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와의 25년

Steve Jobs and Me: A journalist reminisces

October 25, 2011: 5:00 AM ET

Fortune contributor Brent Schlender shares some of the stories and personal photographs he collected during more than two decades as Steve Jobs’ chronicler and confidant.

FORTUNE —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커리어에 대해 심도깊은 기사를 쓴 기자 대부분은 내가 지금 현대의 신화를 만들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피할 수가 없다. 잡스가 조지 클루니만큼이나 카리스마 있고, 마키아벨리 만큼이나 교묘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도와준 덕에 생겨난 잡스의 전설은 잡스의 자아 이상으로 수많은 목적을 위해 활용됐다. 잡스는 자신의 상상 하에서 태어난 놀라운 기술을 시장에 선보일 줄 알았던 강력한 힘이었으며, 자기 세대의 특징인 디지탈 혁명을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했다.


Jobs’ scribe: Schlender (left) interviewing Jobs at a Next company picnic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브도 역시 인간이었다. 그의 인생은 불화와 모순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자랑스럽게 권위를 조롱했지만 스스로의 원칙은 그 한계까지 준수했었다. 멍청한 사람들을 못참았던 그였지만 꼭 필요한 인물이 있으면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기도 했던 잡스는 궁극의 나노(nano)-매니저였다. 그의 도움 없이는 완전히 인식하기 힘든 큰 그림을 그러낼 줄 아는 인물이 잡스였다.

최고로 좋은 것 외에는 절대 합의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걸프스트림 제트기를 대단히 사랑했던 잡스는 뜻밖에도 결혼에 이어 아버지가 된 이후 평범한 생활을 영위했다. 극도로 사생활을 지켰지만 외부 시선으로부터 숨겼을 뿐, 그는 자신의 건강을 우리들 대부분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결국 그는 사망하고말았다. 최후의 아이러니는, 여러모로 봤을 때 그가 죽었을 때가 돼서야 그의 능력이 마침내 최고조에 달했다는 점이다. 그렇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계속 좀 냉담하게 대했지만, 우리들 저널리스트는 그의 명성과 카리스마를 좇을 수 있는대로 좇았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갔고, 앞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스티브는 자기 스스로를 다 소모했다.

외부인으로서 가끔 초대받은 내부인도 됐던 필자는 스티브와 함께 25년을 같이 일을 했었다. 개인적인 신뢰를 깬다거나 전형적인 분석적 사업이야기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절대로 말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다. 스티브에게 단축된 형태가 될 수밖에 없을 텐데, 스티브의 신화에 대해 3차원의 깊은 관측과 경험이라 할 수 있을 이야기들이다.

그동안 실제로 잡스의 전설이 너무나 전형화될 때가 많았다. 게다가 여러모로 잡스 스스로가 그런 전형화된 전설을 좋아하기도 했다. 가령 잡스는 컴퓨터 마우스이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혹은 픽사 영화이건 상관 없이 내세우기로 마음먹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그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재주를 갖고 있다(수많은 일화가 있다). 그러한 재주를 묘사하기 위한 적절하고 독창적인 방법을 찾아내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초창기 스티브가 아직 20대일 시절, 한 엔지니어가 잡스는 걸어다니고 말도 할 줄 아는 “현실 왜곡의 장”이라 이름붙였을 때 그 비유는 (잡스가 대단히 혐오하는 종류이지만) 고착화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뻔뻔하다(brash)”라든가 “변덕스럽다(mercurial)”는 성격은 악명높은 잡스의 까칠한 성격을 묘사할 때 천편일률적으로 쓰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현실은 달랐다. 그의 재능과 특이한 성격은 너무나 다양하고 보완적이면서 평범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의 천재성을 설명하고 묘사하는 방식 또한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 또한 큰 재미랄 수 있겠는데, 로스 페로(Ross Perot)는 잡스를 “이제까지 만나본 사람 중에 제일 터무니없는(damnedest) 사람”이라 말한 적 있고, 비지니스계의 구루인 짐 콜린스(Jim Collins)는 잡스를 “사업계의 베토벤”으로 비유했으며,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은 잡스를 “우리시대의 피카소”라 칭했다.

여러가지 Fortune 표지기사에서 보면, 필자는 잡스를 애플의 “수석 미학 책임자(chief esthetic officer)”이자 픽사의 “오리지날 가상현실 기획단장(original impresario of virtual reality)”이라 불렀었다. 2000년대 초 애플의 실적이 부진했을 당시(아이포드가 애플을 급성장시키기 전이다), 필자는 그를 “가라앉고 있는 왕국의 늙은 왕자”라 조롱하기도 했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그 “뻔뻔스럽고 변덕스러우신” 잡스는 곧바로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그 기사가 얼마나 신나게 웃기던지 얘기해 줬었다. 농담이 아니었다.


