라면 ‘자질구레한 겉치례를 그가 이렇게 돌파하는군!’이라 말할 테고, 스티브의 팬이 아니라면 사교성이 전혀 없다 말할 겁니다.”

“사람들을 이처럼 대하기는 했지만 훌륭한 인재들을 스티브가 데려와서 일하게 했었죠. 다른 보스들 대부분과는 달리 스티브는 훌륭한 일을 인정할 줄 알았습니다. 직원들이 열심히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두 가지 있어요. 잘하거나, 잘하지 못 할 때를 아는 취향, 그리고 과감하게 말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취향은 없지만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죠.”

“위대한 일을 하고 싶으시다면 애플에서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가가 따라요. 공개적으로 수치를 느껴야 한다는 거죠. HP에서는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HP 방식이 아니에요. 반대로 말하자면, HP에서는 누구 하나 훌륭한 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HP에서는 최고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어디에서 일하시겠습니까? 애플입니까, HP입니까?”

A Little Hand In the Screen

1974년 잡스를 고용했던 아타리(Atari)의 창업자인 놀란 부시넬(Nolan Bushnell)은 잡스의 격렬함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아침에 와 보면, 저녁 내내 일하다가 책상 밑에서 웅크려 누워 있는 스티브를 발견하곤 했었어요.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죠. 그의 성공이 행운이라거나 때와 장소를 잘 만났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지만,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한다면 스스로의 행운을 갖고 정말 멋진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철학적인 관계도 갖곤 했어요. 그는 큰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즐겨 얘기하곤 했습니다. 제품 만들기, 그리고 제품을 언제 시장에 내놓아야 할지가 항상 그의 관심사였어요.”

1980년대 초, 부시넬은 프랑스 파리에 15,000평방피트 짜리 집을 구입하고, 실리콘 밸리 친구들을 모두 집들이 파티에 초대했다. 밴드와 산더미같은 음식, 음료를 준비했고 친구들은 모두 정장을 입고 왔다. 단, 아타리를 떠나 1976년 애플을 창업했던 잡스만은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들어왔다.

부시넬은 파티 다음 날, 파리의 레프트 뱅크(La Rive gauche)에 스티브와 함께 앉아서 파리를 바라 봤다. 그는 커피를, 스티브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창조성의 중요함에 대해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애플 II의 수명이 점점 다 해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애플 III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막 리사 아이디어를 생각하기 시작했었죠. 리사가 곧 매킨토시가 되죠. 우리는 트랙볼과 조이스틱, 마우스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화면 상에 있는 작은 손 아이디어도 얘기했죠. 결국은 마우스 얘기였습니다.”

“사망하기 1년 전에 마지막으로 그를 봤었어요. 매우 말랐지만 전혀 늙어 보이지 않더라구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 이거 이겨낼 거예요.’라 말하더군요.”

A Christmas Story

원래 애플의 오리지날 마케팅 전문가였던 리지스 매케나(Regis McKenna)는 오토바이를 몰고 당시 22살의 잡스를 만나러 갔었다. 그는 잡스와 함께 애플을 어떻게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 것인지를 얘기했었고, 1983년부터 1987년까지 애플 간부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그 후로 둘은 가까운 친구로 지냈었다.

“1998년, 부인과 저는 다섯 대의 아이맥을 손자들 성탄절 선물로 샀었어요. 선물 포장 뜯는 광경을 지켜봤죠. 5살 짜리 손녀딸인 몰리가 자기 아이맥을 열면서 ‘인생 참 좋아’하더라구요. 그런데 불행히도 몰리의 아이맥은 문제를 발생시켰습니다. 몇 시간 쓰고 나니까 디스크 드라이브 문이 열리지 않더라구요. 판매자는 애플 정책 때문에 컴퓨터를 새 컴퓨터로 바꿔주지 못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수리에는 수 주일이 필요하다더군요. 그래서 전 스티브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애플의 아이맥 교환/환불 정책이 어떤지 물어 봤습니다. 보내고 난 뒤 5분도 안 돼서 전화가 울리더라구요. 스티브였습니다. 문제가 무엇이고 판매자가 누구였는지를 묻더니 다시 걸겠다면서 끊더군요. 그랬더니 몇 분 뒤에는 판매자가 매우 미안해 하면서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손녀분을 위해 새 아이맥을 드리겠습니다.’라 말하더군요. 그래서 감사의 이메일을 스티브에게 보냈습니다. 손녀의 성탄절을 행복하게 해 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랬더니 스티브가 즉각적으로 간단한 답 메일을 보냈습니다. 내용은 ‘Ho, ho, ho’였어요.”

매케나는 다른 이야기도 들려 줬다. 1985년 당시 CEO 존 스컬리와 이사진들로부터 축출당한 그 다음 주, 잡스는 매케나에게 다음 단계에 대해 말했었다. “스티브는 자기가 떠난 덕택에 애플이 도움을 받으리라 말했었어요. 새로운 회사가 아마 애플이 사용하고 회사에게 이익이 될 기술을 개발할 수 있으리라더군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우리가 성공적인 제품 라인을 새로 개발하여 애플의 제품 라인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에요. 애플이 우리를 인수하겠지.’ 그 때는 그의 말이 어떻게 정확히 실현될지 그도 예측을 못 했었죠.”

1996년 애플은 잡스의 넥스트를 2억 4,900만 달러에 인수했고 잡스는 애플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미국 기업사상 제일 성공적인 부활을 일으켰다.

