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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탈 아웃, 아이브 업

By John Gruber

Forstall Out; Ive Up

블록버스터급의 애플 간부진 변경이다. 스콧 포스탈(Scott Forstall)이 떠난다. 핵심 내용은 아래와 같다.

조니 아이브(Jony Ive)가 원래의 산업 디자인 리더에 추가하여, 애플의 전반적인 휴먼인터페이스(HI)의 리더쉽과 방향을 제공한다. 그의 놀라운 디자인 미학은 그동안 10년 이상 애플 제품 룩앤필을 움직이는 힘이었다.

에디 큐(Eddy Cue)는 시리와 지도의 추가적인 책임을 맡을 것이며, 애플의 모든 온라인 서비스를 한 그룹에서 수행할 것이다. […] 크레이그 페더리기(Craig
Federighi)는 iOS와 오에스텐 모두를 맡는다.

포스탈은 그동안 애플 내부에서 논쟁적인 간부였다. 혹시 6주일 전, 스큐어몰픽 UI 디자인에 대한 애플 내부의 긴장을 다룬Fast Company의 오스틴 카(Austin Carr)의 기사 기억하시는가?

그동안 이 스큐어몰피즘에 대해 애플 내부에서 갈등이 자라났다고 한다. 애플의 iOS 수석부사장인 스콧 포스탈은 스큐어몰피즘 디자인을 강하게 밀어 부치고 있지만, 산업디자인을 맡고 있는 조니 아이브 및 기타 애플의 고위 간부진들은 포스탈의 방향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애플 디자인 과정에 대해 내부적으로 친숙하다는 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렇다.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얼마나 요란하냐를 가늠하면, 누가 그 제품을 실제로 만들었는지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포스탈 이전에도 스큐어몰피즘 접근을 독려해 온 사람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다.

하지만 제일 거대한 언급은 아무래도 5월, The Telegraph의 셰인 리치먼드(Shane Richmond)가 다룬 조니 아이브의 인터뷰 기사일 것이다.

가상의 바느질에 대해 말하자 아이브는 움찔했다. 하지만 그가 그런 모양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동조의 제스쳐였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봤다. 그는 해당 문제에 대해 논하기를 거절하면서 외교적인 답변을 했다. “제품 아이디어에 대해 다른 팀과 협력에 대단히 집중을 많이 합니다. 그 다음에 하드웨어를 만들죠. 그것이 우리의 초점이자 책임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그런 요소에 대해서 저는 별 관련이 없습니다.”

이제 그는 관련하게 되었다.

포스탈은 오랜 기간동안 애플에 있었다. 90년대 초반, 넥스트에서부터 그는 넥스트스텝과 맥오에스텐, 그리고 iOS의 개발에 관여했다. 하지만 애플 보도자료가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애플의 보도자료를 보면, 포스탈에 대해 팀 쿡의 따뜻한 말 한 마디나 감사의 인사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5월, 맨스필드(Mansfield)가 은퇴할 때(지금은 번복했다) 쿡이 했던 말과 비교해 보시라. 2011년 3월, 베르트랑 세를레(Bertrand Serlet)의 개인적인 말도 비교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포스탈은 스스로 관두는 것이 아니라 벌을 받았다. 그의 디자인 취향이나 엔지니어링 관리, 거친 스타일, iOS 6의 지도 문제 등 여러가지 일들이 포스탈에게 불리하게 작동했다. 또한 스티브 잡스와의 가까운 관계덕분에 포스탈이 얼마나 그동안 보호 받았었는지도 궁금해졌다. 당연히, 이제는 그런 보호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포스탈이 iOS의 시작을 맡았었다는 점만은 알아 줘야 한다. 그는 베르트랑 세를레와 함께 오에스텐을 아이폰 기반(터치를 제외하고 아이포드를 돌리던 임베디드 OS와 유사한 것이 아니다)으로 삼자는 아이디어에 대해 주된 지지자였음을 알고 있다. 조니 아이브의 디자인 취향이 애플의 소프트웨어에도 확산된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기 짝이 없다. 단, 포스탈의 리더쉽으로 iOS는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둬 왔다.

