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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어떻게 3D 터치를 만들었나


How Apple Built 3D Touch
The grinding work behind a single iPhone feature.
By Josh Tyrangiel | September 9, 2015
Illustrations by Chris Nosen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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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애플이 만든 물건은 많지만 그 과정은 본질적으로 계속 동일했다. 못생기고 복잡한 뭔가를 찾아 더 예쁘고 쉽게 만들어 왔다. 그래서 브러시드 알루미늄으로 입힌 아름다움은 어느정도 안착해 왔다. 하지만 애플 9월 이벤트라 알려진 긱들의 파티 며칠 전, 조니 아이브의 초점은 새로운 버전의 애플 TV나 개집 문 정도 크기의 아이패드가 아니라 한 가지 기능이었던 이유가 바로, 계속 발전을 거듭하는 중인 “쉬움”이었다. 3D 터치라 불리는 이 기능은 아이폰을 더 쉽게 만들어준다. 새 아이폰 6s를 움켜쥔 아이브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초점은 바로 3D 터치에 있었습니다”라 말했다. “회사 전체에서 집중한 주제가 바로 3D 터치였죠. 3D 터치는 굉장히 오랫동안, 수 년간 작업했던 겁니다.”

애플 디자인 스튜디오는 스톤헨지(Stonehenge)처럼 실생활보다 상상 속의 수수께끼에 가깝다. 오픈플랜(open plan) 방식의 건물에 30여개 나라에서 모였지만 데스크톱 아이맥 앞에서 조용히 열심히 일하는 인원들로 구성된 스튜디오에는 조그마한 탕비실 가까이 나무로 만든 길다란 탁자가 놓여 있다. 탕비실에는 어슴푸레 빛나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는데, 실제로 사용하기보다는 숭배의 대상처럼 보였다. 바닥은 콘크리트였으며 인디 음악이 흘러 나오고 조명은 딱딱했다. 벽 길이의 서가에는 한 시간은 빠져듬직한 디자인 책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여기가 애플의 마술방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만한 유일한 힌트는 커튼이다. 아이브에 따르면 커튼 뒤에는 산업디자인 스튜디오가 있으며, 그곳에서 아직 실행중인 탐색과 함께 밀링 머신, 언급도 할 수 없는 미래적인 뭔가를 작업하고 있다고 한다. 3D 터치도 그곳에서 태어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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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은 메시지와 지도, 앱, 링크, 사진, 노래 등 스마트폰에 기능이 너무나 많아서 홈버튼을 누르고 여기저기 찾느라 엄청난 시간을 낭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완벽한 1세계 문제(First World problem)였지만 사과를 하지 않는 사과인 애플은 제품과 사용자 사이의 사소한 마찰도 용납할 수 없는 곳이다. 앨런 다이(Alan Dye)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부 부사장은 애플 제품을 “필연적(inevitable)”일 수 밖에 없다는 느낌으로 사용하게 하고 싶다 말했다.

태어난지 거의 10년째인 아이폰은 오리지널의 우량아에서 이제는 늘씬한 청소년으로 자라났다(큰형이랄 수 있는 5.5 인치 플러스 버전은 2014년에 선보였다). 시리와 애플 지도와 같은 기능을 제외하면, 아이폰은 너무나 많은 기능이 부드럽게 어우러져서 의미 있는 비판이 거의 불가능해질 정도로 자라났다. 영원한 리뷰처럼 보이는 아이폰이다. 그렇지만 소비자들까지 익숙해질 정도라면 더 이상의 훌륭함에 대찬 찬사도 소용 없게 마련이다. 개선은 기립박수를 받지 못 한다. 애플의 세계마케팅 수석부사장 필 실러는 추가 기능에 대한 눈높이가 세대를 거듭할 수록 올라간다고 말한다. “‘이번에는 작년과 동일한 걸 5% 더 잘 합니다’라 말할 수가 없어요. 아무도 신경 안 쓰니까요.”

“We want the way you use our products to feel inevitable.”

아이폰의 둥그런 가장자리부터 차분한 지니어스바 직원들에 이르기까지, 애플은 고객들이 애플을 오븐에서 갓 구워낸 빵처럼 탁월한 기술을 내놓는 회사인 양 자연스럽게(effortless)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거의 디즈니가 지구상에서 제일 행복한 곳이라는 환상과 비슷하다. 실러의 설명이다. “3D 터치를 구현하는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탁월한 엔지니어링의 하드웨어는 정말 만들기 힘듭니다. 엔지니어링에만 만 1년을 낭비해야 했었죠. 실제로 2년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안 쓸 기능을 헛수고했다면, 시연용만 만들어서 한 달 후면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기능이었다면 정말 막대한 제조 투자 비용을 버린 셈입니다. 엔지니어링 능력의 거대한 낭비이기도 하고요.”

실러는 3D 터치가 하나의 돌파구가 되리라고 보지만, 디자이너들은 워낙에 계속 작업해왔던지라 그의 주안점을 의식하지 못한다. 아이브도 나직하게 말했다. “아시다시피 디자이너의 일을 정량화하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작업하면서도 어떻게 결과가 나올지 잘 모를 수 있죠.”

애플 디자인 프로젝트는 정해진 시작이나 끝이 없다.시행 착오로 인해 다시 돌아가기가 일쑤이고 동시다발적인 계획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아이폰에 3D 터치를 넣기로 하고 집중한 때가 언제인지 아무도 기억 못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다만 앱 사이를 넘기거나 홈스크린을 통해 브라우징하기 대신, 유리를 누르고 있으면 다른 기능 단축기가 나타나는 편이 어떨까 하는 의문만 계속 제기했었다. 누르는 압력의 변화에 따라 아이폰이 이 기능을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애플이 디자인을 우선하는 회사라는 점 쯤은 누구나 알지만,실제로는 훨씬 크다. 디자이너와 임원진 간의 관계는 파라오와 트레이너에 더 가깝다. 한쪽이 명목적인 책임을 지지만, 다른 쪽에 명백히 서비스하는 식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부 수석부사장인 크레이그 페더리기는 소프트웨어 기업 대부분, 디자이너들이 자기가 원하는 바를 정하고, 무엇이 만들지 쉬운지 엔지니어들이 그에 따라 반응하는 식이라 말했다. “기능 하나 하나가 위태위태한 협상의 결과죠.” 페더리기는 애플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금융관리 소프트웨어인 Ariba에서 10년 일한 다음 2009년, 애플에 복귀했었다. “3D 터치도 그랬습니다. 만들기 얼마나 어려웠는지 ‘이거야! 이게 바로 우리가 원했던 것이야!’할 때에서야 마침내 디자인 경험을 정한 겁니다.”

답변은 정말 어려웠다이다.물론 경쟁사들은 배로 더 어려울 것이다.애플은 전례가 없는 자원(거의 2천억 달러의 현금을 쥐고 있다)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전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을 모아 숨겨놓을 수 있었다.이 기사를 위해 얘기를 못 하는 것으로 돼 있는 한 전직 임원은 지난해 Beats의 30억 달러 인수가 헤드폰과는 전혀 관계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다이는 이렇게 말했다. “특별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보통은 세계 최고의 인재가 애플에서 이미 일하고 있습니다.”

물론 실제 세상에 안전하게,수 억 명용 제품의 공급망 아이디어를 디자인하기에 필요한 것이 자원만은 아니다. 애플은 일을 어떻게 하는지 설명하는 버릇이 없다. 삼성 사람들이 알아내서 유사한 기술 특허를 쥐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절하게 가만히 있기 대신 페더리기는 아이폰 6s를 꺼내들고 3D 터치의 더 단순한 도전점을 설명했다. “이렇게 얇은 장비에서 압력을 어떻게 감지하느냐의 아이디어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힘을 측정하려면 결국은 감각의 집중을 측정해야 하거든요. 마음을 읽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아직은 손가락을 사용하는 사용자가 있죠. 순간 감정적이 될 수도 있고 걷는 중일 수도 있으며 소파에 누워 있을 수도 있습니다. 큰 영향은 없지만 센서에는 분명 영향이 있어요. 그러니까 기술적인 장애물이 거대하다는 얘기입니다. 중력을 상쇄할 수 있도록 가속도계와 센서를 합쳐야 했지만, 장비를 다른 방식으로 하면 중력을 아예 빼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엄지 손가락은 다른 손가락에 비해 터치 센서도 다르게 읽을 수 있죠. 따라서 압력을 해설하기에 이런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압력 센서가 주는 데이터와 터치 센서가 주는 데이터를 합치면 자연스러운 동작을 이해할 수 있죠. 따라서 하드웨어와 엔지니어링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합니다만, 이게 하나의 기초적인 시작일 뿐입니다.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작동하지 않죠.”

“I’m scared to death that at some point I’m going to get found out. You know, Tim [Cook] is going to realize the truth about me, which is I’m terrible.”

기술 기업으로서 애플은 작업을 시작할 때 연필과 종이 스케칭을 놀랄 정도로 많이 사용한다. 디자이너들은 수많은 회의와 의무로부터 자유롭지만(다이는 “사랑하니까 괜찮습니다”라 말했다), 디자이너들은 재료 전문가 및 엔지니어들과 긴밀하게 협조하여 확실한 형태가 없이 하나의 상호-작용하는 팀을 이뤄야 한다. 이직(移職)은 없으며, 새로운 직원은 엄격한 심사가 있은 후에야 들어올 수 있다. 다이는 디자인팀의 농담 하나를 소개해줬다. “같이 가족 휴가를 떠나보지 않은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답니다.”

디자인 그룹이 싹수가 좋은(promising) “뭔가”를 작업하기 시작할 때, “뭔가”가 올바른 단어이다.보통은 표현할 단어가 없는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며,거친 프로토타입이 나오게 마련이다.소프트웨어 프로토타입(처음에는 제안된 작용성의 인쇄물이게 마련이다)은 칠판에 먼저 등장하며, 하드웨어 프로토타입은 실제 물건보다 우스꽝스러울정도로 훨씬 크게 만들어서 모두가 둘러보고 비판할 수 있도록 탁자에 놓는다. 핵심 팀원들은 그 이전에도 대단히 긴 시간동안 같이 모여서 논의하기 때문에 아이브는 별 의미 없는 소리나 끄덕임이 “종종 이심전심(以心傳心)”처럼 피드백이 모인다고 한다. 또한 아이브에 따르면, 이와 동시에 디자인팀은 자신의 의견에 관한 한 수다쟁이이기도 하다.

Kate Spade와 Ogilvy & Mather에서 디자인팀을 이끌었다가 2006년 애플에 들어온 다이는 디자이너들 대부분이 뿌리 깊은 근심 걱정을 항상 갖고 있다고 말한다. “어느 시점에선가 알아차리는 거죠. 정말 두렵습니다. 아시다시피 팀(쿡)이 저에 대한 진실을 깨달을 텐데, 정말 끔찍합니다.”

근심 걱정을 죄책감으로 발전시키지 못 할 유일한 덕목은 성과다. 페더리기의 설명이다. “이 아이폰에 집어 넣은 우리의 모든 노력을 돌이켜 보면, 그대로인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아실 수 있습니다.” Corning과의 작업을 통해 애플은 유연한 커버유리를 만들어냈다. 쓸어넘기기는 언제나처럼 잘 작동한다. 하지만 화면을 누르면 레티나 화면 밑에 심겨진 96개의 센서가 유리와 자신들 간의 거리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감지한다. 그 다음 터치 센서로부터 오는 신호와 조합하여 손가락을 화면상의 이미지와 싱크시킨다.

