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걱정을 멈추고 앱스토어를 사랑하게 됐을까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App Store

By Timothy B. Lee

2010년 초, 아이패드가 나왔을 때 아이패드는 주류 언론으로부터 칭송을 받았지만, 기술 전문가 블로그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Boing Boing의 Cory Doctorow는 아이패드가 “CD-ROM ‘혁명’의 재림같은 느낌이 든다”고 평했고, Princeton 대학교 컴퓨터공학자인 에드 펠텐(Ed Felten)은 아이패드를 디즈니랜드에 비교했다. “가보고는 싶지만 살고싶지는 않은 곳”으로서 말이다. 사실 필자도 아이패드의 폐쇄형 아키텍쳐를 두고, “안전가위를 사용하는 느낌“이라 했었다. 당연히, 칭찬이 아니었다.

당시 우리가 비판을 했던 이유는, 아이폰의 폐쇄형 앱스토어 모델을 그대로 태블릿까지 끌고나왔기 때문이었다. 작고 파워가 적은 휴대기기라면 이런 방식이 괜찮을 수 있지만, 완전한 크기의 컴퓨팅 기기라면 어떠한 소프트웨어이건 언하는 것을 설치할 자유 정도는 있어야 하잖나라는 것이 우리들 생각이었다. 아이패드는 그런 자유를 없애버렸고, 애플의 앱 검토과정을 거친 앱만 돌리게 만들었다.


Anirudh Koul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더 넓은 시장은 우리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애플은 수 천만 대의 아이패드를 판매했으며, 앱스토어 모델 또한 맥으로까지 확장시켰다. (아직(?) 맥 소프트웨어 배포방식의 의무적인 모델로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에서 애플과 경쟁하는 업체들도 이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고유의 스토어 모델을 채택했다. (차이점의 자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후에 논의하겠다.)

본 기사에서 우리는 앱스토어의 부상과 개방형 기술 및 사용자 자유에 앱스토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아본다. 이전까지 존재했던 데스크톱과 웹 소프트웨어의 모델이 가진 약점을 앱스토어는 어떻게 극복해냈을까? 애플과 구글은 서로 어떤 방식으로 앱스토어에 대응하고 있을까? 앱스토어-중심적인 세상에서 혁신과 사용자 자유를 증진시키려면 어떤 원칙이 필요할까?

The case against the app store

하버드 대학교 법대 교수, 조너선 지트레인(Jonathan Zittrain)은 애플의 앱스토어가 기술 플랫폼의 “생식성(generativity)”을 약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예상치 못한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가령 1970년대 TCP/IP 프로토콜을 디자인했던 엔지니어들은 월드와이드웹이 TCP/IP 네트워크를 지배적으로 활용할지 전혀 예측하지 못 했었다. 당연히 스카이프와 유튜브, 혹은 워크래프트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데이터용으로 TCP/IP를 디자인했기 때문에, 그들은 문을 열어둠으로써 인터넷 기능을 확대시켰다. 덕분에 지난 20년간 수많은 이들이 인터넷 데이터를 활용할 기회를 찾아냈다.


ken fager

초창기 PC도 마찬가지의 접근법을 취했다. 애플과 IBM같은 제조업체가 사양을 널리 배포하고 써드파티 개발자들이 자기 머신용 소프트웨어를 작성하도록 독려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개발자들은 컴퓨터 OS 업체의 허가 없이 소비자에게 직접 소프트웨어를 배포할 자유를 누렸다.

아이폰의 철학은 다르다. 2007년 처음 소개됐을 당시 아이폰은 웹앱(Wep apps) 말고는 써드파티 소프트웨어를 전혀 허용치 않았다. 덕분에 지트레인의 은 “생식성” 종말을 경고하는 역할을 맡게 됐었다. 하지만 그 경고는 틀렸다. 애플이 이듬 해 앱스토어를 개장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애플은 아이폰용 소프트웨어에 대한 강력히 통제하고 있었고 그 조건 목록이 길고 복잡하며 계속 변화했다.