보도자료에서 거의 자투리 취급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애플은 소매사업 책임자였던 존 브로웻(John Browett)의 사임도 발표했다. 그는 실적상 전혀 칭찬을 받지 못 했었다. 포스탈의 축출이 큰 변화이다. 그렇지만 브로웻의 경우는 아직 1년도 안 된 신참 관리자였다. 일단 팀 쿡이 실수를 인정하고 어떻게 고치는지를 알았다 정도로만 생각할까 한다. 브로웻의 사임에 대해서는 더 이상 파고들지 않겠다.(비록 애초에 브로웻을 고용했던 장본인이 쿡이었지만 말이다.)


애플을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광고나 보도자료에서 볼 수 있는 애플의 담백함이다. 바로 오늘, The Atlantic의 데릭 톰슨(Derek Thompson)의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그는 애플의 분기 수익 발표문이 다른 대기업에 비해 훨씬 분량이 적음을 발견했다. 단, 포스탈의 사임을 알린 보도자료의 표제를 언뜻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Apple Announces Changes to Increase Collaboration Across Hardware, Software & Services” 표제 다음에 부제가 뒤를 이었다. “Jony Ive, Bob Mansfield, Eddy Cue and Craig Federighi Add Responsibilities to Their Roles”.

이와 함께 포스탈의 애플 내부 평판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들을 생각해 보면, 완곡 어법으로 쓰여 있기는 하지만 제목이 사실 그대로를 말해준다고 본다. 포스탈은 애플 내부 협력의 장애물이었다. 이제 그가 떠났고 그의 책임을 네 명이 나눠 맡게 되었으며, 네 명은 협력을 발전시킬 것이다. 아이브와 맨스필드, 큐와 페더리기이다.

페더리기 역시 포스탈처럼 넥스트 시절까지 이력이 올라가며 2009년 애플로 복귀한 이후 빠르게 승진했다. 맨스필드는 흥미로운 한 해를 보냈다. 5개월 전 그는 은퇴했지만 곧 은퇴를 번복하고 새로이 “Technologies” 그룹을 맡았다. 이 그룹은 모든 무선 및 반도체 엔지니어링을 관장한다. 에디 큐는 모블미라는 재앙을 완벽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꾸준히 전반적인 개선을 하고 있는 아이클라우드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이다. 에디 큐보다 지도를 더 잘 맡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오늘의 큰 소식은 조니 아이브이다. 그가 이제 모든 제품 디자인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관장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지 과장해도 지나치지 않다. 잡스 이후의 애플에서 UI 디자인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 하는 외부 관측자들이 좀 있었는데, 이제 답변이 나왔다. 조니 아이브.

Daring Fireball: Forstall Out; Ive Up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Wednesday, August 29, 2012

How Craig Federighi & Dan Riccio were selected to leadership roles at Apple

By Daniel Eran Dilger

Published: 12:04 PM EST (09:04 AM PST)

Apple’s promotion of Craig Federighi to lead Mac software engineering and Dan Riccio to head hardware engineering follow years of experience in working closely with Steve Jobs and other members of the company’s executive team.

크레이그 페더리기는 2009년, 오에스텐 엔지니어링부 부사장으로 애플에 입사했으며, 수석 부사장인 베르트랑 세를레(Bertrand Serlet) 밑에서 일했다. 하지만 페더리기와 세를레는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에서 15년을 이미 함께 일해 왔으며,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1996년, 나란히 애플에 들어 왔었다.

Federighi’s EOF leadership at NeXT

1994년 넥스트에 들어가자마자 페더리기는 넥스트의 EOF(Enterprise Objects Framework) 관리를 맡았으며, EOF는 넥스트에서 제일 중요한 제품 중 하나였다.

