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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어와 운영체제 영웅의 시대는 갔다.


BUSINESS WORLD November 13, 2012, 7:12 p.m. ET

The Cloud Over Apple and Microsoft

A heroic age of device and operating-system design is drawing to a close.

By HOLMAN W. JENKINS, JR.

윈도 8이 실패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운도 다 한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윈도 비스타와 KIN 스마트폰 사태에서도 살아남은 스티브 발머이기 때문에 운이 다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달 마이크로소프트의 야심찬 운영체제를 선보였던 중역, 스티븐 시놉스키(Steven Sinofsky)의 사임때문에 위와 같은 질문이 생겨났다. 염두에 두시라. 마이크로소프트는 놀라운 회사였다. 웹, 그리고 뒤이어 모바일이라는 전면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데스크톱 프랜차이즈를 발명하고 방어해온 곳이 마이크로소프트였다.

하지만 다른 천재들이 세상에 마치 없는 양, 검색엔진에 있어서 구글을 능가하지 못하고 휴대기기에 있어서 애플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곳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이다. 설사 그 말이 맞다 하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승리를 거둔 분야가 하나 있다. 소니에 도전하여 소니를 추월한 게임콘솔이다.

윈도 8이 성공작임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과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시궁창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너무나 많다. 새겨듣지 말기 바란다. 윈도 8은 태블릿 부문에서 자리를 잡으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승부수가 될 수 있겠다만, 목표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항상 해 오던 행위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아마도 너무나 야심찬 나머지 무기화시키기 어려운 목표이기는 하다. 아, 그리고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이 목표는 애플로서도 잡고 싶어하는 목표다.


Steven Sinofsky, at the time a Microsoft executive, previewed Windows 8 in Barcelona, Spain, in February. He left the company this week.

PC나 노트북을 사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은 윈도 8을 피하기가 곧 어려워질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 세상과 태블릿/스마트폰이라는 터치스크린의 세상을 합치려 하고 있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바일에서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윈도의 새 인터페이스를 강제하면, 인터페이스의 친숙성에 따라 윈도폰으로도 소비자를 이끌 수 있잖을까 하는 희망을 가진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 8의 리뷰가 안 좋거나 소비자들이 반발할 수 있다는 위험성도 알고 있어야 했다. 터치는 키보드와 마우스 없이 기기의 기능을 구사할 훌륭한 방식임에는 틀림 없다. 하지만 완전한 키보드를 필요로 하는 가정 사용자가 이유 없이 새 인터페이스를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는 말인가? 좋은 질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핵심 소비자는 미국 기업들이고, 미국 기업들은 언제나처럼 운영체제를 자유로이 고를 수 있으며, 역시 언제나처럼 윈도 8로 업그레이드는 느리게 할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앞으로도 수 년 동안 윈도 7 라이선스 수입을 벌어들일 터이다. 업그레이드를 단행할 것이냐 마느냐를 고민하면서 말이다.

따라서 더 흥미로운 실험은 아무래도 새로운 윈도 RT 태블릿이다. 광범위한 기존 윈도 소프트웨어와 전혀 호환성이 없기 때문이다.

RT는 RT만을 위한 특별한 버전의 오피스를 돌리고, 앱스토어가 있을 예정이다. 다만 RT에는 브라우저도 딸려오며, 2008년 애플이 오리지날 아이폰에 앱 혁명을 일으켰을 때 자라나기 시작한 온갖 과장된 “생태계” 논의를 따돌릴 일반 플랫폼의 역할을 RT가 갖고 있다.

한 가지 알려야 할 사항이 있다. 심지어 현재 애플과 안드로이드 모바일 기기용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보물인 오피스 소프트웨어(워드, 엑셀 등)를 곧 출하할 예정이라는 말까지 누출됐다. 윈도 8이냐 아니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끝이냐의 시나리오 이상을 시사하는 루머가 아닐까 싶다. 생태계라는 환상을 벗어나고 나면, 윈도 8은 어쩌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선택으로 비쳐질 날이 올지 모른다. PC와 마찬가지로 운영체제 디자인과 하드웨어의 영웅 시대는 곧 끝나가고 있다. 미래는 클라우드가 제공하는 경쟁력 있는 서비스가 될 것이며, 기기들은 모두 범용제품화 될 것이다. 휴대기기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화장실에 떨어뜨리거나 버스에 놓고 내리는 그런 기기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애플 이야기도 안 꺼낼 수 없다. 이미 다 드러났듯, 애플은 더 이상 훨씬 우월한 제품, 심지어 애플만의 고유한 기기를 제공함으로써 시장을 호령할 수 없다. 점차 집착이 심해져 가고 있는 애플의 생태계 전략도 마찬가지이다.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소비자들에게 윈도 8을 강요하는 것만큼, 열등한 지도 앱을 사용자에게 떠맡겼다. 소비자가 아니라 애플에게 그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애플이 아이패드 미니를 선보인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아마존과 구글의 소형 태블릿에게 구매객을 뺏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시장에서 두터운 마진이 공격받고 있는 가운데, 애플은 이윤을 방어하기 위해 부품 공급업체들을 찔러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마찬가지로 애플의 운도 다 한 것이 아니다. 이윤이 약간 줄어들 뿐이다. 그렇다면 애플의 생태계, 아니 애플이 아니라 다른 어떠한 생태계가 여전히 PC에서 윈도가 누리고 있는만큼의 두터운 시장을 차지할 수 있으리라 믿겨지는가? 최근 브루스 윌리스가 자신의 아이튠스 콜렉션을 아이들에게 넘길 수 없다 하여 애플을 고소하리라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있었다. 하지만 Pandora, Spotify, Netflix가 있는 세상에서 구태여 아이튠스 콜렉션을 어째서 윌리스의 아이들이 원해야 한단 말인가? 클라우드가 다가오고 있으며, 클라우드는 끝이 분명한 폐쇄형 생태계의 콜렉션이 아니라, 일반 플랫폼을 요구하고 있다. 혹시 리눅스 폰?

Jenkins: The Cloud Over Apple and Microsoft – WSJ.com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지금은 애플의 종말이 아니다.

This is NOT the END of Apple

Nov 15, 2012

2012년 10월, 팀 쿡의 기조연설 이후로 애플의 종말이 어떻게 닥칠 것인지라든가, 잡스 이후의 애플이 죽었다라는 언론 보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애플 팬보이처럼 들리겠지만 그러한 보도들은 말이 안 된다. 실제로는 “군중심리”에 가깝다. 사람들과 블로그들도 보다 많은 노출도와 클릭율을 위해 애플이 죽으리라는 여론에 뛰어 올라타고 있다. 한 저명한 필자의 아이폰 리뷰를 보면 처음에는 싫어했으면서도 결국 아이폰 5가 “지구상에 나타난 최고의 휴대폰“이라 평했다. 일단 놀라운 점은, 도대체 사용하지 않고서도 어떻게 제품 리뷰를 작성할 수 있을까였다. (그래서 본지에서는 제품 리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아이폰 기조연설과 최근의 아이패드 미니, 13″ 레티나 등에 대한 필자의 분석은 팀 쿡의 애플이 종말과 거리가 매우 멀다이다. 비록 간부층이 바뀌고 책임자가 바뀌는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필자는 애플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다.

왜인지 알려드리겠다.

“혁신” 제품의 정의에 대해 우리는 비뚤어진 감각을 갖고 있다.

제일 영향력 있다는 인물들의 혁신에 대한 정의부터 기본적으로 알아보자.

영국 가디안지의 댄 크로(Dan Crow)의 말이다. “거의 3년 전, 아이패드 발표 이후로 [애플은] 진정 새로운 제품을 발표한 적이 없다. 그 대신 애플은 현재 제품라인의 점진적이고 과장광고가 된 제품만을 만들고 있다.”

애플이 “새로운” 뭔가를 도대체 언제 발표했을까? 아이포드는 Creative의 Zen MP3 플레이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아이폰은 다시 디자인한 제록스 PARC의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를 휴대폰에 합쳤으며 아이패드는 (후지쯔와 비슷하면서) 최적화된 하드웨어로 만든 태블릿 PC였다.

더군다나 애플은 얼리어돕터만을 위한 제품사업에 한 번도 뛰어든 적이 없었다. 애플은 혁신의 전파 이론에 묘사된대로, 소비자 그룹의 나머지 중, 초기의 절대다수를 위한 제품을 판매한다.

따라서 애플이 이야기하는 혁신적인 애플 브랜드는 다음과 같다. 성숙한 기술을 가지고 디자인을 다시 한 다음에, 사용하기 쉽고 즐겁도록 패키지로 만든 제품이다. 여기서의 패키지는 사람들이 이해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애플이 다른 제품들과 사양 경쟁을 벌이지 않는지 이해하실 것이다. 그들은 최고로 빠른 CPU나 더 크고 밝은 화면을 내세우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애플은 기술로 보나 제품으로 보나 리더인 적이 없었다. 애플 제품 라인을 보면, 모두가 다 보다 빠른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여 놀라운 기세로 시장을 차지한다. 아이포드와 아이폰, 아이패드가 어떻게 세상을 점령했는지 보시라.

Apple is in the business of Incremental Products.

새로운 애플 제품에 대한 또 다른 불만이 하나 있다. 아이패드 3가 나온지 7달만에 아이패드 4가 나왔다는 점이다. 아이패드 3는 이제까지 300만 대가 팔릴 정도로 애플에서 제일 많이 판매한 아이패드였다. 그래서 애플이 300만 명의 아이패드 3 소비자들을 공식적으로 엿먹였다는 주장이 많다.

동의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밝힌 바 있다. 애플은 최신 기술에 발맞추기 위해 제품 업데이트를 계속 해야 하지만, OS 업데이트를 최신 기기와 이전 기기 모두 돌아가게 함으로써 생태계를 구축한다. 애플은 이전 제품을 곧바로 시대에 뒤떨어지게 만들지 않는다.

삼성 갤럭시 S2의 안드로이드를 최신 젤리빈으로 업데이트해보신 적 있는가? 갤럭시 S2 또한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를 최신으로 업데이트시킬 공식적인 방법은 이 글을 쓸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7개월의 제품 주기가 중요한 이유는 정작 다른 데에 있다. 애플이 이제 자신만의 게임에서, 빠른 추종자(fast-follower)를 능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 생각이기는 하지만, 이점이야말로 여러 많은 전문가들이 놓치고 있다. 특히 애플이 기술적으로 자기 공장에서 소유하고 있지 않거나 제조하지 않을 때 더 빛나는 사항이다.

잠시라도 생각해 주시기 바란다.

빠른 추종자 전략은 기본적으로 승리한 제품을 가져다가 10~20% 더 좋게, 혹은 더 저렴하게 만들고 평균 6~8개월동안 그 제품을 빠르게 시장에 내놓는다. 이 정도 속도와 애플의 개발 주기를 비교해 보시라. 빠른 추종자가 이제 새 모델을 내놓았을 때 애플도 전임 모델보다 100% 더 나은(애플은 아이패드 4가 이전의 아이패드3보다 두 배 더 빠르다고 주장한다) 신모델을 내놓는다. 빠른 추종자의 모델이 구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팀 쿡이 워낙 공급망의 귀재인 덕분에 애플의 앞날이 밝다는 얘기다. 오히려 앞으로 제품 업데이트를 더 자주 기대해도 좋을 성 싶다. 적어도 일 년에 두 번?

iPhone 5 and iPad Mini: It’s the iMac and MacBook all over Again.

글을 마치기 전에, 올해 애플이 선보인 제일 중요한 제품 두 가지에 대한 빠른 분석을 할까 한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 거대한 혁신이 일어나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새 제품 마케팅을 좀 과장해서 하는 면이 없잖지만 애플의 혁신은 범위 안에서 맨 처음에만 나올 뿐이고, 그 다음부터는 여러 해에 걸쳐 점진적인 개선이 등장한다. (더 커지는 것도 있고 더 작아지는 것도 있다.) 아이맥과 맥북의 발전 과정을 보시면 범위라는 것이 무엇이고 결국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Step 1: 제품을 아예 정하거나 완전히 궁극적으로 바꿔버리기
Step 2: 기술과 제조 과정의 발달에 따른 개선
Step 3: 될 수 있는 한 오래 오래 유지시키기

애플이 성을 쌓은 뒤 해자를 둘러 파 놓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 또한 지적해야겠다.

따라서 아이패드 미니는 순수하게 방어적인 의미를 갖는다. 애플은 자기가 전자책 시장을 놓쳤음을 분명 깨달았을 것이다. 아이패드의 크기와 무게가 장시간의 독서에는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아마존의 킨들 생태계는 매우 잘 이어지고 있으며, 고객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범위 안에서 뭔가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So what’s next?

팀 쿡은 최근 D10 컨퍼런스 인터뷰에서 애플이 신제품을 어떻게 개발하는지 약간 알려줬다. 그의 말만 들어 보면 아무 것도 말 안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업계에 있다면 그가 대단히 많은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우리가 핵심 기술을 통제할 수 있을까요?
2) 이 분야에 대해 다른 이들이 해놓은 것보다 훨씬 그 이상의 뭔가를 기여할 수 있을까요?
3) 우리 모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합리적으로 좋은 대리물(proxies)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위 세 가지 주안점을 생각한다면 혁신이라는 애플 브랜드에 대한 분석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결론내릴 수 있다.

1) 시기가 올바르지 않다거나 고객에게 올바르지 않다 여기면 애플은 새로운 뭔가를 발표하지 않을 것이다.

2) 무엇이 다음이냐를 찾으려면, 현재 나와 있는 기술을 일단 보고 인간적이지 않으면서 성과가 저조하지만 중요한 부문이 어디인지를 찾으라.

그렇다면 필자의 추측은 음성 컨트롤(시리도 잘 하지는 못 하고 있다)과 애플 티비, 혹은 새로운 TiVo 타입의 시스템을 들 수 있다.

보시다시피 애플은 과거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역시 다른 걸 하지 않고 있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과장된 마케팅, 혹은 올해 너무 신제품을 많이 출시했다는 점 정도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 경쟁자들이 훨씬 더 많아 잘하고들 있기 때문에 애플로서도 앞길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히도 애플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고 자신들의 레서피가 경쟁사들보다 나음을 꾸준히 증명해왔다. 당연히 애플도 우리처럼 실수도 저지를 테지만, 역시 우리들처럼 용서해줄 것이다. 스티브 잡스를 포함하여 잘 맞지 않으면 애플을 떠날 것이고, 돌아오는 이들도 여전할 것이다.

이 분석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다. 주저 말고 아래 코멘트를 남겨 주시기 바란다. 감사한다!

This is NOT the End of Apple | Design Sojourn)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손가락으로 섞는 색상, 실제로는 이렇다

The Magical Tech Behind Paper For iPad’s Color-Mixing Perfection

BY CHRIS DANNEN | NOVEMBER 8, 2012
In the new version of Paper released last week, you mix colors with your fingers, like it’s paint–only somehow more beautiful. This one magical feature burned a year of development time, resurrected the work of two dead German scientists, and got Apple’s attention.

색상은 분위기를 북돋고 사람들 마음 속에 행위를 전달하거나 즉각적인 관계를 만들어준다. 게다가 브랜딩을 위한 강력한 툴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패드용 페이퍼를 만든 팀인 FiftyThree는 컬러를 중대한 사업적 문제로 간주했다. 색상을 다루는 전통적인 소프트웨어는 색상을 표시하는 기기의 방식에 충실하지만, 사용자에게는 완전히 비-직관적이기 때문이었다. 이 팀은 인간-중심적인 툴만 있다면 훨씬 더 나은 디지털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봤다. 페이퍼의 컬러 버전인 1.2.1에서 그들은 한 가지 발명을 시도했다.

아름다운 그래픽을 만들 때의 학습곡선은 얼나나 가파를까? 그래픽 디자인 프로그램을 무엇이라도 한 번 돌려서 답을 생각해 보시라. 컬러피커(color picker)를 열어서 노란색과 파란색의 중간 색을 고르면 알 수 있다. 그 결과는 녹색이다. 그러나 사용하는 기기나 소프트웨어가 무엇이든지 간에 칙칙한 쟃빛을 얻게 된다. 이미 여러분의 작품은 썩고 있다.

FiftyThree의 디자이너이자 공동창업자인 앤드루 앨런(Andrew Allen)의 말이다. “나쁜 컬러라는 것은 없습니다. 나쁜 컬러 팔레트가 있을 뿐이죠.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에 있는 전통적인 컬러 피커는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1,600만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골라 보시죠.”

Down the Rainbow Rabbit-Hole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FiftyThree는 컬러피커를 뒤엎고 1년동안 작업에 들어갔다. 직관적이고 터치에 기반하면서 간단한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애플 아이패드 미니를 선보일 때 필 실러가 직접 그 결과를 시연하였다. 그렇지만 그토록 기본적인 것을 재발명한다고 해서 어떻게 디자인 상까지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첫째, 컴퓨팅에 있어서 컬러피커는 1973년부터 존재해 왔다. 새로운 인터페이스의 재발명은 어도비에서 Zoho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디자인툴이 지니고 있는 패러다임에 도전한다는 의미이다. 즉, 컬러피커가 아무리 형편 없다고 해도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이다.

