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시리, 25년의 인연

Spirit of Siri at Apple 25 years ago

WED, JUN 13, 12

월요일 아침, 애플 WWDC 2012 기조연설에서 떠오르는 코메디언 시리는 예언자적인 말로 자신의 행동을 결론지었다.

말씀하실 수 있듯, 제 감정은 아직 코드화되지 않아서 감정적으로 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시리는 분명 아직 진행중이며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마 애플 내에서 iOS의 최신 스타 시리의 기원이 훨씬 오래됐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The Assistant and Assist

거의 30년 전, 일반인에게 친숙한 방식으로 링크화된 데이터를 부드럽게 접속시켜주는 기술을 애플에서 연구하고 있었다.

인도 출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사미르 아로라(Samir Arora)는 당시 하이퍼미디어(hypermedia)라 불렸던 애플리케이션 네비게이션 연구개발에 투입됐었다. 그는 “Information Navigation: The Future of Computing”이라는 백서를 작성했는데, 사실상 당시 CEO 존 스컬리를 위해 일하고 있던 아로라는 미래의 인간-컴퓨터 간 상호작용을 애플식으로 상상한 1987년 “Knowledge Navigator” 비디오를 만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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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에 대한 인식은 25년 전 애플에 분명 뿌리박혀 있던 것이다. 하지만 “Knowledge Navigator” 는 애플이 마지막으로 내놓았던 컨셉 프로토타입 제품일 뿐이었다. 실제로 작동하는 코드는 앞으로 계속 점진적인 발전을 이뤄야 했다.

“Knowledge Navigator,” 이후, 아로라는 애플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작업한다. 그는 HyperCard와 4th Dimension(초창기 GUI-기반 데스크톱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애플리케이션 그룹을 운영했는데 이 그룹은 새로운 고유 프로그래밍 언어, SOLO(Structure of Linked Objects)를 만들어냈다. 휴대기기를 위한 데이터 접속과 네비게이션용 API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1992년, 아로라와 SOLO 그룹은 애플로부터 떨어져나와 애플 캠퍼스 안에 위치한 Rae Technology로 분사했다. 1년 후, Rae Assist라는 최초의 개인정보매니저(PIM)가 나왔다. 4th Dimension DB에 기반하는 Assist는 파워북 사용자를 위해 주소록과 일정 관리, 노트를 하나의 통합 패키지화(주소록과 회사 정보, 일정 등을 자동적으로 링크시켜줬다)시켰다. 2년간 세 가지 버전의 Assist가 나왔지만 Rae는 PIM 사업으로 돈을 벌진 못했다. 그래도 Rae는 데이터베이스-중심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Chevron과 Wells Fargo같은 대기업 고객과 작업을 같이 했었다. 이 때 Rae는 SOLO 프레임웍이 대형 상업용 웹사이트 디자인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SOLO는 데이터 조각들이 데이터베이스 환경에서 contextual inheritance와 네비게이션의 요구사항에 따라야 한다는 개념이다. 비전문가의 단어로 설명하자면, 텍스트와 그래픽, 페이지의 모든 조각을, 아이템을 각각 조직화시키는 그루핑이나 명령에 기반한 암묵적 네비게이션 프레임웍에 심어 놓는다는 의미다.달리 말해서 데이터 객체인 그림은 SOLO 프로그래밍 환경에서 코드 한 줄 없어도 자동적으로 “다음”과 “이전”의 개념을 알고 있다. 즉, 코딩 과정이 단순해진다.

정보와 비지니스 로직 조직(organization) 모델은 이미 클라이언트-소프트웨어용으로 완비되어 있으며, 웹애플리케이션으로 전환시키기는 플랫폼에 따른 코드 재컴파일만 있으면 된다. 동 프로젝트는 4주만에 완성됐고 그 간단성때문에 우리 모두 놀랐다. 크로스-플랫폼 개발에 있어서 우리 기술의 이식성에 중요한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보 조직 모델에 기반한 기술인 SOLO를 갖고, 웹사이트를 구축하기 위한 애플리케이션에 맞춰 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프로토타입을 즉각 개발하였고, 벤처 자금마련을 위한 사업계획도 곧 만들어졌다. 바로 NetObjects의 탄생이다.

Rae는 웹사이트 디자인 소프트웨어 특허를 출원했으며, SOLO 기술 지재권을 NetObjects로 바꾸었다. 자금과 Rae의 핵심팀은 NetObjects으로 나중에 Content Management Systems (CMS)라 불리게 되는 등 화려한 데뷔를 가졌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머지는 상황이 안 좋아졌다. IBM이 80% 지분인 1억 달러를 투자한 뒤 얼마 안 있어서 Rae는 1999년, NASDAQ에 상장된다. IBM에 상당히 의존하던 NetObjects는 이윤을 한 번도 올리지 못했고, 결국 NASDAQ에서 상장폐지되었고, 2001년 IBM은 Rae를 매각했다.

애플 바깥에서 SOLO는 정처 없이 점차 소멸해 나아갔다. Rae Technology는 Venture Capital이 됐고 NetObjects는 결국 사멸됐다.

