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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와 디자인 혁명


ARTS & CULTURE

How Steve Jobs’ Love of Simplicity Fueled A Design Revolution

Passionate to the point of obsessive about design, Steve Jobs insisted that his computers look perfect inside and out
By Walter Isaacson
Smithsonian magazine, September 2012,

디자인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관심은 어린 시절 집에 대한 사랑이 그 시작이었다. 집은 노동자가 많이 사는 동네로서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 사이에 있었고, 1950년대, 전쟁 이후 도시로 이주한 주민들이 대량으로 세운 저렴한 현대적 규격형 주택이었다. “모든 미국인”을 위한 단순한 현대적 주택으로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비전에 고무된 나머지, 조셉 아이클러(Joseph Eichler)와 같은 건축가들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벽으로 이뤄지고 지면이 개방형이며, 기둥-보가 노출돼 있고 콘크리트 판 바닥과 수많은 슬라이드형 유리문으로 이뤄진 집을 세웠다.

자신의 오랜 이웃 근처를 나와 같이 산책하면서 잡스는 “아이클러가 정말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라 말했었다. 그 동네는 아이클러 스타일의 집들로 이뤄져 있었다. “아이클러의 주택은 영리하고 저렴했으며 좋았어요. 깔끔한 디자인에다가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취향을 알려 줬죠.” 아이클러-스타일의 주택에 대한 그의 칭찬은 대중 시장용 제품의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스며들게 했다는 것이 잡스의 말이었다. “그리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 않지만 디자인이 훌륭하고 단순한 기능을 넣을 수 있을 때를 좋아합니다.” 그는 특히 아이클러 디자인의 깔끔하고 우아함을 지적했다. “애플의 오리지날 비전이었죠. 최초의 맥으로 하려 했던 것도 그것이었습니다. 아이포드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깔끔하고 친숙하며 재미나는, 차별화된 디자인은 잡스 치하 애플 제품의 특징이었다. 훌륭한 산업 디자이너로 애플이 알려지지는 않았던 1980년대, 잡스는 하트무트 에슬링어(Hartmut Esslinger)와 협력했고, 1997년부터는 조니 아이브와 함께 애플을 다른 기술 업계와 동떨어지게 만들 정도로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의 미학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애플은 세계에서 제일 가치가 높은 회사가 될 수 있었다. 애플의 주된 교리는 단순함(simplicity)이다. 깔끔한 룩앤필과 제품 표면에서 나오는 단순함만이 아니라, 각 제품의 본질과 엔지니어링의 복잡성, 그리고 각 컴퍼넌트의 기능을 앎으로써 깨닫는 단순함이다. 잡스는 정말 힘든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뭔가를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저변에 있는 도전을 진정 이해하고 우아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1977년에 나온 애플의 첫 마케팅 광고지 헤드라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

디자인의 단순함에 대한 잡스의 사랑은 그가 불교 수행자가 됐을 때부터 갈고 닦은 것이었다. 대학 중퇴 이후 그는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인도로 긴 순례를 다녀 왔지만 그의 감각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일본의 선불교였다. 인도 여행을 잡스와 같이 다녀온 대학 친구, 다니엘 코트키(Daniel Kottke)는 선이 잡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완전하고 미니멀리즘적인 미학, 극도의 집중에 대한 그의 접근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불교, 특히 일본 선불교가 미학적으로 탁월하죠. 제가 본 것 중에서 제일 고상했던 것이 교토의 정원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인도에서 돌아와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비디오 게임을 디자인하던 Atari에 야간 자리로 들어갔을 때에도 단순한 인터페이스를 좋아했다. Spacewar!와 같은 컴퓨터 게임은 MIT의 해커들이 개발했지만 Atari에서는 취한 신입생이라도 어떻게 하는 지 아는 게임이어야 했다. 복잡한 메뉴나 매뉴얼은 없었던 Atari의 Star Trek 게임 명령은 딱 두 가지였다. “1. Insert quarter, 2. Avoid Klingons”

1970년대 차별성 있는 산업 디자인을 보여줬던 얼마 안 되는 회사 중 소니가 있었다. 잡스의 집 차고에서 나와 이주한 애플의 첫 번째 사무실은 소니 영업부 사무실이 같이 자리한 빌딩 안에 있어서 잡스는 소니의 마케팅 자료들을 잠깐씩 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소니에서 일했던 대니얼 러윈(Dan’l Lewin)의 말이다. “꾀죄죄한 사람이 불쑥 와서는 제품 광고지를 어루만지더니 디자인 기능을 지적하더라구요. 그럴 때마다 매번 이 광고지 좀 가져갈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소니의 어둡고 산업적인 모양을 좋아한 잡스는 1981년 6월부터 콜로라도 주 애스펀(Aspen)에서 열리는 연례 국제 디자인 컨퍼런스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는 바우하우스(Bauhaus) 운동식의 깔끔하고 기능적인 접근을 많이 보았다. 당시 애스펀 인스티투트 캠퍼스에는 산세리프 서체와 가구, 실제 거주하는 방 등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가 소중히 간직하는 디자인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의 멘토인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와 루트비히 미스 판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처럼 바이어 또한 단순하되 영혼을 표현하는 디자인을 신봉했다. 깔끔한 선과 형태를 채용하여 합리성과 기능성을 강조하는 디자인으로서, 그로피우스와 미스가 설교한 디자인은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었다. 에이슐러(Eichler)처럼 미적인 감각은 대량 생산을 위한 기능과 결합돼 있었다.

잡스는 1983년 애스펀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디자인에 대한 칭송을 발표 했었다. 잡스 연설의 제목은 “미래는 예전과 같지 않다”였고, 소니 스타일 대신 바우하우스의 단순성이 지지를 얻으리라 예언했다. “현재의 산업 디자인은 소니 식의 하이테크적인 외양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포금 회색, 어쩌면 검정색으로서 이상한 것들을 하는 디자인이죠. 그렇게 하기는 쉽습니다만 위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대안을 제시했다. 제품의 성격과 기능에 보다 충실한 대안이었다. “우리가 할 것은 하이테크 제품이며, 그들을 깔끔하게 만들어서 제품이 최첨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작은 패키지 안에 맞게 만들고 아름다우면서 하얀색으로 할 수 있겠죠. 브라운이 전자제품에서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잡스는 애플의 만트라가 단순성이라고 계속 강조했다. “우리는 하이테크에 대해 밝고 순수하면서 솔직하게 만들 겁니다. 소니처럼 오로지 검정색 밖에 없는 중공업 스타일 말고요. 우리가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과 우리가 하는 제품 디자인, 광고는 모두 단순하게 만들자. 정말 단순하게로 모아집니다.”

잡스는 디자인 단순성의 핵심 부분이 제품을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단순성과 쉬운 사용이 항상 함께 하지는 않는다. 디자인이 너무나 매끈하고 간단해서 오히려 사용에 장애가 되거나 생경스러울 때도 있기 때문이다. 애스펀에서 잡스는 디자인 전문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직관적으로 분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디자인의 중심입니다.” 가령 그는 새 컴퓨터 매킨토시용 그래픽 화면을 만들 때 사용한 데스크톱 메타포를 칭송했다. “모두들 데스크톱은 직관적으로 다룰 줄 압니다. 사무실로 걸어 들어가면 책상 위에 종이가 놓여 있죠. 제일 위에 놓인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선권을 조정하는 방법 또한 다들 알고 있죠. 이미들 갖고 계신 경험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우리 컴퓨터를 데스크톱과 같은 메타포로 만든 이유라 할 수 있어요.”

잡스는 당시 산업디자인 업계에서 별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리하르트 자퍼(Richard Sapper) 램프를 좋아했지만 찰스(Charles)와 레이(Ray) 임스(Eames)의 가구, 디터 람스(Dieter Rams)의 브라운 제품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와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가 이룬 식으로 산업 디자인 세상에 힘을 줄 만한 거장은 없었다. 워싱턴의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디자이너인 마야 린(Maya Lin)의 말이다. “산업 디자인에서 뭐가 딱히 없었어요. 실리콘 밸리는 특히 전혀 없었죠. 그래서 스티브는 상황을 정말 바꾸고 싶어 했어요. 그의 디자인 감각은 매끈하지만 번드르르하지 않았습니다. 장난기도 많았죠. 그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했어요. 단순함에 헌신하는 선불교에서 나온 감각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자기 제품을 차갑게 만들지도 않았어요. 그의 제품은 재미 있었습니다. 그는 디자인에 있어서 열정적이었고 정말 심각했지만 그와 동시에 놀 줄도 알았어요.”

1984년에 나온 오리지날 매킨토시용 케이스를 만들 때, 잡스는 두 명의 젊은 디자이너와 같이 작업했다. 제라 마녹(Jerry Manock)과 테리 오야마(Terry Oyama)이다. 그들은 디자인안을 만들고 실제 석고로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맥 팀이 주위에 모여서 들여다 보고 자기 생각을 말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던 앤디 허츠펠드(Andy Hertzfeld)는 “귀엽다”고 칭했고, 다른 사람들도 만족해 했다. 그러자 잡스는 비판을 쏟아 부었다. “너무 상자 모양입니다. 곡선미가 더 있어야 해요. 첫 번째 사각면의 반경이 좀 더 커야 합니다. 그리고 비스듬한 면이 마음에 안 들어요.” 산업 디자인 용어에 대한 새로운 유창함과 함께, 잡스는 컴퓨터 측면과 연결된 각과 곡선 모서리를 언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잡스는 상당한 찬사도 곁들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매달 마녹과 오야마는 잡스의 비판에 맞춰 만든 새로운 모델을 들고 나왔다. 마지막 주물 모델은 정말 뛰어나서 이전까지의 모델은 모두 그 뒤에 서야 할 정도였다. 워낙 발전해서 잡스로부터 비판이나 주장을 못 하게 만들어버릴 정도였다. 허츠펠드의 말이다. “네 번째 모델부터는 세 번째와 거의 구분도 할 수 없겠더라구요. 그래도 스티브는 항상 비판적이었고 결정적이었어요. 전 알아보지도 못할 디테일에 대해 좋다 싫다 하면서 말이죠.”

