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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빼가기를 둘러싼 그 분들의 설전

The no-hire paper trail Steve Jobs and Eric Schmidt didn’t want you to see

By Jeff Blagdon on January 23, 2013 01:32 am

팜의 전 CEO 에드워드 콜리건(Edward Colligan)의 2012년 8월 7일 발언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팜이 애플 직원 고용을 멈추지 않을 경우 특허 소송을 제기하리라 위협했었다. 이 주장의 근거가 최근 나온 메일에 나와 있다. 2000년대 중반 실리콘 밸리의 비-고용 약정이 얼마나 퍼져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애플과 구글, 인텔 등은 “신사 협정”에 따른 민사소송에 집중하고 있다. 이 신사 협정이 직원들의 지위 및 임금 손실에 따른 피해(수 억 달러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에 대한 집단 소송에 영향을 주고 있다.

콜리건의 진술을 보면 그는 2007년 8월, 잡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잡스는 팜이 애플 직원을 빼내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고, “팜과 애플 간의 약정을 제안”했다. 직원 빼가기를 막기 위한 것으로서, “팜이 만약 그런 약정에 동의하지 않으면 애플의 수많은 특허에 대한 침해 소송을 받을 수 있으리라” 말했다. 콜리건은 그런 약정이 불법일 가능성이 있으며, 팜은 자신의 특허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맞소송도 불사하리라 답 메일을 보냈었다. 그러자 잡스가 다시금 답 메일을 보냈다. “‘둘 다 수많은 변호사들에게 돈을 퍼부어 주리’라 말씀하신다면야, 우리 각자 회사 재정 상태의 비대칭성을 알고 계시리라 확신합니다.”

잡스의 분노를 일으킨 회사가 팜만은 아니었다. 위의 에릭 슈미트에게 보낸 메일을 보면 구글 이메일 또한 애플 CEO의 “핵전쟁”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 메일에서 잡스는 구글의 휴대폰 소프트웨어 그룹이 애플 아이포드 그룹 직원들을 “끈질기게 고용하고 있다”며 그런 일을 멈추도록 요구했다. 구글 내부 메일에 따르면 구글의 전 고용전략가였던 암논 게슈리(Amnon Geshuri)가 슈미트에게 한 보고가 나온다. 애플의 한 직원을 구글로 오라 설득하는 모집자(recruiter)가 한 명 있었고, 그를 “한 시간 내에 해고”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인력운용실의 전 책임자였던 쇼나 브라운(Shona Brown)은 “적절한 대응”이라면서 게슈리에게 “이 해고를 그룹 전체에 알려서 본보기로 삼으라”고 요청했다.

이런 종류의 비-고용 약정(pact)에 전략적 이익이 있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메일을 보면 최고 수준의 간부들이 법적 파문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위에서 보면 구글의 에릭 슈미트는 약정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증거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회사가 “나중에 고소를 당할 수 있어서”였다. 별도의 이메일에서 인텔 CEO 폴 오텔리니는 약정의 존재를 “널리 알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표현했다.

아래 링크를 보면 어도비와 인텔 등과 같은 곳에서 고용하지 말아야 할 회사 목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은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주된 내용은, 목록에 있는 기업 직원들 중 누군가 직접 지원하는 경우야 인사 부서가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금지시킨 회사 직원을 인사 부서가 직접 접촉해서 고용을 시작하지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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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hire paper trail Steve Jobs and Eric Schmidt didn’t want you to see | The Verg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9to5 Mac에 따르면, 고 스티브 잡스의 타계 2주년를 맞이하며, 팀 쿡 CEO가 Apple 직원들에게 관련 메시지를 담은 E 메일을 전달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메시지 중 “내일 (10월 5일)은 스티브가 죽은지 2년되는 날입니다. 여러분은 그가 우리 모두와 세계에 어떤 존재였었는지를 생각해 줄 수 있으면 생각합니다.” 라고 의미있는 한마디도 전달 하였습니다.

-전문
Team-
Tomorrow marks the second anniversary of Steve’s death. I hope everyone will reflect on what he meant to all of us and to the world. Steve was an amazing human being and left the world a better place.I think of him often and find enormous strength in memories of his friendship, vision and leadership. He left behind a company that only he could have built and his spirit will forever be the foundation of Apple. We will continue to honor his memory by dedicating ourselves to the work he loved so much. There is no higher tribute to his memory. I know that he would be proud of all of you.
Best,
Tim

http://9to5mac.com/2013/10/04/tim-cook-reflects-on-second-anniversary-of-steve-jobs-passing-in-letter-to-employ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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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초기 본사로 사용됐였던 잡스의 옛집이 사적 보호지가 되었다고 CNN이 전하고 있습니다. 로스 알토스역사위원회가 2년간 면밀한 조사를 벌였으며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http://edition.cnn.com/2013/09/23/tech/steve-jobs-childhood-home/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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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에 따르면, 세계 최대 규모의 통신 사업자 인 차이나 모바일은 Steve Jobs가 CEO 재직 시절부터 오랜 협상을 지속했지만 타결을 얻지 못했으나, 이번 차기 iPhone의 출시를 기점으로 차이나 모바일의 iPhone 가입이 가능 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중국 스마트 폰 출하 수는 올해 전년 대비 84% 증가한 3억 52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며, 2015년에는 4억 2100만대 까지 다다를것으로 예측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http://online.wsj.com/article_email/SB10001424127887323893004579059242463613028-lMyQjAxMTAzMDAwNjEwNDYyWj.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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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에 따르면, 세계 최대의 휴대폰 회사 China Mobile은 Apple의 Tim Cook CEO와 협력에 대해 협의했다고 발표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차이나 모바일과의 협상은 Steve Jobs CEO 시대부터 계속되고 있지만, 어떤 이유로 합의에는 이르지 않었습니다.

http://www.reuters.com/article/2013/07/31/apple-china-idUSB9N0FP01H201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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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hingsD는 Apple과 법무부 사이에서 전자 책 3 건에 대한 반 독접 관련 재판에서, Apple의 인터넷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담당 수석 부사장 Eddy Cue가 증언했다고 전했다 있습니다.

그 중, iBooks 및 iBookstore 제품 개발 및 출시에 Steve Job가 많이 참여하였다고 설명하고 몇 가지 예를 언급했다고합니다. 그에 따르면, iBooks에 Pooh를 번들 아이디어는 Steve Jobs가 생각한것으로, iBook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 된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iBooks의 page curls 그래픽도 Steve Jobs의 아이디어라고 전하고 있으며, 2010년에 발표 한 iPad와 함께 iBooks 데모를 할 때, 에드워드 케네디의의 True Compass를 선택한 것도 Steve Jobs의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Steve Jobs에게 Edward M. Kenedy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http://allthingsd.com/20130617/steve-jobs-winnie-the-pooh-and-the-ibook-launch/

스티브 잡스와 디자인 혁명


ARTS & CULTURE

How Steve Jobs’ Love of Simplicity Fueled A Design Revolution

Passionate to the point of obsessive about design, Steve Jobs insisted that his computers look perfect inside and out
By Walter Isaacson
Smithsonian magazine, September 2012,

디자인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관심은 어린 시절 집에 대한 사랑이 그 시작이었다. 집은 노동자가 많이 사는 동네로서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 사이에 있었고, 1950년대, 전쟁 이후 도시로 이주한 주민들이 대량으로 세운 저렴한 현대적 규격형 주택이었다. “모든 미국인”을 위한 단순한 현대적 주택으로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비전에 고무된 나머지, 조셉 아이클러(Joseph Eichler)와 같은 건축가들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벽으로 이뤄지고 지면이 개방형이며, 기둥-보가 노출돼 있고 콘크리트 판 바닥과 수많은 슬라이드형 유리문으로 이뤄진 집을 세웠다.

자신의 오랜 이웃 근처를 나와 같이 산책하면서 잡스는 “아이클러가 정말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라 말했었다. 그 동네는 아이클러 스타일의 집들로 이뤄져 있었다. “아이클러의 주택은 영리하고 저렴했으며 좋았어요. 깔끔한 디자인에다가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취향을 알려 줬죠.” 아이클러-스타일의 주택에 대한 그의 칭찬은 대중 시장용 제품의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스며들게 했다는 것이 잡스의 말이었다. “그리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 않지만 디자인이 훌륭하고 단순한 기능을 넣을 수 있을 때를 좋아합니다.” 그는 특히 아이클러 디자인의 깔끔하고 우아함을 지적했다. “애플의 오리지날 비전이었죠. 최초의 맥으로 하려 했던 것도 그것이었습니다. 아이포드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깔끔하고 친숙하며 재미나는, 차별화된 디자인은 잡스 치하 애플 제품의 특징이었다. 훌륭한 산업 디자이너로 애플이 알려지지는 않았던 1980년대, 잡스는 하트무트 에슬링어(Hartmut Esslinger)와 협력했고, 1997년부터는 조니 아이브와 함께 애플을 다른 기술 업계와 동떨어지게 만들 정도로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의 미학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애플은 세계에서 제일 가치가 높은 회사가 될 수 있었다. 애플의 주된 교리는 단순함(simplicity)이다. 깔끔한 룩앤필과 제품 표면에서 나오는 단순함만이 아니라, 각 제품의 본질과 엔지니어링의 복잡성, 그리고 각 컴퍼넌트의 기능을 앎으로써 깨닫는 단순함이다. 잡스는 정말 힘든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뭔가를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저변에 있는 도전을 진정 이해하고 우아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1977년에 나온 애플의 첫 마케팅 광고지 헤드라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

디자인의 단순함에 대한 잡스의 사랑은 그가 불교 수행자가 됐을 때부터 갈고 닦은 것이었다. 대학 중퇴 이후 그는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인도로 긴 순례를 다녀 왔지만 그의 감각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일본의 선불교였다. 인도 여행을 잡스와 같이 다녀온 대학 친구, 다니엘 코트키(Daniel Kottke)는 선이 잡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완전하고 미니멀리즘적인 미학, 극도의 집중에 대한 그의 접근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불교, 특히 일본 선불교가 미학적으로 탁월하죠. 제가 본 것 중에서 제일 고상했던 것이 교토의 정원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인도에서 돌아와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비디오 게임을 디자인하던 Atari에 야간 자리로 들어갔을 때에도 단순한 인터페이스를 좋아했다. Spacewar!와 같은 컴퓨터 게임은 MIT의 해커들이 개발했지만 Atari에서는 취한 신입생이라도 어떻게 하는 지 아는 게임이어야 했다. 복잡한 메뉴나 매뉴얼은 없었던 Atari의 Star Trek 게임 명령은 딱 두 가지였다. “1. Insert quarter, 2. Avoid Klingons”

