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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권 보호 단체 Robert F. Kennedy Human Rights 회사의 이사 회원으로 Apple의 Tim Cook CEO가 참가하게되었다고 합니다.

Tim Cook CEO는 Charitybuzz 등을 통해 자신과 커피 미팅을 경매올렸고 그 낙찰 금액을 Robert F. Kennedy Human Rights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http://rfkcenter.org/news/news/apple-ceo-tim-cook-joins-robert-f-kennedy-human-rights-board/

LEADERSHIP WORLD’S GREATEST LEADERS

Apple’s Tim Cook leads different

http://timeinc.brightcove.com.edgesuite.net

전설적인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은 이후로 쿡은 아이-제국의 재무적인 성공을 훨씬 더 크게 이끌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회사의 문화를 바꿨으며, 지도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냈다.

팀 쿡은 0.7%의 지분을 가진 CEO로서 눈부신 순간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 그는 잡스가 병가로 자리를 세 번 비울 때 그의 자리를 대신 했으며, 결국 잡스가 사망하기 6주 전인 2011년 10월, 애플의 CEO에 올랐다.

다만 쿡이 발견한 사실이 있었다. 전설적인 인물을 계승할 때 어때야 할지, 회사에 전혀 준비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저는 둔감합니다. 그런데 더 둔감해졌죠. 스티브가 사망했을 때는 제가 이론적인, 학문적인 수준만 알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는 정말 믿을 수 없으리만치 우리와 우리 임원진의 보호막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기 때문에, 아마 우리 중 아무도 감사해하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 제품과 회사 운영에만 집중했죠. 하지만 그는 자기에게 던져진 모든 책임을 다 맡았습니다. 물론 칭찬도 그가 챙겼지만, 솔직히 그 강도는 정말 저의 예상 이상이었습니다.”

그동안 거친 시련의 기억은 승리의 순간으로 나타났다. 3월의 화창한 한 일요일, 그는 다음날 발표할 애플 워치(자신이 CEO로 있으면서 완전히 새로 만든 최초의 제품이다)의 리허설을 끝내고 한숨 몰아쉬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야외 카페에 앉은 올해 54세의 쿡은 스낵을 먹으며 그간 애플에서의 경험을 들려줬다. 구글 안드로이드의 발전에 대응하기 위해 애플도 저가형 아이폰을 선보여야 한다면서, “팀의 애플은 혁신할 수 없다”는 주장과 잡스의 마술을 절대로 재현할 수 없을 테니 애플은 “미칠 정도로 훌륭한” 일을 다시는 해낼 수 없으리라는 주장을 그도 알고 있었다.

쿡은 그런 소음을 듣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되새겼다고 한다. “이전에는 저 스스로 그런대로 잘 넘긴다 여겼는데 이제는 정말 잘 넘기게 됐습니다. 트럭이 뒤로 쫓아올 때 이런 기술을 집어들 수 있을 텐데요. 아마 남은 인생의 다른 면면에서도 이 훌륭한 기술을 쓸 수 있을 듯 합니다.”

그 어떤 비판도 영원한 상처를 남기지 않았다는 증거는 이미 나와 있다.애플 워치나 애플페이,혹은 30억 달러가 들어간 헤드폰/음악서비스 업체 Beats 인수가 재무적으로 성공했는지 당분간 아무도 물을 수 없을 것이다. 애플로서는 1997년 길 아멜리오가 해고당한 이래 최초의 비-창업자 CEO 체제로 진군하고 있으며, 그 자체가 증거를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이러한 움직임 자체가 쿡의 리더십을 드러내고 있다. 잡스가 남긴 회사를 관리만 한다는, 널리 퍼져 있는 편견은 적어도 깰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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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of Apple

사실 쿡 치하의 애플이 근본적으로 건전한지에 대한 논쟁은 이제 거의 없다.애플 주가는 주식분리 때의 $54에서 최근 $126으로 치솟았으며, 잡스 사후 시가는 현재 7천억 달러가 넘어섰다. (7천억 달러가 넘어선 회사로는 애플이 처음이다.) 실제로 애플의 시가는 Exxon Mobil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 두 배 이상이며, 이와 동시에 애플은 2010년 이래 현금 보유고를 1,500억 달러 이상으로 불려 놓았다.

(쿡이 자사주 매입 및 배당을 926억 달러 어치만큼 실시했음에도 이룬 실적이다. 참고로 잡스는 주주들에 대한 배당을 못마땅해 했었다.) 애플은 특히 2014년 내내 380억 달러를 판매한 중국에서 스마트폰 하이엔드 시장을 방어했다. 쿡은 이따금씩 일어난 대혼란(애플 지도가 떠오른다)을 솔직함과 겸손함으로 다뤘으며, 잡스로부터 물려 받은 오랜 경영팀도 조정했다. 핵심 임원을 늘리고 가끔은 핵심 인원을 자르기도 하면서 말이다.

쿡은 특히나 그와 애플에게 중요한 이슈로 관심을 집중되게 만들어내는 등, 단순히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애플의 리더로 올라섰다.지난 10월,자신이 게이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그의 결정은, 한때 조용하고 극도로 사생활을 함구하는 임원에서 세계적인 롤모델로 스스로를 상승 시켰다. 포천지 500대 기업 CEO 중 공개적인 게이는 쿡 한 명 뿐이다. 그리고 쿡은 애플이라는 세계적인 플랫폼을 토대로 인권과 교육 접근권, 월스트리트의 여성 참여율, 이민 개혁, 사생활 보호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심지어 고향인 남부 앨러배마의 주도까지 깊숙이 들어가서 남부의 인종 평등에 대한 한탄도 표현했었다.

쿡은 잡스와 대단히 다른 인물로 자신을 차별화 했으며,그 차별이 단순히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발언을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1998년 컴팩 컴퓨터로부터 애플로 이직했던 쿡은 원래 IBM에서 커리어를 보냈으며 기업 운용의 전문성을 갖고 있었다. 그는 애플에서 제품 개발이나 디자인, 마케팅과 같은 중대한 “핵심 분야 전문가(subject-matter expert)”가 아니었다. 그는 잡스가 그랬던 것처럼 모두를 조절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자기 선수들을 신뢰하는 코치처럼 행동했었다.

CUPERTINO, CA - AUGUST 7: (L-R) Tim Cook, Chief Operating Officer, Apple CEO Steve Jobs and Phil Schiller, EVP Product Marketing, answers questions after Jobs introduced new versions of the iMac and iLife applications August 7, 2007 in Cupertino, California. The all-in-one desktop computers now have a slimmer design in aluminum casings with faster chips and glossy screens and is up to $300 cheaper then their predecessors. (Photo by David Paul Morris/Getty Images) *** Local Caption *** Phil Schiller;Steve Jobs;Tim Cook

CUPERTINO, CA – AUGUST 7: (L-R) Tim Cook, Chief Operating Officer, Apple CEO Steve Jobs and Phil Schiller, EVP Product Marketing, answers questions after Jobs introduced new versions of the iMac and iLife applications August 7, 2007 in Cupertino, California. The all-in-one desktop computers now have a slimmer design in aluminum casings with faster chips and glossy screens and is up to $300 cheaper then their predecessors. (Photo by David Paul Morris/Getty Images) *** Local Caption *** Phil Schiller;Steve Jobs;Tim 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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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는 예기치 않게 수석 임원진의 안정을 가져왔다. 1989년 애플에 입사하여 인터넷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맡고 있는 에디 큐 수석 부사장은 그가 절대로 스티브처럼 되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쿡은 항상 자기 자신이 되려 합니다.우리도 그렇게 하도록 정말 잘 하고 있죠.그는 높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고 참여도 합니다.필요할 때 직접 개입하죠.스티브는 픽셀 수준에서부터 참여하지만요.”

당연히 잡스와 같은 인물을 따라하기 위한 모델은 없다.잡스는 가차 없는 충동성으로 위대한 결과를 반복해서 만들어낸 창업-기업가로 알려져 있다. 더군다나 3년간 꾸준히 성공을 거뒀다고 하여 미래가 보장되지도 않는다. 저명한 와튼 경영대 교수이자, 리더십 및 경영변화 센터(Center for Leadership and Change Management) 학장인 마이클 유심(Michael Useem)의 말이다. “요새 최고 경영에 대한 다른 질문보다 쿡이 애플의 전성기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계속 갖고 있습니다.”

쿡은 비판가들을 상대하기보다는 무시하는 편이 훨씬 더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제가 공직 선거를 뛰진 않잖습니까. 표를 얻을 필요가 없으니까, 제가 올바르다 여기는 일을 해야 해요. 저를 전혀 모르거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을 상대하느니, 그냥 무시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은 삶의 방식이라고 봅니다.”

쿡의 반항적이면서도 자신감 있는 목소리는 그가 CEO임을 드러낸다.잡스가 고안한 애플의 유별난 기업 문화를 쿡보다 더 격렬하게 지키는 이는 없다.물론 그도, 자신의 고유한 관점을 추가하고, 자신의 이미지로 애플을 미묘하지만 분명하게 바꿔가면서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애플을 이끌기 위해 애플 문화를 좀 조절하고 있기는 하다. 잡스가 쿡의 정책을 승인했을지 안 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수수께끼의 창업자는 죽기 직전 쿡에게 결정을 내릴 때 잡스라면 뭐라 결정했을지 떠올리지 말라 했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면, 쿡이 애플을 어디로 이끄는지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을지에 대한 질문은 부질없다.

Moments of Truth

31년간 하버드 대학교에서 기업사를 가르쳤던 리처드 테들로(Richard Tedlow)는 기술 업계 전문이었다.그는 왓슨(Watson) 가문이 지배했던 격동의 IBM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으며,변덕스러운 인텔의 CEO, 앤디 그로브(Andy Grove) 전기를 작성하기도 했었다.현재 테들로는 애플 내의 교육기관(잡스가 사망하기 전에 설립했다)인 애플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애플 대학은 여느 경영기술 학원이 아니다.테들로는 애플 대학을 1990년대 잡스가 진두지휘했던 유명한 광고 캠페인의 어구를 빗대어 “Think Different 기업 대학”이라 부른다.애플 대학은 직원들을 위해 애플의 독특한 방식을 문서화하고 애플 사람들의 생각을 돕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개방적이도록, 비-애플스러운 관점도 고려하게 돕는 목표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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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Ahrendts, Jony Ive, Eddy Cue, Jeff Williams, Lisa Jackson
Courtesy of Apple

테들로는 애플 대학을 “기술과 교양 간의 치료적인(therapeutic) 연합”이라 불렀다. 애플 대학의 수업 주제는 컴퓨터와 기기 사업이 아니라 애플 스스로에 대한 관점인데, 예를 들어서 Stanford 대학교의 정치철학교수 코언(Joshua Cohen)은 유명한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을 녹음하고 또 재녹음했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의 꼼꼼한 노력에 대해 강의하기도 했었다. 오리지널 맥 내부의 완벽한 스크류에 대한 잡스의 유명한 집착도 당연히 수강생의 마음과 멀지 않다.

최근 테들로가 가르쳤던 수업은 Moments of Truth라 불린다. 이 수업은 링컨 대통령의 재임 수락 연설의 유명한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고(with malice toward none)” 부분을 논의하는 내용이었다. 테들로에 따르면 “징벌이 아닌 화해의 순간”을 논의하려 했었다고 한다. 67세의 학자인 그는 애플에 들어온 이후로 일반인의 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마가렛 대처의 포클랜드 전투 결정과 존슨 & 존슨의 CEO인 제임스 버크(James Burke)이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bottle-tampering crisis)을 어떻게 다뤘는지도 수업했다.

테들로는 잡스 사망시 쿡이 처했던 상황을 링컨이나 다른 이들의 진실의 순간과 비교했었다.당연히 피가 난무하고 양분된 나라를 재통합 시키기와 사랑스러운 기기 업체를 이끌기와 사뭇 같지는 않다. 하지만 감정적인 비교는 그럴듯 하다. 테들로의 설명이다. “쿡이 모두의 기대라는 중압감을 안고 올라섰다고 생각합니다.” 캘리포니아 애플 본사 캠퍼스에서의 추도식에서 쿡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의 최고의 나날이 앞으로 올 겁니다.” 당시로서는 어려운 메시지였다. 바로 이점이 깊게 나뉘고 전쟁의 상처로 얼룩진 나라를 안심 시키려는 링컨과 비교할 수 있었다.

잡스 이후의 시대가 위대하리라는 약속은 쿡으로서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었다.단기적으로는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의 혁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잡스 사망 직전, 제품 발표 때의 음성인식 기능인 시리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한다는 신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리는 구글 안드로이드가 이미 제공하던 기능을 애플이 따라잡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었다. 더군다나 시리가 특별히 좋지도 않았으며, 사용자를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농담의 소재로 전락했다.

1년 후,애플은 모바일 맵이라는 또다른 약한 제품의 수렁에 빠졌다. 애플은 구글 맵이 아닌 애플 맵을 아이폰 기본 지도로 놓았지만, 애플 맵에는 에러가 너무 많아서 사용자들을 잘못된 장소로 인도한다고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 애플 맵은 믿기 힘들 정도로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쿡은 공개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대단히 죄송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제품들보다도 구글 맵을 사용할 것을 권장했으며,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서 쿡은 모바일 소프트웨어 책임자이자 잡스의 오랜 수족이었던 스콧 포스탈(Scott Forstall)을 해임했다.

2013년 초,쿡은 또 다른 임원 문제에 봉착했다. 외부에서 고용한 제일 높은 직위의 임원이자, 전임 영국 전자제품 체인점인 Dixon’s의 수장이기도 했던 존 브로웻(John Browett)이다. 저가 제품 소매범 수장을 애플의 고급 소매점 책임자로 영입한 일 자체가 흥미로운 뉴스였는데(애플 스토어를 처음 열 때부터 책임자였던 론 존슨(Ron Johnson)은 Target 임원이었으며 당시 J.C.Penny CEO가 되기 위해 애플을 떠났었다), 브로웻은 애플에 맞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그의 일정 관리 변경은 직원들의 분노를 자초했었다. 쿡은 2013년 3월 그를 해고했다. (브로웻은 후에 한 연설에서 자신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애플 문화와 맞지 않아서 나가게 됐으며, 이는 충격이었다고 인정했었다. 다만 그는 코멘트를 거절했다.)

