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커, 잡스


ANNALS OF TECHNOLOGY

THE TWEAKER

The real genius of Steve Jobs
by Malcolm Gladwell

NOVEMBER 14, 2011

1991년, 아직 신혼이었던 스티브 잡스는 부인과 함께 팔로알토 옛날 구역 쪽의 집으로 이사했다. 잡스는 집의 가구를 들여다 놓을 장소 찾기를 늘상 어려워했었다. 이전에 살던 집에는 매트리스와 탁자, 의자만 있었다. 그는 완벽한 집을 원했고, 이번에야말로 무엇이 완벽할지 알아볼 절호의 기회라 여겼다. 부인과 가족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약간 달랐다. 아이작슨의 매혹적인 전기, “스티브 잡스”를 보면 로렌 파월은 아이작슨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론상의 가구에 대해 우리는 8년간 얘기를 나눴어요. ‘소파의 목적’이 무엇이냐를 두고 수도 없이 많이 스스로 되물어봤죠.”

Jobs’s sensibility was more editorial than inventive. “I’ll know it when I see it,” he said.

하지만 정말 짜증날 정도의 순간은 세탁기를 고를 때였다. 잡스는 유럽제 세탁기가 미제보다 세제와 물을 덜 쓰고 옷을 더 쉽게 빤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유럽제 세탁기는 미국제보다 세탁 시간이 두 배로 더 오래 걸렸다. 무엇을 택해야 할까? 잡스의 설명은 이랬다. “이 세탁기를 구입할 경우의 기회비용이 무엇일지를 함께 고민했습니다. 결국 디자인은 물론 우리 가족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죠. 한 시간 내에 세탁을 하는 편이 좋은지, 한 시간 반만에 하는 편이 좋은지, 혹은 더 오래 걸리더라도 세탁 느낌을 더 신경 쓰는지, 사용하는 물의 양을 우리가 신경 쓰는지를 말입니다. 이 문제만 갖고 저녁 식사를 할 때마다 2주일간 토론을 거쳤어요.”

아이작슨의 전기가 명확하게 해 주는 사항이 한 가지 있다. 스티브 잡스는 복잡하고 진을 빼는 사나이였다. 파월이 아이작슨에게 했던 말이다. “극도로 엉망인 부분이 그의 인생과 성격에 남아 있어요. 그것이 사실이죠. 가감없이 쓰셔야 합니다.” 아이작슨은 실제로 가감없이 잡스에 대해 썼다. 그는 잡스의 커리어에 관련된 모든 이와 대화를 나눴고 20~3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 인물들까지 만나면서 대화를 녹음했다. 우리가 알기로 잡스는 골목대장이었다. 잡스의 한 친구가 아이작슨에게 했던 말이다. “스티브는 상대방의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상대방을 작아지게 만들고 움찔하게 만드는지 정확히 알아내는 묘한 능력을 갖고 있었어요.” 여자친구가 임신했을 때 잡스는 아이가 자신의 아이임을 부정했었고, 장애인용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부하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자기 마음대로 안 될 때는 아이처럼 눈물을 흘렸으며, 한 시간에 100마일씩 달리다가 제지를 받았던 잡스는 경찰이 딱지를 너무 오랫동안 끊는다고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댄 다음, 다시 한 시간에 100마일씩 달리기도 했다. 식당에서 음식을 세 번 물리기도 했던 잡스는 언론 인터뷰를 위해 저녁 10시에 도착한 뉴욕의 호텔에 있던 피아노 위치를 바꾸고 딸기와 꽃이 죄다 잘못됐으니 캘러 꽃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원하는 꽃을 한밤중에 들고 들어오자, 잡스는 그녀에게 이번에는 옷이 “메스껍다”고 말했다.) 아이작슨은 1980년대 후반 잡스가 넥스트를 창립후 지은 공장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기계와 로봇은 그가 고안한 색상에 따라 다시 칠해졌다. 벽은 매킨토시 공장에서처럼 박물관같은 하얀색이었으며, 2만 불짜리 가죽 의자와 별도로 만든 계단이 들어 있었다… 그는 165 피트 짜리 제조설비라인이 서킷보드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여서 조립이 가능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방문객이 갤러리를 보는 것처럼 공장을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작슨은 실리콘밸리에서 잡스의 변변찮은 출생과 초창기에 애플로 거둔 성공, 그리고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고마는 굴욕적인 축출로 시작하고는, 픽사의 위대한 승리와 애플의 부활을 다뤘다. 90년대 후반 애플로 복귀한 이후, 잡스는 아마 더 영리해지고 더 친절해지지 않았을까? 자연스러운 기대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생의 마지막 순간 병원에서까지 그는 67명의 간호사들 중에 자기가 좋아할 만한 세 명을 골라냈다. “한 번은 그에게 진정제를 투여한 후에야 심폐담당자가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려 노력했었다.”

