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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그 휘트먼, HP를 되살릴 수 있을까?

Can Meg Whitman Reverse Hewlett-Packard’s Free Fall?

By Ashlee Vance and Aaron Ricadela on January 10, 2013
Can Meg Whitman Reverse Hewlett-Packard’s Free Fall? – Businessweek

1월 16일, 휼렛패커드는 팔로알토에 있는 본사 사옥에 개조시킨 소비자 만남 센터를 개장할 계획이다. 만든지 1년 된 이 센터의 첫인상은 놀라울 정도다. 1980년대 빈티지 식의 하얀색 입구가 초현대적인 모양으로 바뀌었으며, 열린 공간과 푸른색 조명이 가득하다. 유리벽으로 되어 있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투시해 보면, 이 공간이 옛날 옛적 시골 한 가운데 있던 오크 나무 주변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윌리엄 휼렛과 데이비드 패커드가 1960년대에 심었던 나무다. 같은 빌딩에 방이 있는 메크 휘트먼의 말이다. “과장하지 않더라도 이곳은 오크 나무의 근간에 닻을 내린 휼렛-패커드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HP의 네 번째 CEO가 된 휘트먼은 차분한 인상을 주려 노력중이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출근 전 집 근처의 대중용 수영장에서 수영하려 노력한다. 개인적으로 그녀는 장난기가 많은 듯 하다. 컨트리 뮤직의 벨소리를 설명할 때는 의자에 앉아 춤추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녀는 과거와 HP의 미래에 관해 직설적으로 말한다.

실리콘밸리 바깥의 사람들도 휘트먼에게 정치 경력이 있음을 알 것이다. 이베이에서의 CEO 10년을 지낸 다음 휘트먼은 2010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나갔다가 실패했었다. 또한 그녀의 전임 가정부가 불법체류자임을 사전에 알았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이 논란이 1억 5천만 달러를 들인 주지사 선거에 마지막 일격을 가했지만 휘트먼은 선거 때의 경험으로 배운 점이 몇 가지 있다고 말한다. “선거 경험은 제게 제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만, 도전해야 할 것 같은 뭔가 있으면, 돌아가야죠.”

도전은 다름 아닌 HP이다. HP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제일 어려운 시기가 지금이다. 소비자들은 HP의 제일 중요한 제품인 PC와 프린터를 덜 사고 있으며, 부채는 늘어나고 잘 안풀리는 인수에 수 십억 달러를 썼다. 월스트리트 분석가들은 휘트먼이 회사를 결국 쪼개야 하리라 말하는 것부터 새해 인사를 시작했다. 2010년 8월 거의 680억 달러에 달했던 시가 70%를 잃은 이래, 다우존스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현재 HP의 시가는 290억 달러 정도이다. 매출액이 HP의 1/9 정도에 불과한 Carnival Cruise Lines보다도 5억 달러 정도 더 낮은 수치이다. 하바드 비지니스스쿨 교수이자 엑손모빌, 골드먼삭스, 마요 클리닉 이사이기도 한 윌리엄 조지(William George)의 말이다. “HP가 어떻게 이리도 빠르게 급락했는지 궁금할 겁니다. HP 주가를 보고 농담인가? 이것 밖에 가치가 안 나가나? 하시겠죠.”

HP의 사업 대상인 PC와 서버, 프린터는 이제 범용 제품화가 됐으며 철지난 제품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는 점 자체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사업 다수는 여전히 HP에게 120억 달러 이상의 영업이윤을 만들어주는 사업이기도 하다. 조직도 맨 윗자리를 바꾸는 것 또한 너무 과도했다. 조지의 말이다. “제일 거대한 기업 구조 파괴의 사례입니다. 정말 어려운 결정을 내릴 준비가 되지 않는 한, 주주들에게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죠. 계속 표류할 겁니다.”

휘트먼은 그런 결정을 내릴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5년이요. 이 답변을 싫어하는 분들도 있죠.”

HP가 생기기 전에는 차고에서 뭔가 만들어서 세상을 바꾼 사례가 없었다.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실리콘밸리 역사 프로젝트를 이끄는 역사가인 레즐리 벌린(Leslie Berlin)의 말이다. “HP는 나도 제일 크고 중요한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실현시켜주는 모델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여전히 제일 중요한 개념이죠.”

그동안 HP는 항상 민첩하지는 않더라도 성공적으로 사업을 변화시켜 왔다. 과학 도구에서 계산기, PC, 프린터, 데이터센터에 이르기까지 휼렛과 패커드는 연구개발 비용을 충분히 지출하여 신제품을 내면서도 옛 제품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등 균형을 훌륭하게 지켜 왔었다.

게다가 HP는 실리콘밸리 사업 문화도 많이 만들어냈다. 엔지니어가 운영하는 쾌적한 사무실 환경이라든가 회사 실적을 모두 공유하는 것과 같은 문화다. 벌린의 말이다. “HP는 좋은 사람들이 좋은 제품을 만드는 좋은 직원과 함께 만들어낸 회사였습니다. 밸리 지역 도덕의 핵심처럼 기능했죠.”

HP 쇠퇴의 뿌리는 적어도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크 허드(Mark Hurd)의 전임자였던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는 최초의 외부 영입형 CEO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임기 동안 대규모 정리해고에 대한 혐오 같은 HP의 DNA에 들어간 (이미 지지부진해져 가고는 있었지만) 지루한 경영원칙을 깨뜨렸다. 1999년 HP는 HP의 뿌리에 제일 가까운 전자 기기 제조 업체인 Agilent Technologies를 매각했다.

피오리나와 빌 휼렛의 아들인 월터 휼렛과의 험악한 주주(株主) 전투 2년 후, HP는 거대한 개인용 컴퓨터 제조업체인 컴팩을 인수했다. 이 인수로 HP는 거대해졌지만 포괄적인 기업 문화가 약해지고 발명에 집착하는 회사가 아닌, 공급망에 의존하는 노예 회사가 되어갔다. 피오리나는 2005년 초, 월스트리트의 예측치를 너무 많이 놓쳤기에 해고됐다. 그녀 임기 동안 HP는 불발탄이나 일삼는 거대 기업이 됐고 최고 경영진의 음모로 리더쉽 또한 약화됐다.

제일 악명 높은 사례가 있다. 피오리나 이사진들은 자신들이 참가했던 회의를 기자들에게 누출시켰으며, 회사 간부들은 직원과 기자들을 스파이하여 누가 누출을 하는지 알아내려 했다. Delaware 대학교의 와인버그 기업지배구조 센터장인 찰스 엘슨(Charles Elson)의 말이다. “HP는 오랜 기간 동안 이사진의 모델이 됐던 기업입니다. 그런데 칼리가 오면서 바뀌었죠.”

HP는 2005년 3월, 창립할 때의 정체성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면, 원칙을 단일화시킬 수 있었다. 당시 허드가 들어 왔었다. 양복쟁이에 Baylor 미식축구 팬이자 입버릇이 상스러운 사나이인 마크 허드는 HP를 들어가기 전, 2년동안 NCR을 운영하고 있었다. 계산대와 자동화된 텔러 머신과 세계 최대의 기업들이 상품과 고객, 영업매출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NCR 내에서 허드의 실적은 좋았다.