  • 애플은 가령 아이폰의 “기존 기능을 그대로 복제(duplicate)”한 앱을 허용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포트캐스팅 앱대안형 웹브라우저, 이메일 클라이언트가 금지였다. 근데 애플은 또한 “이미 앱스토어에 있는 앱을 복제한” 앱, 혹은 “지속적(lasting)인 오락용 가치를 제공하지 않거나 별로 유용하지 않은” 앱도 거절할 수 있었다.
  • 애플은 중대한 기술적 제한도 부과해왔다. 애플은 한때, 네이티브 C-기반의 앱만 받아들였으며, 플래시와 같은 크로스-플랫폼 개발툴의 도움을 얻어 만든 앱의 등록을 거절했다. 지난 해 제한을 좀 풀기는 했지만, 애플은 여전히 실행가능 코드의 다운로드를 실시하는 앱을 금지하고 있다.
  • 애플은 애플과 협력사 사업모델을 강화시키기 위한 제도도 도입한 바 있다. 가령 애플은 모든 인-앱(in-app) 콘텐트 구매가 애플의 지불시스템을 반드시 통과하도록 노력했으며 애플은 그중 30%를 가져갔다. (과거 애플은 아이폰 앱 내부에서 자선기부를 제한시켜서 비난받은 바 있다.) 애플은 또한 AT&T의 광대역 보전을 위해, 광대역을 상당히 많이 점유하는 VoIP비디오 스트리밍, 테더링(tethering) 앱도 지속적으로 막아 왔다.
  • 애플은 순수하게 콘텐트에 기초한 제한도 광범위하게 실시한다. 지난 해 애플은 퓰리처 상을 받은 만화가, 마크 피오리(Mark Fiore)를 한 때 막았다가 마지못해 인정한 적이 있었다. 원래 애플은 피오리의 만화가 “공인을 조롱(ridiculed public figures)”하여 아이폰 개발자 가이드라인을 어겼다는 이유로 등록을 거절했었다. “알코홀 음료나 불법적인 물건(subsutances)의 과도한 소비를 조장(encourage)”하는 앱도 아웃이다. 6월경 애플은 DUI 체크포인트 앱을 거절하기 시작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 성적 콘텐트 또한 또다른 주목을 받았다. 앱스토어 규칙에 따르면 “빈번하게 포르노적인 사용자 제작 콘텐트”를 담고 있는 앱을 포함한 포르노 앱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 규칙을 넓게 해석하고 있는 듯 보인다. 가령 게이 데이팅 앱은 Grindr는 앱스토어 설명에 G-등급(모든 연령층에 적합)에 맞게 해야 한다는 규칙때문에 애플을 비난했었다.

각 규칙에 대해 튼튼한 찬반 논리가 모두 있지만, 어찌 됐건 수 천여 앱 개발자로서는 두통거리일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앱스토어에 등록된 앱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물론 제일브레이크를 제외한다)에서 돌아가기 때문이다. 정말 가치 있는 앱이 거부될 가능성이 존재하며, 승인 과정의 불확실성때문에 애초에 그런 앱을 안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콘텐트-위주의 제한은 생식성을 넘어 표현의 자유 문제까지 거론될 수 있는 사안이다. 만약 iOS가 여러 플랫폼 중 하나라면 포르노 콘텐트를 허용한다거나 미래의 퓰리처 수상자 작업물을 그대로 올려주는 플랫폼으로 이주하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컴퓨터 플랫폼은 으레 승자독식 구조이며, iOS가 계속 지배적인 플랫폼으로 남아 있게 된다면 애플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여 정부가 개입할 수도 있다.

실제로 특히 자유 소프트웨어 커뮤니티 진영에서는 아이패드와 같은 “묶인(tethered)” 기기가 자유를 위협한다고 간주한다. GNU(General Public License)를 만들고 실행한 Free Software Foundation은 iOS 앱스토어의 규칙이 GPL보다 최종사용자에게 훨씬 큰 제한을 놓기 때문에 카피레프트 라이센스와 불합치(incompatible)하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GPL 코드로 만든 소프트웨어는 애플이 정책을 부과하건, 하지 않건 간에 애플 앱스토어를 통해 배포될 수 없다는 의미다. 물론 애플이 그리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동 재단의 창립자인 리차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은 아이패드가 “사악한 제국의 최신 작품”이며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묘사했었다. 물론 과장이지만 스톨만의 표현에 공감한 프로그래머들은 꽤 많다. 생식성만이 아니라 혁신의 속도도 늦춰지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컴퓨팅 기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근본적인 권리가 사용자에게 있다고 보며, 애플이 쌓아 놓은 정원은 자유를 침해한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세상이 지금 바뀌고 있다.

The decline of the PC

(몇 년 전의 필자를 포함하여) 수많은 긱들은 앱스토어 제한에 대한 애플의 기나긴 목록을 보고 앱스토어의 가치보다는 앱스토어의 문제점이 더 많다고 결론내렸다. 다만 전통적이고 개방적인 데스크톱 컴퓨터 방식의 모델은 수 십년간 문제없이 작동해 왔는데, 어째서 휴대폰과 태블릿에 대해서는 자신의 선택대로 프로그램을 돌리고 싶어하지 않아들 할까?