처음 이 기술이 소개된 제품이 Force Touch라 불리는 기능이 들어간 애플워치이다.그러나 3D 터치와 포스 터치를 비교하면 해수욕장과 세숫대야 정도라 할 수 있다. 화면 크기가 차이점이기도 하지만, 아이폰 6s 소프트웨어는 정말 다르다. 어디서든 뭔가 탐색하기 위해 조그마한 압력을 넣으면(가령 텍스트 안의 식당 링크로서 이메일 안에 숨겨진 오전 11시 회의 초대를 보면, 다른 모든 것은 불투명해지되 화면 중앙에 식당 홈페이지와 약속이 달력 안에 정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된다. 조금 더 세게 누르면 미리보기 식으로 열리던 창이 완전한 화면으로 커진다. 손가락을 놓으면 시작했던 곳으로 바로 돌아간다. 신속하게 화면이 바뀌며 홈 버튼을 누를 필요가 없다.

물론 실생활에서는 정확히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실제 물체를 누르면 색깔이 묽어지고 주변이 더 날카로워지기 때문이다. 페더리기에 따르면 애플 디자이너들은 끝없는 토끼굴에 빠지고 있다 여겼다. 하드웨어가 힘을 측정한다면 소프트웨어는 의도를 측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관적이지 않은 느낌을 정상처럼 느끼게 하려면, 화면 상의 “미리보기(peek)”와 “띄우기(pop)”을 10-밀리세컨드나 15-밀리세컨드의 햅틱 탭 안에 해야 했다. 약간의 떨림과 함께 손가락에게 임무를 완수했으니 “수고했다”는 신호를 주면서 말이다. (이런 탭의 정확한 타이밍은 정말 천문학적인 초를 다툰다.) 수 년간의 노력 끝에 나온 3D 터치는 사용자의 무의식 속에 완전히 들어갈 수 있을 때에만이 성공을 거뒀다고 판단내릴 수 있을 것이다.

애플은 3D 터치를 아이폰 6s와 아이폰 6s 플러스의 통화,날씨,아이튠스,메시지,웹 등 모든 것에 통합시켰다 자신했다.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도 9월 25일 새 아이폰(지난해 모델과 가격이 같다)이 가게에 나올 때 자신들의 iOS용 앱에 3D 터치를 통합시킬 계획이다. 다른 개발자들도 소프트웨어에 3D 터치를 집어 넣을 기회를 대기하는 중이다. Gunfinger라는 좀비-슈팅 게임을 제작한 Pixel Toys의 앤디 웨이퍼(Andy Wafer)는 아이폰이 나온 이래, 어쩌면 3D 터치야말로 최대의 혁신이리라 말했다. 화면이 힘을 측정하며 탭에 따라 반응하기 때문에 슈팅게임이 드디어 가상의 인물을 없애는 데에 큰 도약을 이뤘다는 이유다.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짧게나마 브리핑하며 쿡은 재미있다는 미소를 보여줬다. “물론 모든 게 슈팅이죠.”

애플은 보통 넉 달 전부터 기조연설 이벤트를 계획하기 시작한다. 9월이 다가오자 필 실러는 기조연설이 얼마나 될지 씨름중이었다. “2시간 내로 하기 위해 굉장히 큰 노력중입니다만 아무래도 넘길 듯 하군요.” 이 역시 디자이너들 탓일 수 있다. 아이브는 날짜에 맞춰서 기능을 내놓는 일은 결코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기능을 되돌리지도 않는다. 준비가 되면 준비가 되는 것이며, 특히나 이번에는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확실히 2시간은 넘어갔다. OneRepublic이 노래를 끝내자 기조연설은 2시간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3D 터치 외에도, 앱으로 바뀐 영상에 게임플레이가 가능한 리모콘, 스트리밍 서비스와 방송 옵션의 혼란에 드디어 질서를 가져다 줄 통합 검색 기능을 갖춘 새로운 애플 TV(32GB 버전은 $149)가 나왔다. 애플펜슬($99)이라 불리는 매끈한 스타일러스와 함께 나온 12.9 인치 아이패드 프로(11월부터 판매에 들어가며 $799부터 시작이다)도 있다. 새로운 애플워치 밴드와 아이폰 카메라 업그레이드, 아이폰 하드웨어 업그레이드, 향상된 아이폰 비디오와 비디오 편집, A9 마이크로칩(이전 버전보다 70% 더 빨라졌다), 사진도 아니고 영상도 아니며 살아있는 기억처럼 그 중간 쯤인 라이브 포토에는 더 많은 시간이 투입됐다. 각 프리젠테이션 모두 인상 깊었고 완전했다.

실러는 애플이 너무 정해진 식에 맞춰져 있지 않나가 제일 걱정스럽다고 말했다.그는 스티브 잡스가 MacOS 9의 장례식을 거행했던 2002년 WWDC를 기억했다.가식적인 오르간 음악과 연기 방출기,무대 중앙으로 올라오는 관을 등장 시켰었다. “오랫동안 그런 좀 기이한 퍼포먼스를 하지 않았어요. 아마 회사가 상승세인 작은 업체가 아니라 더 커져서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 자신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나 하는 불편한 느낌이 좀 있습니다.”

아이브의 디자인수석(CDO) 승진 발표는 5월에 있었고, 그는 임무를 이제 부하들에게 더 많이 넘겼다. 그래서 애플 가십 사이트들은 드디어 애플이 느려지기 시작한 징조라 해석했었다. 아이브가 대규모적인 제품 통합에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그런 보도가 사실이라는 증거는 없다. 아이브와 쿡는 서로 가까우며 서로 칭찬하는 관계다. 물론 애플의 거대화가 야기할 창조력 위기에 대해 아이브는 상당히 경계하고 있었다. “복잡하게 보이는 것과 상호운용에 따른 비용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혁신의 방해물이 될 수 있죠.”

그는 계속 스스로에게 되묻는다고 한다. “우리 스스로에게 더 쉬운 것을 개발하고 있는지,아니면 앞으로 전진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중인지 묻습니다.애플은 물론 저는 가족처럼 딱 익숙해져서 그에 맞게 행동하는 뭔가를 디자인하는 데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There’s a tax that comes with interoperability and what can be seen as complexity, which is it can actually be an impediment to innovation.”

아이브는 3D 터치가 아이폰의 경험을 개선하기 때문에 자랑스러워하지만,애플에 대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자랑스러워했다.그는 애플 말고 다른 기업이 그렇게 많은 자원을 들여서 작게 보이지만 심오할 수 있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브는 어느 정도 꿈꾸듯 말했다.

“그냥 버튼 누르기로 처리할 수 있거늘 그 많은 세월동안 우리가 어째서 3D 터치를 작업했을까요?글쎄요.여러분의 콘텐트와 유기적인 연결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2분법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디자인에 대한 신념 덕분에 애플은 시가 7,500억 달러가 넘는 최초의 기업이 될 수 있었다. 다만 그 신념은 달리 말해서, 수 년마다 한 번씩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강한 의견을 갖고 있는 인원들의 본능에 회사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브는 자신의 디자인을 포커스 그룹에 맡기느니, 차라리 폴더폰을 갖고 종신형을 받을 것이다. 3D 터치와 같은 변화를 만드는 회사의 사업계획은 기본적으로 아이브와 아이브의 팀이 맞다는 신뢰에 있다.

애플의 모든 것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신념은 강력한 뿌리를 갖고 있다. 2007년 1월 최초의 아이폰을 발표했지만 아직 판매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때,잡스는 아이폰을 갖고 미국 내 언론사들을 방문했었다.한 번은 뉴욕시의 한 칙칙한 고층 빌딩 회의실에서 그가 아이폰을 저널리스트들에게 줬었다. 이들은 아이폰이 잡스의 주장처럼 세상을 바꾸리라 쓸 참이었다. 잡스는 심지어 아이폰을 일부러 떨어뜨려서 유리가 안 깨짐을 증명했었고, 스피커 폰을 켜서 전화 품질도 깨끗함을 시연했었다. 지금 와서는 분명하지만, 미니멀주의자 잡스는 당시 물리 키보드를 없앴고, 그 상태로 아이폰을 팔아야 했었다. 잡스는 한 자원자에게 화면상에 뜬 가상 키보드를 쳐보라 요구했는데, 그는 상당히 매혹된 상태였다. 하지만 극한에 이르려 하자…

“안 돌아가네요.”

잡스는 잠시 멈추고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무정한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좀 어긋났을 뿐이라는 표정이었다.

“오타가 계속 생기네요. 키보드가 제 엄지에 너무 작습니다.”

잡스는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엄지가 스스로 익힐 겁니다.”

Editor: Bryant Urstadt
Producer: Laura Ratliff
번역 : 위민복
http://www.bloomberg.com/features/2015-how-apple-built-3d-touch-iphone-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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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 3.1 Type-C, 새로운 맥북 에어는 가능하다

Apple’s rumored 12" MacBook Air may aggressively target mobility with USB 3.1 Type-C
By Daniel Eran Dilger
Saturday, January 10, 2015, 02:42 am PT (05:42 am ET)

The latest rumors of a new 12-inch MacBook Air model describe an ultra-thin laptop that drops nearly all of its physical ports for a single audio jack and USB 3.1 Type-C connector, features that were first revealed last April and further detailed in specifications documents released by Intel, with significant contributions by Apple, in September.

Year-old rumors of a stripped down MacBook Air

애플이 12-인치 맥북에어를 출시한다는 루머는 꽤 오래 전부터 있었다.지난 4월 KGI의 Ming-Chi Kuo 분석가는 애플이 "완전히 새롭고" "초-슬림"하면서 새로운 팬 없는 디자인과 함께 "click-less"한 트랙패드,물리적인 입출력 단자가 더 줄어든 12인치 맥북에어를 출시하리라 예언했다.

이 예언은 새로운 4.7 인치 및 5.5 인치 아이폰과 애플워치의 두 가지 사이즈,아이패드 에어와 아이패드 미니 업데이트,저가형 아이맥 출시를 포함, 여러 번 맞췄던 애플 로드맵의 다른 예언과 궤를 같이 했다. 하지만 12인치 맥북에어는 예상했던 지난 가을에 나오지 않았고, 6월, 표면적으로는 인텔로부터의 칩 조달이 연기되었다는 이유로 출시 루머가 "2015년 초"로 미뤄졌다.

다만 KGI가 예언하지 못 한 놀라운 사례가 애플의 2014년에 등장했었다. 애플 TV는 업그레이드가 이뤄지지 않았고, 지난 가을에 발표되어 곧바로 판매에 들어간 애플의 5K Retina Display iMac도예언하지 못 했었다.

그러다 12월, DigiTimes2015년 1/4 분기에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새 맥북 에어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Will MacBook Air lose MagSafe & Thunderbolt?