어느 한 주말, 잡스는 다시금 팔로알토의 메이시 백화점에 가서 특히 퀴진아트 등의 주방기기를 연구했다. 그는 월요일, 맥 오피스로 들어와서 디자인 팀에게 퀴진아트를 사라 시키고, 퀴진아트의 선과 곡선, 사면에 따라 새로운 주문을 했다.

잡스는 매킨토시가 친숙해 보여야 함을 고집했다. 그 결과 맥은 인간의 얼굴과 유사해졌으며, 화면 바로 밑에 디스크 드라이브를 놓았고, 대부분의 컴퓨터보다 더 키가 크고 좁았다. 머리를 강조하는 형태였다. 밑부분 가까이의 구석은 온화한 턱을 방불케 했고, 잡스는 상단부의 플라스틱을 더 좁게 만들어서 크로마뇽인의 이마처럼 보이지 않게 했다. 이 매킨토시 케이스의 특허자는 마녹과 오야마만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도 올라가 있다. 오야마가 나중에 한 말이다. “스티브가 직접 선을 그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아이디어와 영감으로 이 디자인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려서 우리는 스티브가 말해주기 전까지 컴퓨터가 ‘친숙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몰랐었어요.”

잡스는 화면상에 나타나는 외양에 대해 강렬하게 집착했다. 특히 그는 각기 다른 레터링 스타일, 즉 서체에 신경 썼다. 신입생 때 리드 컬리지를 중퇴했을 때,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수업을 청강하면서 캠퍼스를 돌아다녔는데 그가 좋아하는 과목 중 하나가 서예였다. 잡스의 말이다. “세리프와 산-세리프에 대해 배웠어요. 각기 다른 문자의 조합이 얼마나 다양한지, 위대한 글씨체를 무엇이 위대하게 만드는지를 알았습니다. 아름답고 역사적이면서 예술적으로 묘했어요. 과학이 캡쳐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더 매혹적이었습니다.” 잡스가 스스로를 예술과 기술의 접목에 세웠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또다른 사례이다.

매킨토시는 비트맵 화면(화면상 각 픽셀을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켜거나 끌 수 있다)이기 때문에 우아한 서체부터 괴상한 서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체를 만들어서 화면상 픽셀별로 렌더링할 수 있었다. 이들 서체를 만들기 위해 잡스는 필라델피아 출신의 그래픽 아티스트, 수잔 케어(Susan Kare)를 고용한다. 그녀는 Overbrook, Merion, Ardmore, Rosemont 등 필라델피아의 Main Line 통근열차 역 이름에 따라 서체 이름을 지었다. 잡스는 이 과정을 대단히 마음에 들어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케어 사무실에 들러서 서체 이름에 대해 물었다. “그런 이름들은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서체 이름은 당연히 세계적인 도시이어야 하지!” 그래서 서체는 각자 시카고와 뉴욕, 제네바, 런던, 샌프란시스코, 토론토, 베니스로 바뀌었다. 나중에 잡스가 했던 말이다. “대학교 다닐 때 그 서체 수업을 안 들었더라면 맥에는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자간 맞춤 기능이 없었을 겁니다. 윈도가 맥을 그대로 베낀 이후로는, 어떠한 개인용 컴퓨터도 그렇지 못할 것 같군요.”

젊은 엔지니어, 크리스 에스피노사(Chris Espinosa)는 매킨토시용 계산기를 디자인할 때 잡스의 요구를 충족할 방법을 알아냈다. 그래서 첫 번째 시도를 해 보이자 잡스는 그에게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기본적으로 역겹군. 배경 색상이 너무 어두워. 두께가 잘못 나온 라인도 있고 버튼이 너무 커.” 에스피노사는 잡스의 비판에 따라 수정을 거듭했지만 수정을 할 때마다 비판도 새로워졌다. 그래서 어느 날 오후, 잡스가 지나갈 때 에스피노사는 해결책을 선보였다. “The Steve Jobs Roll Your Own Calculator Construction Set”였다. 이 셋트는 사용자가 선 두께와 버튼 크기, 각도, 배경 등의 속성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잡스는 웃지 않고 자신의 취향에 맞춰서 외양 설정을 하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흐르고 나자 그는 드디어 자기가 좋아하는 모양을 설정할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의 디자인은 향후 15년간 맥에 계산기로 탑재됐으니 말이다.

그의 초점이 매킨토시이기는 했지만 잡스는 모든 애플 제품을 관통하는 일관성 있는 디자인 언어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세계 정상급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브라운의 디터 람스처럼 누가 애플의 디자이너가 될지 콘테스트를 개최했다. 수상자는 소니 트리니트론 텔레비전 디자인을 책임졌던 독일 출신의 하트무트 에슬링어(Hartmut Esslinger)였다. 독일인이기는 했지만 에슬링어는 “애플의 DNA에 있을 미국의 유전자”가 있어야 한다면서, “헐리우드와 음악, 반항과 자연스러운 섹스 어필”이 가미된 “캘리포니아 풍”의 모양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가 제안한 지침은 형태가 기능을 따른다는 유명한 격언에서 따온, “형태가 정서(emotion)를 따른다”였다. 1980년대에 그가 애플용으로 개발한 제품으로는 하얀색 케이스가 있다. 견고하고 곡선형 모서리를 가졌으며, 통풍과 외양 모두를 위한 얇은 선으로 이뤄져 있었다.


Searching for a personal uniform, Jobs asked designer Issey Miyake for some black turtlenecks. He kept around 100 of them in his closet.

디자인에 대한 잡스의 열병에는 단점도 있었다. 1985년 애플로부터 축출당한 이유로 그의 예술적 감각을 채워주기 위한 과도한 비용과 일정 연기가 있었고, 뒤이어 그가 만들어낸 회사인 넥스트도 거대한 시장 실패를 경험했다. 다만 1997년 애플로 복귀를 요청받았을 때 그는 본능을 제어할 줄 알았고 합리적인 교환조건 세우기도 배웠다. 하지만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한 열정만은 버리지 않았었다. 네모난 베이지색의 범용 컴퓨터와 뮤직플레이어, 휴대폰과 같은 소비자 가전제품으로 채워진 시장에서 애플을 다시금 세우기 위해서였다. 거의 우즈베키스탄에서 디자인한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잡스가 애플로 돌아온 직후, 격려 연설을 위하 최고 관리자들을 소집했다. 그 중에는 애플 디자인 팀을 맡고 있었던 30대의 영국인, 조너선 아이브가 앉아 있었다. 조니는 애플을 그만 둘 계획이었다. 제품 디자인보다는 이윤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는 애플에 대해 진절머리가 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잡스의 이야기때문에 그는 퇴사를 다시 생각했다. 아이브의 말이다. “우리 목표는 돈벌기만이 아니라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던 스티브의 발표를 정말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철학에서 내린 결정은 우리가 그동안 애플에서 해 오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죠.” 곧 아이브와 잡스는 제일 훌륭한 산업 디자인 협력을 이끄는 관계를 형성했다.

다른 디자이너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아이브는 특정 디자인으로 들어가는 단계별 사고 과정과 철학 분석하기를 즐겼다. 잡스는 그 과정이 보다 직관적이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스케치와 모델을 지적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들은 짓밟았다. 아이브는 단서를 발견하여 잡스가 칭찬할 개념을 만들어냈다. 잡스는 아이브 안에서 표면적인 단순함 이상의 진실을 추구할 소울메이트를 발견했다. 디자인 스튜디오 안에서 아이브는 자신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단순함이 좋다고 가정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리적인 제품이 있으면 우리가 그것을 지배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복잡성에 대해 질서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제품이 주인에게 경의를 표하죠. 단순성은 시각적인 스타일만이 아니며, 미니멀리즘만도 아닙니다. 깔끔함만도 아니죠. 복잡함의 깊숙한 끝까지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진정 단순해지려면 정말 깊게 들어가야 해요. 가령 나사를 없애려면, 대단히 난해하고 복잡한 제품이 나올 수가 있어요. 제품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어떻게 만드는지를 이해해야 단순함을 가지고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을 없앨 수 있으려면 제품의 본질을 깊게 이해해야 합니다.”

잡스와 아이브가 공유했던 원칙이다. 디자인은 표면의 외양만이 아니며 제품의 본질을 반영해야 한다. 그 결과 애플에서 제품 디자인 과정은 엔지니어링과 제조방법까지 모두 통합돼 있다. 아이브는 애플 파워맥을 예로 들었다. “우리는 정말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 없애기를 바랬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이너와 제품 개발자, 엔지니어, 제조팀 모두가 전체적인 협력을 해야 하죠. 우리는 몇 번이고 시작을 되풀이했습니다. 이 부품이 필요한가? 다른 네 가지 부품으로 한 가지 기능을 할 수 있는가?”

산업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이 동일한 과정의 일부이어야 한다는 잡스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긴장은 있었다. 잡스가 산업디자인을 아이브의 팀으로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팀(존 루빈스타인이 맡았다)과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원래는 루빈스타인이 아이브의 상사였다. 분리는 둘 간의 사이를 좁히지 못했고 긴장감의 대립 관계가 터져 싸울 때도 종종 있었다. 다른 기업 대다수의 경우 엔지니어들이 요구사항을 적은 후에서야, 산업 디자이너들이 제품의 외양을 정할 수 있다. 잡스에게는 이 과정이 반대로 움직였다. 애플 초창기 시절, 잡스는 애플 III와 오리지날 매킨토시 케이스의 외양을 먼저 정하고, 그 다음에 엔지니어들에게 케이스에 맞는 부품과 보드를 주문했다.