컴퓨팅 산업의 인구구조 변화를 무시하면 그런 인식에 갇혀 있을 수 있다. 데스크톱 소프트웨어는 일반적으로 사용자 시스템에 대한 무제한적인 접근권을 갖고 있다. 즉, 사용자 PC의 보안과 프라이버시, 성능을 타협할 수 있을 결정을 사용자가 내려야 한다. 즉,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자유로이 돌릴 수 있다는 의미의 자유로서, 이 자유는 그만큼의 비용을 동반하는 실수도 저지를 수 있다. 버그가 많은 드라이버라든가 CPU를 낭비하는 DLL 등이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와 스파이웨어도 물론이다.

30년 전, 모든 PC 사용자는 최소한의 전산학 학위, 혹은 주변에 그런 인물이 있다는 전제가 따랐다. 본지의 독자 대부분 또한 과거에 친구나 가족의 컴퓨터 설정을 도왔던 경험을 갖고 계실 것이다. 그러나 저렴해지고 강력해진 1990년대의 컴퓨터는 취미가용 틈새시장 제품에서 중산층 가정의 필수품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모든 컴퓨터 사용자가 컴퓨터광일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PC를 인터넷에 연결시키면서부터 이 문제는 더 절실해졌다. 윈도 사용자들은 도저히 끝나질 않는 악성 소프트웨어 전염에 시달려왔다. 윈도 아키텍쳐 자체가 소프트웨어 설치의 통제 및 업그레이드 결정을 사용자들에게 맡겨버림으로써 발생했던 탓이 크다. 즉,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이 문제에 맞써 싸우기가 힘들었다. 그 결과 수 백만 사용자들이 동 문제에 노출되어 트로이의 목마 숙주로 전락하고, 심지어 기본적인 보안점검도 하지 않은 채 컴퓨터를 사용하기도 했다.

PC 모델은 사용자에게 수많은 밧줄을 줬고 점차 이 밧줄로 스스로를 동여메는 사람들이 자라났다. 뭔가 바뀌어야 했다.

The network is the computer

전통적인 데스크톱 소프트웨어 모델의 약점을 인터넷은 빠르게 숨겨주는 한편, 문제를 피할 대안형 모델을 제공하기도 했다. 웹 자체는 클라이언트-사이드의 코드를 실행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AJAX 프로그래밍 기술의 등장으로 웹의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 웹소프트웨어가 브라우저로 만들어진 샌드박스 안에서 실행되며, (적어도 이론상) 컴퓨터 자체의 보안성이나 안정성을 해칠 수 없게 됐다. 즉, 데스크톱 소프트웨어가 일으킬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에서 해방이라는 의미다.

웹 소프트웨어 모델은 다른 장점도 갖고 있다. 방문할 때마다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받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하위호환성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사라졌다. 또한 지루한 설치과정을 건너 뛸 수도 있기 때문에 사용감도 더 개선됐다.

그러나 웹모델에 한계가 없진 않다. 신뢰받지 못한 코드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웹브라우저는 소프트웨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제한을 강력하게 걸어뒀다. 가령 웹앱은 카메라와 마이크처럼 프라이버시에 민감한 입력기기에 제한적인 접근만 가능하다. 전통적으로 웹앱은 쿠키를 제외하고는 로컬 저장영역과 성능을 떨어뜨릴 수 있는 별도의 추상레이어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비록 그동안 발전이 많았지만 웹앱 대다수는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에 비해 투박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보통 웹앱은 사용자 화면을 다 차지할 수 없으며, 특정 키보드 단축키에 따른 화면 면적만을 차지한다. 또한 웹-기반의 앱을 백그라운드상에서 잘 돌릴 방법도 없다.

브라우저 업체들은 웹기반 소프트웨어의 개선을 느리게 하고 있지만, 자바스크립트의 성능만큼은 그동안비약적으로 개선됐고, 새로운 브라우저들은 저장영역을 제공하기도 한다. 개발자들 역시 데스크톱의 “느낌”을 주는 데에도 신경쓰고 있다. 하지만 웹앱의 기능개선과 악성 소프트웨어로부터의 보호 간에는 본질적인 긴장관계가 있다. 모든 사용자의 필요를 충족시킬 정도로 강력한 소프트웨어는 그 힘으로 사용자에게 피해를 강력하게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You don’t want your phone to be like a PC”

David Geller

애플이 아이폰을 선보였을 때 아이폰은 웹앱만을 허용했었고, 개발자들은 못믿겠다는 반응이었다. 스마트폰(이제는 태블릿도 포함된다)의 CPU와 메모리, 배터리 수명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제한적인 자원을 갖고 최대한의 성능을 뽑아 내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간의 긴밀한 통합이 중요하며, 웹의 샌드박스의 성능은 이미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어서 심각한 상황이었다.

