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기억 (스티븐 울프람)

Steve Jobs: A Few Memories

October 6, 2011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슬프다. 지난 25년간 잡스로부터 배운 점이 많으며 그를 기꺼이 친구로 생각해서 자랑스럽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을 건 프로젝트, 매스매티카(Mathematica)A New Kind of Science, 울프람|알파(Wolfram|Alpha) 세 가지 모두를 여러모로 그가 기여했다.

처음 스티브 잡스를 만났을 때는 1987년이었다. 당시 그는 첫 넥스트 컴퓨터를 조용히 만들고 있었고, 나 또한 매스매티카의 첫 버전을 조용히 만들고 있었다. 우리를 같이 아는 한 친구가 잡스를 소개했고, 잡스는 거두절미하고 자신이 고등교육을 위한 컴퓨터를 만들 계획이라면서 매스매티카를 자기 계획의 일부로 원한다고 말했다. 처음 만남이 실제로 어땠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헤어질 때 그는 내게 명함을 하나 줬다. 정말 시의적절하게도 오늘 저녁, 고이 모셔져 있는 그의 명함을 발견했다.

Steve Jobs business card

첫 만남 이후로 매스매티카에 대해 스티브와 온갖 만남을 거듭했다. 그런데 사실 매스매티카의 이름이 당시는 매스매티카가 아니었고, 이름짓기가 상당히 큰 문제 중 하나였다. 첫 제안은 오메가(Omega)(그렇다. 알파와 짝이 맞다)였다가, 후에는 폴리매스(PolyMath)가 나왔지만 스티브는 모두 엉망이라 여겼다. 일단 스티브에게 생각해 놓았던 이름의 목록을 건네줬고 생각을 말하라고 우겨봤다. 당장 그가 답변을 주지는 않았는데 어느 날, “그거 매스매티카라 불러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그 이름도 생각해보기는 했지만 그에게 준 목록에는 없는 이름이었다. 그래서 스티브에게 어째서 매스매티카라는 이름이 좋은지 물어봤고 그는 일반적인 단어로 시작해서 낭만적으로 바꿀 이름에 대한 이론을 얘기해줬다. 그가 좋아하는 사례는 당시 소니의 트리니트론이었다. 잠시 토의가 있기는 했지만 결국 난 스티브의 제안을 승락했다. 그래, 매스매티카가 좋은 이름이다. 그렇게 해서 벌써 24년이 흘렀다.

매스매티카를 개발하면서 우리는 개발상황을 스티브에게 자주 보여줬다. 그는 자신이 매스매티카에 깔려 있는 수학을 이해하진 못한다고 언제나 주장했었다. (나중에 스티브의 고등학교 동창 중 한 명이 그가 미적분학 정도는 분명 수강했었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그는 인터페이스와 문서에 대해 더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하나의 예외를 빼고는 모든 종류에 있어서의 단순화였다. 아마 매스매티카 팬들이 궁금히 여기실 텐데, 스티브는 매스매티카 노트북 문서(현재의 CDF다)에 있는 셀(cell)이 간단한 세로 선이 아니라 끝에 약간의 세리프를 가미한 괄호로 표시돼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렇게 해야 셀의 계층을 생각하면서, 심볼연산으로 이뤄진 많은 기능을 활용할 수 있으리라는 이유였다.

1988년 6월, 드디어 매스매티카를 내놓을 준비가 됐지만 넥스트는 아직 컴퓨터를 내놓지 못 하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넥스트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그래서 우리의 제품 발표회에 오기로 한 것이 상당한 소식이었다.

그는 정말 호감이 가도록 말했다. 점점 더 많은 분야가 컴퓨터화되어가리라 기대한다면서 특히 매스매티카매스매티카의 알고리즘 서비스가 필요하리라는 말이었다. 실제로 그의 예상처럼 이뤄지리라는 비전을 대단히 명확하게 제시한 선언이기도 했다. (아이폰에 들어가는 모든 종류의 알고리즘 또한 매스매티카의 도움으로 개발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모르겠다.)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서 NeXT가 제 때 등장했고, 매스매티카가 모든 컴퓨터에 번들됐다. 넥스트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매스매티카를 번들시킨 스티브의 결정은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다. 넥스트를 구입해야 할 첫 번째 이유가 됐기 때문이다.

몇 년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역시 매스매티카를 사용할 목적으로 스위스 제네바의 CERN에 팔려간 넥스트가 있었다. 그곳에서 넥스트는 최초의 웹을 개발하는 컴퓨터가 된다.

당시 난 스티브 잡스를 정기적으로 만났었다. 한 번은 레드우드 시티에 있던 넥스트의 호화로운 신사옥에 가서 만난 적이 있었다. 컴퓨터 언어로서의 매스매티카를 논하고 싶었는데, 스티브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언어라고 부르기를 언제나 더 선호했으며, 도움을 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대화가 길어져서 저녁식사에 갈 수 없게 되자 그는 주의를 딴데로 돌렸다. 오랫동안 데이트를 못 했던 그가 그 날 유독 데이트 약속을 잡아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게 사실 자기가 데이트 약속이 있으며, 며칠 전부터 만나기 시작했고 정말 흥분된다고 말했다. 사업가이자 기술 전문가로서의 스티브 잡스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는 데이트에 대해 전문가라 말하기 힘들었던 내게 데이트에 대한 질문을 했다.