이번 주 CES에 진정한 뉴스는 거의 없었고,전체 CES가 9to5Mac이 보도한 KGI 보고서 출시에 뒤덮일 정도였다. 내부용 프로토타입을 사용한 애플 내부 "소식통"으로부터 나온 소식이라면서 컨셉 렌더링 사진과 함께 루머가 패키지로 보도됐다.

KGI의 기대감을 부풀게 한 새로운 맥북 에어 예언은 좀 더 슬림한 키보드 여백(12-인치 파워북과 같은 이전의 애플 미니-노트북에 보다 비슷하다)에 키들이 좀 더 가까이 붙어 있고, 현재 달려 있는 맥북에어의 SD 카드 슬롯과 듀얼 USB 포트, 맥세이프 커넥터, 선더볼트(DisplayPort와 더 빠른 외장 PCI 데이터버스를 지원)를 모두 없애고 단 하나의 USB 3.1 Type-C 커넥터로 대체한다는 내용이었다.이 커넥터는 9월 처음 자세히 등장했었다.

루머는 애플이 과연 맥세이프 없는 신규 노트북을 선보이겠느냐에 대한 거대한 논쟁으로 번졌다. 맥세이프는 전선을 곧바로 빼주는 유용한 기능이면서, 애플이 직접 특허로 보호하는 기능이기도 하다. 그래서 써드파티 맥북 어댑터들은 이 기능을 채용하지 못 해 왔었다.

애플이 선더볼트를 없앤다는 아이디어도 주목할 내용이었다.지난 4년 동안 애플과 인텔이 개발과 함께 선더볼트를 시장 표준으로 이끌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선더볼트는 2011년 2월, 맥북 프로에 첫 등장했으며 그해 여름 맥북 에어도 장착하기 시작했다.

선더볼트는 본질적으로 2008년 애플이 자사 노트북에 추가하기 시작했던 DisplayPort을 윤색한 것이었다. USB 2.0에 없었던 파이어와이어의 호스트-호스트 연결성과 고속의 데이터 전송 기능을 추가한 포트이기 때문이다.

Cheaper prices for higher volumes

맥세이프와 선더볼트의 제거는 더군다나 프리미엄 급을 지향하는 애플 노트북으로서는 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선택이다 오히려 The Verge의 Tom Warren은 크롬북과 기타 싸구려 넷북과 경쟁하기 위해 새로운 맥북에어가 더 비용 절감 디자인을 채택하리라 예측했다.애플은 실제로 2014년 내내 맥의 가격을 낮춰왔었다. 맥북 에어와 맥북 프로 모델 가격 인하는 물론 더 저렴한 아이맥과 맥 미니도 선보였었다.

이 낮은 가격대는 수요의 상당한 증가를 불러 일으켰다. 3/4 분기 애플은 2011년 3/4 분기의 490만 대를 앞지르는 550만 대의 맥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맥은 여전히 저렴한 넷북 정도의 가격까지 도달하지 않고 있다. 넷북 가격대에서 애플은 아이패드를 판매하는 중이며, 사실 맥 판매는 2011년부터 2014년 사이 아이패드 판매 때문에 기록을 세우지는 못 했었다. 애플은 지난 3년간 1억 9,730만 대의 아이패드를 판매했으며, 동 기간동안 맥은 5,340만 대가 팔렸다(태블릿을 전통적인 컴퓨터로 본다면 아이패드가 맥보다 3.7배 더 많이 팔린 셈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바에 대한 애플의 집중은 iOS-기반 태블릿 모델에 대한 상당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며, 아이패드의 가격대는 $250부터 $829이다. 게다가 아이패드는 맥보다 팔기도 더 쉽다. (맥 미니의 시작가는 $499이며 맥 판매는 보통 $899부터 $3,000 사이이다.)

USB 3.1 Type-C could make MacBook Air better at the same price

애플의 주류 아이패드(역시 "에어" 브랜드를 갖고 있다)는 가벼운 무게와 매우 얇은 몸체 등 운용성에 집중하고 있다. 새로 나온 맥북 에어 디자인 역시 넷북 진영 가격대로 갑자기 뛰어들진 않으면서 전작과 마찬가지의 가격대를 유지하는 중이다. 넷북 가격대로 맥북 에어가 나왔다가는 아이패드와 직접적인 경쟁에 들어갈 것이다.

“Any new MacBook Air design is likely going to be aimed at similar price targets to its predecessors”

그대신 애플은 최근 더 가볍고 더 얇으면서 더 배터리 효율적인 디자인으로 바꾼 아이패드 에어 2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맥북 에어를 개선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맥북 에어를 더 얇고 더 가볍게 만들기 위해,현재 모델의 포트가 모두 다 상대적으로 크다는 사실부터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애플은 사람들이 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떤 기능과 품질이 소비자들을 유혹하여 구매로 이끌어내는지, 구매 후 어떤 점에 만족해 하는지에 대한 실제 데이터를 대량으로 갖고 있기도 하다.

현재의 맥세이프와 듀얼 USB 포트, SD 카드슬롯,선더볼트를 없애는 데에서 나오는 장점이 분명 있지만,아이패드의 매상을 보면 알 수 있듯,소비자 대부분은 가볍고 얇은 휴대용 장비를 RAID 어레이나 외장 HD 디스플레이, 혹은 USB 기기들을 연결하기보다는 가격과 (휴대성을 포함한) 유용성에 더 신경을 쓴다.

에어프린트와 에어플레이,에어드롭,블루투스,아이쿨라우드 외 기타 무선 네트워킹 기능이 생기면서 유선 포트의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더군다나 802.11ac WiFi 무선의 속도는 USB 케이블과 경쟁하기 시작했다.

물론 현재의 WiFi는 외장 고속 장비용으로 만들어진 선더볼트에 절대로 못 미치지만, 애플과 인텔은 선더볼트는 물론 최신 USB 3.1 규격도 같이 개발했었다. 최신 USB 사양을 보면, 애플이 새롭고 더 작아진 Type-C 포트로 다른 포트를 없애고 공간을 더 확보하며 혼란감을 줄이려는 의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USB 3.1 Type-C spec indicates mobility, not price, is Apple’s primary motivation

USB 3.1은 5Gbps (Gen1), 후에는 10Gbps (Gen2) 등 기존 USB보다 훨씬 더 빠른 데이터 속도(다만 기존 장비와의 호화성은 유지한다)를 지원한다. 보다 효율적인 데이터 시그널링과 더 빠른 클럭 타이밍을 통한 8개의 컨덕터를 통해 이뤄지는 속도이다.

더 빠른 것 외에도, USB 3.1은 또한 새로운 12-핀 짜리 Type-C 포트 디자인을 소개한다.이 포트 작업에 애플 엔지니어들이 상당수 투입됐다(사양을 보면 애플은 다른 어떠한 컴퓨터 업체들보다도 많은 엔지니어들을 여기에 투입했다. 가령 삼성 엔지니어보다 3배 더 많은 18명이다.)

“"Newer platforms and devices are reaching a point where existing USB receptacles and plugs are inhibiting innovation" – USB 3.1 Spec”

사양 자체가 새로운 어댑터의 제작을 묘사하고 있는데, 3.1 사양은 "더 작고 얇으면서 가벼운 형태"와 " Standard-A와 Standard-B USB 커넥터의 내부 공간 제약과 상대적으로 큰 크기 때문에 기존 USB와 플러그가 더 새로운 플랫폼과 장비의 혁신을 막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전까지의 USB 선과는 달리 Type-C 단자와 플러그는 기본적으로 USB 호스트와 장비 포트의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즉, 새 포트는 전용 장비(가령 프린터)를 호스트 시스템(가령 PC)에 연결돼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위해 지원되는 장비를 연결하는 데에 쓰일 수 있다는 얘기다.

USB 3.1 Type-C supports 5K DisplayPort screens, high watt power charging

USB 3.1 Type-C는 또한 "USB 대안 모드"를 지원한다.이 USB 대안 모드는 비-USB 신호를 똑같은 USB 물리 단자를 통해 보낼 수 있다는 의미로서,즉,표준 HDMI와 VGA, DVI 외에도 DisplayPort(32.4Gbps의 광대역까지 확장되는 1.3 HBR 시그널링을 포함)의 4개 레인(lane)을 지원한다는 뜻이다.

지난 9월 AnandTech의 Ryan Smith는 DisplayPort 1.3 HBR3이 60Hz에 24비트 비압축 컬러, 5K 디스플레이도 지원할 광대역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의 선더볼트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애플은 2008년 미니 DisplayPort를 소개했었고, USB 3.1 Type-C는 효과적으로 USB를 합쳤다.마치 선더볼트가 빠른 PCI와 DisplayPort를 합쳤듯이 말이다.본질적으로 Type-C는 낮은 사양을 위한 "선더볼트 라이트" 버전이라 할 수 있으며, 여기에 맥북 에어가 잘 맞는다.

추가적으로, USB 3.1 Type-C는 또한, 오늘날의 USB보다 훨씬 더 많은 전력을 호스트를 통해 전달받을 수 있는 새로운 "USB Power Delivery 2.0 specification"을 지원한다. 선더볼트보다도 더 많은 전력 제공이 가능하다.

이 새로운 사양은 가령 별도의 트랜스와 전력 케이블을 요구하지 않는 하드 디스크에게 전력을 전달할 새로운 잭을 허용할 뿐 아니라,장비 자체의 전력을 제공할 수도 있다.이 사양은 지난 가을 처음으로 공개됐다.

최대 100w (오늘날 아이패드는 10-12w 정도다)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USB 3.1 Type-C는 맥북 스타일의 전략 어댑터에 대해서도 어울리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애플이 새로운 잭과 파워 어댑터 사이의 어딘가에 맥세이프를 제공하지 않으면 맥세이프의 장점이 사라질 테지만 말이다.

따라서 맥북 에어를,현재의 아이패드나 iOS 장비 충전하는 것과 유사하게, 애플의 라이트닝 커넥터를 통해 충전 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라이트닝 커넥터는 USB 3.1 Type-C처럼 앞뒤를 다 사용할 수 있으며, 맥세이프-스타일의 커넥션이 없는 칼날 스타일이다. 아이패드는 전선 없이도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으나, 애플 맥북은 전선이 꽂혀 있을 때 성능이 훨씬 좋아진다. 배터리로 돌아갈 경우에는 효율성 때문에 성능을 시스템이 떨어뜨리도록 돼 있다.

새로운 맥북 에어는 진보적인 전략 관리로 아이패드처럼 전선이 없더라도 성능에 별 지장 없게 돌아갈 수 있을 수도 있다. 이정도 된다면 맥세이프가 없다는 단점을 상쇄할 수 있다.

DisplayPort와 USB, 빠른 데이터,전략을 단 하나의 포트로 다 해결한다는 점이 부정적인 이미지와 함께 새로운 제약을 오히려 더 많이 불러일으킬 것 같지만, 더 많은 포트와 더 빠른 연결, 선더볼트와 USB, 별도의 이더넷 등은 하이엔드인 맥북 프로에 비춰볼 때, 더 작아진 포트와 확장적인 기능으로 새로운 맥북 에어를 더 휴대-지향적으로 차별화할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USB 3.1 Type-C다.

http://appleinsider.com/articles/15…gressively-target-mobility-with-usb-31-type-c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8번째 생일을 맞이한 아이폰

MEDIA, TECH, BUSINESS MODELS
Jan 11, 2015

The iPhone’s 8th Anniversary

Smartphones existed before Steve Jobs introduced the iPhone on January 9th, 2007. But by upending existing technology platforms, application distribution, and carrier business models, he kickstarted a new era of computing whose impact is yet to be fully understood.