월스트리트 분석가들이 아니라면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허드는 실용적인 인간-현금 계산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스프레드시트에 있는 모든 수치를 기억할 정도였다. HP는 이윤이 낮은 PC와 프린터(거의 잉크를 팔기 위해 거저 내놓는 수준이다), 하이엔드 수퍼컴퓨터, 다중의 라이선스를 통한 소프트웨어, 시간당 요율로 매기는 서비스라는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순간 종종 손실이었던 서버와 PC 사업의 이윤이 매우 좋아졌다. 허드는 월스트리트의 예측치를 22 분기 중 21 분기동안 맞췄고 22 분기 내내 이윤을 늘렸다. HP의 매출은 63% 뛰어 올랐고 주가도 두 배 더 올랐다. Robert W. Baird의 분석가인 제이슨 놀랜드(Jayson Noland)의 말이다. “마크 허드는 비용을 줄이고 그걸로 일을 잘 해냈죠. 하지만 영원히 비용을 줄일 수는 없습니다. 투자자들은 성장을 원했어요.”

인터뷰를 벌인 십 수 명의 전임 HP 간부진들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사람들 거의 전부가 마크 허드의 팬이었다. 그는 창립자의 권위를 거의 동일하게 가졌다. 그는 모든 면에서 CEO이자 CFO이자 COO, 그리고 영업 책임자였다. 전 부사장이었던 산딥 조흐리(Sandeep Johri)의 말이다. “마크가 HP에 들어온지 30~45일 내에 마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회사에 없을 정도였어요. 그 효과가 항상 좋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걸 다 느꼈다는 겁니다.”

외부 컨설턴트 요청은 언제나 허드의 결재를 요구했다. HP는 거의 1억 달러어치의 지출을 McKinsey와 Bain & Co.같은 곳에 넘겼지만 거의 안 쓰게 됐다. 연간 보너스 시스템은 이제 분기별로 바뀌었고 보너스를 모두 공유하는 것에 익숙하던 직원들은 이제 성과에 따른 보상을 받았다. 허드는 매년 하위 실적 10%에 해당하는 직원들을 해고 요청했다. 그는 또한 모든 간부들을 인터뷰한 다음, 간부 영입 및 평가 전문사인 Heidrick & Struggles에게 분석을 의뢰했고, 자신이 직접 평가를 검토했다.

특정 종류의 프린터 판매가 떨어지면 해당 제품의 책임자는 곧 허드로부터 잔혹하고 저주에 가득찬 메일을 받았다. 베트남 부동산가가 급상승하거나 브라질 환율때문에 서버 마진이 떨어진다는 소식도 그는 챙겼다. 샌디에고에서 715명의 인력이 수 만 가지의 프린터 드라이버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허드는 그들의 숫자는 64명으로, 작업 대상 드라이버는 몇 가지로 줄여버렸다. 조흐리의 말이다. “30만 명이 있는 회사에서 사람 한 명이 그만한 영향력을 가졌다니 믿을 수가 없죠? 하지만 그가 그랬답니다.”

허드의 영향이 어땠든지 간에 HP 이사진은 그를 소중한 존재로 여기지 않고 2010년 8월 그를 사임으로 몰았다. 이사진은 전임 마케팅 계약자였던 조디 피셔(Jodie Fishcer)이 허드를 고소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허드가 성희롱을 했다고 주장했다. 허드는 주장을 부인했으며 그녀가 고소 내용을 흘려서 놀랐지만 이사진은 허드가 피셔와의 관계를 모호하게 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간부였던 로버트 라이언(Robert Ryan)의 말이다. “허드가 갈린다는 소식을 HP 직원 모두들 예기치 못했고, 허드가 직원들을 실적으로 이끄는 강력한 리더로 알고 있음을 이사진도 알고 있었어요.” HP는 사내 조사를 벌여 허드와 피셔 간의 이메일을 조사했고, 그녀의 성희롱 주장에 별 근거가 없음을 알아냈지만 이사진은 어떻게든 허드를 사임시켰다.


사흘 후 그는 이사진의 압박 아래 CEO 직을 사임하지만 스티브 잡스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는다. 애플 창업자인 잡스는 혹시 대화상대가 필요한지 허드에게 물어봤다. 잡스 또한 예전에 애플 이사진으로부터 유사한 압박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허드와 잡스 둘 다의 친구인 오라클의 CEO, 래리 엘리슨 또한 허드의 축출을 “애플 이사진이 스티브 잡스를 몰아낸 이후로 최악의 이사진 결정”이라 혹평했었다.


익명을 요구하되 둘을 잘 아는 관계자들에 따르면 허드는 잡스를 팔로알토에 있는 잡스 집에서 만났다. 둘은 두 시간 이상 같이 있었고 잡스는 허드를 데리고 나무로 우거진 동네를 산책했었다. 잡스는 여러 번에 걸쳐 허드에게 되돌아갈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해주겠다 말했다. 심지어 잡스는 HP 이사진들 하나 하나에게 편지나 전화를 하겠다고도 제안했다.

5년동안 허드는 HP를 지구상 최대의 기술기업으로 일궈놓았다. 2010년 매출액은 1,260억 달러였다. 주가 또한 야단법석이었고 이윤도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잡스는 허드나 다른 친구들에게 HP 이사진이 HP의 진보를 풀어 놓아버렸으며 회사를 혼란으로 끌고 갈 것이리라 말했다.

허드에게 조언을 해 주면서 잡스는 단순히 친밀한 상담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빌 휼렛과 데이브 패커드의 유산까지 동원했다. 잡스의 말에 따르면, 건강한 실리콘 밸리를 위해서는 건강한 HP가 필요했다. 애플 이사진이자 Intuit의 사장인 빌 캠벨(Bill Campbell)의 말이다. “HP는 실리콘밸리 자체를 만든 회사입니다.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으시겠죠.”

잡스는 결국 허드와 HP 간의 화해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로부터 약 1년 후 그는 서거했는데, 자신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보고 사망했다. 허드와 잡스가 대화를 나눈지 몇 달 안 있어서 HP 이사진은 새로운 CEO로 레오 아포테커(Leo Apotheker)를 선출했고, 새로운 사장으로는 실리콘 밸리의 오랜 수호자인 레이 레인(Ray Lane)을 선택했다. 레인은 HP가 붕괴되어가는 동안 회사 구조조정이라는 거대한 역할을 맡았다.

운이 다 해 가면서 새로운 CEO들은 허드를 탓해 왔다. 직원들을 해고하고 사무실 공간과 수당을 없앴으며 직원들에게 더 많은 실적을 요구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한 사건을 거치면서 회사가 쇠락해갔다. 허드의 임기가 끝나면서 HP의 내부 기술 시스템은 한 물 갔고 더 이상 HP에는 모바일과 클라우드 컴퓨팅처럼 높은 성장을 이끌어 낼 매력적인 제품이 없어졌다. 더군다나 능력 있는 직원들은 의무적인 순위 시스템을 통해 도태되면서 사기도 떨어졌고 최고 간부들은 허드가 새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이러한 비판들이 상당수 사실이기는 하지만 HP의 전망이 허드 이후로 왜그리 빠르게 훨씬 더 악화됐는지는 그들도 이해하지 못했다.

HP의 매출액이 급감한 이유는 부적절한 제품 때문이라는 인상을 가진 이들이 많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HP는 허드의 마지막 임기일 때 매출액이 1,260억 달러였고 2012년에는 1,204억 달러였다. HP는 전세계 기업 컴퓨터 시장의 지배자로 여전히 남아 있다. 플로리다의 Global Financial Private Capital에 있는 투자 수석, 크리스 버텔센(Chris Bertelsen)의 말이다. 자산이 18억 달러인 그의 회사는 HP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예전의 IBM과 매우 흡사해 보입니다. 메그가 HP를 잘 이끌 수 있겠죠. HP 최대의 난제는 핵심 사업이 아니라 리더십입니다. 빚으로 가득 찬 장부도 해결해야 하지만요.” 모토로라의 전 CEO인 에드 잰더(Ed Zander)의 말이다. “현재 현금 보유고와 하락한 주가때문에 지금이 제일 어두운 시기처럼 보입니다. 살아남으리라 생각하지만 HP가 다시금 주요 기업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죠.”