잡스의 넥스트는 원래 하이엔드 웍스테이션 하드웨어 판매를 시도했었고, 그 다음에는 진보적인 운영체제(선 솔라리스와 HP 웍스케이션, 심지어 일반적인 PC)를 마케팅하려 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윈도는 대안에 대한 경쟁 기회를 차단했기 때문에, 잡스는 넥스트를 객체로 집중시켰다. 1996년 잡스가 애플에 복귀하기 겨우 수 개월 전 있었던, Wired인터뷰를 보도록 하자.


잡스는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현재 제일 흥미로운 일은 객체와 웹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웹을] 장악할 방법을 찾으리라 생각하지 않아요. 훨씬 더 많은 혁신이 있을 것이며, 지배자의 어두운 구름이 없는 장소를 만들어낼 겁니다.”

따라서 넥스트는 세련된 웹 애플리케이션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웹용 객체지향 개발 기술에 집중하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당시 새로 내놓은 제품이 바로 웹오브젝트(WebObjects)였다.

고유한 웹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하고 싶어하는 기업들에게 있어서 웹오브젝트는 상당히 가치가 있었으며, 웹오브젝트의 핵심 기술이 바로 페더리기가 이끌던 EOF였다.

EOF가 있으면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정보를 마치 객체인 양 접속하는 세련된 앱을 만들 수 있었다. 다이나믹 웹 앱을 표시하고 업데이트시키기 위한 데이터로 쉽게 할 수 있던 기술이 EOF였다.


Federighi brought ideas together, listened

애플의 일부가 되기 전, 넥스트와 긴밀하게 협조했던 개발자인 윌 쉬플리(Wil Shipley)는 넥스트의 EOF 팀에 정말 똑똑한 엔지니어들이 있어서, 협력이 정말 즐거웠지만 그들은 외로운 늑대형의 인물들이었다고 지적했다. 자기 일을 하고 자기 아이디어가 있었으며 자기들의 코드를 작성한 사람들이었다. 크레이그는 그들의 아이디어를 한데 모았다고 한다.

쉬플리는 페더리기가 1994년의 넥스트에 있어서 “신참”이었다고 묘사한다. 그의 말이다. “그의 키는 7 피트 정도였으며, 게임쇼 호스트를 할만큼 잘생기고 중고차 딜러처럼 미소짓습니다. 맞아요. 안 좋아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말이죠. 원래 컴퓨터광들이 좀 그렇습니다. 나름의 규약을 어기면 쫓겨나게 되죠. 키가 크고 잘생긴 사내라면, 일종의 얼간이로 여기거든요. 자기 아이디어가 무조건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행동하겠죠. 그런데 한 번 회의를 해 보니까 아니더군요. 우리 말을 듣고 있었어요. 17년이나 지났지만 그 때의 인상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냥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말하는 바를 자기가 올바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싶어했을 뿐더러 새겨두려 하기까지 했습니다. 이게 필요하다는 말이죠?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저건 또 어떻죠? 능동적으로 들었다는 얘기입니다. 자기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어하는 엔지니어들이 대부분인 업계에서 정말 놀라운 일이었죠.”


Apple Senior Vice President of Mac Software Engineering Craig Federighi. | Source: Apple

페더리기는 EOF와 관련된 애플 특허 세 가지의 발명자로 등재돼 있다. 애플리케이션 객체와 사용자 인터페이스 객체 묶기(binding user interface objects to application objects)객체 배포와 싱크(distributing and synchronizing objects), 데이터가 함유된 객체 그래프의 변화 관리(managing changes to a graph of data bearing objects)이다.

Apple kills EOF, Federighi leaves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했던 1996년 말, 포기됐던 넥스트스텝 운영체제로 매킨토시를 현대화시키고자 했던 희망은 오에스텐, 나중에는 iOS로 태어났다.