잡스는 마스크를 벗어던지고는 디자인이 싫다면서 쓰기를 거부했다. 거의 말할 수가 없는 상태였지만 그는 서로 다른 다섯 개의 마스크를 가져와보면 자기가 하나를 택하겠다고 명령을 내렸다… 그는 손가락에 걸어둔 산소 모니터도 싫어했다. 그는 이 모니터가 너무나 못생기고 복잡하다고 말했다.

업혁명 최대의 수수께끼가 있다. 어째서 프랑스나 독일이 아닌 영국에서 일어났을까이다. 여러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가령 영국에는 석탄이 충분히 있었고 좋은 특허 시스템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노동비가 높았기 때문에 인건비를 줄이려는 혁신이 생길 여지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올해 초, 경제학자인 랄프 마이젠잘(Ralf Meisenzahl)과 조엘 모키르(Joel Mokyr)가 쓴 논문에 따르면 다른 설명도 있다. 특히 영국이 가진 인적자원을, 그들은 “트위커(tweaker)”라 불렀다. 그들은 숙련된 엔지니어와 기능인이 경쟁국보다 월등이 많았기 때문에 영국이 산업혁명을 지배했다고 주장한다. 지략과 창조성을 모두 갖춘 인물들이 산업시대의 상징적인 발명을 하여 변경시키고(tweak) 개선했으며 완벽하게 만들어서 제대로 돌아가게 했다.

1779년, 랭카셔의 은퇴한 천재, 새뮤얼 크롬턴(Samuel Crompton)은 뮬 정방기(spinning mule)를 발명하여 면화산업의 기계화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영국의 진짜 장점은 뮬 정방기에 금속제 바퀴를 추가시킨 호위치(Horwich)의 헨리 스톤스(Henry Stones)라 할 수 있었다. 돌아가는 바퀴의 가속과 감속을 부드럽게 할 방법을 고안한 토팅턴(Tottington)의 제임스 하그리브스(James Hargreaves), 수력을 덧붙인 글라스고(Glasgow)의 윌리엄 켈리(William Kelly), 바퀴로 가는 실을 뽑아낸 만체스터(Manchester)의 존 케네디(John Kennedy),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시 만체스터 출신으로서 트위커 중의 트위커랄 수 있는 정밀머신 툴의 마스터, 리차드 로버츠(Richard Roberts)를 뺄 수 없다. 로버츠는 “자동” 정방기를 만들어냈다. 크롬턴의 원작에 비해 정확하면서 속도가 빠르고 신뢰성 있는 정방기였다. 마이젠잘과 모키르에 따르면 이런 사람들이 “필요한 발명을 해내서 고도의 생산성과 보수를 만들어낼 대규모 급의 발명도 이뤄냈다”고 썼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는 새뮤얼 크롬턴일까, 리차드 로버츠일까? 지난 달 잡스의 사망 이후 추도사들을 보면 잡스를 크게 생각하는 비전가이자 발명가로 언급하는 글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작슨의 전기를 보면, 잡스는 트위커 그 이상이었다. 그는 1979년 그 유명한 제록스 PARC 방문 이후 제록스 엔지니어들로부터 마우스와 화면상의 아이콘이라는 매킨토시의 특성을 빌려왔다. 최초의 휴대용 디지탈 뮤직 플레이어는 1996년에 나왔고, 애플 아이포드는 2001년에 첫 등장을 했다. 기존 뮤직플레이어가 “정말 형편 없었기” 때문에 내놓기로 마음 먹어서다. 스마트폰 또한 1990년대에 이미 나오기 시작했고 아이폰은 10년도 더 후인 2007년에 나왔다. 아이작슨에 따르면, “잡스는 휴대폰에 대해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예전의 뮤직플레이어가 그러했듯, 모조리 다 역겨웠기 때문이다.” 아이패드의 아이디어도 원래는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가 착안한 아이디어에서 나왔었다. 이 엔지니어는 잡스 가족의 친구와 결혼했었고, 50세 생일날 잡스 집으로 초대받아 들어왔다고 한다.