1999 – Product review: Jobs scrutinizes the “dock” of icons that appears on the bottom of the screen of Apple’s OS X user interface with an anxious team of engineers, designers, and marketers.

잡스를 처음 만났을 때는 1987년 2월이었다. 당시 필자는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술부문 수석기자를 맡아서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이리어로 이사한지 얼마 안 됐었다. 당시 잡스는 1985년 애플에서 축출된 이후 “야인생활”을 하던 시기였다. 잡스는 애플에서 나온지 얼마 안 돼서 애플 동료들을 이끌고 새로운 회사, 넥스트를 창립했고, 1986년에는 천만 달러를 들여서 디지탈 애니메이션 실험실 수준의 제작사, 나중에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불리게 될 회사를 조지 루카스 감독으로부터 인수했다. 10년 후, 스티브를 정말로 억만장자로 만들어준 존재가 바로 픽사였다. 픽사는 1995년 주식상장을 했고, 2006년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자 잡스는 디즈니 최대 주주인 동시에 이사가 되어 수 십억 달러의 지분을 갖는다.

잡스는 넥스트와 픽사를 홍보하고 사업가이자 기술산업의 현자로 이미지를 다시 세우기 위해 대중의 주목을 계속 받기 원했기 때문에, 우리와의 관계도 그가 신경을 좀 썼다. 그는 물론 필자를 알고 있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필자가 애플을 다뤘기 때문이다. 만약 “기밀정보(intelligence)”를 교환한다거나 실제로 쿠퍼티노에서 무슨 드라마가 일어나고 있는지 내막을 알고싶다고 했다면 잡스는 기꺼이 필자에게 관련 사실을 알려줬을 것이다.

필자는 1989년 포천지로 옮기기 전, 넥스트와 픽사 두 회사에 관련한 기사를 여러 편 작성했고, 잡스도 필자와 개인적으로 어울린 듯 했었다. 어울린 듯 했다고 한 이유는, 일단 잡스와 나이가 같으면서 비슷한 청소년기를 겪었고 책과 영화, 음악에 대해 상당히 비슷한 취향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서로의 가장 친한 고등학교 동창 친구 중 하나가, 잡스의 소설가 여동생, 모나 심슨과 거의 결혼할 뻔 한 적도 있었다는 사실도 나중에 밝혀졌다. 이 얼마나 작은 세상이란 말인가. (어린 시절 입양됐던 스티브는 필자가 그를 처음 만났을 당시, 자기 여동생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있던 와중이었다.)

아무튼 필자는 언제나 기자였고, 스티브는 그 기사의 원천이자 대상이었다. 필자는 잉크로 얼룩진 기자놈이었고 그는 록스타였다. 뭣보다도 그는 자기 이야기를 최고의, 최대의 독자들에게 전달되기 바랬으며, 필자는 그럴 능력이 있었다. 더 큰 뭔가를 위해 제일 앞좌석을 앉고 싶어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후 20년간 우리의 사교적인, 개인적인 만남을 통한 목적의 달성은 저널리즘적인 관계라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관계가 항상 그에게 좋지만은 않았다.


2001 – Front-row seat to history: Schlender captured on camera the iPod launch event (left and center); nine months earlier he traveled to Macworld Toyko and watched Jobs (right) prep for his keynote.

스티브와의 만남은 주로 기조연설의 스티브가 아닌, 그의 진솔한 모습에서 사업과 기술, 예술과 미디어, 정치, 세계의 주요 사건, 심지어 그의 사생활에 대한 의견을 빼내기 위함이었다. 그의 분석은 직설적이면서도 날카로웠다. 그의 깊은 통찰력과 식견을 알기 시작하면, 퍼포먼스에 대한 그의 애호 또한 그의 믿을 수 없으리만치 빠른 두뇌를 가리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기사와 관계 없이 그와 나눴던 시간을 돌이켜보면, 정말 배울 점이 많았다. 그래서 뉴욕에 있는 본지 수석 편집자들마저도 일부러 애플까지 와서 필자와 잡스의 인터뷰를 따라붙곤 했었다.