Charlie Hebdo학살 사건 희생자를 한 명 알고 있다. 베르나르 마리스(Bernard Maris)이다. 친구까지는 아니었지만 사돈 집안을 통해 알던 분이었다. "세상을 재조정하는" 전형적인 파리지앙의 저녁 대화를 통해 팔로알토 방문 약속을 잡고 조그마한 Charlie Hebdo 기사를 위해 인터뷰를 했었다. 위험성 있는 만평에 넣기 위해서였다.


[베르나르 마리스]

파리에서의 사건을 적으면서 시작을 여러 번 고친 끝에,필자는 필자가 너무나 많은 상대에 대해 분노했다는 결론을 내렸다.억압자들을 적대화 한다는 사실의 두려움이 되려 그들의 힘을 키운다는 사실, 어떠한 좋은 문화도 나쁜 취향이라는 해독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 절대로 모욕이 없어야 한다는 요구가 오히려 비인간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 하는 언론의 특정한 겁쟁이들에 대한 분노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천주교 파리 교구장인 앙드레 뱅-트루아 추기경은 "제아무리 나쁜 취향인 캐리커처와 극도로 불공정한 비판도 살인과 같은 수준에 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한 디테일을 좋아하는 분들은 뱅-트루아 추기경이 한 때 알제리 Thibilis의 명의주교였다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

그 대신 좀 더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로 했다. 스마트폰 2.0 시대의 개막이다.

8년 전, 스티브 잡스는 맥월드 샌프란시스코 무대 위로 올라와서 거의 달인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그의 프리젠테이션은 때때로 다시 볼 가치가 있다. 파워포인트로 혼란스러운 CEO들이나 제품 소개 춤 평가하기에 좋은 기준이 된다.

프레젠테이션에서 잡스는 아이폰이 이전의 맥과 아이포드처럼 "모든 것을 바꿀" 제품 중 하나라 말해줬다.그가 당연히 옳았지만… 그의 거대한 야심에도 불구하고 잡스가 과연 아이폰이 애플과 전체 업계만이 아니라, 기술 생태계 너머 전세계를 뒤흔들지 예상했을지 궁금해진다.

마지막 문장이 좀 과장 같다면,애플로 시작하는 스마트폰 업계의 변화를 보도록 하자.

2006년,아이폰이 나오기 1년 전이다.당시 애플의 매출은 190억 달러(회계년도가 9월에 마감)였다. 그해 아이포드 매출은 77억 달러로서 맥 매출인 73억 달러를 초과했었지만… 아무도 애플이 아이포드 기업이 됐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2007년,매출은 26%나 올라 240억 달러가 됐다. 맥 판매도 다시금 증가(103억 달러로서, 아이포드는 83억 달러)했지만 아이폰 판매액은 회계년도 막바지에 들어갔기 때문에 1억 2,300만 달러가 매출에 추가되지 못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조망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2008년,매출액은 무려 35%나 올라 325억 달러에 이르렀다. 아이폰 매출액은 18억 달러로서, 아이포드의 90억 달러, 맥의 143억 달러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었다(39%가 상승했지만 말이다).

2009년,매출액은 12% 정도 오른 365억 달러였다. (이때는 금융 위기 시절이었다.) 아이포드는 11%가 감소한 80억 달러였으며,아이폰이 그 감소를 상당히 흡수했었고, 맥 또한 3% 감소한 138억 달러였다. 그러나 아이폰 매출이 워낙 커서(266% 상승한 68억 달러) 애플은 매출을 40억 달러 더 늘릴 수 있었다. 게다가 이는 시작일 뿐이었다. (그 시작조차 애초 기대보다 거대했었다. 알아보기 힘든 매출 기준 변경으로 인해, 2009년 아이폰 매출액은 133억 달러로 계산이 다시 이뤄졌다.)

2010년,아이폰 매출은 250억 달러에 이르러 애플의 전체 매출액은 천문학적인 성장률 52% 증가로 인해 650억 달러에 이르렀다. 아이폰은 이제 애플 전체 매출의 1/3 이상을 차지했다.

2011년,성장률이 더 커졌고(66%) 매출액은 1,080억 달러가 되어, 아이폰이 나오기 전인 2006년 매출액의 5배가 됐다. 아이폰 매출액은 87%가 상승한 470억 달러였으며, 이제 애플 매출액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2012년,매출액은 45% 상승한 1,565억 달러가 됐고, 아이폰은 71%가 상승한 805억 달러의 매상을 올렸다. 절대적인 수치만으로도 각각 45%, 71% 상승이었고, 거의 대수 법칙까지 무시한, 초자연적인 성장처럼 보였다. 당연하게도 아이폰은 애플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어섰고, 아마 애플 전체 이윤의 2/3를 차지할 것이었다.

애플의 성장률은 2013년 좀 줄어들어 9% 수준이었고 매출액은 1,710억 달러였다. 아이폰은 16% 증가한 913억 달러였고, 전체 매출 성장분 140억 달러 중 대부분인 126억 달러를 아이폰이 차지하였고, 전체 매출액의 53%를 차지했다.

지난해 성장률은 좀 더 느려진 7%였고 매출액은 1,828억 달러였으며 아이폰 매출액은 12% 증가한 1,020억 달러였다.다시금 아이폰은 애플 전체 매출 성장분 119억 달러 중 107억 달러를 차지했으며,애플 전체 매출액의 56%였다.다만 아이패드는 5% 감소한 23억 달러였으며,아이포드도 점차 미미해지고 있다. (다만 말이다. 23억 달러 어치의 뮤직플레이어 매출을 죽여버리는 기업이 몇 군데나 있을까?)

훌륭한 통계 포털(Statista)을 보면 애플의 핵심 품목으로서 아이폰의 출현을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의 애플보다 10배가 더 크게 자라나는 동안,스마트폰 업계는 거의 1조 달러 어치의 사업이 됐다. 매출량과 매출액 계산에 따라, 애플의 시장 점유율을 12%라 본다면 전세계 스마트폰 업계 크기는 8천 억 달러 규모이다. 애플의 시장 점유율을 10%라 본다고 해도 1조 달러 정도다.

참고를 위해 같은 Statista에서 제일 거대한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와 폴크스바겐 그룹을 추가했다.두 기업의 2013년 매출을 합치면 4,850억 달러 규모이다.

8천억 달러이건 1조 달러이건 크기를 계산했다 하더라도 스마트폰 업계가 단순히 이 정도 규모로 자라나기만 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오늘날 스마트폰 사업은 2006년의 스마트폰과 거의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모토로라가 휴대폰을 "발명했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본질적으로 현재 모토로라는 구글의 인수로 인해 사라졌으며, 구글은 다시 레노버에게 매각했다. 물론 중국 라인에서 잘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휴대폰이 디지털화 됐을 때 모토로라부터 왕좌를 빼앗은 핀란드 기업 노키아는 한 때 분기당 1억 대 이상의 휴대폰을 생산했었다. 그때 이후로 노키아는 전임 마이크로소프트 임원이자 새 CEO인 스티븐 엘롭(Stephen Elop)으로 오즈본화됐고, 이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소유하고 있다. 시장 점유율이 5%가 안 되는 노키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자원과 신뢰성을 낭비 시키고 있다. …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우선, 모바일-우선" 앱의 수단으로서 안드로이드 폰으로 이주해야 할 일이다.

한때 PDA를 만듦으로써 신뢰성 있는 스마트폰을 만들던 Palm은 HP가 매입하여 파괴 시켰다. 죽기보다 더 한 일이다. 시체애호가인 TCL이 매입했다가 LG가 WebOS TV와 WebOS 스마트워치로 수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블랙베리도 뺄 수 없겠다.한때 시대를 앞섰던 Personal Information Manager로 스마트폰을 풍미했던 블랙베리를 열렬한 사용자들은 크랙베리라 별명을 붙이기도 했었다. 현재 블랙베리는 애플 시가의 1/100도 안 되며, 틈새 시장 혹은 읽어버린 기관을 찾는 중이다.

업계의 판도 변화가 당연히 애플의 "실책"만은 아니다.여러모로 구글은 애플보다도 더 많은 기업들을 파괴 시켰다.구글은 아이폰이 나타나기 전인 2005년 안드로이드를 인수했으며, 항상 확신에 찬 토미 아호넨(Tomi Ahonen)에 따르면 중국에만 2,000(!)곳이 넘는 휴대폰 브랜드가 있다고 하며, 이들 모두가 안드로이드의 변형이다. 게다가 한국에 있는 애플의 친구이자 적인, 탐욕스러운 삼성을 잊으면 안 된다. 삼성은 아이폰 핵심 부품 공급자이자 애플의 경쟁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업계는 안정화됐을까?애플을 포함하여 현재의 기업들은 이제 넘어설 수 없는 존재들일까? 시장을 선도하는 삼성은 하이엔드에서 애플, 로엔드에서 샤오미(Xiaomi)의 도전을 받고 있으며 최근, 문제가 있음을 발표하기도 했다. 우리의 친구 토미는 샤오미가 또다른 애플은 아니며, LenovoHuawei도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리고 물론 애플은 "히트작을 내놓는", 그러니까다음 박스-오피스 실적에 죽고 사는 사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새 아이폰 6 실적은 아직 안 나왔지만 매우 강력할 것으로 보인다.

개별 기업의 사업이 어떻든지 간에,스마트폰의 전체적인 충격이야말로 중요하겠다. 팀 바자린(Tim Bajarin)은 Tech’s Most Disruptive Impact Over the Next Five Years라는 블로그에서 진정한 다음 큰 물건은 IOT(Internet of Things)나 가상현실, 혹은 비트코인이 아니라고 한다. 모두 중요한 진보이기는 하지만, 스마트폰에 비할 바까지는 아니라는 얘기다. [강조는 필자가 했다.]

다음의 20억 인구를 인터넷으로 연결 시킬 스마트폰이나 포켓 컴퓨터는 마치 중세 시대 대중에게 성경을 연결해 준 구텐베르크 인쇄기와 비슷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호러스 데디우(Horace Dediu)가 지적했듯, 2014년 말까지 미국의 스마트폰 침투율이 75%에 달한다고 하는데, 전세계에도 이 정도로 스마트폰이 침투했을 때 정말 큰 충격이 일어날 것이다. 특히나 유선 연결망이 적거나 거의 없는 지역까지 연결될 경우 말이다.

8년 전,기존의 제조업체와 통신사 간의 관계를 뒤엎으면서 스티브 잡스가 시작했던 일이 바로 이것이다.

JLG@mondaynote.com

http://www.mondaynote.com/2015/01/11/the-iphones-8th-anniversary/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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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과 변화의 시대


Apple and Eras of Flux
Friday, 9 January 2015

l’affaire에 올린 Dr. Drang의 훌륭한 글, Functional High Ground을 보자:

우리 중 매우 많은 수가 영혼을 잃었다고 보며,그것이야말로 애플의 문제이다.애플 자신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재무 실적을 보면 애플은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훌륭한 하드웨어를 계속 내면서 어느 정도 타성에 젖어 있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애플은 앞으로 결국, 칭찬보다는 불평을 더 많이 듣는 또다른 마이크로소프트가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애플 최고의 사용자들이 영혼을 잃으면 영향력도 잃게 된다.