잡스는 허드에게 HP 이사진을 바꾸라 조언했었다. 허드의 친구이면서 테니스 상대이기도 한 래리 엘리슨은 그에게 복수할 강력한 플랫폼을 제시했다. 허드가 HP를 떠난지 한 달 후, 엘리슨은 그를 HP의 경쟁상대인 데이터센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사업을 맡는 오라클 공동 사장으로 임명했다. (허드는 이 기사를 위한 코멘트를 거절했으며, 엘리슨 또한 인터뷰 요청에 반응하지 않았다.)


허드가 떠나자 HP는 임시 CEO로 원래 CFO였던 캐시 레잭(Cathie Lesjak)을 임명한다. 그녀는 여느 HP 간부들처럼 CEO가 되겠다는 포부가 없었다. 뒤로는 넷스케이프의 공동 창업자이자 벤처 투자자로 변모한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이 이사로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시기 시작했고 다음 리더가 되려 했다. 레잭은 투자자와 언론에게 HP가 허드가 세워 놓은 재정 원칙을 준수하겠다고 확인해 줬다. 다만 그녀는 소프트웨어 개발과 판매를 이해하면서 연구개발도 확대시킬 수 있는 인물을 물색했다. HP는 더 많은 혁신을 일으키고 이윤도 높일 인물을 찾았는데, 완전히 당황스러운 일들이 잇따랐다.

첫째로 레잭은 HP의 다음 분기 지출을 5억 달러로 올려 놓았는데, 2주일 후, 델과의 경매경쟁에서 승리하여 스토리지 회사인 3PAR를 23억 5억 달러를 내고 인수했다. 열흘 후, HP 이사진은 100억 달러 어치의 자사주 매입을 단행했고 이런 소동 끝에 아포테커를 새로운 CEO로 임명하고 레이 레인을 새로운 이사진으로, 그리고 경영 사장으로 임명했다.

아포테커는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업체 중 한 곳인 SAP에서 수 십 년을 보냈지만 CEO로서는 짧은 기간만을 보냈었다. 레인은 기업 컴퓨팅의 해결사로 알려져 있었다. 90년대 오라클에서 8년을 보내면서 그는 엘리슨과 같이 고객 관계 해결을 돕고 자유분병한 영업 문화에 원칙을 적용시켰다. 그와 엘리슨은 사이가 멀어져서 레인은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 투자사 중 한 곳인 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로 향했다. 아포테커-레인 콤비는 하드웨어에서 고마진의 기업 애플리케이션으로 사업이 바뀌리라는 신호를 주었다.

아포테커는 2010년 11월에 업무를 시작했다. CEO로서 첫 번째 달에 그는 HP의 매출 예상치를 높였지만 결국 예상치를 놓쳐서 월스트리트를 실망시키는 패턴을 다시 시작했다. 아포테커는 심지어 미국 바깥에서 HP를 운영하여 언론의 놀림거리가 됐다. 그는 전세계의 고객과 직원들을 만나는 “듣기 투어”를 벌였다. 당시는 캘리포니아에서 오라클과 SAP 간 소송이 있었기 때문에 소환장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말이 있다.

내부적으로 아포테커는 친구를 많이 만들지 않았다. HP 부사장단의 약 절반이 CEO가 되기 위해 경쟁을 벌였고 전직 간부들은 아포테커가 그들에게 다가가서 이겨내지 못 했다고 말했다. 성격의 문제도 있었다. 아포테커의 냉담한 처신과 HP의 세부사항을 알기 꺼려하는 움직임 때문이었다. 서비스 사업부에 있었던 한 전직 고위 간부는 아포테커와의 첫 회의를 이렇게 회상했다. 서비스 사업의 내역을 알려주기 위해 한 회의였는데 회의실에 모인 그와 십 수 명의 간부들은 아포테커가 깜빡 조는 광경만 봤을 뿐이었다. 그들은 15분 동안 불편하게 기다렸으나 아포테커는 깨어 나서는 놀랍게도 사업의 재정적인 세부사항을 그냥 지나키고 싶었다 말했다. 보다 특정적이지 않은 소비자 만족에 대한 구상을 얘기하기 위해서였다. 아포테커의 대변인인 션 힐리(Sean Healy)의 말이다. “보통 그의 업무 시간은 90시간이었습니다. 팔로알토의 무시받아온 연구개발소도 방문했었죠. 이런 일정때문에 그가 참가한 수 백 회의 검토 회의 중 하나에서 존 것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고객만족과 제품 성능 등, 재무 지표 뒤에 있는 HP의 장기적인 집중 대상을 바로 잡기 위해서였죠.”

전직 간부진은 HP가 하드 이전 방식대로, 그러니까 분방하게 지출하는 문화로 빠르게 돌아섰다고 기억한다. 아포테커는 회사 전반적으로 급료를 올리고 컨설턴트들을 다시금 불러들였다. 허드의 축출때문에 그런지 모두 허드가 한 반대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에 따르면 아포테커는 허드라면 저항했을 만한 계획을 거의 승인했다고 한다.

2011년 3월, 이제 CEO 4개월 째가 되는 아포테커는 마침내 언론 기자 간담회를 갖고 자기 계획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HP는 Palm이 만든 모바일용 소프트웨어인 webOS를 자사 PC와 프린터 라인에 설치함은 물론, 새로운 모바일 기기에도 설치하겠노라 말했다. HP는 아직 내놓을 제품이 없긴 하더라도 클라우드 컴퓨팅에도 과감하게 들어서기로 했다.

5개월 후인 8월, 아포테커는 Palm 소프트웨어 계획을 철회했고 스마트폰과 태블릿 기술에서 webOS를 제거하겠노라 발표했다. HP는 또한 McKinsey의 조언대로 연간 4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던 PC 사업부의 매각을 고려하겠다고 발표했다. 분기 예상 수익을 이미 낮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법률과 규정용으로 기업 데이터를 처리하는 소프트웨어 업체, Autonomy를 100억 달러에 인수했다. 연간 매출액의 10배였다.

발표하던 주, 아포테커와 그의 팀은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논스톱 회의를 가졌다. 커뮤니케이션 부장인 빌 월(Bill Wohl)과 대외홍보 컨설턴트인 조엘 프랭크(Joele Frank)는 아포테커에게 이 모든 변화가 회사의 주가를 크게 떨어뜨릴 것이며 부정적인 언론 보도가 쇄도하리라 경고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아포테커는 회의를 물리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월에게 의자를 던졌다. 그리고 이사진 회의에서 다시는 프랭크를 보고 싶지 않다고도 덧붙였다고 한다. 아포테커 대변인인 힐리는 의자를 던진 것이 아니라 밀었으며, “시간이 흘러서 수학적으로 과장된 수준으로 올라섰습니다.”라 말했다.

한 달 후, 아포테커는 해고되고 메크 휘트먼이 CEO에 올랐다.

떠들썩 했던 HP의 지난 2년은 이사진 의장인 레이 레인의 시기였다고 부를 수 있다. 레인은 2011년 1월 이사진을 조종하여 휘트먼을 이사로 모셔왔다. (HP를 통해 레인은 이 기사를 위한 코멘트를 거절했다.) 그의 조정 하에 HP는 5명의 새로운 이사를 모셔오고, 허드 시절의 이사진 네 명을 몰아냈다. 관계자에 따르면 레인은 시티그룹과 General Mills, 코넬 대학교의 이사이기도 한 로버트 라이언과 폭스 배리 딜러(Barry Diller)의 제자인 루시 살하니(Lucie Salhany)에게 두 명의 반-허드 이사진을 몰아내고 허드에 충성스러운 이사 두 명을 다시 불러들여서 균형을 맞춰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고별 파티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HP 이사인 잰더의 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저도 확실치가 않았어요. 이 모든 변화를 일으킬 때 일을 제대로 하기는 어렵죠.”