우선 팀은 제일 자명한 문제, 상호운영성(interaction)에 집중했다. 그들은 컬러피커를 대체하기 위한 믹서(mixer)를 하나 만들었다. iOS 엔지니어이자 페이퍼의 Mixer 개발을 이끈 예술가이기도 한 매튜 첸(Matthew Chen)의 말이다. “앤드루는 믹서가 피커보다 더 친숙한 툴이 될 수 있다고 봤어요. 적절하게 운용하기만 하면 더 융통성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름답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색상을 섞을 수 있지 않는 한, 믹서가 좋은 경험을 전달해 줄 수 없음이 곧 드러났다. 색공간(color-spaces)라 알려진 컴퓨터 색상 구축 과정이 일반적으로 색상 섞기용으로 최적화됐다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첸의 설명이다.

“좋은 혼합 알고리듬을 찾으면서 처음에는 여러가지 색공간를 덧붙여 봤습니다. RGB와 HSV, HSL, 그리고는 CieLAB과 CieLUV를 붙였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어요. 빨간색과 노란색을 섞으면 오렌지 색이 나오고, 빨간색과 파란색을 섞으면 보라색이 나와야 하는데, 사용하는 색공간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런 결과를 낼 방법이 없었어요. 엔지니어링의 격언을 하나 빌자면, 제대로 작동할 제일 간단한 것부터 해라가 기억나더군요. 예. 그래서 제일 쉬운 접근을 시도해 봤습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별로라는 느낌이었어요.”

If Everyone Else Is Wrong, Why Bother Innovating?

그렇다면 어째서 컬러 믹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발과 고민을 1년씩이나 해야 한단 말인가? FiftyThree 팀은 중요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수채화 붓과 마커, 연필을 개선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해서였다. 색상의 딜레마를 해결하지 않으면 앱의 나머지도 개선시킬 수 없었다. 앨런의 말이다.

“우리는 실제 제품의 프레임을 짜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어요. 상호 영향을 없애기 위해서였죠. 그렇다면 제품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조화롭게 해야 합니다. 둘 간의 위계를 정하면 안 되어요.” 팀은 중급의 사용자가 전문가 수준의 작업물을 기대하던 바보다 훨씬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이 바로 목표 달성이라 여겼다.

A Conceptual Breakthrough From the Past

FiftyThree 팀이 난관을 극복한 계기가 있었다. 작고한 독일의 두 과학자, 파울 쿠벨카(Paul Kubelka)와 프란츠 문크(Franz Munk)으로부터 얻은 통찰이었다. 그들은 1931년 “페인트 광학에 대한 기여(Ein Beitrag zur Optik der Farbanstriche)”라는 논문을 냈다. 이 논문은 색공간의 질문이 컴퓨팅의 개념이 나타나기 이전에서도 문젯거리였으을 보여준다. 논문은 “반사율(reflectance) 이론”과 함께 맨눈으로 알 수 있는 물리적인 경험상으로 색상 혼합을 이루는 방정식을 알려준다. 다시 말해서, 여러가지 색상이 빛을 빨아들이거나 반사시키는 방법을 의미한다.

오늘날 컴퓨터는 빨간색과 녹색, 파란색(RGB 채널)이라는 세 가지 색가(value)로 색상을 저장한다. 하지만 쿠벨라-문크 모델은 각 색상마다 적어도 여섯 가지 색가를 제시한다. RGB 색상 각각에 대한 반사율(reflectance)과 흡수율(absorption)이다. FiftyThree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조지 펫슈닉(Georg Petschnigg)의 설명이다. “화면상의 색상을 세 가지 치수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만, 색상의 혼합은 사실 여섯 가지 치수를 통해 나타납니다.” 쿠벨카-문크의 논문 덕분에 팀은 미학적인 문제를 수학적인 프레임웍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3차원의 색공간에서6차원의 색공간로의 이주는 오래된 칙칙한 색상 혼합에서 절대적인 리얼리즘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펫슈닉은 이렇게 말한다. “페인트가 섞여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색상은 반사율과 흡수율 간의 상호작용입니다. 빨간색으로 매니큐어와 빨간색 잉크를 비교해 보세요. 둘 다 빨간색입니다만, 빨간색 매니큐어는 검정색 종이에서도 잘 보일 겁니다. 빛을 반사시키니까요. 잉크의 경우는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안 보이겠죠.

Can iPad Apps Be Too Real?

6차원 색공간를 흉내내면 실제와 너무 비슷해진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첸의 설명이다. “실제-세상에서 일어나는 색상 혼합의 별난 점까지 모두 다 재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색상 혼합이란 화가들이 연습을 통해서 마스터할 수 있는 어려운 과정이죠. 즉 우리는 너무 비현실적인 색상 혼합에서 너무 현실적인 색상 혼합으로 옮긴 셈입니다.”

그러나 직관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물리적인 속성을 제현할 수 있는 단일 알고리듬은 정말 거대한 다변수(多變數) 연산을 요구했다. 첸이나 펫슈닉 모두 해결책이 있을지 몰랐다. 즉, 다시 돌아가서 원래의 사업적인 문제를 해결할 길이 안 보였던 것이다. 독특한 팔레트가 브랜딩을 위해서 중요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툴 갖고는 찾기가 여전히 어려웠다. 그래서 팀은 차라리 사용자가 색상을 혼합하는 방식을 스스로 학습하도록 알고리듬을 짜 보기 시작했다.

Using Common Sense Over Piles of Math

펫슈닉과 그의 팀은 손수 주요 색상 100 쌍을 고른 후, 어떤 혼합색이 나은지 직접 눈으로 테스트했다. 첸은 여러가지 색상을 섞었을 때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여주는 아이패드 앱을 별도로 만들었다. 실험을 하면서 팀은 결국 수학적으로 100가지 집합을 만들었다. 개념적으로는 색상 트랜지션(transition)이었다. 팀은 이 100가지 특정점(datapoint)을 이용하여 스스로 학습을 하는 프레임웍을 만들었다. 100가지 손수 조정한 집합에 속하지 않는 배합일 경우 학습에 따른 추정을 할 수 있는 프레임웍이었다.

아래 그림은 컬러 툴의 실제로 돌아가는 프로토타입 두 가지이다. 검정 배경색인 것과 하얀 배경색인 것이 있다. 두 색상과 연결되는 저 일그러지고 굽은 선들이 보이시는가? 전통적인 컬러피커에서는 파란색과 노란색 중간 단계에 녹색이 아닌 흰색을 거쳐 가는 직선이 있을 것이다. 첸이 결국 선택한 색상 사이의 굽은 선은 아이패드의 알고리듬 두뇌에 따라 랜덤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람이 실제로 사용한다고 하면, 그 경험은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 자체의 상호작용은 프로토타입 네 개 이상이 필요하지만 다음에 더 자세한 것이 나온다.)

첸의 설명을 들어 보자. “우리는 우리는 유사한 색상이 유사한 방식으로 혼합되도록 했습니다.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죠. 안료는 여러 가지 화학적 조합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유사해 보이기는 해도 서로 대단히 다른 혼합작용을 보이거든요. 우리는 정확하게 통제하고 싶었습니다. 색상을 혼합할 때 혼합하는 색상의 어떤 음영이 지나가는지 알면 혼합 과정에서 음영이 다른 색상에게 서둘러 전가되지 않게 할 수 있죠.” 아래 프로토타입의 피드백을 보면, 실험자는 여섯 번째 버전이 제일 자연스런 트랜지션이라고 생각했다.

100쌍의 색상으로 혼합을 어떻게 할지 알아낸 이후, 첸은 색조와 채도, 명도의 혼합도 보장하도록 사후-처리 과정도 추가시켰다. 첸의 말이다. “마지막으로 믹서 안에서의 색상 혼합이 간단하고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점이 남았어요. 이상적으로는 우리가 색상을 섞는 과정에 있다는 것조차 못 느껴야 합니다.”

The Mathematical Conundrum, Illustrated

그렇다면 어째서 컴퓨터는 인간과 색상을 달리 볼까? 펫슈닉의 설명에 따르면 아래 도식과 같다. 아래의 도식은 RGB 공간에서의 간단한 색상 혼합을 설명하고 있으며, 전면부 색상 Ca와 배경색인 Cb, 혼합요소 알파(0에서 1 사이), 그리고 결과로 나오는 색상 Co 간의 선형 혼합을 묘사한다.

“컴퓨터에서는 색상 대부분을 RGB 세 가지로 표현합니다. 노란색과 파란색을 섞으면 녹색이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초등학교에서 배우죠. 하지만 이 방정식에 집어 넣어 계산해 보면 다른 결과, 그러니까 회색이 나옵니다! 수학적으로 말씀드려서 노란색(1,1,0)과 파란색(0,0,1)의 혼합은 (0.5, 0.5, 0.5)로서 회색이죠. RGB가 색상 배열(color spectrum)의 한 점을 묘사하기 때문이지, 혼합시켰을 때의 색상 행위를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Making the Mixer Touch-Native

혼합의 해결책을 찾은 다음, 반복해서 완벽하게 하려면 더 많은 수고를 들여야 했다. 앨런의 말이다. “이전에는 우리 믹서와 같은 일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디자인을 점검하고 반복해서 개선시키기 위해 이전의 어떠한 툴보다 프로토타입을 더 많이 만들어야 했습니다.”

목표는 개념적인 일관성이었다. 앨런의 말이다. “두 색상이 보색인지 이웃색인지에 상관 없이, 한 바퀴 회전은 동일한 정도의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믹서에서 정말 천재적인 부분은 따로 있어요. 올바른 색상을 만들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겁니다. 파란색과 빨간색을 섞어서 보라색을 만드는 팔레트가 있다면, 이 보라색은 파란색과 빨간색에서 나왔기 때문에 주변색과 조화로운 보라색으로 나올 겁니다.”

앨런은 HTML로 만든 프로토타입 네 가지를 계속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아래 보이는 바와 같이 브라우저 안에서 돌릴 수 있으며, 앨런이 만든 프로토타입이 iOS 개발자인 첸을 도와서 프로그래밍 접근을 개선시킬 수 있었다.

첫 번째 프로토타입에서 팀은 핵심 혼합 제스쳐를 하나의 상호작용(interaction)으로 돌아가는지 알고 싶어했다. 앨런의 말이다. “훌륭하게 돌아갔습니다만, 전통적인 색조-채도-명도값을 통한 색상 통제는 영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색상 두 가지의 혼합으로 실험을 시작해 보았다.

두 번째 프로토타입에서 팀은 색상 간의 혼합을 탐구했다. 팀은 RGB와 같은 색공간과, 색조와 채도, 명도 변화가 지각적으로 고른 색공간 사이의 차이를 고려했다. 앨런의 말이다. “분명 지각적인 색상이 올바른 접근이지만, 우리의 혼합 모델을 엔지니어링으로 만들고 쇄신시키고자 해서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세 번째 프로토타입은 사용자 피드백에 관한 것이었다. 이 모션 프로토타입은 혼합 행위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를 탐구한다.

네 번째 프로토타입에는 부수적인 기능을 추가했다. 마지막 버전에서 팀은 이전까지 배웠던 것을 모두 다 합치고 색상의 저장과 이동용 팔렛트와 연동시키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색상 솔루션이 완성되자 팀은 애플에게 새로운 페이퍼의 빌드를 보내고 태풍 샌디호를 대비했다. 지난 주 FiftyThree가 있는 TriBeCa의 정전소동이 있었던 때에 앱이 앱스토어에 등록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완전히 깜깜한 어둠 속에서 색상에 대한 승리를 자축해야 했었다. 그들은 다락의 사무실에서 촛불을 켜서 파티를 벌였다. FiftyThree의 페이퍼는 이곳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The Magical Tech Behind Paper For iPad's Color-Mixing Perfection | Fast Company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스티브 잡스와 디자인 혁명


ARTS & CULTURE

How Steve Jobs’ Love of Simplicity Fueled A Design Revolution

Passionate to the point of obsessive about design, Steve Jobs insisted that his computers look perfect inside and out
By Walter Isaacson
Smithsonian magazine, September 2012,

디자인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관심은 어린 시절 집에 대한 사랑이 그 시작이었다. 집은 노동자가 많이 사는 동네로서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 사이에 있었고, 1950년대, 전쟁 이후 도시로 이주한 주민들이 대량으로 세운 저렴한 현대적 규격형 주택이었다. “모든 미국인”을 위한 단순한 현대적 주택으로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비전에 고무된 나머지, 조셉 아이클러(Joseph Eichler)와 같은 건축가들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벽으로 이뤄지고 지면이 개방형이며, 기둥-보가 노출돼 있고 콘크리트 판 바닥과 수많은 슬라이드형 유리문으로 이뤄진 집을 세웠다.

자신의 오랜 이웃 근처를 나와 같이 산책하면서 잡스는 “아이클러가 정말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라 말했었다. 그 동네는 아이클러 스타일의 집들로 이뤄져 있었다. “아이클러의 주택은 영리하고 저렴했으며 좋았어요. 깔끔한 디자인에다가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취향을 알려 줬죠.” 아이클러-스타일의 주택에 대한 그의 칭찬은 대중 시장용 제품의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스며들게 했다는 것이 잡스의 말이었다. “그리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 않지만 디자인이 훌륭하고 단순한 기능을 넣을 수 있을 때를 좋아합니다.” 그는 특히 아이클러 디자인의 깔끔하고 우아함을 지적했다. “애플의 오리지날 비전이었죠. 최초의 맥으로 하려 했던 것도 그것이었습니다. 아이포드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깔끔하고 친숙하며 재미나는, 차별화된 디자인은 잡스 치하 애플 제품의 특징이었다. 훌륭한 산업 디자이너로 애플이 알려지지는 않았던 1980년대, 잡스는 하트무트 에슬링어(Hartmut Esslinger)와 협력했고, 1997년부터는 조니 아이브와 함께 애플을 다른 기술 업계와 동떨어지게 만들 정도로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의 미학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애플은 세계에서 제일 가치가 높은 회사가 될 수 있었다. 애플의 주된 교리는 단순함(simplicity)이다. 깔끔한 룩앤필과 제품 표면에서 나오는 단순함만이 아니라, 각 제품의 본질과 엔지니어링의 복잡성, 그리고 각 컴퍼넌트의 기능을 앎으로써 깨닫는 단순함이다. 잡스는 정말 힘든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뭔가를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저변에 있는 도전을 진정 이해하고 우아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1977년에 나온 애플의 첫 마케팅 광고지 헤드라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

디자인의 단순함에 대한 잡스의 사랑은 그가 불교 수행자가 됐을 때부터 갈고 닦은 것이었다. 대학 중퇴 이후 그는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인도로 긴 순례를 다녀 왔지만 그의 감각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일본의 선불교였다. 인도 여행을 잡스와 같이 다녀온 대학 친구, 다니엘 코트키(Daniel Kottke)는 선이 잡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완전하고 미니멀리즘적인 미학, 극도의 집중에 대한 그의 접근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불교, 특히 일본 선불교가 미학적으로 탁월하죠. 제가 본 것 중에서 제일 고상했던 것이 교토의 정원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인도에서 돌아와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비디오 게임을 디자인하던 Atari에 야간 자리로 들어갔을 때에도 단순한 인터페이스를 좋아했다. Spacewar!와 같은 컴퓨터 게임은 MIT의 해커들이 개발했지만 Atari에서는 취한 신입생이라도 어떻게 하는 지 아는 게임이어야 했다. 복잡한 메뉴나 매뉴얼은 없었던 Atari의 Star Trek 게임 명령은 딱 두 가지였다. “1. Insert quarter, 2. Avoid Klingons”

1970년대 차별성 있는 산업 디자인을 보여줬던 얼마 안 되는 회사 중 소니가 있었다. 잡스의 집 차고에서 나와 이주한 애플의 첫 번째 사무실은 소니 영업부 사무실이 같이 자리한 빌딩 안에 있어서 잡스는 소니의 마케팅 자료들을 잠깐씩 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소니에서 일했던 대니얼 러윈(Dan’l Lewin)의 말이다. “꾀죄죄한 사람이 불쑥 와서는 제품 광고지를 어루만지더니 디자인 기능을 지적하더라구요. 그럴 때마다 매번 이 광고지 좀 가져갈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소니의 어둡고 산업적인 모양을 좋아한 잡스는 1981년 6월부터 콜로라도 주 애스펀(Aspen)에서 열리는 연례 국제 디자인 컨퍼런스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는 바우하우스(Bauhaus) 운동식의 깔끔하고 기능적인 접근을 많이 보았다. 당시 애스펀 인스티투트 캠퍼스에는 산세리프 서체와 가구, 실제 거주하는 방 등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가 소중히 간직하는 디자인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의 멘토인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와 루트비히 미스 판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처럼 바이어 또한 단순하되 영혼을 표현하는 디자인을 신봉했다. 깔끔한 선과 형태를 채용하여 합리성과 기능성을 강조하는 디자인으로서, 그로피우스와 미스가 설교한 디자인은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었다. 에이슐러(Eichler)처럼 미적인 감각은 대량 생산을 위한 기능과 결합돼 있었다.

잡스는 1983년 애스펀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디자인에 대한 칭송을 발표 했었다. 잡스 연설의 제목은 “미래는 예전과 같지 않다”였고, 소니 스타일 대신 바우하우스의 단순성이 지지를 얻으리라 예언했다. “현재의 산업 디자인은 소니 식의 하이테크적인 외양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포금 회색, 어쩌면 검정색으로서 이상한 것들을 하는 디자인이죠. 그렇게 하기는 쉽습니다만 위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대안을 제시했다. 제품의 성격과 기능에 보다 충실한 대안이었다. “우리가 할 것은 하이테크 제품이며, 그들을 깔끔하게 만들어서 제품이 최첨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작은 패키지 안에 맞게 만들고 아름다우면서 하얀색으로 할 수 있겠죠. 브라운이 전자제품에서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잡스는 애플의 만트라가 단순성이라고 계속 강조했다. “우리는 하이테크에 대해 밝고 순수하면서 솔직하게 만들 겁니다. 소니처럼 오로지 검정색 밖에 없는 중공업 스타일 말고요. 우리가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과 우리가 하는 제품 디자인, 광고는 모두 단순하게 만들자. 정말 단순하게로 모아집니다.”