사실 신뢰받지 못하는 앱의 실행을 막기 위해서는 웹앱 자체 기능의 제한이 필요하다. 정말 혁신적인 앱들의 경우 카메라와 마이크, GPS 센서를 사용해야 할 경우가 있는데, 그 뿐만이 아니라 사용자의 주소록과 달력, 그 외 개인데이터도 접근 가능해야 할 때가 있다. 앱도 그러하니 웹앱도 그렇게 허용해주면, 프라이버시의 위험성은 용납할 수 없게 된다.

웹앱은 또한 휴대기기의 제한적인 화면면적과 입력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기도 한다. 애플은 손가락 찍기와 쓸기, 집어서 확대축소하기와 같은 제스쳐 기반의 인상적인 입력기술을 개발했으나, 이런 복잡한 제스쳐를 크로스플랫폼 웹표준으로 바꾸기는 쉽지가 않다.

따라서 웹앱만 내세웠던 애플의 원래 방침이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점은 확실했다. 그렇지만 애플은 데스크톱 소프트웨어 모델을 적용할 경우 휴대기기용으로는 더 악화되리라고 믿었다. 아이폰이 나온지 얼마 안 돼서 스티브 잡스가 말했듯이 말이다. “휴대폰이 PC같아지기를 원하지는 않으시겠죠. 단지 앱 세 개만 읽어들이기 바랬는데 전화 한 번 하고나니까 작동 안하면 안됩니다.”

시스템 안정성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카메라와 마이크, GPS 센서가 달린 휴대폰을 어디에서건 들고 다닌다. 악성 소프트웨어로 전염된 PC 수 백만 대는 이미 두통거리인데, 주머니 안의 휴대폰 수 십억 대가 악성 소프트웨어에 전염됐다면 정말 프라이버시 악몽일 수밖에 없다.

간단히 말해서, 데스크톱 모델은 사용자에게 개별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를 믿으라고 요구하며, 그 개발자가 믿을만한지 판단하지 못할 사용자도 존재한다. 웹은 브라우저 개발자를 제외하면 누구나 믿어야 할 부담을 덜어주지만 기능의 제한이 따른다. 어느 모델도 휴대기기에는 안 맞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애플은 세 번째 선택, 나를 믿으시오를 택했다.

iOS 기기에 돌아갈 수 있는 앱을 선별하는 데에 따르는 단점은 이미 지적했다. 그러나 그 자체도 거대한 장점일 수 있다. 애플의 인간 검토자라면 소프트웨어 샌드박스보다 보안과 프라이버시의 뉘앙스를 더 잘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며, 그에 따라 웹 모델보다 프라이서비에 민감한 입력기기와 사용자 데이터에 대한 접근도 더 확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애플은 “CPU를 독차지하지 말 것”, “써드파티와 민감성 데이터를 공유하지 말 것” 등과 같은 규칙을 집행할 수 있다. 데스크톱이나 웹모델에서는 효과적으로 집행이 안 되는 일이다.

달리 말해서 애플의 정책덕분에 앱시장 진입장벽이 대폭 낮춰졌다. 사용자가 알아서 다 해야할 경우 이들은 전혀 새로운 앱을 사기 꺼려한다. 즉, 대기업 소프트웨어 패키지 구입 쪽으로 시장이 쏠린다는 의미다. 애플이 나머지 자질구레한 검토 등을 다 해주는 덕에, 사용자들은 충동적으로라도 안심하고 앱을 구매할 수 있다. 덕분에 전통적인 데스크톱 앱 시장에서 마케팅에 애를 먹던 소기업들도 마음껏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평범한 사용자의 관점에서 볼 때 PC 소프트웨어 시장은 특별히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양질의 소프트웨어와 저질의 소프트웨어 간의 차이점도 잘 알아보기 힘들다. 즉, 잘 정비된 앱스토어는 컴퓨터를 잘 아는 친지의 도움 없이도 소프트웨어를 사게 만든다. 구입의 자유를 늘려주기 때문이다.

The other guys

어느 척도로 보더라도 애플 앱스토어는 상업적으로 거대한 성공을 거뒀다. 앱스토어에는 약 50만 가지의 앱이 있고 다운로드 횟수는 150억회이다. 따라서 애플 경쟁자들이 자기들 나름의 앱스토어를 만들려고 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도 애플과 대단히 유사하다. 윈도폰 마켓플레이스에 앱을 넣기 위한 길다란 조건을 보시라. 게다가 마켓플레이스는 윈도폰용 앱을 유통시킬 유일한 공식적인 통로이기도 하다.