가령 현재 타임지의 편집장으로 있는 존 휴이(John Huey)는 2003년, 쿠퍼티노 애플 본사의 필자와 합류한 적이 있었다. 기사 인터뷰용이 아니라 당시 AOL 타임워너라 알려져 있던 모회사와의 관계를 어떻게 하면 정리할 수 있을지 잡스에게서 조언을 듣기 위해 필자를 따라온 것이었다. 스티브는 못믿겠다는듯 우리를 보고는 이건 시간낭비라며 투덜거렸다. 그 후 잡스는 20분간 AOL의 전화모뎀 인터넷 서비스 사업이 얼마나 뒤떨어졌는지, AOL때문에 타임워너의 훨씬 유망한 초고속 인터넷 발전을 어떻게 발목잡고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설명해줬다. 그리고나서 그는 온라인 콘텐트를 위한 AOL의 “엽서생산 가치(postcard production values)”가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졌는지”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자 휴이는, “말씀을 들으니, 고칠 수가 없다고 보시는 모양인데요.”라 말했다. 그러자 잡스는 이런 말을 했다. “그런 말이 아니오. 어떻게 고칠지는 알고 있어요. 제가 흥미가 없을 뿐입니다.” 그러고나서 그는 칠판으로 가서 15분동안 AOL을 보다 미디어 기업으로 탈바꿈시킬만한 전략을 도표로 그려냈다. (사실 AOL은 결국 어느정도 잡스의 전략을 따르게 되고, 수 년 후, 타임워너를 분리시키면서 다소간 성공을 거뒀다.)

잡스는 마커의 뚜껑을 닫으며 다시 결론을 내렸다. “저라면 이렇게 할 겁니다. 하지만 다시 말씀드리건데, 저는 흥미가 없어요.”


2003 – Cover shoot: When photographer Michael O’Neill shot singer Sheryl Crow and Jobs for a Fortune cover, Schlender was there with a digital camera of his own.

스티브 자신이 추진하는 회의가 정말 재미날 때가 종종 있었다. 보통은 스티브가 어느 날 갑자기 대단히 특별한 목적을 갖고 필자의 집으로 전화를 건다. 1995년 5월의 한 토요일 아침, 그는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초등학교생 딸 둘을 데리고 팔로알토의 자기 집으로 곧바로 올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리드(스티브의 아들 이름)를 오늘 아침 보고 있었는데, 뭔가 멋진 볼거리가 있어요”였다. 우리가 도착하자, 세 살바기였던 리드가 부엌문 앞에서 우리를 반겨줬다. 그런데 리드는 파랗고 빨간 실크 스카프를 걸치고서 “내가 마녀다!”하고 날카롭게 외치고 있었다.

팝콘을 좀 만들고 아이들에게 주스를 준 다음, 스티브는 우리에게 VHS 카세트를 하나 보여줬다. 화면에는 오프닝 크레디트를 시늉하고 있지만 읽기 어려운 연필로 그린 스토리보드가 나오며 음악이 흘렀다. 그러다가 갑자기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애니메이션이 풀컬러로 나타났고 세 명의 아이들은 애니메이션이 영화 절반도 안 됐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넋을 잃고 있었다. 사운드트랙은 끝났지만, 전체 화면은 아직 부분적으로만 애니메이션화 돼 있거나 스토리보드의 형태였다.

나중에 보니 그 화면은 토이스토리의 초기 컷이었다. 토이스토리는 6개월 후, 프리미어를 갖게 될 픽사의 영화였고, 이사진도 아직 이 영상을 못 본 상태였다. 하지만 필자와 딸들을 부른 것은 스티브 잡스-스타일의 시장조사였던 셈이다. 비디오가 끝나고 나자 그는 필자가 아니라 필자의 딸들에게 질문을 했다. “어떻게 생각하니? 포카혼타스만큼 좋니?” 그레타와 페르난다는 힘차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자, 그러면 라이언킹만큼 좋니?” 그러자 페르난다가 답했다. “토이스토리를 5~6번 본 다음에 마음을 정할래요.”

스티브와의 만남이 언제나 재미나지는 않았다. 1995년 성탄절 이후 일요일, 스티브는 애플에서 일어나는 드라마의 “뒷담화(on background)” 형식으로 얘기하자면서 필자를 집으로 불렀다. 당시 썬 마이크로시스템스, 혹은 필립스가 문제 많던 애플을 인수할지 모른다는 루머가 많았었다. 스티브는 애플이 인수시장에 실제로 들어설 경우, 자신과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인 오라클 CEO, 래리 엘리슨이 입찰을 고려하겠다는 힌트를 줬었다.

좀 이상게 들려서, 필자는 잡스에게 분노때문에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스티브는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고 있지만, 필자를 차로 데려다 주면서 정말 비밀이라고 맹세했다. 필자의 자동차는 당시 1976년산 토요타 셀리카(Celica)였다. 필자의 차를 보자 잡스는 “아이들을 이 차로 데려다주지 말기를 정말 바랍니다! 농담이 아니에요. 차에 에어백이 없어요. 차 갖다 버리세요.”라 말했다.