잡스는 디자인 단순성의 핵심 부분이 제품을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단순성과 쉬운 사용이 항상 함께 하지는 않는다. 디자인이 너무나 매끈하고 간단해서 오히려 사용에 장애가 되거나 생경스러울 때도 있기 때문이다. 애스펀에서 잡스는 디자인 전문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직관적으로 분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디자인의 중심입니다.” 가령 그는 새 컴퓨터 매킨토시용 그래픽 화면을 만들 때 사용한 데스크톱 메타포를 칭송했다. “모두들 데스크톱은 직관적으로 다룰 줄 압니다. 사무실로 걸어 들어가면 책상 위에 종이가 놓여 있죠. 제일 위에 놓인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선권을 조정하는 방법 또한 다들 알고 있죠. 이미들 갖고 계신 경험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우리 컴퓨터를 데스크톱과 같은 메타포로 만든 이유라 할 수 있어요.”

잡스는 당시 산업디자인 업계에서 별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리하르트 자퍼(Richard Sapper) 램프를 좋아했지만 찰스(Charles)와 레이(Ray) 임스(Eames)의 가구, 디터 람스(Dieter Rams)의 브라운 제품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와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가 이룬 식으로 산업 디자인 세상에 힘을 줄 만한 거장은 없었다. 워싱턴의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디자이너인 마야 린(Maya Lin)의 말이다. “산업 디자인에서 뭐가 딱히 없었어요. 실리콘 밸리는 특히 전혀 없었죠. 그래서 스티브는 상황을 정말 바꾸고 싶어 했어요. 그의 디자인 감각은 매끈하지만 번드르르하지 않았습니다. 장난기도 많았죠. 그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했어요. 단순함에 헌신하는 선불교에서 나온 감각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자기 제품을 차갑게 만들지도 않았어요. 그의 제품은 재미 있었습니다. 그는 디자인에 있어서 열정적이었고 정말 심각했지만 그와 동시에 놀 줄도 알았어요.”

1984년에 나온 오리지날 매킨토시용 케이스를 만들 때, 잡스는 두 명의 젊은 디자이너와 같이 작업했다. 제라 마녹(Jerry Manock)과 테리 오야마(Terry Oyama)이다. 그들은 디자인안을 만들고 실제 석고로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맥 팀이 주위에 모여서 들여다 보고 자기 생각을 말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던 앤디 허츠펠드(Andy Hertzfeld)는 “귀엽다”고 칭했고, 다른 사람들도 만족해 했다. 그러자 잡스는 비판을 쏟아 부었다. “너무 상자 모양입니다. 곡선미가 더 있어야 해요. 첫 번째 사각면의 반경이 좀 더 커야 합니다. 그리고 비스듬한 면이 마음에 안 들어요.” 산업 디자인 용어에 대한 새로운 유창함과 함께, 잡스는 컴퓨터 측면과 연결된 각과 곡선 모서리를 언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잡스는 상당한 찬사도 곁들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매달 마녹과 오야마는 잡스의 비판에 맞춰 만든 새로운 모델을 들고 나왔다. 마지막 주물 모델은 정말 뛰어나서 이전까지의 모델은 모두 그 뒤에 서야 할 정도였다. 워낙 발전해서 잡스로부터 비판이나 주장을 못 하게 만들어버릴 정도였다. 허츠펠드의 말이다. “네 번째 모델부터는 세 번째와 거의 구분도 할 수 없겠더라구요. 그래도 스티브는 항상 비판적이었고 결정적이었어요. 전 알아보지도 못할 디테일에 대해 좋다 싫다 하면서 말이죠.”

어느 한 주말, 잡스는 다시금 팔로알토의 메이시 백화점에 가서 특히 퀴진아트 등의 주방기기를 연구했다. 그는 월요일, 맥 오피스로 들어와서 디자인 팀에게 퀴진아트를 사라 시키고, 퀴진아트의 선과 곡선, 사면에 따라 새로운 주문을 했다.

잡스는 매킨토시가 친숙해 보여야 함을 고집했다. 그 결과 맥은 인간의 얼굴과 유사해졌으며, 화면 바로 밑에 디스크 드라이브를 놓았고, 대부분의 컴퓨터보다 더 키가 크고 좁았다. 머리를 강조하는 형태였다. 밑부분 가까이의 구석은 온화한 턱을 방불케 했고, 잡스는 상단부의 플라스틱을 더 좁게 만들어서 크로마뇽인의 이마처럼 보이지 않게 했다. 이 매킨토시 케이스의 특허자는 마녹과 오야마만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도 올라가 있다. 오야마가 나중에 한 말이다. “스티브가 직접 선을 그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아이디어와 영감으로 이 디자인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려서 우리는 스티브가 말해주기 전까지 컴퓨터가 ‘친숙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몰랐었어요.”

잡스는 화면상에 나타나는 외양에 대해 강렬하게 집착했다. 특히 그는 각기 다른 레터링 스타일, 즉 서체에 신경 썼다. 신입생 때 리드 컬리지를 중퇴했을 때,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수업을 청강하면서 캠퍼스를 돌아다녔는데 그가 좋아하는 과목 중 하나가 서예였다. 잡스의 말이다. “세리프와 산-세리프에 대해 배웠어요. 각기 다른 문자의 조합이 얼마나 다양한지, 위대한 글씨체를 무엇이 위대하게 만드는지를 알았습니다. 아름답고 역사적이면서 예술적으로 묘했어요. 과학이 캡쳐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더 매혹적이었습니다.” 잡스가 스스로를 예술과 기술의 접목에 세웠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또다른 사례이다.

매킨토시는 비트맵 화면(화면상 각 픽셀을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켜거나 끌 수 있다)이기 때문에 우아한 서체부터 괴상한 서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체를 만들어서 화면상 픽셀별로 렌더링할 수 있었다. 이들 서체를 만들기 위해 잡스는 필라델피아 출신의 그래픽 아티스트, 수잔 케어(Susan Kare)를 고용한다. 그녀는 Overbrook, Merion, Ardmore, Rosemont 등 필라델피아의 Main Line 통근열차 역 이름에 따라 서체 이름을 지었다. 잡스는 이 과정을 대단히 마음에 들어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케어 사무실에 들러서 서체 이름에 대해 물었다. “그런 이름들은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서체 이름은 당연히 세계적인 도시이어야 하지!” 그래서 서체는 각자 시카고와 뉴욕, 제네바, 런던, 샌프란시스코, 토론토, 베니스로 바뀌었다. 나중에 잡스가 했던 말이다. “대학교 다닐 때 그 서체 수업을 안 들었더라면 맥에는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자간 맞춤 기능이 없었을 겁니다. 윈도가 맥을 그대로 베낀 이후로는, 어떠한 개인용 컴퓨터도 그렇지 못할 것 같군요.”

젊은 엔지니어, 크리스 에스피노사(Chris Espinosa)는 매킨토시용 계산기를 디자인할 때 잡스의 요구를 충족할 방법을 알아냈다. 그래서 첫 번째 시도를 해 보이자 잡스는 그에게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기본적으로 역겹군. 배경 색상이 너무 어두워. 두께가 잘못 나온 라인도 있고 버튼이 너무 커.” 에스피노사는 잡스의 비판에 따라 수정을 거듭했지만 수정을 할 때마다 비판도 새로워졌다. 그래서 어느 날 오후, 잡스가 지나갈 때 에스피노사는 해결책을 선보였다. “The Steve Jobs Roll Your Own Calculator Construction Set”였다. 이 셋트는 사용자가 선 두께와 버튼 크기, 각도, 배경 등의 속성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잡스는 웃지 않고 자신의 취향에 맞춰서 외양 설정을 하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흐르고 나자 그는 드디어 자기가 좋아하는 모양을 설정할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의 디자인은 향후 15년간 맥에 계산기로 탑재됐으니 말이다.

그의 초점이 매킨토시이기는 했지만 잡스는 모든 애플 제품을 관통하는 일관성 있는 디자인 언어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세계 정상급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브라운의 디터 람스처럼 누가 애플의 디자이너가 될지 콘테스트를 개최했다. 수상자는 소니 트리니트론 텔레비전 디자인을 책임졌던 독일 출신의 하트무트 에슬링어(Hartmut Esslinger)였다. 독일인이기는 했지만 에슬링어는 “애플의 DNA에 있을 미국의 유전자”가 있어야 한다면서, “헐리우드와 음악, 반항과 자연스러운 섹스 어필”이 가미된 “캘리포니아 풍”의 모양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가 제안한 지침은 형태가 기능을 따른다는 유명한 격언에서 따온, “형태가 정서(emotion)를 따른다”였다. 1980년대에 그가 애플용으로 개발한 제품으로는 하얀색 케이스가 있다. 견고하고 곡선형 모서리를 가졌으며, 통풍과 외양 모두를 위한 얇은 선으로 이뤄져 있었다.


Searching for a personal uniform, Jobs asked designer Issey Miyake for some black turtlenecks. He kept around 100 of them in his closet.

디자인에 대한 잡스의 열병에는 단점도 있었다. 1985년 애플로부터 축출당한 이유로 그의 예술적 감각을 채워주기 위한 과도한 비용과 일정 연기가 있었고, 뒤이어 그가 만들어낸 회사인 넥스트도 거대한 시장 실패를 경험했다. 다만 1997년 애플로 복귀를 요청받았을 때 그는 본능을 제어할 줄 알았고 합리적인 교환조건 세우기도 배웠다. 하지만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한 열정만은 버리지 않았었다. 네모난 베이지색의 범용 컴퓨터와 뮤직플레이어, 휴대폰과 같은 소비자 가전제품으로 채워진 시장에서 애플을 다시금 세우기 위해서였다. 거의 우즈베키스탄에서 디자인한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잡스가 애플로 돌아온 직후, 격려 연설을 위하 최고 관리자들을 소집했다. 그 중에는 애플 디자인 팀을 맡고 있었던 30대의 영국인, 조너선 아이브가 앉아 있었다. 조니는 애플을 그만 둘 계획이었다. 제품 디자인보다는 이윤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는 애플에 대해 진절머리가 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잡스의 이야기때문에 그는 퇴사를 다시 생각했다. 아이브의 말이다. “우리 목표는 돈벌기만이 아니라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던 스티브의 발표를 정말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철학에서 내린 결정은 우리가 그동안 애플에서 해 오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죠.” 곧 아이브와 잡스는 제일 훌륭한 산업 디자인 협력을 이끄는 관계를 형성했다.

다른 디자이너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아이브는 특정 디자인으로 들어가는 단계별 사고 과정과 철학 분석하기를 즐겼다. 잡스는 그 과정이 보다 직관적이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스케치와 모델을 지적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들은 짓밟았다. 아이브는 단서를 발견하여 잡스가 칭찬할 개념을 만들어냈다. 잡스는 아이브 안에서 표면적인 단순함 이상의 진실을 추구할 소울메이트를 발견했다. 디자인 스튜디오 안에서 아이브는 자신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단순함이 좋다고 가정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리적인 제품이 있으면 우리가 그것을 지배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복잡성에 대해 질서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제품이 주인에게 경의를 표하죠. 단순성은 시각적인 스타일만이 아니며, 미니멀리즘만도 아닙니다. 깔끔함만도 아니죠. 복잡함의 깊숙한 끝까지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진정 단순해지려면 정말 깊게 들어가야 해요. 가령 나사를 없애려면, 대단히 난해하고 복잡한 제품이 나올 수가 있어요. 제품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어떻게 만드는지를 이해해야 단순함을 가지고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을 없앨 수 있으려면 제품의 본질을 깊게 이해해야 합니다.”

잡스와 아이브가 공유했던 원칙이다. 디자인은 표면의 외양만이 아니며 제품의 본질을 반영해야 한다. 그 결과 애플에서 제품 디자인 과정은 엔지니어링과 제조방법까지 모두 통합돼 있다. 아이브는 애플 파워맥을 예로 들었다. “우리는 정말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 없애기를 바랬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이너와 제품 개발자, 엔지니어, 제조팀 모두가 전체적인 협력을 해야 하죠. 우리는 몇 번이고 시작을 되풀이했습니다. 이 부품이 필요한가? 다른 네 가지 부품으로 한 가지 기능을 할 수 있는가?”

산업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이 동일한 과정의 일부이어야 한다는 잡스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긴장은 있었다. 잡스가 산업디자인을 아이브의 팀으로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팀(존 루빈스타인이 맡았다)과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원래는 루빈스타인이 아이브의 상사였다. 분리는 둘 간의 사이를 좁히지 못했고 긴장감의 대립 관계가 터져 싸울 때도 종종 있었다. 다른 기업 대다수의 경우 엔지니어들이 요구사항을 적은 후에서야, 산업 디자이너들이 제품의 외양을 정할 수 있다. 잡스에게는 이 과정이 반대로 움직였다. 애플 초창기 시절, 잡스는 애플 III와 오리지날 매킨토시 케이스의 외양을 먼저 정하고, 그 다음에 엔지니어들에게 케이스에 맞는 부품과 보드를 주문했다.

축출당한 후, 애플 내 제품 제조 과정은 엔지니어-위주로 돌아갔었다. 애플의 마케팅 책임자인 필 실러의 설명이다. “엔지니어들은 프로세서와 하드드라이브같은 사양을 말하고 디자이너들에게 집어 넣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끔찍한 제품 밖에 안 나와요.” 그러나 잡스가 복귀하고 아이브와 협력한 끝에 균형감은 다시금 디자이너들에게 옮겨갔다. 실러의 말이다. “스티브는 우리를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것에 디자인이 통합적이라 말하곤 했어요. 디자인이 다시 엔지니어링을 통솔했습니다. 그저 반대로만 한 것이 아니고요.”

잡스-아이브 협력 하에 처음으로 나온 훌륭한 디자인적인 성공작은 가정용 소비자를 노린 데스크톱 컴퓨터, 아이맥이었다. 잡스는 조건을 특별히 정하였다. 올-인-원 제품으로서 키보드와 모니터, 컴퓨터를 모두 하나의 단순한 유닛으로 조합해야 하고, 상자에서 꺼내자마자 바로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 컴퓨터는 브랜드를 내세울 수 있는 차별화된 디자인이어야 했다.

아이브와 그의 최고 부하인 대니 코스터(Danny Coster)는 미래적인 디자인을 스케치하기 시작했지만 잡스는 그들이 만들어낸 십여 가지의 조형물을 거절했다. 그러나 아이브는 어떻게 하면 부드럽게 잡스를 끌어내는지 알고 있어서 일단 만든 모델이 모두 올바르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다만 한 가지 모델을 지적했다. 곡선형의 쾌활한 모양이되 움직이지 않는 조각처럼 보이지 않는 모델이었다. 아이브는 잡스에게 말했다. “책상에 막 도착한 듯한 느낌이랄까, 아니면 아예 곧바로 떠나버릴 듯한 느낌의 모델입니다.”

그 다음, 아이브는 그 모델을 가지고 작업했다. 이중적인 세계관을 가진 잡스는 환호하고 그 모델을 좋아했다. 그는 조형물을 들고 본부에 갖고 돌아다니면서 이사진과 신뢰하는 부하들에게 은밀히 보여줬다. 애플은 당시 다르게 생각하라는 광고의 데뷔를 축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는 기존 컴퓨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만 있었고, 마침내 잡스는 새로운 것을 갖게 됐다.

아이브와 코스터가 제안한 플라스틱 케이스는 바다 빛깔의 청색이었고, 투명하기 때문에 본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이브의 설명이다. “우리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필요에 따라 교체가 가능한 컴퓨터를 만든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투명한 케이스를 좋아했습니다. 색깔은 있지만 고정되지 않은 느낌. 뭔가 건방진 느낌이었죠.”

개념이 모두 은유적이었다. 현실적으로 투명한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링의 문제가 있었다. 잡스는 언제나 컴퓨터 내부의 서킷보드의 칩 배열마저 말쑥해야 한다 주장해 왔었다. 아무도 안 쳐다본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이 컴퓨터는 내부가 보였다. 따라서 내부 부품과 접합 부분을 만들 때 신경써야 했다. 쾌활한 디자인은 단순함을 전달하는 동시에 진정한 단순함이 끌어내는 그 깊이도 드러내고 있었다.

심지어 플라스틱 케이스의 단순성 그 자체도 상당히 복잡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아이브와 그의 팀은 애플의 한국 제조업체들과 협력하여 케이스 제조 공정을 완벽하게 만들고, 사탕 공장에 가서 어떻게 투명하면서 유혹적인 색상을 만드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 케이스 비용은 일반적인 컴퓨터 케이스 값의 세 배인 $60 이상이었다. 다른 회사에서는 아마 투명한 케이스가 판매량을 늘릴 것이기 때문에 더 높은 비용을 정당화시킬 수 있노라고 프리젠테이션하겠지만 잡스는 그런 분석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이맥 디자인의 끝마무리는 머리에 달린 핸들이었다. 기능성이라기보다는 보다 쾌활하고 기호적인 의미였다. 이 컴퓨터는 데스크톱 컴퓨터이며, 옮기면서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었다. 아이브의 설명은 아래와 같다.