축출당한 후, 애플 내 제품 제조 과정은 엔지니어-위주로 돌아갔었다. 애플의 마케팅 책임자인 필 실러의 설명이다. “엔지니어들은 프로세서와 하드드라이브같은 사양을 말하고 디자이너들에게 집어 넣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끔찍한 제품 밖에 안 나와요.” 그러나 잡스가 복귀하고 아이브와 협력한 끝에 균형감은 다시금 디자이너들에게 옮겨갔다. 실러의 말이다. “스티브는 우리를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것에 디자인이 통합적이라 말하곤 했어요. 디자인이 다시 엔지니어링을 통솔했습니다. 그저 반대로만 한 것이 아니고요.”

잡스-아이브 협력 하에 처음으로 나온 훌륭한 디자인적인 성공작은 가정용 소비자를 노린 데스크톱 컴퓨터, 아이맥이었다. 잡스는 조건을 특별히 정하였다. 올-인-원 제품으로서 키보드와 모니터, 컴퓨터를 모두 하나의 단순한 유닛으로 조합해야 하고, 상자에서 꺼내자마자 바로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 컴퓨터는 브랜드를 내세울 수 있는 차별화된 디자인이어야 했다.

아이브와 그의 최고 부하인 대니 코스터(Danny Coster)는 미래적인 디자인을 스케치하기 시작했지만 잡스는 그들이 만들어낸 십여 가지의 조형물을 거절했다. 그러나 아이브는 어떻게 하면 부드럽게 잡스를 끌어내는지 알고 있어서 일단 만든 모델이 모두 올바르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다만 한 가지 모델을 지적했다. 곡선형의 쾌활한 모양이되 움직이지 않는 조각처럼 보이지 않는 모델이었다. 아이브는 잡스에게 말했다. “책상에 막 도착한 듯한 느낌이랄까, 아니면 아예 곧바로 떠나버릴 듯한 느낌의 모델입니다.”

그 다음, 아이브는 그 모델을 가지고 작업했다. 이중적인 세계관을 가진 잡스는 환호하고 그 모델을 좋아했다. 그는 조형물을 들고 본부에 갖고 돌아다니면서 이사진과 신뢰하는 부하들에게 은밀히 보여줬다. 애플은 당시 다르게 생각하라는 광고의 데뷔를 축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는 기존 컴퓨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만 있었고, 마침내 잡스는 새로운 것을 갖게 됐다.

아이브와 코스터가 제안한 플라스틱 케이스는 바다 빛깔의 청색이었고, 투명하기 때문에 본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이브의 설명이다. “우리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필요에 따라 교체가 가능한 컴퓨터를 만든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투명한 케이스를 좋아했습니다. 색깔은 있지만 고정되지 않은 느낌. 뭔가 건방진 느낌이었죠.”

개념이 모두 은유적이었다. 현실적으로 투명한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링의 문제가 있었다. 잡스는 언제나 컴퓨터 내부의 서킷보드의 칩 배열마저 말쑥해야 한다 주장해 왔었다. 아무도 안 쳐다본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이 컴퓨터는 내부가 보였다. 따라서 내부 부품과 접합 부분을 만들 때 신경써야 했다. 쾌활한 디자인은 단순함을 전달하는 동시에 진정한 단순함이 끌어내는 그 깊이도 드러내고 있었다.

심지어 플라스틱 케이스의 단순성 그 자체도 상당히 복잡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아이브와 그의 팀은 애플의 한국 제조업체들과 협력하여 케이스 제조 공정을 완벽하게 만들고, 사탕 공장에 가서 어떻게 투명하면서 유혹적인 색상을 만드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 케이스 비용은 일반적인 컴퓨터 케이스 값의 세 배인 $60 이상이었다. 다른 회사에서는 아마 투명한 케이스가 판매량을 늘릴 것이기 때문에 더 높은 비용을 정당화시킬 수 있노라고 프리젠테이션하겠지만 잡스는 그런 분석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이맥 디자인의 끝마무리는 머리에 달린 핸들이었다. 기능성이라기보다는 보다 쾌활하고 기호적인 의미였다. 이 컴퓨터는 데스크톱 컴퓨터이며, 옮기면서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었다. 아이브의 설명은 아래와 같다.

“당시는 기술에 별로 친숙해 하지 않던 때죠. 뭔가 두렵다면 손도 대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도 무서워서 컴퓨터에 손대지 않을 걸요. 그래서 생각했죠. 손잡이가 있다면 관계 형성이 가능하다. 접근이 가능하다였죠. 직관적이기도 하고요. 만져도 된다는 허락의 의미였어요. 당신을 존중한다는 느낌도 줍니다. 불행히도 손잡이를 붙여서 제조하려면 돈이 매우 많이 들었어요. 예전의 애플이라면 손잡이를 고집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스티브는 정말 위대했어요. 그걸 보고는 ‘정말 멋지네!’라 말했으니까요. 구구절절 제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는 직관적으로 깨달았어요. 아이맥의 친숙함과 쾌활함의 일부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 후로 잡스와 아이브는 모든 애플의 미래 컴퓨터의 디자인을 이끌었다. 오렌지 조개와 같은 소비자용 노트북과 얼음덩이 비슷한 전문가용 데스크톱 컴퓨터도 나왔다. 벽장 뒤에 나타난 나팔바지처럼, 돌이켜 보면 그 당시로서 더 나아 보였지만 그러한 제품들은 너무 활기가 넘쳤다. 디자인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애플의 컴퓨터 디자인은 애플을 다른 컴퓨터와 다르게 만들었고, 애플로서는 윈도 세상에서 생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도 터져 나왔다.

평면 화면을 사용 가능하게 되자 잡스는 이제 아이맥을 대체할 때가 됐다고 결정내린다. 아이브는 뭔가 전통적인 모델부터 제시했다. 평면화면 뒤에 컴퓨터를 덧붙인 모델이었다. 잡스는 이 모델을 좋아하지 않았다. 순수함이 결여된 디자인이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잡스는 아이브에게, “뒤에다가 다 갖다 붙여서 할 거면 뭐하러 평면 화면을 내세웁니까? 각 요소가 서로 진정성을 갖게 해야 해요.”라 말했다.

잡스는 그날 아이맥 재편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집에 일찍 귀가하고는 아이브보고 오라고 했다. 그들은 잡스의 부인, 로렌과 함께 정원을 거닐면서 해바라기를 많이 심었다. 로렌의 말이다. “매년 정원일을 하는데 그 때 유독 해바라기가 매우 많았어요. 애들을 위한 해바라기 집이었죠. 조니와 스티브가 자기들 디자인 문제를 말하다가 조니가 갑자기 그이에게 묻더군요. ‘해바라기처럼 화면을 본체와 분리시키면 어떨까요?’ 조니는 바로 흥분하더니 스케치를 시작했어요.” 아이브는 이야기가 있는 디자인을 좋아했다. 그는 해바라기 모양이야말로 태양을 받을 수 있도록 평면화면을 유동성 있고 반응성 있게 할 수 있다고 봤다.

아이브의 새 디자인에서 보면, 아이맥의 화면은 움직일 수 있는 크롬 목에 붙어 있어서 해바라기만이 아니라 귀여운 램프처럼도 보였다. 애플은 이 디자인의 많은 부분을 특허화시켰고 대부분은 아이브를 발명자로 거명했으나, 한 가지만은 유독 잡스가 자기 이름을 주-발명자로 등재했다. “플랫패널 디스플레이에 붙어 있는, 움직일 수 있는 조립을 가진 컴퓨터 시스템”이다.

디자인으로서 단순함의 힘에 대한 잡스의 믿음은 2001년부터 그가 만들어낸 세 가지 소비자용 기기 성공작으로 정점을 이뤘다. 아이포드와 아이폰, 그리고 아이패드이다. 그는 오리지날 아이포드와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기 위해 매일같이 작업했다. 그의 주된 요구는 “단순하게!”였다. 그는 각 화면을 검토하고 엄격한 테스트를 했다. 노래나 기능을 원하는 경우, 클릭 세 번으로 가능해야 했다. 네 번이 넘어가는 경우에는 잔혹해졌다. 아이포드 팀의 리더였던 토니 퍼델(Tony Fadell)의 말이다. “사용자 인터페이스 문제를 두고 정말 고민할 때가 있었죠. 모든 옵션을 다 제시했다 여겼는데, 스티브는 ‘이건 생각해 봤지?’라 했었어요. 아예 문제나 접근법을 다시 정해버리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의 작은 문제는 사라져버렸어요.”

아이포드, 그리고 후의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긴밀하게 결합시킴으로써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 디자인의 단순성이라는, 1980년대 초반 잡스가 갖고 있던 통찰력의 성공이었다. 윈도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를 IBM과 Dell과 같은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라이선스를 준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달리, 애플은 처음부터 끝까지 견고하게 통합시킨 제품을 만들었다. 아이포드 첫 번째 버전의 경우 정말 그랬다. 모든 면면이 다 매끄럽게 결합돼 있었다. 매킨토시 하드웨어와 매킨토시 운영체제, 아이튠스 소프트웨어, 아이튠스 스토어와 아이포드 하드웨어/소프트웨어가 다 결헙돼 있었다.

덕분에 애플은 아이포드 기기를 Rio와 같은 경쟁 MP3 플레이어보다 훨씬 더 단순하게 만들 수 있었다. 잡스의 설명이다. “Rio와 다른 경쟁품들을 무너뜨렸던 것은, 걔네들이 복잡했거든요. 컴퓨터 상의 쥬크박스 소프트웨어와 통합이 안 되어 있으니 재생 목록부터 만들어야 했어요. 반면 아이튠스 소프트웨어와 아이포드 기기가 있으면 컴퓨터와 기기가 연동이 되죠. 복잡한 부분은 있어야 할 장소로 보내버릴 수 있습니다.”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는 이런 말을 했었다. “자연은 단순함과 통일성을 좋아한다.” 스티브 잡스도 그러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합치면서 그는 둘 다를 이룰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서거하고 내가 쓴 그의 전기가 출판된 이후 나는 책이 야기한 두 가지 상반된 반응에 놀란다. 잡스가 얼마나 거슬리고 심술 부리는 존재인지 놀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특히 젊은 기업가들이나 사업을 운영해본 적이 있는 이들은 그의 심술이 예술적인 감각, 디자인 완벽주의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집중한다.