되돌아 보면 쿡은 CEO 교육의 일부로서 위의 일화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말이다. “문화가 맞아야 한다는 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겨 주죠. 게다가 문화를 배우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CEO로서 수많은 일에 관여하는 나머지 개별 특별한 부분에 관심을 덜 가질 수 있어요. 즉, 더 짧은 주기에 더 적은 데이터 포인트를, 더 적은 지식과 사실을 가지고 운영해야 합니다. 엔지니어일 때는 아주 많은 것을 분석하기 원하겠지만, 제일 중요한 데이터 포인트는 결국 사람들입니다. 거의 순간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죠.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더 밀어 줘야 하기 때문이며, 다른 누군가가 아니거나, 더 안 좋은 경우, 다른 누군가가 되려 하는 사람들을 더 성장 시켜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제품이 아직 논의할 만한 상황이 아닐 때 애플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일도 또다른 난관이다. 가령 2013년 중순 한 기술 업계 컨퍼런스에서 쿡은 너무나 모호해서 투자자들로부터 도대체 회사의 비전을 갖고 있는지 질문을 공개적으로 받은 적도 있었다. 당시 애플 주가는 쿡이 CEO에 올라섰을 때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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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 by Joe Pugliese

그동안 그 뒤에서 쿡은 세상이 그토록 원하는 신제품 작업을 위해 그의 팀을 아우르고 있었다. 2013년 하순,그는 Burberry의 CEO, 앤젤라 아렌츠(Angela Ahrendts)를 애플 소매점 책임자로 영입해냈다.그리고 1년 후 애플은 대형 화면의 아이폰 6과 더 화면이 큰 아이폰 6 플러스, 새로운 지불 시스템인 애플 페이를 선보이고, 곧 출하할 애플 워치를 소개했다. 다른 뭣보다도 새 아이폰은 애플을 다시금 상승세로 올려 놓았다. 2014년 마지막 분기에만 7,450만 대를 팔았으며 애플은 180억 달러의 이윤을 올려 주가를 급상승 시켰다.

이 성공으로 인해 쿡은 실수를 만회할 수 있었다. 2014년 하순,애플의 차세대 화면을 만들기 위해 계약했던 유리 업체, GT Advanced Technologies는 애플이 사용을 거절하자 부도를 선언하고는,애플 계약 때문에 했던 투자로 부도가 났다면서 애플을 제소했었다.애플은 동사의 부도로 오히려 공격을 받았다고 맞섰으며, 양측은 결국 합의했고 애플은 아리조나에 있는 제조단지에 태양광 발전소와 데이터 센터를 짓기로 약속했다. 이로써 애플은 또한 상당한 규모의 대손상각(write-off)을 단행했는데(얼마나 큰 규모인지 밝히지 않을 것이다) 수 십억 달러를 제조 공정에 투자하는 회사로서는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원래 쿡이 맡았던 운영부 수석 부사장인 제프 윌리엄스(Jeff Williams)는 소송 건으로 쿡이 자기에게 세 가지를 얘기해줬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팀에게 보고했을 때 그의 답변은, ‘첫째로 우리가 이 건으로 뭘 배울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둘째로 우리가 대성공을 거두지는 않을 것이며, 셋째로 우리는 고객들을 위해 훌륭한 기술에 계속 투자해 나갈 것이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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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경영에 대한 쿡의 정서적인 접근은 전임자의 접근과는 상당히 다르지만,핵심 제품과 장기적인 방향에 대한 초점은 정확히 같다.이런 맥락에서 애플페이나 새로운 손목시계가 거대한 이윤을 낳는 효자 제품이 되리라는 전망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1980년대 애플 임원이었으며 현재 독자층이 매우 많은 주간 칼럼, The Monday Note로 유명한 장-루이 가세(Jean-Louis Gassée)는 애플에 대해 간단한 관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은 항상 하나의 사업 뿐이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이죠. 이제는 대중소 세 가지 크기로 만듭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그리고 노트북과 데스크톱이죠. 다른 모두는 애플워치가 아이폰 안에 존재하듯, 위의 제품들의 틈을 채워줍니다.” 가세가 볼 때 쿡 치하의 애플은 15년 전, 잡스의 디지털-허브 전략을 방불케 한다. 당시 아이튠스와 같은 제품이 아이포드의 판매를 끌어 올렸으며, 궁극적으로는 맥도 같이 성장 시켰었다. “팀은 자기 방식으로 오랜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쿡은 투자자들이 애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의 논쟁에도 끼어 들었었다. “우리가 찾는 투자자는 장기-투자자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렇게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죠. 만약 당신이 단기-투자자라면 우리 주식을 매각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거대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결정이죠. 하지만 우리가 회사를 그런 식으로 운영하지 않는다는 점을 모두가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Putting His Life in View

애플 제품 선이나 다른 이벤트에서 예전의 팀 쿡은 뻣뻣했었다. 그러나 당시 그가 얼마나 잘 했든지 간에 기조연설의 거장인 잡스와의 비교는 부당했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쿡도 분명히 자기 역할에 적응했다. 시계 발표회 때 그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이벤트를 진행했었다. 그가 패션 모델이자 건강 전도사인 크리스티 털링튼 번스(Christy Turlington Burns)를 안았을 때 그의 행동에 뻣뻣한 면모는 전혀 없었다. 그녀는 장거리 달리기용으로 애플워치를 사용중이었다.

쿡은 심지어 스스로 즐기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제품 소개 다음 날, 그는 쿠퍼티노에서 연간 주주회의를 주관했었다. CEO들이 즐기기보다는 견뎌내야 하는 회의였는데, 쿡은 주주들과 친밀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소탈하게 답변하고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도 즐겁게 피하고 있었다. 애플스러운 자동차 업체이자 널리 사랑 받는 Tesla Motors를 애플이 과연 인수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두 번이나 피한 그는 미끼를 물지 않았노라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했다. 그는 “CEO가 좋은 점도 있네요”라 웃어 넘겼다.

CEO이기 때문에 이런 원치 않은 질문에 진땀을 빼야 하기도 하지만,반대로 CEO인 덕분에 설사 애플 관련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른 문제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지난 10월 그의 고향인 앨러배마에서 Alabama Academy of Honor에 그를 초대했었다. University of Alabama의 미식축구 코치인 닉 세이번(Nick Saban)과 제프 세션스(Jeff Sessions) 상원의원도 참석했었지만 연설자로 앨러배마주는 쿡을 골랐었다. 곧 그 선택을 후회했지만 말이다. 쿡은 진부한 말 대신, 인종 평등과 교육의 기회,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에 대한 평등 추진이 느리다는 이유로 앨러배마를 맹공격했다. 쿡은 “이건 옳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치를 반영하지 않습니다.”라 말했다.

지역 방송국에서는 쿡과 공화당 출신 주지사인 로버트 벤틀리(Robert Bentley) 간의 어색한 장면을 잡아냈었다.그 장면에서 벤틀리 주지사는 쿡의 발언을 육성으로 불쾌해 했었다. 본지의 소유주인 타임의 전-CEO이자 팀과 같은 Auburn 대학교 출신인 돈 로건(Don Logan)도 당시 주의사당에 참석했었다. 그는 앨러배마주가 동성혼을 허용하지 않는 법안을 최근 통과 시켰음을 지적했다. “팀은 대단히 용기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풍파를 일으킬 것은 물론, 실내 대부분이 자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뻔히 알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쿡은 Bloomberg Businessweek 지에 칼럼을 통해 공개적으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쿡이나 애플로부터 다른 코멘트는 없었으며,그의 고백은 큰 화제를 일으켰으나 대부분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돌이켜 보면 그는 자신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애들과,자살도 시도하는 사람들,성적인 지향만 가지고 직원들을 해고하도록 허용하는 많은 주 때문에 행동에 나섰다고 한다. 또한 미국 법원이 이 문제에 대해 대단히 빠르게 움직이기도 했다. “저는 사업이 임원실에서만 주도해서 이뤄지지는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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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공직에 나가지는 않죠. 여러분의 표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저는 올바른 일을 스스로 해야 한다고 느끼며, 제가 결정권자라면, 제 결정에 대한 비판을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더 잘 사는 방법이라고 봐요.”
Courtesy of Apple

쿡은 자신이 “꽤 오래 전”에 커밍아웃을 하기로 했으며, 발표문을 내부에서 다듬었다고 한다. 사실 그의 성적 성향은 다소 “지루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었다. 다만 이렇게 크게 나서는 일은 쿡에게도 큰 일이다. 스스로를 극도로 사생활을 지키며,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힘들어 하는 등, 여느 CEO같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다른 이들을 도울 것 같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면 아마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 인생을 공개하는 건 즐겁지가 않죠.” 종종 인용되는 “많이 주어진 자에게는 많은 책임이 필요하다”를 말하면서 쿡은 자신이 분명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쿡은 덕분에 스티브 잡스의 회사를 운영하는 인물 이상으로 유명해졌다. 세계적인 로펌인 샌프란시스코의 Pillsbury Winthrop Shaw Pittman에서 스타트업 기술 회사들을 자문하는 마이크 설리반(Mike Sullivan)도 자신의 성적 성향을 자긍심으로 여기며,자신의 직업을 규정짓지는 않는다 여긴다. “포천 500대 회사에 500명의 CEO가 있는데 그 중 게이가 몇 명인지 장담해 드릴 수 있어요.팀이 보낸 메시지는 ‘너 스스로가 되어도 괜찮고,스스로 내세울 필요도 없지만 굳이 숨길 필요도 없다’는 말이죠.”

쿡이 너무나 유명해진 까닭에 그가 안 보이던 시절은 이제 기억도 안 날 지경이다. 3월 초 유럽에 갔을 때 쿡은 베를린에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와, 브뤼셀에서는 전-에스토니아 총리이자 현재 유럽위원회(EC)에서 디지털 문제를 다루는 최고 책임자인 안드루스 안시프(Andrus Ansip)를 만났었다. 또한 전직 포천지 저널리스트인 브렌트 슐렌더(Brent Schlender)와 릭 테첼리(Rick Tetzeli)가 쓴 새 책에도 그가 나온다. 이들은 쿡이 잡스에게 자신의 간 이식을 제안했었다고 보도했다. (잡스는 쿡의 제안을 거절했다.) 3월, 쿡은 심지어 CNBC의 금융 프로그램 사회자인 짐 크레이머(Jim Cramer)에게 10주년 방송중 전화도 했었다. 크레이머는 놀라워 하면서도 기뻐했었다.

회사를 대표하기는 CEO의 임무이지만 쿡은 AIDS 전염 방지와 인권, 이민법 개혁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리더십의 기회로 여기기 때문이다.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는 연못의 조약돌이 되고 싶은 것이죠.” 그는 애플 직원들이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해당 이슈에 대해 항상 염려해 왔다고 덧붙였다.

쿡에게 있어서 세상 바꾸기는 언제나 돈벌기보다 더 높은 어젠다였다.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현재 10살인 조카의 대학 학비까지만 지원한 다음 모두 포기할 계획이다.개중에는 자선 프로젝트에 대한 상당한 자금 투입도 있을 것이다.쿡의 총재산은 그의 애플 주식으로 계산했을 때 현재 1억 2천만 달러이며, 권한을 완전히 받을 경우 행사할 수 있는 제한부 주식(restricted stock)이 또 6억 6,500만 달러 어치가 있다. 쿡은 이미 조용히 기부를 시작했지만, 단순히 기부하기보다 시간을 들여 구조적인 자선책을 만들 계획이다.

쿡의 애플이 거의 반인 반신 취급을 받았던 전임자 때보다 훨씬 더 눈에 띄게 개방적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잡스는 직원들과 언론의 접촉을 심각하게 막았었지만, 쿡은 언론 미디어에 개방적이었다. 가령 최근 뉴요커의 16,000 단어 짜리 조니 아이브 특집 기사를 잡스라면 거부했을 것이다. 쿡은 이러한 노출도 자신의 계획의 일부라 말한다. “제 목표는 우리 경영팀과 다른 직원들을 대중에 노출시키는 겁니다. 결국에는 애플에게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개방 정책의 목표는 두 가지다.첫째로 애플에 대해 세상이 계속 얘기하도록 하기이다.건강한 자아를 가진 임원들의 노출 자체가 그들을 가둬 두는 괜찮은 방법이다. 전임 애플 임원이었던 가세는 “진정한 코치는 스타 플레이어의 언론 노출을 오히려 기뻐하죠”라 언급했다. “팀 쿡은 자신의 스타들을 돌볼 줄 아는 진정한 단장입니다. 박스 오피스 성적이 좋은 한, 계속 그럴 겁니다.”

Building for the Future

팀 쿡은 말그대로 엄청난 먼지 위에 서 있다.그는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2016년 말에 끝날 애플의 새 사옥이 들어설 쿠퍼티노의 건설 현장에 들어왔다. 흙이 아래의 거대한 구멍에서 뽑아져 나왔으며, 4층 짜리 건물이 들어설 곳에 눈높이까지 흙이 쌓여 있었다. 여기에 반지형 빌딩을 곧 세울 예정이다. 도너츠 모양의 빌딩은 우주선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래에는 트럭과 일꾼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으며, 쿡은 업무 장소라는, 그가 정말로 관심을 가진 주제에 대해 말했다. 도시의 사무용 고층 빌딩들이 얼마나 칙칙한지 놀라울 따름이며, 애플의 신사옥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창조력을 켜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는 미래의 대학교 졸업생들이 처음 방문할 때 어떤 느낌일지를 생각했다. 기존 애플의 쿠퍼티노 캠퍼스와 San Jose 시내, Levi 스타디움이 눈에 보이는 위치인데, 우연히도 샌프란시스코 49er들이 경기하는 경기장이 우주선 중앙부의 30 에이커 짜리 공원에 딱 들어맞는다.

Apple construction, Cupertino, CA
2015년 3월 3일에 촬영된 애플의 신사옥 건설 현장. 쿡은 이 하이테크 빌딩이 “모든 제품의 어머니”라 불렀다.
Courtesy of Apple

스티브 잡스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2년 동안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를 고용하여 신사옥을 디자인하는 등,새 건물에 상당한 시간을 들였었다.건설 현장의 모든 것은 규모이며, 수치에 밝은 쿡은 주요 수치를 모두 암기하고 있었다. 메인 빌딩 자체는 280만 평방피트이며 1만 3천 명의 직원을 수용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인접한 빌딩에 2천 명 이상의 직원을 더 수용할 수 있으며 여기에 10만 평방 피트의 운동 센터와 1만 5천 명의 점심을 줄 수 있는 구내 식당이 들어선다. 그리고 모두 Santa Clara Valley에서 자란 8천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는다.

쿡은 건설 현장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며(애플 임원일 때에도 이미 두 번 방문했었다), 곳곳에 있는 22대의 크레인을 엔지니어의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애플이 신사옥을 “애플 캠퍼스 2″로 부를지는 아직 결정 안 했다고 한다. 빌딩, 혹은 전체 부지의 작명은 아마 분명히 잡스에 대한 헌사를 포함할 듯 하며, 쿡에 따르면 잡스 가족에 달려 있다고 한다.