“당시는 기술에 별로 친숙해 하지 않던 때죠. 뭔가 두렵다면 손도 대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도 무서워서 컴퓨터에 손대지 않을 걸요. 그래서 생각했죠. 손잡이가 있다면 관계 형성이 가능하다. 접근이 가능하다였죠. 직관적이기도 하고요. 만져도 된다는 허락의 의미였어요. 당신을 존중한다는 느낌도 줍니다. 불행히도 손잡이를 붙여서 제조하려면 돈이 매우 많이 들었어요. 예전의 애플이라면 손잡이를 고집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스티브는 정말 위대했어요. 그걸 보고는 ‘정말 멋지네!’라 말했으니까요. 구구절절 제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는 직관적으로 깨달았어요. 아이맥의 친숙함과 쾌활함의 일부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 후로 잡스와 아이브는 모든 애플의 미래 컴퓨터의 디자인을 이끌었다. 오렌지 조개와 같은 소비자용 노트북과 얼음덩이 비슷한 전문가용 데스크톱 컴퓨터도 나왔다. 벽장 뒤에 나타난 나팔바지처럼, 돌이켜 보면 그 당시로서 더 나아 보였지만 그러한 제품들은 너무 활기가 넘쳤다. 디자인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애플의 컴퓨터 디자인은 애플을 다른 컴퓨터와 다르게 만들었고, 애플로서는 윈도 세상에서 생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도 터져 나왔다.

평면 화면을 사용 가능하게 되자 잡스는 이제 아이맥을 대체할 때가 됐다고 결정내린다. 아이브는 뭔가 전통적인 모델부터 제시했다. 평면화면 뒤에 컴퓨터를 덧붙인 모델이었다. 잡스는 이 모델을 좋아하지 않았다. 순수함이 결여된 디자인이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잡스는 아이브에게, “뒤에다가 다 갖다 붙여서 할 거면 뭐하러 평면 화면을 내세웁니까? 각 요소가 서로 진정성을 갖게 해야 해요.”라 말했다.

잡스는 그날 아이맥 재편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집에 일찍 귀가하고는 아이브보고 오라고 했다. 그들은 잡스의 부인, 로렌과 함께 정원을 거닐면서 해바라기를 많이 심었다. 로렌의 말이다. “매년 정원일을 하는데 그 때 유독 해바라기가 매우 많았어요. 애들을 위한 해바라기 집이었죠. 조니와 스티브가 자기들 디자인 문제를 말하다가 조니가 갑자기 그이에게 묻더군요. ‘해바라기처럼 화면을 본체와 분리시키면 어떨까요?’ 조니는 바로 흥분하더니 스케치를 시작했어요.” 아이브는 이야기가 있는 디자인을 좋아했다. 그는 해바라기 모양이야말로 태양을 받을 수 있도록 평면화면을 유동성 있고 반응성 있게 할 수 있다고 봤다.

아이브의 새 디자인에서 보면, 아이맥의 화면은 움직일 수 있는 크롬 목에 붙어 있어서 해바라기만이 아니라 귀여운 램프처럼도 보였다. 애플은 이 디자인의 많은 부분을 특허화시켰고 대부분은 아이브를 발명자로 거명했으나, 한 가지만은 유독 잡스가 자기 이름을 주-발명자로 등재했다. “플랫패널 디스플레이에 붙어 있는, 움직일 수 있는 조립을 가진 컴퓨터 시스템”이다.

디자인으로서 단순함의 힘에 대한 잡스의 믿음은 2001년부터 그가 만들어낸 세 가지 소비자용 기기 성공작으로 정점을 이뤘다. 아이포드와 아이폰, 그리고 아이패드이다. 그는 오리지날 아이포드와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기 위해 매일같이 작업했다. 그의 주된 요구는 “단순하게!”였다. 그는 각 화면을 검토하고 엄격한 테스트를 했다. 노래나 기능을 원하는 경우, 클릭 세 번으로 가능해야 했다. 네 번이 넘어가는 경우에는 잔혹해졌다. 아이포드 팀의 리더였던 토니 퍼델(Tony Fadell)의 말이다. “사용자 인터페이스 문제를 두고 정말 고민할 때가 있었죠. 모든 옵션을 다 제시했다 여겼는데, 스티브는 ‘이건 생각해 봤지?’라 했었어요. 아예 문제나 접근법을 다시 정해버리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의 작은 문제는 사라져버렸어요.”

아이포드, 그리고 후의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긴밀하게 결합시킴으로써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 디자인의 단순성이라는, 1980년대 초반 잡스가 갖고 있던 통찰력의 성공이었다. 윈도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를 IBM과 Dell과 같은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라이선스를 준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달리, 애플은 처음부터 끝까지 견고하게 통합시킨 제품을 만들었다. 아이포드 첫 번째 버전의 경우 정말 그랬다. 모든 면면이 다 매끄럽게 결합돼 있었다. 매킨토시 하드웨어와 매킨토시 운영체제, 아이튠스 소프트웨어, 아이튠스 스토어와 아이포드 하드웨어/소프트웨어가 다 결헙돼 있었다.

덕분에 애플은 아이포드 기기를 Rio와 같은 경쟁 MP3 플레이어보다 훨씬 더 단순하게 만들 수 있었다. 잡스의 설명이다. “Rio와 다른 경쟁품들을 무너뜨렸던 것은, 걔네들이 복잡했거든요. 컴퓨터 상의 쥬크박스 소프트웨어와 통합이 안 되어 있으니 재생 목록부터 만들어야 했어요. 반면 아이튠스 소프트웨어와 아이포드 기기가 있으면 컴퓨터와 기기가 연동이 되죠. 복잡한 부분은 있어야 할 장소로 보내버릴 수 있습니다.”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는 이런 말을 했었다. “자연은 단순함과 통일성을 좋아한다.” 스티브 잡스도 그러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합치면서 그는 둘 다를 이룰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서거하고 내가 쓴 그의 전기가 출판된 이후 나는 책이 야기한 두 가지 상반된 반응에 놀란다. 잡스가 얼마나 거슬리고 심술 부리는 존재인지 놀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특히 젊은 기업가들이나 사업을 운영해본 적이 있는 이들은 그의 심술이 예술적인 감각, 디자인 완벽주의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집중한다.

두 번째 관점이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물론 잡스는 모시기 매우 힘든 인물이고, 정말 얼간이일 때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보스와 얼간이가 매우 많으며, 그들 대부분은 그렇게 심하지도, 얼간이도 아니다. 잡스를 특별하게, 가끔은 천재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따로 있다. 아름다움에 대해 불타는 듯한 본능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능력,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신념이다. 그 때문에 잡스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위해 최대한 힘을 쏟는 회사를, 우리 시대에서 그 중요성을 나타내는 제일 좋은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How Steve Jobs’ Love of Simplicity Fueled A Design Revolution | Arts & Culture | Smithsonian Magazin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구글에게 과세하라. 하지만 뭐하러?

Puces savantes

Sauver la presse ou rétablir l’impôt

Taxer Google, oui, mais pour quoi faire

mardi 6 novembre 2012, par Philippe Rivière

최근 “언론 구하기”의 표제로 아이디어 발명대회(Le concours Lépine)가 특정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특히 그 언론들은 구글을 지정하여 구글에게 세금을 제안했다. 사실 제안과 함께 경고도 함께 담겨 있었다. 언론사와의 협상을 거절한다면 “프랑스”에 대한 도발일 뿐이라면서 말이다. [1]

구글 이사회 회장 에릭 슈미트는 최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을 만나 언론과의 해결점을 모색했다. 하지만 언론협회가 제안하고 정부가 입안을 고려중인 법안 합의에는 실패했다. 이 법안은 뉴스 기사로 연결되는 비공인 하이퍼텍스트 링크를 금지하고, 지재권에 대한 “인접권(droit voisin)”을 창안하는 것을 골자로 되어 있다.[2]

언론사 사주들의 과장된 태도는 분명 검색엔진이라는 금고 안에 막대한 부를 쌓은 구글과 같지는 않다. 신문사들의 경우(물론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사도 마찬가지다) 광고로 큰 수입을 올려 왔기 때문이다. 인터넷 상 정보의 풍부함과 정보원의 다양함, 특정 관심사에 따른 정보 취득자의 취사선택 가능성 모두 인쇄된 신문의 구입을, 서서히 떨어뜨리고 있다. 이제는 언론을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보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광고주들 또한 웹과 “신 미디어”로 대거 옮겨가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와 안 알려진 전문 블로그 사이트에까지 광고를 심기 위해서다.

인터넷의 폭발이 전통적으로 허약한 언론사 사정을 해치고 있는 점만은 분명하다. CD와 책, 우편판매와 같은 다른 부문 또한 자금 모델이 무너지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괄목할 만한 신규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이라는 미명 하에 합법성을 가장하고 “인터넷을 부수어야” 할까? 말하자면 모든 인용과 정보원, 참조를 허용하는 수단인 하이퍼텍스트로 일어나는 기능과 부를 금지시켜야 할까? 언론 기사의 제목과 편집은 조회수와 공유, 그리고 경제성의 이유 사이에 나뉘게 마련이다. 프랑스만의 문제도 아니다. 독일[3]과 영국[4]에서도 이미 비슷한 제안이 나온 바 있다.

언론사들이 한 편으로는 구글의 인덱스를 비난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 자기 회사 기사의 조회수를 띄우기 위해 인위적으로 “검색최적화 기법(référencement, 영어로는 SEO)”을 구사하려 열심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싸움에서는 구글이 유리한 입장이다. 또한 언론사들은 원하는 경우 구글 로봇의 검색을 금지시키는 것 쯤이야 쉬운 기술이라 설명하려 한다. 실제로 브라질 언론사들이 집단적으로 구글 인덱스 참여를 거절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그들의 트래픽은 5% 정도 감소했다.[5]

구글이 쌓아 놓은 “가치의 공유”를 언론사 사주들도 꿈꾸지만 그들은 웹을 결코 부드럽게 간주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블로그는 거의 비열한 존재이고, 그들이 논하는 뉴스는 루머이며, 위키피디어와 같은 협동적인 백과사전은 “거의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들의 사랑은 장미빛 메시지 서비스로 막대한 부를 안겨다 줬던 미니텔과 함께였다… 누벨 옵제르바퇴 편집장의 시각은 이러하다. “제일 미치게 비방하더라도 웹에 만연해 있는 법적 공백 덕분에 보호를 받죠. 그런 것들이 자유로이 돌아다니면서 명예에 피해를 주고 역사 음모론자들에게 믿음을 실어줍니다. 어느 경우에서든 민주주의의 제일 극단적인 반대자들이에요. 하지만 우리 언론은 사실관계에 실수가 있으면 고칠 때가 많고 […] 많은 경우 스스로 한 만큼 받는 대우에 대해 비판적인 분석을 내놓습니다. 일반적으로 언론은 실수에 대해 비판을 받고, 그게 정상입니다… 언론 안에서는요..” [6]

정부를 마냥 비판하기 좋아하는 언론사 간부들이 특정 업계는 정부에게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재미있다. 국가가 단순히… 일률적으로 법인세를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존이나 아이튠스의 애플과 같은 인터넷 부문의 기업들처럼 구글도 유럽 세무구조의 빈틈을 모두 활용하여 세금을 크게 비하고 있다. 이들은 소위 “전송 가격(prIx de transfert)”를 활용, 자신의 수입과 이익을 조세회피지역으로 보내기에 앞서 가령 룩셈부르크나 아일랜드같은 곳에서 보고한다. UMP당의 총비서, 드 라 로디에르(Laure de La Raudière) 의원의 말이다. “미국 인터넷 대기업들의 재무 최적화로 한 해 5억 유로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추정입니다. 대통령과 슈미트 회장 간의 의제는 반드시 이것이어야 합니다! [7]” 10월 31일, Le Canard enchaîné에 따르면 국세청은 뭣보다 구글에게 4년간 회계년도에 따르는 10억 유로의 징세를 요구한다고 한다. 요즘처럼 재정이 부족한 시기에, 예산에 누수가 가게 한 이런 세금 문제야말로 언론사들의 집중 “사격”을 받아야 할 주제가 아닌가? 하지만 이 세금은 언론사 수입과는 별 관계가 없다.

언론 환경은 변했지만 언론사들은 좋았던 미니텔 시절을 다시금 끌어들이려 헛되이 노력할 것이다. 공공의 단말기를 통해 접속을 완전히 통제하여 과금을 물리던 그 체제로 말이다. 본지는 1995년 2월, 프랑스 언론으로서 최초의 인터넷 사이트를 열고, 매우 낮은 가격으로 기사 모음집 CD-ROM을 판매해 온 개척자로서 오래 전부터 실험과 공개, 공유를 기꺼이 실천해 왔었다. 신문을 독자에게 판매하고 독자를 광고에게 판매하는 방식의 사업전략은 물이 새고 있다. 인터넷 때문에 언론사들은 이제 새로운 모델을 발명해야 한다. 우리는 르몽드 디플로마틱에 대해 읽고 지원하며 공유하기 원하는 독자들을 훨씬 더 많이 포함시켜서 새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1995년, 르몽드 디플로마틱의 친구들 위원회를 설치한 이유였다. 이 위원회는 군터 홀츠만(Gunter Holzmann)과 함께 본지의 대주주가 됐다. 구독과 기부금을 끌어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8]

언론 고유의 사회적인 역할(별로 그렇지 못 할 때가 있지만 말이다…)때문에 “언론”에 대한 일반적인 공공지원이 필요하다면, 현재의 모델을 계속 이끈다거나, “기존” 언론사에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를 쥐어 주기보다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전문성과 기술 및 편집 교육에 투자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Notes
[1] Nathalie Collin, « Face à Google, l’Etat doit jouer son rôle », entretien au Journal du Dimanche, 28 octobre 2012.

[2] Olivier Tesquet, « Taxe Google : “Télérama” dévoile le projet des éditeurs de presse », Télérama, 21 septembre 2012.

[3] « Allemagne : la “Lex Google” veut faire payer les liens vers des articles de presse », Ecrans.fr, 6 mars 2012.

[4] « Faut-il taxer Internet pour sauver la presse écrite ? », Courrier International, 4 octobre 2012.

[5] Aurore Gorius, « La presse brésilienne se passe (presque) de Google, Arrêt sur images, 21 octobre.

[6] Laurent Joffrin, « La Commission Jospin et les dérives du web », Temps Réels-Le Nouvel Observateur, 27 août 2012.

[7] Laure de La Raudière, « Google et la presse : François Hollande, taxer Google ne résoudra pas le problème », Le Plus, 31 octobre 2012.

[8] Serge Halimi, « “On n’a plus le temps” », Le Monde diplomatique, octobre 2012.

Taxer Google, oui, mais pour quoi faire – Les blogs du Diplo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구글은 어떻게 조세당국을 얕보는가?





HIGH TECH

COMMENT GOOGLE ET APPLE NARGUENT LES INSPECTEURS DES IMPÔTS

“Sandwich hollandais”, “double irlandais” : les géants du high-tech déploient des systèmes imparables pour échapper au fisc.

06/11/12 Par Paul Laubacher


애플과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의 공통점으로 무엇이 있을까? “네덜란드 샌드위치”에 대한 사랑이다. “더블 아일랜드”라고 해도 좋다. 모두 고도로 세련된 조세회피 시스템을 가리키는 별명이다. 목표는? 세금을 내지 않은 하이테크 대기업들이 수 십억 유로를 벌어들이기이다. 정부로서는 유감스러운 일이다.

IRIS(프랑스 국제관계 전략 연구소) 연구위원 에릭 베르니에(Eric Vernier)의 설명이다. “조세 회피 시스템을 구축한 다국적기업들은 한 가지를 염두에 둡니다. 세율이 낮은 곳에서 최대한 많이 벌어들이고, 프랑스처럼 세율이 높은 곳에서는 적게 벌자이죠.”

La méthode parfaite : le prix de transfert

그러니까 이런 재무 시스템은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곳에서 거둔 회사의 수입을, 세율 12.5%를 넘지 않는 아일랜드의 회사로 보내는 행태이다. 특정한 경우 이동시킨 수입은 중계하는 회사 네트워크망을 이용하여, 네덜란드를 통과한 다음, 조세회피 지대인 버뉴다 같은 곳을 향한다. 그곳의 법인세율은 아일랜드보다도 낮은 5%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영국은 24%, 프랑스는 33%이다.

에릭 베르니에는 신기술 대기업들이 특히 사용하는 재정 수법을 “전송 가격(prix de transfert)”라 부른다. 다국적기업이 제휴 회사에서 다른 제휴 회사로 자본을 이동시킬 때 사용하는 기법이다. 그의 설명이다. “같은 그룹 사이에서 이동을 해야 합니다. 모회사는 조세회피지역에 있으면서 세율이 높은 나라에 100 유로나 200 유로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지사를 세우는 것이죠. 그러면 이 제휴사는 소비자에게 210유로에 팝니다. 제휴회사는 거의 남는 것이 없지만 모회사가 제일 큰 이익을 가져가죠. 완벽하게 합법적입니다.”

실제 통계를 보면 이 수법의 효율성을 알 수 있다. 아마존은 유럽 본사를 룩셈부르크에 두고 있으며, 2011년 거의 2,600만 유로의 수입을 거뒀지만 영국에 낸 세금이 230만 유로에 불과했다. 반면 애플은 영국에 620만 유로의 세금을 지불했다. 영국에서 거둔 수입의 7.2%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이 만든 “재정 최적화”의 세계적인 시스템이 잘 나와 있다. 애플은 외국에서 거둔 이익 총합의 2%만을 세금으로 지불했다.

