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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ister’s Eulogy for Steve Jobs

By MONA SIMPSON
Published: October 30, 2011


나는 홀어머니 밑에서 독자로 자라났다. 우리는 가난했고, 아버지가 시리아 출신 이민자였다고 들어서 아버지는 아마 오마 샤리프(Omar Sharif)를 닮잖았을까 상상하곤 했었다. 그가 부자이고 친절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도 좀 도와주면 좋잖을까? (아직 우리 아파트에는 가구도 다 갖춰지지 않았었다.) 나중에 아버지를 만나고 나서는 아버지가 아랍인들을 위한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전화번호를 바꾼 다음에 주소도 남기지 않았다고 믿으려 노력했었다.

페미니스트이기는 했지만 나는 인생에 걸쳐, 사랑할 남자,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남자를 기다려 왔었다. 아무래도 그런 남자는 우리 아버지가 아닐까 싶었는데, 25살이 되던 해, 나는 오빠라는 남자를 만났다.

당시 난 첫 소설을 쓰기 위해 노력하면서 뉴욕에 살고 있었다. 한 작은 잡지사에 일자리를 얻어 벽장만한 크기의 사무실에서 다른 작가지망생 셋과 같이 일하던 때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한 변호사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들에게 직장 의료보험을 사달라고 졸라댔던 캘리포니아 출신 중산층 아가씨인 내게 말이다. 그 변호사 말에 따르면, 자기 고객 중에 부자이고 유명한 분이 한 분 계시는데, 그 분이 나의 잃어버린 오빠라고 했었다. 우리들은 열광했었다. 당시는 1985년, 우리들은 최신 문학잡지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디킨스 소설에나 나오던 음모에 빠져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변호사가 오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가 누구일지 추측놀이를 시작했다. 제일 그럴듯한 후보는 존 트라볼타(John Travolta)였다. 다만 나는 마음 속으로 헨리 제임스(Henry James)의 문학적인 후손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별 노력 없이도 뛰어나게, 나보다 재능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스티브를 만났다. 그 때 오빠는 청바지를 입은, 아랍계 혹은 유태계처럼 보였으며, 오마 샤리프보다 훨씬 잘생겼었다.

우린 오랫동안 산책을 했다. 우연히도 우리 둘 다 산책을 좋아했었는데, 사실 첫 번째 날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친구가 한 명 더 생겼거니 생각했었다. 오빠는 자기가 컴퓨터 일을 한다고 말했었다.

난 컴퓨터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다. 작업은 올리베티(Olivetti) 수동 타자기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한테는 최근 크로멤코(Cromemco)라 불리는 컴퓨터를 한 대 구입해볼까 생각중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오빠는 그것도 좋긴 하지만, 자기가 미칠정도로(insanely) 아름다운 컴퓨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오빠로부터 알아낸 사실을 몇 가지 알려드리겠다. 27년이 넘게 오빠를 알아왔는데,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연도에 따른 시기가 아니라, 상태에 따른 구분이다. 그의 인생 전체와 그의 병환, 그리고 그의 죽음이다.

오빠는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정말 매일같이 열심히 일했다.

정말 간단하게 말했는데, 사실이다.

오빠는 멍한 채로 있는 적이 없었다.

결과가 실패라 할지라도 오빠는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오빠만큼 영리한 인물이면 자기가 시도했던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나도 그럴 테고.

오빠가 애플로부터 쫓겨났을 때 상황은 고통스러웠다. 오빠는 실리콘밸리 지도자 500명이 당시 대통령과 만찬모임을 같이 했었는데, 자기는 초대받지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오빠는 상처를 받았지만 곧바로 넥스트 일을, 또다시 매일같이 했다.

오빠가 가진 가장 큰 가치는 참신함이 아니라 아름다움이었다.

오빠는 혁신가에게 대단히 충성스러웠다. 좋은 셔츠가 있으면, 10벌이건 100벌이건 주문하기 때문이다. 팔로알토의 집에만 하더라도 장례식 때 교회에 모인 사람 모두 입을 수 있는 분량의 검정색 터틀넥이 있다.

오빠는 유행이나 술책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기 나이대의 사람들을 좋아했다.

미학에 대한 철학을 보면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패션은 지금은 아름다워 보일지 몰라도 나중에는 보기 흉해진다. 예술은 지금 보기 흉할지 몰라도, 나중에는 아름다워진다.”

오빠는 언제나 나중에 아름다워지는 쪽을 택했었다.

게다가 기꺼이 인정받지 않는 편을 택하기도 했었다.

대통령 만찬에 초대받지 못했던 오빠는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로 주문한 동일한 기종의 스포츠카를 몰고 플랫폼 개발을 조용히 진행하고 있던 넥스트로 되돌아갔다. 나중에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넥스트를 사용하여 월드와이드웹 프로그램을 작성한다.

사랑에 대해 얘기한 시간만 따지면 오빠는 소녀같았다. 사랑은 오빠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였으며, 신들 중의 신이었다. 오빠는 자기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로맨스도 알아보고 걱정하곤 했었다.

근사한 여자라도 보면 오빠는 항상 말을 걸었다. “헤이, 싱글이신가요? 혹시 내 여동생이랑 저녁먹으러 오지 않을래요?”

로렌을 만났던 날 내게 전화했던 일도 기억난다. “아름다워. 정말 똑똑한 여자 중의 여자야. 그녀랑 결혼할 거야.”