애플은 또한 웹오브젝트와 EOF의 가치를 알아봤지만 넥스트 인수 이후, 여러 기업들은 애플과 거리를 두기 위해 투자를 철수했었다. 가령 델은 주문형 PC 웹사이트를 원래 웹오브젝트로 구축하여 성공을 거뒀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하여 사이트를 아예 새롭게 만들었었다.

중요한 대기업 고객 없이 애플은 EOF와 웹오브젝트의 용도를 바꾸기로 결정내렸다. 일단 EOF를 맥오에스텐의 통합 컴퍼넌트로 만들고, 2001년 웹오브젝트를 오브젝티브-C에서 자바로 포팅시켰다. 물론 웹오브젝트 패키지에도 EOF가 컴퍼넌트로 포함돼 있었다.

애플은 웹오브젝트의 자바 포팅이 대기업 개발자들의 관심을 끌어들이기 바랬다. 당시 자바는 웹 개발의 미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플의 바람과는 달리 자바 포팅은 EOF와 웹오브젝트의 고유한 가치를 많이 무너뜨리고 말았다는 평이 널리 퍼졌다. 쉬플리의 설명이다.

“자바 포팅 이후 EOF의 아름답고 재밌는 부분이 모두 죽어버렸습니다. 크레이그도 회사를 떠났죠.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를 비난할 수 없었어요. 자기 아이를 데려다가 느리고 못생긴 짐승으로 만들어버렸으니까요.”

While at Ariba, EOF evolves into Core Data

넥스트에서 EOF 기술을 관리했건만 애플이 EOF를 하찮은 컴퍼넌트로 깎아내리자 페더리기는 애플을 떠나 3년 된 B2B 회사인 아리바(Ariba)로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웹-기반 조달 소프트웨어 마케팅을 담당했다.

페더리기가 들어가던 해, 아리바는 주식상장을 하여 60억 달러에 이르렀고, 이듬해 닷컴 시대의 떠오르는 기업들이 널리 아리바 제품을 사용하자 회사의 가치는 400억 달러로 올라섰다. 그러나 2001년 닷컴 붕괴 이후 아리바의 시가는 15억 달러 정도로 떨어졌다. 페디리기는 10년간 아리바에 남아서 인터넷 서비스 부사장, 그리고 경영 부사장과 CTO를 지냈다.

그동안 애플의 세를레는 EOF에 대해 오에스텐 개발자들과 계속 논의를 거듭하여 무엇을 아쉬워하는지 물었다. 그 결과 애플은 오에스텐 10.4 타이거(그리고 iOS 3)에 완전히 새로운 프레임웍을 개발했다. 데이터베이스 접근만이 아니라 XML과 플랫 파일 바이너리 스토리지에 집중한 프레임웍으로서, 현대적인 앱 개발자를 위하여 복잡한 루틴형 스토리지를 다루자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다름 아닌 코어 데이터(Core Data)였다.

Federighi returns to Apple

2009년, 페더리기는 아리바 사용자 인터페이스 기술 에반델리스트로서의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애플에 들어가 세를레에게 합류했다. EOF의 잿더미에서 탄생한 코어데이터 기술을 포함한 오에스텐 작업을 다시금 하기 위해서였다.

오에스텐 10.6, 스노레퍼드의 새로운 스택과 퀵뷰, 독 엑스포제, 사파리 4와 퀵타임 텐 기능을 선보이는 애플 WWDC에서 세를레는 페더리기를 소개했다.

WWDC09: Snow Leopard demo by Craig Federighi – YouTube

페더리기는 2010년 10월, 애플의 “백 투 더 맥” 행사에서 두 번째로 모습을 보여줬다. 여기에서 스티브 잡스는 그에게 오에스텐 10.7 라이언의 기능 시연을 맡겼고, 그는 당시 새로웠던 맥 앱스토어와 론치패드, 풀스크린 앱, 미션 컨트롤을 선보였다.

Apple “Back to the Mac” 2010 Event Keynote (5 of 6) – YouTube

여담이지만, 시연 도중 본지는 애플이 발설하지 않았던 라이언 기능을 보도한 바 있다. iOS-스타일의 스크롤 바였다.