1970년대 차별성 있는 산업 디자인을 보여줬던 얼마 안 되는 회사 중 소니가 있었다. 잡스의 집 차고에서 나와 이주한 애플의 첫 번째 사무실은 소니 영업부 사무실이 같이 자리한 빌딩 안에 있어서 잡스는 소니의 마케팅 자료들을 잠깐씩 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소니에서 일했던 대니얼 러윈(Dan’l Lewin)의 말이다. “꾀죄죄한 사람이 불쑥 와서는 제품 광고지를 어루만지더니 디자인 기능을 지적하더라구요. 그럴 때마다 매번 이 광고지 좀 가져갈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소니의 어둡고 산업적인 모양을 좋아한 잡스는 1981년 6월부터 콜로라도 주 애스펀(Aspen)에서 열리는 연례 국제 디자인 컨퍼런스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는 바우하우스(Bauhaus) 운동식의 깔끔하고 기능적인 접근을 많이 보았다. 당시 애스펀 인스티투트 캠퍼스에는 산세리프 서체와 가구, 실제 거주하는 방 등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가 소중히 간직하는 디자인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의 멘토인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와 루트비히 미스 판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처럼 바이어 또한 단순하되 영혼을 표현하는 디자인을 신봉했다. 깔끔한 선과 형태를 채용하여 합리성과 기능성을 강조하는 디자인으로서, 그로피우스와 미스가 설교한 디자인은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었다. 에이슐러(Eichler)처럼 미적인 감각은 대량 생산을 위한 기능과 결합돼 있었다.

잡스는 1983년 애스펀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디자인에 대한 칭송을 발표 했었다. 잡스 연설의 제목은 “미래는 예전과 같지 않다”였고, 소니 스타일 대신 바우하우스의 단순성이 지지를 얻으리라 예언했다. “현재의 산업 디자인은 소니 식의 하이테크적인 외양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포금 회색, 어쩌면 검정색으로서 이상한 것들을 하는 디자인이죠. 그렇게 하기는 쉽습니다만 위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대안을 제시했다. 제품의 성격과 기능에 보다 충실한 대안이었다. “우리가 할 것은 하이테크 제품이며, 그들을 깔끔하게 만들어서 제품이 최첨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작은 패키지 안에 맞게 만들고 아름다우면서 하얀색으로 할 수 있겠죠. 브라운이 전자제품에서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잡스는 애플의 만트라가 단순성이라고 계속 강조했다. “우리는 하이테크에 대해 밝고 순수하면서 솔직하게 만들 겁니다. 소니처럼 오로지 검정색 밖에 없는 중공업 스타일 말고요. 우리가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과 우리가 하는 제품 디자인, 광고는 모두 단순하게 만들자. 정말 단순하게로 모아집니다.”

잡스는 디자인 단순성의 핵심 부분이 제품을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단순성과 쉬운 사용이 항상 함께 하지는 않는다. 디자인이 너무나 매끈하고 간단해서 오히려 사용에 장애가 되거나 생경스러울 때도 있기 때문이다. 애스펀에서 잡스는 디자인 전문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직관적으로 분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디자인의 중심입니다.” 가령 그는 새 컴퓨터 매킨토시용 그래픽 화면을 만들 때 사용한 데스크톱 메타포를 칭송했다. “모두들 데스크톱은 직관적으로 다룰 줄 압니다. 사무실로 걸어 들어가면 책상 위에 종이가 놓여 있죠. 제일 위에 놓인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선권을 조정하는 방법 또한 다들 알고 있죠. 이미들 갖고 계신 경험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우리 컴퓨터를 데스크톱과 같은 메타포로 만든 이유라 할 수 있어요.”

잡스는 당시 산업디자인 업계에서 별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리하르트 자퍼(Richard Sapper) 램프를 좋아했지만 찰스(Charles)와 레이(Ray) 임스(Eames)의 가구, 디터 람스(Dieter Rams)의 브라운 제품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와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가 이룬 식으로 산업 디자인 세상에 힘을 줄 만한 거장은 없었다. 워싱턴의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디자이너인 마야 린(Maya Lin)의 말이다. “산업 디자인에서 뭐가 딱히 없었어요. 실리콘 밸리는 특히 전혀 없었죠. 그래서 스티브는 상황을 정말 바꾸고 싶어 했어요. 그의 디자인 감각은 매끈하지만 번드르르하지 않았습니다. 장난기도 많았죠. 그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했어요. 단순함에 헌신하는 선불교에서 나온 감각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자기 제품을 차갑게 만들지도 않았어요. 그의 제품은 재미 있었습니다. 그는 디자인에 있어서 열정적이었고 정말 심각했지만 그와 동시에 놀 줄도 알았어요.”

1984년에 나온 오리지날 매킨토시용 케이스를 만들 때, 잡스는 두 명의 젊은 디자이너와 같이 작업했다. 제라 마녹(Jerry Manock)과 테리 오야마(Terry Oyama)이다. 그들은 디자인안을 만들고 실제 석고로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맥 팀이 주위에 모여서 들여다 보고 자기 생각을 말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던 앤디 허츠펠드(Andy Hertzfeld)는 “귀엽다”고 칭했고, 다른 사람들도 만족해 했다. 그러자 잡스는 비판을 쏟아 부었다. “너무 상자 모양입니다. 곡선미가 더 있어야 해요. 첫 번째 사각면의 반경이 좀 더 커야 합니다. 그리고 비스듬한 면이 마음에 안 들어요.” 산업 디자인 용어에 대한 새로운 유창함과 함께, 잡스는 컴퓨터 측면과 연결된 각과 곡선 모서리를 언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잡스는 상당한 찬사도 곁들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매달 마녹과 오야마는 잡스의 비판에 맞춰 만든 새로운 모델을 들고 나왔다. 마지막 주물 모델은 정말 뛰어나서 이전까지의 모델은 모두 그 뒤에 서야 할 정도였다. 워낙 발전해서 잡스로부터 비판이나 주장을 못 하게 만들어버릴 정도였다. 허츠펠드의 말이다. “네 번째 모델부터는 세 번째와 거의 구분도 할 수 없겠더라구요. 그래도 스티브는 항상 비판적이었고 결정적이었어요. 전 알아보지도 못할 디테일에 대해 좋다 싫다 하면서 말이죠.”

어느 한 주말, 잡스는 다시금 팔로알토의 메이시 백화점에 가서 특히 퀴진아트 등의 주방기기를 연구했다. 그는 월요일, 맥 오피스로 들어와서 디자인 팀에게 퀴진아트를 사라 시키고, 퀴진아트의 선과 곡선, 사면에 따라 새로운 주문을 했다.

잡스는 매킨토시가 친숙해 보여야 함을 고집했다. 그 결과 맥은 인간의 얼굴과 유사해졌으며, 화면 바로 밑에 디스크 드라이브를 놓았고, 대부분의 컴퓨터보다 더 키가 크고 좁았다. 머리를 강조하는 형태였다. 밑부분 가까이의 구석은 온화한 턱을 방불케 했고, 잡스는 상단부의 플라스틱을 더 좁게 만들어서 크로마뇽인의 이마처럼 보이지 않게 했다. 이 매킨토시 케이스의 특허자는 마녹과 오야마만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도 올라가 있다. 오야마가 나중에 한 말이다. “스티브가 직접 선을 그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아이디어와 영감으로 이 디자인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려서 우리는 스티브가 말해주기 전까지 컴퓨터가 ‘친숙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몰랐었어요.”

잡스는 화면상에 나타나는 외양에 대해 강렬하게 집착했다. 특히 그는 각기 다른 레터링 스타일, 즉 서체에 신경 썼다. 신입생 때 리드 컬리지를 중퇴했을 때,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수업을 청강하면서 캠퍼스를 돌아다녔는데 그가 좋아하는 과목 중 하나가 서예였다. 잡스의 말이다. “세리프와 산-세리프에 대해 배웠어요. 각기 다른 문자의 조합이 얼마나 다양한지, 위대한 글씨체를 무엇이 위대하게 만드는지를 알았습니다. 아름답고 역사적이면서 예술적으로 묘했어요. 과학이 캡쳐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더 매혹적이었습니다.” 잡스가 스스로를 예술과 기술의 접목에 세웠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또다른 사례이다.

매킨토시는 비트맵 화면(화면상 각 픽셀을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켜거나 끌 수 있다)이기 때문에 우아한 서체부터 괴상한 서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체를 만들어서 화면상 픽셀별로 렌더링할 수 있었다. 이들 서체를 만들기 위해 잡스는 필라델피아 출신의 그래픽 아티스트, 수잔 케어(Susan Kare)를 고용한다. 그녀는 Overbrook, Merion, Ardmore, Rosemont 등 필라델피아의 Main Line 통근열차 역 이름에 따라 서체 이름을 지었다. 잡스는 이 과정을 대단히 마음에 들어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케어 사무실에 들러서 서체 이름에 대해 물었다. “그런 이름들은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서체 이름은 당연히 세계적인 도시이어야 하지!” 그래서 서체는 각자 시카고와 뉴욕, 제네바, 런던, 샌프란시스코, 토론토, 베니스로 바뀌었다. 나중에 잡스가 했던 말이다. “대학교 다닐 때 그 서체 수업을 안 들었더라면 맥에는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자간 맞춤 기능이 없었을 겁니다. 윈도가 맥을 그대로 베낀 이후로는, 어떠한 개인용 컴퓨터도 그렇지 못할 것 같군요.”

젊은 엔지니어, 크리스 에스피노사(Chris Espinosa)는 매킨토시용 계산기를 디자인할 때 잡스의 요구를 충족할 방법을 알아냈다. 그래서 첫 번째 시도를 해 보이자 잡스는 그에게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기본적으로 역겹군. 배경 색상이 너무 어두워. 두께가 잘못 나온 라인도 있고 버튼이 너무 커.” 에스피노사는 잡스의 비판에 따라 수정을 거듭했지만 수정을 할 때마다 비판도 새로워졌다. 그래서 어느 날 오후, 잡스가 지나갈 때 에스피노사는 해결책을 선보였다. “The Steve Jobs Roll Your Own Calculator Construction Set”였다. 이 셋트는 사용자가 선 두께와 버튼 크기, 각도, 배경 등의 속성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잡스는 웃지 않고 자신의 취향에 맞춰서 외양 설정을 하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흐르고 나자 그는 드디어 자기가 좋아하는 모양을 설정할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의 디자인은 향후 15년간 맥에 계산기로 탑재됐으니 말이다.