안드로이드의 앱스토어도 여러모로 iOS 앱스토어와 유사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좀 다르다. 첫째, 구글은 어느 앱을 받아들일지에 대해 그다지 까다롭지(물론 상대적인 관점이다) 않다. 둘째, 안드로이드 마켓 말고도 안드로이드용 앱을 받아 쓸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안드로이드 마켓 앱만이 안드로이드폰에서 돌아갈 테지만, 설정 한 번으로 바뀔 수 있는 일이다. 적절한 체크박스 확인이 이뤄지면 사용자는 자기가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무엇이건 간에 다운로드받아서 실행시킬 수 있다.

악성 소프트웨어 문제가 안 생길 수 없다. McAfee에 따르면, 안드로이드용 악성 소프트웨어가 급속히 늘고 있는 반면, iOS의 악성 소프트웨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채로 남아 있다. 안드로이드폰에 악성 소프트웨어가 들어갈 방법은 적어도 두 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체크박스 확인을 사용자가 하게끔 확신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면 직접적으로 다운로드받아서 실행하는 꼴이다. 다른 하나는 악성 소프트웨어를 안드로이드 마켓이 올려놓는 방법이다. 구글은 앱 승인에 관여하지 않기에 상대적으로 마켓 들어가기가 쉽다.

물론 안드로이드 마켓도 보안을 어느 정도 제공할 수 있으며, 발견되는대로 구글은 그런 소프트웨어를 시장에서 삭제한다. 만약 악성 소프트웨어가 계속 창궐한다면 반-악성소프트웨어 노력도 보강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Generativity is about systems, not devices

사용자에게 무엇이 낫겠는가? 애플의 잠금형일까, 구글의 개방형일까? 소프트웨어에 대한 제한은 기기의 생식성과 사용자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은 그 생각에 확신할 수 없다.

지트레인의 책 리뷰를 보면, 법학교수인 제임스 그리멜만(James Grimmelmann, 그는 종종 본지에 기고한다)과 폴 옴(Paul Ohm)은 생식성이 개별 기기가 아니라 기술 시스템의 자산이라고 지적한다. 가령 브라우저는 그 스스로가 재생산을 특별히 하지 않고, 그저 남들이 만든 웹사이트를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웹은 하나의 플랫폼으로서 극도로 생식성을 지닌다. 무료 웹 호스팅 소프트웨어와 저렴한 호스팅 서비스가 대단히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웹의 생식성은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법적이나 경제적 요소(오픈소스 라이센스, 데이터센터 간의 경쟁)와 더 관련이 있다.

아이패드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아이패드 사용자는 터미널창을 열어서 GCC를 돌릴 수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iOS 플랫폼이 아래로부터의 혁신에 적대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웹으로 볼 때 주안점은 전체적으로 볼 때, 플랫폼에 대한 진입장벽이 얼마나 높으냐이다. 이상적인 상황과는 거리가 멀지만, 제일 강력한 애플 비판가들의 주장만큼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iOS 개발자 프로그램은 매년 99달러이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등록된 개발자는 강력하고 잘 디자인된 개발툴과 풍부한 문서에 접근할 수 있다. 개발툴을 돌리기 위한 맥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애플이 허용한다 하더라도 아이패드 상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iOS 개발에 대한 기술적인 진입장벽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개발자가 앱 작성을 완수한 다음에 보다 심각한 생식성의 문제가 튀어나온다. 이미 특정 앱스토어 규칙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런 제한은 혁신을 방해하리라 으레 짐작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작 애플이 혁신을 방해하는 방법은 앱스토어 제한이 아니라, 앱스토어 규칙에 대한 불확실성이었다. 2009년, 한 앱 개발자가 신빙성 없는 이유로 앱 등록 거절을 받은 후 수 개월을 기다린 끝에, 결국 앱 등록을 포기한 사례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 앱 등록에 좌절한 개발자는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이런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테지만, 2009년 등록문제가 최고조에 달한 후, 불만은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아마 지난 실수로부터 애플이 교훈을 배운 부분도 있지만, 제일 좌절한 개발자들 또한 아예 플랫폼을 바꿔서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반면 구글의 개방형 접근이 사용자에게 이상적일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금까지 악성 소프트웨어는 휴대기기에서 상대적으로 큰 문제가 안 됐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PC와 마찬가지라 말할 수 있겠다. 악성 소프트웨어 문제는 안드로이드가 점차 유명해지고 모바일 악성 소프트웨어 저작자들 또한 자기 기술을 연마할 수록 절대적으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앱 개발자 스스로의 품질 컨트롤의 가치도 무시하면 안 된다. 시장에 저질의 앱이 너무 많아서 사용자가 아예 써드파티 앱을 설치하기 두려워할 정도라면, 관대한 앱스토어 규칙은 개발자에게 도움이 안 된다. 구글의 개방형 접근보다 애플의 강경한 품질 컨트롤이 더 나은 소프트웨어를 계속 낳을지는 두고봐야겠지만, 구글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대처해야 한다.