리드가 태어났을 때도 오빠의 마구 쏟아지는 수다는 그칠줄을 몰랐다. 오빠는 아이들의 아버지였다. 리사의 남자친구 문제를 고민하고, 에린의 여행과 치마길이를 걱정했으며, 이브의 승마가 안전한지 우려한, 아버지였다.

리드의 졸업식에 참여했다면 누구도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 오빠와 리드가 같이 느리게 춤췄던 장면이다.

로렌에 대한 변치 않은 사랑이 그를 지탱시켜줬다. 오빠는 사랑이 언제나 어디에서나 이뤄진다면서, 사랑이라는 제일 중요한 것에 대해 오빠는 절대로 비꼬거나 회의적이지 않았고 매사 긍정적이었다. 지금도 오빠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다.

오빠는 젊은 시절에 성공을 거뒀고, 그 성공때문에 자기가 고립됐다고 느꼈었다. 내가 알기로 그 때 오빠가 내린 결정 대부분은 자신을 둘러싼 벽 없애기였다. 로스알토스 출신의 중산층 소년으로서 오빠는 뉴저지 중산층 출신의 소녀와 사랑에 빠졌고, 리사와 리드, 에린, 이브를 평범하고 튼튼한 아이들로 기르는 것이 둘에게는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오빠의 집은 예술작품이나 광택으로 겁을 주는 집이 아니다. 스티브와 로렌이 같이 살았을 때 저녁은 보통 잔디밭에서, 가끔은 딱 채소 한 가지만 갖고 먹을 때가 많았다. 딱 한 가지의 채소, 물론 양은 많았지만, 제철에 나온 브로콜리 뿐이었다. 간단히 준비한 음식이었으며, 싱싱한 허브와 곁들인 식사이기도 했다.

젊은 백만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오빠는 언제나 공항으로 날 맞이하러 나와줬었다. 청바지를 입고서 말이다.

업무중인 오빠에게 가족 중 누군가가 전화했던 일도 기억난다. 비서인 리네타가, “아버지는 지금 회의중이셔. 그래도 알려드릴까?”라 했었다.

핼로윈 때마다 리드가 마녀 복장을 고집하면, 오빠와 올케, 에린과 이브는 모두 위칸(wiccan, 마법숭배자)로 변장하곤 했었다.

부엌을 리모델링할 때 가족들은 차고에 있는 철판에서 요리를 했었다. 같은 시기 픽사 빌딩이 건축중이었고 절반 정도 완성돼 있었으며 팔로알토 집도 마찬가지였다. 욕실은 오래전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이 점이 결정적인 차이랄 수 있다. 정말 훌륭한 집의 욕실이었고 오빠는 그걸 알아본 것이었다.

물론 오빠가 자신의 성공을 전혀 즐기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성공을 매우 많이 즐겼다. 물론 뒷자리 숫자를 몇 개 뺀 채로 말이다. 오빠는 팔로알토의 자전거 가게에 가서 제일 좋은 자전거도 자기가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가 얼마나 좋았는지 말해준 적이 있었다.

정말로 좋아했었다.그리고 오빠는 그 자전거를 샀다.

오빠는 겸손했고, 계속 배우려 했다.

한 번은 자기가 다르게 자라났더라면 아마 수학자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했었다. 대학에 대해 숭배하는듯이 말하고, 스탠포드 대학교 캠퍼스를 산책하는 것이 좋다고 했었다. 인생의 마지막 시절, 오빠는 미래 애플 캠퍼스의 벽에 어떤 그림이 어울릴지에 대한 생각을 하며 이전까지 몰랐던 화가인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그림을 공부했었다.

오빠는 기발한 생각도 자주 했다. 장미차에 쓰이는 영국과 중국 장미의 역사를 알고, 장미업자 데이비드 오스틴(David Austin)의 장미 중 자기가 특별히 좋아하는 장미가 있는 CEO가 과연 또 있을까?

오빠는 모든 주머니에 장난거리를 가득 갖고 있었다. 이를테면 오빠가 좋아하는 노래, 오빠가 잘라내어서 서랍 안에 집어 넣은 시, 예외적이라 할만할 정도로 가까운 20년의 결혼관계인데도 오빠의 선물을 아마 로렌이 다 발견해낼 것이다. 매일같이 오빠에게 말했지만, 뉴욕타임스에서 애플 특허를 다룬 기사를 봤을 때 완벽한 계단에 대한 스케치 그림이 지금도 기쁘고 놀라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오빠와 네 명의 아이, 올케, 우리 모두 정말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오빠는 행복을 정말 소중하게 여겼다.

그리고 오빠는 아팠다. 그의 인생이 보다 소규모로 줄어드는 광경을 우리는 지켜봤다. 한 때 그는 파리 시내를 거닐거나 쿄토의 조그마한 수제소바집을 발견하고, 우아하게 스키를 타기도 했었다.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좀 서툴렀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바깥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결국은 좋은 복숭아와 같은 일상적인 기쁨도 더 이상 그에게 매력이 없게 됐다.

하지만 놀라운 점이 있다. 오빠가 아팠을 때 배웠던 교훈이다. 그 많은 것을 못 할 때조차도 얼마나 많은 것이 남아 있던지.