Federighi replaces Serlet

2011년 3월, 세를레는 애플을 떠나 다른 흥미로운 일을 하기로 했다. 그의 발표다. “스티브와 22년을 함께 해왔습니다. 넥스트와 애플에서 제품 개발을 위해 정말 뜻깊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 시점에서 저는 제품보다는 과학에 더 집중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대체 인물로 페더리기를 소개하면서 세를레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크레이그는 지난 2년간 맥오에스 관리를 대단히 잘 해냈습니다. 라이언은 훌륭하며, 이주 또한 별 차질이 없을 겁니다.”

올해 WWDC에서 페더리기는 오에스텐 10.8 마운틴라이언을 소개하는 시연에 등장하고, 그 뒤를 iOS 6을 위해 스콧 포스탈(Scott Forstall)에게 맡겼다.

Apple WWDC 2012 Keynote Address – YouTube

이번 주 애플은 공식적으로 페더리기를 맥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수석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원래 세를레가 맡았던 자리다. 페더리기는 또한 애플 경영팀에 합류하여 오에스텐이 정말 빠른 시기에 죽으리라는 세간의 여론을 일축시켰다.

Tim Cook is to Jeff Williams what Bob Mansfield is to Dan Riccio

세를레의 퇴직 이후 페더리기가 승진하기까지는 5개월이 걸렸건만, 애플은 잡스가 CEO를 사임하여 쿡에게 넘기기 겨우 수 주일 전, 팀 쿡의 후배인 제프 윌리암스(Jeff Williams)를 7월, 운영부 수석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애플 경영팀에 빈 자리가 없도록 한 조치였다.

하드웨어 측면에서, 2개월 전, 밥 맨스필드(Bob Mansfield)의 하드웨어 엔지니어링부 수석 부사장 사임을 발표하면서 쿡은 당시 아이패드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사장을 맡고 있던 댄 리치오(Dan Riccio)를 후계로 발표했다.


쿡의 말이다. “댄은 매우 오랜 기간동안 밥의 핵심 참모 중 하나였고 애플과 업계에서 매우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우리의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팀은 지구에서 최고의 팀입니다. 인수인계 기간동안에도 실수가 없을 겁니다.”

현실상 애플의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팀은 지난 수 년간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새로운 소비자용 기술 제품을 통해 세계에서 제일 이윤이 많이 남는 제품구성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중역들이 떠나고 어색한 사건도 있었기 때문이다.

Who is Dan Riccio?


리치오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1998년 애플에 입사(맨스필드보다 1년 전이다)했다. 잡스 휘하의 애플은 부사장이 누구이고 그들의 책임이 무엇인지 될 수 있는 한 알리지 않으려 했었다. 유능한 직원을 다른 기업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잡스는 그 스스로가 개인적으로 다른 기업에서 간부들을 많이 빼온 이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 정통했다. 그의 오른팔 격인 팀 쿡도 마찬가지였다. 올 여름, 팀 쿡은 잡스가 자신을 만난지 5분만에 컴팩(현재 HP의 일부다)으로부터 자신을 빼올 수 있어서 놀랐더라고 밝힌 바 있다.

쿡과 마찬가지로 리치오도 원래 컴팩 출신이었다. 아마 쿡의 이직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리치오는 컴팩에서 기계 엔지니어링을 담당하고 있었고, 애플에서는 12년간 제품 디자인을 맡아왔다. 그는 1999년, 애플이 Rayer Graphics(맨스필드는 이곳에서 엔지니어링 사장을 맡고 있었다)를 인수하면서 들어온 맨스필드와 긴밀히 협조하였다.