각 회사의 몰락은 서로 다르다.마이크로소프트는 2001년 윈도 XP를 낸 후,고객들이 거절한 2006년 윈도 비스타를 선보일 때까지 메이저 업데이트를 거행하지 않았었다. "수정된" 윈도 7은 2009년까지 나오지 못 했다. 그러면 이제 애플의 맥오에스텐에 매년 하는 중요하지만-자만스럽지는 않은 (읽어보시라: Longhorn) 업데이트는 과연 마이크로소프트가 최근 윈도로 잃어버린 자신의 날카로움과는 반대되는 사례일까? 오에스텐을 매년 내는 덕분에 애플은 너무 욕심을 안 부려도 되는 상황이다. 몇 년을 끌었지만 결국 나오지 않았던 CoplandPink를 보시라.)

하지만 침체와 자만심의 문제를 피하기는 했어도, 애플은 다른 문제점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정적이고 정해질 수가 없게 됐다는 문제점이다. 애플이 지난 2년간 이룩한 패턴을 본다면, iOS 8과 오에스텐 10.10에서 풀린 나사를 조여야 할 때 WWDC에서 iOS 9과 오에스텐 10.11의 개발자 베타를 받을 것이다. 가이 잉글리시(Guy English) 날카롭게 지적했듯 현재로서 매년 신 버전 출하는, (즉 1월에) 애플의 능력 있는 엔지니어 다수가 차세대 OS 출하에 매달려 있다는 의미이며, 기존의 풀린 나사를 조이는 데에는 그만큼 인재들이 덜 배당된다는 의미이다.

애플의 10년 전 오에스텐 개발 일정을 지금 보면 게으름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1 10.0은 퍼블릭 알파로 미화됐지만 실제로 사용할 만한 OS의 개념 증명 정도로 하는 편이 맞다. 10.1은 수개월 후인 2001년 9월에 나왔고, 10.2는 2002년 8월, 10.3은 2003년 10월, 10.4(타이거)는 2005년 4월달에서야 나왔었다. 일정이 매년에 가깝게 보이기는 하지만 당시 애플은 그저 낮게 달려 있는 사과를 따올 뿐이었다. 맥오에스텐은 완전하지 않았고, 일관적이지도 않았으며, 데뷔 때에는 느렸다. 초기 수 년 동안은 좀더 완전하고 일관성 있으며 빠르게 만드는 것일 뿐이었다는 얘기다. 지나고 나서 보면, 10.4 타이거야말로 최초로 좋은 맥오에스텐이었으며, 맥오에스와 넥스트스텝의 약속을 진정 처음으로 지킨 OS였다.

그리고나서 10.5(레퍼드)는 원래 2007년 6월달에 나오리라 약속했지만 실제 출시는 10월달이었다. 당시 애플은 확실히 잡스스러운 "핫뉴스"소식을 전했다. 일정대로 출시됐다 하더라도 10.4가 나온지 2년 후였던 레퍼드의 출시를 4개월 더 늦춘 것이었다. 당시 애플은 엔지니어들을 대거 오리지널 아이폰 출시에 배정해 놓고 있었다.

애플이 공개적으로 신기능이 없다며 마케팅했던 10.6 (스노 레퍼드)도 또다시 2년을 기다려야 했었다. 물론 신기능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가령 패럴렐 컴퓨팅에 대한 애플의 솔루션이었던 Grand Central Dispatch처럼 스노 레퍼드에는 신기능이 매우 많았다. 하지만 사용자가 한 번 보고 알 만한 신기능이 스노 레퍼드에 없었음은 정말 사실이었다. OS의 기술적인 기반을 더 강화 시킨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나서 10.7(라이언)은 2년 후인 2011년 6월에나 나왔다.

따라서 2005년 4월부터 2011년 6월까지 애플의 맥오에스텐 메이저 업데이트는 단 3번 뿐이었으며, 심지어 그중 하나는 "신기능이 전혀 없다"였다. 다시 말하건데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게으른 일정이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일정 때문에 애플이 iOS에만 신경 쓴다는 비판이 있었다. 애플이 곧 맥을 포기한다는 예언도 일반화됐었다.

사실 만족스럽게 답해주기가 정말 어려운 비판이다.맥오에스텐 출시가 2년 정도였을 때 우리는 애플이 맥을 무시한다고 비판했었다.이제 출시 주기가 1년이 되자 우리는 애플이 너무 빨리 업데이트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주 초 가이 잉글리시가, "메이저 OS 출시가 매년 있을 필요는 없다"는 제목의 마르코 아멘트(Marco Arment)의 주장에 대해 쓴 글이 있다.

물론,골칫거리일 때도 가끔 있지만, "업데이트가 필요 없다"는 말은 iOS 기기를 하나의 계시처럼 사용하는 사람들로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iOS 기기가 기술 마술이 재현한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면 지금은? 노후화와 소프트웨어 버그에 대한 말이 굉장히 많이 들린다.
"아냐!그들의 의도가 전혀 아니라 맹세할 수 있고,이 사람들을 알아!"
거기까지만 그러하다.
뭔가 크거나 부담스럽거나 심각하지 않다는 점이 최악이다.그저 제대로 안 돌아가는 뭔가 사소한 것일 뿐이며,이런 점 때문에 "컴퓨터"는 이해할 수 없다는 인식을 더 쌓아 올리고 있다.

난 iOS 7에서 iOS 8로, 혹은 맥오에스텐 10.9에서 10.10으로의 업그레이드를 후회하지 않는다. 게다가 윈도나 안드로이드로의 이주는 전혀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1년 정도 지나고 나면, 아마 새 iOS와 오에스텐을 돌리되, 그렇다고 하여 지금 버전에서 할 수 없는 무슨 대단한 일을 할 것 같지도 않다. 그 대신 그저 보다 신뢰성 있고 일관성 있게 똑같은 일을 할 뿐이다.

iOS와 맥오에스텐의 최신 버전에서 보이는 신뢰성 문제가 애플이 여러가지 많은 전환을 한꺼번에 한 까닭에 어쩔 수 없이 빚어진 결과이리라 희망해 본다. 익스텐션과 XPC, 아이클라우드 드라이브, 연속성 등 이런 기능들은 모바일과 데스크톱, 클라우드라는 애플의 세 가지 플랫폼 모두에서 조화롭게 돌아가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가 지켜본 바는 맥오에스텐 개발 첫 수 년간의 기간과 비슷하다. 빠른 개발과 상대적인 안정성과 더 느린 속도의 변화의 시대를 앞서는 끊임 없는 변화가 있는 시대이며, 애플워치와 카플레이, 새로운 애플 TV, 그 외 앞으로 나올 무엇이든지 간에 빠르고 끊임 없는 변화는 계속될 것이다.

  1. iOS는 항상 매년 나왔었고, .0으로 끝나는 메이저 업데이트는 항상 새로운 세대의 아이폰과 같이 등장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능에 관한 한 그리 야심이 크지는 않았던 iOS가 있었다. 애플은 여전히 낮게 달려 있는 사과를 따기에 바빴다는 얘기다. iOS 3의 가장 큰 기능은 자르기/복사하기/붙이기였다. (정말이다. 자르기/복사하기/붙이기 기능 없이 2년을 보냈었다. 정말 미친 기간 아니었던가?)↩

http://daringfireball.net/2015/01/apple_eras_of_flux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powerbook_g4

옛날 파워북에서 맥오에스 9 사용하기


INFINITE LOOP / THE APPLE ECOSYSTEM

My coworkers made me use Mac OS 9 for their (and your) amusement

If you want to appreciate the present, try living in the past for a few days.

by Andrew Cunningham – Sept 28 2014, 4:00pm BRT

위의 대화는 본지의 수석 리뷰 편집자인 리 허친슨(Lee Hutchinson), Automotive 에디터인 조너선 기틀린(Jonathan Gitlin)과 가졌던 7월 22일의 본지 스탭 IRC 채팅방에서 나온 대화를 줄인 것이다. 맥오에스 9 사용이 딱히 “훌륭한 아이디어”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게 향수가 없지는 않았다. 건네받았던 20MB 하드 드라이브가 달려 있는 PC에다가 MS-DOS 6.2.2를 11살 때인가 12살 때인가 설치했던 즐거운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짓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내 작업에 조금이라도 수정을 해야 한다면 제아무리 새로운 소프트웨어라 하더라도 난 일단 제쳐두고 본다. 장기적으로는 물론 싫은 방식으로 바꿨다 하여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는 편보다 받아들이는 편이 더 쉽다. 떡갈나무와 갈대의 우화처럼, 바람이 아무리 불더라도 맞서서 부러지기보다는 유연하게 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 바로 그것이 나의 컴퓨팅에 대한 접근 방식이다.

난 After Dark 스크린세이버와 함께 심플텍스트로 컴퓨터가 욕을 하게 만들고(물론 진짜로 내가 그 말들을 입에 달고 살진 않았지만 말이다) Oregon Trail의 맥용 버전을 갖고 놀았던, 모호하고 막연한 추억을 갖고 있다. 맥을 심각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던 때는 맥이 더이상 마이크로소프트-증오를 멈추고 그저 컴퓨터가 되기로 했을 때, 그러니까 인텔 이주 이후였다.

그렇다면 왜 저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몇 달 전, 본지의 안드로이드 역사 시리즈를 연재했을 때 일어난 현상이 있었다. 컴퓨터와 게임 콘솔, 소프트웨어 등 온갖 종류의 기술이 진보했지만, 보존의 측면에서는 진보가 거의 없었다. 지금 당장 안드로이드 1.0을 돌리는 휴대폰을 집어들고 안드로이드 1.0이 실제로 어땠는지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화석화된 경험의 희미한 인상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의 전적으로 디지털 언론에 기술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는 인물로서는 번쩍 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클래식 컴퓨터나 클래식 소프트웨어를 클래식 자동차나 고전 책처럼 알아볼 수가 없다. 기술 업계에서 일하는 분들, 여러분이 만든 것을 모두가 까먹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설사 만져보기 원한다 하더라도 경험해볼 수가 없게 될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그래서 배터리가 다 나간 낡은 파워북에 클래식 맥오에스 (버전은 9.2.2)를 설치하고 90년대 중후반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분들의 업적을 알아보기 위해 노력해 봤다. (동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2002년 WWDC에서 스티브 잡스가 맥오에스 장례식을 치러준지 12년이 흘렀다. DOS를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하는 이들도 있지만, 제일 극렬 클래식 맥오에스 사용자라 할지라도 지금 쯤은 클래식 맥오에스를 포기했으리라 거의 확신한다. 2011년이나 2012년에 이미 클래식 맥오에스에 대한 글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혹시 여전히 사용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난 당신들을 미쳤다 생각할 테지만… 일단 여러분이 좋아한 OS로 한 번 살아보도록 하겠다.

 

Finding hardware


My weapon of choice: a 2002 titanium PowerBook G4.