App store constitutionalism

iOS나 안드로이드 앱스토어 모델 중 어느 것이 더 나으냐 생각한다면, 확실한 사항이 한 가지 있다. 앱스토어 자체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안드로이드와 같은 개방형 플랫폼이라 할지라도 수많은 사용자들은 공식 앱스토어의 잘 방어가 된 정원에서 벗어나려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앱스토어 운영자들이 어쩔 수 없이 강력한 권력을 갖게 될 수밖에 없으며, 이들이 그 권력을 사용자에게 혜택을 주는 쪽으로 구사해야 한다.

사용자의 자유와 생식성에 대해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실용적으로 두 가지 문제 모두 서로 관련성을 갖는다. 사용자 자유를 존중하는 시스템은 제일 생식성이 크게 마련이고,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 또한 지속가능한 인터넷의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가치있는 결과물을 낸 바 있다. 그러므로 생식성 보존과 사용자 자유의 옹호의 목표는 결국 같다.

하지만 사용자 자유에 대한 리차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의 개념과 앱스토어 기반 컴퓨팅 모델을 조화시키기는 어렵다. 스톨만은 저명한 해커로서 자기 컴퓨터에서 돌릴 소프트웨어를 돌릴 수 있는 이상의 인물이기 때문에 앱스토어를 쓸 일이 없다. 그러나 사용자 대부분은 리차드 스톨만이 아니다. 그의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용자들이라면 소프트웨어 선택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어느정도 애플이나 구글같은 식견이 있는 써드파티에게 맡김으로써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렇다면 사용자가 기기에 대한 자신의 권한(authority)을 써드파티에 넘기는 한편, 조금 덜 자립적인 사용자의 정의와 함께 써드파티에게 결정권과 책임을 맡겨도 될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새로운 문제랄 수 있으나 다행히도 서구문명의 새로운 문제랄 것까지는 안 된다. 수 백 년 전, 서구사회는 권한을 써드파티 입법자에게 맡기는 원칙 및 기관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결정에 그들이 책임을 지면서 말이다.

놀랍게도, 이 원칙은 앱스토어 논쟁에 잘 들어맞는다. 자유주의 입헌정부 4 원칙은 앱스토어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Federalism: 탈퇴권(right of exit)은 도를 넘는 입법자에게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민족국가 시대의 시민은 억업적인 정권을 피해 보다 자유로운 정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기술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한 플랫폼에서 다른 플랫폼으로의 이주는 자신의 필요에 더 잘 맞는 플랫폼으로의 이주이다. 당연히 두 경우 모두 탈퇴의 비용은 비싸다. 우리들 대부분은 친구와 가족, 직장, 그 외 고향과 관련된 여러 가지에 묶여 있다. 네트워크 효과와 인적자본도 마찬가지로 기존 플랫폼으로 우리를 묶어둔다. 만약 애플이 어느 개발자의 아이폰용 앱을 거절한다 하더라도, 그 앱을 안드로이드로 재작성하는 비용은 저렴하지 않다.

미국 건국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참신한 해결책을 만들었다. 같은 국가 내에 반-독립적인 주의 시민권을 허용한 것이다. 가령 펜실배니아 주 정권의 정책이 싫다면 나머지 49개 주 어디에서건 살아도 되지만 미국 시민권이 상실되지는 않는 식이다.이러한 각 주의 경쟁적인 “민주주의 실험실”은 결국 시민에게 이익이다.

안드로이드를 오픈소스화시키기로 한 구글의 결정 또한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아마존은 3월 이후 안드로이드용으로 아마존 고유의 앱스토어를 운영해오고 있으며, 9월에는 Kindle Fire로 하드웨어 경쟁에도 돌입했다. Barnes & Noble 또한 안드로이드 기기를 팔고 있으며, 고유의 앱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안드로이드 “국가” 내에, 구글과 아마존, Barnes & Noble과 같은 주권을 가진 “주”가 존재한다. 구글 앱스토어 규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주할 수고를 들이지 않은 채 아마존 앱스토어로 가면 된다. 즉, 자기 앱을 팔기 위해 한 회사에 너무 의존하지 않아도 되므로, 앱 개발자들에게는 상당한 매력이 될 수 있다. 각 안드로이드 업체 역시, 다른 안드로이드-기반 플랫폼으로 쉽게 떠날 수 있는 소비자와 개발자 모두에게 더 강력한 인센티브를 줄 것이다.