Apple’s hardware executive churn

1997년 잡스는 넥스트 직원이었던 존 루빈스타인(Jon Rubinstein)을 애플 하드웨어 엔지니어링부 부사장으로 고용했다. 원래 필립스 전자의 토니 퍼델(Tony Fadell)이 하드-드라이브 기반의 MP3 플레이어와 뮤직스토어의 아이디어를 갖고 루빈스타인을 영입하려 접촉했었다. 이에 아예 루빈스타인은 퍼델을 역으로 애플로 데려와 애플에게 맥 그 자체보다 더 거대한 사업의 개념을 알려주었다.

2001년 애플 내부에 “아이포드와 특별 프로젝트(iPod & Special Project)”라는 그룹을 만든 다음 아이포드와 아이사이트 카메라 등, 비-맥 하드웨어를 관리하기 위해, 퍼델은 아이포드 그룹이 애플 내부에서 독자적인 그룹으로 빠져 나온 2004년, 아이포드 엔지니어링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루빈스타인은 수석 부사장으로서 아이포드 부를 이끌었고, 맨스필드는 맥 하드웨어 엔지니어링부의 수석 부사장이 됐다.

2006년, 루빈스타인은 애플로부터 은퇴했고, 1년 후 Palm에 들어간다. 당시 새로 나온 애플의 아이폰이 말 그대로 Palm의 Treo 휴대폰 사업을 붕괴시킨 다음, Palm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루빈스타인의 자리(아이포드부 수석 부사장)는 퍼델이 인계받았지만, 퍼델은 2008년 자신의 가족에 더 집중하기 위해 자리에서 물러났다. 애플은 2007년부터 퍼델을 대체할 인물을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 2008년, IBM으로부터 마크 페이퍼마스터(Mark Papermaster)를 영입한다. 그가 위치에 과연 적합할지에 대해 맨스필드가 우려를 표했지만 페이퍼마스터는 아이포드는 물론 새 아이폰까지 책임을 맡게 됐다.

페이퍼마스터의 영입이 비-경쟁 조항을 침해한다는 IBM과의 법적 충돌 끝에(애플이 PA Semi를 인수한 직후였기 때문에 페이퍼마스터가 iOS 하드웨어 개발을 관리하기보다는 애플의 칩 사업을 일으키리라는 우려가 IBM 내부에 존재했었다), 애플은 2010년 8월, 페이퍼마스터가 “문화적인 차이(cultural incompatibility)”와 잡스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방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Riccio takes over Apple’s hardware engineering

당시 맨스필드는 페이퍼마스터의 책임을 인계받아 맥 엔지니어링과 함께 아이포드와 아이폰 하드웨어 엔지니어링까지 맡게 됐다. 그 해 초, 리치오는 새로 생긴 애플의 아이패드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그룹의 부사장에 임명됐다.


Apple Senior Vice President of Hardware Engineering Dan Riccio. | Source: Apple

그 해 6월, 애플은 맨스필드가 은퇴한다는 발표를 했지만 리치오가 자리를 대체할 때까지는 “수 개월”이 걸렸다.

쿡은 당시 리치오를 “매우 오랜 기간동안 밥의 핵심 참모로 지냈고, 애플과 업계에서 매우 존경받는” 인물이라 묘사했었다. 애플은 또한 리치오가 “그동안 애플 하드웨어 대부분에 있어서 핵심적인 기여를 했으며”, 특히 “1세대 아이패드 이후 애플의 아이패드 제품 모두를 관장”했다고 말했다.

Apple MacBook Pro Aluminum Unibody Design Video – YouTube

리치오는 2008년, 애플의 당시 새로 나왔던 유니바디 맥북 제조 공정을 맨스필드 및 조너선 아이브(애플 산업디자인부 수석 부사장)과 함께 설명하는 홍보 비디오에 출현했었다. 리치오는 현재 애플의 맥과 아이포드, 아이폰, 아이패드 라인의 하드웨어 개발을 이끌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애플은 맨스필드에게 원래 계획했던 은퇴시기를 지나서도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쿡은 실제로 맨스필드가 “신제품 작업을 계속 할 것”이라 발표했다.

How Craig Federighi & Dan Riccio were selected to leadership roles at Appl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