현장을 90분 동안 보면서 그는 캠퍼스의 세부 사항에 대해 설명했고,이곳이 “모든 제품의 어머니”라 설명했다.예를 들어 애플은 주차장 관리와 같은 지루한 일에 최신 기술을 투자하고 있다.센서와 앱으로 이뤄진 시스템이 직원들 출근할 때의 차 이동량을 조절하여 주차장을 찾기 위한 기름 낭비를 줄이는 식이다.소매점에서도 했듯,애플은 모형을 만들어서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지,잘라서 들여다 보기도 한다.어째서 4층 이상으로 올리지 않냐에 대해서는 기존 캠퍼스와의 고도를 맞추기 위해서라고 한다.쿡의 설명이다. “5층으로 높여서 모형을 만들었을 때는 모양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는 지하에 대해서도 특히 좋아했었다.캠퍼스 남동쪽 구석에 생길 천 명 규모의 강당은 매년 하는 개발자 컨퍼런스를 제외한 모든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곳이다. 쿡은 열정적으로 말했다. “수 개월 전에 미리 일정을 잡아 놓을 필요가 없겠죠.”

새 캠퍼스를 얘기할 때,쿡은 신사옥을 “본부”라 이름 짓기 싫어했다. “저는 ‘본부’라는 단어가 싫습니다. 실제 일을 하는 곳이지 관료 식으로 명령 내리는 곳이 아니죠.” 실제로 어느 그룹이 신사옥에 들어갈지, 누가 기존 사옥에 남을지 애플 직원들은 계속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 쿡은 세 번 정했다고 한다. “아마 세 번 더 정하겠죠.”

1 Infinite Loop에 있는 쿡의 현재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그의 애플워치가 트라이앵글의 딩! 소리를 냈었다. 쿡은 기본형 스포츠 버전의 애플워치에 하얀색 플라스틱 밴드를 차고 있었다. 알림을 받은지 거의 2시간이 흐른 후였다. 쿡에 따르면 비서가 문자 메시지를 보냈으며, 애플 이사인 알 고어(Al Gore)가 자기와 얘기하고 싶다는 보고였다.

전자 알림 때문에 쿡은 주머니의 아이폰을 꺼낼 필요가 없었다.애플워치의 채택으로 애플이 바라는 주요 목표 중 하나이다. 알림 덕분에 마키마우스 워치페이스 외에도 애플워치의 기능을 보여줄 기회가 생긴 셈이다. 미키마우스는 초당 운동량도 재어주도록 업데이트돼 있었다. 운동량 측정광인 쿡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매일 운동량을 보여줬다. 지금까지 운동을 50분 하고, 8,139 보, 그러니까 약 4 마일을 걸었다. 일찍 일어나는 그는 12시간 동안 움직였었고, 아직 오후 3:30 밖에 안 됐었다. 그의 업무 시간은, 그리고 그가 애플을 이끌 시간은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

This story is from the April 1, 2015 issue of Fortune. It originally stated that the Siri product launch occurred days after Steve Jobs died. The event was the day before his death.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http://fortune.com/2015/03/26/tim-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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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 인터뷰 (Fast Company, 2015.03.18)

TIM COOK ON APPLE’S FUTURE: EVERYTHING CAN CHANGE EXCEPT VALUES

In an exclusive Q&A, the current CEO discusses the Watch, how Steve Jobs informs Apple’s future, and how Apple lives “outside the box.

BY RICK TETZELI AND BRENT SCHLENDER

Fast Company: 애플은 스티브 잡스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Tim Cook: 스티브는 사람들 대부분이 작은 상자에서 산다고 느꼈어요. 영향을 끼칠 수 없거나 뭐 크게 변화 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얘기죠. 스티브라면 아마 제한적인 삶이라 불렀을 법 한데, 제가 만난 그 어떤 이들보다도 스티브는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임원진 모두 그런 철학을 버리게 했습니다. 네가 할 수 있다면, 변화도 가능하다. 네가 할 수 있다면, 무한정 할 수도 있으며, 우주에 흔적을 남길 수 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였죠.

그의 인생에서 거대한 아크였습니다. 그가 가진 맥락이 그것이었어요. 그때문에 거대한 아이디어를 냈고, 행동을 통해 그 어떤 설교보다도 훨씬 현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을 회사에 심어 놓았습니다.

세계 최고의 제품에 대한 광적인 집착부터 시작하여, 이 철학의 결과가 몇 가지 있습니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려면, 최고의 기술을 가져야 하죠. 그는 애플이 그럴 수 있다면, 그러니까 최고의 제품과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툴을 만들 수 있다면,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봤습니다. 스티브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기여가 바로 그거라 강하게 느꼈어요. 우리도 여전히 그점을 믿습니다. 여전히, 이 회사의 핵심이죠.

성공의 정의를 계량적인 척도라는 개념이 거의 병처럼 퍼져 있기는 합니다. 얼마나 많은 클릭수를 얻느냐, 얼마나 활동적인 사용자가 많느냐, 얼마나 많이 파느냐? 기술 업계 모두가 큰 실적을 원하는 듯 하지만, 스티브는 절대로 휩쓸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최고를 만드는 데에 집중했죠.

애플에 제가 들어왔을 때 저도 생각을 고쳐 먹었어요[쿡은 1998년, 컴팩을 떠나 애플에 입사했다]. 이전에는 윈도 업계에 있었는데, 거기서는 무조건 많이 만드는 것이죠. 지금도 그렇구요.

어떤 범주에 들어갈지 알아볼 때, 우리는 스스로 질문을 합니다. 필요한 주된 기술이 무엇이 있는가? 우리가 뭘 가져오는가? 우리가 사회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나? 그럴 수 없다면, 그리고 핵심 기술을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 철학을 스티브로부터 물려 받았고, 지금도 애플에 스며들어 있으며, 앞으로도 항상 그러기를 바랍니다.

애플워치를 만들기로 했을 때에도 그런 철학이었겠군요?

거의 그렇죠.

손목에 있는 그게 애플워치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쿡은 애플워치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보세요. 제 달력이 여기 있죠. 시간, 날짜, 온도, 애플 주가도 있습니다. 이건 오늘 제 활동량이고요. 어제는 어땠는지 볼 수 있고 오늘 활동량으로 보여줄 수 있죠. 아직 별로 칼로리를 많이 소비하지는 않았네요.

애플워치를 보면 주된 기술은 소프트웨어와 사용자 인터페이스입니다. 작은 화면을 갖고 봐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입력 방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휴대폰과 태블릿, 맥에서의 입력 방식이 더 작은 화면에는 맞지 않죠. 스마트워치를 만드는 곳 대부분은 이점을 깊게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아이폰용으로 개발한 손가락으로 넓히기 등의 제스처를 시계에서도 사용합니다.

시계에서 해 보시면 잘 안 돌아감을 대번에 알 수 있기 때문에, 포스 터치같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작은 화면에서는]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또다른 방향이 필요하죠. 그래서 조금 더 세게 누르면 숨겨져 있던 또다른 인터페이스를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화면이 여러모로 실제보다 더 커 보이죠.

수 년 동안 고민에 고민, 시도에 시도, 개선에 개선을 거듭한 끝에 나온 것이 매우 많습니다. 준비가 되기 전에 출시하면 안 되죠. 인내심을 갖고 올바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바로 애플워치를 만들어서 선보인 이유이며, 우리가 최초는 아닙니다.

MP3 플레이어도 우리는 최초가 아니었고 태블릿 역시 우리는 최초가 아니었습니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우리는 거의 최초의 현대적인 스마트폰 업체이자, 그런 맥락에서 최초의 현대적인 스마트워치를 만든 기업이 될 것입니다.

2001년 아이포드를 소개했을 때 전망은 꽤 낮았습니다. 2007년 아이폰을 소개했을 때의 기대는 상당히 높았죠. 이런 맥락에서 애플워치는 어디쯤 위치할까요?

아이포드를 선보일 때 당시 애플에 대한 기대치는 매우 낮았습니다. 아이포드의 가격에 대한 비판이 대부분이었죠. 누가 이걸 원하겠어? 누가 사겠어? 그런 말 많이 들었습니다. 아이폰을 만들 때 우린 목표치를 세웠어요. 시장의 1%를 차지하고 싶다였죠. 첫 해에 천 만 대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모래 위에 깃발을 하나 세웠더니 좀 추월했더라 이거죠.

애플워치에 대해서는 목표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애플워치는 아이폰 5나 6, 6 플러스가 있어야 돌아가기 때문에 제한적입니다. 그렇지만 잘 되리라 생각해요. 사실 흥분도 좀 됩니다. 매일 매일 사용해 왔는데, 애플워치가 꼭 있어야겠더군요.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는 외부 앱이 전혀 없었죠. 18개월 후에서야 애플이 아이폰을 앱 개발자들에게 열어줬습니다. 완전히 다른 가치 평가였어요. 애플워치에 대해서는 어떤 전망이십니까?

말씀하셨듯이 아이폰에서는 개발자들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냥 스마트폰 앱을 확대해서 쓰지 않고, 태블릿용으로 앱을 최적화 시키기 때문에, 아이패드에서도 핵심이었죠. 애플워치에서도 핵심입니다. 당연하죠.

물론 이번에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의 개발자들이 가진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어서 11월 중순 소프트웨어 개발 킷(SDK)을 선보였습니다. 4월에 출시할 때가 되면 서드파티 앱이 많이 나올 겁니다. 물론 처음부터 70만 개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그정도로 자라나겠죠. 다만 사람들 상상을 사로잡을 정도의 앱은 충분히 있을 겁니다.

다들 애플워치의 유용성을 잘 생각하지 못 하던데요.

예. 하지만 아이포드를 가져야 할 이유도 잘들 몰랐고, 아이폰을 가져야 할 이유도 잘 깨닫지 못 했습니다. 아이패드는 완전히 비난 받았고요. 비판가들은 왜 아이패드가 필요하냐 물었죠. 솔직히 우리가 이룬 혁명적인 일들이 처음부터 히트작으로 예상받던 적이 없었다고 봐요. 돌이켜봐야 사람들이 가치를 알아봤다고 볼 수 있겠죠. 아마 이번에도 반응은 같을 겁니다.

스티브가 만들어낸 한계가 없다는 철학을 말씀하셨는데요. 미칠 정도의 훌륭함이라는 면도 있을 테지만, 그의 개인적인 성격이 오히려 그런 철학을 강화했을 겁니다. 지금 당신이 그런 역할이신지요? 혹은 그런 종류의 품질 컨트롤을 퍼뜨리셨는지?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항상 퍼져 있었습니다. 스티브가 애플에 있었을 때, 그가 애플의 모든 것을 관장하지는 않았고, 애플은 2010년보다 세 배 더 커졌어요. 그런데 제가 모든 곳에 손댄다고요? 절대로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애플의 문화에요.

IT’S TWICE AS BIG AS STEVE’S
A comparison of Steve’s last quarter as CEO, which ended September 30, 2011, with Tim’s latest quarter, ending December 3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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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는 스티브를 항상 모든 점을, 그러니까 i가 어떻게 표시돼야 하는지, 서킷이 얼마나 올바른지 어느 색상이 적확한지 다 관여한 마이크로-관리자로들 보던데, 맞기도 합니다. 아주 많은 결정을 내렸죠. 그의 능력은 믿을 수 없을 정도에요. 그렇지만 그도 한 명의 사람이었고, 그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습니다.

애플 문화를 퍼지도록 도운 사람들을 그가 골랐어요. 복도를 걸어가다가 뭔가를 보고 미친 다음, 이뤄지더라 하는 얘기를 들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가지고 그가 애플 내 모든 것을 다 했다고 확대하는 건, 그를 너무 근시안적으로 보는 겁니다. 뭣보다 그가 이룬 바는 문화를 만들고 훌륭한 팀을 뽑았으며, 그 후 또다른 훌륭한 팀을 고르고, 계속 훌륭한 팀을 골랐다는 점이에요.

그가 스승으로 평가받은 적은 없지만, 그는 이제까지 제가 본 중 최고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의미로서의 선생님이 절대로 아니긴 하지만, 그는 최고였어요. 정말 최고였죠.

한 가지 말씀 드리죠. 작년 애플은 2천억 달러 어치의 수입을 올렸습니다. 세계 최고의, 혹은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폰 기업이 애플이에요. 다들 얘기하는 것처럼 그가 마이크로-관리자였다면 애플이 이런 성과를 올릴 수 있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스티브 잡스의 최고의 기여와 선물은 애플이라는 회사와 그 문화에요. 그는 정말 애플을 신경 썼습니다. 엄청난 시간을 들여서 우리 신사옥의 개념를 디자인했었고, 차세대를 위한 선물이 바로 신사옥이죠. 애플 대학 또한 또다른 사례입니다. 그는 애플 내 차세대 리더들이 애플 대학을 이용하여 자라나기를 바랬습니다. 지난 과거의 교훈을 잊지 않도록 확실히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소규모 팀의 장점에 대한 스티브의 집중은 애플에서 잘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효율적이고 민첩하면서 관려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유지하려면 애플이 더 커질수록 더 어려워질 텐데요.

올바르게 하는 데에 따르는 보상도 그만큼 더 커지겠죠. 말씀이 맞긴 합니다. 더 어려울 테고, 중력과 싸워야 하겠죠. 하지만 스스로가 작은 상자에 갇혀 산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해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최고의 협력자가 돼야 믿을 수 없으리만치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협력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제품의 관점에서 볼 때, 애플 매직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접합점에서 나오죠. 접합점입니다. 협력이 없다면 그냥 윈도 제품이죠. 운영체제를 한 곳에서 만들고 하드웨어를 다른 곳에서 만들며, 다른 건 또 다른 곳에서의 방식이에요. 안드로이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사용자 경험에 있어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어요.

스티브는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훌륭한 고객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미친 논리로 보였지만, 모든 것을 함께 작동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그가 옳았다는 점을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깨달았죠.

스티브는 항상, 애플과 다른 컴퓨터 기업들 간의 차이가 애플이 “전체적인 장치(whole widget)”를 만든다는 점을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다 만든다, 혹은 아이포드와 같은 기기를 만든다였는데, 지금의 “위젯”은 더 커졌죠. 전체적인 “애플 경험”, 그러니까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 이제는 애플워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애플 제품이 클라우드 서비스, 음악과 영상 콘텐츠 등과 잘 연동됨을 의미합니다. 위젯의의 큰 어머니 꼴일 텐데요. 정말 관리할 수 있나요? 여러 다른 인터페이스를 넘나 들어야 할 때가 너무 많아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요? 자사의 운영체제 안에 모든 사람들을 위한 모든 일을 하려 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도 동일한 문제를 겪었습니다.