Flying through WWW

SOLO 그룹이 애플을 떠나 Rae로 간지 3년 밖에 안 지났을 때, 애플 Advanced Technology Group의 연구자인 구하(Ramanathan V. Guha)가 WWW에 맞춰 파일시스템 계층에서 사이트맵에 이르는 구조화된 링크 가능 데이터를 인터랙티브하게 표시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구하는 앨런 케이(Alan Kay)를 위해 일하려고 1994년 애플로 들어오기 앞서서, CycL이라는 지식표현 언어를 연구하고 Babelfish로도 불린 데이터베이스 스키마 매핑툴을 만들었다.

애플에서 구하는 사용자가 “날아다니면서” 볼 수 있는 3D 데이터 표현에 기반한 Project X (나중에는 HotSauce라 불렸다)와 “콘텐트에 대한 넓은 범위의 정보를 표현하는 언어”인 Meta-Content Format (MFC)를 연구했다. 그당시 열린 한 애플 이벤트에서 어떤 에반젤리스트가 HotSauce는 웹의 HTML과 같은 역할을 데이터셋에서 하게 되리라 말했던 점이 기억난다.

Hotsauce

애플은 국제인터넷기술위원회(IETF)에 콘텐트 정의(describing)에 대한 표준으로서 MCF를 제출했으며, HotSauce(맥오에스와 윈도용 브라우저 플러그인으로 나왔다)를 채택한 사람들도 나타났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1997년 애플에 복귀한 이후에 일어난 대청소에서 HotSauce도 살아남지 못했고, 구하는 애플을 떠나 넷스케이프로 향했다. 넷스케이프에서 그는 MCF의 XML 버전을 만들었고 나중에는 RSS 표준의 첫 버전과 함게 RDF (W3C’의 Resource Description Framework)의 아버지가 됐다.

It’s the metadata, stupid!

제일 엉망진창이었다는 1990년대 중반에도 애플은 메타데이터의 중요성과 관계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다.

SOLO는 주수록과 날짜를 서로 연결시킴으로써 사용자의 일정을 합리적으로 만들려고 시도했다. HotSauce는 데이터 아키텍트가 될 필요 없이 필요한 정보를 찾는 즐거움은 물론 효율적으로 메타데이터를 찾을 수 있게 해줬다. “Knowledge Navigator”의 Assistant는 주인에 대한 맥락형 데이터를 충분히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날씨와 특정지역, 개인정보, 기타 관련정보를 갖고 여러 행동을 동시에 실행시키거나 이해, 권장, 가이드, 골라주기, 경고, 찾기의 결론을 추론할 수 있었다.

There is an app for that

10년 후, iOS 플랫폼에서 검색-위주의 광고수입에 대한 구글의 지배권에 맞설 기술이 필요해졌다. 구글 검색에 대한 그대로의 전면전은 애플에게 규모성 있는 검색기술이 없다는 사실을 빼더라도, 어리석을 뿐 아니라 자살행위다. 하지만 그를 위한 앱이 있다. 우리는 그 앱을 시리라 부른다.

Siriold

시리는 자연언어 추상 레이어로서 Nuance 기술을 통해 음성을 인식하고, OpenTable과 Google Maps, MovieTickets, TaxiMagic의 4군데 파트너로부터 주로 정보를 추출한다. 시리는 아이폰용으로 처음 나왔지만 블랙베리와 안드로이드용으로도 나왔었다. 애플은 2010년 4월 28일, 시리를 매입했고 원래의 앱은 2011년 10월 5일 정지시켰다. 현재 시리는 iOS 안에 깊숙히 박혀 있다.

물론 시리 코드와 팀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기관에서 애플로 들어왔다. 시리는 원래 SRI International’의 Artificial Intelligence Center 프로젝트(DAPRA가 자금을 댔다)로서, Personalized Assistant that Learns (PAL) 와 Cognitive Assistant that Learns and Organizes (CALO)였고, 여러 대학에서도 연구를 해왔었다.

애플에 있어서 시리가 흥미로운 점은 음성인식이라거나 브라우저-기반의 검색을 단순히 우회할 수 있다는 기능적인 측면만이 아니다. 구조화되고 링크화된 데이터를 자연언어로 접속한다는 의미론적 관계(semantic relationship)가 중요하다. 규모면에서 SOLO의 재림이고, 음성이라는 변장을 한 HotSauce의 부활이기도 하다. 검색결과에서 구글과 경쟁하자는 것이 아니라, 구글이 맥락적인 감각면에서 만들 수 없던 것을 제공하자이다.

시리는 가령, 구글과는 달리 “부인”이나 “아들” 생일이 뭔지, 뭘 제공하는지를 안다. 몇 번의 추가적인 클릭이 없이도 정확한 답변을 낼 수 있다. 시리는 초창기 세대의 SOLO와 HotSauce가 꿨던 제일 극단적인 이상을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 2년만 지나면 파트너가 계속 제한되어 있다 하더라도 시리는 SOLO와 HotSauce 개발자들이 꿈꿨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시리는 전세계 주요 언어 절대다수를 지역 데이터 제공업자와 연결시켜서 말할줄 안다.

새뮤얼 잭슨(Samuel Jackson) 및 존 말코비치(John Malkovich)와 친숙한 대화를 나누면서 시리는 TV 스타가 됐다. iOS 사용자 대부분은 전부 맞춰진 말이 아니라 시리에게 개성이 있다고 이미들 생각하실 것이다. 실제로 “감정을 코드화”시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하기는 어렵겠다.

Spirit of Siri at Apple 25 years ago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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