두 번째 관점이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물론 잡스는 모시기 매우 힘든 인물이고, 정말 얼간이일 때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보스와 얼간이가 매우 많으며, 그들 대부분은 그렇게 심하지도, 얼간이도 아니다. 잡스를 특별하게, 가끔은 천재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따로 있다. 아름다움에 대해 불타는 듯한 본능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능력,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신념이다. 그 때문에 잡스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위해 최대한 힘을 쏟는 회사를, 우리 시대에서 그 중요성을 나타내는 제일 좋은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How Steve Jobs’ Love of Simplicity Fueled A Design Revolution | Arts & Culture | Smithsonian Magazin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스큐어몰피즘이 애플의 디자인 문제가 아니다.

Apple’s design problems aren’t skeuomorphic

MON, NOV 5, 12

지난 주, 애플의 조직 변화에 대해 발표한 팀 쿡의 서한에서 인용한다.

조나단 아이브는 산업 디자인 리더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회사 전반적으로 HI(휴먼 인터페이스)에 대한 리더십을 보여주며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그의 놀라운 디자인 미학은 10년 이상 애플 제품의 외양과 느낌을 견인해온 주역이다. 수많은 애플 제품의 얼굴은 우리의 소프트웨어이며, 조니가 가진 기술의 확장은 애플과 경쟁사들 간의 간격을 넓힐 것이다.

Sir Jony Ive needs no introduction

아이브의 산업 디자인 작품은 애플 부활의 핵심 중 하나였다. 미학적인 면에서 끈질기고 반복적인 단순함 및 기능에 대한 집중은 이제 전설이다. 본다이 블루 아이맥에서부터 아이콘화 된 아이포드, 평면화면 아이맥에서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그의 흔적은 틀림이 없다.

다만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이브의 애플 소프트웨어에 대한 역할이다. 아이브가 백마를 타고 와 스콧 포스탈스러운 스큐어몰피즘에서 긱들을 구해내리라는 현재의 기대감은 상당히 우습다. 물리적인 기기의 산업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 또한 형태와 기능으로 나뉘어 있다. 미학적인 면과 경험으로 나뉜다는 의미다. 애플 소프트웨어가 가진 문제는 어두운 리넨 천이나 코린트 식의 가죽, 찢어진 종이와 같은 스큐어몰피즘이 아니다. 애플 소프트웨어가 가진 문제는 사실 미학적인 면과 거의 관계가 없다… 대부분 경험과 관련된 문제이다. 아이브의 전임 보스의 말을 인용하여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애플 소프트웨어가 가진 문제는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느냐이다. 슬프게도 우리 기대 이상으로 애플 소프트웨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 알림의 배경이 어두운 리넨이건 아니건, 비참한 디자인일 따름이다.
  • 모바일 기기의 배터리를 떨어뜨리는 여섯 가지(GPS, WiFi, 셀률러 라디오, 블루투쓰, 알림, 화면 밝기) 아이템을 조절하려면 지금도 열심히 뒤져서 클릭해야 한다. 간단하거나 주제별, 위치별 그룹화라도 있지 않으면, 익숙지 않은 사용자들은 켜고 끄는 곳이 어디인지조차 바로 알 수 없는 지경이다.
  • 아이클라우드-데스크톱 통합과 애플 기기 간의 직접 파일 공유는 말과는 달리 직접적이지 않으며, “It just works”에 못 미친다.
  • iWork 패키지와 같은 수많은 애플 앱들의 업데이트가 절실하다. 미리보기나 텍스트에디스, 주소록과 같은 다른 앱들 또한 UI와 UX를 아예 완전히 개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 사전이리든지 iOS 키보드 배치와 자동 완성 기능 같은 핵심기능들이 최고가 아니다.
  • 조그마한 “폴더” 안에 들어가는 iOS의 앱 조직화 기능을 보면, 현미경으로나 봐야 할 아이콘으로 앱을 모아 놓는다. 이름도 안 나오고, 뭐가 들어 있는지 알아보기 힘들고 확장성도 갖고 있지 않다.
  • iOS 앱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일은 우아하지 않고 불투명하며, 일반적으로 앱들 사이의 데이터 상호 교환(개발자에게는 상당히 힘 떨어지는 일이다) 또한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문제점 목록을 길게 쓸 이유는 별로 없다. “개선할 사항” 목록을 실제로 작성하면 10배는 더 길어질 것이다. 이 시점에서 누구의 잘못인지 논하는 것은 별로 유용하지 않다. 애플 소프트웨어(특히 스스로 미래라 밝힌 iOS)는 미학적으로나 경험으로나 심각한 개수 작업이 필요하며, 미학보다는 경험 쪽이 훨씬 더 절실하다.

One Man. One Company. One Aesthetics?

문제는 세계에서 제아무리 제일 뛰어난 산업 디자이너라 하더라도 아이브 혼자서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미학과 경험 모두)를 필요한 정도로까지 충분한 관심을 쏟을 수 있을까? 그럴 시간이 한 사람에게 있겠는가?

애플의 휴먼 인터래션 가이드라인(HIG)은 아이콘 그림자라거나 버튼의 배열만 다뤘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일반적인 애플리케이션 디자인의 행동적 측면의 분석도 HIG에 포함된다. 한 세대 이전, 웹디자인이 지배적이기 이전 시절, HIG는 애플 스스로는 물론, 애플 개발자들도 훨씬 더 존중하고 지켜왔던 준칙이었다. HIG를 안 지키는 점이 있으면 충성스러운 사용자들도 알아보고 불만을 드러냈었다. 공개된 포럼에서 HIG 토론이 일어났던 것 또한 일반적인 일이었다.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라디오 버튼이나 체크박스 정도로도 웹페이지 네비게이션이 가능하다. 네비게이션이 가능한 메뉴는 이제 원형이고 삼각형 팝업으로 뜬다. 사용자에게 기능을 해치지 않는 한 순수 제스쳐에 기반한 UI들이다. 미끄러지는 패널 레이어는 서로 연동되며 동작한다. 아이템 목록 슬라이드는 좌우로 움직이면서 드릴다운 액션을 일으키고 위아래로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내보낸다. 3D로 만든 UI도 있으며, 그림자가 없는 UI도 있고, 대부분은 여러 가지 스타일의 조합이다. 한 때 강력했던 HIG가 다 그러한 “혁신” 깊숙이 묻혀 있다.

그렇다면 현재 5억 명의 사용자가 있는 생태계를 한 명의 휴먼 인터페이스 황제가 호령하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가능하고 바람직하기도 하다면, 그토록 거대한 생태계의 시각적 미학과 기능적 경험을 한 사람이 모두 맡을 수 있겠는가?

  • 디스플레이 레이어에 떠오른 시리의 문제점이 의미(semantic)를 가진 토대로 음소 나누기, 어휘별 맥락, 데이터-제공자의 계약, 통신망 대기 시간 등이 깊은 관계에 있고, 그래서 그 해결방법은 이들 요소와 기능들의 협업에 달려있다라는 점을 단 한사람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 지도나 패스북 앱을 사용할 때에도, 유사한 기술적 및 운용의 제한때문에 사용자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사실을 과연 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기대하는 것이 공정하고 합리적일까?
  • 게임센터에 소셜 레이어가 없고 아이튠스나 앱스토어의 콘텐트 발견 레이어가 기능을 수많은 방법이 어떻게 방어하는가? 이를 한 사람에게 맡겨도 되나?
  • 사용자-수준의 파일 관리로부터 애플이 떠날수록 아이클라우드 문서 관리와 공유라는 인지적인 혼란은 어떠한가?
  • 아이튠스의 대대적인 재-디자인으로 알려진 엄청난 실험은 도대체 언제 나오는가?
  • 애플 티비에도 미학적이고 경험적인 재디자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업데이트할 때마다 iOS의 상태바와 오에스텐 메뉴바의 투명도/색상을 바꾸는만큼 오래 묵은 위의 문제가 가진 깊이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단 한 명의 황제가 해결할 수 있을까? 그가 해결할 수 있는 UI 코너와 UX 경로는 몇 가지나 될까? 이들 문제는 사실 미학적인 문제가 아니다.

Apple, quo vadis?

아이브의 임명이 스콧 포스탈의 퇴사, 혹은 단일 체제 하로의 애플 디자인 개편과 관계가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 명의 황제 휘하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을 합치는 것은 분명 미학적인 효율성을 안겨다 줄 수 있겠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내포할 수 있다. “빨고 싶을 정도”의 아쿠아 UI는 10년으로 수명을 다 했고, 좀 더 미학적으로 단일하면서 매력적인 디스플레이 레이어가 등장했다. 그렇지만 행위적이고 기능적이며 실험적인 소프트웨어 문제점 다수를 숨겨버리는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다음과 같다.

  • 더 현대적이고 덜 느끼한 게임 센터의 재-디자인이 나왔지만 소셜 레이어는 여전히 없다.
  • 미학적으로 단일한 아이튠스이지만 콘텐트 발견성은 더 나아지질 않았다.
  • 시리 앱에는 배경의 리넨이 없어도 iOS의 나머지 부분과 맥락적으로 깊은 통합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 지도 앱은 어색한 초현실적 시각효과가 없어도 견고한 검색 레이어를 여전히 갖추지 못했다.
  • 나무 책서랍이나 안쪽의 그림자가 없는 아이북 앱의 타이포는 보통 수준 이하이고 하이픈 연결하기와 행 맞추기는 무기력하다.
  • 테이프 덱의 스큐어몰피즘이 없다 하더라도 포드캐스트 앱의 네비게이션은 불투명하다.