다르다고 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문제가 생긴 이유가 있죠. 그들은 옛 것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애플은 언제나 과감하게 옛 것에서 벗어난다는 원칙을 갖고 있어요. 우리는 아직 많은 이들이 사용하던 플로피 디스크를 없앴고, 위기를 다변화 시키거나 줄이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은 채, 여러 사람들이 좋아하던 광드라이브도 뺐습니다. 30-핀 커넥터를 좋아하던 사람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커넥터를 바꿨죠. 불만이 꽤 이어지기는 했지만, 극복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리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아닙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비유는 받아들이지 않겠어요. 완전히 다른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입니다. 맞아요. 상황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맥만 만들 때는 맥만 만들면 됐죠. 휴대폰을 하려면 최적화를 잘 해서 전화를 거의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게다가 통신사만 해도 세계에 300-400개죠. 모두 약간씩 다르고요. 맞아요. 정말 복잡합니다.

연속성(continuity) 구현도 더 복잡하죠. 아이폰에서 이메일을 적다가 아이패드, 혹은 맥에서 끝내기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있습니다. 모든 제품에서 끊김 없는 경험을 원하죠. 맥에서만 한다면야 맥만 신경 쓰면 됩니다. 하지만 이제는 3차원인데다가 클라우드도 있어요. 더 복잡해졌죠. 당연합니다.

우리는, 사용자로부터 모든 복잡성을 숨기려 노력해요. 이게 정말로 어렵고 거친 엔지니어링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겁니다. 사용자가 자기 마음대로 우리 툴을 쓰고, 걱정할 필요가 없도록 만든다는 얘기죠. 물론 우리도 완벽하지 못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점이 바로 당신이 말하는 문제겠죠. 문제가 생길 때에는 당연히 고칠 겁니다.

제가 볼 때, 우리 모델에 틀린 점은 없어요. 할 수 없다가 아닙니다. 우리도 인간이며 우리도 실수를 저지른다는 말이죠. 비-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으며, 저는 실수를 없애자는 목표를 정말 갖고 있어요. 과거 우리도 실수를 저질렀으며, 앞으로도 완벽하지는 않을 겁니다만, 다행히 우리는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하려는 용기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중력과 싸우고 계시죠. 너무 버겁다는 두려움은 없으신지요?

아뇨. 우리가 작은 상자에 살지 않기 때문이죠. 벗어났습니다. 우리가 계속 문제를 규명하고 해결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잡성까지 다 해결하려 든다면 불가능한 꿈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한 발짝 물러나서 문제를 다르게 생각해 보고, 정말 하려는 바를 생각하다 보면, 그때에도 불가능한 임무이지는 않겠죠.

여러모로 우리가 증명했다고 봐요. 앱스토어를 보시죠. 정말 비교할 수 없을 만한 규모로 150만 가지의 앱이 스토어 안에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누가 상상했을까요? 우린 여전히 앱들을 큐레이팅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객들도 우리가 하기를 원하죠. 앱을 구매하면, 기대하던대로 작동하기를 바랍니다.

핵심적인 방식들 중, 스티브의 유산 중에서 떠나 보낸 것이 있나요?

우리는 매일 바뀝니다. 그가 있을 때도 매일 바꿨고, 그가 없을 때에도 매일 바꿔 왔었죠. 다만 핵심은, 핵심 가치만은 98년이든 05년이든 10년이든 항상 남아 있습니다. 그 가치가 변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아죠.

하지만 다른 모든 건 바뀐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곳에서 2년 후에는 완전히 다르다고 느낄 겁니다. 사실 1주일 후라 하더라도 완전히 바뀌었다 느끼겠죠. 괜찮습니다. 사실 우리가 용기를 갖고 인정한다는 사실이 좋다고 봐요.

스티브라면 항상 그랬겠죠.

당연히 항상 그랬을 겁니다. 제 말은, 스티브야말로 세계 최고의 플리퍼(flipper)에요. 한 위치에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철학, 가치와 결혼했어요. 세상을 정말로 바꾸고 싶다는 우리의 바람은 계속 똑같이 남아 있습니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그래요. 우리가 매일 와서 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애플의 신사옥을 기대하시나요? [애플은 2016년 새로운 본부 건물로 대거 이주할 예정이다.] 새로 사옥을 짓자는 첫 결정이 났을 때 당신이 CEO였다면 이런 캠퍼스를 지으셨을련지요?

애플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도록 남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데 어울러야 하죠. 협력을 이루려면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게 해야 합니다. 일정에 따른 회의만이 아니에요. 구내식당이나 그냥 걸어다니면서 부딪히는 모든 상황 말입니다.

우리는 직원 증가를 예측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를 다 수용할 캠퍼스가 없었습니다. 수 백 곳 빌딩으로 흩어져 있었는데, 아무도 안 좋아했죠. 이제는 한 캠퍼스에서 모두 같이 일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맞아요. 저도 완전히 찬성이었습니다.

회사의 규모가 자라날 수록 세대가 바뀌고 새로운 사람들도 들어오죠. 새로운 직원들에게는 애플 문화를 어떻게 전달하나요? 체화시켜야 할 뭔가가 있는지요?

체화(systematizing)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오리엔테이션부터 시작하여 몇 가지 하는 일은 있습니다. 사실 면접하기 전부터 나오죠. 애플 문화에 맞는 사람들을 고르는 겁니다. 모든 문제를 보는 데에 있어 매우 다양한 경험을 가진 대단히 다양한 그룹이 있어야 하죠. 하지만 철학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냥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깊게 믿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오리엔테이션이 있어요. 전세계 모든 애플 지사에서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애플 대학도 있어서 과거에 있던 일을 분석하여 결정을 어떻게 했는지, 왜 했는지, 어떻게 성공했는지, 어떻게 실패했는지 이해하도록 돕죠. 이 모두가 도움이 됩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그 풍조를 조성하는 역할은 리더들에게 있습니다. CEO만이 아니라 회사 전체에 퍼져 있는 리더들이요. 주의깊게 올바른 인물을 골라낸다면, 자기 예언을 멋지게 실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스티브의 옛 사무실에 계속 스티브 문패가 있더군요.

예.

왜죠? 새로운 캠퍼스에도 그런 걸 붙여 놓으실 건가요?

신사옥에 뭘 할지는 아직 결정 안 내렸습니다만, 그의 사무실을 예전과 마찬가지로 꼭 두고 싶습니다. 사무실 칠판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아직 있어서 로렌[스티브의 아내]과 함께 사무실 간 적이 있었어요. 이브[스티브의 딸]가 여름에 가서 예전 아버지 칠판에다 그렸던 그림을 발견했죠.

처음에는 정말, 별로 가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너무 중압감이 컸어요. 하지만 이제 거기 들어가서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자주 가지는 않지만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할 거냐,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사무실로 가기 원치 않았어요. 스티브는 바꿀 수가 없는 인물인지라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사무실의 모든 게… 스티브의 컴퓨터도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요. 책상도 예전 그대로 있죠. 책도 아주 많습니다. 로렌이 집에 가져간 것도 있지만요.

모르겠군요. 스티브의 이름은 계속 문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해요. 그게 올바르다고 느껴집니다.

March 18, 2015 | 6:00 AM

A version of this article appeared in the April 2015 issue of Fast Company magazine.

RICK TETZELI
Rick Tetzeli is Executive Editor of Fast Company, which he joined in June 2010.
CONTINUE

http://www.fastcompany.com/3042435/steves-legacy-tim-looks-ahead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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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애플

Apple and the agents of change

By Jason Snell, Friday, Feb 6, 2015 a 10:01 am EST
meta-author

Ed: Welcome to iMore’s new author spotlight column. Every Friday, we’ll be bringing you the perspective and charm of the best and brightest minds in the Apple community. To start us off, we’re thrilled to have the one, the only, the incomparable Jason Snell.

똑같은 회사에 다닌지 17년만인 지난 가을, 나는 처음으로 자기 사업을 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계속 글쓰기와 피할 수 없는 변화와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강의로 시간을 보냈었지만, 인간으로서 우리는 루틴을 좋아하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요새는 출퇴근을 하지 않고 집만 드나들 뿐이다. 게다가 십 수 명의 직원들 책임자도 아니며, 의료보험 대부분을 내주고 월급을 확인해 주는 회사도 없다. HTML과 CSS 하나 하나에 이르기까지 내 웹사이트의 모든 것이 내 책임이며, 4개월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적응중이다. 새로운 리듬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말이다.

그 이전 어느 때보다도 이러한 경험 덕분에 기업과 변화를 받아들일 때의 기업 문화가 어떨지 궁금해졌다. 당장은 재무적으로 크게 성공중인 애플도 큰 폭의 변화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이다.

Turn, turn, turn

애플 기업 문화는 현재 스티브 잡스가 대부분 정의내린 것으로들 알고 있다. 기존 기술을 활용하여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한 다음 누군가 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에 집중하는 애플의 기업 문화는 90년대 거의 사망할 뻔했던 시절에서 화려하게 부활했을 때 애플의 특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변화에 대한 수용과 미래에 대한 집중은 애플이 가진 가장 감탄스러운 성격이었다. 잡스의 복귀 이후 애플은 월계수관에 절대로 안주하지 않고 뭔가 새로운 것으로 진전하는 대신 옛날 기술로 우유나 짜내는 기업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스티브 잡스의 한 마디는 기조연설에서 나왔거나 (정말 놀라운)스탠포드 대학 졸업연설에서 따온 말이 아니다. 1997년 애플이 거의 박물관 수준으로 그동안 애플이 만든 서류와 물품을 모두 보존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저널리스트인 스티븐 레비(Steven Levy)에게 했던 말이다. “난 다 치워버려라고 말했죠. 그리고 그 쓰레기들을 죄다 스탠포드로 보내버렸어요. 이 사업에서 뒤를 돌아봤다가는 망합니다. 앞을 봐야 해요.”

스티브 잡스 기조연설에서 좋아하는 순간도 그때였다. 제일 성공작 아이포드를 이제 그만 생산한다고 발표하는 순간이었다(아이포드는 본질적으로 제일 성공한 애플 제품이었다). 물론 아이포드 미니는 더 얇아진 아이포드 나노로 교체될 뿐이었지만, 애플이 정말 잘 나가고 있는 제품으로 업계를 이끌고 있던 중이라는 사실이 주안점이었다. 애플은 적어도 그 발표를 좀 늦출 수 있었다. 하지만 애플은 기준을 스스로 높였다.

애플의 기업 문화와 변화를 받아들이는 다른 사례도 매우 풍부하다.난 애플이 맥 판매 잠식의 가능성에 대해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채로 아이패드를 발표했던 방식도 좋아한다. 이 교훈은 웹 초창기 시절, 인쇄 매체에 집중한 언론사에서 일할 때 배웠었다. 기존 사업에 대한 잠식을 두려워하여 변화에 저항한다면, 결국 자기 자신의 잠식이 아니라 남들에게 잠식당한다는 교훈이다.

IDG와 Ziff-Davis라는 기술 업계의 거대한 두 출판사가 웹 이전에 대해 발을 헛딛은 이유가 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 (웹을 수용해야 한다고 제안했을 때, Ziff-Davis의 한 디지털 임원이 미래는 CompuServe에 있다고 했었다.) CNET은 두 거대 출판사들의 실패 후 지배자로 떠올랐었고, 두 출판사는 핵심 사업을 보호하지 못 하여 잠식당하고 교체당할까봐 너무 두려워했었다. 물론 마침내 깨닫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스스로 변화의 기수가 되는 편이 낫다.애플은 여전히, 기꺼이 변화하고 있으며 바로 그점이 정말 내게 힘을 주는 듯 하다.

Living in a post-Jobs world

오늘날 애플의 가장 큰 도전은 뭔가 좀 아이러니한 점이 있지만 스티브 잡스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 잡스를 깨야 한다는 사실을 잡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스티브라면 뭘 했을까”라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마비시키지 말라고 팀 쿡에게 당부했었다.

스티브 없이 계속 해야 할 일이며, 잡스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바꿔야 할 일이기도 하다. 물론 잡스 스스로도 항상 자기 결정을 번복했었지만 그가 이제는 없으니 애플의 다른 사람들이 용기를 갖고 잡스의 예전 결정과 정책을 바꿔야 할 일이다.

잡스의 세상이 신성 불가침이고 변화가 불가능했다면, 아이폰 6 플러스와 아이패드 미니, Beats 인수는 일어나지 않을 일 세 가지이다. 팀 쿡은 또한 애플의 자선 프로그램도 바꿨다.

기업 문화 바꾸기는 정말 어렵다.다행히도 애플은 변화 자체가 그 문화이다.잡스가 내린 결정을 다시 검토하면서,애플의 현재 임원진은 실질적으로 잡스를 공경하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잡스가 후계자들에게 정말 강력한 선물, 그러니까 뭘 해도 좋다는 백지수표라는 선물을 줬기 때문이다.

애플이 시애틀에 온라인 서비스 팀을 구축중이라는 소식도 가능한 변화의 사례 중 하나이다. 잡스는 애플 팀이 쿠퍼티노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인물이고, 오에스텐 개발 초기 시절, 그는 엔지니어들에게 캘리포니아로 다 오든지 아니면 애플을 떠나라고 했었다.

모두가 물리적으로 같은 사무실에 있어야 한다는 잡스 시대의 철학이 과연 사라졌는지는 종종 의심하곤 한다.모두가 들어가는 본사 사옥의 개념으로 50억 달러를 들여 새 사옥을 짓고 있다면 당연히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애플이 잡스 최후의 대형 프로젝트에서 후퇴중이리라 생각하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애플이나 다른 곳의 기술 덕분에 우리는 이제 먼 곳에 있는 직원들과 함께 맥월드를 운영할 수 있게 됐으며, 괜찮게 돌아가고 있다. 현재의 집-사무실 공간에서 맥과 인터넷, 그리고 Gmail과 Slack, Google Hangouts, Skype, iCloud, Dropbox 등 여러 훌륭한 소프트웨어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애플이 과연 그 근본적인 성격도 바꿀 수 있을까?