레인 편을 드는 이들도 있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전 CEO인 스콧 맥닐리(Scott McNealy)가 그 중 하나다. “레인은 언제나 직관적이고 쉽게 일을 합니다. 레인은 ‘경제적인 봉사자’에요. HP를 수렁에서 건지기 위해 수많은 세월을 보냈으니까요. 회사를 위해서이지 명성때문이 아니에요.”

전임 HP 간부들은 맥닐리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레인이 권력지향적이라는 의견이다. 조지의 말이다. “레이 레인은 자기에게 가까운 이사진들만 잔뜩 데려왔습니다. 그러면 레인을 자를 수가 없죠. 이사진이라는 개념은 회사에게 자기가 누구이고 뭘 어떻게 할지, 구조적인 기억을 세우는 역할입니다. 하지만 그 본질을 이사진은 잊었다고 봐요.”

레인이 HP 이사진에 들어선 이후 HP는 레인과 제휴된 회사 두 곳을 더 인수했다. HP는 데이터 분석 기업인 Vertica를 3억 5천만 달러에, 보안기술 전문 업체인 ArcSight를 15억 달러에 인수했다. 모두 Kleiner의 이력 페이지 및 투자 대상에 올라와 있는 회사이다.

레인은 또한 날라가 버렸던 Autonomy의 인수를 승인했다. 11월, HP는 Autonomy의 저조한 매출때문에 100억 달러의 인수가를 88억 달러로 낮추겠다면서 Autonomy 회계 관리에 속임수가 있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Autonomy의 창업자이자 전 CEO인 마이크 린치(Mike Lynch)는 그런 혐의를 부인했고, Autonomy 경영진의 주장을 쟁점사항별로 반박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휘트먼은 레인처럼 Autonomy 결정과 자신을 떨어뜨리려 노력했다. 11월 20일 컨퍼런스는 비난의 초점이 아포테커와 전임 인수합병 책임자이자 CTO인 셰인 로빈슨(Shane Robinson, 2011년에 떠났다)에게 집중됐다. 휘트먼의 말이다. “당시 CEO와 이 인수를 맡은 전략 책임자는 모두 떠났습니다. 레오 아포테커와 셰인 로빈슨입니다.”

로빈슨은 본 기사를 위한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아포테커는 블룸버그 뉴스로 보낸 이메일에서 그 책임이 레인과 나머지 이사진에 있다고 지적했다. 아포테커의 이메일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대규모 인수를 어느 CEO도 자기 혼자 결정 내릴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HP처럼 대기업에서는 이사진의 완전한 지원 없이는 더욱 불가능합니다.”

휘트먼은 실제로 일어난 것 이상으로 이야기가 더 나쁘다고 말한다. 그녀는 내부적으로 검소함과 겸손함을 강조해왔다. 150여명의 HP 간부진 회의에서 그녀는 HP가 포시즌 호텔이 아니라 매리어트 호텔이라 말했다. 야근할 때는 피자나 치포틀 칠리를 주문한다. “무슨 멋쟁이 회사가 아닙니다.”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휘트먼은 수석 부사장들을 으리으리한 사무실에서 일반적인 칸막이로 분리한 사무실로 옮겼다.

휘트먼은 또한 직원과 외부인들을 혁신으로 몰고 가려 노력한다. HP는 이미 새로운 라인의 태블릿과 우아한 노트북(분리할 수 있는 화면이다)을 통해 시장 점유율 하락을 막기 시작했다. 휘트먼에 따르면 정비를 한 서비스 사업 또한 다시 자라날 것이고 HP는 웹-기반 기능을 제품에 덧붙여서 프린트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스마트폰 사업도 HP가 다시 진입할지 모른다. 휘트먼의 말이다. “궁극적으로는 해야 합니다만, 큰 자금 손실 없이 해낼 방법을 알아내야 합니다.”

그녀는 HP가 당장 대규모 인수를 할 수 없지만 외부에서 HP의 현금 보유고에 대해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대 여섯 번 정도의 인수를 꾸짖으며 “제 전임자들은 매우 강력한 자산을 구성해 놓았습니다.”라 말했다. 그동안 인수한 스토리지와 보안, 네트워킹, 데이터 분석 기업들을 갖고 데이터 센터 제품 라인을 세우고 클라우드 컴퓨팅 옵션도 폭넓게 포함시킬 작정이다. HP는 비용 절감과 현대화를 위해 Salesforce.com과 Workday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중심으로 자사 기술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했다.

2010년 이래 계속된 인재 누출을 막는 일이야말로 아마 제일 어려울 것이다. 휘트먼 휘하에서 경향이 좀 누그러지기는 했다. 지난 2년간 적어도 120명의 간부들이 회사를 나갔으며 많은 수는 경쟁사로 향했다. HP는 전임 CTO와 프린터 책임자, 연구 책임자, 하드웨어 책임자, 영업 책임자, 투자 책임자를 모두 놓쳤다. 심지어 General Motors도 HP의 내부 기술팀으로부터 사람들을 빼가기도 했다.

1월 4일, UBS 은행의 투자연구부는 실리콘밸리가 그동안 두려워하던 것이 오리라 경고하고 나섰다. HP 경영층에 대한 논의 및, 회사 분리를 어째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메모였다. UBS는 “기업 부문과 PC/프린터 부문의 분리”를 “선호”한다 말했다. HP의 데이터센터 사업을 하나의 기업으로 만들고, PC와 프린터 사업을 또 다른 기업으로 만들자는 의견이다. UBS의 메모는 여타 HP의 일부를 받으려는 개인자산관리사와 경쟁사들에 대한 루머 또한 적어 놓았다. 실리콘 밸리 기업들의 상당수 최고 간부들이 HP의 조각 조각을 분석하고 있노라 확인하기도 했다.

휘트먼은 HP를 전체로 유지시켜야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HP야말로 기업들에게 기기로부터 데이터 센터까지 모두 다 판매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라 묘사한다. 앞으로는 이 모든 제품을 클라우드 소프트웨어를 통해 묶어서 고객들에게 HP가 최고의 외양과 보안, 스마트 컴퓨팅 시스템을 제공한다고 확신시켜 주리라는 말이다. 승리 전략이다. 물론 실행은 다른 문제다. 휘트먼의 말이다. “어떻게 될지 두고 볼 겁니다. 미국 기업 역사상 최고의 부활이 되잖을까,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Can Meg Whitman Reverse Hewlett-Packard’s Free Fall? – Businessweek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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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은 지난 5년간 특허 괴물들에게 171개의 소송들을 맞서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2위로는 HP가 137건, 3위 삼성 133건, 4위 AT&T 127건, 5위 Dell 122건, 6위 Sony 110건, 7위 HTC 106건, 8위 Verizon 105건, 9위 LG 104건, 10위 Google 103건으로 상위 탑 10기업들의 소송 건수가 랭킹화 되고 있습니다.

http://appleinsider.com/articles/13/08/28/patent-trolls-hit-apple-with-171-lawsuits-in-last-5-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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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유명한 리써치 그룹인 가드너는 미국과 전세계를 대상으로한 2013년 2분기 PC 출하량 조사 보고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는 여전히 HP와 Dell이 1, 2위를 경쟁하며 HP는 전년 동분기 대비 -0.5 감소, Dell이 6.4%성장하며 HP를 바짝 쫒고 있습니다.
3위는 우리의 Apple! KMUG는 Apple에 편향된 사이트다보니 Apple의 점유률을 보는건 중요한데요. 전년 동분기 대비 -4.3%감소한 기록을 보여 줬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사진을 보면 꾸준히 점유률을 치고 올라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레노보가 무섭네요. 19.7% 성장으로 Apple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습니다. 5위를 랭크한 도시바 단일 품목(노트북)만 취급하는 브랜드로 보아 상당한 수치임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만. 전년 동분기 대기 -15.7%를 기록하며 약진을 보입니다.