마지막으로, iOS에서 잘못된 점은 앱 아이콘 뒤에 있는 어두운 리넨이 아니라, 훨씬 더 나은 애플리케이션-간의 관리와 내비게이션이다. 조그마한 아이콘을 헤집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애플이 아이튠스와 앱스토어에서 사용하는 애플 ID의 통일 문제, 혹은 성능과 신뢰성 문제만 훨씬 잘 해결할 수 있다면, 애플 사용자 대부분은 노트북이나 달력 앱에 스큐어몰피즘을 더욱 덧붙인다 하더라도 천 년 만 년 사용할 것임을 확신한다. 게다가 이 문제는 동일한 시스템 디자인이 야기하는 문제의 쌍둥이적인 측면을 의미한다. 표면에 드러나는 디스플레이 레이어, 혹은 그 내부에 힘을 숨기기, 혹은 점점 늘고 있는 두 이슈의 부족한 부분.

그렇다. 우리는 애플에게 다른 기업과는 다른, 별도의 기준을 두고 있다. 30년 동안 그래 왔으며, 그에 따른 보상도 충분히 받아 왔다. 애플이 계속 승리해 나아간다면 조니 아이브가 코린트 식의 가죽 소파 뒤에 있을 수퍼맨 망토를 잊지 않고 있기 바란다…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Apple’s design problems aren’t skeuomorphic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조너선 아이브, iOS와 오에스텐의 미래를 맡는다.

Wednesday, August 29, 2012

Jony Ive’s minimalist designs could reshape the future of iOS, OS X

By Daniel Eran Dilger

Published: Tuesday, October 30, 2012, 07:59 pm

Apple’s chief executive Tim Cook announced a new role for Jonathan Ive, the company’s senior vice president of industrial design: taking the lead in directing the design of the company’s software, too.

Apple has always been strong on design

애플은 사소한 디테일에 너무 집착한다는 비판을 받을 때가 종종 있을 정도로 컴퓨터의 혁신적인 디자인이라는 명성을 빠르게 쌓았다. 좋은 디자인 제품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열정은 애플 II와 리사에 반영됐지만, 1984년의 매킨토시에는 그 열정이 한층 강화됐다. 잡스는 매킨토시를 퀴진아트 조리도구처럼 우아하면서 쓰기 쉽게 만들기를 원했었다.

잡스는 애플을 설립한지 얼마 안 되어서 1977년, 디자이너인 제리 마녹(Jerry Manock)에게 컨설팅을 의뢰했고, 결국 그를 고용하여 애플 컴퓨터의 대표적인 디자인을 개발할 애플 산업디자인그룹을 새로이 개설했다.

애플은 디자인을 제품의 중대한 요소로 계속 간주했다. 유명 디자이너와 협력하여(Frog Design의 하트무트 에슬링어(Hartmut Esslinger)를 포함) 애플 Iic의 “백설공주(Snow White)”와 플래티넘(Platinum) 산업디자인 언어를 개발했다. 이들 디자인은 오리지날 매킨토시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반영됐다. 잡스가 애플로부터 쫓겨나 80년대 중반 넥스트를 세웠을 때에도, 잡스는 Frog를 고용하여 넥스트 컴퓨터 디자인을 개발했었다.

단 디자인 문화는 애플에 계속 남아 있었다. 80년대 후반부, 애플의 산업디자인 책임자였던 로버트 브러너(Robert Brunner)는 소니와 함께 1991년 파워북 노트북을 개발한다. 파워북은 키보드를 화면 쪽에 배치하여 손목 놓을 공간을 앞에 마련하고, 중앙에 트랙볼을 놓는 등, 포터블 시스템에 대한 디자인을 급진적으로 바꾼 기종이었다. 처음에는 짧게나마 비난을 받았지만 결국 전 업계가 파워북 디자인을 따라했다.

이와 동시에 애플은 세계 최초의 주류 태블릿 시스템이었던 뉴튼 메시지패드를 개발한다. “수프(soup)” 소프트웨어 개발 개념과 산업 디자인, 완전히 새로운 휴대용 칩 아키텍쳐로서의 ARM 디자인, 아름답고 기능적인 제품을 만들기로 유명한 애플의 운영체제가 결합된 제품이 뉴튼이었다. 설사 너무 비싸서 반향을 끌지는 못 했서도 말이다.

2007년,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애플 디자인 그룹을 이끌었던 브러너가 컴퓨터 역사 박물관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애플에서 아이브를 고용하기 위해 했던 세 가지 노력을 설명했다. 결국 그는 1992년 아이브를 고용했었다. 아이브의 첫 번째 임무는 오리지날 메시지패드 디자인의 수정이었다.

Robert Brunner: the man who hired Jonathan Ive… thrice! – YouTube

Ive struck by Apple’s design focus

아이브를 이끌었던 것은 진보적인 디자인으로서 애플이 가진 국제적인 명성이었다. 2007년의 한 인터뷰에서 아이브는 “컴퓨터에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가 기술 문외한이었기 때문인지 디자인의 여러가지 측면을 다룰 때 컴퓨터를 사용할수록 좌절했었죠.”라 설명했다.

“대학이 끝나갈 무렵 맥을 발견했습니다. 이제까지 써 보려 했던 것보다 얼마나 더 좋은지 알고 놀랐던 기억이 나요. 전체적인 사용자 경험을 주의깊게 다뤘다는 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맥이라는 객체를 통해서 애플 디자이너들과 교감하는 듯 했어요.”

“그래서 애플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애플이 어떻게 생겨났고, 애플의 가치와 구조는 어떠한지를 말이죠. 거의 반항적이면서 건방지기 짝이 없는 애플이라는 회사를 알아볼수록 더 매력적이더군요. 무사안일주의에 빠지고 창조성이라고는 바닥난 업계에서 타협적이지 않은 곳이 애플이었습니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한 회사가 아닌 이유가 있다고 봤어요.”

아이브는 1992년 애플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컨설턴트였지만 곧 정규직 직원이으로 들어갔으며, 컨설턴트로 일하는 것은 좌절스러웠다고 설명한다. “제품을 진정 혁신시키거나 중대한 영향을 주기가 힘들었거든요. 핵심적인 사항은 이미 다수 결정이 이뤄진 상태에서 컨설팅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뭔가 근본적인 일을 하려면 조직 내 여러 부문에서 급진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이브가 애플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애플은 하락세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브의 말이다. “애플은 업계가 세워 놓은 어젠다를 두고 경쟁을 시작했었어요. 목표를 절대로 공유하지 않은 업계가 세운 어젠다를 말이죠. 디자이너로서 결정이 어디서 이뤄지는지는 꽤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컨설턴트로 있기보다 직접 뛰어드는 편이 더 효과적이고 영향력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Jobs struck by Ive’s design focus

1996년 잡스가 애플로 복귀했을 때 아이브는 잡스가 애플을 처음 세울 때 만들었던 핵심 가치를 다시 세웠다고 평가했다. “애플은 다시금 다른 기업들과 다르고 분명한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디자인과 혁신은 새로운 방향의 중대한 부분을 형성시켰죠.”

애플에서의 디자인은 전문 디자이너들에게만 맡기지 않는다. 애플의 독특한 디자인이 아이브 덕분이라고들 하지만, 아이브 스스로는 자신의 업적은 애플이 그간 지지해온 디자인-중심적인 포커스의 문화덕분이라 말한다.

“회사의 리더쉽에서 제품과 디자인 역할에 대해 분명히 이해한다는 사실은 중요할 뿐만 아니라, 개발과 마케팅, 판매 팀 또한 같은 목표를 지닌다는 점이 중요해요. 디자인에서 우리가 이룬 것은,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다른 수많은 팀에게 달려있는 부분이 대단히 많으니까요.”

“디자인보다 뭔가 더 큰 것의 일부라는 점이 좋아요. 애플에 대한 충성심이 있고, 중요하다 느껴지는 디자인만이 아니라 그 너머에도 충격을 줄 수 있는 회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다만 저도 정말 책임감을 느낌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결과때문에 고통스러울 때가 종종 있으니까요.”

아이브는 특히 자신의 디자인 팀에 대해서도 말을 했다. “천상의 디자인 팀을 조직했습니다. 핵심 팀을 적게 유지하고 툴과 프로세스에 투자를 많이 함으로써,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수준의 협동을 할 수 있어요. 우리의 물리적인 환경은 그러한 협력적 접근을 반영하고 또 가능케 해 줍니다. 거대하고 열린 스튜디오와 육중한 사운드 시스템이 공용 디자인실을 지원해 주죠. 개인 공간은 거의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어떻게 같이 하느냐에 대한 기억이 우리 제품 이상으로 오래 남죠.”

14 years of design

1998년, 잡스가 애플을 다시 만들기 시작한 두 번째 해에 아이브는 산업디자인부 부사장으로 임명받는다. 그는 또한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의 아이맥을 선보였다. 아이맥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개인용 컴퓨터를 완전히 다시 생각한 컴퓨터였다. 설정이 간단하고 쉬웠으며(광고에서 제프 골드블럼(Jeff Goldblum)이 “세 번째 단계는 없음!”이라 외친다), 믿을 수 없으리만치 차별성을 갖고 있었다. 8년 전의 파워북처럼 기술업계는 일단 아이맥의 투명한 플라스틱과 증빙이 안 된 USB의 사용에 불만을 터뜨렸다가, 곧바로 급속하게 복제하기 시작했다.