책상을 갖고 다시 걷기 위해 노력했던 일이 기억난다. 간이식 수술을 받은 이후 오빠는 하루에 한 번씩 다리로 딛고 섰었다. 오빠의 다리는 몸을 지탱하기에 너무나 말라 보였지만 오빠는 과감하게 책상에서 팔을 뗐다. 멤피스 병원 복도의 간호근무실까지 책상을 밀면서 간 다음, 책상에 앉아서 잠시 쉬고 주위를 돌아본 다음 다시 걸었다. 오빠는 자신의 걸음걸이를 매일같이 세가지고 다음에는 조금씩 더 걸었다.

올케도 무릎을 꿇고 앉아서 오빠의 눈을 바라봤다. “할 수 있어요, 여보.”

그러자 오빠의 눈이 넓어졌고, 입술도 팽팽하게 당겨졌다.

오빠는 노력했다. 언제나, 언제나 노력했고, 그 노력의 안에는 언제나 사랑이 들어 있었다. 그는 전적으로 감정적인 사내였다.

오빠가 자기 자신을 위해 고통을 참어가며 그 끔찍한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오빠의 목표는 아들 리드의 고등학교 졸업식 참가와 딸 에린의 쿄토 여행, 그리고 언젠가 은퇴한 이후에 가족들을 데리고 전세계를 돌아다닐 계획으로 건조중이던 보트였다.

아픈 와중에서도 오빠의 취향과 차별, 판단은 여전했다. 오빠는 67명의 간호사를 면접한 다음,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완전히 신뢰하여 오빠의 사망 때까지 자리를 지킨 간호사 세 명(트레이시와 알투로, 엘햄)을 선별했다.

만성 폐렴에 걸렸을 때 의사는 오빠에게 모든 것을 금지했었다. 심지어 얼음도 말이다. 우리는 일반적인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자기 이름을 잘라 먹거나 선 긋는 것을 싫어했던이름을 내세우거나, 새치기를 싫어했던 오빠는 이번에 좀 특별하게 취급받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오빠에게 말했다.

오빠, 이게 특별 취급이에요.

그러자 오빠는 내게 몸을 기울여서, “조금 더 특별하기를 원해.”라 말했다.

관이 삽입됐을 때 오빠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메모장을 하나 달라고 했었다. 메모장을 받자 오빠는 병원 침실에서 아이패드를 지탱할 수 있는 기기를 스케치했고, 새로운 유동 모니터와 엑스레이 장비도 디자인했다. 오빠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병원 내 각종 장비도 다시 디자인했고, 올케가 들어올 때마다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지켜봤다.

오빠는 메모장에 이런 말을 적었다. “정말로 큰 뭔가를 하려면 날 믿어야 함.” 그가 날 올려다 봤다. 너도 그래야 한다고.

무슨 말인지 알았다. 결국 우리는 의사 몰래 얼음을 가져다 줬다.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여기에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지난 해, 건강이 좀 호전됐을 때 오빠는 프로젝트를 당장 시작하고는 애플 친구들을 불러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겠노라는 약속까지 끌어냈다. 네덜란드의 보트 제작자도 멋진 스테인레스 철 선체를 목재로 마감시킬 준비를 마쳤다. 세 딸은 결혼을 안 했으며(둘은 아직 어린 소녀이긴 하다), 오빠는 언젠가 내 결혼식 날 내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섰던 것처럼, 딸 손을 잡고 결혼식에 들어서길 바랬었다.

거두절미하고, 우리 모두 결국은 죽는다. 한 이야기의 중간, 아니 많은 이야기에 나오는 얘기다.

수 년간 암투병을 하던 환자가 죽는다고 해서 별로 놀랍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우리는 오빠의 사망을 얘기치 못 했었다.

오빠의 죽음으로 알아낸 사실이 있다. 성격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죽는 방법도 달라진다.

화요일 아침, 오빠는 내게 급히 집으로 올 수 있겠냐고 전화했었다. 오빠 목소리는 다정했고 사랑스러웠지만 뭔가 자기 짐을 차에 싣고 여행을 떠나려는 아니, 여행을 이미 시작한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우리를 떠나서 미안하다는, 정말 미안한 목소리였다.

오빠가 작별인사를 시작하려 해서 난 성급히 오빠를 막아섰다. “기다려, 내가 가. 지금 공항 가는 택시 안이야. 내가 갈께.”

“모나, 혹시 제 때 못 올까 걱정돼서 말해주는 거야.”

내가 도착했을 때, 오빠와 올케는 서로 매일 같이 일하고 살아온 동료인 양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오빠는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후 2시쯤 되자, 올케가 그를 깨웠다. 애플에서 온 친구들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그는 더 이상 깨지 못했다.

오빠의 숨소리가 바뀌었다. 힘들지만 찬찬히, 의도적인 숨소리였다. 발걸음을 다시 세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말이다.

오빠는 숨소리마저 훈련하고 있던 것이다. 오빠에게 죽음이란 없다. 오빠는 죽음을 이겨냈다.

오빠가 이제 안녕이라며 항상 계획했던 것만큼 오래 못 살아서 정말 미안하고, 자기는 더 좋은 곳으로 간다고 말했다.

피셔 박사는 그날 저녁을 넘길 확률이 50/50이라고 오빠에게 말해줬다.