이 태블릿 PC 소프트웨어로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든 노트북 컴퓨터를 없애고 세상을 완전히 변화시키리라고 얼마나 집적댔는지 모르겠습니다. 애플이 앞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를 라이센스받아야 한다나요. 하지만 그의 태블릿은 전적으로 틀렸어요. 스타일러스가 있더군요. 스타일러스가 있는 한 죽은 겁니다. 저녁 내내 한 10번은 말했을 겁니다. 너무 지겨워서 집에 와서는 “엿먹으라고 해, 태블릿이 어때야 하는지 보여주겠어.”라 했죠.

애플 내부에서도 잡스는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를 자기 것인양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아이맥과 아이포드, 아이폰의 디자이너였던 조너선 아이브는 아이작슨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 아이디어를 만드는 과정중에 보고는 ‘별로 안 좋군, 안 좋아. 저게 좋군.” 식으로 말할 겁니다. 그리고나서 저를 포함해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서 그게 자기 아이디어라는듯 얘기하더군요.”

잡스의 감각은 발명가적(inventive)이라기보다는 편집가적(editorial)이다. 그는 뭔가 아이디어를 봤을 때(가령 스타일러스가 붙은 태블릿), 바로 그 아이디어를 개선시켜버리는 재능을 갖고 있다. 아이패드의 첫 번째 광고를 보고 잡스는 카피라이터인 제임스 빈센트(James Vincent)를 일부러 수소문 끝에 찾아내서 직접 말해줬다. “당신의 광고는 형편 없소.”

빈센트는 날카롭게 되물었다. “아니, 그럼 뭘 원하시는데요? 뭘 원하시는지 당신도 제게 말할 수가 없잖아요?”

“모르지. 일단 새 광고를 가져와 봐요. 이제까지 보여준 것은 전혀 맞지가 않았습니다.”

빈센트가 다시 한 번 쏘아붙이자 잡스는 분통을 터뜨렸다. 빈센트의 말이다. “제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어요.” 그 스스로도 격정적이었던 빈센트는 잡스에 지지 않았고, 싸움은 격해졌다. 그런데 빈센트가 “원하는 걸 말씀하시란 말이에요!”라고 고함을 지르자 잡스는 물러섰다.

“일단 다른 걸 가져 와봐요. 그럼 알게 될 테니.”

그럼 알게 될 테니. 이것이 자신의 완벽주의로 끝을 볼 때까지 잡스의 신조였다. 소프트웨어 개발팀이 오리지날 매킨토시용 소프트웨어를 그에게 보여줬을 때, 잡스는 타이틀바(창과 문서의 최상단에 있는 헤더(header)를 의미한다)를 바라봤었다. 팀은 그가 타이틀바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잡스는 개발자들에게 다른 버전을 가져와 보라고 강요했다. 그렇게 해서 20번을 반복하였는데, 매번 다시 가져갈 때마다 대단히 사소한 수정(tweak)을 계속 했다. 결국 개발자들이 저항하자 잡스는 소리를 질렀다. “매일 바라본다고 상상할 수 있겠소? 이건 작은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바르게 해 놓아야 할 일이에요.”

그 유명한 애플의 “Think Different” 광고캠페인은 TBWA\Chiat\Day의 잡스 광고팀에서 나왔지만, 잡스는 올바른 슬로건이 나올 때까지 계속 슬로건을 되풀이해서 가져오라고 했다.

그들은 문법문제를 거론했다. 만약 “다르다”가 동사 “생각하다”를 수정할 목적이라면 부사가 돼야 한다. 즉, “think differently”여야 했다. 그러나 잡스는 명사로도 쓰이는 “different”를 고집했다. “think victory”나 “think beauty”처럼 “different”를 써야 한다는 말이었다. 또한 일상적으로 “think big”을 사용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잡스의 훗날 설명에 따르면 이렇다. “광고를 올리기 전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두고 씨름했었죠. 우리가 말하려는 바를 생각해보면, 그건 문법적인 문제였어요. 똑같은 것을 생각지 말라, 씽크 디퍼런트였죠. 좀 다르게, 많이 다르게 생각하라. 다르게 생각하라였습니다. 부사형의 ‘Think differently’는 제게 안 맞는 의미였습니다.”