아마 아직은 아닐 테지만… 앞으로는 모를 일이다.그래서 내가 애플을 오늘까지도 계속 인정하는 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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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on Snell
Former lead editor at Macworld for more than a decade, wrote about Apple and other tech companies for two decades. Now I write at Six Colors and run The Incomparable podcast network, which is all about geeky pop culture, and host the Upgrade and Clockwise tech podca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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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more.com/apple-and-agents-chang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on Tuesday, Oct. 22, 2013, in San Francisco. (AP Photo/Marcio Jose Sanchez)

on Tuesday, Oct. 22, 2013, in San Francisco. (AP Photo/Marcio Jose Sanchez)

비즈니스위크, 팀 쿡 인터뷰

Tim Cook Interview: The iPhone 6, the Apple Watch, and Remaking a Company’s Culture

By Brad Stone and Adam Satariano on September 17, 2014

스티브 잡스 사무실은 그대로 스티브 잡스의 사무실로 남아 있다. 2011년 사망 이후 그의 친구이자 애플 CEO 승계자인 팀 쿡은 1 Infinite Loop 4층에 있는 거의 장식 없는 그 사무실을 남겨두기로 했다. 추모의 장소로서가 아니라, 누구도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다거나 채우리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놔둬야 옳다고 느꼈어요. 거기는 스티브의 사무실이죠."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캠퍼스의 다른 나머지 거의 모두는 달라졌다. 애플의 격정적인 공동 창업자의 변덕스러움에 종종걸음을 치고, 초조한 에너지를 뿜어냈던 분위기는 이제 옛날 일이다. 남부 신사인 새 보스의 침착함이 반영된 복도는 이제 조용하다. 단 계단 아래 카페테리아는 와글와글 하다. 직원이 거의 두 배가 늘었기 때문이다. 1 마일 떨어진 울타리 뒤에서는 건설 노동자들이 애플 직원 1만 2천 명을 몇 년 후에 채울 "우주선" 원형 캠퍼스의 거대한 기반을 닦는 중이다.

9월 9일까지 세상에서 제일 가치가 높고 면밀하게 검토를 받는 회사의 변화는 일반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그때 팀 쿡은 플린트센터의 무대 위에 올라 지난 3년간 애플이 해오던 것을 공개했다. 공개하자마자 새로운 아이폰 6와 큰 화면의 6 플러스의 사전주문은 기록적이었다. Bank of America와 Capital One, JPMorgan Chase, Wells Fargo 등의 은행과 주요 신용카드사, 전국적인 소매망은 새로운 모바일 지불 시스템인 애플페이를 홍보하고 나섰다. 심지어 쿡 시대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려는 첫 시도인 애플워치 조차 긍정적인 초기 반응을 끌어내는 중이다. 2015년에나 시판에 들어가서 테스트를 받을 텐데도 말이다.

쿡은 결정적인 승리라고 기꺼이 선언하고 싶어한다. "어제 소식을 보셨으면 쿠퍼티노의 혁신은 살아 있고 잘 돌아간다고 모두들 말할 겁니다." 그의 사무실 옆 회의실 의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쿡은 의심이 있었다면 이제 그 의심을 접어둘 때라 말했다.

제품 발표의 뒤에는 다른 이야기가 있다. 3년 전 쿡이 잡스로부터 자리를 받았을 때 쿡이 애플을 계속 최고의 상태로 운영할 수 있을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아이폰은 애플 매출의 절반 이상, 총이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구글의 무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운영하는 삼성전자 외 기타 기업들의 급부상 때문에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점유율은 줄고 있었다. 애플 사업의 대거, 1980-90년대 PC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에게 패배 당했던 때처럼 보였다.

쿡의 전문 분야는 공급망 관리이지 무질서하면서도 복잡하고 자아로 가득한 조직을 이끄는 기업의 변화가 아니었다. 한 전임 애플 임원은 새로운 보스가 기업 역사상 터무니 없어 보이는 줄타기를 해냈음을 인정받기 바란다고 반복적으로, 단호하게 말한다. 인터넷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수석 부사장인 에디 큐는 팀의 팀 일부라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외부에서 좀 인정만 해주면 정말 좋겠어요. 정말 앞으로 이룰 일보다 인정을 훨씬 더 많이 받으실 자격이 있습니다."

쿡이 이상적인 상황에서 애플을 지휘하기 시작하진 않았었다. 월트디즈니의 CEO이자 애플 이사이기도 한 로버트 아이거(Robert Iger)는 팀이 온갖 기대를 안고 CEO 직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당시 애도의 분위기가 매우 깊었다고 말한다. "애도 분위기 때문에 팀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승계가 어려웠죠. 그는 증명해야 할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쿡이 물려 받은 회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 마케팅, 재무로 각각 특화된 그룹화가 되어 있었고, 모두들 따로 작업하면서 서로 정보를 거의 나누지 않았었다. 사실 필요하지도 않았다. 잡스의 머리 속에 있는 중요한 비전 때문이었다. 잡스가 사망했던 당시 애플에 있던 사람들은, 강력한 중심을 위에서 잡지 않으면 이렇게 탈중앙화된 구조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고 말한다. 첫 수개월간 아무도 큰 결정을 내릴 분명한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팀 간의 주도권 싸움도 격렬했다.

하지만 쿡이 드디어 결정적인 시기를 잡았던 때는, CEO가 된지 1년 후, 잡스가 가장 신뢰했던 임원 중 하나였던 스콧 포스탈을 쿡이 해고했을 때였다. 포스탈은 아이패드와 아이폰 소프트웨어 개발을 맡고 있었다. 그는 불화를 일으켰으며, 반응이 별로였던 애플 지도와 시리 음성인식 서비스의 책임을 지고 있었다. 해고가 발표됐을 때 애플 내부에서는 귀에 들릴 정도로 분위기의 차이가 컸다고 한다. 쿡은 곧바로 새 구조가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회의를 위해 수석 임원들을 소환했다. 애플 디자인 책임자인 조너선 아이브가 iOS의 룩앤필의 통제를 맡으면서, 모바일 운영체제 개발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부 수석 부사장 크레이그 페더리기의 맥 소프트웨어 개발과 합쳐졌다.

"우리가 애플에서 해야 하는 일은,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상호 간의 벽을 무너뜨리는 계획으로서 정밀한 실행으로 내부 싸움을 없애는 계획이었다. 쿡은 포스탈에 대해 나쁘게 말할 것은 없으며, 후회도 없다고 말했다.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10년 전의 쿡은(현재 53세이다) 이를테면 커크(Kirk)에 대한 스팍(Spock)의 역할, 그러니까 잡스의 논리적이고 냉철한 보조자라는 인상을 줬었다. 그러나 쿡은 그런 이미지를 부정했다. 그는 애플 직원들에게 다가가 회사 내에서 셀카도 같이 찍고 일정에 설사 구멍이 생기더라도 그들의 모든 질문에 답을 해줬다. 그는 또한 오번(Auburn) 대학교 미식축구팀으로부터 사회정의에 이르기까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감정 표현도 했었다. 신뢰할 수 있는 친절함으로 쿡의 행실이 애플 사풍(社風)으로 이어졌다고 쉽사리 추측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자신이 CEO감임을 증명한 것은 아니었다.

Photograph by Geordie Wood for Bloomberg Businessweek
Cook at 1 Infinite Loop

협력은 가치가 될 수 있지만 쿡은 협력이 오히려 전략적인 의무라 주장했다. 쿡은 수 천 명의 직원들을 제휴하게 함으로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 간의 구분이 흐려졌거나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모두가 다 같이 잘 협력해야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그저 같이 잘 하는 것이 아니고, 거의 함께 섞여서 누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돼야 해요. 기능적인 관점을 갖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경험에 너무나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여러 다른 애플 장비 간에서 넘나드는 서비스로 나타나고 있다. 아이폰 6와 새로운 iOS 8, 그리고 맥오에스텐 요세미티 운영체제에는 연동성(Continuity)이라는 기능을 갖고 있어서 이메일같은 뭔가를 맥에서 하다가, 아이폰에서 그 메일을 건네 받아서, 아이패드 혹은 심지어 애플워치로도 받은 메일을 작성할 수 있다. 쿡은 예전 모델에서 그런 기능은 개념상 불가능했었다고 한다. "이 새로운 제품들 보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애플에서 우리가 하는 일을 다른 곳에서는 못 하죠."

애플페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아이폰의 터치ID 스캐너에 손가락을 대고 신용카드 터미널에 아이폰을 대면 휴대폰을 켜거나 앱을 열 필요 없이 지불이 가능해진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조합한 제품에 대한 집중이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이다. 회사로서는 중요한 테스트이기도 하다. 애플에게는, 사용하기 쉬운 서비스의 측면에서 좋은 성적을 낸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클라우드와 아이튠스, 시리와 같은 제품에는 애플 기기와 같은 직관적인 윤기가 나지 않으며, 사진 관리로부터 금융거래 보안까지, 소비자들은 그리 너그럽지 않다.

새로운 아이폰은 휴대폰으로부터 점포의 지불 터미널로 단거리 무선 신호를 통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NFC(near field communication) 기술을 사용한다. 소프트웨어가 사용자의 신용카드 정보를 아이폰 안에 갖고 점포와 직접적으로 카드 정보를 공유하지는 않는다. 애플 온라인스토어를 관장하는 제니퍼 베일리(Jennifer Bailey) 부사장은 은행과 신용카드, 소매점들에게 애플페이 시스템이 이전까지의 어떠한 모바일 지불 시스템보다 보안을 지키고 직관적이며, 게다가 실제로 수 천 만 명의 아이폰 사용자들이 실질적으로 사용하리라는 점을 작년 초부터 홍보했었다. 그 결과 애플은 주요 은행과 신용카드사, 맥도날드와 월그린과 같은 전국 체인점과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마스터카드의 모바일 및 신흥지불부 수석 부사장인 제임스 앤더슨(James Anderson)은 첫날부터 대규모로 개시할 요량이었다고 말한다. "애플은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얼마나 간단하게 해야 하는지의 비전을 확실히 갖고 있었습니다."

쿡의 문화도 모두에게 맞지는 않다. 애플을 나온 한 전직 수석 디자이너에 따르면 화면상의 아이콘 모양까지 디테일 하나 하나 신경 썼던 잡스에게 익숙해져 있던 애플이 더이상 전과 같지 않다고 한다. 애플이 워낙 크게 자라나서 소규모 그룹에서 만들던 제품을 이제 여러 팀들이 맡아서 하기 때문에 자기는 떠났다고 한다. 재무 원칙에 대한 쿡의 고집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한 번은 제품 검토라는 신성한 회의에서 그는 관리자들에게 지출 및 고용 예측을 물어봤었다고 한다. 재무와 운영 직원들도 이제는 엔지니어 및 디자이너들, 핵심 부품 파트너들과 제품 로드맵 세션에 나란히 같이 앉는다.

또한 쿡은 자기가 가장 전문성을 갖는 부문을 여전히 미시-관리 하고 있다. 여전히 그는 애플의 거대한 공급망을 맡고 있는 임원들과 금요일 오후 회의를 개최하고 있으며 CEO가 되셨으니 이제는 가차 없는 세부사항 질문을 안 하시겠지라 희망했던 이들의 원성을 사고 있기도 하다.

애플 임원 사무실의 검정 가죽 의자에 앉은 조니 아이브는 코를 비비며 말했다. "제 9월 알레르기를 용서해 주시죠." 지난 15년이 넘도록 아이브는 오리지널 아이포드(2001년), 아이폰(2007년), 아이패드(2010년)의 룩앤필을 관장해 왔던 아이브라는 이름 자체에 불필요한 문자가 없이 딱 3글자다. 그의 미학에 들어맞는 이름이다. 아이브는 기대하던대로 여리지만 정확한 말씨를 가졌다. 스웨드 가죽으로 만든 두터운 처커(chukka) 구두를 신고 헐겁게 입은 파란-하얀-줄무늬의 도장공 바지, 파란색 티셔츠에 안경을 목에 걸고 나타난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디자이너를 얼핏 보면 싱크대 수리공으로 알 수도 있었다.

손가락에 끼우는 쇳조각 스타일로 싸여진 애플워치와 함께, 아이브는 애플워치 프로젝트를 3년 전 연구소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잡스 사망 직후였고, "웨어러블"이 실리콘밸리의 유행어가 되기 전이었다. 아이브는 애플워치가 아마 제일 어려운 프로젝트 중 하나였으리라 말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엔지니어링의 복잡성과 시계-인간 신체 간의 물리적인 상호작용의 필요성만이 아니라 애플워치가 미래라기보다는 과거 지향적으로 보이는 애플 최초의 제품이라는 점이 제일 신경 쓰였다고 한다. 애플은 프랑스의 고전 시계 전문가 도미닉 플레숑(Dominique Fléchon) 등 시계 역사가들을 본사로 불러들였다. "플레숑은 시간 측정 수단의 철학이 포함된 논의를 얘기하고, 애플워치가 클래식 스위스 시계만큼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지는 않으리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기술 발전은 애플워치를 곧바로 구식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빠르게 변하겠죠."

47세의 아이브는 그간 시계의 역사에 흠뻑 빠져 있었다. 처음의 시계는 마을 중앙 탑 맨 위에 걸렸다가 점차 소형화됐고, 벨트 버클, 목걸이, 바지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변했다. 그리고는 결국 손목으로 이주했는데, 처음에는 선박핸들을 항상 잡고 있어야 하는 선장들이 시간을 알기 위해서 손목에 찼었다고 한다. 아이브의 얘기다. "손목까지 오는 데에만 수 백 년이 걸렸고, 더이상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다는 점이 정말 흥미롭더군요. 손목이 이 기술의 올바른 종착점인지 물을 겁니다."

아이브의 팀은 아이폰을 위해 발명했던 손가락으로 확대하는 터치 화면을 처음에 적용해 봤으나, 화면이 너무 작았고 손가락이 화면을 다 가렸었다. 그래서 프로젝트 1년 후, 아이브의 팀은 애플워치의 물리적인 기능을 보여주는 "디지털 크라운"을 갖고 놀기 시작했다. 디지털 크라운은 전통적인 손목시계에서 시간 설정할 때 쓰이는 용두를 바꾼 것이다. 크라운을 누르거나 돌리면서 홈 화면으로 돌아가거나 확대, 앱 스크롤을 할 수 있다.

시계는 기능 만큼이나 패션이기도 하다. 아이브와 동료들은 디테일에 대한 집착을 담아 다른 재료로 만든 세 가지 컬렉션과 각자의 기능을 가진 7가지 시계줄을 디자인했다. 아이브는 가령 특별한 보석상의 툴이 없다 하더라도 버튼 두 개를 눌러서 스테인리스 스틸 줄을 빼내는 링크를 시범하면서 아버지의 가족적인 자부심을 갖고 시계를 보여줬다. 엔지니어링의 측면에서 뛰어난 점은 또 있다. 애플워치의 포장 상자가 충전용 거치대로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자 안에 있는 전기유도 자석에 시계를 놓아 충전할 수 있다. (그러나 얼마나 자주 충전해야 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애플이 아직 시계의 배터리 수명 사양을 발표하지 않았다.)