 

첫 임무는 실제로 OS 9를 돌리는 하드웨어를 찾는 일이었다. 사용할 수 있되 $100 이하이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쉬우리라 여기시겠지만, 제조업체가 완전히 포기한 오래 된 하드웨어 찾기는 상당히 까다로웠다. 분명 “Pismo” G3 파워북 중 잘 보전된 기종은 여전히 수 백 달러에 팔리기도 한다. 그러나 알루미늄 G4 파워북처럼 OS 9를 돌리기에 너무나 새로운 기종들도 있다. 그들은 오에스 텐 옛 버전의 클래식 호환 레이어를 통해서 옛날 앱을 돌릴 뿐이다.

800×600 해상도로 고통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G3 조개 껍질 아이북은 제외했다. 사실 당시 난 하얀색 아이북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키보드가 곤죽 같았고, 제대로 안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얀색 플라스틱 아이북과 맥북은 내구성으로도 별로 유명하지 않았다. 게다가 G3를 돌리는 기계는 무조건 맥오에스텐 10.5(이 기사를 마친 후 설치하고 싶었던 OS다)부터 지원 받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노트북이 타이태니엄 G4 파워북이었다. G4 파워북도 품질 문제를 겪기는 했지만 적어도 이 노트북은 사용할 만한 화면 해상도와 맥오에스 9 호환성을 제공했었다. 또한 타이태니엄 파워북 G4는 예산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괜찮았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옛날 기종이지만, 컬렉터의 수집품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거나 딱히 사랑 받지 못 한 기종 말이다.

The Apple video that introduced our titanium PowerBook to the world.

위 링크의 영상에서 지적된 사항을 보자.

  • 파워북 G4는 “슈퍼컴퓨터“라 불렸다. 지금도 그 단어를 사용중이실 게다…
  • 음악은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 필 실러의 머리카락!
  • 조니 아이브가 영국식 발음이 아닌 미국식 발음으로 알루미늄을 말한다.
  • 2001년 당시는 알루미늄보다 타이태니엄이 더 나았지만, 나중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 맥오에스텐은 당시 시점에서 나온지 6개월 됐고, 광고에서 단 한 번 언급되며, 사용중인 컴퓨터의 모든 사진에서 보면 맥오에스 9를 돌리고 있다. 최초의 오에스텐은 잊혀지는 편이 더 낫다.

 

Craigslist에서 중고 컴퓨터 찾기는 사기를 당하거나 브루클린 어디엔가에서 사망 당하기 딱 좋기 때문에, eBay로 들어갔다. “있는 그대로”, 혹은 부품을 판매하는 eBay에 많은 중고 컴퓨터가 있으며, 중고 컴퓨터를 팔아 치우고자 하지만 최대한 값을 얻어 보려는 최후의 수단이 eBay이기도 하다. 좀 위험하기는 하지만 낡은 모델을 구입하여 스스로 고칠 수 있다면 돈을 좀 절약할 수 있다.

$75에 512 MB의 RAM과 40GB의 하드 드라이브가 달린 800MHz 모델을 살 수 있었다.돌아가기는 했지만 수명이 다 된 배터리에 파워아답터가 없었으며 불안정한 파워잭이 있었다.다행히 $8.86에 새 파워잭을 고를 수 있었고(다행히도 당시 메인 로직보드와 분리돼 있었다), $15를 더 들여 애플 아답터(몇 달러 아껴서 서드파티 대체품을 고를 수 있었지만, 브랜드가 없는 싸구려 아답터에 진력난 터였다. 총 예산은 $100이 약간 안 됐다.

 


Replacing the wonky old power jack with a working replacement was both simple and cheap, though, like many old laptops, the PowerBook is pretty ugly on the inside compared to modern systems.

 

$25에서 $95 정도 더 들이면 서드파티 배터리를 하나 장만할 수 있었을 테고, 우연히도 창고에 묻혀 있던 PC133 SDRAM 1GB 짜리(이 파워북이 지원하는 최대 메모리였다)를 발견했었다. 물론 이 메모리를 사려 했다면 $12 정도 더 들었을 것이다. 이 업그레이드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이런 옛 모델 컴퓨터에 돈을 많이 별도로 들이다 보니 가치가 상당히 올라가 있었다. 개인 돈 $30을 더 들여서 옛날 하드 드라이브를 훨씬 더 빠르고 고용량인 하드 드라이브로 바꾸기도 했었다. 종종은 자기 돈을 들여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iFixit 스크루드라이버 킷과 편리한 iFixit 수리 가이드로 본체를 열어 파워잭과 드라이브, RAM을 교체할 수 있었다. 모든 수리는 순조로웠고, 본체 내부에 있던 먼지와 모래도 좀 없앴다. 책상에 있던 2012년형 아이맥을 치우고 여기에 파워북을 갖다 놓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켜 볼 시간이다.

 

Getting used to Mac OS 9 and finding software


Welcome to Mac OS 9! We hope you like grey rectangles.

 

본지의 수석 과학 편집자인 존 티머(John Timmer)가 만든 맥오에스 9.2.2 설치 미디어 덕분에 클래식 맥오에스 데스크톱을 부팅할 수 있었다. 주로 오에스텐만 사용했다 하더라도, 뿌리는 많이 다르지만 맥오에스를 여전히 알아보실 수 있다. 맥오에스의 윈도 98 버전과 유사하겠다.

물론 좀 적응하기에 이상한 면도 있다. 스크롤휠과 같은 멋진 점도 있고, 외장 마우스가 있다 하더라도 오른쪽 클릭이 지원되지 않는다. 게다가 오른쪽 클릭을 켜는 서드파티 소프트웨어도 나의 로지텍 무선 마우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개별 앱처럼 사용되는 “조절판” 개념도 “시스템 환경설정”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다면 기묘하게 보일 수 있겠다. 그리고 파워북을 필자의 라우터에 붙이기 위해서는 조절판의 TCP/IP로 가서 설정을 해줘야 했다. 클래식 맥오에스는 지금처럼 활성화된 네트워크 인터페이스를 검출하여 IP를 잡아오지 못했다.

특히 맥오에스텐이 처음 나왔을 당시, 맥오에스 9를 계속 쓰고 싶어 했던 이들이 왜 그랬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더 빠른 칩과 메모리가 비싸고 장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오에스텐 10.4나 10.5보다 800MHz G4에서 맥오에스 9가 느낌이 훨씬 더 빨랐다. 이것 저것을 열고 닫기도 훨씬 순간적이었고 말이다. 물론 맥오에스를 순간 시스템을 얼려버려서 재시동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얻기 전까지 말이다. 심지어 제일 초창기의 제일 느리고 버그도 많았던 오에스텐 조차도 맥오에스와 따지면 안정성과 메모리 관리가 훨씬 더 우위였으며, 이제는 우리가 당연시 여길 정도가 됐다.

유물을 다시 찾는 제일 좋은 방법은 인터넷에서, 여전히 클래식 맥오에스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을 찾기이다. 당시 유명했던 제품이라면 여전히 그 제품을 칭송하는 사용자 그룹을 어디에선가 찾을 수 있다. (기사에서 애플 뉴턴을 비판했을 때에도 알려준 바 있다.) 처음 찾은 곳은 여전히 활동적인 LowEndMac.comMacOS 9 구글 그룹이며, 이곳에서 Macintosh Garden에 있는 중단된 소프트웨어를 안내 받았다.

중단된 소프트웨어는 예전 PC와 콘솔게임 소프트웨어와 마찬가지로 “회색지대”에 있는 소프트웨어이다. 기술적으로 지불 없는 소프트웨어 사용은 “절도”를 구성한다. 처음 나왔을 때는 무료로 나온 소프트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시 소프트웨어를 내던 기업들 다수가 현재 존재하지도 않으며, 여전히 존재하는 기업들이라 하더라도 십 수 년 전의 게임과 사무용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거나 유지하는 데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소프트웨어가 Macintosh Garden에 매우 많으며, 본 기사를 위함과 동시에 과학의 이름으로 다운로드 하여 사용해 봤다. 유용한지는 무엇을 하려는지에 달려 있지만 말이다.

 

Trying to work? Good luck


I could connect to our IRC server in Mac OS 9, and that was just about it.

 

필요한 툴 대부분이 서류상으로는 존재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맥오에스 9를 사용하면서 업무를 볼 수 있으리라 크게 기대했었다. IRC와 XMPP 서버를 커뮤니케이션용으로 사용하고, 오피스 365 서버는 IMAP 커넥션을 지원한다. 며칠은 좀 이상한 느낌이 들겠지만, 업무용으로 정말 필요한 것을 추려 보면 최종 후보 명단이 나오게 된다.

단 머리로 생각했던 걸 실행에 옮기니 큰 문제점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맥오에스 9이 현대적인 웹브라우저에 근접하는 그 어느 것도 돌릴 수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의 웹브라우저(인터넷 익스플로러 5와 넷스케이프)는 오래 전부터 페이지를 적절하게 렌더링하지 못 했으며, 맥오에스 9를 지원했던 iCab과 같은 소형 브라우저도 더 이상 지원하지 않고 있었다. 나의 옵션은 나중에 파이어폭스가 될 Mozilla suite의 먼 친척 쯤 되는 Classilla였다.

Classilla는 2013년 초에 마지막 업데이트를 했으나, 렌더링 엔진은 훨씬 오래 됐으며, 방문하는 웹페이지 모두 다 겨우 읽는 정도였다. 그러나 Classilla에게 업데이트를 요구하는 것은 장님 건설 노동자에게, 술 취한 아이가 막 그린 청사진에 따라 집을 건설하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웹 앱 사용은 잊으시라. 우리의 WordPress CMS로 이야기 전송도 잊으라. IRC 링크로 여는 것도 포기해야 한다. 그럴 수가 없다.

 


The Ars homepage in Classilla. This is our worst redesign yet!

 


The New York Times site looks kind of spare and artsy. Scroll down enough and you’ll eventually hit some content.

 


Apple.com, taking minimalism to a whole new level.

 


Here’s how YouTube looks on an operating system that predates YouTube by six years.

 

게다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데스크톱용 운영체제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보안도 문제였다. 스노든 이후의 시대에서는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암호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어느 정도는 우회를 허용하도록 오류가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2000년대 초에는 기본적인 SSL/TLS 암호화를 지원하는 애플리케이션도 없었다. 시도해 본 이메일 앱 대다수(Eudora, Microsoft Entourage 2001, Mulberry)는 SSL 연결을 전혀 지원하지 않거나, 우리 이메일 서버가 더 이상 지원하지 않는 옛 버전을 지원했었다. Entourage는 거의 작동했다. 수많은 연결 에러 끝에 메일을 받기는 했지만, 결코 보낼 수는 없었다. Mulberry는 SSL 플러그인을 한때 제공했으나, 맥오에스 9용 버전(3.1.6) 용으로는 찾기가 불가능했다. 만드는 업체가 사업을 접기도 했고, 오픈소스 버전(4.0.8)은 오에스텐에서만 돌아갔다. 그리고 Classilla가 워낙 엉망이기에 웹 클라이언트는 선택이 아니었다.