마이젠잘과 모키르의 주장은 이런 종류의 트위킹이 진보에 본질적이라는 의미다. 제임스 와트(James Watt)는 현대적인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이전까지 존재했던 엔진의 효율성을 두 배로 늘렸다. 하지만 트위커들은 증기기관의 효율성 또한 네 배로 더 늘렸다. 새뮤얼 크롬턴은 마이젠잘과 모키르가 “아마도 제일 생산적인 발명”이라 일컫는 산업혁명의 주인공이랄 수 있지만, 그의 진가는 실제로 몇 년 후에 발생한다. 면화 노동자들의 파업이 생길 때였다. 공장주들은 기존 노동자를 비숙련 노동자로 대체할 방법을 찾고 있었고, 결국 자동화된 방적기, 그러니까 방적공을 요구하지 않는 방적기를 들이려 했다. 누가 이 문제를 해결했을까? 크롬턴이 아니었다. 크롬턴은 대중의 관심때문에 홀로 있을 시간이 없다며 후회하던, 야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인내심과 천재성의 과실을 얻기”는 했지만 주인공은 트위커 중의 트위커인 리차드 로버츠였다. 1825년 프로토타입을 만든 로버츠는 1830년에 훨씬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오래지 않아 방적기 회전축은 이제 400개에서 1,000개로 늘어났다. 그는 설계도 한 장으로 세상을 다시 만들어낸 것이다. 트위커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서 그들을 거의 완벽한 솔루션이 될 때까지 밀어부친다. 전혀 폄하되선 안 될 일이다.

잡스의 친구인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은 개인용 제트키를 갖고 있는데 내부 인테리어를 상당히 신경써서 디자인했다. 잡스는 어느 날인가 자기도 비행기를 갖고자 했고, 엘리슨의 디자인을 연구했다. 엘리슨과 동일한 제트기였지만 잡스는 친구의 디자인을 다시 만들었다. 객실간의 문도 똑같고, 구조변경도 엘리슨과 동일하여 실질적으로는 완전히 다시 만든 디자인이랄 수 없었다. 그런데 엘리슨의 비행기에는 “객실 문에 열림과 닫힘 버튼이 각각 놓여 있었지만, 잡스는 버튼을 하나의 스위치 형태로 바꾸기를 고집했다. 또한 그는 버튼의 윤이 나는 스테인레스 스틸을 좋아하지 않아서 브러쉬드 메탈로 버튼을 바꾸었다.” 엘리슨의 디자이너를 고용한 잡스는 “곧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다.”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심술과 자기도취증, 무례함을 통해 완벽을 추구한 궤벽이야말로 잡스 인생의 업적이기 때문이다. 엘리슨의 말이다. “그의 비행기와 제 것을 봤더니, 잡스가 해 놓은 모든 것이 더 낫더라구요.”

글이 개발한 운영체제로 돌아가는 안드로이드 폰이 나타났을 때, 아이작슨은 제일 크게 분노한 스티브 잡스의 모습을 보았다. 잡스는 터치스크린과 아이콘을 가진 안드로이드 휴대폰이 아이폰을 베꼈다고 간주하여 고발하기로 했다. 잡스가 아이작슨에게 한 말이다.

우리의 소송은 이겁니다. “구글, 빌어먹을 자식이 우리 아이폰을, 그것도 대대적으로 베꼈다.” 정말 큰 도적질이에요. 필요하다면 죽을 때까지 애플의 현금 400억 달러를 다 쓰더라도 바로잡겠습니다. 안드로이드는 훔친 제품이에요. 파괴시킬 겁니다. 수소폭탄 전쟁이라도 일으킬 것이에요. 자기들에게 죄가 있음을 알고 있으니 당연히 두렵겠죠. 검색만 빼면 구글 제품들, 안드로이드와 구글 Docs는 쓰레기(****)입니다.