Judicial independence: 자유로운 국가 대다수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공정한 형태의 법을 적용하는 사법제도를 갖고 있다. 판사의 공정성은 다른 정부조직과의 구조적/재정적인 독립성으로 보장된다. 그런데 민간 회사도 이런 전략을 택하는 곳이 많다. 가령 사업부와 편집부를 별도로 창설하여 뉴스보도와 광고 간의 이해충돌을 피하는 저명한 뉴스사업자가 많다.

앱스토어를 운영하는 기업들 또한 유사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사용자와 개발자 모두 앱 검토자가 사용자를 위해 검토할 것으로 기대하지, 자신의 권력을 경쟁사에 대한 무기로 휘두르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전략적인” 앱 거절도 단기적으로는 사업적으로 좋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사용자와 개발자들 사이에서 플랫폼의 명성에 먹칠을 할 것이다.

전략적인 앱 거절의 유혹을 막기 위해 앱스토어 검토자는 다른 간부에게 보고를 할 수 있다. 단기적인 이유보다는 사용자의 이익에 더 신경쓰는 간부일 경우 말이다. 그러면 사용자, 특히 개발자에게 장기적인 플랫폼의 건전성에 대한 확신을 더 줄 수 있다.

실제로 구글은 이런 전략모델을 갖고 있다. 구글 검색엔진 부서가 그 예이다. 검색엔진부는 광고판매와 완전히 분리된 조직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검색엔진부에서 대규모 광고주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때도 종종 있다. 단기적으로 구글의 이익에 안 좋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좋은 일이다. 검색품질을 높여서 사용자의 신뢰를 키우기 때문이다.

Transparency: iOS 개발자들이 제기하는 가장 큰 불만이 바로 앱 검토결정에 투명성이 없다는 점이다. 애플은 iOS 개발자용 “가이드라인”에서 부분적인 목록만 제공할 뿐이며, 알려지지 않은 사항이 존재한다. 어느 앱은 승인 받고 어느 앱은 거절되는데, 그 경우가 언제나 확실하지는 않다.

더구나 공개된 가이드라인마저 모호하거나 특정 사항에 대해 침묵을 지킨다면, 어느 규칙이 맞는지에 대해 즉각적인 답변을 받기 힘들어질 수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새로운 앱을 개발하려는 의지가 꺾일 수도 있다.

애플로서 이런 불확실성을 완화시키려면 지난 결정사항은 물론 거절사항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공개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면 유사한 앱을 찾아서 어떤 사항이 검토 과정에서 문제가 됐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Stare decisis: 선례구속의 원칙은 이전 사법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법원칙이다. 영미법 시스템에서 법은 제정된 법규로만이 아니라 선례의 축적으로도 존재하는 부분이 많다. 선례구속의 원칙은 법 시스템의 공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 미래의 사안을 위해 과거의 선례를 따름으로써 법원은 유사한 상황의 당사자에게 역시 유사한 판결을 내릴 수 있으며, 시민 또한 의회가 소송을 벌이지 않더라도 해당 사안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앱스토어에도 선례구속의 원칙을 채택하면 유사한 혜택이 생길 것이다. 애플 앱스토어 검토과정의 임의적이고 예측하기 힘든 성격이야말로 주된 불만사항이다. 선례구속의 원칙을 채택할 경우 그런 두려움을 거의 불식시킬 수 있다.

더구나 투명성과 선례구속의 원칙이 합쳐지면, 일관성 있는 결정에 요구되는 크라우드소싱(crowdsource: 전문가나 아마추어 등 다양한 이들을 참여시킴으로써 그들이 지닌 기술이나 도구를 활용하여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영리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법원에서 소송을 벌일 때 변호사는 해당 변호사의 고객에게 유리한 유사소송을 찾아서 연구한다. 그러면 판사의 임무도 쉬워진다. 관련된 전례를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애플은 개발자에게 과거 유사기능을 가진 앱의 사례를 따라 검토중인 앱이 과거 결정에 따라 일관성있게 검토되리라고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선례구속의 원칙이 절대적인 원칙은 아니다. 지난 법률을 기각시키는 새로운 법률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애플 또한 마음을 바꾸고 선례를 따르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럴 경우는 완전히 새로운 정책을 펼친다거나 새 규칙을 통해 이미 승인된 앱과 기능을 제외시킬 때(grandfather) 정도나 돼야 할 수 있는 노릇이다. 일단은 선례에 구속되도록 취급해야 한다.