오빠는 그날 밤을 넘겨냈다. 올케가 침대 옆에 붙어서 숨 사이에 정지가 좀 길어지면 오빠를 바라보곤 했었다. 오빠는 다시금 깊은 숨을 쉬었고, 올케와 나는 서로를 바라봤다.

해내야 한다. 지금도 오빠는 단단하고 여전히 잘생긴 얼굴, 절대주의자이자 로맨틱한 사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숨소리는 몹시 힘든 여행을 하고 있었다. 가파른 길이라도 올라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의지와 직업윤리, 힘 외에도 오빠에게는 경탄을 이끌어내는 달콤한 능력이 있었다. 나중에 더 아름다워진다는 이상을 믿는 예술가의 믿음일 것이다.

사망 몇 시간 전, 오빠는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단음절로 세 번을 반복했다.

죽기 전, 오빠는 여동생인 패티를 보고, 아이들을 오래 쳐다본 다음, 인생의 동반자, 올케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들 어깨 뒤를 봤다.

오빠가 했던 마지막 말이다.

OH WOW. OH WOW. OH WOW.

Mona Simpson is a novelist and a professor of English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She delivered this eulogy for her brother, Steve Jobs, on Oct. 16 at his memorial service at the Memorial Church of Stanford University.

A Sister’s Eulogy for Steve Jobs – NYTimes.com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The Teacher

October 9, 2011 – 7:51 pm | Edited by Frédéric Filloux

스티브 잡스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교훈을 가르쳐줬다. 그의 가르침은 기술과 광고, 미디어, 혁신의 양육, 집착적인 완벽주의 문화는 영감을 주는 동시에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다.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좋아한다면 애플이 등장할 수밖에 없으며, 최소한 애플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필자의 프리우스 자동차에 있는 다기능 디스플레이나 사무실 에어콘 리모콘 가지고 씨름할 때, 혹은 배터리가 달린 2천 달러 짜리 자전거에 어째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메모리칩이 없는지 궁금할 때마다 애플이라면 어떻게 만들었을지 상상하곤 한다.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미디어 애플리케이션이나 신문/잡지 디자인을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다수는 디자인에 대한 결단이 없는 대충대충의 디자인이 다수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경영/혁신의 측면에서 애플 이야기를 해 왔지만, 비지니스 저널리스트로서도 제일 따라잡기 힘든 회사가 애플이다. 거의 나오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비밀주의 문화(그리고 종교)는 직원들의 범주를 넘어선다. 낭비적인 학위 논문조차도 애플에 대해서는 다소 텅 빈 느낌이다.

지난 14년간 너무나 많은 분야에 영향을 끼쳤는데도 불구하고 애플이 내보인 단서는 몇개 없다. 전례 없는 일이다. 일단 기술세계를 벗어난 잠재적인 면에 대해 몇 가지를 추출해 보겠다. 필자의 맥북프로 트랙패드용으로 싸구려 플라스틱이 아닌 반투명 유리를 선택한 것에서부터, 막대한 현금보유고에 이르기까지 애플은 스티브 잡스 이후의 시대를 어떻게 준비했을까? 이것이야말로 흥미로운 주제이다.

#1 Focus. 애플의 매출액은 천 억 달러에 이르면서도 제품 수는 극도로 소규모다. 큰 범주로 네 가지 아이템(컴퓨터와 전화기, 뮤직플레이어, 태블릿)이 있고, 모델 수를 다 합쳐도 30여 가지에 불과하다. 스티브 잡스 스스로도 “집중은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라 말한 적이 있다. (1997년 비디오를 보시라). 애플은 언제나 새로운 시장에 들어설 수 있었으며, 특히 모바일 영역으로 확장할 때 애플은 경쟁사보다 잘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했다. 소비자나 전문가가 뭘 바라건 상관 없이 말이다. 가령 아이폰의 화면 크기는 단일하며(경쟁사의 휴대폰은 그렇지 않다), 품질에 집중된 어젠다에 따라 기능을 추가시켜 왔을 뿐이다.

그렇다면 애플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궁금해진다. 디지탈이건 아날로그이건 새로운 사업은 내외로 영향을 받기가 쉽다. 웹상에서는 “머스트 해브”라든가 유행인 기능을 피하기가 어렵다. 편집자 저마다 고유한 영역이 있어서 독자들은 도대체 무엇이 중요한지, 이 언론의 강점이 무엇인지, 혹은 이 앱이나 사이트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어한다.

#2 Creativity / Design. 스티브 잡스를 실질적으로 도우려면 엔지니어가 아닌 편이 낫다. 기능과 미학을 합쳐야 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외양이라 생각들 합니다.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디자인이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느냐이죠. (…) 창조성은 이것 저것을 연결시키기이니다. 뭘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면 창조력 있는 분들은 좀 죄의식을 느낍니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뭔가 보일 뿐이거든요. 좀 더 보면 더 확실해지죠. 새로운 것과 이미 경험했던 것을 합칠 수 있기 때문에 창조적이라는 얘기입니다.