맥오에스 9와 다른 운영체제와의 파일 싱크도 가능하지가 않았다. (대부분은 Dropbox를 이용했고, 이 서비스는 차이가 없었다.) 네트워크 공유도 가능하지가 않았다. 맥오에스 9는 윈도의 SMB 프로토콜을 지원하지 않았으며, AFP 프로토콜이 너무 오래돼서 매버릭스를 돌리는 맥 미니 서버에서도 읽을 수 없었다. 유일한 파일 전송 선택은 FTP였으나, 보안이 전혀 없는 프로토콜이 FTP이다.

대부분은 2000년 이후로 습관을 상당히 많이 바꿨다. 그때 당시 여러분의 컴퓨터는 여러분이 갖고 있는 단 한 대의 컴퓨터였다. 휴대폰이나 태블릿, 혹은 다른 컴퓨터로의 싱크가 필요 없었던 때라는 의미다. 휴대폰이나 태블릿, 또다른 컴퓨터가 없어서였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를 다른 장비 모두를 위한 디지털 허브라 불렀고 소프트웨어는 그 철학을 반영했다. 맥오에스 9는 하나의 섬이었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의 컴퓨터는 동등한 여러 다른 컴퓨터 중 (제일 좋은) 첫 번째이다.

이 모든 이유가 특히나 인터넷을 위주로 업무를 한다면 더 이상 업무용으로 사용할 것이 없는 컴퓨터를 구성한다. 다시 말해서 예전 DOS와는 달리, 클래식 맥오에스의 제일 극성팬들 조차도 포기했다는 얘기. 사용자들이 포기했으니, 개발자도 포기했고, 맥오에스 9를 요즘 시대에 쓰기는 며칠 재미로 쓰는 용도는 몰라도 결국은 쓸모 없는 경험이었다. 이 오래 된 운영체제는 정확히 90년대에 돌아갔던 방식으로 옛날 프로그램을 돌리려 할 때에만 유용할 뿐이다.

 

Classic gaming


Geez, this place is just lousy with scrolls of ancient wisdom.

 

오에스텐 이전의 맥 경험 대부분은 학교 컴퓨터실의 경험이었으며, 그중 대다수는 역시 게임이었다. 물론 대다수 교육용 게임으로서 나눗셈과 핫도그 가게 운영, 옛날 옛적 오리건으로의 여행 등을 가르치는, 그러니까 어느 경우에서건 슈퍼패미컴으로 단련된 두뇌에 호소하는 게임이었다.

당시 기억하시는대로 이들 게임을 정확하게 되돌리려면 진짜 PowerPC 하드웨어상에서 돌아가는 진짜 맥오에스 컴퓨터 외에는 대안이 없다. 클래식 맥 에뮬레이터가 존재하기는 하지만(PearPC, Sheepsaver, Basilisk II), 그들 나름의 안정성 및 비호환성 문제가 있다. 옛날 게임에 대한 Macintosh Garden의 목록은 상당히 풍부하며, 예전에 좋아했던 게임을 아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만약 위의 머신으로도 게임 돌리는 데에 문제가 생긴다면, 맥오에스 9가 너무 최신이어서 Oregon Trail 게임이 사운드 없이 플레이된다든지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알려진 문제이다). 예전 After Dark 스크린세이버를 돌리는 데에도 좀 수정을 해야 하며, 만약 이런 게임을 돌린다면 더 예전 하드웨어를 구하거나, 아니면 에뮬레이션으로 행운을 빌어야 할 일이다.

당시 PC에서 즐겼던 문명 II나 Age of Empires 2는 가끔 있는 버그를 제외하면 잘 돌아갔다. 맥오에스 9.1에서 아무 일도 실질적으로 할 수 없음을 발견하자마자, 난 맥오에스 텐 10.4 파티션의 클래식에서 이들 게임을 돌려보기로 결정했다.

 


Classic Mode is a pretty good way to run Mac OS 9 apps without having to deal with Mac OS 9. Sadly, support for Classic was removed from OS X 10.5, even for PowerPC systems.

 


Mac OS 9 games, OS X stability.

 


Mac OS 9 apps blend in seamlessly with the OS X desktop environment.

 

PowerPC 시절 맥 사용자가 절대로 아니었기 때문에, 클래식이 얼마나 견고했는지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예전 OS 9 앱을 오에스텐 앱과 동시에 잘 돌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1GB RAM을 갖춘 더 새로운 시스템에서 오에스텐용 프로그램과 OS 9용 프로그램을 동시에 돌리는 일은 약간의 과열 말고는 차이가 없었다(활성상태 보기에 따르면 앱이 스스로 뭘 소비하든지 간에 30MB 이상을 소비한다.) 애플이 오에스텐 10.5에서 PowerPC 맥용 클래식 지원을 없앤 것이 안 좋았다. 인텔 시대 최초의 새로운 OS는 사실 PowerPC를 지원한 마지막 오에스텐이기도 했었다.

 

Takeaways

클래식 맥오에스에서는 정말 거의 일을 못 했다. 너무 안 좋았다. 다만 그 경험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 대한 “흐름에 맡긴다”는 접근을 증명해줬다. 뭔가를 얼마나 사랑하든지 간에, 시간은 흐른다. 기술 업계는 언제나 꾸준한 성장과 변화를 요구하며, 어느날엔가 여러분이 좋아하던 소프트웨어가 너무나 뒤쳐져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올 수 있다. 안드로이드 1.0이 아직 새로웠을 때가 어땠는지 지금 알 수 없듯, 2014년에 와서 옛 파워북에 맥오에스 9 설치하기가 1999년 당시 맥오에스 9의 사용을 정확히 드러내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15년 된 소프트웨어를 일상 생활에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면야 OK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맥오에스 9의 강점(낮은 사양, 예전 하드웨어에서의 좋은 성능)과 지금도 현대 맥 구매자들이 사용할 개념을 소개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더 어렵기는 하지만 말이다.

 

Modernizing, kind of: Running Leopard


After messing around with Mac OS 9 and Classic mode for a bit, we installed OS X 10.5 to see how it worked.

 

타이태니엄 파워북을 선택했던 이유로, 나중에 나오는 PowerPC-호환 오에스텐을 별 문제 없이 돌릴 수 있다는 점이 있었다. 즉, 뭔가 유용한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적어도 이 기사를 쓴 후 eBay를 구경하거나 필요한 부품을 구하기는 더 쉬울 일이었다).

이 파워북은 800MHz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레퍼드 설치 사양에는 맞지 않는다. 867MHz G4 이상의 칩이 아니면 오에스텐 10.5 설치 미디어가 설치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단 시스템 사양은 PowerPC 맥에서 매우 유동적이며, 사용자들은 온갖 창의적인 방식을 활용하여, 기술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방법을 알아냈다.

 

더 느린 G4 칩에 맥오에스텐 10.5를 설치하기 위한 제일 좋은 선택은 LeopardAssist이다. LeopardAssist는 머신이 867MHz를 만족 시킬만큼 충분히 빠르게 인식하도록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속이는 단순한 앱이다. 실제로 클럭주파수를 바꾸지는 않기 때문에 하드웨어에 피해를 주지 않으며, 레퍼드 설치 요구사항을 통과하자마자 진짜 클럭 속도가 다시 표시된다. 오에스텐 10.5 DVD를 집어 넣고 오에스텐 10.4에 미리 넣었던 LeopardAssist를 돌리고, 별도의 파티션에 레퍼드를 설치했다. PowerPC 맥에서 애플리케이션 대다수의 최신 버전은 여전히 돌릴 수 없으며, 2011년과 2012년 애플이 마지막 레퍼드 업데이트를 내놓기 오래 전부터 개발자들은 PowerPC를 포기하기 시작했었다. 그래도 이 모든 기본 사양을 맞출 수 있는 꽤 현대적인 소프트웨어를 찾기는 쉽다.

 


Leopard isn’t exactly snappy on an 800MHz G4, but it’s much closer to the modern OS X experience and can still run a fair number of near-modern apps.

 

마지막 PowerPC 호환 버전인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2008은 2013년에 지원을 멈췄지만, 워드와 엑셀, 파워포인트는 여전히 문서 대부분을 잘 다루며, Entourage (오우)는 IMAP이건 Exchange이건 우리의 오피스 365 서버에 연결할 수 있다. 내장 메일 앱은 공식적으로 오에스텐 10.6이 나온 이후에서야 Exchange 연결성을 제공했지만, 애플 앱을 준수하자면 IMAP으로 잘 사용할 수 있었다. iChat은 XMPP와 구글 토크에 연결할 수 있으며, Adium 옛날 버전도 사용 가능하다. 약간 이전 버전의 Limechat(내가 좋아하는 IRC 클라이언트)은 10.5에서 잘 돌아가며, 놀랍게도 현재 버전의 DropBox 클라이언트도 10.4와 10.5 PowerPC 아키텍처를 계속 지원하고 있었다.

제일 중요한 프로그램인 브라우저는 좀 미묘하기는 하지만 잘 돌아간다. 10.5를 지원하는 최신 버전의 사파리는 5.0.6으로서 여전히 별 탈 없이 웹페이지를 잘 읽어들이지만, 3년 전 버전이라서 보안 위험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았다. 파이어폭스의 확정적인 지원 기반을 통한 PowerPC용 TenFourFox가 구원자였다. 막 버전 31로 업데이트됐으며, 새로운 “Australis” 인터페이스와 함께 파이어폭스의 멋진 기능과 싱크 호환성을 갖고 있다. 게다가 맥오에스텐 10.4와 10.5를 운영할 수 있는 한 G3까지의 PowerPC 칩 지원을 유지중이다.

 


TenFourFox brings most of the features from the Firefox ESR releases to PowerPC systems running 10.4 and 10.5. I don’t love it, but it gets the job done.

 

PowerPC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용감한 영혼들에게는 훌륭할지 모르겠으나, TenFourFox를 내가 좋아하지는 않았다. 800MHz 파워북에서의 스크롤은 상당히 느렸으며, 그나마 부드럽게 렌더링하는 데에는 사파리가 최고였다. TenFourFox 브라우저는 RAM을 많이 잡아 먹으며(Ars 홈페이지를 돌리는 데에 206MB였으며, 사파리는 96MB였다), 공식 개발 블로그에는 정보가 매우 풍부하지만, 파이어폭스의 기능 한 두 가지는 항상 포팅이 불가능하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가령 플러그인을 사용할 수 없는데, PowerPC 맥오에스텐에서 사용 가능한 플러그인은 모두 예전에 업데이트가 중단됐었다. 그리고 아이콘도 내 스타일이 아니며, 공식 파이어폭스 아이콘으로 교체하니 마음이 좀 놓였다.

어느 경우에서건 TenFourFox는 적절하게 렌더링을 해주며, 더 새로운 1GHz 알루미늄 파워북이나 아이맥에서는 예전 타이태니엄 G4보다 더 잘 표현해 주리라 확신한다. 오에스텐 10.4와 10.5를 타이태니엄 파워북에서 돌리기란 뭘 하든 느리다는 의미이다. 맥오에스 9은 현대적인 기준에서 볼 때 상당히 구식이지만, 사용자 입력에 대한 반응이 빠르고 최소한 미적거리지는 않는다. 맥오에스 9는 사용성이 좋으며 실질적으로 업무에 필요한 거의 모든 일을 해 줄 수는 있었다. 다만 현대적인 맥에 비교해 볼 때 좋은 경험을 줄 수는 없었다.