Apple iMac Commercial – 3 Steps – YouTube

아이브는 새로이 타이태니엄 파워북을 디자인했고, 이 파워북은 디자이너의 툴이라는 애플의 이미지를 훨씬 더 광범위하게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냈다. 아이맥과 새 파워북의 성공으로 잡스는 나이를 먹어가는 “클래식 맥오에스”를 대체할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클래식 맥오에스는 80년대 후반 이후 크게 변한 사항이 없었다. 잡스는 맥오에스를 보다 진보적이고 세련된 넥스트 플랫폼으로 교체하려 했고, 심지어 맥의 소프트웨어 룩앤필마저 “아쿠아(Aqua)”로 교체하기로 했다. 아쿠아는 아이맥의 투명 플라스틱을 반영한 디자인 언어였다.

그러나 향후 “오에스텐”이 될 넥스트스텝을 작업하는 와중에 2000년 닷컴 거품이 터지고 만다. 애플 디자인을 사랑하던 자유분방한 신규 기술 기업들만큼이나 애플도 심각하게 영향을 받았다.

닷컴 거품 붕괴의 특별한 희생자는 아이브의 G4 큐브였다. 큐브는 비싼 가격에 평범한 성능을 가진 우아한 제품이었다. 이듬 해 애플은 아이브의 참신한 아이포드 디자인을 선보인다. 아이포드는 윈도 PC 사용자들 사이에도 애플을 확산시킨 효자 제품이었다. 여기에 2002년 이글루 아이맥이 나왔고, 이 아이맥은 애플의 디자인 상상의 (아마도) 정점에 도달한 아이맥이었다.

2003년, 미니멀한 12″와 17″ 알루미늄 파워북과 함께 애플의 아이브 디자인 팀은 단순하고 우아한 디자인으로 애플의 이미지를 안착시키기 시작했다. 뒤이어 나온 새 파워맥(맥 프로가 아니다) 케이스와 슬림한 새 맥 미니, 새로운 아이포드, 맥북 에어라는 새 디자인, 아이폰과 가장 최근의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그의 팀이 만든 제품은 애플의 제일 성공작 개인용 컴퓨터였다.

Taking on Human Interface design

이번 주, 쿡은 아이브가 원래의 역할인 산업디자인 리더에 추가하여 애플의 전반적인 휴먼인터페이스(HI)의 리더쉽과 방향제시를 맡으리라고 발표했다. “그의 믿을 수 없는 디자인 미학은 10년 이상 애플 제품의 룩앤필을 움직이는 힘이었습니다.”

아이브와 그의 디자인 팀의 포커스는 이제 더 넓어졌다. 항상 잘 매치가 되지는 않았던 애플의 여러가지 디자인을 대체하리라는 해석이 많다. 제일 분명한 사례는 잡스가 일궈놓은 또다른 스타, 스콧 포스탈(Scott Forstall)이 만든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 개념의 지나친 장식적 요소이다. 포스탈의 아쿠아 디자인 언어는 1998년 아이맥을 반영했지만 아쿠아 디자인 언어는 매우 긴 기간동안 남아 있었다.

아쿠아 이전에도 있었지만 아쿠아보다 수명이 더 길었던 “브러쉬드 메탈” 또한 잡스의 지지를 받았었다. 처음에는 퀵타임, 그 다음에는 아이튠스와 파인더 등 여러 맥 앱에도 브러쉬드 메탈이 도입됐다. 애플은 2005년, 오에스텐 10.4 타이거, 그리고 후계자인 10.5 레퍼드에 이르러서 여러가지 중구난방적인 요소를 합쳐 놓았다. 그러나 애플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그 다음 버전에서는 확장시키거나 죽이는 등,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한 실험을 계속 했다.

오에스텐 이외에 애플은 iOS도 만들었었다. iOS는 모바일과 터치에 최적화된 인터페이스를 갖췄으며, iOS의 많은 개념을 맥으로 되돌리기도 했다. 애플 데스크톱 플랫폼을 단순화시키고 맥과 iOS 간 더 많은 결합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Apple’s apps need a design leader

하지만 오에스텐과 iOS 외에도 애플에게는 iLife와 iWork, Pro Apps를 인수하거나 개발했고, 모두들 사용자 인터페이스 컨벤션을 새로 만들거나 수정했다. 가령 Logic을 인수한 다음, 애플은 보다 맥다운 모양을 주기 전에 PC-중심적인 인터페이스를 몇 번이고 놓아 뒀었다.

애플은 또한 Pro App 디자인을 소프트웨어 리더들에게 맡기기도 했다. 그 사례가 바로 원래 매크로미디어에서 파이널컷프로의 기반을 개발했던 랜디 유빌로스(Randy Ubillos)이다. 애플에서 유빌로스는 파이널컷과 몇 가지 지원 앱을 개조하여 사용이 보다 쉬운 아이무비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맥에 대한 iOS의 영향과 마찬가지로, 유빌로스는 당시 잡스를 끌어들여서 파이널컷프로의 완전한 재-디자인을 했다. 이미 소프트웨어가 작동하던 방식에 익숙한 사용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유빌로스는 또한 애플의 Pro Apps의 모바일 버전도 디자인했다.

그러나 앱과 플랫폼, 이니셔티브가 아이튠스처럼 더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관심을 덜 받는 애플 제품들도 있었다(오에스텐에 무료 번들되는 앱 대다수가 그러하다). 동시에 애플은 또한 단순히, 새로운 개념을 너무 빨리 적용하거나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디자인을 전격 채용한다는 식의 비판도 일으켰다.

특히 최근 애플이 수정한 바느질한 가죽과 나뭇결 디테일은 여러 비판의 초점이 되었다.

미래의 애플 소프트웨어 디자인은 오리지날 매킨토시의 경험을 규정지었던 휴먼 인터페이스 가이드라인의 사례집일 뿐만이 아닐 것이다. 애플은 iOS와 오에스텐 모두에 터치 제스쳐를 소개했으며, iOS의 터치에 대한 대안으로 음성-기반 시리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아이브의 임무는, 애플의 미래 제품이 가질 휴먼 인터페이스 디자인 방향을 제시하기이다. 그 임무에는 매우 많은 수의 규율이 포함될 것이다. 또한 애플 내부 전반에 퍼져 있는 단일하고 바뀌지 않는 극단적인 소프트웨어 외양(빠르게 쇠락하거나 지루해질 수 있다)과 실험적이고 유연하면서 발전적인 디자인 센스(특정 방법에 익숙한 이들로부터의 비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간의 균형을 지켜야 한다.

애플 디자인의 미래는 세련되고 미니멀리즘적이면서 실용적인 디자인과 기발하면서 풍부하고 사용자화가 가능한(많은 이들이 좋아할 것이다) 디자인 간의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아이브는 깔끔하고 전문적인 레이아웃을 향하는 애플의 전통적인 디자인을 보다 좋아할 것으로 보인다. 야단스럽고 괴짜같은 달력과 주소록의 이전 디자인을 더 선호한다는 의미다.

Rethinking the status quo

하지만 디자인 기풍에 대한 아이브 스스로의 언급으로 봤을 때, 그는 애플이 소프트웨어 플랫폼 간 단일한 디자인 언어 이상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브는 처음 시작 때부터 제품을 다시 생각하고자 하며, 이제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은 것에 대해 신선한 관점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가령 2007년 아이폰을 선보였을 때의 청중은, 아이폰의 날씨와 주식 위젯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나 그동안 모바일 업계가 애플 및 애플 스토어를 중심으로 급변하면서 애플은 진정 생각을 다시 한 앱을 선보이지 않고 있다.

지도 상에 날씨 예보를 곧바로 보여주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애플은 지금도, 일정 지역 날씨를 보기 위해 단조로운 날씨 위젯에 사용자가 직접 지역을 입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가 지역별로 날씨가 대단히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써드파티 앱들이 이미 존재한다. 애플은 왜 이를 인정하지 않을까?

그리고 애플의 주가 위젯은 여전히 야후의 스팸-파이낸스에서 나오는 한심한 뉴스피드를 계속 내보내고 있다. 2007년보다 상황은 더 악화됐다. 최근에 회사 주가를 확인해 본 사람이 애플 내부에 아무도 없단 말인가? 주식 위젯은 시리 통합 외에 가치 없는 링크 이상 제공하지 않는다. 위젯이 제공하는 링크는 파이낸스라는 복잡한 세상에 대해 그 어떠한 분석도 제공하지 않는 사이트들 뿐이다.

애플이 오에스텐과 iOS에 새로운 앱 번들을 유지할 수 없다면 신선함과 기능 유지를 위해 자원을 확대 투입시키거나 아예 끊어야 한다. iOS와 비교해 볼 때 오에스텐은 더 심각하다. (이미지 캡처로 알려진 이상한 가방처럼) 최신 버전과 연동만을 목표로 한, 미완성품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아이챗과 아이메시지, 페이스타임이라는 이상한 조합처럼 여러가지 방식으로 합쳐지거나 분리되거나 한 것도 많다.

애플 앱중에 제일 유명한 혼란덩어리의 사례는 아이튠스일 것이다. 최근 수 주일 늦춰진 아이튠스 11은 적어도 앱의 작동방식을 다시 생각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어떻게 뭔가를 고치는지 회사가 알고 있다는 매우 좋은 신호다.

메시징과 정보 접근, 혹은 사파리와 같은 무료 앱의 성능과 유용성을 어떻게 늘리는지, 어떻게 다시 생각하는지가 더 큰 문제이다.

쿡은 애플이 하드웨어 제품을 만들 때 “노”라 말할 줄 안다는 언급을 여러 차례 해왔다. (모든 애플 제품을 탁자 위에 올려 놓을 수 있다는 자랑도 같이 말이다.) 그러나 애플 소프트웨어는 중구난방이고 방향도 없다. 아이브의 그룹이 맡아야 할 큰 임무이다.