*세계 시장에서의 1위는 레노버로 -0.6% 하락, 2위는 HP로 -4.8% 하락, 3위는 Dell로 -3.9% 하락, 4위는 Acer로 -35.3% 하락, 5위는 ASUS로 -20.5% 하락으로 전체적으로 떨어진 성장률로 2분기를 마감 하였습니다.

이번 PC 메이커들의 출하량을 보면 전년 동분기대비 많이 떨어지는 추세로 보이는데, 그만큼 테블릿 시장 강세를 보이며 PC 구입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되지 않았나라고 하며 애널리스트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http://www.gartner.com/newsroom/id/254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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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wlett-Packard 프린터 드라이버 v2.13 (Mac OS X v10.6)
이 업데이트는 사용자의 HP 프린터 또는 스캐너에 대한 최신 소프트웨어를 설치합니다.

http://support.apple.com/kb/DL907?viewlocale=ko_KR

*Brother 프린터 드라이버 2.10
이 업데이트는 사용자의 Brother 프린터 또는 스캐너에 대한 최신 소프트웨어를 설치합니다.

http://support.apple.com/kb/DL894?viewlocale=ko_KR

 

정보 Hewlett-Packard 프린터 드라이버 v2.11 (Mac OS X v10.6)
이 업데이트는 사용자의 HP 프린터 또는 스캐너에 대한 최신 소프트웨어를 설치합니다.

프린터 및 스캐너 소프트웨어에 대한 추가 정보를 보려면, http://support.apple.com/kb/HT3669?viewlocale=ko_KR을 방문하십시오.

http://support.apple.com/kb/DL907?viewlocale=ko_KR

HP는 윈도우 8을 탑재한 올인원 PC Spectre On를 발표 하였습니다.

자세한 제품 사양.
Intel Ivy Bridge Processor
Windows 8 m Operating System
11.5 mm thickness
23.6 inche HD LCD display
Nvidia Graphics
Wireless Trackpad
Wireless Keyboard
Wi-Fi 802.11n
NFC-enabled
MicroSD Card support
HDD, Flash Memory (SSD)
USB v3.0 Support
HDMI inputs
Beats Audio

https://www.theverge.com/products/spectre-one/6109

RoughlyDrafted Magazine

Daniel Eran Dilger in San Francisco

Apple’s 15 years of NeXT

December 21st, 2011

15년 전, 애플은 넥스트 소프트웨어 인수를 발표했었다. 결국 20년 전 공동창립했던 회사로 스티브 잡스를 복귀시킨 인수였다.

애플의 넥스트 인수 이후 15년이 흘렀고, 애플은 이제 완전한 기업으로서 재탄생하였다. 넥스트 출신의 간부진과 엔지니어를 포함하여 잡스가 이끄는 새로운 경영팀이 완전히 새롭게 애플을 바꾸는 동시에 넥스트의 신기술과 방향을 얻어내면서 말이다.

NeXT before Apple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하기 이전, 넥스트 소프트웨어는 1993년 하드웨어 사업을 갑자기 철수한 이래 자신의 진보적인 운영체제 기술을 어떻게 판매할 수 있을지 힘든 해를 보내고 있었다. 이미 넥스트는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넥스트 컴퓨터 시장을 충분히 확보하는데 실패한 바 있었다.

소프트웨어 회사로서 3년을 거친 넥스트는 선(후에는 HP)과 파트너쉽을 맺어 오픈스텝(OpenStep) 계획을 발표했다. 오픈스텝은 넥스트스텝 운영 및 개발환경상에 구축해 놓은 개방형 스펙으로서, 선의 솔라리스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NT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운영체제상에서 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선과 HP 모두 결국 넥스트와의 파트너쉽에서 물러나게 된다. 선은 자바에 집중하고 HP는 애플과 IBM의 탈리전트(Taligent)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탈리전트는 넥스트 기술을 그대로 복제한 기술 프로젝트였다.


넥스트는 또한 넥스트스텝의 객체지향 개발툴로 다이나믹한 웹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해 사용하는 툴인 웹오브젝트(WebObjects)도 개발했다. 잡스는 웹오브젝트를 넥스트의 핵심 자산으로 여겼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가 점차 지배해가고 있는 시장에서 써드파티 대안형 운영체제를 팔 효율적인 방법으로서 웹오브젝트를 택했기 때문이다.

Apple before NeXT

1996년, 애플은 이제 윈도 외에 살아남은 유일한 주요 컴퓨팅 플랫폼이었고, IBM의 OS/2와 선의 솔라리스, BeOS, 넥스트스텝과 같은 대안형 라이센스 OS와는 달리 직접 매킨토시 하드웨어를 판매했기 때문에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안형 라이센스 OS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인 라이센스 계약에 종속적인 PC 시장에서 충분한 수의 구매자와 개발자를 끌어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남아 있다고는 해도, 애플의 상황 역시 좋지 않았다. 원래의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현대화시키려는 애플 스스로의 노력은 실패했고, 컴퓨터 업계에서도 지위를 잃어가고 있었다. 애플은 IBM(후에는 HP)과 연합하여 넥스트스텝-류의 시스템인 탈리전트를 개발하고, 스스로도 코플랜드 운영체제를 시도했지만 그 어떠한 노력도 실제 제품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애플은 아직 실험적인 운영체제였지만 매킨토시 라인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Be와 협상을 시작했다. 단 BeOS가 맥 하드웨어에서 이미 돌아갈 수는 있었지만, 기존 맥오에스의 대체용으로 팔 수 있는 상황과는 거리가 멀었고 출력 아키텍쳐와 같은 핵심 기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애플을 되살리기 위해 영입됐던 당시 애플 CEO인 길 아멜리오(Gil Amelio)는 넥스트를 조사했다. 급속도로 나이를 먹어가는 맥오에스를 대체할 완성되고 입증된 데스크톱 OS로서, 또한 관련 개발툴인 웹오브젝트와 적당한 기업시장을 갖고 있는 곳이 넥스트였다.

당시 맥 사용자들은 넥스트보다 Be에 더 친숙했다. BeOS의 소비자/취미가를 향한 집중도 그렇지만 잡스가 애플을 떠난 이후 애플이 넥스트의 소비자시장 진출을 계약으로 막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잡스는 애플을 나갈 당시 주요 애플 엔지니어를 같이 데리고 나갔었다. 하지만 아멜리오는 넥스트를 확신했다. 1년 정도면 “랩소디” 전략상 넥스트스텝을 돌리는 맥을 출하할 수 있으리라고 봤다.

Apple + NeXT

1996년 12월20일, 애플은 4억 2,900만 달러의 현금과 150만 주를 잡스에게 주고 넥스트 인수를 발표하여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더군다나 잡스도 인수 이후 애플에 고문으로 들어왔고, 넥스트의 웹사이트는 애플의 인수를 “합병”으로 묘사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지배받는 개인용 컴퓨터 업계는 넥스트 인수 후에도 애플을 주요 업체로 취급하지 않았다. 애플이 재빠르게 넥스트스텝 운영체제를 새로운 맥오에스로 만들고, 옐로박스 레이어로 오픈스텝을 전환시키겠다는 전략을 발표되자, 심지어 넥스트의 기존 고객들조차도 애플을 피했었다.