Google face au fisc français

이런 재정 수법이 주목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베르니에에 따르면 2008년 경제위기 이후로 이런 기법이 증가했다고 한다. “정부는 지원을 위한 재원을 찾기 원했어요. 그런데 대기업들이 이익은 엄청나게 발면서 세금은 거의 지불하지 않더라 이거죠.” 조세 당국은 이 수법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프랑스에서 조세당국의 주목에 든 회사는 구글이었다. 10월 30일자, “Canard enchaîné”의 보도에 따르면 국세청(Direction générale des Finances publiques)은 구글에게 10억 유로의 세금을 요구했다. 구글은 상업 활동을 한 4년 동안 프랑스에서 거둔 수입을 아일랜드 지사로 전송했다. 그 다음 아일랜드의 구글 지사는 당국에 수입을 보고하지 않았다. “구글 프랑스와 구글 아일랜드 사이에서 일어난 ‘전송 가격’에 대해 조사가 일어나고 있다”가 Canard지의 보도이며, 구글은 같은 날, 납부 세액을 정정하지 않을 것이라 발표했다.

추측치에 따르면 구글은 2011년 프랑스에서 12억 5천만에서 14억 유로를 벌어들였으며, 대부분은 인터넷 광고 수입이었다. 하지만 구글은 수입액을 1억 3,800만 유로로 보고하여 500만 유로만을 세금으로 지불했다.

Owni는 125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분석하여 구글 아일랜드 유한회사의 2011년 수입을 밝혀냈다. 전체적으로 구글 아일랜드는 124억 유로의 수입을 거뒀으며, 90억 유로의 총이윤을 올렸다. 의심을 안 살래야 안 살 수가 없다.

2011년 6월, 파리의 구글 프랑스 본사를 국세청이 조사했다. 구글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2012년 10월 31일, 파리 상소법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국세청은 구글 아일랜드가 사실, 구글 프랑스의 인력과 자본을 이용하여 세금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상업 활동을 했으며, 그에 따른 적절한 회계 장부 기재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고 보았다.

본지와 인터뷰를 가진 세무 전문 변호사인 미셸 탈리(Michel Taly)의 말이다. “구글은 재무적인 조정 말고도, 사업모델 자체가 모호합니다. 구글이 실제로 보이지 않은 서비스를 주로 수입을 거두는 곳에서 팔며, 소비자는 아무 것도 지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광고주와 구글 사이의 관계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누가 무엇을 어디에서 얼만큼 사는지 알지 못해요. 국경이 없습니다.” 국경이 없다면 조세권 또한 잃을 수 밖에 없다.

미국 헌법을 작성할 때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죽음과 세금만큼 분명한 것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프랭클린의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아무 것도 분명하지 않다.

Comment Google et Apple narguent les inspecteurs des impôts – Obsession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iOS의 다음 시장은 텔레비전보다는 자동차이다.

Apple’s next major market for iOS may be automotive

By Daniel Eran Dilger

Thursday, November 08, 2012, 04:40 pm

Over the past two years, pundits have focused on living room TVs as the most likely new market for Apple to expand into, but evidence suggests that the company’s next big step for iOS is more likely to involve the automotive market.

애플의 인터넷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책임자인 에디 큐가 최근 애플의 시리 및 지도 서비스의 책임을 부여 받았다. (전에는 스콧 포스탈의 iOS가 맡고 있던 기능이다.)

그는 또한 페라리 사의 이사진으로 거명됐으며, 페라리는 인터넷-기반 상거래의 경험을 주된 이유로 인용했다. 그렇지만 애플과 특별한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 간의 연결점은 단순히 애플을 자동차 시장으로 확대시키려는 증거만이 아니다.

애플이 최근 소개한 시리와 지도는 자동차 업계에 iOS를 통합시킬 재단사 역할이며, 애플이 10년 넘게 운영해 온 “Made for iPod” 통합 프로그램의 논리적인 확장이랄 수 있다.

지난 해 애플 내 최대 개발팀 중 하나로 떠오른 시리는 페이스타임 영상 챗과 함께 천억 달러 규모의 거실 시장을 목표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이미 음성으로 돌아가는 “스마트” TV 및 영상회의 셋탑 박스가 이미들 나와 있지만 그들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 애플은 시리를 포함한 텔레비전 전략에 대해 이렇다 할만한 제안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애플은 올 여름, Eyes Free라는 발표를 통해 자동차용 애플리케이션과 시리를 이미 연결시켜 놓았다. Eyes Free는 iOS 기기들을 자동차와 보다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프로그램으로서, 음성 명령을 통해 화면을 켜지 않고서도 답을 받을 수 있는 개념이다.


이 발표는 우연히도 “산만한 운전(distracted driving)”을 줄이려는 미국 국립 고속도로 교통안정청(US National Highway Traffic Safety Administration)의 새로운 시도와도 겹친다. 주 및 연방 정부 차원에서 운전중 휴대폰 통화때문에 일어나는 사망을 줄이려는 여러가지 시도 중 하나이다.

Living room offers little room for growth

지난 수년간 HDTV와 관련된 애플 루머가 그치지를 않았다. 그러나 자동차 시장에서 애플이 가진 잠재성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가 안 됐다. 특히 애플이 양 시장 모두에 iOS를 밀어 넣었기 때문에 관련된 수요와 애플이 이미 양쪽 측면 모두에서 발표한 작업에서 나올 잠재적인 매출이 얼마나 다를지 알아보면 놀랍다.

2006년 10월, 스티브 잡스는 당시 새로웠던 애플 티비의 프로토타입을 선보였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애플 티비는 2007년, 오리지날 아이폰을 선보인지 수 개월 후에 판매를 시작했다.

그 이후로 아이폰은 국제적으로 애플 최대의 제품으로 등극했고, 애플 티비는 계속 “취미”로 남아 있다. 그런데 적어도 판매대수로 보면 애플티비는 2006년 당시 애플의 전체 맥 사업에서 판매하는 맥과 거의 비슷한 규모로까지 성장했다. 이제는 인기 많은 제품이 애플 티비이다.

그러나 $99하는 애플 티비의 마진은 맥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애플이 현재 텔레비전 셋톱박스 판매의 리더로 나아갈 여지는 거의 없다. 추가적으로 말하자면 MP3 플레이어와 스마트폰 시장과 달리 HDTV 자체와 외장형 셋탑박스는 이윤이 남는 시장이 아니다.

따라서 애플이 iOS를 텔레비전 시장에 공격적으로 밀어 넣을 이유가 별로 없다. 기존 수 백만 달러의 손실을 본 TiVO나 수 십억 달러의 손실을 본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HD-DVD, 혹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3/블루레이와 같은 기존의 기기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소프트웨어나 구독 서비스를 판매하려는 시장 정도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경쟁사들이 실패했다고 하여 애플이 그 시장에서 돈을 벌지 못하리라는 말은 아니다. 애플의 아이패드는 10년에 걸친 마이크로소프트 태블릿의 실패 끝에 등장했으며, 이제 3년이 지났지만 애플은 태블릿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제일 가까운 경쟁사들이 하드웨어 값을 낮춰 손해 보며 파는, 유사-엑스박스 전략으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판매하려는 플랫폼을 일구려는 시장이 태블릿 시장이다.

노키아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업체들 절대 다수는 돈을 잃고 있으며 수많은 PC 업체들은 저마진의 넷북과 저마진의 노트북, PC를 판매하려 고군분투중이다. 애플은 계속 프리미엄 가격의 고급 컴퓨터를 판매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TV 시장은 애플도 돈을 벌어들이기 어려워 하는 얼마 안 되는 시장 중 하나다.

그 대신 애플은 애플 티비로 최소한의 이윤을 계속 쌓아왔으며, 애플티비를 아이튠스 콘텐트를 재생시키는 악세사리, 혹은 에어플레이를 통해 맥과 iOS의 영상을 무선 스트리밍하는 악세사리로 제공하고 있다.



아이포드와 iOS, 오에스텐 맥 데스크톱의 빠른 개발과는 사못 다르게, 애플은 에어플레이와 에어플레이 미러링, 넷플릭스, 훌루+를 추가시키고 스포츠 앱을 통합시키는 등 애플티비의 개선에 제한적인 자원만을 집중해 왔다. 단 애플은 타 개발사에게 무제한적인 문을 열어준 적이 전혀 없었다.

Automotive looking a lot like smartphones before the iPhone

전문가들 대다수가 자기들 상상 속의 잠재적인 텔레비전 시장에 집중해 왔지만 애플은 자동차 업계에도 동일한 노력을 추구해 왔었다. 자동차 업계는 현재의 HDTV 시장보다는 오히려 아이폰 직전의 스마트폰 시장과 매우 유사하다.

카오디오에서 지도와 내비게이션에서 음성 기반의 검색 및 정보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스마트” 자동차용 제품이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2006년 당시 스마트폰과마찬가지로 스마트 자동차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값비싼 사치품으로 간주되고 있고, 그렇다고 잘 돌아가지도 않으며, 혼탁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2006년까지의 스마트폰 시장과 유사성은 또 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 시스템 시장을 노키아가 지배한다는 사실이다(물론 마이크로소프트 Win-CE 기반의 Auto PC 플랫폼도 약간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실제 시스템의 판매는 자동차 업체들이 긴밀하게 통제하고 있다. 통신사들이 휴대폰의 브랜딩과 배급을 통제했던 것과 비슷하다.

Apple’s iPod integration

자동차 업계와 애플 간의협력은 스마트폰과 아이포드 홈씨어터와도 궤를 같이 한다. 처음 애플은 아이포드를 여러 업체의 기기와 통합하는 방법만을 제공했었다. 아이튠스와 블루투쓰 iSync 데이터 통합을 Palm Pilot과 같은 PDA와 여러가지 휴대폰 모델에 통합시켰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날로그 출력 이외에도 애플은 아이포드를 위한 초보적인 시리얼 데이터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었다. 초기 아이포드 모델에는 헤드폰 잭 주변에 추가적인 접속 링을 사용하는 원격 리모트를 포함하고 있었다. 단 아이포드 세 번째 세대는 특별한 4-핀짜리 시리얼 인터페이스를 헤드폰 잭 옆에 놓았고, 4-핀 짜리 간단한 시리얼 라인 외에도 USB를 제공하는 30-핀 짜리 독 커넥터를 추가시켰다.

애플은 자동차 스테레오와 같은 기기를 연결하여 기본적인 시그널을 아이포드로 보내 재생과 멈춤, 그리고 결국 외장 시스템(독 악세사리나 자동차)이 검색, 네비게이션, 그리고 재생중인 곡 정보 표시, 음성 녹음 등의 기능을 실험했다.

간단한 외장형 재생 컨트롤은 처음에 iPod Accessory Protocol이라 불렸다. 하지만 기능이 증가하면서 애플은 셔플 재생과 아티스트, 제목 정보의 표시, 곡 목록을 통한 찾기, 심지어 AiR(Advanced iPod Remote)라는 시스템을 통한 앨범아트 표시 지원까지 추가시켰다. 애플은 “Made for iPod” 라이선싱 프로그램 내부에 될 수 있는 한 원격 기기와의 연결성을 최대한 비밀로 숨겨 왔다.

iPod integration in automotive

몇 년이 안 되서 애플의 아이포드 판매와 아이포드 통합성에 대한 관심은 크게 늘어났다. 덕분에 저렴하고 간단한 형식의 시리얼 리모트 컨트롤이 보다 복잡하고 비싼 USB로 옮겨갈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자동화 디자인이 세련화된 것 또한 내장형 USB 지원의 극적인 확대를 가져왔다.

2004년 애플은 BMW와 함께 BMW 및 미니에 대해 USB 아이포드 연결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뒤이어 2005년에는 메르세데스-벤츠와 볼보, 니산, 알파로메오, 페라리하고도 파트너쉽을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FM 트랜스미터를 사용하여 자동차 라디오를 통해 오디오를 연주하는 기능은 물론, 핸들 컨트롤과 계기판 표시를 나타내주는 완전한 USB 통합도 제공했으며, 이는 연결된 아이포드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당시 애플의 제품 마케팅부 부사장 필립 실러는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전세계 자동차 회사 거의 대부분은 2005년에 아이포드와 자동차 통합을 작업했습니다. 아이포드 고객들은 음악을 어디건 자동차와 함께 가져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요 자동차 업체들과 협력하여 고객들에게 통합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2007년, 애플은 새로이 아이폰과 아이포드 터치를 선보였는데, 이들 기기에도 비슷한 아이포드 통합성을 지원했다. 곧 애플은 블루투쓰를 추가시켰고, 덕분에 USB 아이포드가 그러했듯 아이포드의 통제를 아예 넘겨받지 않아도 자동차가 오디오 재생 메뉴를 조절할 수 있게 해 놓았다. 호출도 통합시키면서 말이다. 이 해에 애플은 새로운 아이포드 나노에도 블루투쓰를 추가시켰다.

Car integration to wholesale replacement

2010년 애플은 iOS 4의 기능으로 “iPod Out”을 선보인다. 두 번째 세대 이후의 iOS 기기들이 전통적인 아이포드 인터페이스를 자동차 계기판에 표시시키는 기능이다(다만 재생 컨트롤은 자동차 제조업체에게 맡겼다).

다시금 BMW가 해당 기능의 초기 파트너였다. 애플은 클래식 아이포드의 쉽고 일관성 있는 인터페이스로, 여러 자동차 업계의 괴짜 비표준 인터페이스를 대체할 수 있기 희망했다.


하지만 당시 시점에서 보자. 아이폰과 아이포드 터치의 성공이 훨씬 더 기본적인 아이포드의 성공을 대체하고 있던 시절이기 때문에, 단순한 “클래식 아이포드”를 유일한 인터페이스로 내세우는 것은 오래 갈 수 없었다. BMW도 그 이후 iOS와의 통합을 더 긴밀하게 하는 “BMW apps” 프로그램을 별도로 착수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물론 iOS 앱을 포함, iOS 앱의 기능과 연동할 수 있도록 자동차용 앱을 다른 개발사들이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터 준 것이다.

BMW는 자사의 iDrive라는 자동차용 오락/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애플의 아이포드 및 iOS 기기와 통합작업을 했지만 애플은 2010년 보다 세련된 앱을 돌릴 수 있는 큰 화면의 아이패드를 선보였다. 이와 함께 애플은 내부적으로 TomTom의 Tele Atlas 지도와 협력을 맺고 지도 및 내비게이션 시스템 작업을 시작했고, 음성 비서 서비스인 시리는 2011년 선보였다.

그저 아이포드를 자동차 오락 시스템과 통합시키는 대신, 애플은 이제 올 여름, 시리와 통합된 지도를 선보여 갑자기 자동차 전체 오락 시스템을 제공할 위치에 올라섰다.

Existing players in auto navigation systems

애플은, 2007년 지도 업체인 Navteq을 인수한 이래 노키아가 지배해 온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을 준비해 놓았다. 지난 해 노키아는 Navteq이 원래 갖고 있던 독립적인 자회사를 Nokia Location & Commerce에 통합시켰다.

노키아의 Navteq이 여러 자동차 업체와 협력관계를 체결하여 Navteq 지도를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라이선스 줬지만 노키아의 주력 사업은 보통의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급속도로 옮겨 갔다. 애플의 아이폰이 가속화시킨 현상이었다.

너무나 상황이 안 좋았던 노키아는 급기야 2011년 마이크로소프트와 파트너쉽을 체결하여 윈도폰을 선보이기로 발표한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윈도폰의 실패는 노키아에게 수 십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안겨다 줬고 노키아는 한 때 거의 지배했던 시장의 통제권을 급속도로 빼앗기고 있다. 결국 지도마저 애플이 진입을 위협할 정도로 약화되고 말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Auto PC 제품(원래는 Windows CE 기반으로서 최근 표준 임베디드 버전의 윈도로 포팅됐다)은 마이크로소프트와 파트너쉽을 맺은 포드 사의 “Sync” 외에는 거의 진출하지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자동차 시스템은 폰과 음성-기반의 내비게이션과 음악의 통합성을 제공하고 있다.

Eyes Free Siri

올 여름 iOS 6을 WWDC에서 소개할 때 애플은 “Eyes Free”라는 새로운 구상을 발표했었다. 표면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여러 자동차 업체들이 iOS를 자동차와 보다 더 통합시키는 것으로 나와 있다. 여기에는 BMW와 제너럴모터스, 랜드로버, 재규어, 아우디, 토요타, 메르세데스-벤츠, 혼다, 크라이슬러와 같은 친숙한 업체들이 올라와 있다.


스콧 포스탈이 시연한 Eyes Free는 통합된 iOS 기기의 시리를 표준 핸들로 불러들여 화면을 쳐다보지 않은 채 음성 기반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BMW의 iDrive 시스템은 다른 자동차 업체들이 만든 유사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내장 화면상에 나타나는 오락 및 내비게이션 시스템으로서 손으로 동작하는 다이얼 컨트롤로 움직인다. 음성-기반의 시스템이 약간 있기는 하지만 특정한 방식으로 간단한 문장만 가능하다.

반면 애플의 시리는 자연언어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질문하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다만 시리의 경우 세련된 소음 감소 및 스피커를 이해할 수 있는 오디오 프로세싱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다. iOS 기기상에서는 다중의 마이크로 개선된다. 단 자동차에서는 도로 소음은 물론, 운전자와 기기 간의 훨씬 더 긴 거리도 문제이다. 그렇지만 Eyes Free 프로그램은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애플이 공개하지 않고 있다.)