다만 아이브는 그동안 소프트웨어를 개선시킬 기회를 기다려 왔던 것으로 보인다. 포스탈의 임무를 아이브에게 배정됨으로써 아이브는 드디어 그가 하드웨어에서 이룩했던 것만큼 애플 소프트웨어를 다시 디자인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Jony Ive’s minimalist designs could reshape the future of iOS, OS X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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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hone 5S Prototype 루머 이미지 입니다.
애플의 차기작에서 많은 루머로 나왔던 홈버튼이 없는 디자인이고, 액정도 iPod nano 4세대와 같은 곡면 디자인으로 되어 있습니다.

http://www.gsmarena.com/exclusive_alleged_iphone_5s_prototype_pics_is_it_the_real_deal-news-5815.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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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Digits는 Apple의 내부정보를 잘 아는 사람의 말을 인용해, Apple의 디자인 리더인 Jonathan Ive가 휴먼 인터페이스(HI)를 총괄하게 되면서 iOS에 대한 디자이너와 소프트웨어 개발의 프로토 타입을 개발하는 팀이 비밀리에 분리되어 작업이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현재 Apple은 모바일 소프트웨어 중심에서 Jonathan Ive가 팀 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있는 것 같다고 전하고 있으며, 관련 Apple의 직원에 따르면 진심으로 즐거운 일이라고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Jonathan Ive는 소프트웨어 디자인의 결합을 추진하고있는 것 같다고 하지만, 디자인 변경은 크게 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iOS와 OS X의 두 리더 인 Craig Federighi는 각각의 소프트웨어 팀을 묶는 조직 개혁을 진행하고 있지만, iOS와 OS X의 개발 팀은 별도의 유지 할 예정이라고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http://blogs.wsj.com/digits/2013/03/21/apple-design-teams-get-coz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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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은 새로운 Facebook 뉴스 피드 디자인을 발표 했습니다. 새로운 디자인은 사진이 크게 포커스화 되며, 친구가 공유하고있는 콘텐츠에 스포트라이트가 맞는 디자인으로 변경되고 있습니다. 또한, 유형별 피드로 보고 싶은 기사를 쉽게 필터링하고 모바일, 태블릿, 웹 등 어디에서 Facebook에 액세스하여 동일한 디자인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새로운 디자인은 앞으로 몇 주에 걸쳐 모든 사용자가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빨리 사용하고 싶은 분은 Facebook 뉴스 피드 의 맨 아래에있는 베타 프로그램의 대기 목록에 추가합시다.

http://newsroom.fb.com/News/581/A-New-Look-for-News-Feed

Sir Jonathan Ive and entire Apple design team fly to London to collect prestigious D&AD awards

Gideon Spanier
19 September 2012

광고와 디자인 업계에서 제일 가는 상 중 하나인 D&AD 어워드 중, 최고의 브랜드 및 디자인실로 애플이 거명됐다. 애플의 디자인 일인자로서 전면에 나서기를 보통 꺼려하는 조너선 아이브 경이 이 상을 받으러, 런던 바터시 파크(Battersea Park) 에볼루션(Evolution)에서 열린 만찬장에 등장했다.

평소와 같지 않았던 일은 더 있었다. 아이브만이 아니라 D&AD 어워드의 중요성을 인식한 듯, 샌프란시스코에서 애플의 전체 디자인 팀이 다 런던으로 왔기 때문이다. 모두 16명이며 남자가 14명, 여자가 2명이고, 베스트 디자인 스튜디오 상을 받는 아이브 경을 그들이 수행했다.

애플 디자인 팀이 이러한 수상식에 공개적으로 참여한 적은 이전까지 한 번도 없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의 등장은 애플이 금요일부터 스토어에 풀리기 시작한 아이폰 5를 선보였기 때문에 더욱 더 주목받았다. 조너선 아이브 경은 제50회 D&AD의 다른 손님들과 잡담을 나누며 큰 미소만을 지었다. (D&AD는 디자인과 아트 디렉션을 의미한다.)

존 헤가티(John Hegarty) 경이나 데이비트 퍼트넘(David Putnam) 경, 테런스 콘란(Terence Conran) 경과 프랭크 로(Frank Lowe) 경 등 영국 광고업계의 거물들도 이번 시상식에 참여했다.

디자인 자문회사인 Tangerine에서 아이브와 같이 일했던 클라이브 그리녀(Clive Grinyer)는 애플 제품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디자인은 브랜드의 모든 부분에 깃들어 있습니다”라 말했다.

하이네켄과 Hovis, Benson & Hedges, 1970년대의 Helmet 시가의 기억할 만한 광고를 만들었던 Collett Dickenson Pearce & Partners도 최고의 광고에이전시로 수상했다.

D&AD의 수석 운영책임자인 팀 린제이(Tim Lindsay)의 말이다. “오늘 밤 이 자리에 모인 기업과 브랜드 관계자 여러분들이야말로 지난 50년간 광고 업계의 진정한 비전가들이십니다. 여러분의 작업이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방식과 우리가 통신하고 서로 사업하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Saatchi & Saatchi의 CEO인 로버트 시니어(Robert Senior)는 광고 업계의 중요성에 대해 강력하게 말했다. “D&AD 어워드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면, 여기를 보십시오. 세계에서 제일 가치가 높은 회사에서 디자인 팀 전체를 행사장으로 보냈습니다. 보수당 정부 관계자 여러분, 보고 계십니까?”

Sir Jonathan Ive and entire Apple design team fly to London to collect prestigious D&AD awards – Technology – News – Evening Standard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Will Apple’s Tacky Software-Design Philosophy Cause A Revolt?

FAST COMPANY‘S AUSTIN CARR SPEAKS WITH INDUSTRY INSIDERS AND EX-APPLE DESIGNERS WHO HAVE SOURED ON THE FAKE LEATHER, GLASS, AND WOOD THAT RUNS THROUGH OS X AND IOS.

이제까지 애플의 기록을 볼 때 금번 발표회 때 애플이 무엇을 선보이건 간에 전문가들은 애플의 혁신적인 사고와 과감한 하드웨어 디자인을 알릴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정작 핵심은 애플 소프트웨어가 될 것이다. 지난 수 년동안 소프트웨어가 악화되기만 했다고 보는 애플 내부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맥과 아이패드, 아이폰을 한데 아우르는 애플의 iOS와 오에스텐에 대해 꾸준히 좋은 리뷰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최근 디자인 방향에 있어서 잘못된 방향이 관측됐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디자인에 대해 필자가 FAST COMPANY 10월호 기사를 작성하는 동안 접촉했던 전직 애플 디자이너들과 기타 업계 내부자들에 따르면, 애플의 소프트웨어 디자인 접근에 대해 그들은 적대적이었다. 그들은 세계에서 제일 널리 퍼진 운영체제에서 제일 급진적인 디자인 변화를 가져 온 윈도 8의 참신한 접근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비판과 논란은 다수가 스큐어몰피즘(skeuomorphism*)이라 불리는 경향을 둘러싸고 나오고 있으며, 애플 외부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는 애플 내부의 사정을 보여주고 있다.

* 스큐어몰피즘은 그리스어의 skeuos(σκεῦος)와 morph가 합쳐진 말입니다. 설명은 아래에 나옵니다. – 역주

“VISUAL MASTURBATION”

스큐어몰피즘이란 무엇인가? 애플 제품을 한 번이라도 사용해 본 적이 있다면 아마 디지털 스큐어모픽 디자인을 경험한 것이다. 가짜 가죽 질감의 칼렌다, 가짜 나무 재질의 책장, 가짜 유리와 종이, 금속 재질 등이다. 스큐어몰피즘은 현재의 물체의 기능에 더 이상 필요가 없는데도 과거의 장식적인 요소를 현재의 물체(object)가 가지고 있음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단어이다.

소프트웨어에서 스큐어몰피즘의 시작은, 사용자가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때 적응하기 이전, 디자이너들이 화면상의 애플리케이션에 만들어 놓은 시각적인 메타포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가령 문서를 저장해 놓는 가상의 폴더, 혹은 연락처를 담아 놓은 가상의 롤로덱스(Rolodex) 등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스큐어몰피즘은 특히 애플 소프트웨어의 모든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스며들었다. 예를 들어서 텍스트 문서는 노란색 노트 패드처럼 보인다.

스티브 잡스와 긴밀하게 공동작업을 애플에서 했던 한 전직 UI 디자이너에 따르면 이렇다. “가상적인 자위라 할 수 있죠. 실제 물건을 가상으로 얼마나 잘 렌더링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디자이너의 몸풀기라 할 수 있어요. 누가 상관하나요?”

그동안 이 스큐어몰피즘에 대해 애플 내부에서 갈등이 자라났다고 한다. 애플의 iOS 수석부사장인 스콧 포스탈은 스큐어몰피즘 디자인을 강하게 밀어 부치고 있지만, 산업디자인을 맡고 있는 조니 아이브 및 기타 애플의 고위 간부진들은 포스탈의 방향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애플 디자인 과정에 대해 내부적으로 친숙하다는 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렇다.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얼마나 요란하냐를 가늠하면, 누가 그 제품을 실제로 만들었는지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포스탈 이전에도 스큐어몰피즘 접근을 독려해 온 사람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다. 한 전직 디자이너의 말이다. “iCal의 기운 가죽은 잡스의 걸프스트림 개인 비행기의 가죽을 말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그 가죽 디자인이 당혹스럽고, 그저 끔찍할 뿐이라던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이너들의 내부 메일이 굉장히 많았죠.”

아마 스큐어몰피즘 디자인 방향의 가장 악명 높은 사례는 애플 게임센터일 것이다. 게임센터는 카지노 느낌이 나도록 레커 칠한 나무와 녹색을 사용한 소셜-게이밍 앱이다. 또다른 전직 애플 디자이너의 말이다. “펠트직 탁자와 게임 칩 등, 실제 게임테이블 위에 있는 모든 것을 구현하도록 강하게 밀어 부친 사람이 스티브였습니다. 그 풍부함에 충격을 받은 내부 직원들이 대단히 많았어요. 너무 오바했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죠.”