#3 Obsessive attention to details. 지난 8월, 구글 중역인 빅 군도트라(Vic Gundotra)는 아이폰으로 구글 로고를 봤을 때 아주 사소한 부분이 완벽하지 않아 미안하다는 전화를 잡스로부터, 그것도 일요일 아침에 받았었다는 일화를 들러줬다. 사업의 모든 세세한 부분에 잡스가 신경을 쓰고 필요할 경우 곧바로 수정을 요구했다는 의미다. 잡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품질의 척도가 되십쇼. 훌륭해야 하는 환경에 익숙치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애플 생태계를 보노라면 이상할 정도로 환경과 “박자가 안 맞는” 부분이 안 보인다. 최상위층의 비전이 최하위 수준까지 내려오면서, 정확도와 강렬함이 전혀 줄어들지를 않았다. 포천 매거진 기사, “애플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에서 아담 라신스키(Adam Lashinksy)의 말을 인용한다.

이러한 독특한 접근방식을 융합시키는 이는 잡스 그 자신이다. 그런데 그가 구조화시킨 방법은 그가 특별히 관여하지 않고 있을 때조차도 그의 생각을 반영하는 식으로 돌아갈 정도가 되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한 내부 직원은 이런 말을 했다.

“스티브가 뭘 원하는지 회사 직원 아무나 붙잡아 놓고 물어보세요. 해답이 나올 겁니다. 90%는 스티브를 만난 적도 없을 테지만요.”

#4 Accountability. 애플의 업무 과정에서 제일 핵심되는 요소와 합쳐지는 부분이 이곳이다. 책임감(Accountability)이야말로 애플식 경영의 주춧돌이다. 퍼즐 조립을 담당할 직접책임자(DRI: Direct responsible Individual) 없이는 회의를 열지 않는다. 개인 수준에서 직접책임자는 성공이건 실패이건 개인적인 압박을 느낄 것이다.

애플 내부 조직에 대해 잡스가 직접 한 말이 있다. AllThingsD 컨퍼런스의 영상이다. (볼 가치가 있다.)

애플에 위원회가 몇 곳이 있는지 아시나요? 전혀 없습니다. 위원회가 없어요. 우리는 신생기업처럼 조직돼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제일 거대한 초짜 기업이죠. 일 주일에 우리 모두 3시간 정도 모여서 우리가 하는 일 모두를 논의합니다. 회사 최상단에 엄청난 팀워크가 존재합니다. 그 팀워크가 회사 전체를 움직이죠.

다름이 아니라 잡스의 경영에 대한 관점이랄 수 있겠다.

직급이 아닌, 아이디어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5 Marketing. 1985년,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잡스가 매킨토시에 대해 한 말이 있다.

“우리를 위한 맥을 만들었죠. 훌륭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우리 그룹이었습니다. 우리는 나가서 시장 조사를 벌이지도 않았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로 만들기 원했습니다.”

12년 후, 잡스는 비지니스위크지에서도 아래와 같이 밝혔다.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를 때가 대단히 많습니다.”

시장조사와 소비자의 선택을 열심히 분석한 다음에 신제품을 내놓던 때에 한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 인쇄매체이건 디지탈 매체이건 프리(pre) 마케팅 연구와 포커스그룹을 셀 수 없이 실시기 때문에 잡스의 말을 보면, 느낌이 복잡해진다. 심각한 실수를 피하거나 직관을 확인할 때 으레 프리마케팅 연구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상 그런 연구를 하는 이유가, 장차 생길지도 모를 실수로부터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인 경우를 많이 봐왔다.

#6 Money. 애플은 대단히 부자 회사다. (현금보유고가 760억 달러에 달하며, 미국 재무성보다도 부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원을 좀 부족하게 배분한다. 하지만 결정이 한 번 내려지면 최고의 것을 얻기 위해 어떻게든 지출하는 곳이 애플이다. (가령 애플은 비디오편집 소프트웨어인 아이무비용 사운드트랙을 녹음하기 위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초빙하기도 했다.) 사실 애플 간부진은 비용과 상관 없이 제품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현금 자체가 전략무기다. 올해 초, 애플은 안정적인 부품 및 생산 확보를 위해 39억 달러 어치의 투자를 밝히기도 했다. 경쟁사에게는 안 좋은 소식이었으며, 당시 잡스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의 현금 사용에는 원칙이 세워져 있고, 그 원칙을 매우 잘 지키고 있어요. 새어나갈 틈을 만들지 않을 겁니다. 멍청한 인수도 하지 않을 것이고요. 계속 이런 기조를 지켜나갈 생각입니다. 앞으로 한 두 가지 정도 전략적인 기회가 더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재미나게도 애플이 재무실적을 보인지 불과 1주일 후에, AOL은 3억 1,500만 달러에 HuffingtonPost를 인수한다는 발표를 거행했다. AOL은 과연 돈을 잘 활용했을까? MySpace에 대한 NewsCorp의 인수얘기까지는 꺼내지 않겠다.

#7 Legacy. 시간이 지나도 퇴화하지 않는 유전자를 구조적으로 만들어내는 회사는 세상에 거의 없다. 하지만 그런 회사를 만들기 위해 잡스는 최고의 인재를 고용했다. 원래 예일 대학교 경영대학장인 조엘 포돌니(Joel Podolny)는 아예 예일대를 떠나 애플대학이라 알려진 비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더 자세한 사항은 Los Angeles Times에 Steve Jobs to live on, virtually, in Apple University이라는 기사로 나와 있다).