애플의 시리 웹페이지를 보면 “자동차 제조업체들과 협력하여 시리를 음성 통제 시스템에 통합시키는 작업중”이라면서, “집중을 위해 iOS 기기 화면을 켜지도 않는다. Eyes Free 기능이 있으면 시리를 통해 전화를 걸거나 음악을 선택, 재생할 수 있고, 텍스트 메시지를 듣거나 작성하고 지도를 사용하거나 내비게이션을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알림을 듣고 일정 정보를 찾거나 할 수도 있다.”고 쓰여 있다.

애플이 아이포드 통합을 제공했을 때처럼 Eyes Free를 채택하도록 많은 수의 자동차 업체들을 확신시킨다면, 애플은 값비싼 자동차용 오락/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이미 친숙한 iOS 기기라는 대안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BMW와 다른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Eyes Free에 서명하지 않았다면 어째서 음악 저장용으로 하드드라이브와 함께 아이패드와 유사한 화면, 검색과 내비게이션을 위한 지도를 탑재한 자사의 자동차용 오락 시스템을 없앨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자동차 업체들은 고객들이 요구하기 때문에 애플에게 플랫폼과 소프트웨어 개발을 맡기려 할 것이다.

Eyes Free은 매우 간단하다. 자동차의 핸들에 홈버튼을 놓아, 사용자가 iOS의 시리를 아이패드와 아이폰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그대로 쓸 수 있다. 나머지 패키지에는 오디오 재생과 전화 통화를 위한 기본적인 블루투쓰 통합성을 포함한다. 현실적으로 자동차 업체들은 이미 팔고 있는 하드웨어를 그대로 집어 넣을 수 있지만, 사용자들은 손수 작동해야 하는 자동차 회사의 메뉴 내비게이션보다는 대부분 시리를 이용할 것이다.

Eyes Free turns a blind eye to ads

모든 일을 시리로 처리하여 사람들이 시리에 적응하게 되면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자동차 업체들에게 팔고 있는 화면형 시스템이 자동차 스테레오 시스템과 동일한 운명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이 시장은 애플 아이포드가 음악 및 포드캐스트 재생 기기로 선호받자 붕괴된 시장이었다.

즉 애플이 iOS 기기 기능을 확장시켜서 자동차 오락 시스템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가령 FM 라디오 지원 추가를 들 수 있겠다. 이미 3G가 가능한 iOS 기기에 심어져 있었으나 그동안 꺼져 있었다.) 동시에 시리와 지도에 대한 애플의 전략도 설명할 수 있다.

iOS 6으로 소개된 애플의 새 지도와 구글의 무료 지도 간의 갈등을 과장시키는 관측통이 많지만, 애플의 진정한 목표는 구글이 아니라 오히려 Navteq으로 라이선스를 받고 있는 자동차 내비게이션 업계의 노키아이다. 특히 검색과 지도, 음성-기반의 일정, 업무, 메시지 등의 시리 기능을 개선시킴으로써 애플은 차별화된 하드웨어를 더 많이 판매하고 그런 기능을 자동차용 기능으로서 업체들에게 라이선스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반면 구글은 비록 지도와 음성-기반 서비스를 주도하고 있지만 애플의 시리 기능을 복제하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광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주의를 분산시키지 않은 오디오화 된 정보를 원하기 때문에 광고 의존 모델로는 돈을 벌기 힘들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지도+내비게이션은 이미 팝업 광고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 광고가 광고주들에게 웹상의 유료 검색 광고와 동일한 가치를 주지는 않는다. 게다가 내비게이션을 켰을 때 유료 광고를 듣고 싶어할 운전자도 없을 것이다.

애플의 Eyes Free 구상은 내년에 나올 신규 모델에 탑재될 것으로 보이며, 애플이 간단한 아이포드 자동차 통합 방식을 음성 기반의 보다 세련된 iOS 통합 방식으로 복제해낼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할 것이다.

Apple’s next major market for iOS may be automotiv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스큐어몰피즘이 애플의 디자인 문제가 아니다.

Apple’s design problems aren’t skeuomorphic

MON, NOV 5, 12

지난 주, 애플의 조직 변화에 대해 발표한 팀 쿡의 서한에서 인용한다.

조나단 아이브는 산업 디자인 리더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회사 전반적으로 HI(휴먼 인터페이스)에 대한 리더십을 보여주며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그의 놀라운 디자인 미학은 10년 이상 애플 제품의 외양과 느낌을 견인해온 주역이다. 수많은 애플 제품의 얼굴은 우리의 소프트웨어이며, 조니가 가진 기술의 확장은 애플과 경쟁사들 간의 간격을 넓힐 것이다.

Sir Jony Ive needs no introduction

아이브의 산업 디자인 작품은 애플 부활의 핵심 중 하나였다. 미학적인 면에서 끈질기고 반복적인 단순함 및 기능에 대한 집중은 이제 전설이다. 본다이 블루 아이맥에서부터 아이콘화 된 아이포드, 평면화면 아이맥에서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그의 흔적은 틀림이 없다.

다만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이브의 애플 소프트웨어에 대한 역할이다. 아이브가 백마를 타고 와 스콧 포스탈스러운 스큐어몰피즘에서 긱들을 구해내리라는 현재의 기대감은 상당히 우습다. 물리적인 기기의 산업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 또한 형태와 기능으로 나뉘어 있다. 미학적인 면과 경험으로 나뉜다는 의미다. 애플 소프트웨어가 가진 문제는 어두운 리넨 천이나 코린트 식의 가죽, 찢어진 종이와 같은 스큐어몰피즘이 아니다. 애플 소프트웨어가 가진 문제는 사실 미학적인 면과 거의 관계가 없다… 대부분 경험과 관련된 문제이다. 아이브의 전임 보스의 말을 인용하여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애플 소프트웨어가 가진 문제는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느냐이다. 슬프게도 우리 기대 이상으로 애플 소프트웨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 알림의 배경이 어두운 리넨이건 아니건, 비참한 디자인일 따름이다.
  • 모바일 기기의 배터리를 떨어뜨리는 여섯 가지(GPS, WiFi, 셀률러 라디오, 블루투쓰, 알림, 화면 밝기) 아이템을 조절하려면 지금도 열심히 뒤져서 클릭해야 한다. 간단하거나 주제별, 위치별 그룹화라도 있지 않으면, 익숙지 않은 사용자들은 켜고 끄는 곳이 어디인지조차 바로 알 수 없는 지경이다.
  • 아이클라우드-데스크톱 통합과 애플 기기 간의 직접 파일 공유는 말과는 달리 직접적이지 않으며, “It just works”에 못 미친다.
  • iWork 패키지와 같은 수많은 애플 앱들의 업데이트가 절실하다. 미리보기나 텍스트에디스, 주소록과 같은 다른 앱들 또한 UI와 UX를 아예 완전히 개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 사전이리든지 iOS 키보드 배치와 자동 완성 기능 같은 핵심기능들이 최고가 아니다.
  • 조그마한 “폴더” 안에 들어가는 iOS의 앱 조직화 기능을 보면, 현미경으로나 봐야 할 아이콘으로 앱을 모아 놓는다. 이름도 안 나오고, 뭐가 들어 있는지 알아보기 힘들고 확장성도 갖고 있지 않다.
  • iOS 앱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일은 우아하지 않고 불투명하며, 일반적으로 앱들 사이의 데이터 상호 교환(개발자에게는 상당히 힘 떨어지는 일이다) 또한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문제점 목록을 길게 쓸 이유는 별로 없다. “개선할 사항” 목록을 실제로 작성하면 10배는 더 길어질 것이다. 이 시점에서 누구의 잘못인지 논하는 것은 별로 유용하지 않다. 애플 소프트웨어(특히 스스로 미래라 밝힌 iOS)는 미학적으로나 경험으로나 심각한 개수 작업이 필요하며, 미학보다는 경험 쪽이 훨씬 더 절실하다.

One Man. One Company. One Aesthetics?

문제는 세계에서 제아무리 제일 뛰어난 산업 디자이너라 하더라도 아이브 혼자서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미학과 경험 모두)를 필요한 정도로까지 충분한 관심을 쏟을 수 있을까? 그럴 시간이 한 사람에게 있겠는가?

애플의 휴먼 인터래션 가이드라인(HIG)은 아이콘 그림자라거나 버튼의 배열만 다뤘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일반적인 애플리케이션 디자인의 행동적 측면의 분석도 HIG에 포함된다. 한 세대 이전, 웹디자인이 지배적이기 이전 시절, HIG는 애플 스스로는 물론, 애플 개발자들도 훨씬 더 존중하고 지켜왔던 준칙이었다. HIG를 안 지키는 점이 있으면 충성스러운 사용자들도 알아보고 불만을 드러냈었다. 공개된 포럼에서 HIG 토론이 일어났던 것 또한 일반적인 일이었다.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라디오 버튼이나 체크박스 정도로도 웹페이지 네비게이션이 가능하다. 네비게이션이 가능한 메뉴는 이제 원형이고 삼각형 팝업으로 뜬다. 사용자에게 기능을 해치지 않는 한 순수 제스쳐에 기반한 UI들이다. 미끄러지는 패널 레이어는 서로 연동되며 동작한다. 아이템 목록 슬라이드는 좌우로 움직이면서 드릴다운 액션을 일으키고 위아래로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내보낸다. 3D로 만든 UI도 있으며, 그림자가 없는 UI도 있고, 대부분은 여러 가지 스타일의 조합이다. 한 때 강력했던 HIG가 다 그러한 “혁신” 깊숙이 묻혀 있다.

그렇다면 현재 5억 명의 사용자가 있는 생태계를 한 명의 휴먼 인터페이스 황제가 호령하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가능하고 바람직하기도 하다면, 그토록 거대한 생태계의 시각적 미학과 기능적 경험을 한 사람이 모두 맡을 수 있겠는가?

  • 디스플레이 레이어에 떠오른 시리의 문제점이 의미(semantic)를 가진 토대로 음소 나누기, 어휘별 맥락, 데이터-제공자의 계약, 통신망 대기 시간 등이 깊은 관계에 있고, 그래서 그 해결방법은 이들 요소와 기능들의 협업에 달려있다라는 점을 단 한사람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 지도나 패스북 앱을 사용할 때에도, 유사한 기술적 및 운용의 제한때문에 사용자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사실을 과연 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기대하는 것이 공정하고 합리적일까?
  • 게임센터에 소셜 레이어가 없고 아이튠스나 앱스토어의 콘텐트 발견 레이어가 기능을 수많은 방법이 어떻게 방어하는가? 이를 한 사람에게 맡겨도 되나?
  • 사용자-수준의 파일 관리로부터 애플이 떠날수록 아이클라우드 문서 관리와 공유라는 인지적인 혼란은 어떠한가?
  • 아이튠스의 대대적인 재-디자인으로 알려진 엄청난 실험은 도대체 언제 나오는가?
  • 애플 티비에도 미학적이고 경험적인 재디자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업데이트할 때마다 iOS의 상태바와 오에스텐 메뉴바의 투명도/색상을 바꾸는만큼 오래 묵은 위의 문제가 가진 깊이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단 한 명의 황제가 해결할 수 있을까? 그가 해결할 수 있는 UI 코너와 UX 경로는 몇 가지나 될까? 이들 문제는 사실 미학적인 문제가 아니다.

Apple, quo vadis?

아이브의 임명이 스콧 포스탈의 퇴사, 혹은 단일 체제 하로의 애플 디자인 개편과 관계가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 명의 황제 휘하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을 합치는 것은 분명 미학적인 효율성을 안겨다 줄 수 있겠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내포할 수 있다. “빨고 싶을 정도”의 아쿠아 UI는 10년으로 수명을 다 했고, 좀 더 미학적으로 단일하면서 매력적인 디스플레이 레이어가 등장했다. 그렇지만 행위적이고 기능적이며 실험적인 소프트웨어 문제점 다수를 숨겨버리는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다음과 같다.

  • 더 현대적이고 덜 느끼한 게임 센터의 재-디자인이 나왔지만 소셜 레이어는 여전히 없다.
  • 미학적으로 단일한 아이튠스이지만 콘텐트 발견성은 더 나아지질 않았다.
  • 시리 앱에는 배경의 리넨이 없어도 iOS의 나머지 부분과 맥락적으로 깊은 통합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 지도 앱은 어색한 초현실적 시각효과가 없어도 견고한 검색 레이어를 여전히 갖추지 못했다.
  • 나무 책서랍이나 안쪽의 그림자가 없는 아이북 앱의 타이포는 보통 수준 이하이고 하이픈 연결하기와 행 맞추기는 무기력하다.
  • 테이프 덱의 스큐어몰피즘이 없다 하더라도 포드캐스트 앱의 네비게이션은 불투명하다.

마지막으로, iOS에서 잘못된 점은 앱 아이콘 뒤에 있는 어두운 리넨이 아니라, 훨씬 더 나은 애플리케이션-간의 관리와 내비게이션이다. 조그마한 아이콘을 헤집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애플이 아이튠스와 앱스토어에서 사용하는 애플 ID의 통일 문제, 혹은 성능과 신뢰성 문제만 훨씬 잘 해결할 수 있다면, 애플 사용자 대부분은 노트북이나 달력 앱에 스큐어몰피즘을 더욱 덧붙인다 하더라도 천 년 만 년 사용할 것임을 확신한다. 게다가 이 문제는 동일한 시스템 디자인이 야기하는 문제의 쌍둥이적인 측면을 의미한다. 표면에 드러나는 디스플레이 레이어, 혹은 그 내부에 힘을 숨기기, 혹은 점점 늘고 있는 두 이슈의 부족한 부분.

그렇다. 우리는 애플에게 다른 기업과는 다른, 별도의 기준을 두고 있다. 30년 동안 그래 왔으며, 그에 따른 보상도 충분히 받아 왔다. 애플이 계속 승리해 나아간다면 조니 아이브가 코린트 식의 가죽 소파 뒤에 있을 수퍼맨 망토를 잊지 않고 있기 바란다…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Apple’s design problems aren’t skeuomorphic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크레믈린, 새로운 인터넷 감시망을 가동하다


The Kremlin’s New Internet Surveillance Plan Goes Live Today

By Andrei Soldatov and Irina Borogan November 1, 2012 | 6:30 am


Russian communications minister Nikolai Nikiforov meets with president Vladimir Putin. Photo: Kremlin.ru

표면상으로는 러시아 어린이들을 인터넷 소아성애자들로부터 보호하자는 말이 전부이다. 그러나 현실상 오늘 발효에 들어간 크렘린의 새로운, 금지 사이트의 “단일 등록”법은 모든 종류의 온라인 정치적 언론을 막을 수도 있다. 게다가 새로운 인터넷 감시 기술의 확산덕분에 이 법은 수 백만 명을 감찰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7월28일 푸틴 대통령이 서명한 이 법은 웹사이트 금지와 관련된 법원 결정을 돕도록 등록을 관리하도록 하는 단일하고 악의 없게 들리는 인터넷-필터링 조치로 구성됐다. 문제는 법원이 아동 포르노 사이트 그 이상도 막도록 판결내려왔다는 점이다. 그동안 법원은 푸틴 정권의 반대자들과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에 대해서도 온라인 금지에 동의해 왔었다.

인터넷 검열 원칙이 러시아에서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5년동안 러시아 지방 검찰은 인터넷 망 제공업체들에게 금지 사이트 접근을 막도록 법원 결정을 이용해 왔었다. 다만 지금까지 그런 노력은 구조적이지 않았다. 한 지역에서 금지된 사이트가 다른 지역에서는 접근 가능한 경우도 빈번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법으로 생기는 등록소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새 시스템은 극단주의자와 테러리스트의 은행 계정을 막는데 쓰이는 법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라스콤나자르(Роскомнадзор, 정보기술과 통신, 대중언론을 감찰하는 연방기구)는 웹사이트에게 조치를 내리기 위해 법원 결정을 모을 뿐 아니라, 내무부(МВД)와 연방 마약감찰청(ФСКН), 소비자 권리와 복지 관리청(Роспотребнадзор)의 세 가지 연방기관이 제출한 자료도 모아들인다. 라스콤나자르는 등록소를 세우고 업데이트하며 인터넷 주소를 제거하도록 제공업체들을 지도하기도 한다. 업체가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경우 24시간 내에 사이트에 대한 접근을 막게 된다. 인터넷 망 제공업체들은 업체들에게만 열려 있는 등록소의 온라인 버전(특수 암호로 보호받고 있다)에 있는 불법 사이트와 주소 데이터베이스를 계속 확인해 봄으로써 현행법을 거스르지 않음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점은 다른 데에 있다. 라스콤나자르 시스템은 국가적으로 DPI(심층 패킷 검사, deep packet inspection)를 도입한다. 법에 DPI가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통신부(Минкомсвязь)는 러시아 내 주요 인터넷 기업들과 함께 법을 실행할 유일한 방법이 DPI라 결론내렸다.

8월 말, 통신부장관인 니콜라이 니키파라프(Николай Анатольевич Никифоров)의 지휘 하에 구글과 SUP 미디어(라이브저널 소셜네트워크의 소유주) 그 외 주요 기업들로 이뤄진 작업반을 결성했다. 그들은 [필터링] 메커니즘을 어떻게 보장할지에 대해 논의했다. 가령 유튜브의 사례에서 유튜브 전체를 막지 않은 채 특정 영상을 어떻게 막을지 등이다. 해당 법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연방 하원의원인 일랴 파나마레프(Илья Владимирович Пономарёв)에 따르면 모두를 만족할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DPI 기술에 대한 얘기냐 물었다.