1년 후인 1996년 말, 엘리슨과 팀을 이루지 않고, 잡스는 애플 CEO였던 길 아멜리오를 설득시켜서 애플이 넥스트를 4억 달러에 인수하도록 했고, 자신은 특별고문으로 애플에 들어갔다. 한 번 애플 안으로 들어가자 정확히 7개월 후 그는 궁정 쿠데타를 일으켰고, 넥스트의 자기 사람을 애플 요직에 앉혀 놓았다. 잡스의 황무지 생활은 끝났고, 스티브 잡스의 신화가 다시금 시작되는 시기였다.

그 후 7년간 필자는 애플 내 스티브의 리더쉽에 대해 4편의 표지기사를 작성하고 편집도 한 편 했었다. 그는 포천지에게 맥오에스텐 운영체제의 첫 번째 시연을 독점적으로 보여줬었고, 맥월드 기조연설의 최종 리허설동안에 자기가 얼마나 신경과민 상태가 되는지 지켜볼 유일한 저널리스트로 필자를 초대하기도 했었다. 2001년, 그는 공식 발표 몇 주일 전, 최초의 아이포드를 엠바고 상태로 보여준 적이 있었다. 필자의 아이포드에 대한 생각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년 후, 아이튠스 뮤직스토어가 온라인화되기 전에도 그는 본지에게 먼저 들여다 볼 기회를 줬다.

물론 그는 우리가 그에 대해 쓴 기사를 심각하게 여길 때도 있었다. 그럴 때가 되면 잡스는 필자에게 먼저 연락을 했었다. 2001년 6월, CEO에 대한 과도한 보상을 문제 삼았던 표지기사 “Inside the Great CEO Pay Heist”의 표지 이미지에 그를 사용하자 잡스는 포천지에서 애플 광고를 모두 바로 빼겠다고 위협했다. 그 기사를 쓴 기자는 필자가 아니었지만 일단 필자는 잡스에게 포천지 편집자에게 기사 내용이 자신에게 불공정하게 비쳐질 수 있다는 서한을 보내도록 권유했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지만 유감을 표현한 적은 없었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말이다

필자가 스티브 잡스를 다른 유명인사보다 유독 강하게 느끼는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잡스처럼 필자 또한 수많은 시간을 병상에서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15년 전, 최초의 심장마비가 나타났을 때 스티브도 그 소식을 알고는 병실까지 전화해서 담배좀 그만 피라고 호되게 꾸짖은 적이 있었다. 6년 전, 뇌와 등뼈에 인공심장 밸브가 뇌막염을 일으켰을 때 필자는 거의 죽은 상태였고 청력 대부분이 사라져 있었다. 당시 5주일간 입원하여 생사를 넘나들던 때, 스티브는 필자를 두 번 방문했었다.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필담으로 써야 했다. 그가 썼던 글 중에는 발설해선 안 될 빌 게이츠에 대한 농담도 적혀 있었다.

회복됐을 때 필자는 어째서 특정 기업가들은 자신이 만든 회사보다 훨씬 빠르게 업계 지도자로 자라날 수 있는지 해설을 시도하는 Founders Keepers라는 책 프로젝트를 시작했었다. 이 책의 주요 대상은 역시 스티브였고, 그 외에 빌 게이츠와 마이클 델, 앤디 그로브도 있었다. 모두들 2008년 11월 하순, 실리콘밸리의 원탁회의를 필자와 함께 하기로 약속을 해 놓았다.

그런데 회의가 있기 1주일 전, 스티브가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정말 이 말을 하기는 싫은데, 브렌트. 우리 회의에 못 나가게 됐어요.” 보청기가 그렇게 들리도록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목소리는 정말 가라앉아 있었다. “취소 이유를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으리라 믿어서 하는 말인데, 사실을 알려드리죠. 건강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정말로요. 지금 아무하고도 만날 상황이 아니에요. 추수감사절 이후에 병가를 갈 예정입니다.” 3주일 후, 그는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 후로 우리는 몇 번이고 대화를 나눴지만 3년 후, 그는 사망했다.

스티브 잡스는 정말 살아있는 전설이자 프리마돈나였으며, 저널리스트가 꿈꿀만한 인터뷰 대상이기도 했다. 그는 원할 때는 어떻게든 매력을 발휘하고 자기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부리는 심술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는 가족을 사랑했다. 그렇다. 그는 삶보다 더 거대했지만, 삶은 그를 저버렸다. 달리 말해서, 그도 우리처럼, 인간이었다.

This article is from the November 7, 2011 issue of Fortune.

Steve Jobs and Me: A journalist reminisces – Fortune Tech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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