애플의 교훈은 상당히 민감하다. 필자는 다른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는데 투자하는 한 노르웨이 회사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다. Schibsted ASA의 경영은 다른 이들의 성공과 실패로부터 많은 것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것이 회사의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

둘째로 저널리즘과 미디어 산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뉴스 산업이 전면적으로 우중이 다스리는, 전례없는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워낙에 사업모델들이 퇴화하여 의심스러운 관리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필자는 자신의 유전자가 실제로 뭔지 알아내어 보존을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하고, 그를 기반으로 미래를 세워내어 도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미디어 기업이 대다수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겠다. 40초 정도 시간을 들여서 이 영상을 보시라. 그 유명한 2005년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연설에 어떤 것을 덧붙일지에 대한 잡스의 답변이다.

frederic.filloux@mondaynote.com

The Teacher | Monday Not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When founders leave: lessons for Apple from Microsoft, Intel, and Sun

By Anders Bylund

인터넷은 현재 잡스 기사로 가득 찼다. 거의 모든 뉴스가 애플의 지각변동을 태풍소식(Irene)보다도 앞에 다루고 있다. (언제나 고전적인 AOL만은 가수 알리야(Aaliyah)의 사망 10주년 특집과 가십걸의 블레이크 라이블리(Blake Lively)의 사진을 내세웠다. 그런 소식은 AOL이 정통하다!)

아무튼 잡스는 CEO 자리를 COO이자 가끔 CEO 역할을 맡기기도 했던 팀 쿡에게 넘겼다. 선구적인 창립자이자 리더 스티브 잡스는 이제 이사회 의장이라는 보다 전략적인 역할을 맡았고, 어쩌면 트레이드마크 격인 검정색 터틀넥 셔츠를 시나트라-스타일의 턱시도로 갈아입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늘상 있었다. 스티브 잡스 급의 리더가 내려오는 일도 종종 있는 일이다. 카리스마가 가득한 리더가 직함을 남에게 넘겨준 유명한 사례를 한 번 보고, 쿡의 애플이 어떠할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사례연구 1: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의 마이크로소프트

아마 스티브의 사임과 가장 근접한 비교사례는 궁극의 경쟁자 마이크로소프트일 것이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 최고의 가치를 갖는 회사로 만들어 놓은 뒤 사임했다. 어젯 밤 애플의 시가는 3,490억 달러였지만 1999년 말 마이크로소프트의 가치는 6,000억 달러였다.

2 주일 후, 게이츠는 CEO 자리에서 물러나 신뢰하는 부하, 스티브 발머에게 자리를 넘겼다. 게이츠는 수석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그리고 사장으로 남았고, 아키텍트의 자리는 2008년에 포기했다. 다만 게이츠는 계속 마이크로소프트 이사진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는 자선사업에 좀 더 시간을 쓰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진 교체는 거대한 변화였다. 발머에 따르면 빌 게이츠가 “머리 속에서” 해 놓은 전략계획은 위원회가 해 놓은 일이 됐고 그와 동시에 발머는 게이츠의 리더쉽을 공공연하게 거부하고 나섰다. 2008년, 월스트리트저널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게이츠가 필요 없을 겁니다. 그것이 원칙이에요. 그를 이용한다, 좋습니다. 그를 필요로 한다, 아닙니다.”

발머의 성과는 어땠을까? 그가 CEO를 물려받았을 때의 마이크로소프트 시가는 최고에 달했지만 그 이후로 60%가 감소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여전히 크고 중요한 기업이지만 이제 시가총액으로 볼 때 애플보다 1,500억 달러가 뒤진 세계 다섯 번째 기업이 되고 말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슬럼프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발머의 지휘 하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의 기회를 잡는데 실패했고, 모바일 혁명을 놓치고 말았다. 윈도비스타는 나오는데 정말 오래 걸렸고, 나온 뒤에도 평가가 안 좋았다. Duke Nukem Forever와 같은 사례가 되고 말았다. 지난 10년간 판매성장률은 보잘 것 없었고 이윤마진은 줄어들었으며, 한 때 신뢰받고 있었던 현금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많아졌다.

경쟁자를 가차 없이 없애버리는 빌 게이츠의 사업방식을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으시겠지만 게이츠의 방식은 먹혔다. 지난 10년간 여러 시장(아이포드와 아이튠스, 아이패드)을 창조에 가깝게 만들어낸 애플은 현재의 제품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더 눈길을 둬야 할 일이다.

사례연구 2: 로버트 노이스와 폴 오텔리니의 인텔

인텔의 이야기는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더 낫다. 인텔의 첫 CEO 세 명은 모두 인텔의 공동창립자였고 힘도 제각기 달랐다. 비전 있는 리더였던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는 CEO 직함을 엔지니어링 천재였던 고든 무어(Gordon Moore)에게, 그리고 “편집증 환자만이 살아남는다”던 영업맨 앤디 그로브(Andy Grove)에게 넘겨졌다. 크레이그 바라트(Craig Barratt)와 폴 오텔리니(Paul Otellini)는 질서잡힌 승계 계획에 따른 강력한 리더쉽의 전통을 지속하고 있으며, 43년된 인텔의 생존력이 의심받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인텔 주가는 지난 10년간 마이크로소프트를 뒤따라갔다. 윈텔 파트너쉽의 중요성이 떨어졌고 PC 시장 또한 계속 축소돼가고 있기 때문에 인텔의 성장도 느려지고 있다.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인텔이 아닌 ARM 칩 기반이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이윤비중이 계속 감소하고 있는데 반해,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더 많은 이윤을 내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달리 시장에서 좀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본다.