현대의 멀티코어, SSD, 풍부한 RAM을 갖춘 컴퓨터에서 당연히 여기는 일들이 예전 시스템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한 번에 여러 브라우저 탭을 열고, 음악이나 영상을 배경으로 돌리며, Dropbox 파일을 싱크 시키고, 애니메이션 GIF를 보면 CPU를 상당히 많이 잡아 먹으며, 800MHz G4로는 해내기가 벅차다. 한때 인상적이지만 지금은 아닌 1GB RAM을 넘어서는 상황은 TenFourFox를 열 때 생각조차 안 했을 것이다. 열자마자 곧바로 가상메모리 스와핑을 일으킬 텐데 말이다. 원칙적으로 돌릴 수 있는 한 이 하드웨어를 만든 이들을 존경한다. 다만 실질적으로 맥북에어에 다시 적응하기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Change


The past and the future.

 

사람들은 변화를 불평하기 좋아하며, 그 불평이 언제나 부당하지만도 않다. 우리는 브라우저가 매 6주마다 바뀌고 운영체제가 12개월마다 바뀌는, 끊임 없는 업데이트의 시대에 살고 있다. Gmail과 트위터, 페이스북의 업데이트는 심지어 모를 때 조차 많다. 13년 동안 OS 하나를 사용하고 지원한다는 아이디어는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종종 여러분은 모든 것이 잠시라도 서 있기 바랄 때가 있다.

그러나 변화가 점진적이어서 완전히 앞뒤가 바뀌지 않는 한(당신 보고 하는 말이다, 윈도 8), 대부분은 변화를 용인한다. 이 오래 된 파워북을 맥오에스 9에서 맥오에스 텐 10.4로 이주시킴으로써, 클래식 맥오에스에서 맥오에스텐으로의 변화가 얼마나 컸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성과 일관성이 얼마나 컸는지, 그에 따라 운영체제를 바꾸더라도 얼마나 침착해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변화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2007년의 레퍼드를 2013년의 매버릭스로 바꾸는 일 또한 상당히 큰 변화였다. 인터페이스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스마트폰은 6년간 컴퓨팅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앱 배포데이터 스토리지, 운영체제 업데이트에 대한 생각이 변동을 거쳤으며, 이 모두가 비슷한 아이콘, 툴바, 독 아래에서 일어났다.

오에스텐은 이제 또 바뀌고 있다. 요세미티는 9에서 텐으로 점프한 이래 아마 시각적으로 제일 거대한 변화일 것이다. 디자인이 바뀌고, 불만도 터져 나오겠지만, 우리들 대다수는 변화에 적응하여 우리가 이전에 어떻게 작업했는지는 잊는다. 아마 내년에 또 반복하면서 말이다.

Andrew Cunningham / Andrew has a B.A. in Classics from Kenyon College and has over five years of experience in IT. His work has appeared on Charge Shot!!! and AnandTech.
@AndrewWrites on Twitter

http://arstechnica.com/apple/2014/09/my-coworkers-made-me-use-mac-os-9-for-their-and-your-amusement/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Apple vs. F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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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vs. FBI

당시 PGP는 강력한 암호체계여서 무기 수출 통제법의 대상으로서 엄격히 관리 받을 만했다.

물론 PGP가 무적은 아니었다(어떤 암호화 체계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수퍼컴퓨터가 여러 문자와 기호를 다 맞춰 보다 보면 뚫리게 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머만의 프로그램은 NSA의 컴퓨터도 크랙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비밀 코드를 더 어렵게 만드는 public key encryption이라는 비대칭 기술을 사용하는 최초의 애플리케이션이었다.

Wired의 표현에 따르면 결국 미국 정부는 암호전쟁(Crypto Wars)에서 패배했다. 짐머만은 자유의 몸이 됐고 오늘날 페이스북 암호로부터 케이먼 아일랜드의 은행계정에 이르기까지 public key encryption로 모든 것을 보호할 수 있는 미국 시민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지난주 애플이 또다른 암호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이 사건이 다시금 기억 났었다. 제임스 코미(James Comey) FBI 국장이 이끌고 퇴직한 FBI 요원의 기명 칼럼과 Cato 재단 자유주의자의 칼럼에서 싸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터치ID 지문리더로부터 암호 및 신용카드 번호가 고유식별자(unique identifier)로 지정돼 더블키(double key)로 잠겨 있는 내장된 Secure Elements에 이르기까지 새 아이폰에 장비한 프라이버시 기능들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지난주 텔레비전에서 찰리 로즈(Charlie Rose)의 질문에 팀 쿡 애플 CEO는 이렇게 답했다. “아이메시지를 받기 위해 정부가 소환장을 제출한다면, 우리는 메시지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암호화 돼 있고, 우리에게는 키도 없어요.”

소환장을 발부하는 정부 기관들은 분명 쿡의 대답을 좋아하지 않았다. 코미 FBI 국장은 목요일 한 컨퍼런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래는 ISIS 테러리즘에 대한 자리였다.

“사람들이 법망을 벗어나면서까지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허용하는 마케팅을 강하게 벌이는 기업들이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습니다.”

뉴욕타임스의 생거(David Sanger)와 첸(Brian Chen)에 따르면 코미 국장은 모든 부모의 악몽을 예로 들었다.

그는 유괴를 예로 들었다. 유괴 사건에서 입수된 휴대폰 콘텐츠를 뒤져 보면 희생자를 찾을 수 있을 텐데, ‘눈물이 그렁그렁한’ 부모가 찾아와서 ‘휴대폰 내용을 디코딩할 수 없다는 게 무슨 말이오?’라 물어보는 광경을 말한 것이다.
“절대로 열 수 없는 벽장을 마케팅하는 겁니다. 설사 아이 유괴가 포함된 사건과 법원 명령이 있다 하더라도 열 수 없는 거죠. 저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요.”

하지만 아이러니가 있다.

한편으로 애플이 암호화를 갖고 아이폰을 더 많이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맞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이 NSA의 국내 감청 프로그램을 폭로하지 않았다면(NSA 슬라이드에 따르면 애플 서버에 비밀 백도어가 있다), 애플이 이런 마케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정부 당국이 유괴자(혹은 테러리스트)를 추적할 능력이 애플의 Secure Elements 때문에 위축됐는지는 불확실하다. 애플의 Secure Elements는 주소록이나 전화기 자체에 저장된 다른 데이터에 대한 접근을 아예 제한 시킨다. 합법적인 이메일이나 전화 통화 내용 낚아채기만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다.

위의 뉴욕타임스와 얘기한 보안 전문가 지알스키(Jonathan Zdziarski)는 아이폰 하나 제외한다고 하여 사건 조사에 지장을 많이 초래하진 않으리라고 말했다. “조사 당국은 통화 로그와 이메일 로그, 아이클라우드, 지메일 로그로부터 다른 증거를 산더미처럼 받을 수 있어요. 전체 인터넷을 그들이 도청하고 있으니까요.”

Apple and the FBI re-enact the ’90s Crypto Wars – Fortun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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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애플의 Beats 인수에 영향을 끼쳤다.

Tuesday, June 17, 2014, 02:41 pm PT (05:41 pm ET)
Kanye West says Samsung-Jay Z collaboration drove Apple to buy Beats for cultural credibility

By Mikey Campbell

In a surprise appearance at the Cannes Lions festival, rapper Kanye West said a collaboration between fellow performer Jay Z and Samsung last year played into Apple’s decision to buy Beats and acqui-hire cofounders Jimmy Iovine and Dr. Dre.


From left: Venture capitalist Ben Horowitz, Translation CEO Steve Stoute and Kanye West at Cannes Lions festival.
Source: Team Kanye Daily

Adweek의 보도이다. 카니예 웨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이 갤럭시 휴대폰 구매자들에게 제이지(Jay-Z)의 최신 앨범 100만 장을 제공하기로 제이지와 파트너십을 맺었을 때, 삼성이 문화적인 명성을 순간 사들였다고 한다.

30억 달러 어치의 Beats 인수로 애플도 삼성과 유사한 사재기를 했다는 것이 웨스트의 설명이다. 이 래퍼는 애플이 2011년 잡스 사망 이후로 문화계와의 끈을 잃었으며, 지미 아이오빈(Jimmy Iovine)과 닥터 드레(Dr.Dre)의 영입으로 다시금 끈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삼성과 제이지의 계약이 없었다면 Beats 인수도 없었을 겁니다. 문화계와의 인맥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회사거든요. 제가 삼성을 특히 싫어한다고 말씀 드렸는데, 제 인생에 있어서 부모님이 절 키우셨던 방법 때문입니다. 1등과 함께 일 해야 한다는 거죠. […] 삼성이 애플 같지는 않잖아요. 지미와 드레가 영향력 1등들과 연결 해 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죠."

광고 에이전시인 Translation이 운영한 페스티발의 세미나 "Technology, Culture, and Consumer Adoption: Learning to Read the Cultural Landscape"에 칸예 웨스트의 등장은 놀라웠다. Translation의 CEO 스티븐 스타우트(Steve Stoute)와 저명한 벤처 투자자인 호로위츠(Ben Horowitz)가 패널로 참여했었다.

자신을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비교했었던 독실한 애플 팬인 칸예 웨스트는 자신은 삼성 서포터가 아니지만 제이지와 함께 팝문화에 들어서기로 한 삼성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Beats 인수 결정에 삼성과 제이지의 파트너십이 영향을 끼쳤다.

"모두들 아시듯 스티브 잡스는 제게 제일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람들 생활을 어떻게 하면 더 쉽게 해주는지 그가 싸웠던 방식을 봤었죠. 그의 사망 이후 저는 결심했어요. 그가 애플에서 한 일을 제 인생의 사명으로 삼기로요. 감식력 증진을 돕고 한 세대의 취향 수준을 올리면서, 모두가 바라는 것의 홍보와 배급, 생산에 참여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Cannes Lions TV Meets: Kanye West, Steve Stoute & Ben Horowitz – YouTube

아이오빈과 드레가 애플에서 고위직을 맡은 것을 보면 지금으로서 웨스트의 이론은 맞아 떨어져 보인다. 그런데 둘의 공식 직함이 "지미와 드레"이고 그들이 무엇을 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그들 둘 다 세계 최대의 기술 기업에서 단순히 일하는 것 이상을 하려는 모양새이기는 하다.

이번 달 초 The Wall Street Journal의 인물 동정을 보면 드레는 스티브 잡스에 비유될 정도로 완벽주의적인 성향과 변함 없는 노동 윤리를 갖고 있다고 나와 있다. 단순히 자기 이름을 헤드폰 브랜드에 빌려준 것 이상의, 드레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무엇이 "쿨"한지 알아내고 그를 소비자용 제품으로 바꿔 넣어주는 능력이다.

애플 CEO 팀 쿡은 Beats의 인수 주된 이유가 가입형 스트리밍 서비스인 Beats Music 때문이었다고 강조했었다.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애플은 Beats 인수에 업계에서 추정한 가치의 다섯 배 정도인 약 5억 달러를 들였다.

Kanye West says Samsung-Jay Z collaboration drove Apple to buy Beats for cultural credibility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