그의 초점이 매킨토시이기는 했지만 잡스는 모든 애플 제품을 관통하는 일관성 있는 디자인 언어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세계 정상급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브라운의 디터 람스처럼 누가 애플의 디자이너가 될지 콘테스트를 개최했다. 수상자는 소니 트리니트론 텔레비전 디자인을 책임졌던 독일 출신의 하트무트 에슬링어(Hartmut Esslinger)였다. 독일인이기는 했지만 에슬링어는 “애플의 DNA에 있을 미국의 유전자”가 있어야 한다면서, “헐리우드와 음악, 반항과 자연스러운 섹스 어필”이 가미된 “캘리포니아 풍”의 모양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가 제안한 지침은 형태가 기능을 따른다는 유명한 격언에서 따온, “형태가 정서(emotion)를 따른다”였다. 1980년대에 그가 애플용으로 개발한 제품으로는 하얀색 케이스가 있다. 견고하고 곡선형 모서리를 가졌으며, 통풍과 외양 모두를 위한 얇은 선으로 이뤄져 있었다.


Searching for a personal uniform, Jobs asked designer Issey Miyake for some black turtlenecks. He kept around 100 of them in his closet.

디자인에 대한 잡스의 열병에는 단점도 있었다. 1985년 애플로부터 축출당한 이유로 그의 예술적 감각을 채워주기 위한 과도한 비용과 일정 연기가 있었고, 뒤이어 그가 만들어낸 회사인 넥스트도 거대한 시장 실패를 경험했다. 다만 1997년 애플로 복귀를 요청받았을 때 그는 본능을 제어할 줄 알았고 합리적인 교환조건 세우기도 배웠다. 하지만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한 열정만은 버리지 않았었다. 네모난 베이지색의 범용 컴퓨터와 뮤직플레이어, 휴대폰과 같은 소비자 가전제품으로 채워진 시장에서 애플을 다시금 세우기 위해서였다. 거의 우즈베키스탄에서 디자인한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잡스가 애플로 돌아온 직후, 격려 연설을 위하 최고 관리자들을 소집했다. 그 중에는 애플 디자인 팀을 맡고 있었던 30대의 영국인, 조너선 아이브가 앉아 있었다. 조니는 애플을 그만 둘 계획이었다. 제품 디자인보다는 이윤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는 애플에 대해 진절머리가 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잡스의 이야기때문에 그는 퇴사를 다시 생각했다. 아이브의 말이다. “우리 목표는 돈벌기만이 아니라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던 스티브의 발표를 정말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철학에서 내린 결정은 우리가 그동안 애플에서 해 오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죠.” 곧 아이브와 잡스는 제일 훌륭한 산업 디자인 협력을 이끄는 관계를 형성했다.

다른 디자이너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아이브는 특정 디자인으로 들어가는 단계별 사고 과정과 철학 분석하기를 즐겼다. 잡스는 그 과정이 보다 직관적이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스케치와 모델을 지적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들은 짓밟았다. 아이브는 단서를 발견하여 잡스가 칭찬할 개념을 만들어냈다. 잡스는 아이브 안에서 표면적인 단순함 이상의 진실을 추구할 소울메이트를 발견했다. 디자인 스튜디오 안에서 아이브는 자신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단순함이 좋다고 가정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리적인 제품이 있으면 우리가 그것을 지배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복잡성에 대해 질서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제품이 주인에게 경의를 표하죠. 단순성은 시각적인 스타일만이 아니며, 미니멀리즘만도 아닙니다. 깔끔함만도 아니죠. 복잡함의 깊숙한 끝까지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진정 단순해지려면 정말 깊게 들어가야 해요. 가령 나사를 없애려면, 대단히 난해하고 복잡한 제품이 나올 수가 있어요. 제품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어떻게 만드는지를 이해해야 단순함을 가지고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을 없앨 수 있으려면 제품의 본질을 깊게 이해해야 합니다.”

잡스와 아이브가 공유했던 원칙이다. 디자인은 표면의 외양만이 아니며 제품의 본질을 반영해야 한다. 그 결과 애플에서 제품 디자인 과정은 엔지니어링과 제조방법까지 모두 통합돼 있다. 아이브는 애플 파워맥을 예로 들었다. “우리는 정말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 없애기를 바랬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이너와 제품 개발자, 엔지니어, 제조팀 모두가 전체적인 협력을 해야 하죠. 우리는 몇 번이고 시작을 되풀이했습니다. 이 부품이 필요한가? 다른 네 가지 부품으로 한 가지 기능을 할 수 있는가?”

산업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이 동일한 과정의 일부이어야 한다는 잡스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긴장은 있었다. 잡스가 산업디자인을 아이브의 팀으로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팀(존 루빈스타인이 맡았다)과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원래는 루빈스타인이 아이브의 상사였다. 분리는 둘 간의 사이를 좁히지 못했고 긴장감의 대립 관계가 터져 싸울 때도 종종 있었다. 다른 기업 대다수의 경우 엔지니어들이 요구사항을 적은 후에서야, 산업 디자이너들이 제품의 외양을 정할 수 있다. 잡스에게는 이 과정이 반대로 움직였다. 애플 초창기 시절, 잡스는 애플 III와 오리지날 매킨토시 케이스의 외양을 먼저 정하고, 그 다음에 엔지니어들에게 케이스에 맞는 부품과 보드를 주문했다.

축출당한 후, 애플 내 제품 제조 과정은 엔지니어-위주로 돌아갔었다. 애플의 마케팅 책임자인 필 실러의 설명이다. “엔지니어들은 프로세서와 하드드라이브같은 사양을 말하고 디자이너들에게 집어 넣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끔찍한 제품 밖에 안 나와요.” 그러나 잡스가 복귀하고 아이브와 협력한 끝에 균형감은 다시금 디자이너들에게 옮겨갔다. 실러의 말이다. “스티브는 우리를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것에 디자인이 통합적이라 말하곤 했어요. 디자인이 다시 엔지니어링을 통솔했습니다. 그저 반대로만 한 것이 아니고요.”

잡스-아이브 협력 하에 처음으로 나온 훌륭한 디자인적인 성공작은 가정용 소비자를 노린 데스크톱 컴퓨터, 아이맥이었다. 잡스는 조건을 특별히 정하였다. 올-인-원 제품으로서 키보드와 모니터, 컴퓨터를 모두 하나의 단순한 유닛으로 조합해야 하고, 상자에서 꺼내자마자 바로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 컴퓨터는 브랜드를 내세울 수 있는 차별화된 디자인이어야 했다.

아이브와 그의 최고 부하인 대니 코스터(Danny Coster)는 미래적인 디자인을 스케치하기 시작했지만 잡스는 그들이 만들어낸 십여 가지의 조형물을 거절했다. 그러나 아이브는 어떻게 하면 부드럽게 잡스를 끌어내는지 알고 있어서 일단 만든 모델이 모두 올바르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다만 한 가지 모델을 지적했다. 곡선형의 쾌활한 모양이되 움직이지 않는 조각처럼 보이지 않는 모델이었다. 아이브는 잡스에게 말했다. “책상에 막 도착한 듯한 느낌이랄까, 아니면 아예 곧바로 떠나버릴 듯한 느낌의 모델입니다.”

그 다음, 아이브는 그 모델을 가지고 작업했다. 이중적인 세계관을 가진 잡스는 환호하고 그 모델을 좋아했다. 그는 조형물을 들고 본부에 갖고 돌아다니면서 이사진과 신뢰하는 부하들에게 은밀히 보여줬다. 애플은 당시 다르게 생각하라는 광고의 데뷔를 축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는 기존 컴퓨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만 있었고, 마침내 잡스는 새로운 것을 갖게 됐다.

아이브와 코스터가 제안한 플라스틱 케이스는 바다 빛깔의 청색이었고, 투명하기 때문에 본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이브의 설명이다. “우리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필요에 따라 교체가 가능한 컴퓨터를 만든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투명한 케이스를 좋아했습니다. 색깔은 있지만 고정되지 않은 느낌. 뭔가 건방진 느낌이었죠.”

개념이 모두 은유적이었다. 현실적으로 투명한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링의 문제가 있었다. 잡스는 언제나 컴퓨터 내부의 서킷보드의 칩 배열마저 말쑥해야 한다 주장해 왔었다. 아무도 안 쳐다본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이 컴퓨터는 내부가 보였다. 따라서 내부 부품과 접합 부분을 만들 때 신경써야 했다. 쾌활한 디자인은 단순함을 전달하는 동시에 진정한 단순함이 끌어내는 그 깊이도 드러내고 있었다.

심지어 플라스틱 케이스의 단순성 그 자체도 상당히 복잡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아이브와 그의 팀은 애플의 한국 제조업체들과 협력하여 케이스 제조 공정을 완벽하게 만들고, 사탕 공장에 가서 어떻게 투명하면서 유혹적인 색상을 만드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 케이스 비용은 일반적인 컴퓨터 케이스 값의 세 배인 $60 이상이었다. 다른 회사에서는 아마 투명한 케이스가 판매량을 늘릴 것이기 때문에 더 높은 비용을 정당화시킬 수 있노라고 프리젠테이션하겠지만 잡스는 그런 분석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이맥 디자인의 끝마무리는 머리에 달린 핸들이었다. 기능성이라기보다는 보다 쾌활하고 기호적인 의미였다. 이 컴퓨터는 데스크톱 컴퓨터이며, 옮기면서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었다. 아이브의 설명은 아래와 같다.

“당시는 기술에 별로 친숙해 하지 않던 때죠. 뭔가 두렵다면 손도 대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도 무서워서 컴퓨터에 손대지 않을 걸요. 그래서 생각했죠. 손잡이가 있다면 관계 형성이 가능하다. 접근이 가능하다였죠. 직관적이기도 하고요. 만져도 된다는 허락의 의미였어요. 당신을 존중한다는 느낌도 줍니다. 불행히도 손잡이를 붙여서 제조하려면 돈이 매우 많이 들었어요. 예전의 애플이라면 손잡이를 고집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스티브는 정말 위대했어요. 그걸 보고는 ‘정말 멋지네!’라 말했으니까요. 구구절절 제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는 직관적으로 깨달았어요. 아이맥의 친숙함과 쾌활함의 일부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 후로 잡스와 아이브는 모든 애플의 미래 컴퓨터의 디자인을 이끌었다. 오렌지 조개와 같은 소비자용 노트북과 얼음덩이 비슷한 전문가용 데스크톱 컴퓨터도 나왔다. 벽장 뒤에 나타난 나팔바지처럼, 돌이켜 보면 그 당시로서 더 나아 보였지만 그러한 제품들은 너무 활기가 넘쳤다. 디자인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애플의 컴퓨터 디자인은 애플을 다른 컴퓨터와 다르게 만들었고, 애플로서는 윈도 세상에서 생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도 터져 나왔다.