노이스와 무어, 그로브는 수 십년 간의 방향을 세워 놓았고 계승자의 길을 닦아 놓았다. 인터넷 거품과 경제적인 혼란, AMD와 ARM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인텔은 여전히 중대한 회사로 남아 있다. 쿡이 탄력을 잃지 않고 애플을 제대로 운영하여 자신의 자리를 잘 잡아 놓는다면 인텔의 사례는 애플의 미래가 될만하다.

사례연구 3: 스콧 맥닐리와 조나단 슈왈츠의 썬

스콧 맥닐리(Scott McNealy)가 썬의 첫 CEO는 아니지만 4 명의 공동창립자 중 하나가 그이며, 그가 재임했던 기간이 제일 길었다. 22년간 CEO로 있으면서 인터넷 거품의 위기를 거친 후, 그는 2006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가 볼 때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에 있어서 중대한 인터넷 역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조나단 슈왈츠(Jonathan Schwartz)는 고위간부직에 대한 경험이 2년밖에 없었지만 그 또한 10년이 넘는 베테랑이었고, CEO로서는 3년을 보냈다. 그런데 2008년 모기지에 기반한 금융위기는 썬에게 충격을 줬고, 이 위기는 견고한 자금력을 지닌 IBM과 HP에게마저 여파가 미칠 정도였다. 그런데 썬은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없었고 2009년, 오라클의 인수제의에 동의하게 된다. 맥닐리의 승계자는 찬스를 얻지 못했다.

승계를 더 잘 준비했더라면 불운에 대비할 수 있었을까? 오라클의 썬 인수가 맥닐리의 탓일까, 아니면 그냥 운이 나빴을까? 이유는 그 가운데에 있을 것이다. 맥닐리는 20년간 썬의 현금보유고를 거의 두 배 늘려 놓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특허와 로열티 전쟁을 통해 20억 달러의 추가적인 확보도 해 놓았었다. 즉, 고장난 자동차를 넘긴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좀 덜 무모한 사람을 고를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애플의 미래가 이렇게 되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큰 그림

위의 사례만큼의 리더쉽-변화가 애플의 사례와 같기는 힘들 것이다. 모두가 팀 쿡을 존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스티브가 남긴 자리는 워낙에 채우기가 힘들다.

잡스가 이사회 의장으로 남아서 다행이라고 본다. CEO가 이사회 리더로 옮겨가고 세대가 바뀌는 인텔의 전통과 많이 유사하다. 또한 최근의 건강과 관련된 병가때문에 새로운 사람에게 자리 맡기기를 서둘렀을 것이다.

그리고 빌 게이츠가 발머에게 해 줬던 것처럼, 스티브가 팀의 손을 언제까지고 잡아줄 수는 없을 것이다. 건강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그런 문제가 없었다. 스티브의 두뇌에서 나온 성공이 어느 정도인지, 그의 천재적인 관여 없이 얼마나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이제 정확히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Photo illustration by Aurich Lawson

When founders leave: lessons for Apple from Microsoft, Intel, and Sun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CBS의 60 Minutes은 10월 23일(일)에 방송한 월터 아이작과의 인터뷰 일부를 공개했습니다.

월터 아이작에 따르면 췌장암을 발견 스티브 잡스는 수술 자체를 거부하며, 대체 요법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신체를 비우고 싶지 않았다. 그런식으로 영적 침범을 받고싶지 않았다” 라고 하며, 9개월 지난뒤에서야 잡스의 아내와 동료들의 권유로 수술을 받게 된 것 이라고 합니다.

또한, 잡스는 월터 아이작과 인터뷰 하며 바로 수술을하지 않고 대체요법을 시도한 것에 굉장이 후회하고 있다고 그에게 말했다는 것 입니다. 한동안 잡스는 수술 대신 영적인 힘과 대체요법에 의존하며 치유를 바란 것 같습니다.

http://www.cbsnews.com/stories/2011/10/20/60minutes/main20123269.shtml

다음과 같은 명단의 유명인사가 스티브 잡스의 추모식에 참석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다만 이 문서는 일부가 공개 된 것이라고 합니다.

Tim Allen, actor
Joan Baez, folksinger
Bono, U2 frontman
Jerry Brown, Governor of California
Bill Campbell, chairman of Intuit
Bill Clinton, former President
Hillary Clinton, Secretary of State
Ron Conway, founder of Angel Investors
Tim Cook, Apple CEO
Michael Dell, CEO of Dell
Rahm Emanuel, mayor of Chicago
Larry Ellison, CEO of Oracle
Scott Forstall, Apple senior vice president
Stephen Fry, actor
Bill Gates, chairman of Microsoft
Julius Genachowski, chairman of the FCC
Chuck Geschke, Adobe co-founder
Al Gore, former Vice President
Jonathan Ive, Apple’s senior vice president for design
Laurene Powell Jobs, widow
John Lasseter, chief creative officer of Pixar
Lee Jae-yong, COO of Samsung
Yo Yo Ma, cellist
Jon Miller, chief technical officer of News Corp.
Rupert Murdoch, CEO of News Corp.
Larry Page, CEO of Google
Maria Shriver, former first lady of California
Mona Simpson, novelist
Larry Sonsini, chairman of Wilson Sonsini Goodrich & Rosati
John Warnock, Adobe co-founder

http://tech.fortune.cnn.com/2011/10/17/who-attended-the-memorial-service-for-steve-jobs/

Apple사에서 고 스티브 잡스의 추도식에 맞추어, 미 동부 시간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직영점을 폐점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잡스의 추도식은 10월 19일(수)에 개최될 예정으로, 그 모습은 직영점에 생중계된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9 to 5 Mac

 

스티브의 유작이 아니냐 했던 iPhone 4S가 그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아니였다고 한 어널리스트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죽기전 까지 임했던 프로젝트는 iPhone 5였으며, 프로세스와 최종 디자인까지 깊게 관여 했다는 것인데요..
이 iPhone은 얇고 큰 디스플레이를 탑재하며 크기는 iPhone 4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LTE를 탑재할 전망이라고 합니다.