WHY IS SKEUOMORPHISM BAD

디자이너들이 왜그리 스큐어몰피즘 디자인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갖는지 궁금하실 것이다. 다만 픽셀-수준의 표준까지 요구하는 애플 내부에는 스큐어몰피즘이 사용감을 상당히 떨어뜨린다고 여기는 디자이너가 많다.

이중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데, 첫째로 더 이상 현대적인 사용자에게 전통적인 시각적 메타포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 둘째로 실제 물체의 과도한 디지털 복제는 오히려 사용자의 혼란감을 부추긴다는 점이 있다. Jawbone을 디자인했고 One Laptop per Child PC의 창시자로도 유명한 Fuseproject의 창업자, 이브 베아르(Yves Béhar)의 말이다.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스큐어몰피즘으로 흘러가는 거, 정말 싫습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 기능을 있는 그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인 메타포를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위해 사용한다는 의미의 스큐어몰피즘은 계속 짜증나더군요.”

베아르는 애플의 나무로 된 디지털 서재를 예로 들었다. “디지털 서재는 서재로 작동하질 않습니다. 실제 사용과는 별 관련이 없으면서 혼란스럽죠. 물리적인 서재에 익숙한 제 두뇌는 사용성의 차이 때문에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귀엽기는 해도 딱히 실질적으로 유용하지는 않아요.”

시각적 메타포는 실제 별 도움도 안 되면서 호사스러울 뿐더러 유행에 뒤떨어져 보이기도 하다. Lytro 카메라와 Fitbit을 디자인한 NewDealDesign의 디자이너 가디 아미트(Gadi Amit)는 디지털 롤로덱스를 사용하여 연락처가 어디에 있는지 나타낼 때를 예시로 들었다. “물론 제가 나이가 좀 있습니다만, 인생에서 한 번도 롤로덱스를 못 본 동료가 좀 있어요. 그러니까 롤로덱스는 컴퓨터 혁명의 초창기 시절에나 있던 것이죠. 그 시절 물리적인 개체와 디지털 세상 간의 차이를 좁히기 위한 시도였어요.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의 문화가 바뀌었으니까요. 더 이상 디지털 개체를 기계적인 현실적 개체로 번역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스큐어몰피즘은 한물 간 패러다임이에요.”

앞서 언급한 애플의 전직 디자이너의 말이다. “실제 기능성보다는 애플이 지나치게 스큐어몰피즘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령 스콧 포스탈은 최근, 최신 운영체제인 iOS 6에서 전자표와 쿠폰을 지울 때 사용하는, 파쇄기 애니메이션을 시연했었다.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 파쇄기를 구경이나 해 본 아이폰 사용자가 몇이나 있을까? 필요하긴 한가? 아니면 그저 시각적인 자위일까? 다시 그의 말이다. “제가 보기에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에요. 제품 자체에 별 필요가 없는데 구태여 호사스러운 걸 덧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터치스크린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상대적으로 우리가 익숙한 PC 인터페이스보다 새로운 휴대기기 업계에서, 그는 이제 우리가 스큐어몰피즘에서 벗어났다고 본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를 널리 사용하면서부터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몇 년 전에만 해도 스마트폰을 사용하려면 사용설명서를 읽어야 했어요. 그런 시절은 이제 지나갔습니다.”

WHAT’S THE ALTERNATIVE?

모든 시각적 메타포가 나쁘다는 말이 아님을 지적해야겠다. 문제는 과도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장식이다. 필자와 대화를 나눴던 수많은 내부인들은 스큐어몰피즘이 혐오스러우며 본질적으로 혼란스럽다 보고 있다.

윈도 8에 대해 어째서 수많은 업계 리더들이 환호하는지의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새 운영체제를 디자인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놀라울 정도로 참신한 접근을 택했다. 핵심에 미니멀리즘으로 접근을 하면서 평평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강조하는 동시에, 스큐어몰피즘에서 발을 뺀 것이다. 분명 실제와 같은 시각적 메타포는 윈도 8 사용자 인터페이스에서도 존재한다. 가령 메일 앱은 봉투처럼 보이며, 사진 앱은 카메라이다. 단 이 아이콘들에 그 외의 장식은 없다. 비스듬하거나 3D 효과도 없고 반짝거리지 않으며, 그림자도 없다. 애플의 소프트웨어 디자인에 대한 접근방식에 대해 환영할만한 대안으로서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본에 충실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본지 기사를 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디자인 접근방향이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 아실 수 있다. 가디 아미트에서 이브 베아르에 이르기까지, 전직 애플 내부자들이 어째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디자인 DNA를 칭송하는지도 아실 수 있다. 디자인 회사인 IA Collaborativ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댄 크래머(Dan Kraemer)는 필자에게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소프트웨어 디자인에 대해 말해줬다. “두 회사의 접근 방식은 다릅니다. 모두 다 훌륭한 경험을 위한 접근으로서, 뭐가 더 낫다고 꼭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사를 읽으시면 알게 되듯, 크래머의 많은 동료들은 애플의 소프트웨어 디자인에 대해 별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읽어 보시라.

[Image: Jose AS Reyes/Shutterstock]

AUSTIN CARR

Austin Carr writes about social media and technology for Fast Company. CONTINUED >

Will Apple’s Tacky Software-Design Philosophy Cause A Revolt? | Co.Design: business + innovation + design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Who Designs Apple’s Incredible Stores?


Apple Store: 5th Ave., New York

5번가의 “큐브”와 상해에 있는 실린더형 유리 타워. 루브르에 있는 지하 스토어, 등 애플의 대표적인 소매점은 독보적이다. 하지만 그 디자인은 모두 같은 건축가가 하였다.

애플의 유리형 스토어의 모든 모양과 크기는 펜실베니아에 있는 건축사무소인 Bohlin Cywinski Jackson에서 디자인했다. BCJ는 십여 명의 건축가 및 디자이너를 고용했지만 애플 스토어 디자인에서 제일 책임을 질만한 팀원 한 명이 누구인지에 대해 중지를 모으지는 못했다. (위키피디어는 이 모든 것을 창립 파트너인 피터 볼린(Peter Bohlin)에게 돌렸지만 이 정보는 확인이 안 됐다.)


Apple Store: Carrousel du Louvre

애플의 놀라운 소매점은 BCJ를 얼마나 높여 놓았을까? 실제로 애플스토어의 유명세때문에 BCJ의 국제적인 명성이 올라갔다… 1965년에 설립된 BCJ는 프린스턴과 예일 대학교 등 전세계 주요 대학의 시설, Falling Water의 “the Barn”, Grand Teton National Park Discovery와 방문센터, 어도비 샌프란시스코, 애플의 자매사인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본부 등을 작업했다.

BCJ는 애플 스토어의 위치에 걸맞게 스토어 디자인을 책임졌다. 가령 루브르에 있는 애플 스토어를 보면 카루셀 뒤 루브르(Carrousel du Louvre) 지하의 거꾸로 매달린 유리형 피라미드에 맞도록 공간을 디자인했다. BCJ에 따르면 “카루셀 벽의 조형물이 애플 스토어로 확장되어서 공간을 틈 없이 통합시킵니다.” BCJ는 뉴욕 5번가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리 큐브 스토어의 원통형 유리 엘리베이터도 별도로 디자인했다. 큐브는 GM 빌딩 맞은 편의 플라자와 어울리도록 만들어졌다.


Apple Store: Grand Central Station, New York

제약이 있는 공간인 Grand Central 기차역 중앙 홀의 위쪽 발코니를 점유한 애플 스토어도 BCJ가 디자인했다. 손님들 머리 위로 달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디자인에 제약이 좀 있었다. BCJ는 제품이 놓여 있는 탁자에 별도로 제작한 전등을 달았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 할 디자인이었다. 이런 식으로 BCJ는 어떻게든 기차역의 역사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미니멀리즘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BCJ의 창조적인 자세도 자세이지만, 큐브나 원통형과 같은 애플의 고유 디자인을 애플이 모두 특허화시켰거나 출원중이라는 사실을 지적해야겠다. 그리고 그 특허의 발명자로 맨 위에 올라와 있는 이름은? 다름 아닌 스티브 잡스이다. 특히 디자인 디테일에 대해 신경쓰는 것으로 잘 알려진 잡스는 애플의 소매점에 관한 모든 부분에 대해서도 집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구조적인 엔지니어링같은 큰 일 대부분은 BCJ가 했으리라 생각하지만 전체적인 디자인을 그가 손봤음은 분명하다. 가령 BCJ는 완전히 유리로만 만든 회전형 계단(한 층 이상 있는 스토어에 쓰이는 계단이며, 정말 놀라운 공학적 기적이다)의 직접 책임자는 분명 BCJ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스티브 잡스는 쿠퍼티노의 “모선(母船)”이라 불리는 새로운 애플 본사 디자인을 맡을 사무소로 BCJ를 택하지 않았다. 그는 거대한 현대 구조물에 특화되어 있는 Foster & Partners에게 디자인을 의뢰했었다.

Who Designs Apple’s Incredible Stores?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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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소식통에 따르면, 5세대 iPad를 2013년 3월 발표 될 계획이 있는 것 같다며 전해지고 있습니다.
Surface와 Nexus 7에 대항하기 위해 제품 출시주기가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iPad mini를 그대로 크게 한 디자인으로 얇고 가볍게 제작 될 것같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아마, 높이 4mm, 폭 17mm, 두께 2mm 작아 진다고 생각됩니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2세대 iPad mini의 시험 생산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액정 디스플레이는 7.9 인치로 지금과 같으며, 2048 × 1536 픽셀 (326ppi)을 지원하는 패널이 탑재 될 것 같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4세대 iPad에 탑재된 A6X 프로세서를 탑재할 것 같다고 합니다. 자세한시기는 파악하고 있지 않지만, 이달 말에 시험 제작이 들어 갈 것 같다고 합니다.

http://news.zol.com.cn/340/3409426.html
http://news.zol.com.cn/343/34321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