평면 화면을 사용 가능하게 되자 잡스는 이제 아이맥을 대체할 때가 됐다고 결정내린다. 아이브는 뭔가 전통적인 모델부터 제시했다. 평면화면 뒤에 컴퓨터를 덧붙인 모델이었다. 잡스는 이 모델을 좋아하지 않았다. 순수함이 결여된 디자인이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잡스는 아이브에게, “뒤에다가 다 갖다 붙여서 할 거면 뭐하러 평면 화면을 내세웁니까? 각 요소가 서로 진정성을 갖게 해야 해요.”라 말했다.

잡스는 그날 아이맥 재편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집에 일찍 귀가하고는 아이브보고 오라고 했다. 그들은 잡스의 부인, 로렌과 함께 정원을 거닐면서 해바라기를 많이 심었다. 로렌의 말이다. “매년 정원일을 하는데 그 때 유독 해바라기가 매우 많았어요. 애들을 위한 해바라기 집이었죠. 조니와 스티브가 자기들 디자인 문제를 말하다가 조니가 갑자기 그이에게 묻더군요. ‘해바라기처럼 화면을 본체와 분리시키면 어떨까요?’ 조니는 바로 흥분하더니 스케치를 시작했어요.” 아이브는 이야기가 있는 디자인을 좋아했다. 그는 해바라기 모양이야말로 태양을 받을 수 있도록 평면화면을 유동성 있고 반응성 있게 할 수 있다고 봤다.

아이브의 새 디자인에서 보면, 아이맥의 화면은 움직일 수 있는 크롬 목에 붙어 있어서 해바라기만이 아니라 귀여운 램프처럼도 보였다. 애플은 이 디자인의 많은 부분을 특허화시켰고 대부분은 아이브를 발명자로 거명했으나, 한 가지만은 유독 잡스가 자기 이름을 주-발명자로 등재했다. “플랫패널 디스플레이에 붙어 있는, 움직일 수 있는 조립을 가진 컴퓨터 시스템”이다.

디자인으로서 단순함의 힘에 대한 잡스의 믿음은 2001년부터 그가 만들어낸 세 가지 소비자용 기기 성공작으로 정점을 이뤘다. 아이포드와 아이폰, 그리고 아이패드이다. 그는 오리지날 아이포드와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기 위해 매일같이 작업했다. 그의 주된 요구는 “단순하게!”였다. 그는 각 화면을 검토하고 엄격한 테스트를 했다. 노래나 기능을 원하는 경우, 클릭 세 번으로 가능해야 했다. 네 번이 넘어가는 경우에는 잔혹해졌다. 아이포드 팀의 리더였던 토니 퍼델(Tony Fadell)의 말이다. “사용자 인터페이스 문제를 두고 정말 고민할 때가 있었죠. 모든 옵션을 다 제시했다 여겼는데, 스티브는 ‘이건 생각해 봤지?’라 했었어요. 아예 문제나 접근법을 다시 정해버리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의 작은 문제는 사라져버렸어요.”

아이포드, 그리고 후의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긴밀하게 결합시킴으로써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 디자인의 단순성이라는, 1980년대 초반 잡스가 갖고 있던 통찰력의 성공이었다. 윈도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를 IBM과 Dell과 같은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라이선스를 준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달리, 애플은 처음부터 끝까지 견고하게 통합시킨 제품을 만들었다. 아이포드 첫 번째 버전의 경우 정말 그랬다. 모든 면면이 다 매끄럽게 결합돼 있었다. 매킨토시 하드웨어와 매킨토시 운영체제, 아이튠스 소프트웨어, 아이튠스 스토어와 아이포드 하드웨어/소프트웨어가 다 결헙돼 있었다.

덕분에 애플은 아이포드 기기를 Rio와 같은 경쟁 MP3 플레이어보다 훨씬 더 단순하게 만들 수 있었다. 잡스의 설명이다. “Rio와 다른 경쟁품들을 무너뜨렸던 것은, 걔네들이 복잡했거든요. 컴퓨터 상의 쥬크박스 소프트웨어와 통합이 안 되어 있으니 재생 목록부터 만들어야 했어요. 반면 아이튠스 소프트웨어와 아이포드 기기가 있으면 컴퓨터와 기기가 연동이 되죠. 복잡한 부분은 있어야 할 장소로 보내버릴 수 있습니다.”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는 이런 말을 했었다. “자연은 단순함과 통일성을 좋아한다.” 스티브 잡스도 그러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합치면서 그는 둘 다를 이룰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서거하고 내가 쓴 그의 전기가 출판된 이후 나는 책이 야기한 두 가지 상반된 반응에 놀란다. 잡스가 얼마나 거슬리고 심술 부리는 존재인지 놀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특히 젊은 기업가들이나 사업을 운영해본 적이 있는 이들은 그의 심술이 예술적인 감각, 디자인 완벽주의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집중한다.

두 번째 관점이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물론 잡스는 모시기 매우 힘든 인물이고, 정말 얼간이일 때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보스와 얼간이가 매우 많으며, 그들 대부분은 그렇게 심하지도, 얼간이도 아니다. 잡스를 특별하게, 가끔은 천재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따로 있다. 아름다움에 대해 불타는 듯한 본능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능력,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신념이다. 그 때문에 잡스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위해 최대한 힘을 쏟는 회사를, 우리 시대에서 그 중요성을 나타내는 제일 좋은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How Steve Jobs’ Love of Simplicity Fueled A Design Revolution | Arts & Culture | Smithsonian Magazin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스큐어몰피즘이 애플의 디자인 문제가 아니다.

Apple’s design problems aren’t skeuomorphic

MON, NOV 5, 12

지난 주, 애플의 조직 변화에 대해 발표한 팀 쿡의 서한에서 인용한다.

조나단 아이브는 산업 디자인 리더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회사 전반적으로 HI(휴먼 인터페이스)에 대한 리더십을 보여주며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그의 놀라운 디자인 미학은 10년 이상 애플 제품의 외양과 느낌을 견인해온 주역이다. 수많은 애플 제품의 얼굴은 우리의 소프트웨어이며, 조니가 가진 기술의 확장은 애플과 경쟁사들 간의 간격을 넓힐 것이다.

Sir Jony Ive needs no introduction

아이브의 산업 디자인 작품은 애플 부활의 핵심 중 하나였다. 미학적인 면에서 끈질기고 반복적인 단순함 및 기능에 대한 집중은 이제 전설이다. 본다이 블루 아이맥에서부터 아이콘화 된 아이포드, 평면화면 아이맥에서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그의 흔적은 틀림이 없다.

다만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이브의 애플 소프트웨어에 대한 역할이다. 아이브가 백마를 타고 와 스콧 포스탈스러운 스큐어몰피즘에서 긱들을 구해내리라는 현재의 기대감은 상당히 우습다. 물리적인 기기의 산업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 또한 형태와 기능으로 나뉘어 있다. 미학적인 면과 경험으로 나뉜다는 의미다. 애플 소프트웨어가 가진 문제는 어두운 리넨 천이나 코린트 식의 가죽, 찢어진 종이와 같은 스큐어몰피즘이 아니다. 애플 소프트웨어가 가진 문제는 사실 미학적인 면과 거의 관계가 없다… 대부분 경험과 관련된 문제이다. 아이브의 전임 보스의 말을 인용하여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애플 소프트웨어가 가진 문제는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느냐이다. 슬프게도 우리 기대 이상으로 애플 소프트웨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 알림의 배경이 어두운 리넨이건 아니건, 비참한 디자인일 따름이다.
  • 모바일 기기의 배터리를 떨어뜨리는 여섯 가지(GPS, WiFi, 셀률러 라디오, 블루투쓰, 알림, 화면 밝기) 아이템을 조절하려면 지금도 열심히 뒤져서 클릭해야 한다. 간단하거나 주제별, 위치별 그룹화라도 있지 않으면, 익숙지 않은 사용자들은 켜고 끄는 곳이 어디인지조차 바로 알 수 없는 지경이다.
  • 아이클라우드-데스크톱 통합과 애플 기기 간의 직접 파일 공유는 말과는 달리 직접적이지 않으며, “It just works”에 못 미친다.
  • iWork 패키지와 같은 수많은 애플 앱들의 업데이트가 절실하다. 미리보기나 텍스트에디스, 주소록과 같은 다른 앱들 또한 UI와 UX를 아예 완전히 개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 사전이리든지 iOS 키보드 배치와 자동 완성 기능 같은 핵심기능들이 최고가 아니다.
  • 조그마한 “폴더” 안에 들어가는 iOS의 앱 조직화 기능을 보면, 현미경으로나 봐야 할 아이콘으로 앱을 모아 놓는다. 이름도 안 나오고, 뭐가 들어 있는지 알아보기 힘들고 확장성도 갖고 있지 않다.
  • iOS 앱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일은 우아하지 않고 불투명하며, 일반적으로 앱들 사이의 데이터 상호 교환(개발자에게는 상당히 힘 떨어지는 일이다) 또한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문제점 목록을 길게 쓸 이유는 별로 없다. “개선할 사항” 목록을 실제로 작성하면 10배는 더 길어질 것이다. 이 시점에서 누구의 잘못인지 논하는 것은 별로 유용하지 않다. 애플 소프트웨어(특히 스스로 미래라 밝힌 iOS)는 미학적으로나 경험으로나 심각한 개수 작업이 필요하며, 미학보다는 경험 쪽이 훨씬 더 절실하다.

One Man. One Company. One Aesthetics?

문제는 세계에서 제아무리 제일 뛰어난 산업 디자이너라 하더라도 아이브 혼자서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미학과 경험 모두)를 필요한 정도로까지 충분한 관심을 쏟을 수 있을까? 그럴 시간이 한 사람에게 있겠는가?