짧은 시간동안 그는 iPhone 5에 모든 시간을 쏟아 부으며 쇄신했다고 합니다. 아마 내년 WWDC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http://news.cnet.com/8301-13924_3-20120919-64/steve-jobs-last-big-project-the-next-iphone/?part=rss&subj=news&tag=2547-1_3-0-20

Economic Times에 의하면 Samsung Electronics Co. Ltd.에서 스티브 잡스의 사망에 슬픔을 표하며, 스티브 잡스는 “혁신가 이자 위대한 사업가”라고 칭했다고 합니다.

삼성전자의 CEO인 최지성 씨는 스티브 잡스 회장은 “정보 기술 산업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위대한 기업가 였었다. 그의 혁신적인 정신과 눈부신 업적은 세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관련기사 😕AppleInsider

빌게이츠
저는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을 듣고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멜린다와 저는 스티브의 가족과 친구, 그와 만난 모든 사람에게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스티브와 저는 30여 년 전에 처음 만나 서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동료이자 경쟁자, 친구로서 지내왔습니다.?
전 세계에서 그가 했던 것처럼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더 이상 찾기 어려울 것이며 그 영향은 이후 많은 세대에도 끼칠 것입니다.
전 스티브와 일할 기회가 있었던 행운아였습니다. 그 것은 제게 크나큰 영광이었습니다. 스티브가 매우 그리울 것입니다.

오바마 미 대통령
미셸 오바마와 저는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에 매우 상심하고 있습니다. 스티브는 미국의 혁신가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용감했고, 다르게 생각했고,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강하게 믿을 만큼 담대했으며 그 믿음을 실천할 만큼 재능도 충분했습니다.

그는 차고에서 시작됐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기업, 애플을 세움으로써 미국의 독창적인 정신 본보기가 됐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우리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준 그는 정보 접근성을 용이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정보를 직관적이고 재미있게 얻을 수 있게 하는 정보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그는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수백만의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스티브는 매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겠다는 말을 즐겨 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삶을 바꿨고, 전체 산업을 재편성했으며 인류 역사에서 가장 희귀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도 바꿨습니다.?

세계는 오늘 혁신가를 잃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고인의 발명품(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통해 사망 소식을 알게 됐다는 사실보다 잡스에 대한 더욱 큰 헌사는 없을 것입니다.

미셸과 저는 스티브의 아내 로렌과 그의 가족,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합니다.

그외에도 손정의, lger, schmidt, dell, zukerburg, bartz, brown, schwarzenegger가 조의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AppleInsider

Team 😕

I am looking forward to the amazing opportunity of serving as CEO of the most innovative company in the world. Joining Apple was the best decision I’ve ever made and it ‘s been the privilege of a lifetime to work for Apple and Steve for over 13 years . I share Steve ‘s optimism for Apple ‘s bright future.?

Steve has been an incredible leader and mentor to me, as well as to the entire executive team and our amazing employees. We are really looking forward to Steve ‘s ongoing guidance and inspiration as our Chairman.?

I want you to be confident that Apple is not going to change. I cherish and celebrate Apple ‘s unique principles and values??. Steve built a company and culture that is unlike any other in the world and we are going to stay true to that – it is in our DNA. We are going to continue to make the best products in the world that delight our customers and make our employees incredibly proud of what they do.?

I love Apple and I am looking forward to diving into my new role. All of the incredible support from the Board, the executive team and many of you has been inspiring. I am confident our best years lie ahead of us and that together we will continue to make Apple the magical place that it is.?

Tim

팀 :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CEO로 일할 기회를 갖게돼 기쁩니다. 애플에 합류한 것은 내 생애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또 13년 동안 스티브 잡스 및 애플과 일한 것은 인생에 있어 최고의 영광이었습니다. 애플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는 잡스의 낙관적인 전망에 대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스티브는 놀라운 리더이자 나뿐만 아니라 모든 임직원의 멘토였습니다. 우리는 잡스가 앞으로도 계속 이사회 의장으로서 우리를 이끌어 주고 우리에게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애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저는 애플의 독창적인 원칙과 가치를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스티브는 세계 어떤 회사와도 다른 기업 문화를 만들었고, 우리의 DNA인 그것을 그대로 유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세계 최고의 제품의 계속 만들어 고객들을 기쁘게 하고 직원들이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저는 애플을 사랑합니다. 새 직분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사회와 임원들 그리고 직원 여러분의 전폭적인 지지가 저를 격려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최고 나날들이 펼쳐질 것임을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는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애플을 마법의 장소로 계속 만들어갈 것입니다.

관련기사 😕AppleInsider

한줄 요약 /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더 잘하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