지난 여름까지 애플 주가는 신제품이 없다는 우려 때문에 최고가에서 40%가 떨어졌었기 때문에 쿡은 프로젝트의 속도를 더 내기로 했다. (현재 $100 수준인 주가는 거의 손실분을 복구했다.) 애플 내부 관측통은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을 맡고 있는 댄 리치오(Dan Riccio)가 시계 프로그램을 맡을 적임자라는 평이었으나, 쿡은 51세의 애플 운영부 수석 부사장인 제프 윌리엄스(Jeff Williams)를 지정했다. 윌리엄스는 쿡의 명령에 따라 가서 폭스콘이나 다른 제조업체들과의 인수나 협상을 하는 인물로서, 아시아의 공장들로부터 전세계 스토어에 수 백만 제품을 전달하는 유통도 맡고 있다. 그는 묘하게 쿡의 복제같은 인상이다. 키가 크고 목소리가 부드러우며 운동 매니아에 운영 디테일에 대한 무궁무진한 기억력을 갖고 있다. 쿡과 윌리엄스 모두 듀크 대학교 MBA이며 IBM에서 커리어를 보냈었다. 새로운 애플에서 그가 팀 쿡의 팀 쿡인 셈이다.

윌리엄스는 매킨토시와 아이폰을 만들어낸 소규모 그룹과 거의 연관성이 없는 팀을 건네 받았다. 매킨토시와 아이폰의 경우에는 워낙 비밀주의였기 때문에 스스로를 이탈자로 여겼었다. 하지만 애플워치 팀에는 수 백 명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 마케터 등 회사 전반에 걸쳐 여러 종류의 팀원들을 모았고, 이런 형태의 팀 구성은 쿡 치하에서 이제 일반적이다. 천 명 이상의 칩 디자이너가 있는 애플은 시계용으로 새로이 S1 프로세서를 만들었으며, 맥과 아이폰 케이스를 책임졌던 금속공학자들이 시계의 프리미엄 모델에 쓰일 더 강력한 금 합금을 디자인했다.그리고 애플의 알고리듬 과학자들은 시계의 심박 센서 정밀성 개선을 연구했다.

윌리엄스는 가차 없이 2014년 휴가 시즌까지 시한을 정해 놓았었다. "우리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원했습니다. 심지어 네 번째, 다섯 번째 제품을 내놓는 경쟁사도 있지만 아무도 그들이 만든 걸 안 차고 다니죠." 윌리엄스의 말을 이어 받아 쿡은 솔직히 말해서 시계를 훨씬 더 빨리 만들 수도 있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 제품의 핏과 마감, 품질, 통합에 안 맞았겠죠. 그래서 우리는 기꺼이 기다렸습니다."

애플 비판가들(그들은 존재한다)은 애플워치의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혼란스러우며, "킬러 앱"이 있는지 전적으로 불확실하다 말한다. 뭔가 애플워치가 스마트폰보다 정말 나은 구석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349가 시작가인 가격은 2년 약정의 아이폰 6 가격보다 더 비싸기도 하다.

Photograph by Geordie Wood for Bloomberg Businessweek

특히나 애플이 자기 건강이나 삶의 질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도울 잠재력을 자랑하면서부터, 쿡은 애플워치를 더 싸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지만("인도주의의 커밍아웃이죠."), 애플의 거대한 이윤 마진을 희생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쿡은 자기 직원들이 더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고용주들이 애플워치를 보조해주리라는 이론을 내세웠다.) 그렇다면 패션의 요소가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NewDealDesign 사장인 애밋(Gadi Amit)의 말이다. "남자들은 좀 여성스럽다고 볼 수 있을 테고, 여자들은 너무 남성적일 수 있으며 좀 크지 않나 볼 수 있을 겁니다."

쿡은 소비자가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고 일상을 개선 시키는 방식으로서의 애플워치와 항상 끼고 있는 텔레비전 및 가정 전자기기, 온라인 관계의 리모콘으로서의 애플워치를 그리고 있다. "매우 먼 길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애플의 3월 주주총회에서 보수적인 투자를 하는 National Center for Public Policy Research의 대표가 쿡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제품으로부터 위해한 화학물을 제거하고 탄소중립적인 공장 설립의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렇다면 투자 수익은? 쿡은 좀처럼 볼 수 없는 짜증을 보여줬다. "투자수익(ROI) 따위는 생각 안 합니다. 당신이 제게 ROI만을 따지기 원하신다면, 투자를 다 물리십쇼." 청중은 요란한 박수로 화답했다.

지난해 쿡은 애플의 환경 이니셔티브를 이끌기 위해 전직 국가환경보호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국장이었던 리사 잭슨(Lisa Jackson)을 고용했다. 그는 기꺼이 직접 앨러배마 톤으로 나레이션을 입힌 환경 효과 영상을 만들기도 했지만, 내부적으로 충격을 미치지는 못 했었다. 잡스도 종종 기후 충격과 같은 주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제스처를 보인 적이 있었다. 2005년 더 재활용이 가능하게 만든다거나 화학물을 충분히 제한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잡스는 "헛소리"라고 묵살한 적도 있지만 말이다.

기업 책임의 문제에 "기본적으로 열린 자세"이어야 하고 고객에게 중요한 일에 개입해야 한다는 쿡의 주문도 있다. 쿡의 설명이다. "예전 애플에서라면 그저 조용히 아무 말도 안 한 채, 완수된 것만 얘기하는 분위기였죠. 사회적 책임 문제를 포함하면… 그런 모델은 작동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저는 100% 투명해질 겁니다." (물론 애석하게도 그 투명성이 애플 제품 계획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제품 계획에 대해서는, 더 비밀을 지킬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만, 불행히도 루머가 저를 약간 앞서가겠죠.")

8월, 애플은 사내 다양성 보고서를 공개했다. 직원 수가 백인 및 아시아계 남성에게 치우쳐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보고서를 공개하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만 제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회사가 아니며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분명히 말해주니까요. 그걸로 족합니다." 애플은 올해 내부 감사에서 이민 노동자 착취와 미성년 노동자 고용과 같은 일을 문서화하는 등, 중국 내 공장 노동조건을 계속 고심하고 있다.

다른 종류의 개방도 있다. 쿡은 필요한 경우 제품 수요를 증대 시키기 위해 외부 파트너십을 기꺼이 찾는 등,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려 한다. 7월, 애플은 오리지널 숙적이었던 IBM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대기업에 판매하고 특정 산업용 사무앱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이 계약은 애플에게 자기 기기, 특히 아이패드를 판매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결과였다. 아이패드는 지난해 애플 매출의 20%를 차지했지만 최근 분기들어 놀라울 정도로 저조를 보이고 있다. IBM의 CEO인 지니 로메티(Ginni Rometty)는 쿡을 "현대 CEO의 모범(hallmark)"이라 불렀다. 무엇을 할지와 무엇을 하지 말지를 알고 비전을 분명히 갖고 있어서이다.

쿡은 애플에게 더 많은 기업 고객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양복 입은 영업사원을 더 많이 고용하지는 않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파트너를 찾았던 것이다. 쿡은 IBM과의 사업이 완벽한 계약이며, 양사 모두의 강점을 활용하고 겹치는 분야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컨설팅 사원 10만 명을 원하지 않습니다. IBM 스마트워치요? 아마 보고싶지 않으실 겁니다. 끔찍하겠죠. 아마 [로메티도] 인정할 걸요."

최근 들어 AT&T와 같은 통신사 수 백여 곳과 협업하는 등, 애플은 남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어렵게 배웠다. 애플의 통신사 파트너들은 선천적으로 속이고 완전히 지배당하지만 엄청난 모험에는 결국 어울리는 약간 어린 남동생들과 같다. 통신사들은 쿡의 애플이 여전히 비밀주의적이고 눈길을 끌 수 있다고 말한다. 단, 개인적인 존재감을 더 드러내면서 말이다. 2007년 아이폰이 처음 나오기 전부터 쿡과 같이 일해온 AT&T Mobility의 CEO, 글렌 루리(Glenn Lurie)는 팀이 어려운 협상가라 말한다. "그는 매우 일관성이 있어요. 그래서 그와 함께 사업하기가 정말 쉬워집니다."

애플은 또한 또다른 종류의 외부 도움을 찾으려 하고 있다. 지난 수개월간 애플의 전방위적인 고용은 시계 회사 Tag Heuer의 최고 영업책임자였던 파트릭 프뤼니오(Patrick Pruniaux), 전직 Yves Saint Laurent의 CEO였던 폴 드네브(Paul Deneve), Burberry의 전직 CEO인 앤젤라 아렌츠(Angela Ahrendts)를 망라한다.

시계를 사치재의 가격으로 어떻게 하면 잘 파는지 아는 사람들을 찾는 것만이 아니다. 애플 내부에 다양한 관점을 투입하는 목적도 있다. 애플 최대의 주주이자 올해 초여름부터 애플 이사진에 합류한 자산관리 기업인 BlackRock의 창업 파트너인 수잔 와그너(Susan Wagner)는 쿡이 여러 부류의 인재를 찾는 데에 대단히 집중했다고 말한다. "다양성을 생각할 때 딱 떠오르는 그런 방식이 아니에요. 경륜과 숙련성, 관점을 모두 보는 것이죠."

애플이 5월, 30억 달러에 Beats Electronics를 인수했을 때 힙합 가수인 닥터 드레(Dr. Dre)와 함께 들어온 인재인 지미 아이오빈(Jimmy Iovine)은 쿡이 우리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진솔하게 말할 줄 아는 인물이라 말했다. "그래서 그가 와서 우리를 데려갔죠."

Beats는 패션으로서의 헤드폰(가격이 너무 높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과 무선 스피커로 지난해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이런 회사를 애플이 인수한 것이며, 쿡은 인수한 다른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아이튠스에서의 단일곡 다운로드가 쇠퇴하고 Pandora와 같은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가 뜨면서, 애플이 디지털뮤직을 다시금 세우는 데에 Beats가 갖고 있는 쿨함으로부터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플린트센터 옆에 세워진 새하얀 시연용 건물에서 기자와 유명인들에게 아이오빈이 직접 애플 제품 소개를 했었다. "음반 산업은 음악만큼 매력적인 전달 시스템이 절실합니다."

아이오빈이 설명할 때 그웬 스테파니(Gwen Stefani)가 그의 주목을 끌려 노력했지만 아이오빈은 알아차리지 못 했었다. 그는 자신의 새 동료들이 하이패션과 하이테크를 어떻게 판매하려 하는지 설명하는 데에 몰두해 있었다. "이 친구들은 그냥 고용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해하려 하고 우리를 투입하길 원해요. 전부 다 투입을 위해 우리에게 왔던 것입니다."

쿡은 자신의 취임 이래 가장 큰 도박인 애플워치를 고객들이 결국 평가해 주리라는 점을 인정했다. "첫날, 혹은 첫번째에 바로 알 수는 없겠습니다. 새로운 제품은 영화같지 않아요. 영화는 첫 번째 주말 관객으로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고객들이 당혹해 하거나 반응이 엇갈리면, 쿡의 제품 선정에 대한 의문 및 애플의 혁신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다시금 잔인하게 돌아올 수 있다.

다른 과제도 있다. 애플의 최고 인재들 유지하기이다. 마케팅 책임자인 필립 실러와 아이튠스 및 앱스토어를 운영하는 에디 큐와 같은 오랜 임원들은 언제든 수 억 달러를 챙겨서 은퇴한 다음 자동차 취미에 몰두할 수 있다. 거래를 알고 있는 소식통에 따르면, 잡스의 미망인으로부터 아이브가 잡스가 갖고 있던 15인승 걸프스트림 제트기를 상당한 할인가로 사들였다고 한다. 잡스가 걸프스트림 제트기를 살 때 인테리어를 도왔던 아이브는 친구에게, "적어도 새로 디자인할 건 없겠어"라 농담했다고 한다.

아이브가 회사를 나가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생각하는 전직 애플 임원들이 있기는 하지만, 유명한 디자이너이자 아이브의 친구인 마크 뉴슨(Mark Newson)의 최근 영입이 아이브가 당분간은 애플에 남으리라는 증거라는 말도 있다. 애플 대변인은 아이브의 계획에 대한 코멘트를 거절했으며, 실러는 팀이 항상 같이 있으리라 얘기했다. "애플의 우리들 모두 제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세계 최고의 제품을 최고의 회사에서 만들고 있다고 보고 있어요."

현재로서 쿡은 과거 3년 동안의 순간과 관심을 느긋하게 즐길 뿐이다. 9월 9일 이벤트 직전, 플린트센터의 무대 뒤에서 쿡은 하얀색 이어폰을 끼면서 자기 아이폰으로 OneRepublic의 노래, "I lived"를 들으며 자신을 다독이고 있었다. “Hope when you take that jump, you don’t fear the fall … / Hope when the crowd screams out, they’re screaming your name.”


Stone is a senior writer for Bloomberg Businessweek in San Francisco. He is the author of The Everything Store: Jeff Bezos and the Age of Amazon (Little, Brown; October 2013). Follow him on Twitter @BradStone.

Tim Cook Interview: The iPhone 6, the Apple Watch, and Being Nice – Businessweek

임원 사진이 안 나온 사람들 중…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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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 Partinen은 노키아 루미나의 이미징/사진처리 기술 책임자였습니다. 올해 5월에 들어갔으니 안그래도 좋은 아이폰의 이미징 처리가 앞으로 더욱 더 좋아질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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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an Bailey는 사진이 잘 안 나오는데 나이키 웨어러블 담당이었습니다. 올해 7월, 애플에 들어왔습니다. John Gale도 이때 같이 들어왔는데 그의 사진은 검색에 안 나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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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ela Aguilar는 GAP의 이미지 바꾸기를 성공한(?) 인물이었습니다( “Dress Normal” 캠페인의 주역이었다고 하네요). 작년까지만 해도 GAP 관련 기사에 떠 있었는데 애플로 옮겼는지는 몰랐습니다.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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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CEO 팀 쿡이 바꾼 4가지

4 Ways Tim Cook Has Changed Apple As CEO

Victor Luckerson @VLuck 10:11 AM ET

2011년 8월 24일, 스티브 잡스가 애플 CEO를 사임했을 때 애플의 미래는 확실했다. 아이포드와 아이폰, 아이패드의 10년에 걸친 대성공 덕분에 애플은 이제 막 세계에서 제일 가치가 높은 기업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여론은 애플의 성공작들이 잡스의 천재성으로 태어났다고 여겼으며 고객은 물론 월스트리트의 분석가들은 부드러운 목소리의 승계자인 팀 쿡이 과연 애플을 더 높게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이제 3년이 흘렀고, 쿡은 회의론자들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최근의 강력했던 수익 보고서와 올 가을에 나온다는 아이폰 6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번 주 애플 주가가 전에 없이 높이 올랐을 때 쿡은 선물을 받은 셈이었다. 투자자들이 애플의 미래에 대한, 잡스와는 다르게 보이는 쿡의 비전을 사들이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Apple CEO Tim Cook walks off stage after speaking during the Apple 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 at the Moscone West center on June 2, 2014 in San Francisco, California.
Justin Sullivan—Getty Images

Only Cook Could Go to China

잡스는 애플 CEO로 있을 때 중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중국 방문은 쿡의 임무였고 잡스가 CEO로 있을 때 쿡은 수석운영책임자(COO)를 맡고 있었다. CEO로서 쿡은 정부 관료와 공장 조사를 위해 중국을 여러 번 방문하는 등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 중국을 보다 더 직접 다뤘다. 사실 방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업적도 있었다. 지난해 세계 최대의 통신사인 China Mobile과의 아이폰 공급 계약 체결이다. 중국에 대한 그의 집중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으며, 현재 중국은 애플의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 되어 가장 최근 분기에만 59억 달러의 매출액을 올렸다. Forrester의 허슨(Thomas Husson) 분석가는 이메일로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중국이 애플 최대의 시장이 되리라는 사실을 [쿡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Goosing Apple’s Stock Through Share Buybacks

투자자들은 애플에게 1,600억 달러에 이르는 거대한 현금을 더 잘 활용하라 주문해 왔었다. 워런 버핏이 했던 주식 환매 프로그램의 제안을 잡스는 무시했었지만, 쿡은 자사 주식 900억 달러 어치를 매입하는 계획을 시작했다. 투자자들은 현금을 쥘 수 있게 됐으니 행복해 했으며, 올해 초까지 확대됐던 동 계획 덕분에 애플 주가는 2012년 9월 이래 최고가를 행진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사실 올 회계년도의 첫 분기 때 180억 달러 어치의 매입으로 인해 애플 주가는 25% 상승했으며, 주식 환매를 시작한 이래 최고의 수익이었다.