App stores in practice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은 사실 좋은 전례라 할 수 있다. 가령 Debian 패키지 매니저는 모든 앱이 무료였기는 해도 본질적으로 초기의 “앱스토어”였다. Ubuntu와 같은 Debian-기반 리눅스 배포본 사용자는 개방적이고 탈집중화된 검토 과정에 따라 리뷰를 통과한 패키지라는 사전인식을 갖고 패키지를 설치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모질라 또한 파이어폭스 애드-온이라 불리는 광범위한 컬렉션을 제공한다. 즉, 검토과정의 개방성이 검토를 더 낫게 만들 수도 있다는 의미다. 관련 커뮤니티가 문제를 발견하여 비일관성을 지적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기 때문이다.

애플과 같은 회사는 어째서 이런 정책을 채택하지 않을까? 단기적인 불이익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애플은 iOS 앱스토어에 대한 통제야말로 주된 전략적 자산이라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투명성 증진은 곤란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고, 이미 업무가 과다한 애플의 앱 검토자들에게 별도의 업무를 내리는 꼴이다.

그렇지만 구글의 경우 검색과 광고 부문이 나뉘어 있어서 얻는 이익이 있으며, 애플도 비슷한 전략을 통해 유사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앱스토어를 보다 투명하고 독립적이면서 예측 가능하게 한다면 플랫폼에 대한 확신도 생겨서 개발자들이 iOS 앱에 더 투자할 것이며, 반독점 우려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앱 검토 과정을 개선하면 추가적인 이익도 생길 것이다. 현대적인 앱스토어에서 공정하고 일관성 있는 결정을 계속 내리기는 어렵다. 외부의 비판이 따가울 수는 있겠지만 비판도 가치 있는 피드백이다. 따라서 공정하고 일관성 있으면서 투명한 앱-검토 절차가 생기면 결과가 더 나아질 것이며, 앱스토어 안에 들어갈 앱의 평균적인 질도 더 올라갈 것이다.

특히 구글에게는 매력적인 선택일 수 있다. 안드로이드용 악성 소프트웨어가 창궐하면서 구글은 안드로이드 앱 감찰에 대한 압박을 한층 더 강하게 받을 테지만, 애플-스타일을 채택할 경우 제일 개방적인 모바일 플랫폼을 운영한다는 주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독립적이고 투명하며 선례를 존중하는 앱 검토 절차를 채택한다면 “사악해지지 말라”는 모토도 지키면서 앱 검토를 보다 공격적으로 하여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Conclusion

앱스토어의 출현은 사실 어디서 많이 봤던 이야기의 재판이라 볼 여지도 있다. 바로 전문화(specialization)다. 기술발전은 일상적인 걱정거리를 줄임으로써 일어나게 마련이다. 초창기 자동차는 너무나 과열이 심했기 때문에 운전자 역시 기계 전문가이어야 했다. 그러나 자동차가 보다 신뢰성을 갖추게 되면서 필요한 지식도 점차 줄어들었고, 오늘날 운전자 대다수는 자동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의 원리를 전혀 알고있지 않다. 그 대신 자동차의 전문 부문은 써드파티 기술자, 즉 자동차 수리 전문가에게 맡긴다.

컴퓨터도 마찬가지이다. 초기 개인용 컴퓨터 사용자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춰야 했지만 컴퓨터 기술이 성숙해질수록 소비자 대부분은 소프트웨어 검토를 신뢰할만한 써드파티에게 맡기기를 원하며, 그 편이 더 자연스럽다.

물론 수동변속기에 고유의 휘발유로 교체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시장이 존재하는 것처럼 한계가 없는 통제를 원하는 시장도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중요한 시장이지만, 장기적으로 그런 파워유저는 시장의 일부분에 국한될 것이다. 대부분은 그저 별다른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자동차와 컴퓨터를 원할 뿐이다.

그런데 소프트웨어에 대한 통제권 위임은 자유의 문제를 야기하지만, 자동차 변속기 통제권의 위임은 자유의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즉, 어떠한 통제권이든 위임해서는 안된다가 정답이 될 수 없다. 결정에 책임이 있는 쪽에 위임을 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정답이다. 물론 힘든 일이 될 것이며 시행착오도 많이 겪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자유와 생식성에 대해 신경을 쓴다면, 시스템의 구축은 우리가 맞이하게 될 도전의 성격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거쳐야 할 첫단계이다.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App Stor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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