애플의 휴먼 인터래션 가이드라인(HIG)은 아이콘 그림자라거나 버튼의 배열만 다뤘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일반적인 애플리케이션 디자인의 행동적 측면의 분석도 HIG에 포함된다. 한 세대 이전, 웹디자인이 지배적이기 이전 시절, HIG는 애플 스스로는 물론, 애플 개발자들도 훨씬 더 존중하고 지켜왔던 준칙이었다. HIG를 안 지키는 점이 있으면 충성스러운 사용자들도 알아보고 불만을 드러냈었다. 공개된 포럼에서 HIG 토론이 일어났던 것 또한 일반적인 일이었다.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라디오 버튼이나 체크박스 정도로도 웹페이지 네비게이션이 가능하다. 네비게이션이 가능한 메뉴는 이제 원형이고 삼각형 팝업으로 뜬다. 사용자에게 기능을 해치지 않는 한 순수 제스쳐에 기반한 UI들이다. 미끄러지는 패널 레이어는 서로 연동되며 동작한다. 아이템 목록 슬라이드는 좌우로 움직이면서 드릴다운 액션을 일으키고 위아래로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내보낸다. 3D로 만든 UI도 있으며, 그림자가 없는 UI도 있고, 대부분은 여러 가지 스타일의 조합이다. 한 때 강력했던 HIG가 다 그러한 “혁신” 깊숙이 묻혀 있다.

그렇다면 현재 5억 명의 사용자가 있는 생태계를 한 명의 휴먼 인터페이스 황제가 호령하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가능하고 바람직하기도 하다면, 그토록 거대한 생태계의 시각적 미학과 기능적 경험을 한 사람이 모두 맡을 수 있겠는가?

  • 디스플레이 레이어에 떠오른 시리의 문제점이 의미(semantic)를 가진 토대로 음소 나누기, 어휘별 맥락, 데이터-제공자의 계약, 통신망 대기 시간 등이 깊은 관계에 있고, 그래서 그 해결방법은 이들 요소와 기능들의 협업에 달려있다라는 점을 단 한사람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 지도나 패스북 앱을 사용할 때에도, 유사한 기술적 및 운용의 제한때문에 사용자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사실을 과연 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기대하는 것이 공정하고 합리적일까?
  • 게임센터에 소셜 레이어가 없고 아이튠스나 앱스토어의 콘텐트 발견 레이어가 기능을 수많은 방법이 어떻게 방어하는가? 이를 한 사람에게 맡겨도 되나?
  • 사용자-수준의 파일 관리로부터 애플이 떠날수록 아이클라우드 문서 관리와 공유라는 인지적인 혼란은 어떠한가?
  • 아이튠스의 대대적인 재-디자인으로 알려진 엄청난 실험은 도대체 언제 나오는가?
  • 애플 티비에도 미학적이고 경험적인 재디자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업데이트할 때마다 iOS의 상태바와 오에스텐 메뉴바의 투명도/색상을 바꾸는만큼 오래 묵은 위의 문제가 가진 깊이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단 한 명의 황제가 해결할 수 있을까? 그가 해결할 수 있는 UI 코너와 UX 경로는 몇 가지나 될까? 이들 문제는 사실 미학적인 문제가 아니다.

Apple, quo vadis?

아이브의 임명이 스콧 포스탈의 퇴사, 혹은 단일 체제 하로의 애플 디자인 개편과 관계가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 명의 황제 휘하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을 합치는 것은 분명 미학적인 효율성을 안겨다 줄 수 있겠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내포할 수 있다. “빨고 싶을 정도”의 아쿠아 UI는 10년으로 수명을 다 했고, 좀 더 미학적으로 단일하면서 매력적인 디스플레이 레이어가 등장했다. 그렇지만 행위적이고 기능적이며 실험적인 소프트웨어 문제점 다수를 숨겨버리는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다음과 같다.

  • 더 현대적이고 덜 느끼한 게임 센터의 재-디자인이 나왔지만 소셜 레이어는 여전히 없다.
  • 미학적으로 단일한 아이튠스이지만 콘텐트 발견성은 더 나아지질 않았다.
  • 시리 앱에는 배경의 리넨이 없어도 iOS의 나머지 부분과 맥락적으로 깊은 통합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 지도 앱은 어색한 초현실적 시각효과가 없어도 견고한 검색 레이어를 여전히 갖추지 못했다.
  • 나무 책서랍이나 안쪽의 그림자가 없는 아이북 앱의 타이포는 보통 수준 이하이고 하이픈 연결하기와 행 맞추기는 무기력하다.
  • 테이프 덱의 스큐어몰피즘이 없다 하더라도 포드캐스트 앱의 네비게이션은 불투명하다.

마지막으로, iOS에서 잘못된 점은 앱 아이콘 뒤에 있는 어두운 리넨이 아니라, 훨씬 더 나은 애플리케이션-간의 관리와 내비게이션이다. 조그마한 아이콘을 헤집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애플이 아이튠스와 앱스토어에서 사용하는 애플 ID의 통일 문제, 혹은 성능과 신뢰성 문제만 훨씬 잘 해결할 수 있다면, 애플 사용자 대부분은 노트북이나 달력 앱에 스큐어몰피즘을 더욱 덧붙인다 하더라도 천 년 만 년 사용할 것임을 확신한다. 게다가 이 문제는 동일한 시스템 디자인이 야기하는 문제의 쌍둥이적인 측면을 의미한다. 표면에 드러나는 디스플레이 레이어, 혹은 그 내부에 힘을 숨기기, 혹은 점점 늘고 있는 두 이슈의 부족한 부분.

그렇다. 우리는 애플에게 다른 기업과는 다른, 별도의 기준을 두고 있다. 30년 동안 그래 왔으며, 그에 따른 보상도 충분히 받아 왔다. 애플이 계속 승리해 나아간다면 조니 아이브가 코린트 식의 가죽 소파 뒤에 있을 수퍼맨 망토를 잊지 않고 있기 바란다…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Apple’s design problems aren’t skeuomorphic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포스탈 아웃, 아이브 업

By John Gruber

Forstall Out; Ive Up

블록버스터급의 애플 간부진 변경이다. 스콧 포스탈(Scott Forstall)이 떠난다. 핵심 내용은 아래와 같다.

조니 아이브(Jony Ive)가 원래의 산업 디자인 리더에 추가하여, 애플의 전반적인 휴먼인터페이스(HI)의 리더쉽과 방향을 제공한다. 그의 놀라운 디자인 미학은 그동안 10년 이상 애플 제품 룩앤필을 움직이는 힘이었다.

에디 큐(Eddy Cue)는 시리와 지도의 추가적인 책임을 맡을 것이며, 애플의 모든 온라인 서비스를 한 그룹에서 수행할 것이다. […] 크레이그 페더리기(Craig
Federighi)는 iOS와 오에스텐 모두를 맡는다.

포스탈은 그동안 애플 내부에서 논쟁적인 간부였다. 혹시 6주일 전, 스큐어몰픽 UI 디자인에 대한 애플 내부의 긴장을 다룬Fast Company의 오스틴 카(Austin Carr)의 기사 기억하시는가?

그동안 이 스큐어몰피즘에 대해 애플 내부에서 갈등이 자라났다고 한다. 애플의 iOS 수석부사장인 스콧 포스탈은 스큐어몰피즘 디자인을 강하게 밀어 부치고 있지만, 산업디자인을 맡고 있는 조니 아이브 및 기타 애플의 고위 간부진들은 포스탈의 방향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애플 디자인 과정에 대해 내부적으로 친숙하다는 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렇다.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얼마나 요란하냐를 가늠하면, 누가 그 제품을 실제로 만들었는지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포스탈 이전에도 스큐어몰피즘 접근을 독려해 온 사람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다.

하지만 제일 거대한 언급은 아무래도 5월, The Telegraph의 셰인 리치먼드(Shane Richmond)가 다룬 조니 아이브의 인터뷰 기사일 것이다.

가상의 바느질에 대해 말하자 아이브는 움찔했다. 하지만 그가 그런 모양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동조의 제스쳐였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봤다. 그는 해당 문제에 대해 논하기를 거절하면서 외교적인 답변을 했다. “제품 아이디어에 대해 다른 팀과 협력에 대단히 집중을 많이 합니다. 그 다음에 하드웨어를 만들죠. 그것이 우리의 초점이자 책임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그런 요소에 대해서 저는 별 관련이 없습니다.”

이제 그는 관련하게 되었다.

포스탈은 오랜 기간동안 애플에 있었다. 90년대 초반, 넥스트에서부터 그는 넥스트스텝과 맥오에스텐, 그리고 iOS의 개발에 관여했다. 하지만 애플 보도자료가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애플의 보도자료를 보면, 포스탈에 대해 팀 쿡의 따뜻한 말 한 마디나 감사의 인사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5월, 맨스필드(Mansfield)가 은퇴할 때(지금은 번복했다) 쿡이 했던 말과 비교해 보시라. 2011년 3월, 베르트랑 세를레(Bertrand Serlet)의 개인적인 말도 비교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포스탈은 스스로 관두는 것이 아니라 벌을 받았다. 그의 디자인 취향이나 엔지니어링 관리, 거친 스타일, iOS 6의 지도 문제 등 여러가지 일들이 포스탈에게 불리하게 작동했다. 또한 스티브 잡스와의 가까운 관계덕분에 포스탈이 얼마나 그동안 보호 받았었는지도 궁금해졌다. 당연히, 이제는 그런 보호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포스탈이 iOS의 시작을 맡았었다는 점만은 알아 줘야 한다. 그는 베르트랑 세를레와 함께 오에스텐을 아이폰 기반(터치를 제외하고 아이포드를 돌리던 임베디드 OS와 유사한 것이 아니다)으로 삼자는 아이디어에 대해 주된 지지자였음을 알고 있다. 조니 아이브의 디자인 취향이 애플의 소프트웨어에도 확산된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기 짝이 없다. 단, 포스탈의 리더쉽으로 iOS는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둬 왔다.

보도자료에서 거의 자투리 취급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애플은 소매사업 책임자였던 존 브로웻(John Browett)의 사임도 발표했다. 그는 실적상 전혀 칭찬을 받지 못 했었다. 포스탈의 축출이 큰 변화이다. 그렇지만 브로웻의 경우는 아직 1년도 안 된 신참 관리자였다. 일단 팀 쿡이 실수를 인정하고 어떻게 고치는지를 알았다 정도로만 생각할까 한다. 브로웻의 사임에 대해서는 더 이상 파고들지 않겠다.(비록 애초에 브로웻을 고용했던 장본인이 쿡이었지만 말이다.)