Diversifying Apple’s Core Products

상대적으로 소수의 제품을 대량으로 판매한다는 사실이 애플의 재무적인 성공을 거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쿡은 아이패드(아이패드 미니)와 아이폰(아이폰 5c)의 더 저렴한 대안을 선보임으로써 이 전략을 수정했으며, 이들 개별 제품의 판매량을 애플이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모바일 마케팅 회사인 Fiksu에 따르면 아이패드 미니는 4월, 2위로 많이 쓰이는 아이패드 였다고 한다. 판매량만이 아니다. 새로운 제품 생산 비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마진이 높게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도 상당히 인상깊다. Edward Jones의 자본 분석가인 크리어(Bill Kreher)의 말이다. "잡스는 아이패드와 아이폰과 같은 히트 제품을 자체 개발하면서 정말 힘든 일을 해냈습니다. 쿡은 이들 제품을 확대 하면서 이윤도 개선시킬 수 있었습니다."

Increasing Apple’s Acquisitions and Partnerships

잡스 시절 애플은 인수를 거의 안 했으며, 얼마 안 되는 사례 또한 일반적으로 소규모였다. 반면 Crunchbase에 따르면 쿡은 임기 기간 동안 23개 기업을 인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인수도 30억 달러 어치의 Beats Electronics만큼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 했다. 이 인수가 인재 영입인지, 마케팅 전술인지, 혹은 애플이 자신의 창조적인 재능을 잃은 증명인지는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를 테지만, 적어도 쿡이 애플 외부의 도움을 두려움 없이 구한다는 점만은 사실이다. iOS용 기업 앱을 들여오기 위한 이전의 숙적 IBM과 최근 체결한 파트너십도 그 사례이다.

물론 투자자들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만큼 뭔가 획기적인 제품을 새로 내놓기를 요구하고 있다. 애플이 결국은 아이워치, 혹은 케이블 텔레비전과 경쟁할 TV 서비스를 선보이리라는 루머는 끊임이 없지만, 현재로서 아이폰 판매량은 전에 없이 드높고 투자자들의 주머니 또한 주식 환매로 두둑해졌기 때문에 월스트리트는 애플의 궤적을 만족해 하는 것으로 보인다. 크리어의 말이다.

"한편에는 비전가이자 혁신가였던 스티브 잡스, 다른 한편에는 훌륭한 실행가이자 사업계의 기린아 팀 쿡이 있잖습니까."

Tim Cook Marks 3 Years as Apple CEO – TIM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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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의 애플을 만들고 있는 팀 쿡

TECHNOLOGY
Tim Cook, Making Apple His Own

By MATT RICHTEL and BRIAN X. CHEN JUNE 15, 2014


Minh Uong/The New York Times

팀 쿡 애플 CEO는 1970년대 초반, 앨러배마의 한 작은 마을 청소년으로서 잊을 수 없는 뭔가를 봤었다.

10-speed 신제품 자전거를 몰고 집으로 오면서 쿡은 한 집 앞에 불타는 거대한 십자가가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한 흑인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었는데, 주변에 KKK 단원들이 하얀색 망토를 입고 인종주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아마 누군가 창문을 통해 뭘 던진 모양이었다. 쿡은 “멈춰!”라 외쳤다.

그러자 한 사내가 후드를 얼굴에서 집어 올렸고, 쿡은 그가 근처 동네 교회 집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깜짝 놀란 그는 페달을 달렸다.

지난 12월 연설에서 쿡이 했던 말이다. “불타는 십자가의 이미지가 제 머리에 계속 박혀 있었어요.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습니다.”

연설에서 그는 새로운 인식 덕분에 인생에서 뭘 하든지 간에 인권과 존엄성은 행동이 필요한 가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주제를 자기 회사, 애플로 돌렸다. 애플은 “휴머니티를 진전 시킨다”고 굳게 믿는 곳이었다.

Tim Cook receiving the IQLA Lifetime Achievement Award – YouTube
Tim Cook Receiving the IQLA Lifetime Achievement Award Video by Auburn University

53세인 쿡은 거의 3년 전, 애플의 존경 받는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사망 이후 애플을 물려 받았다. 월트 디즈니와 헨리 포드처럼 잡스는 곧 애플이었고, 애플은 곧 잡스였다.

당시 쿡은 무대 뒤에서 운영을 맡았다는 이미지였으며, 회사 바깥에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게다가 그는 상당히 사생활을 지키기에 십자가가 불탔으며 집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는 등의 일화는 친구들은 몰라도 공개적으로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청중에게 했던 이 이야기는 자신이 얼마나 느리게 자신의 스타일과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했는지를 말하기 위한 이야기의 아웃라인이었으며, 애플 리더십을 자신의 이미지로 어떻게 정의 내리는지에 대한 이야기의 일부였다.

본 기사를 위한 인터뷰를 거절한 쿡은 스스로가 세상의 각광을 받는 동시에 감시도 받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최근 애플은 뜻하지 않았던 문제에 부딪혔다. 애플의 매출이 워낙에 커진 나머지, 애플이 2010년 회계년도의 650억 달러에서 2013년 회계년도의 1,710억 달러에 이르는 매출 성장률을 지속 시킬 수 없으리라 우려한 투자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2013년 회계년도에서 애플의 매출 증가율은 9%에 불과했으며, 2004년부터 2013년까지의 평균 40% 증가세에 비춰보면 상당히 부끄러운 성적이었다. 이윤도 줄어들었고, 주가는 2012년 최고가에 올랐다가 2013년 중순에 절반으로 줄어들어 실적을 못 내고 있었다.

상당한 기대를 받는 아이워치나 아이티비와 같은 마술을 바라는 투자자들이 있으며, 마술을 바랄 때 그저 겉치레에만 신경 쓴다는 비판도 있었다. Oracle Investment Research의 수석 시장전략분석가인 로런스 발터(Laurence L. Balter)는 그랜드 디자인(grand design)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그에 따르면 쿡은 운영 및 원자재를 갖다가 물건을 만드는 공급망 관리에 훌륭할지 모르나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다. “우리가 쿡으로부터 듣는 소식은 훌륭한 제품이 나오리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발터는 애플이 일종의 “지브롤터의 암벽(Rock of Gibraltar)”라 칭했다. 1,506억 달러의 현금보유고 위에 앉아 있지만 고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던진 셈이다. 그는 이 현금이 성장 투자자를 위한 주식인지, 아니면 “과부”를 위한 현금고일지를 물었다.

“제품을 보여달란 말이에요. 기발함을 보여 줘요.”

투자자들의 신념을 강화 시키기 위해, 쿡은 주식을 분리하고 배당을 늘렸으며, 900억 달러 어치의 주식을 환매(buyback)했다. 덕분에 주가는 거의 전체적으로 상승했었다. 한편 그는 애플 제품을 잠재적으로 거대한 시장인 중국에 밀어 넣는다든지, 인력을 영입하고 30억 달러를 들여 Beats(닥터 드레와 지미 아이오빈과 같은 음악 업계의 거물을 영입한 의미가 있다)를 인수하는 등 회사를 강화하는 단계도 밟았다.

개인적인 관점을 반영하면서 쿡은 애플 브랜드를 넓히려 노력하는 중이다. 트위터나 기타 공적인 수단을 통해 환경 지원 및 동성애자 권리 행사도 지원했다(물론 오번 대학교 미식축구 팀도 포함된다). 그는 또한 회사 내 지속 가능한 제품의 사용을 강조하기도 했다. 임기 초, 그는 다른 기업들을 따라잡기 위해, 자선 기부를 한 직원들에 따라 회사도 지원을 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었다. 그는 회사 자체의 기부도 늘렸다.

애플의 디자인 책임자이자 스티브 잡스만큼 회자되는 이름인 조너선 아이브는 쿡이 애플의 임무인 혁신을 무시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솔직히 뭐가 바뀌었다고 보진 않습니다. 뭔가 새롭고 흥미로운 것에 대한 떠들썩한 요구도 포함되죠. 아이폰에 대해 작업하고 있을 때에도 똑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참기 어렵죠. 스티브도 참기 어려워 했습니다. 팀도 마찬가지에요.”

Spirit of Hardware Past

일부 사실도 있기는 하지만 잡스가 디자인 절차의 영혼이었다는 미신이 있다. 잡스가 애플 혁신 책임자였다는 의미다. 오리지널 아이폰을 만들 때 아이폰용 브라우저를 작업했던 프랜시스코 톨매스키(Francisco Tolmasky)에 따르면 잡스는 매주 엔지니어들과 만나서 확인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스티브는 정말 요지부동이었어요. ‘이건 마술 같아야 해. 다시 가라구. 이건 마술같지 않잖아!’라 말했었죠.”

잡스가 거의 매일 애플 캠퍼스에서 아이브와 함께 점심을 나누는 광경을 직원들도 봤었다. 아이브에 따르면 요새는 3일에 한 번씩 쿡을 만난다고 한다. 보통은 각자의 사무실에서이지만, 아이브는 디자인 절차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티브는 가치와 집착, 그리고 지속적인 분위기의 망을 이룩했어요.” 아이브에 따르면 뭣보다도 지금까지도 온전한 소규모 크리에이티브 팀이 제일이라고 한다. 재료와 제품이 한데 얽힌다는 철학은 쿡에서도 변함 없다. 아이브가 든 예는 이렇다. 애플이 티타늄으로 노트북을 만들기로 결정했을 때, 쿡과 잡스는 자기들이 원하는 룩앤필이 나올 때까지 금속의 한계까지 어떻게 밀어붙일지 고민했었다. 그리고 아이브는 또 한가지 지속적인 가치를 하나 지적했다. 제품에 대한 완전한 초점이다. 아이브의 말이다.

“잡스가 디자인에 광적이었다면 쿡은 조용히 고민을 합니다. 쿡은 시간을 충분히 잡고 주의 깊게 소화를 시킨 다음, 자기가 중요하다 여기는 사실을 증명하죠.”

더 낮은 직급의 직원들은 쿡의 접근방식과 능력을 칭송한다. 그러나 그가 전임자보다 제품 개발에 신경을 덜 쓴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들은 소위 “스마트워치”, 아이워치의 개발을 예로 들었다. 애플 소식통들은 세계를 휩쓸 차세대 제품에 목말라 하고 있다. 쿡은 워치 엔지니어링의 세부 사항에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그 대신 임원진 중 누구에게 위임을 준다는 것이었다. 동 프로젝트 관련자에 따르면 여기에는 아이브도 포함된다. 그들은 물론 언론에 대한 발언이 용인되지 않기 때문에 익명을 요구했으며, 애플 또한 시계 프로젝트에 대한 코멘트를 거절했다.

쿡은 예를 들어 심장 박동수나 주요 신체 정보를 감시하여 건강을 개선 시키고 병원 가는 일을 줄이는 등의 더 넓은 활용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시계는 4/4 분기에 나올 예정이다.

쿡은 또한 재능 있는 인재를 애플 바깥에서도 찾고 있다. 그는 Burberry의 전임 수장이었던 앤젤라 아렌츠(Angela Ahrendts)를 온/오프라인 애플 스토어의 책임자로 영입하고, 전임 Yves Saint Laurent의 CEO였던 폴 드네브(Paul Deneve)를 특별 책임자로 영입하는 등 업계를 가리지 않는 중이다. 그는 또한 전임 Adobe의 수석 기술 책임자였던 케빈 린치(Kevin Lynch), 건강 모니터링 장비를 만드는 Masimo Corporation의 의료기기 책임자인 마이클 오라일리(Michael O’Reilly)를 영입하기도 했다. Beats 사람들을 데려온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잡스와 친구이고 U2 브랜드의 아이포드 개발을 위하 잡스와 함께 긴밀하게 협력했던 U2 밴드의 리드싱어인 보노(Bono)에 따르면 쿡은 아프리카 자선 만큼이나 창조적인 인재를 끌어 모으고 있다고 한다. 보노는 현재 벤처 자본사인 Elevation Partners의 공동 창업자이자 관리 이사이다. “쿡은 자기가 잡스를 대체하러 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를 다섯 명으로 대체하려 노력중이다라고 말하죠. Beats 인수도 그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Craig Federighi, head of Apple’s software engineering. Mr. Cook has assembled a team of creative people — and has given them center stage. Credit Jim Wilson/The New York Times

그렇다고 하여 쿡이 제품 결정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가 CEO가 된 이래 애플은 여러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쳤다. 이중에는 더 작은 태블릿인 아이패드 미니도 있다. 애플 이사이자 디즈니 CEO인 로버트 아이거(Robert A. Iger)의 말이다. “세상이 더 작고 덜 비싼 태블릿을 좋아하긴 하지만요. 잡스는 아이패드 미니 같은 태블릿의 시장이 없으리라 생각했었죠.”

분석사들에 따르면 아이패드 미니 판매는 원래 크기의 아이패드를 빠르게 추월했다. Gartner와 ABI Research는 아이패드 미니가 나온 첫 해만에 아이패드 미니가 전체 아이패드 시장의 60%를 차지했다고 측정했다.

다만 제품 출하의 결과는 좀 복합적이다. 지난해 애플은 처음으로 새 아이폰을 한 종류가 아니라 두 종류로 선보였었다. 하이엔드 급의 아이폰 5s는 정말 잘 팔렸으나 저가형인 플라스틱 커버의 아이폰 5c의 매출은 실망스러웠었다.