A Friend In Need

현재 벤처 투자자인 하이디 로이즌(Heidi Roizen)은 1980년대 맥용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T/Maker의 사장이었다. 그녀는 잡스와 함께 “성격 구축”이라 부르던 경험을 많이 가졌다고 말한다. 다만 개인적인 사례가 한 건 있었다.

“1989년 3월1일이었어요. 스티브가 거론할 일이 있다고 전화를 했었어요. 하지만 스티브가 전화를 하기 직전에, 바로 전 날 저녁 제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었어요. 저는 그 때 파리 출장중이었죠. 그래, 무슨 일인가요라고 스티브에게 묻자 스티브는 ‘도대체 왜 지금 일하고 계십니까? 집에 가셔야죠. 저도 곧 가겠습니다.’라 말하더군요.”

실제로 잡스는 그녀의 집으로 와서 그녀가 2시간 동안 흐느껴 울 동안 바닥에 앉았다. “예. 소파가 있긴 했지만 스티브는 소파에 앉기를 싫어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뭐가 중요하고 뭘 제일 좋아했는지에 대해 말하라 하더군요. 마침 스티브의 어머니도 몇 개월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제 느낌이 어떤지, 뭘 얘기해야 할지 각별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 때 제게 준 위로는 정말 놀라운 일이었어요. 언제나 기억하고 감사해 할 겁니다.”

He Notices Everything

넥스트에서 스티브 잡스를 위해 홍보팀에서 일했던 에밀리 브라워 오차드(Emily Brower Auchard)는 아무리 사소한 디테일이라도 잡스는 “알아차리는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스티브와 언론 인터뷰에 참가해서 노트를 적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 인터뷰 직전, 신발을 서로 다르게 신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아침에 옷을 워낙 빨리 입어서 다른 신발을 신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래서 상사에게 어떻게 할까요라 전화를 하니까 그녀는 반드시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스티브가 못 알아차릴리 없다면서요. 그래서 미친년처럼 스탠포드 몰로 가서는 Nordstrom의 신발을 한 켤레 사갖고 곧바로 넥스트 사무실에 들어갔습니다. 내 생에 제일 빠른 쇼핑 결정이었을 거예요.”

Disarm, Rather Than Charm

구매자를 찾기 위해 노력하던 1989년, 넥스트는 IBM의 OS/2 컴퓨터용으로 넥스트스텝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논의할 회의 일정을 잡았다. 익명을 요구한 당시 넥스트의 한 간부는 넥스트가 이 일이 꼭 이뤄지기 바랬다고 한다. (실제로 IBM은 그 해 말, 6,500만 달러를 들여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라이선스했다.)

양사 간부진이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있던 넥스트의 회의실에 모두 모였고 잡스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잡스는 들어왔고, IBM의 수석대표에게 다가가서 “당신네 인터페이스는 썩었습니다.”라 말했다. 양사 간부진 모두 아연실색했다.

“그가 얼마나 협상을 잘 하는지 알려주는 사례입니다. 욕을 해대면서 사람을 완전히 무장해제시켜버리죠. ‘당신네 제품이 워낙 썩었지만 우리가 해 준다’는 식이에요. 과도하기는 하지만 그는 자기가 원하는 바를 언제나 얻어냈습니다.”

Okay to Lie

1990년대 후반 잡스가 애플에 복귀했을 때 같이 일했던 한 간부의 증언이다. “스티브는 정말, 정말, 정말 1대1 대화에 능숙합니다. 대화를 할 때 전혀 꾸미지를 않거든요. 하지만 방 안에 두 명 이상 있다면 그도 마케팅을 합니다. 꾸몄죠. 가령 나로부터 원하는 바가 뭔가 있다면 그는 언제나 예의 바르고 친절해야 합니다. 애플에 복귀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들이 필요했어요. 애플은 당시 혼란 상태였고, 넥스트는 실패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같이 일할 인재가 필요했어요. 아이포드, 그리고 아이폰으로 성공을 거듭하고 나면서 그는 더 오만해졌습니다. 이전의 스티브죠.”

“뭔가를 하겠다면서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을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그 점을 지적하니까 이렇게 답하더군요. ‘그래, 그래. 알아요. 하지만 마음을 바꿀 필요가 있었지.’ 마음 속으로는 거짓말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Brilliant

애플이 오에스텐을 발표했을 때다. 오에스텐은 맥의 새로운 운영체제로서 이전의 시스템과 연동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개발자들도 애플리케이션을 재작성해야 했다. 그래서 잡스는 어도비에게 제일 잘 팔리는 제품군을 오에스텐으로 포팅해주시라 요청했지만 어도비는 망설였다. 기능 개선도 아니고 시스템 호환성만을 위해 소비자들이 과연 돈을 내려 할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도비는 결국 오에스텐용으로 제품 업데이트를 했지만 잡스는 업데이트의 시기를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한 전직 어도비 간부의 증언이다.

“그는 오에스텐 호환성을 오에스텐이 나오자마자 맞추기 바랬어요. 하지만 어도비가 바람만큼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서 화가 났었습니다.” 어도비가 마침내 오에스텐 버전을 선보였을 때 잡스는 맥월드 이벤트에서 어도비 제품을 소개하겠노라 확신했었다. “실제로 했죠. 어도비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자기 플랫폼 전용으로 나온다는 말이기 때문이었어요.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이 뭔지 그는 정말 잘 알았습니다. 뛰어났죠.”

Untold Stories About Steve Jobs: Friends and Colleagues Share Their Memories – Forbes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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