애플을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광고나 보도자료에서 볼 수 있는 애플의 담백함이다. 바로 오늘, The Atlantic의 데릭 톰슨(Derek Thompson)의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그는 애플의 분기 수익 발표문이 다른 대기업에 비해 훨씬 분량이 적음을 발견했다. 단, 포스탈의 사임을 알린 보도자료의 표제를 언뜻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Apple Announces Changes to Increase Collaboration Across Hardware, Software & Services” 표제 다음에 부제가 뒤를 이었다. “Jony Ive, Bob Mansfield, Eddy Cue and Craig Federighi Add Responsibilities to Their Roles”.

이와 함께 포스탈의 애플 내부 평판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들을 생각해 보면, 완곡 어법으로 쓰여 있기는 하지만 제목이 사실 그대로를 말해준다고 본다. 포스탈은 애플 내부 협력의 장애물이었다. 이제 그가 떠났고 그의 책임을 네 명이 나눠 맡게 되었으며, 네 명은 협력을 발전시킬 것이다. 아이브와 맨스필드, 큐와 페더리기이다.

페더리기 역시 포스탈처럼 넥스트 시절까지 이력이 올라가며 2009년 애플로 복귀한 이후 빠르게 승진했다. 맨스필드는 흥미로운 한 해를 보냈다. 5개월 전 그는 은퇴했지만 곧 은퇴를 번복하고 새로이 “Technologies” 그룹을 맡았다. 이 그룹은 모든 무선 및 반도체 엔지니어링을 관장한다. 에디 큐는 모블미라는 재앙을 완벽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꾸준히 전반적인 개선을 하고 있는 아이클라우드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이다. 에디 큐보다 지도를 더 잘 맡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오늘의 큰 소식은 조니 아이브이다. 그가 이제 모든 제품 디자인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관장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지 과장해도 지나치지 않다. 잡스 이후의 애플에서 UI 디자인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 하는 외부 관측자들이 좀 있었는데, 이제 답변이 나왔다. 조니 아이브.

Daring Fireball: Forstall Out; Ive Up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Apple doing fine a year after Jobs’ death

James Temple, Chronicle Columnist
Updated 11:06 p.m., Thursday, October 4, 2012


This is a 1977 photo of Apple Computer Inc. founder Steve Jobs as he introduces the new Apple II in Cupertino, Calif. Apple Computer was formed 20 years ago, on April Fool’s Day in 1976.

저널리즘의 진정한 왜곡은 좌파냐 우파냐가 아니라 분쟁을 일으키는 법이다.

1년 전 금요일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이래 언론은 애플이 실수할 때마다 공동 창업가 잡스의 비전이 없기 때문이라는 만병통치약을 만들어 놓았다.

MarketWatch와 Huffington Post, Time, CNBC, PC World 등 모두가 똑같은 머리말을 두고 질문을 던져 놓았다. 애플이 자신의 길을 잃었는가?

저항할 수 없을 주제이기는 하다. 잡스를 축출했던 1985년 이후 애플은 발을 헛디뎠으며, 결국 사망의 문턱까지 가기도 했다가, 1997년 잡스의 CEO 등극으로 멸종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그리고 잡스는 애플을 제일 성공한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픽사 역시 부활시켰기 때문에 잡스는 실패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신화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영웅의 이야기에는 한 가지 통합적인 가정이 있다. 다른 영웅은 없다는 것이다. 즉, 다른 어떠한 리더도 잡스의 일을 해 낼 수는 없다.

저널리즘으로 말하자면, 사실들이 좋은 이야기를 방해하기 때문에 매우 나쁘다. 이 시점에서 애플이 부진하다고 말한다는 것은 터무니 없다. 잡스가 사망한 이래 애플 주가는 거의 80%가 상승하였으며, 시가 6,260억 달러로 올라섰다. 이로써 애플은 순수한 달러 기반으로 역사상 최대 가치를 갖는 회사가 됐다. 지난 달, 최신 기종으로 나온 아이폰 5는 24시간만에 200만 대 이상이 팔렸으며, 이는 이전 기록의 두 배 이상이었다.

애플이 길을 잃었다고?

답변: 아니다. 그리고 그만 좀 질문해라.

“Always On: How the iPhone Unlocked the Anything-Anytime-Anywhere Future – and Locked Us In.”의 저자이자 뉴욕타임스의 기자인 브라이언 첸(Brian Chen)의 말이다. “그런 식으로 하면 이야기를 만들기가 정말 쉽거든요. 진부한 논평입니다. 잡스 사망시에 애플은 세계에서 제일 성공한 기업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The real questions

흑백논리를 벗어나 보면 완벽하게 적절한 질문이 없지 않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이래로 애플에게 새로운 도전이 생겼는가? 애플이 혹시 실수를 지절렀는가? 애플은 변했는가?

답변: 예스, 예스, 예스.

모두 예스라고는 해도 사과가 썩고 있다는 기미는 아직까지 전혀 없다.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통해 스마트폰과 태블릿용 소비자 시장에 숨결을 넣어 줬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범주 안에서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지금까지 최대로 많이 팔린 제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바일, 혹은 “포스트-PC” 세상의 경쟁은 날로 심화되어가는 중이다. 구글과 삼성, 아마존과 같은 경쟁사들이 턴-바이-턴 길안내와 음성 검색, 4G 속도 등, 특정 기능을 먼저, 더 좋게, 더 저렴하게 선보여 왔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기술 언론과 소비자들은 애플의 품질 기준이나 단순성이 미끄러졌는지를 요란하게 논의해 왔다. 쉽사리 당황하게 만드는 애플의 개인 디지탈 비서, 시리의 단점을 지적하는 것은 거의 스포츠가 됐을 지경이다. 더군다나 애플이 이제 막 내놓은 지도 앱의 터무니 없는 실수는 일 주일 내내 부정적인 기사의 단골 주제였으며, 결국 CEO 팀 쿡의 공개사과까지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모두를 적절한 맥락으로 생각해 보자.

첫째, 모바일 시장은 성숙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경쟁 심화와 느려지는 발전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둘째, 잡스가 있을 때에도 애플은 실수를 저질렀다. 모블미와 핑, G4 큐브를 기억하시는가?

셋째, 시리와 지도의 오류는 일단 애플이 전통적으로 보여 온 제품 디자인과 쉬운 사용성 등 원래 애플이 보여준 분야가 아니다. 시리와 지도는 애플이 온라인 서비스로 서비스를 확장해 나가면서 받는 성장의 고통을 반영한다. 인공지능과 검색과 같은 일은 애플로서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다.

Insufficient data

지도와 시리와 같은 제품에서 나오는 특정한 결점은 일단 충분치 못한 데이터 때문이다. 정보를 쌓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품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시켜서 사람들이 사용하고, 서로 반응하게 하여 서비스를 꾸준히 개선시키는 것이다.

설사 지도가 대실패작이라 하더라도 실패라는 결론까지 내리면, 그것은 하나의 데이터 포인트로부터 차트를 그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직 아무데도 안 갔는데 말이다.

포천지의 수석 편집자이자 “인사이드 애플”의 저자인 애덤 라신스키(Adam Lashinsky)는 “이번 지도 일을 갖고 ‘사례’로 삼기에는 너무 일러요. 너무 작기도 하죠.”라 말한다.

여기에 보다 큰 주안점이 있다. 기존 기기의 업데이트와 소소한 기능상의 조짐이나 개선 가지고 애플의 지속적인 훌륭함의 잣대로 삼을 수는 없다. 애플이 과연 대중의 인상을 사로잡을 만한 혁명적인 신제품을 계속 소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을 알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함이 당연하다.

우선 혁명적인 신제품은 자주 나오는 법이 없다. 잡스가 애플에 수 십 년 있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혁명적인 신제품이라 할 만한 제품은 손에 꼽힌다. 애플 II와 매킨토시, 아이포드, 아이폰, 아이패드 정도이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애플은 적어도 2년 앞서서 제품 로드맵을 세워 놓기 때문에, 잡스는 아마 다음 큰(big) 제품이 무엇이건 간에 손을 댔을 것이다. (가장 가능성 높은 후보는 차세대 텔레비전이다.) 첸의 말이다.

“팀 쿡 하의 애플이 어떨지 분명한 추론을 내릴 수 있으려면 아마 한 해 정도는 더 지나야 할 겁니다.”

Double-edged sword

라신스키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1등 애플에게 있어서 최대의 도전은 아마 애플 자신일 수 있다고 한다. 애플은 더 이상 언론과 팬보이들 사이에 뿌리박은 채, 마이크로소프트의 발목을 꼬집는 잠재력 있는 회사가 아니다. 애플 자체가 이제 일류 기업이 됐다.

역사를 보면 회사가 더 커질수록 “혁신의 딜레마”를 탈출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파괴적인 기술에 운을 맡겨서 현재의 돈벌이를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으려 들기 때문에 오히려 덫에 걸리고 만다는 의미다.

애플은 대체로 그 덫을 피해 왔다. 아이폰은 아마도 아이포드를, 아이패드는 아마도 맥북의 판매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플은 미래의 승리에 더 많은 것을 걸었다.

스스로를 희생시켜 가는 일이 계속 일어날지야말로 애플 문화의 변화를 가늠해 보는 주요 테스트가 될 것이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애플처럼 팀 쿡의 애플이 될 리 만무하지만, 팀 쿡은 이미 애플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More flexible

지도에 대한 사과에서 보듯, 쿡 치하의 애플은 보다 유연해지고 덜 오만해졌다. 그는 그동안 숙원이었던 현금 배당을 투자자들에게 실시했고, 중국 내 공장 노동조건의 개선을 추진했으며, 기업 자선 기부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애플은 권력을 보다 수석 간부진에게 더 넘겨줌으로써 독재적이라기보다는 과두체제로 변모했다. 애플 캠퍼스를 채우던 공포감은 소문에 따르면 거의 소멸됐다고 한다.

더 행복해진 직원들이 더 나은 제품을 만들까? 부하를 질책하고 직원들 아이디어를 자기 것으로 만들며, 실패의 희생양을 찾는 것으로 악명 높던 잡스의 의지야말로 애플 “매직”의 필요한 자양분이었을까?