“그럼요, 정확합니다.”

디지털 감찰 툴 대부분은 데이터 패킷의 “헤더”만을 본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서 왔는지의 정보만 본다는 의미다. DPI가 있으면 네트워크 제공업체들은 디지털 패킷 안의 메시지나 전송 내용을 들여다 볼 수 있다. DPI를 다루는 한 엔지니어의 말이다. “봉투를 열면 편지의 주소만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즉, 인터넷 망 제공업체들이 트래픽을 감시할 뿐만 아니라 특정 서비스나 콘텐트를 차단하도록 필터도 거치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DPI라는 이처럼 거슬리는 기술을 정부가 어떻게 사용할지, 당연히 주요 프라이버시 그룹들의 우려가 터져 나왔다.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날의 연구 책임자인 에릭 킹(Eric King)의 말이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저인망식 블랙박스 DPI 감찰 시스템을 구현한 바가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에 심각한 효과를 미치기 때문입니다. DPI가 있으면 국가가 모두의 인터넷 트래픽을 읽고 복제하며 심지어 이메일과 웹페이지를 수정할 수도 있습니다. 혁명 이전의 튀니지에서 이미 그런 기술을 사용했음이 알려져 있습니다. DPI가 나오면, 그에 대응하여 이란과 중국과 같은 국가의 시민들이 인터넷 통제를 피할 수 있도록 사용하는 우회 툴도 등장시킬 수 있죠.”

IBM의 동유럽 사업개발부 책임자인 보리스 파두브니(Борис Поддубный)은 러시아 정부의 감찰이 인터넷 트래픽만이 아니라 유선 전화도 포함한다고 지적했다. “DPI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트래픽을 복제하여 DPI가 분석을 할 수 있죠. 그러면 상세한 로그가 나옵니다. 인터넷에서 뭘 찾는지, 누가 무엇을 다운로드했는지가 다 들어있죠.”


The Moscow headquarters of Russia’s Federal Security Service, the successor to the KGB. Photo: Andrei Soldatov

Off-Guard

2012년 9월, “무슬림의 순진함” 비디오를 러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막았다. 검사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9월 27일, 러시아에서 제일 큰 세 곳의 통신/인터넷망 제공업체인 엠테에스(МТС)와 빔펠콤(Вымпел-Комм), 메가폰(МегаФон)이 무슬림의 순진함 비디오의 접근을 제한했다. 특히 빔펠콤은 영상을 담은 웹사이트에 대한 접근을 막아버려서, 체첸과 다게스탄, 카바디노-발카리아, 인구셰티아, 카라차이-체르케시아, 북 오세티아, 스타프로폴 지역에서는 아예 유튜브 접속이 안 됐다. 단 엠테에스와 메가폰은 DPI 덕분에 해당 영상에 대해서만 접근을 막을 수 있었다.

러시아 정부는 제일 진보적인 인터넷-검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테스트를 그동안 해 온 것으로 보이며, 지난 2년간 크레믈린은 이 기술에 대해 집념을 가졌던 듯 하다.

아랍의 봄 이후 크레믈린은 러시아 인터넷 상의 “적대적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 개발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래서 2011년 여름 이래 적대행위 방지 수단은 러시아에서 여러 모로 뜨거운 감자였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키르지스탄, 타지키스탄으로 구성된 집단안보조약기구(Организация Договора о Коллективной Безопасности)의 회원국 정상과 검찰총장, 보안 관계자들 모두 이 문제를 논의했다. 각 회원국 내에서 성장하고 있는 정치적 참여주의와 소셜네트워킹 사이트의 역할 증대가 편집증을 일으킨 것이다.

러시아의 보안 당국은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 사이트를 위한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했지만 2011년 12월, 푸틴 대통령의 선거운동 때 이전까지는 별다른 조치를 세우지 않고 있었다. 러시아의 보안 당국은 보다 전통적인 성격의 위협을 다루는데 익숙해 있기 때문에 중심이 따로 없는 저항 조직에 대해 당혹스러워 했다. 그래서 보안 당국은 소셜네트워킹 사이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의 소식통에 따르면 페이스북과 트위터같은, 특히 해외에 기반을 둔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에 대해 기술적인 수준에서 보안 당국은 무력하다. (가령 친-체첸 인사가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가 그들의 가장 급한 의제였다.)

그래서 러시아 연방보안국(ФСБ)의 상트-뻬쩨르부르크 당국자가 할 수 있는 일은 12월 10일, 발라뜨나야(Болотная) 광장에서 열릴 대규모 시위에 대해, 상트-뻬쩨르부르크에 기반을 둔 소셜네트워크인 베까(ВКонтакте)의 창업자인 빠벨 두라프(Павел Дуров)에게 데모대 그룹을 폐쇄시키라고 팩스를 보낸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두라프는 거절했고, 다음 날 상트-뻬쩨르부르크 검찰청에서 그를 소환했다. 두라프는 소환도 거절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바깥으로 흘러 나왔고, 해당 건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2012년 3월 27일, 연방보안국의 세르게이 스미르노프(Сергей Михайлович Смирнов) 제1 심의관이 간접적으로 이 건에 대해 들었다. 그는 2011년, 중국과 러시아, 그 외 중앙 아시아 국가들이 결성한 상해협력기구의 지역 반-테러리스트 구조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서구 비밀 기관들이 사용하는 신기술이 있습니다. 이 기술로 그들은 정권교체까지 염두에 두고 지속적으로 사회 갈등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거, 특히 대통령 선거와 이전 상황을 보면 블로그 쪽의 잠재성을 알 수 있습니다.” 스미르노프는 적절한 반응 수단을 개발해야 한다면서, 그런 수단이 “아직은 안 일어났다”며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해결책은 올 여름에 등장했다. 연방 하원이 수정안을 가결하여 인터넷 필터링 시스템을 국가적으로 확대시킨 것이다. 모두 DPI 기술 덕분이다.

그동안 정부 관료들은 러시아가 중국과 중앙 아시아식 인터넷 검열을 채택할 수 없으리라 주장했었지만, 국가적으로 검열이 확대되자 언론과 전문가, 야당 모두가 놀라워했다.

사실 검열 준비는 2000년대 중반, 순수한 상거래적 이유때문에 DPI 기술을 처음 도입한 이래 수 년동안 준비가 이뤄지고 있었다.


(R to L): Duma member Ilya Ponomarev, IBM’s Boris Poddubny, RGRCom CEO Roman Ferster, and Inline Telecom Solutions’ Alexander Shkalikov are all intimately involved in expanding Russia’s deep packet inspection efforts.

Suppression

러시아에서 Allot DPI 기술을 주로 배포한 РГРКОМ의 CEO, 로만 폐르시쩨르(Роман Ферштер)의 말이다. “2004년에 생긴 첫 고객은 쯔란스쪨레꼼(ТрансТелеКом)이었 는데, 회사 내부 네트워크 망을 위한 주문이었어요. 사내 보안과에서 주문했으니까요.”

작지만 다부지고 힘이 넘치되 약간의 이스라엘 악센트를 가진 폐르시쩨르는 2003년, 이스라엘 기업들이 만든 통신 장비를 러시아에서 팔기 위해 РГРКОМ을 세웠다. DPI 솔루션 제조만 집중하는 Allot은 자신의 사업에 완벽하게 걸맞았다. 스무 명이 조금 넘는 그의 소규모 팀은 러시아에서 Allot 독점 파트너였고, 극동 지방의 타타르스탄 지역, 그리고 모스크바에 있는 빔펠콤 통신망, 우랄 지역의 전화국 통신망에 기기를 설치했다.

폐르시쩨르는 또한 유튜브 전체를 막지 않고, 단일 영상만을 막기 위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도 러시아에게 제공했다.

Allot은 초기에 기업 네트워크망과 소규모 지역 망 제공업자를 목표로 삼았지, 장거리 통신사와 무선통신망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2000년대 말까지 러시아에 DPI가 깔리지는 않았지만, 현재는 캐나다의 Sandvine, 이스라엘의 Allot, 미국의 Cisco와 Procera, 중국의 Huawei 등 주요 DPI 기술 업체들이 러시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12년 여름, 러시아 최대 무선통신사 세 곳이 이미 DPI를 설치해 놓았다. Procera가 빔펠콤에, Huawei가 메가폰, 그리고 CISCO가 엠테에스가 DPI를 설치했다.

폐르시쩨르의 수석 엔지니어인 바샤 나우멘코(Вася Науменко)의 말이다. “러시아에서 첫 번째 대상은 토렌트였어요. 토렌트가 광대역 전부를 차지했으니까요. 시작할 때 어떻게 해결할 지를 생각했습니다만 DPI 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었어요. 스위치나 라우터, Cisco조차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죠. 토렌트는 애플리케이션 수준이기에 어느 경우에서건 패킷을 열어서 뭐가 있는지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IBM의 파두브니도 나우멘코의 말을 확인해줬다. “무선통신사들도 모바일 인터넷에서 부딪히던 문제죠. USB 모뎀을 소개하자마자 문제가 되기 시작했거든요.”

파두브니는 모스크바에서 제일가는 번화가, 모스크바 강둑, 캐피탈 시티(Город Столиц)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인터뷰를 가졌었다. 옆에는 IBM 러시아 본사가 있으며, 맞은편에는 РГРКОМ 사무실들이 있다. 모스크바 외곽 비지니스 센터의 7층에 방이 몇 군데 있다. 파두브니의 말이다. “2~3년 전에 고객들이 DPI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딱 한 가지 이유, P2P 프로토콜 때문이었죠. 거대한 용량으로 음악과 영상 파일을 다운로드받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트래픽의 80%를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무선 통신사들로서 유일한 해결책은 트래픽 셰이핑(shaping)이었다. DPI 기술 덕분에 무선 통신사들은 특정 서비스를 억제시킬 수 있는 툴을 입수했다(대부분의 경우 토렌트와 P2P 프로토콜, 그리고 스카이프). 스카이프의 경우 통신사 스스로가 만드는 VoIP 솔루션에 위협을 끼쳤었다.

네트워크망 제공업체들은 DPI 기술 채택을 좀 더 주저했다. 우리가 인터뷰해 본 엔지니어들(러시아에서 DPI를 다루는 엔지니어들이다) 모두 업체들 대다수는 이 기술을 왜 설치해야 하는지 이해하질 못 한다고 말해줬다. 2007년 러시아에서 Sandvine을 팔기 위해 세운 회사인 인라인 쩰례꼼 솔루션(Инлайн Телеком Солюшнс)의 알렉산드르 슈칼리코프(Александр Шкаликов)는 과금 시스템 때문에 접근에 차이가 생겼다고 말한다. 인라인 쩰례꼼은 극동지역의 국립 통신사인 라스쩰례꼼(Ростелеком)용으로 DPI를 설치했다.

“무선 통신사들은 매우 많은 요금을 받습니다만, 단순한 인터넷 망 제공업체들의 위치는 대단히 묘합니다. 자신을 파이프라인으로 바꿔버렸기 때문에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할지 확실치 않거든요. 글서 캄차카에서 아쿠트 지방까지 Sandvine DPI를 설치하게 됐습니다.”

DPI를 설치하도록 요구하는 법이 생겼다고 하여 인터넷 망 제공업체들의 태도가 바뀌지는 않았다. 슈칼리코프의 말이다. “당장 ISP는 트래픽 컨트롤의 문제를 다른 누구에게 넘기고 싶어해요. DPI를 자기 돈으로 사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0만 달러가 넘으니 영세업체들은 감당할 수 없죠.”

하지만 소규모 망 업체들은 저렴한 솔루션을 이미 찾아다 놓았다. 슈칼리코프의 설명이다. “중고 CISCO DPI 솔루션용 시장이 큽니다. 거기에서 정말 웃음 밖에 안 나올 가격으로 살 수 있죠. 2천 달러 정도 될까요(미국에서의 값이며 러시아에서 실제 중고 값은 7천 달러 정도이다. 신규 기기 값이 10만 달러가 넘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게다가 소프트웨어는 훔칠 수가 있죠. CISCO는 Sandvine보다 기능이 적습니다만 적어도 관료들은 만족시킬 수 있죠.”

의심이 가는 인권 기록과 민주주의 정치를 하고 있는 나라의 정부들은 DPI의 상용 이익을 어떻게 하면 온라인 활동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가령 우즈베키스탄의 비밀 서비스는 지역 인터넷 망 업체들이 소셜 네투워크의 토론장 주소를 DPI로 바꿔버리도록 강요했다.

슈칼리코프에 따르면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DPI는 막혀 있다 하더라도 사이트나 웹페이지에 접근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낼 수 있다. “IP만이 아니라 로그인 정보도 알 수 있습니다. 망 제공업체로서는 더 쉽겠죠. 고객들에게 로그인으로 DPI를 설정하도록 조언합니다. 그러면 누가 누구인지 통계치를 가질 수 있죠. 가령 자기 망에서 누가 스팸을 뿌리는지 알아내는 데에 관심을 가진 망 업체들이 있습니다.”

2012년 9월, DPI의 식별 기능이 러시아 전국적인 법적 가로채기 시스템과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 확실해졌다. 소련 시절에 많이 했던 일의 기반이 생긴 셈이다.


Moscow’s Central Telegraph Building, which houses the Ministry of Communications. Photo: Wikimedia

Crossed Lines

1980년대 중반, KGB의 한 연구소는 나중에 소름(СОРМ)이라 알려진 기술기반을 개발한다. 전국적으로 모든 종류의 통신을 법적으로 자동/원격 가로채기를 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완전한 구현은 1992년, 통신부가 처음으로 소름-기반 공문을 서명하면서 일어났다. 보안 당국이 요구하는 경우 편지와 전화 대화 내역을 통신사가 제공하도록 하는 강행규정이었다. 일반인들은 1998년, 연방안보국과 통신부, 감사 기관이 서버에 인터셉트 기기를 설치시키는 규정을 만들면서 알게 됐다. 2000년대 첫 10년간 모든 ISP와 통신사들은 유선이건 무선이건 소름 장비를 설치했다.

소름과 오늘날의 DPI 간에는 차이가 있다. 소름 기기는 비밀 기구의 요원이 손수 작동하지만 DPI 기술은 통신사와 망 업체들이 배치한다. 하지만 그 차이는 곧 사라질 것이다. 통신부와 통신사들 모두 참여하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

9월 27일, 러시아 최대의 정보 보안 컨퍼런스가 개최됐다. 주제는 “컨버전스 환경에서의 소름”이었다. 전문가를 위한 컨퍼런스였지만 모스크바 북쪽의 크라쿠스 엑스포(Крокус Экспо) 전시장 안에는 모스크바 시 전화국과 무선 통신사의 소름 부서의 책임자들은 물론 감찰 장비 제조업체 대표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제일 환영받은 손님은 통신부의 국가정책실에서 나온 엘락산드르 페르쇼프(Александр Першов)였다.

DPI는 빠르게 논의의 제일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방 안에 있던 다수는 클라우드 컴퓨팅과 통신이라는 새로운 시대에서 합법적인 가로채기를 하려면 DPI 기술만이 유일하다는 점을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러시아의 Huawei 대표도 기꺼이 좋아 할 결론이었다.

소름을 DPI와 결합시키자는 아이디어 또한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통신부에 오래 재직해 온 페르쇼프는 통신부 생각을 간단히 설명했다. “네트워크 구축 요구 조건으로 연방안보국과 협력할 수 있도록, 소름 규정 하에서 모든 것을 적절히 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기술적으로야 문제가 되지 않는다. DPI를 다루는 엔지니어들이 해 준 말이다.

폐르시쩨르의 말이다. “Allot은 소름과 완벽하게 호환됩니다. 우리도 알고 있죠. 매우 간단한 솔루션입니다. 우리가 해냈죠. DPI로 트래픽 방향의 재조정이 아니라 트래픽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DPI가 모든 트래픽이 아니라 특정 프로토콜만, 혹은 특정 고객의 트래픽만 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편리하죠. 가령 제일 유명한 푸틴 반대파 리더인 알렉세이 나발니(Алексей Анатольевич Навальный)가 알려져 있는 통신사의 고객이라면, DPI를 통해 나발니의 모든 트래픽을 복제하여 외부 시스템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실질적이에요. 그가 어느 사이트에 있었는지도 보여주죠.”

나발니를 추적할 수 있는 감찰 기술이라면 러시아인 수 백 만 명에게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오늘 그 스위치가 켜졌다.

A joint investigation by Agentura.Ru, CitizenLab and Privacy International.

The Kremlin's New Internet Surveillance Plan Goes Live Today | Danger Room | Wired.com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애플의 협상가이자 해결사 에디 큐

Right on Cue: Can iTunes chief fix Apple’s maps and Siri?

An executive shuffle has dropped two troubled services into the hands of Eddy Cue. CNET has a behind-the-scenes look at Apple’s master negotiator and product resuscitator.

Greg Sandovalby Greg Sandoval October 31, 2012 12:01 AM PDT


Few consumers know his name, but Eddy Cue, Apple’s iTunes chief, was instrumental in keeping those iPods, iPhones, and iPads loaded with movies, music and books — and that helped turned Apple into a $560 billion company. Cue, left, is pictured with News Corp. Chairman Rupert Murdoch

끝나지 않는 음반사들과의 협상에서 애플 아이튠스의 보스, 에디 큐는 당근 역할을, 스티브 잡스는 채찍 역할을 맡았었다. 하지만 현재의 CEO인 팀 쿡 휘하에서 큐는 해결사의 역할일 것이다.