다만 애플의 도전을 특히 주눅들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규모다. 매출이 워낙에 커서 아이폰 급의 강력한 제품이 새로 나온다 하더라도 투자자들이 익숙해 할 정도의 성장세는 안 나오리라는 점이다. Bernstein Research의 애플 전문 재무분석가인 토미 사코나기(Toni Sacconaghi)에 따르면 이렇다. 애플이 아이워치를 만들어서 첫 해에 1천만 개를 판매한다면 주가당 수익에 50 센트가 덧붙여질 뿐이며, 1% 포인트도 못 될 것이다. 그의 말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1천만 대가 뭔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만 애플한테는 그렇지 않습니다. 눈금을 움직이게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죠.”

MIT Sloan School of Management의 마이클 쿠수마노(Michael A. Cusumano) 교수는 애플이 더 이상 세계를 뒤흔들 제품을 만들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혁신에 대한 책을 준비중인 쿠수마노 교수는 지난 가을,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를 방문하여 십 수 명의 전현직 직원들과 애플에 대한 인터뷰를 했었다. 그는 잡스 없는 애플에 이질적인 아이디어를 전체적인 마술로 바꿀 비전가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잡스는 조각을 어떻게 한데 모을지 이해했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의 눈을 통해 필터를 거쳤죠. 애플이 뭔가 커다란 차세대 제품을 내놓기는 매우 어려울 듯 합니다. 영혼과 가슴을 잃었으니까요.”

‘Just and Right’


Inevitably, Tim Cook draws contrasts to the high-profile, hands-on style of his predecessor. Credit Justin Sullivan/Getty Images

잡스가 애플의 영혼이자 가슴이었다면 쿡은 스스로를 다른 종류의 리더로 자리매김하려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트위터 타임라인은 애플에 대한 놀라움과 인권, 환경에 대한 쾌활한 옹호로 채워져 있다. 그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연방 입법안을 지지하는 사설을 월스트리트저널지에 싣기도 했었다.

그는 종종 마틴 루터 킹과 로버트 케네디를 인용할 때가 종종 있지만, 정치적 관점의 원천에 대해서는 별다른 얘기가 없었다. 그가 지난 12월 했던 연설에서 쿡이 얘기했던 불타는 십자가로부터 추정할 수는 있겠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아주 많은 종류의 차별을 보고 경험해 왔습니다. 이 모두가 다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갖는 공포에 뿌리를 두고 있죠.” 애플은 쿡이 경험했다는 차별이 무엇인지 아려주기를 거절했지만, 불타는 십자가 발언에 대한 세부 사항만은 확인을해 줬다.

연설은 UN에서 이뤄졌으며, 그자리에서 쿡은 Auburn 대학교로부터 상을 받았었다. 그는 이 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 학위로 1982년에 졸업했었고, Duke 대학교에서 대학원 경영학 학위를 받는 동안 IBM에서 일했었다. 그리고는 Intelligent Electronics와 Compaq으로 갔다. 1998년 애플이 난관에 돌입했을 때 잡스는 쿡에게 접근했었다. 쿡의 2010 Auburn 대학교 졸업연설에 따르면 잡스의 제안은 “창조적인 천재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였다고 한다.

그는 2002년 전세계 영업 및 운영부 수석부사장이 됐으며, 2011년 CEO에 올랐다. 그때 애플만이 아니라 여러 기술 기업들의 중국 공장 노동조건에 대한 조사 강도가 올라가고 있었고, 2012년 4월 중국 노동자들의 자살 및 사고로 인해 애플보고 공장 노동 조건을 강화하라는 서명운동이 Change.org에서 일어났다(25만 명이 서명했다). 2006년부터 애플은 이미 여러 공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성 있는 행위에 대한 공개 보고서를 내고 있었으며, 2012년에는 주된 공급업체와 위치, 무엇이 만들어지는지는 물론, 100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 등에 대한 연간 목록이 들어간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선임 고문(senior advisor)인 발레리 자렛(Valerie Jarrett)은 쿡이 애리조나에 생산 플랜트를 짓고 있으며, 텍사스에 있는 하이엔드 급 맥 컴퓨터 생산 공장이야말로 해외로 유출됐던 일자리를 상징적인 기업이 크게 해 줬다고 평가했다. (절대다수는 여전히 미국 바깥에서 생산중이다. 가령 아이폰의 수 백여 부품 90%는 해외에서 만들어진다.) 자렛은 아이패드와 고속 인터넷 등 학교에 대한 기술 지원 1억 달러 기부도 칭찬했다.

Greenpeace의 수석 정책 분석관인 개리 쿡(Gary Cook)은 애플의 100% 재생에너지 사용도 칭찬했다. “애플의 데이터 센터는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돌아갑니다. 재생 에너지 사용에 있어서 제일 공격적인 회사가 됐죠.”

자원봉사 및 자선 프로그램을 돕는 비영리재단인 Causecast의 CEO인 라이언 스콧(Ryan Scott)은 쿡의 자선 프로그램이 “훌륭한 시작”이라 평가했다. 하지만 스콧은 동 프로그램이 “다른 기업들 만큼 크지 않다”면서 인력으로 보나 자금으로 보나 애플이 더 야망을 크게 가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비교해 볼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평균적으로 20억 달러 어치의 소프트웨어를 비영리 기관에 기부하며, 직원들도 1983년부터 시작된 기업 매치 프로그램에 따라 10억 달러 이상을 기부했었다. 지난 2년간 애플 직원들은 매치 프로그램을 포함하여 5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애플 역시 기업 세금을 최소화 시켰다는 등, 정부로부터의 불만도 받고 있다. (조세 문제에 대해 쿡은 작년 상원 패널에서, 애플이 미국 최대의 조세 부담 기업이며, 진만큼 지불한다고 밝혔다.) 지난 7월, 한 연방 판사는 애플이 전자책 시장에서 출판사들과 불법적으로 담합하여 값을 올리려 했다고 판결 내였다. 애플은 여기에 항소중이다.

Harvard Business School의 제임스 오스틴(James E. Austin) 명예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문제에 대한 쿡의 공개적인 강조는 가치와 가치 창조에 대한 기업 리더십에 새로운 태도를 출현 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의 Haas School of Business 켈리 맥엘해이니(Kellie McElhaney) 교수는 CEO가 사업적으로 뭘 하지 않은 채 무엇이 “올바른지”에 대해 거론하는 것이 “상당히 신경 쓰였다(gets nervous)”고 말한다. 도대체 누구에 대한 올바름이냐는 지적이다.

그런 시각을 갖고 있는 투자자들도 있다. 2월 애플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한 주주는(후에 스스로를 자유-시장에 가치를 둔다고 밝혔다) 쿡에게 애플이 분명한 이윤의 동기가 없는데도 환경을 옹호하는 정책을 피해야 하지 않느냐 물었었다.

쿡은 환경이 실용적인 이유이며, 회사에 좋아서 하는 것 뿐이라는 식으로, 여느 임원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명분은 보다 도덕적이었다.

“정당하고 올바르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그는 특유의 앨러배마 억양으로 느리지만 단호하게 대답했다. 모든 것을 투자 수익의 척도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배격한다는 의미를 명확히 한 것이었다. 그는 주주들에게 분명한 투자수익에 따른 결정을 원하신다면 보다 깔끔하고 단순하게 하기 위해 애플 주식을 팔라고 말했다.

당시 쿡의 말은 열렬한 박수 갈채를 받았다. 애플의 이사진인 앨 고어(Al Gore)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질문을 던졌던 저스틴 댄호프(Justin Danhof)는 CEO가 그런 식으로 대답하는 건 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에도 쿡의 발언을 실망스러워 한 칼럼니스트가 있었다. The Street의 로버트 웨인스타인(Robert Weinstein)이었다. 그는 쿡이 공격적인 럭셔리 기술 혁신가로서의 애플을 보다 박애주의적인 회사로 바꾸려 하는지 우려했다.

Lennon vs. Ringo

2주일 전, 쿡은 5천 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몰린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개발자회의(WWDC)의 무대 위에 올랐다. 이들은 아이폰과 기타 기기용 앱을 만드는 이들이었고 쿡은 그들에게 “앱스토어 개장 이후 가장 큰 업데이트”라 말했다.

개발자들에게 쿡은 그 업데이트가 뭔지 알려주기 위해, “제 동료인 수퍼맨을 무대로 초대하고 싶습니다”라 말했다.


Mr. Cook watched with Jonathan Ive, Apple’s design chief, and Dave Grohl of the Foo Fighters rock band as an attendee tried out one of the phones at a company event. Credit Justin Sullivan/Getty Images

물론 그동안 애플의 유일한 수퍼히어로는 잡스였다. 쿡이 어둠 속으로 내려가자 빈 무대에 잠시 미스터리의 순간이 있었으나, 그때 애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책임자인 크레이그 페더리기(Craig Federighi)가 뛰어 올라왔다. 그는 쿡을 지나서 새 업데이트에 대해 설명했다. 소비자용 신제품이 아니라 더 나은 앱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는 개발킷이라 불리는 소프트웨어 툴이었다.

일반인들이 하품을 했다면, 개발자들은 일어나 환호했다.

기조연설 후 3명의 친구와 함께 왔던 25세의 조던 브라운(Jordan Brown)은 컨벤션 센터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들 네 친구는 Orca Health라 부르는 건강 앱을 만들었었고,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하루 전에 도착하여 기조연설 무대에서 더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센터 앞에서 밤을 샜었다. 그들은 피곤하고 꾀죄죄했으나 아드레날린이 솟았었다. 브라운은 쿡이 “분명 모든 것을 관장하고는 있지만 그가 고무적(inspiring)이지는 않죠. 그런데 페더리기는 정말 스티브를 방불케 하더군요.”라 말했다.

브라운의 친구인 27세의 채드 젤루프(Chad Zeluff)는 잡스의 2007년 기조연설을 봤었다. “잡스가 레넌이라면 쿡은 링고에요.”

근처에서는 젊은 개발자들이 쿡을 에워싸고 기조연설을 막 마친 CEO와 셀카를 찍고 있었다. 링고는 여전히 비틀스다.

브라운과 그의 친구들은 쿡에 대한 지지를 말했다. 단, 쿡이 조각을 합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리라 지적했다. 애플이 신제품을 내놓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존 기기에 새로운 기능을 덧붙일 수 있는 소프트웨어 혁신에 있어서 애플은 잘 하고 있다고 평가도 했다.

그들은 쿡의 사회 참여주의에 대해서는 별로 들은 바가 없었다. 제일 나이가 많은 친구인 35세의 개리 로빈슨(Gary Robinson)이 한 말이다. “거의 몰라요. 좋고 중요하겠지만 제가 상관할 바는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여기 온 게 아니니까요.”

개발자 대회가 계속 되면서 그들은 균열도 보였었다. 가령 3년간 아이폰만을 위한 앱을 만들어 왔었는데, 지난 두 달 동안 안드로이드 시스템용 앱도 만들기 시작했다는 식이다.

그들은 애플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짝으로 맞춘다는 전통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을 특히 불만스러워 했다. 특히 애플이 소비자와 의사들이 심장 박동수나 당수치 수준을 감시하도록 돕는 Health를 소개했을 때 그런 결과를 측정할 하드웨어까지 애플이 소개하지는 않았었다. 새로운 스마트워치가 그 역할이라는 루머는 있다. 젤루프는 소프트웨어만 출시했다면서 놀라워 했다.

브라운은 스티브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으리라 말했다. 비교하기는 불가능 할 테지만, 쿡은 적어도 그가 자신만의 마술을 충분히 만들어내기 전까지는 계속 잡스와 비교당할 터이다.

http://www.nytimes.com/2014/06/15/technology/tim-cook-making-apple-his-own.html?_r=0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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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ial Times이 주최하는 Person of the Year 2014에 Tim Cook CEO가 선정되었습니다.

Tim Cook CEO는 태양 전지를 사용한 데이터 센터 건설 등 기업으로서 적극적으로 환경에 대처 수익면에서도 눈부신 성적을 올리고 있다고전하며 다양한 정보 등 업무 환경 개선에 임하는 등 고객을 위한 일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http://www.ft.com/cms/s/2/4064a6fe-7fd7-11e4-adff-00144feabdc0.html#axzz3LdhSa0gE

data_news_timepersonoftheyear2014

Tim Cook
Ferguson protestors
the Ebola caregivers
Russian president Vladimir Putin
pop artist Taylor Swift
Alibaba CEO Jack Ma
acting president of the Iraqi Kurdish Region Masoud Barzani
and National Football League commissioner Roger Goodell

http://time.com/3623703/time-person-of-the-year-2014-shortlist/
http://www.macrumors.com/2014/12/08/tim-cook-person-of-the-year-nominee/

data_applenews_stevejobs1

 

10월 05일에 Steve Jobs의 3주기를 맞이하여 Tim Cook CEO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팀(Team),

일요일이 스티브의 별세 3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그날 저처럼 그분을 생각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잠시 시간을 갖고 스티브가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했던 많은 일들에 대해 감사하길 바랍니다. 아이들은 그가 꿈꾸며 만들어낸 제품들 덕분에 새로운 방식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그가 만든 제품을 사용해 심포니도 작곡하고 팝송도 작곡하고, 소설, 시, 문자메시지 등을 씁니다. 스티브의 필생의 작품은 화가들이 걸작을 그려내는 캔버스가 되기도 합니다.

스티브의 비전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훨씬 뛰어넘었고, 그가 애플에 부여한 가치는 항상 우리와 함께 존재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작업하고 있는 아이디어와 프로젝트 중 상당수는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 시작됐지만 여기에도 어김없이 그의 영향이 미쳤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렇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스티브의 유산을 미래로 가져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데 대해 감사합니다.

팀(Tim)

http://9to5mac.com/2014/10/03/tim-cook-emails-employees-to-reflect-on-third-anniversary-of-steve-jobs-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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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 Cook은 Apple 홈페이지에 개인 정보 보호 정책이라고 하는 페이지로 회사의 입장을 전하고 있습니다.

-발췌-
2014년 9월 17일자로 Apple 개인 정보 보호 정책를 개정하여 주로 iOS 8 일부로 릴리스되는 새로운 기능을 반영하기 위해와 Apple의 사용자에서 제공되는 생년월일 또는 타사 사용자 데이터 (제품과 선물 카드를 발송하는 경우 등) 등의 현재 데이터 이용에 대한 추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행하였다고 전합니다.

또한, Tim Cook CEO는 “광고주에게 판매 할 목적으로 이메일 내용 수집, Web 브라우징 인터넷 사용 기록에 따라 프로파일 구축하는 일은 하지않는다”라고 전하며, “우리는 iPhone 및 iCloud에 축적 된 정보로 수익을 창출 하지않으며, 마케팅 목적으로 메일 내용이나 메시지를 검색하고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 라며 입장을 전하고 있습니다.

http://www.apple.com/priva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