1980년대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를 선보였을 때에도 마찬가지의 반응이었다. 윈도는 매킨토시처럼 아이콘과 마우스를 사용하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었다. 잡스는 너무나 분노하여 게이츠를 애플 본부로 소환시켰다. 아이작슨의 글이다. “그들은 잡스의 회의실에서 만났고 게이츠 주변을 10여 명의 애플 직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잡스의 공격을 보고 싶어했다. 역시나 잡스였다. 그는 호통쳤다. ‘당신은 우리를 베꼈어! 당신을 믿었는데 이제와서 우리를 훔쳐가다니!’

게이츠는 차분하게 잡스를 바라봤다. 윈도우와 아이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모두들 알고 있었다. 게이츠가 말을 시작했다. ‘글쎄요, 스티브. 사물을 바라보는데에는 한 가지 이상의 관점이 있어요. 우리 모두 제록스라 불리는 부자 이웃집을 턴 것 아닐까요? 텔레비전 셋트를 훔치려고 제록스네 집을 들어갔더니 이미 당신이 훔쳐갔더라 이거죠.'”

잡스는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가져다가 바꾸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남이 자기처럼 하는 것을 싫어했다. 마음 속으로 자기가 한 것은 특별하다 여겼을 것이다. 잡스는 펩시콜라 사장이었던 존 스컬리를 애플 CEO로 영입하기 위해 1983년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평생 설탕물이나 팔고 싶으시오, 아니면 세상을 바꿔보시겠소?” 잡스가 전기집필을 위해 아이작슨에게 처음 접촉했을 때, 아이작슨은 자기가 벤자민 프랭클린과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쓴 적이 있음을 알고 있는지 잡스에게 (“반쯤 농담삼아”) 물어봤다. “혹시 당신 자신을 그 두 인물의 자연스러운 계승자로 여기시나요?” 애플 소프트웨어 아키텍쳐는 언제나 닫혀 있으며, 잡스는 아이폰과 아이포드, 아이패드 또한 개방시키려 하지 않는다. 자기 눈에 그 제품들은 완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세대 최대의 트위커는 트위크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빌 게이츠 얘기다. 잡스의 동년배들 중에서도 빌 게이츠만이 잡스를 성나게 한 이유일 것이다. 게이츠는 완벽주의의 낭만성에 저항했다. 아이작슨이 게이츠에 대해 연이어 물어봐서인지, 잡스는 답할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빌에게는 상상력이 없어요. 아무 것도 발명하지 않았죠. 그러니 기술보다는 자선사업이 더 편안한 모양입니다. 그는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를 뻔뻔스럽게 베끼기만 했죠.”

600 페이지 말미에 가까워진다면 잡스는 역시나 잡스라 여기게 될 것이다. 통찰력과 잔인함, 망상이 한데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가 다음 세상을 관장하기보다는 말라리아 퇴치에 더 관심이 많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상상력 부족의 증거가 되진 못한다. 게이츠가 벌이고 있는 규모의 자선사업은 그 자체로 상상력을 원대하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잡스의 비전과 뛰어남, 그리고 완벽주의는 그 자체로 폭이 좁다. 그는 젊은이일 때 정복했던 영역을 끝없이 되풀이해가면서 마지막까지 트윅을 거듭했었다.

암이 그의 신체를 정복하여 사망에 이르기 직전, 그의 위대한 열정은 애플의 새로운 본사빌딩 디자인에 있었다. 잡스는 디테일에 자신을 내던졌다. 아이작슨의 글이다. “그는 계속 새로운 컨셉을 제시했으며, 종종 완전히 다른 모양을 거론하기도 하면서 다시 일을 시작하여 더 많은 대안을 내놓곤 했다.” 특히 그는 유리에 집착하여, 애플 소매점에 있는 거대 판유리로부터 배운 것을 확장시키고 싶어했었다. “단순히 판유리를 세우지 않고 곡면화시키거나 매끄럽게 결합시켜야 한다… 계획상의 중앙 뜰은 보통의 도시 블럭 세 군데를 합친 것 이상, 혹은 축구장 길이와 맞먹는 크기이며, 그는 내게 로마의 성베드로 광장과 함께 보여줬다.” 건축가들은 창을 열 수 있게 하자고 했지만 잡스는 안 된다고 했다. “잡스는 뭔가 열어볼 수 있게 하는 아이디어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 엉망이 되기 때문’이었다.”

ILLUSTRATION: ANDRÉ CARRILHO

Steve Jobs’s Real Genius : The New Yorker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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