특히 웹오브젝트를 자사 온라인스토어에 채용하고 있던 델은 넥스트와의 기업관계를 청산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하여 새로운 온라인스토어를 구축했다. 선과 HP 또한 넥스트와의 오픈스텝 파트너쉽을 포기했다. 결국 넥스트 기술에 대한 애플의 지원이 상업적으로 지속 가능하리라 본 기업은 거의 없었다.

애플은 보다 심각하고 복잡한 유닉스-기반 운영체제의 채택을 맥 사용자들이 주저하자, 목표를 바꿨다. 상황은 더 안 좋았다. 어도비와 매크로미디어,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맥 개발사들이 옐로박스에 대해 거의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고, 그들은 기존 코드에 최소한의 변화만 거쳐도 돌릴 수 있는 뭔가 현대적인 기술을 애플이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완벽한 파트너로 보였던 애플의 넥스트 인수가 엉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애플은 하드웨어 업체와의 맥오에스 라이센스 계약에 묶여 있기도 했다. 맥오에스 라이센스는 클론 업체들이 매상을 올리면서, 기존에 의도했던 맥 시장 확장보다는 OS만 줘버리고 하드웨어 이윤을 잃는 효과를 가져왔었다.

애플은 또한 양판점에서 싸구려 PC 옆에 아무런 차이 없이 애플 컴퓨터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경쟁력이 분명한 제품이 없으면 팔 방법이 없으며, 개발자들을 끌어모아 유지할 수도 없는 상황, 앞이 안 보이던 때였다. 매킨토시의 전망은 꽤 암울해 보였다.

매킨토시 외 유일한 주요 제품으로는 뉴튼 메시지패드가 있었다. 태블릿 컴퓨터였던 뉴튼은 훨씬 단순하고 저렴한 팜 파일럿(Palm Pilot)에게 추월당하고 있는 중이어서 애플의 관심과 노력이 상당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Jobs turns Apple around

넥스트 인수 다음 날, 잡스는 이런 글을 쓴 바 있다. “10년째 되면서 매킨토시에 의지해온 산업이 느리게나마 맥의 혁명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베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며, 애플보다 이런 혁신을 더 잘할 곳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컴퓨터 산업을 애플 말고 누가 이끌었습니까? 처음에는 애플 II, 그 다음에는 매킨토시와 레이저라이터를 선보인 곳이 애플입니다. 이번 합병을 통해 넥스트의 진보적인 소프트웨어와 애플의 매우 거대한 하드웨어 플랫폼과 마케팅 채널이 만나 기존 플랫폼을 혁명적으로 뛰어 넘고 향후 10년 이상 애플과 업계의 따라쟁이들을 부추킬 것입니다. 애플에 대해 대단히 깊은 감정을 지금도 갖고 있고, 덕분에 애플의 미래를 구성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처음, 애플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던 잡스는 1997년 7월, 여름 맥월드에서 자신이 아멜리오 후임자를 찾을 때까지 임시 CEO를 맡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사실 아멜리오 축출을 이끈 장본인은 잡스였고(1997년 맥월드 엑스포에서는 둘 다 모습을 드러냈었다), 아멜리오가 내린 결정사항들을 곧바로 뒤엎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아멜리오가 분사시켰던 뉴튼도 들어 있었다. 잡스는 뉴튼을 새로이 애플의 산하 부서로 편입시켰었다. 당시 잡스는 애플 제품 라인업을 단순화시켰다.


잡스가 없앤 것 중 큰 건 중에는, 진보기술그룹(Advanced Technology Group: ATG)이 있다. 이 그룹은 QuickTime TV와 QuickDraw 3D, OpenDoc, HotSauce, Macintalk 음성인식, 뉴튼 필기인식 등 돈을 전혀 벌지 않는 제품을 무수히 많이 만들어낸 곳이었다. 잡스는 또한 클론 업체와의 계약을 종료시켜서 매킨토시의 운명을 애플이 통제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여러가지 시험삼아 하는 프로젝트를 없애고, 뒤얽힌 영업망의 강화를 위해 컴팩으로부터 팀 쿡을 영입한 잡스는 웹오브젝트를 사용하여 델이 포기한 것과 유사한 온라인스토어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애플은 사용자들에게 직접적으로 “개별사양”으로 맥을 팔 수 있게 됐다.

또한 잡스는 여러가지 매킨토시 제품도 없애고 기본적으로 타워형과 노트북 G3만을 남겼고, 여기에 새로운 아이콘으로서 아이맥을 추가시켰고, 1999년에는 소비자용 아이북 노트북도 선보였다. 새 하드웨어를 발족시키면서 잡스는 클래식 맥오에스에도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었다. 넥스트스텝에 기반한 맥오에스텐을 작업하면서도 코플랜드 프로젝트에서 살릴 수 있는 부분은 살려서 맥오에스의 업데이트를 행했기 때문이다.


한편 잡스의 애플은 맥 판매를 증대시키기는데 집중했다. 애플 고유의 소매점을 짓기 시작하면서 주요 소프트웨어 개발사를 인수하여 프로 앱 패키지를 만들고, 아이라이프와 아이웍 등 소비자용 제품도 만들었다.

Apple goes open

애플 고유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더해 넥스트-중심적인 개발팀은 맥오에스텐의 코어 유닉스 OS 파운데이션을 다윈이라는 이름의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애플 자신의 개방형 코드와 더불어 애플은 OpenGL(퀵드로 3D를 대신한다)과 같은 공개사양의 채택으로부터 CUPS(맥오에스텐과 무료 유닉스, 리눅스 배포본이 사용하는 개방형 출력 아키텍쳐)의 매입 및 지속적인 관리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프로젝트의 오픈소스 개발에 자금을 대기 시작했다.

애플은 또한 오픈소스 웹킷 프로그램을 토대로 고유의 사파리 웹브라우저를 만들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로부터 웹의 권력 균형을 오픈소스 쪽으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넥스트스텝의 BSD 유닉스 코어에 대한 오픈소스 전략과 더불어 웹킷은 제일 유명한 웹브라우저 엔진이 됐고 특히 휴대용 기기에서는 유일한 주요 브라우저에 올라섰다.

애플은 GNU/Linux의 GNU 컴파일러 컬렉션 개발 툴체인(toolchain)을 진보적이고 새로운 LLVM 컴파일러 아키텍쳐로 완전히 교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LLVM은 어배너-섐페인(Urbana–Champaign)의 일리누이 대학교에서 개발중인 아키텍쳐로서 BSD 스타일의 오픈소스로 제공됐고, 애플은 여기에 LLDB와 Clang을 추가시켰다. 이로써 애플은 유닉스-류 소프트웨어의 미래를 급격히 변화시켰다.

OpenGL 지지와 함께 애플은 GPU 하드웨어를 사용하여 일반적인 목적의 고속처리를 돌리기 위한 OpenCL 사양을 만들어냈다. OpenCL은 그래픽 업체의 지지를 받기 위해 중립적인 중개자의 역할을 갖고 있기도 하다. 애플은 한편 인터넷 파일과 달력, 주소록과 연동하는 공개표준으로서 WebDAV와 CalDAV, CardDAV의 발전에 주된 역할을 했다.