역시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때의 데이트는 잘 풀려나갔고, 18개월 후, 그 때 만났던 아가씨와 잡스는 결혼하여 끝까지 함께 하였다.

사실 A New Kind of Science를 쓰기 위해 홀로 있을 때가 많아지면서 스티브 잡스와의 직접적인 만남도 뜸해졌다. 그래도 컴퓨터를 사용한 대부분의 시간은 넥스트였으며, 사실 나의 발견도 넥스트 컴퓨터에서 이뤄졌었다. 책 작업이 끝나자 스티브는 출간 전의 책을 요청했고, 당연히 그에게 책을 보내줬다.

그런데 당시 모두들 책의 뒷표지에 인용구를 집어 넣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내게 권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에게 한 마디 해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여러가지 질문이 되돌아왔는데 결국 스티브는 이런 말을 했다. “아이작 뉴튼은 책 뒷표지에 인용을 쓰지 않았는데 어째서 원하십니까?” 그것으로 끝이었다. A New Kind of Science의 뒷표지는 단순하고 우아한 그림으로만 채워졌다. 내 책을 볼 때마다 느끼는 스티브의 또다른 기여다.

인생을 통틀어 온갖 종류의 능력가들과 만나봐서 행운이었다. 내가 볼 때 스티브 잡스는 생각의 명확성에 있어서 대부분을 능가한다. 복잡한 상황에 처해질수록 본질을 깨닫고 과감하게 움직일줄 아는 사람이 잡스였다. 그 방향은 종종 완전히 정반대일 때가 있다.

나 스스로도 인생의 많은 순간, “과학과 기술” 부문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해보려 노력했다. 할 수 있는 한 제일 최고의 방법으로 시도하려 했었다.

하지만 기술과 사업세계에서 그런 방법이 좋은 전략이 아님이 분명할 때가 존재한다. 실제로 제아무리 명확하게 이해하고 품질과 새 아이디어로 승부한다 하더라도 다른 방향의 전략으로 접근한 쪽이 승자일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우리 회사”의 경우는 최근들어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거둔 눈부신 성공을 경이롭게 바라봐 왔다. 내가 오랫동안 믿어온 원칙을 너무나 많이 실현시켜준 곳이 애플이다. 덕분에 더 큰 활력을 갖고 원칙을 추구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우리 회사의 접근방식을 스티브 잡스는 감사히 여겼다고 생각한다. 그는 분명 훌륭한 지지자였다. (가령 오늘 밤만해도, 매스매티카 10주년 사용자 컨퍼런스를 기념하여 그가 보내온 멋진 비디오가 생각난다.) 그는 넥스트에서도, 나중에 애플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기를 열망했었다.

1988년 이후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낸 모든 컴퓨터에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주요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매스매티카고 자부한다. 물론 그 때문에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연설에 테오 그래이(Theo Gray)가 직접 나와 포팅 프로젝트를 급하게 설명했던 것처럼, 고도의 비밀을 요구하는 위급상황도 종종 있었다.

애플이 아이포드와 아이폰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우리가 어떻게 연관성을 가질지 확실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울프람|알파가 나오면서 스티브 잡스가 만든 새로운 플랫폼에서도 얼마나 우리가 강력해질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게다가 아이패드가 나오고 스티브 잡스의 재촉때문에 테오 그레이는 우리가 아이패드용으로 뭔가 만들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었다.

그 결과가 바로 지난해의 Touch Press다. 테오의 아이패드용 전자책, Elements 외 여러가지 전자책이 Touch Press에서 나왔다. 아이패드를 만든 스티브 잡스덕분에 가능해진 완전히 새로운 방향이었다.

그동안 스티브가 우리를 얼마나 많이 지원해주고 용기를 줬는지 이루 헤아릴 길이 없다. 스티브 덕분에 해결해낸 자세한 문제가 얼마나 많았는지도 잊고 있었다. NEXTSTEP의 오류에서부터 매스매티카와 CDF를 iOS로 포팅시킬 경우 꼭 받아주겠다는 최근의 전화통화까지, 정말 많다.

스티브 잡스에게 고마워할 일은 매우 많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의 마지막 인생 프로젝트인 울프람|알파에 대한 스티브의 가장 훌륭한 기여가 바로 어제 발표됐다. 아이폰 4S의 시리(Siri)가 울프람|알파를 사용한다는 발표였다.

시리는 스티브 잡스다운 움직임이랄 수 있다. 휴대폰으로 지식과 해답을 직접 알아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별도의 단계 없이 곧바로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울프람|알파로 그 비전의 중요한 일부를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이제 시작일 뿐이며, 미래에 애플과 함께 더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스티브가 그 일부가 아니라서 그 점이 서러울 따름이다.

거의 25년 전, 스티브를 처음 만났을 때 넥스트는 “제가 30대에 해보고 싶은 일”이라 설명해준 스티브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당시 인생을 10년 주기로 계획하는 일은 너무나 과감했다고 생각했었다. 특히나 대규모 프로젝트로 인생을 보낸 우리와 같은 사람들일 경우, 스티브 잡스가 그의 짧은 인생에서 무엇을 이뤄냈는지 보면 영감을 안 받을 수가 없다. 비극적으로 오늘 그 선이 끊어졌지만 말이다.

고맙습니다, 스티브. 모두 다 고맙습니다.

Stephen Wolfram Blog : Steve Jobs: A Few Memories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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