필자의 경우 어떤 대답을 원할지는 알고 있지만, 사실 어느 누구도 그 대답을 하기에는 너무 이르며, 필자는 그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James Temple is a San Francisco Chronicle columnist. E-mail: jtemple@sfchronicle.com Twitter: @jtemple

Apple doing fine a year after Jobs' death – SFGat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Connie Guglielmo, Forbes Staff
I cover the people and technology driving Silicon Valley
FORBES | 10/03/2012 @ 6:00 |348,395 views

Untold Stories About Steve Jobs: Friends and Colleagues Share Their Memories

This story appears in the 2012/10/22 issue of Forbes.

무엇 때문에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PC와 뮤직 플레이어, 전화기와 태블릿을 재발명했는지, 그리고 자기 인생에 대해 전기작가와 이야기를 나눈 덕택에 우리는 스티브 잡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들어보신 적이 없는 “스티브” 이야기는 대단히 많다. 56세의 나이로 10월5일 타계한 잡스의 서거 1년 후, 기술 업계에서 제일 잘 알려진 선각자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들과 동료들이 알려 주었다.

Hide The Porsches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랜디 애덤스(Randy Adams)는 애플로 축출당한 후, 잡스가 새로이 만든 컴퓨터 회사, 넥스트에 오라는 스티브 잡스의 제안을 원래 거절했었다. 그 때가 1985년이었고, 애덤스는 자신이 원래 만들었던 소프트웨어 제작 회사를 매각한 직후였기 때문에 일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애덤스의 전화 자동응답기에는 잡스의 소리가 들어 있었다. “날려버리고 있군요, 랜디. 이건 인생의 기회에요. 그런데도 당신이 날려 버리고 있어요.” 애덤스는 다시 생각해 봤다.

회사를 매각한 후 애덤스는 그 일부를 갖고 포르셰 911을 구매했었는데 마침 잡스도 같은 차를 갖고 있었다. 자동차 문이 부딪히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은 사이에 두 세 대 정도의 공간을 비우고 나란히 주차하곤 했었다. 어느 날 잡스가 애덤스의 자리로 와서 자동차를 옮겨야겠다고 말했다. 애덤스는 왜냐고 물었다.

“랜디, 포르셰를 숨겨야 해요. 로스 페로가 와서 우리 회사 투자를 생각할 텐데 우리가 돈이 많은 것처럼 비쳐지면 안 되지.” 그래서 그들은 포르셰를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있던 넥스트 사무실 뒤편으로 옮겼다. 페로는 1987년 2천만 달러를 넥스트에 투자했고, 그 후 넥스트 이사가 됐다.

애덤스는 빌 게이츠가 넥스트에 회의하러 왔을 때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1986년 가을, 로비에서 게이츠 씨가 도착했다고 위층의 잡스 자리로 전화했다. “잡스 자리가 제 자리에서 보였어요. 별로 바뻐 보이지 않더라구요. 하지만 그는 일어나지도 않았고 게이츠 보고 올라오라 하지도 않았어요. 사실 로비에 게이츠를 한 시간 정도 방치해 놓고 있었습니다. 경쟁심의 발로랄까요.”

애덤스에 따르면 오히려 넥스트의 엔지니어들이 게이츠가 온 김에, 게이츠에게 몰려가서 질문들을 던졌다고 한다. “재밌었어요. 한 시간 정도 지나고 게이츠랑 얘기하고 나니까 드디어 스티브가 그를 올라오게 하는 전화를 했습니다.”

애덤스는 넥스트 웍스테이션에서 쓰이는 광드라이브 때문에 잡스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넥스트를 나왔다고 한다. 그의 생각에 광드라이브는 너무 느렸다. 그 후, 잡스는 애덤스에게 넥스트용 소프트웨어 사업을 하라며 Sequoia Capital로부터 200만 달러의 투자를 받도록 해줬다. 하지만 사업을 진행하는 도중, 잡스는 애덤스에게 넥스트가 웍스테이션 사업을 그만 두고 소프트웨어에 집중하기로 했다면서 미리 알려주려 한다며 전화를 했다.

“하드웨어 가격이 계속 떨어져서 이제 컴퓨터를 일반 범용 제품이라 생각한다 말하더군요. 그래서 차라리 그럼 PC를 팔지 그래요, 라고 물어 봤습니다. 그랬더니 잡스는 ‘PC를 파느니 차라리 개를 팔지.’라 답했었어요.”

애덤스는 넥스트 시절의 잡스에 대해 많은 기억을 갖고 있었다.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잡스가 하루는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엔지니어들 사이를 지나쳤다. “오, 구워진 동물 살의 냄새라니, 이 얼마나 좋은가!”하면서 말이다. 1986년 잡스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는 직원들에게 $100씩 나눠줬다. 애덤스가 알려준 일화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일을 망치거나 잡스가 안 좋아하는 뭔가를 한 직원들에게 잡스는 항상 “스스로를 해고하시오”라 말했다고 한다. 정말 그럴 요량이었을까? “글쎄요. 해고통지문을 공식적으로 받지 않는다면야 농담이라는 사실을 다들 알잖았을까요.”

애덤스는 넥스트를 나온 이후 어도비에 들어가서 어도비 Acrobat과 PDF 개발을 이끌었고, FunnyorDie.com 사이트를 공동 창업했다. 그에 따르면 서거 1년이 지난 지금도 업계는 잡스를 그리워한다고 말한다. “그의 카리스마는 전기와 같았어요. 정말 믿을 수 없는 힘을 풍겼죠.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었습니다. 스티브와 같이 있을 때는 뭐든 할 수 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스스로 믿곤 했었어요. 그가 죽었을 때도 그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인물은 없죠.”

Scuff Mark in the Mini-Store

2004년 췌장의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고 밝힌 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다. 잡스는 필자를 포함하여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스탠포드 쇼핑센터에 기자들을 소집했다. 새로이 750 평방피트 짜리 “미니” 스토어 디자인을 선보이기 위해서였다. 원래의 애플 소매점 크기의 절반인 미니 디자인은 하얀색 천장에 후광이 비쳤으며, 일본에서 만든 스테인리스-스틸 벽과 파워맥 G5를 방불케 하는 통풍구가 달려 있었다. 바닥은 빛나고 새하얀 색이었으며, 잡스의 말에 따르면 “비행기 격납고에서 사용하는 재료”로 만들었다 했었다.

하지만 미니 스토어 앞을 드리우고 있던 거대한 커튼을 열기 전, 겨우 몇 분 전에 잡스는 외부에 스토어를 보여 주고 기자를 맞이하기 거절했다. 왜였을까? 도면상에서야 무척 근사해 보였던 스토어 디자인이 실제로는 도면과 같지 않아서였다. 문제는 벽과 바닥이었다. 개장 준비를 위해 작업했더 사람들 때문에 벽에는 지문, 바닥에는 구두 자국이 묻어 있었다.

잡스는 바깥에 있으라 주지해 놓고 기자들 앞에서 커튼을 내렸다. 바닥을 봤던 필자는 곧바로 옆에 서 있던 잡스를 바라 보며 그가 디자인의 모든 측면에 포함돼 있었는지 물었다. 그가 그렇다고 답하자 필자는, “자기 인생에서 절대로 바닥 청소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스토어를 디자인했음이 분명해요.”라 말했다. 잡스는 필자를 가늘게 쳐다 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수 개월 후, 한 애플 중역이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토요일 개장 후, 잡스가 스토어로 디자이너를 모두 다 불러 모은 다음, 밤새 그들보고 하얀색 표면을 청소하라 시켰다고 한다. 그 후 애플은 현재 애플 스토어 디자인에 널리 퍼진 석재 타일로 바닥을 교체했다.

They’ll Get Used To It

인터넷 브라우저의 개척자이자 벤처 투자자가 된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sseen)에게는 아이폰이 선보이기 조금 전에 잡스 부부와 더블 데이트를 했던 추억이 있었다. “2006년 가을이었어요. 제 부인인 로라와 제가 스티브, 그리고 그의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부인인 로렌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었습니다. 팔로알토의 캘리포니아 거리에 있는 식당의 대기열에 앉아 있었고 실리콘 밸리 특유의 훈훈한 저녁이었어요. 그 때 스티브가 프로토타입의 아이폰을 청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가지고서는 ‘뭐 좀 보여줄게’라 했습니다. 그러더니 온갖 기능을 설명하더라구요.”

“스티브 말에 맞춰서 감탄 좀 해 줬죠. 그리고는 감히 대들었습니다. 원래 제가 블랙베리 광팬이었기 때문에, ‘스티브, 물리적인 키보드가 없으니 문제가 되리라는 생각은 안 하시나요? 사람들이 과연 화면상에서 타이핑하는 것을 문제 없이 할까요?’라 물었어요. 그랬더니 완전 제 눈을 뚫어지라 쳐다보면서 말하더군요. ‘그렇게 될 거야.'”

애플은 2007년 아이폰을 선보인 이래 2억5천만 대 이상의 아이폰을 팔았다. 아이폰은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린 스마트폰 중 하나이다.

Blunt, But With Taste

1984년 맥을 처음 선보였을 때이다. 애플의 수석 에반젤리스트이자 맥 개발 커뮤니티 관계를 맡고 있었던 가이 가와사키(Guy Kawasaki)의 자리로 잡스가 한 사내를 뒤에 데리고 다가왔었다. 잡스는 가와사키에게, Knoware라는 맥 개발사의 프로그램에 대해 의견을 구하러 왔다고 말했다. 자신은 그 프로그램에 대해 잘 모른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바를 말해 드렸죠. 극도로 부정적이었어요. 말한 뒤, 스티브가 뒤의 사내를 쳐다 보고는, 다시 저를 쳐다 봤습니다. ‘가이, 사실 이 분은 Knoware의 CEO야.’, 이러는 겁니다.”

가와사키는 이 이야기야말로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직원을 곤란하게 만들어버리는” 잡스의 성격을 드러내는 일화라 말한다. “일반적으로 스티브를 말해주는 사례이죠. 스티브의 팬이라면 ‘자질구레한 겉치례를 그가 이렇게 돌파하는군!’이라 말할 테고, 스티브의 팬이 아니라면 사교성이 전혀 없다 말할 겁니다.”

“사람들을 이처럼 대하기는 했지만 훌륭한 인재들을 스티브가 데려와서 일하게 했었죠. 다른 보스들 대부분과는 달리 스티브는 훌륭한 일을 인정할 줄 알았습니다. 직원들이 열심히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두 가지 있어요. 잘하거나, 잘하지 못 할 때를 아는 취향, 그리고 과감하게 말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취향은 없지만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죠.”