추가적으로 애플은 개방형 오디오재생을 자가 고유 표준으로 바꾸려 시도했던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의 계획을 물리쳐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MP3와 AAC, MPEG H.264 오디오 스트리밍 및 비디오 인코딩, 배포세계를 열었다. 마찬가지의 노력으로 어도비 플래시의 스트리밍 비디오 장악노력도, 애플은 시장력을 동원하여 플래시의 통제를 깨고 비디오를 모두에게 열어주었다.

Jobs’ golden decade of Apple

넥스트를 인수한지 5년이 지난 2001년, 애플은 최초의 소매점을 열고 맥오에스텐의 첫 번째 빌드를 출하했으며, 아이포드를 발표하여 소비자 가전 시장으로 진입하는 강수를 뒀다. 아이포드 자체는 애플 컴퓨터사에서 ‘컴퓨터’를 빼버리는 역할을 할 정도로 애플의 사업에 지극히 중요했다.

잡스는 여러가지 디바이스의 중심에 아이맥을 놓는 디지탈허브 전략을 제시했다. 맥오에스텐의 코어 기반을 개선하고 하드웨어를 끊임 없이 진보시키는 애플이 2000년대 내내 채택한 전략이었다.

2000년대 중순, 잡스는 PowerPC에서 인텔로의 이주를 단행했다. 이로써 맥 사용자도 윈도를 돌릴 수 있었고, 덕분에 윈도와 계속 어울려야 하는 기업 사용자 등도 맥을 사용할 여지가 생겨났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애플은 태블릿 컴퓨터 개발에 돌입하였고 결국 2007년에는 아이폰이라는 결과를 냈다. 아이폰은 미니 버전의 맥오에스텐으로서 iOS라 불리었고, 매킨토시 자체보다도 더 큰 규모로 자라났다.

2010년, 잡스는 대성공을 거둔 아이폰이 닦아 높은 길을 통해 태블릿 컴퓨터인 아이패드를 적절한 가격에 선보였다. 아이폰의 경쟁은 심해졌지만 아이폰은 시장을 깊게 형성시켜서 기존 업체를 모두 당혹스럽게 만들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제일 잘 팔리는 휴대폰 중 하나가 됐다. 예전에 아이포드가 그러했듯 아이패드는 자신의 시장을 크게 형성시켰다. 이전까지는 어느 경쟁자도 형성시키는데 실패했던 시장이었다.

2001년부터 2010년 사이 애플 주가는 주당 $10에서 $315로 뛰어 올라 전세계에서 제일 가치가 높은 기업이 됐으며, 수입은 물론 이윤도 제일 많이 벌어들였다. 애플은 컴퓨팅에만 한정돼 있던 상황에서 벗어나 아이포드와 아이튠스에 연동되는 음악과 영화시장을 탈바꿈시키고 휴대폰 업계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으며(이제 남아 있는 유일한 경쟁자는 스스로를 무료로 푸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밖에 없다), 최초로 성공한 태블릿인 아이패드를 통해 새로운 휴대기기 시장을 선보였다.

A world without Apple’s NeXT

15년 전 인수했던 넥스트가 없었다면 잡스의 주도와 창조성, 비전도 없었을 것이다. 애플 컴퓨터는 90년대에 인수되거나 어쩌면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며, 매킨토시는 아미가와 동급으로 역사에 남았을 것이다.

개인용 오디오 시장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와 PlaysForSure 시스템의 지배를 계속 받으며 음반사의 변덕 하에 CD로 굽는 것만 해도 제한이 여전했을 것이다.

맥오에스텐이 없었다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여전이 윈도 2000 버전만 내놓았을 것이며, 윈도 비스타나 윈도 7, 그리고 진보적인 GPU 주도의 그래픽엔진도 없었을 것이다. 맥오에스텐의 쿼츠 컴포지팅이라는 애플의 개척적인 노력의 산물이 GPU 위주의 그래픽엔진이었다.

아이폰이 없었다면 사용하기 쉬운 터치스크린 휴대기기도 안 나오고, 그 대신 아이폰 이전의 안드로이드와 유사했을 것이다. PalmOS와 윈도모바일, 블랙베리의 버튼-중심적인 휴대폰만 있을 것이며 4년 전에 그랬던 바 처럼 세상을 바꾸지도 못했을 것이다. 태블릿 또한 안 나왔을 일이다. 맥북에어와 같은 울트라북에도 딱히 노력이 없었을 테고, 그저 여러가지의 저렴하고 저품질의 넷북만이 나와 있을지도 모를 법 하다.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 소니, 팜, HP, 어도비 등은 도전받지 않은 채, 개선에도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바일/데스크톱 플랫폼을 위한 저가형 앱스토어를 나서서 만들 일도 없으며, 구글은 여전히 웹브라우징만 할 수 있을 저가형 노트북에 집중했을 것이다. 이들은 현재 지위가 하락중이며 기술업계에서 자신이 어째서 실패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실패를 멈출 수 있을지를 모르고 있다.

What’s next for Apple

2011년, 세상은 애플과 넥스트의 창립자를 잃었다. 잡스는 자신의 비전에 멀어져 있던 애플을 고쳐냈고 기술과 인문 사이의 교차점에서 위대함을 다시 이끌어낼 수 있는 팀을 만들어냈다. 잡스는 애플 경영팀만이 아니라 전세계 어느 업체에서건 추종을 받을만한 분명한 업적을 남기고 떠났다.

애플은 기업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다. 전세계 소매점도 잘 돌아가고 있고 모바일과 데스크톱 제품에서 강력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으며, 풍부한 현금으로 최첨단 연구개발도 벌일 수 있다. 15년 전에는 볼 수 없던 풍경이다.

그러나 현재의 애플은 자신의 실패와 실수를 알아볼 능력도 갖고 있다. 지난 15년간 애플은 설사 전략이 올바르다 하더라도 돈을 잃었던 난관을 돌파해 왔다. 엑스서브와 엑스서브 RAID, Xsan으로 서버시장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단순히 훨씬 저렴한 대안만 제공하는 것 가지고서는 손수 고객서비스와 지원을 요구하는 시장을 충족시켜줄 수 없었다.

애플은 잘못됐음을 알고 물러나는 것 또한 올바름을 알고 성공을 거두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애플은 마찬가지로 주류시장을 공략할 강력한 기능을 제공하는 선에서 프로앱스의 규모를 축소시켰다. 소수의 전문가 사용자들은 특별한 개발사가 더 잘 보조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 경영진은 애플이 뭘 안 할 줄 안다고 매번 되풀이해 말하고 있다.

딱 15년 전의 애플은 아니라고, 맞다고 말할 수 없었으며 계획을 실천한다거나 투자자에게 자신을 믿어달라 확신을 주지도 못했다. 지난 15년은 창립자를 재발견하여 그의 비전에 따라 업계를 재편성한 놀라운 기간이었다.

Daniel Eran Dilger is the author of “Snow Leopard Server (Developer Reference),” a new book from Wiley available now from Amazon as a paperback or digital Kindle download.

Apple’s 15 years of NeXT — RoughlyDrafted Magazin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Apple은 최식 HP Printer Drivers v.2.11 for OS X 업데이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정보 Hewlett-Packard 프린터 드라이버 v2.11 (Mac OS X v10.6)
이 업데이트는 사용자의 HP 프린터 또는 스캐너에 대한 최신 소프트웨어를 설치합니다.

http://support.apple.com/kb/DL907

Quand la maîtrise du logiciel ne fait pas de miracle [04.11.2011 10:44]

애플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간의 전체적인 통제모델로 성공을 보였다. 그렇다면 HP의 webOS, 심비안, 노키아 미고, RIM의 QNX 등 똑같은 방식을 채용한 다른 업체들도 성공할 수 있었을까?