“위대한 일을 하고 싶으시다면 애플에서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가가 따라요. 공개적으로 수치를 느껴야 한다는 거죠. HP에서는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HP 방식이 아니에요. 반대로 말하자면, HP에서는 누구 하나 훌륭한 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HP에서는 최고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어디에서 일하시겠습니까? 애플입니까, HP입니까?”

A Little Hand In the Screen

1974년 잡스를 고용했던 아타리(Atari)의 창업자인 놀란 부시넬(Nolan Bushnell)은 잡스의 격렬함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아침에 와 보면, 저녁 내내 일하다가 책상 밑에서 웅크려 누워 있는 스티브를 발견하곤 했었어요.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죠. 그의 성공이 행운이라거나 때와 장소를 잘 만났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지만,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한다면 스스로의 행운을 갖고 정말 멋진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철학적인 관계도 갖곤 했어요. 그는 큰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즐겨 얘기하곤 했습니다. 제품 만들기, 그리고 제품을 언제 시장에 내놓아야 할지가 항상 그의 관심사였어요.”

1980년대 초, 부시넬은 프랑스 파리에 15,000평방피트 짜리 집을 구입하고, 실리콘 밸리 친구들을 모두 집들이 파티에 초대했다. 밴드와 산더미같은 음식, 음료를 준비했고 친구들은 모두 정장을 입고 왔다. 단, 아타리를 떠나 1976년 애플을 창업했던 잡스만은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들어왔다.

부시넬은 파티 다음 날, 파리의 레프트 뱅크(La Rive gauche)에 스티브와 함께 앉아서 파리를 바라 봤다. 그는 커피를, 스티브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창조성의 중요함에 대해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애플 II의 수명이 점점 다 해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애플 III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막 리사 아이디어를 생각하기 시작했었죠. 리사가 곧 매킨토시가 되죠. 우리는 트랙볼과 조이스틱, 마우스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화면 상에 있는 작은 손 아이디어도 얘기했죠. 결국은 마우스 얘기였습니다.”

“사망하기 1년 전에 마지막으로 그를 봤었어요. 매우 말랐지만 전혀 늙어 보이지 않더라구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 이거 이겨낼 거예요.’라 말하더군요.”

A Christmas Story

원래 애플의 오리지날 마케팅 전문가였던 리지스 매케나(Regis McKenna)는 오토바이를 몰고 당시 22살의 잡스를 만나러 갔었다. 그는 잡스와 함께 애플을 어떻게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 것인지를 얘기했었고, 1983년부터 1987년까지 애플 간부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그 후로 둘은 가까운 친구로 지냈었다.

“1998년, 부인과 저는 다섯 대의 아이맥을 손자들 성탄절 선물로 샀었어요. 선물 포장 뜯는 광경을 지켜봤죠. 5살 짜리 손녀딸인 몰리가 자기 아이맥을 열면서 ‘인생 참 좋아’하더라구요. 그런데 불행히도 몰리의 아이맥은 문제를 발생시켰습니다. 몇 시간 쓰고 나니까 디스크 드라이브 문이 열리지 않더라구요. 판매자는 애플 정책 때문에 컴퓨터를 새 컴퓨터로 바꿔주지 못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수리에는 수 주일이 필요하다더군요. 그래서 전 스티브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애플의 아이맥 교환/환불 정책이 어떤지 물어 봤습니다. 보내고 난 뒤 5분도 안 돼서 전화가 울리더라구요. 스티브였습니다. 문제가 무엇이고 판매자가 누구였는지를 묻더니 다시 걸겠다면서 끊더군요. 그랬더니 몇 분 뒤에는 판매자가 매우 미안해 하면서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손녀분을 위해 새 아이맥을 드리겠습니다.’라 말하더군요. 그래서 감사의 이메일을 스티브에게 보냈습니다. 손녀의 성탄절을 행복하게 해 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랬더니 스티브가 즉각적으로 간단한 답 메일을 보냈습니다. 내용은 ‘Ho, ho, ho’였어요.”

매케나는 다른 이야기도 들려 줬다. 1985년 당시 CEO 존 스컬리와 이사진들로부터 축출당한 그 다음 주, 잡스는 매케나에게 다음 단계에 대해 말했었다. “스티브는 자기가 떠난 덕택에 애플이 도움을 받으리라 말했었어요. 새로운 회사가 아마 애플이 사용하고 회사에게 이익이 될 기술을 개발할 수 있으리라더군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우리가 성공적인 제품 라인을 새로 개발하여 애플의 제품 라인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에요. 애플이 우리를 인수하겠지.’ 그 때는 그의 말이 어떻게 정확히 실현될지 그도 예측을 못 했었죠.”

1996년 애플은 잡스의 넥스트를 2억 4,900만 달러에 인수했고 잡스는 애플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미국 기업사상 제일 성공적인 부활을 일으켰다.

A Friend In Need

현재 벤처 투자자인 하이디 로이즌(Heidi Roizen)은 1980년대 맥용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T/Maker의 사장이었다. 그녀는 잡스와 함께 “성격 구축”이라 부르던 경험을 많이 가졌다고 말한다. 다만 개인적인 사례가 한 건 있었다.

“1989년 3월1일이었어요. 스티브가 거론할 일이 있다고 전화를 했었어요. 하지만 스티브가 전화를 하기 직전에, 바로 전 날 저녁 제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었어요. 저는 그 때 파리 출장중이었죠. 그래, 무슨 일인가요라고 스티브에게 묻자 스티브는 ‘도대체 왜 지금 일하고 계십니까? 집에 가셔야죠. 저도 곧 가겠습니다.’라 말하더군요.”

실제로 잡스는 그녀의 집으로 와서 그녀가 2시간 동안 흐느껴 울 동안 바닥에 앉았다. “예. 소파가 있긴 했지만 스티브는 소파에 앉기를 싫어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뭐가 중요하고 뭘 제일 좋아했는지에 대해 말하라 하더군요. 마침 스티브의 어머니도 몇 개월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제 느낌이 어떤지, 뭘 얘기해야 할지 각별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 때 제게 준 위로는 정말 놀라운 일이었어요. 언제나 기억하고 감사해 할 겁니다.”

He Notices Everything

넥스트에서 스티브 잡스를 위해 홍보팀에서 일했던 에밀리 브라워 오차드(Emily Brower Auchard)는 아무리 사소한 디테일이라도 잡스는 “알아차리는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스티브와 언론 인터뷰에 참가해서 노트를 적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 인터뷰 직전, 신발을 서로 다르게 신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아침에 옷을 워낙 빨리 입어서 다른 신발을 신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래서 상사에게 어떻게 할까요라 전화를 하니까 그녀는 반드시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스티브가 못 알아차릴리 없다면서요. 그래서 미친년처럼 스탠포드 몰로 가서는 Nordstrom의 신발을 한 켤레 사갖고 곧바로 넥스트 사무실에 들어갔습니다. 내 생에 제일 빠른 쇼핑 결정이었을 거예요.”

Disarm, Rather Than Charm

구매자를 찾기 위해 노력하던 1989년, 넥스트는 IBM의 OS/2 컴퓨터용으로 넥스트스텝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논의할 회의 일정을 잡았다. 익명을 요구한 당시 넥스트의 한 간부는 넥스트가 이 일이 꼭 이뤄지기 바랬다고 한다. (실제로 IBM은 그 해 말, 6,500만 달러를 들여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라이선스했다.)

양사 간부진이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있던 넥스트의 회의실에 모두 모였고 잡스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잡스는 들어왔고, IBM의 수석대표에게 다가가서 “당신네 인터페이스는 썩었습니다.”라 말했다. 양사 간부진 모두 아연실색했다.

“그가 얼마나 협상을 잘 하는지 알려주는 사례입니다. 욕을 해대면서 사람을 완전히 무장해제시켜버리죠. ‘당신네 제품이 워낙 썩었지만 우리가 해 준다’는 식이에요. 과도하기는 하지만 그는 자기가 원하는 바를 언제나 얻어냈습니다.”

Okay to Lie

1990년대 후반 잡스가 애플에 복귀했을 때 같이 일했던 한 간부의 증언이다. “스티브는 정말, 정말, 정말 1대1 대화에 능숙합니다. 대화를 할 때 전혀 꾸미지를 않거든요. 하지만 방 안에 두 명 이상 있다면 그도 마케팅을 합니다. 꾸몄죠. 가령 나로부터 원하는 바가 뭔가 있다면 그는 언제나 예의 바르고 친절해야 합니다. 애플에 복귀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들이 필요했어요. 애플은 당시 혼란 상태였고, 넥스트는 실패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같이 일할 인재가 필요했어요. 아이포드, 그리고 아이폰으로 성공을 거듭하고 나면서 그는 더 오만해졌습니다. 이전의 스티브죠.”

“뭔가를 하겠다면서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을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그 점을 지적하니까 이렇게 답하더군요. ‘그래, 그래. 알아요. 하지만 마음을 바꿀 필요가 있었지.’ 마음 속으로는 거짓말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Brilliant

애플이 오에스텐을 발표했을 때다. 오에스텐은 맥의 새로운 운영체제로서 이전의 시스템과 연동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개발자들도 애플리케이션을 재작성해야 했다. 그래서 잡스는 어도비에게 제일 잘 팔리는 제품군을 오에스텐으로 포팅해주시라 요청했지만 어도비는 망설였다. 기능 개선도 아니고 시스템 호환성만을 위해 소비자들이 과연 돈을 내려 할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도비는 결국 오에스텐용으로 제품 업데이트를 했지만 잡스는 업데이트의 시기를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한 전직 어도비 간부의 증언이다.

“그는 오에스텐 호환성을 오에스텐이 나오자마자 맞추기 바랬어요. 하지만 어도비가 바람만큼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서 화가 났었습니다.” 어도비가 마침내 오에스텐 버전을 선보였을 때 잡스는 맥월드 이벤트에서 어도비 제품을 소개하겠노라 확신했었다. “실제로 했죠. 어도비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자기 플랫폼 전용으로 나온다는 말이기 때문이었어요.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이 뭔지 그는 정말 잘 알았습니다. 뛰어났죠.”

Untold Stories About Steve Jobs: Friends and Colleagues Share Their Memories – Forbes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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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Jobs의 생전 모습들이 찍힌 영상들은 모아논 Every Steve Jobs Video 사이트가 오픈 했습니다. 동영상은 YouTube의 Every Steve Jobs Video 채널에 정리되어 업로드되어 있습니다.

http://everystevejobsvide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