HP와 노키아, RIM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스마트폰에서 태블릿에 이르기까지 애플과 하나 하나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기반으로 삼는 안드로이드와 윈도폰은 곧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에게 주권을 포기한 채 싸운다는 의미랄 수 있다.

이 세 회사는 그 덩지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을 실수를 계속 저질러왔다. 마감이 덜 된 제품과 모호한 전략, 무모한 투자 등,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재앙 속에 실탄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Nokia, comme un lapin pris dans les phares

노키아가 만약 일반 휴대폰 시장에 대한 주도권 덕분에 세계 제1의 휴대폰 업체의 타이틀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하더라도, 훨씬 더 중요한 스마트폰 영역에서는 두 배 이상 뒤쳐지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노키아의 휴대폰 산업 내 이윤 점유율은 태양 앞에 눈이 녹듯 사라지고 있다. 지난 1년간 이익이 12억 2천만 유로에서 1억 2,200만 유로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반면 휴대폰 시장의 4.3%에 불과한 애플은 급속한 속도로 이윤 점유율에 있어서 1등을 차지했다.

안 좋은 소식은 더 있다. 노키아는 새로운 경쟁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 내 운영체제 점유율에서 2위도 차지하지 못한 채 새로운 기술에 대해 반응도 내지 못하는 회사가 돼버리고 말았다. CEO를 교체하는 등 전략변화를 시도하기는 했지만 노키아는 마침내 자신의 독립성을 포기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세계 1위를 유지하기 위해 고유의 OS를 내는 휴대폰 업체의 대열에서 이탈한 것이다. 윈도폰 7을 사용하는 최초의 노키아 휴대폰은 11월16일에 출시될 예정이며, 노키아가 다시금 스마트폰 시장에 들어설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다른 한 편, 비록 아이패드보다 더 전부터 태블릿을 만들어왔지만, 노키아는 지금까지 사업다각화를 펼칠 수 있을 태블릿 영역에 대해 어떠한 발표도 하지 않고 있다.

Research In Motion, comme son nom ne l’indique pas

아이폰이 나왔을 때 RIM은 이미 한 분야에서 확고부동한 자리를 지니고 있었다. 메시지 덕분에 블랙베리가 스마트폰 시장 상당부문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블랙베리는 기업시장에서 인기가 좋았다. 자신의 성공모델을 강화하기 위해 RIM은 기업시장에서의 기득권에 아연실색할 정도로 안주해버리고 말았다.

비록 시작부터 끝까지 디자인하는 것으로 자랑스러워한 RIM이었지만, RIM의 무반응은 치명적이었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가 나오기 전부터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였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났을 때 정면으로 타격을 받은 곳은 RIM이었다.

RIM은 터치 인터페이스를 추가시킨 블랙베리 스톰과 태블릿인 플레이북을 내세웠지만, 둘 다 기능부족으로 비난받고 실패했다. 플레이북은 나온지 6개월이 지나도록 여전히 블랙베리 폰이 없이는 이메일을 사용할 수 없으며, 주요 시스템 업데이트는 2012년 초에나 예정돼 있다. 메시지로 정상에 오른 회사가 오늘날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 드러난 것이다.

RIM의 결과는 실로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시장점유율을 잃고 있을 뿐 아니라 플레이북의 판매고도 보잘 것 없으며, 이윤도 47% 하락했다. 그 결과는 주가 폭락으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RIM의 주가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RIM의 시가는 현재 RIM의 자산가치보다도 더 떨어졌다. 투자자들 또한 RIM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접은 듯 하다. RIM은 RIM대로 이런 재앙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CEO를 보존하는 등, 강력한 신호를 전혀 줄 생각을 안 하여 미묘한 상황에 처해 있다.

HP, la valse hésitation

최근 수 개월동안 세계 제1의 PC 업체가 벌인 거듭된 실패와 믿을 수 없는 방향전환은 어떨까? 2010년 4월 말, 12억 달러에 Palm을 인수한 이후 당시 HP CEO였던 마크 허드(Mark Hurd)는 webOS로 원대한 야망을 피력했었다. 프린터와 통합시킬 뿐만 아니라 아이패드의 경쟁 태블릿은 물론, PC에도 집어 넣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의 과감한 전략은 언제나의 파트너였던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이중의 압박을 주었다. HP는 윈도모바일의 파트너인데도 마이크로소프트와 직접 경쟁을 벌이겠다는 선언과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webOS 전략은 밝은 미래를 약속했지만 결국은 실망으로 끝나고만다.

2010년 8월, 마크 허드는 여러가지 어두운 이해관계로 인해 축출되고 2011년 7월 터치패드가 출시됐다. 너무나 무겁고 두꺼우면서 느렸던 터치패드는 비판과 함께 출시 때부터 재앙적인 실패작으로 알려졌다. 한 달 후, HP는 webOS 기반 기기의 제품화를 중단하고 PC까지 아예 분리시켜서 IBM처럼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에 집중하고자 하는 전략을 발표한다. HP는 값비싼 인수와 생산 끝에 터치패드의 가격을 99달러로 떨이판매하여 매진시켰다.

HP는 9월에 새로운 CEO, 메크 휘트먼(Meg Whitman)을 맞이했다. 그녀는 불확실한 시간을 수 주일이나 보낸 후인 10월, PC 부문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단 webOS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이다. webOS 부를 아예 폐쇄시킬지 모른다는 루머가 나왔다. HP가 webOS애 대해 어떠한 로드맵도 제시하기 거부했기 때문이다.

Triumvirat de l’échec

HP와 RIM, 노키아는 모두 성공을 거뒀던 기업들이다. 모두 지도자적인 회사에 논의의 여지가 없을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애플만이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결정적인 무기인 자신의 운영체제도 갖고 있는 회사들이다. 소니에서 HTC에 이르기까지 모두 써드파티에 의존하면서 로드맵에 대한 통제를 잃은 채, 서로간 결정적인 차이를 내지 못 하고 있다. 휴대폰 시장의 특수성 덕분에 안드로이드는 우세를 보일 수 있었지만 태블릿 시장에서까지 우세성을 보일 수는 없었다. 아이패드는 이길 수가 없는 상대처럼 보인다. 논의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능력을 지닌 이 세 회사들은 자신의 역할을 내세울 기회가 있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iOS처럼 윈도폰과 안드로이드 다음 버전은 나름의 모델을 갖고 있으며, 만약 webOS가 애플에게 진정 처음으로 경쟁할만한 OS로 나타났더라면 세 회사 모두 자기 제품을 내세워서 모바일 시장에 존재감을 나타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OS를 가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을 할지 더 알아야 한다. 제조업체들은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일으킨 급격한 변화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이들은 성능 수치만이 중요한 순수한 하드웨어 경쟁만 벌였으며, 애플은 이들과는 반대로 하드웨어 상의 수치에만 머무르지 않는 제품을 제안했었다. 태블릿과 스마트폰에서 안드로이드는 사실상 모두가 구글에 의존하고 있으며, 안드로이드 태블릿과 스마트폰과 같은 본질적인 자기 제품을 구글이라는 교활한 상인에 기대야 한다는 점때문에 절망스러운 상황으로 남아 있다. HP와 RIM, 노키아는 슬플 정도로 평범하지만 비싸져버린 안드로이드를 지나칠 수단을 분명 갖고 있었지만, 어떤 장점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RIM은 스마트폰 영역을 개척해 놓고서도 조류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특히 이 정도 크기의 회사들이 남에게 의존하고 무모한 정책으로 혼란스러워하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Arnauld de La Grandiè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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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nd la maîtrise du logiciel ne fait pas de mira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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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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