월요일 애플이 발표한 놀라운 경영진 변화에 따르면 아이패드와 아이폰 소프트웨어 개발을 맡았던 스톳 포스탈이 소매사업을 맡았던 존 브로웻과 함께 회사를 떠나고, 23년간 애플에 있었으며 2003년 이래 아이튠스 책임을 맡았던 에디 큐가 이제 시리 음성인식 서비스, 그리고 실망스러웠던 애플 지도 서비스의 통제를 맡게 됐다.

사근사근한 큐는 듀크 대학교 농구팀의 열렬한 팬이자 스포츠카를 모으고 주목을 받지 않으려 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새로 맡은 일로 인해 큐는 애플 안팎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프로야구 인터넷 사업권을 관리하면서 아이튠스에서 야구 관련 앱도 판매하는 메이저리그 야구 미디어(MLBAM)의 CEO이자 사장인 봅 보우먼(Bob Bowman)의 말이다.

“안드로이드나 다른 경쟁사에는 에디 큐와 같은 인물이 없습니다. 에디는 천재이고 뛰어나요. 사려깊으면서도 터프합니다. ‘좋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달리 요청할 게 없었어요.”

48세이자 쿠바계 미국인인 큐는 애플의 웹스토어와 아이튠스, 아이포드의 제작에 큰 역할을 했었다. 인터넷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부 수석 부사장으로서 그는 주요 파트너들과 평화 관계를 유지하면서 제품의 문제 수정을 도왔었다. 5년 전, 그가 애플과 대규모 음반사들 간의 관계 붕괴를 막은 주역이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당시 애플과 음반사의 관계는 “핵전쟁” 직전이었다. 애플의 웹서비스와 소프트웨어 담당부서가 모블미 서비스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았을 때에도 이 서비스를 구조하여 아이클라우드로 변환시킨 인물은 에디 큐였다.

잡스 최고의 문제해결사이자 연예 업체들의 문을 열 줄 아는 인물로서 큐는 애플의 아이포드와 아이폰, 아이패드에 영화와 음악, 전자책을 공급하는 핵심적인 인물이다. 지적하건데 그런 콘텐트야말로 애플의 휴대기기에 대한 수요를 폭발시키는 주역이다. 달리 말해서 5,600억 달러 어치의 시가를 올리게 하여 애플의 가치를 세계 최대 급으로 올린 기기들을 뒷받침해준 인물이 큐라고 할 수 있다.

에디 큐가 승진하고 3,70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은지 얼마 안 되어, 애플 내부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이었던 포스탈이 애플을 떠난 것은 애플 관측통들에게 있어서 놀라운 소식이 아니었다. 한 전직 직원에 따르면 큐의 “사교적인 지능이 매우 높다”고 한다. 동종 업계 인사들에게 좀처럼 없는 성격이자 잡스에게도 없었던 것이다. 대변인을 통해 큐는 본 기사를 위한 코멘트를 거절했다.

The tough negotiator

그렇다고 하여 희끗희끗한 머리의 에디 큐가 다루기 쉬운 인물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잡스와 큐를 상대했던 기업들 중역에 따르면 큐가 당근만이 아니라 채찍 역할도 대단히 많이 했다고 한다.

2006년 4월, 톱 4개 음반사 중 하나인 워너 뮤직 그룹은 캘리포니아 팜스프링 근처에서 내부적인 이벤트를 개최했다. 워너의 “아티스트 및 레퍼토리” 부서와 그 외 크리에이티브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위한 이벤트였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큐가 초청연사로 등장했다.

Eddy Cue: The godfather of iTunes | CNET TV | Video Product Reviews, CNET Podcasts, Tech Shows, Live CNET Video

당시 워너는 애플과 함께 아이튠스 음악의 라이선스를 두고 협상중이었다. 워너 중역들은 이 이벤트에 참석한 큐를 설득하여 주요 협상 쟁점을 워너에 유리하게 설득하려 했다. 그러기 위한 이상적인 이벤트였다. 소식통에 따르면 큐가 무대에 서기 한 시간 전, 워너사 간부들은 그에게 반대할 수 없으리라 여긴 제안을 했다. 다른 주요 음반사들과 마찬가지로 워너는 아이튠스의 가격대를 다양하게 하고자 했고, 애플만이 아닌 다른 뮤직플레이어용 스토어도 열기 원했었다. 당시 아이튠스의 곡들은 모두 다 가격이 99 센트였고 아이포드에서만 재생 가능했다.

큐는 워너사 간부들의 말을 경청했다. 그들은 그에게 모든 노래가 똑같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가격도 그 배경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큐에게 애플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기존 계약이 곧 만료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도 일러뒀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끝나자마자 큐는 전혀 주저하지 않은 채 차분히 애플은 조건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갱신 없이 계약이 종료된다면 애플은 워너 사의 음악을 아이튠스에서 끌어 내리면 그만이었다. 큐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설을 마쳤다.

워너는 결국 아이튠스와의 계약을 갱신했고 그 후로 3년간 애플 뮤직 스토어 내의 가격은 변함이 없었다.

그렇다. 큐는 전혀 아이튠스 스토어를 양보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현재 애플은 그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경쟁적인 상황을 맞이했다. 아마존 킨들 태블릿과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로 움직이는 휴대폰들이 아이패드와 아이폰에게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과 안드로이드 모두 콘텐트 라인업에 대해서는 애플에 근접하고 있다. 월요일, 구글은 처음으로 안드로이드가 모든 메이저 음반사와 최고의 영화 제작사들로부터 노래와 영화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A tougher road ahead

더 격심한 경쟁은 중요한 연예 카테고리에서 애플이 지닌 영향력을 끌어내리고 있다. 음반업계 내부 관측통에 따르면 아이튠스 상의 음악 매출은 기존 상태 그대로이다. 구독형 온라인 주문 음악 서비스인 Spotify와 유명 웹 라디오 서비스인 Pandora와 같은 경쟁자들이 음악 청취자들을 빼앗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사와 방송사 간부들에 따르면, 아이튠스의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 판매 및 대여 또한 제작사와 방송국들에게 큰 수입을 올려준 적이 없다고 한다. 전자책에서는 애플의 전략 자체가 공격을 받았다. 잡스와 큐가 미국 주요 출판사들과 함께 애플 아이패드를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전자책 가격을 고정시켰다면서 미국 법무부가 잡스와 큐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소문만 무성한 애플 텔레비전이 현실화됐을 때 애플 티비를 위해 드라마와 영화를 끌어들이려는 협상을 밤낮으로 해야 한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마스타 협상가이자 제품 소생자이기도 한 큐는 이제 그 언제보다도 애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음악과 스포츠, 텔레비전 및 영화 업계의 중역들 10명과 가진 인터뷰로 판단해 볼 때, 큐는 일단 그들과 함께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그들의 사업방식을 배워서 그들을 감동시킨다고 한다. 게다가 가능한 경우, 큐는 협상 상대방 중역들이 목표 달성을 하도록 도와줘서 그들의 보스에게 좋게 보이도록 오히려 도움도 준다고 한다. 선물도 주고 문의에는 빠르게 응답한다. 그래서 큐와 친구가 된 주요 음반사와 헐리우드 제작사 전현직 간부들이 많다.

한 음반 업계 중역에 따르면, 주요 음반사와 함께 분기별 검토를 시작한 장본인이 큐라고 한다. 현재 분기별 검토는 이제 음반사 대부분에 퍼져 있으며, 애플과 음반사 간부들이 모여서 판매 현황과 출하 일정, 신인 아티스트와 홍보를 논의한다. 목표는 당연히 멋지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큐는 애플의 서비스가 경쟁사 서비스보다 앞서나갈 수 있도록 강력한 끈을 유지하려 노력중이다.

애플의 주요 경쟁 간부들과는 달리 큐는 음반사 중역들에게 주의 깊게 대한다고 한다. 가령 잡스는 음반사 간부들이 “기술에 대해 무식하다”는 말도 했었다. 그 대신 큐는 그들에게, “여러분은 훌륭한 콘텐트를 만들어내는 전문가입니다. 우리는 소비자가 그 콘텐트를 맛볼 수 있도록 하는 전문가이고요.”라 말했다고 한다.

The Apple agenda

심지어 큐는 애플의 의도를 숨기려 하지 않아서 신뢰감을 얻었다고 한다. 2004년, 큐는 애플이 애플 기기 판매 수단으로 미디어 판매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분명히 말했었다. 큐는 전문 잡지인 Music Week에 이렇게 말했다. “음반 사업보다 아이포드의 마진이 더 좋습니다.”

그동안 음반사 측을 대표해 온 변호사로서 큐와 협상을 해 왔던 크리스 캐슬(Chris Castle)의 말이다. “큐는 분명 이타적인 분입니다. 당연히 어젠다를 갖고 있죠. 그는 애플의 이해관계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말한다는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만, 동시에 그는 공정하게 나오기를 바랍니다. 애플은 다른 업체들처럼 음악을 훔치려 든 적이 전혀 없다는 말이죠. 애플은 콘텐트를 신경 쓰며, 훔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을 에디가 하면, 매우 공정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가 애플과 주요 음반사 간의 전쟁을 막았을 때가 아마 전성기였으리라는 말도 있다 2007년, 당시 유니버설 뮤직 그룹의 CEO였던 더그 모리스(Doug Morris)는 유니버설이 더 이상 다년간 계약을 맺지 않겠으며, 월별로 계약을 갱신하겠노라고 애플에게 통보했었다.

유니버설의 움직임이 가진 의미는 분명했다. 아이튠스가 음반사에게 가격 통제권을 더 주지 않으면, 그리고 아이튠스가 자신의 생태계를 다른 음반 판매자에게도 개방하지 않으면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얼마 있지 않아 소니 뮤직 또한 아이튠스에서 노래를 빼겠다 위협했다. 2009년 큐는 애플이 월별로 모든 음반사들과의 라이선스를 갱신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로써 애플과 음반사들은 30일 이전의 통보로 계약을 종료시킬 수 있었다.

그 후 큐는 이런 벼랑끝 전술이 상호파괴적이라 말했다. “우리 모두 핵을 갖고 있고 어느 때이건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분쟁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서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한 음반사 간부의 말이다.

“그가 그 말을 한 이후로 관계가 훨씬 나아졌어요. 모두들 무기를 들려할 때 그가 정말 기민하게 대처했어요. 그 결과 모두들 무기를 내려 놓았습니다. 이 정도면 아시겠죠.”

2009년 12월, 애플은 음반사들이 노래 가격을 $1.29로 올리거나 $0.79로 내릴 수 있도록 허용하겠노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반대급부로 음반사들은 비판을 많이 받아 온 디지탈 권리 관리의 상당 부분을 없애는 데에 동의했다.

단 에디 큐와 출판사들의 관계는 음반사들처럼 따뜻하지 않았다. 큐와 협상한 후 한 좌절한 출판사 간부는 Adweek에 애플이 “보통의 표준에 따라 돌아가지 않는다”며 불평했었다.

The Duke guy

큐는 연예 업계 최고의 체스 플레이어만이지만, 그의 이력을 보면 지금 하고 있는 연예 업계의 허브 역할이라거나 잡스와 같은 보스를 모시는 일과 별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큐는 마이애미에서 자라났다. 플로리다 코랄 케이블스의 Deerborne 고등학교를 나온 후, 그는 학교 대표 농구팀에서 선수로 뛰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다니엘 모라노 살먼(Danielle Morano Salman)에 따르면 그는 학교에서 유명했다. “그는 튀었어요. 고급반에 항상 있으면서 누구와도 친구가 됐고 항상 자기 비전을 갖고 있었어요… 항상 자기가 듀크 대학교에 가리라 알고 있었죠.”


Eddy Cue (sitting, second from left), is a graduate of Duke University and a huge Blue Devil fan. Coach Mike Krzyzewski joked that the night Cue sat on the team’s bench may have been ‘the first time in his adult life he’s worn a tie.’
(Credit: Duke Blue Planet)

큐는 듀크 대학에서 경제학과 컴퓨터학 전공으로 1986년 졸업했다. 그래서 그는 Blue Devils의 열정적인 팬이다. 그의 사무실에는 듀크 대학교의 유명한 선수들 사진과 포스터로 뒤덮여 있다. 한 번은 듀크 대학교의 전설적인 농구 코치, 마이크 슈셉스키(Mike Krzyzewski)와 듀크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이 찍힌 적도 있다. 그와 큐는 “가깝다”고 한다. 슈셉스키의 말이다.

“큐는 정말 열의가 넘치고 열정적입니다. 엄청납니다. 코치로서나 사업가로서나 성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죠.”

큐는 1989년 애플의 IT 부서에 입사하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과 소비자 서비스부로 빠르게 승진했다. 1998년, 그는 애플 온라인 스토어 창설을 도왔다.

2003년 4월 28일, 큐는 아이튠스 뮤직스토어(현재는 아이튠스 스토어로 불리고 있다)의 개장을 맡았다.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의 눈부신 성공은 실리콘밸리의 전설이 됐을 정도다. 약 1년 후, 아이튠스는 1억 곡 이상을 판매했고, 3년 후에는 10억 곡을 판매했다. 올해 9월 기준으로는 200억 곡 이상이 아이튠스를 통해 판매됐다.

음반사를 맡았던 캐슬 변호사에 따르면 잡스의 협상 스타일은 큐와 전혀 다르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가 여러분 보고 원시인이나 할 생각을 한다면 가만 있겠습니까?” 잡스는 애플 직원들에게도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아이튠스와 최초의 협상을 해낸 워너사의 전 중역인 폴 비딕(Paul Vidich)은 큐가 잡스의 완벽한 기질을 가졌다고 기억한다.

“스티브와 함께 성공하려면 산소를 두고 경쟁해서는 안 됩니다. 잡스가 잡스답게 있도록 해 주고, 스스로를 위해 찾던 더 위대한 영광을 비추도록 놓아 둬야 해요. 에디는 정말 차분한 태도를 가졌죠. 절대로 자기를 보라고 한 적이 없어요. 그저 훌륭하게 일을 해냈을 뿐입니다.”

큐와 협상했던 다른 중역의 말이다.

“에디는 다른 사람들을 신경 안 써요. 주목 받고 싶어하는 화려한 간부들 말이죠. 그는 모든 일이 잘 돌아가는지 엔진방에서 확인하는 것으로 족하는 사람입니다.”

큰 문제가 터졌을 때의 해결사로 큐를 잡스가 신뢰했다는 점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잡스는 문제투성이의 모블미 온라인 서비스를 2008년 큐에게 맡겼고, 2011년 10월, 그는 모블미를 아이클라우드로 바꿨다. 7월 애플 발표에 따르면 아이클라우드 사용자는 1억 5천만 명이라고 한다.


Apple CEO Tim Cook
(Credit: James Martin/CNET)

What’s next

큐는 이제 애플 콘텐트 사업을 홀로 맡게 됐다. 그를 아는 이들에 따르면 큐가 아이튠스의 앱과 연예 오락 콘텐트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할 정도로 똑똑하고 능력이 충분하다고 한다.

한 음반사 관계자는 애플이 아이튠스에서 거둬들이는 30% 수수료를 낮추라고 큐를 설득하려 했었던 일을 기억한다. 큐는 말 그대로 의자 깊숙이 앉아서 발을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그는 음반사에 대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그리고 아이튠스를 통해 팔고 싶어하는 이들에 대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알고 있습니다. 애플에게는 좋은 일이에요. 다른 이들로서는 협상하기 껄끄럽겠지만요.”

물론 그는 자기가 원하는 조건을 얻어내지 못했다.

비딕에 따르면 큐는 아마 잡스 없이 아이튠스를 이끌어 갈 기술을 터득하고 확실히 자리 잡은 서비스 감독의 혜택도 받았으리라고 한다. 비딕의 말이다.

“그와 그가 가진 사려 깊고 차분한 태도를 정말 본경합니다. 기술 업계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요. 그는 협상할 때 우리 말을 잘 듣습니다. 라이선스 협상에서 물론 그는 스티브의 그림자에 가려 있었지만… 지난 5년간 그는 정말 성장했어요.”

애플이 계속 나아가려면 큐는 계속 자라나고 협상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가 물려받은 문제도 해결하면서 말이다.

Right on Cue: Can iTunes chief fix Apple’s maps and Siri? | Apple – CNET News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정권 교체

2012.10.30

Regime Change

애플은 너무 커질 수도 없고 너무 무질서해질 수도 없다. 충격적인 어제 소식으로 인해 스콧 포스탈이 애플로부터 축출된 것만이 아니라 포스탈의 영지를 크레이그 페더리기와 에디 큐, 조니 아이브가 분할해버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는 어제 팀 쿡으로부터 수많은 사실을 알았다.

첫 번째, 소매사업 책임자인 존 브로웻은 그의 초토 전술과 같은 인색함을 바깥에 있는 우리들조차 들었으니 그는 이미 끝났었다. 그런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을 때, 이 이야기가 사실이고 팀이 그를 해고하지 않는다면 애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문제는 해고의 시기다. 포스탈은 오래 전에 신망을 잃었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쿡은 브로웻을 포스탈과 한꺼번에 하나의 보도자료로 날려버리잖았을까? 브로웻은 고용된지 얼마 안 되어서 해고됐다. 포스탈의 해고는 브로웻이 고용된지 겨우 수 개월 후였다. 이 상태에서 브로웻의 해고는 신뢰심을 많이 흔들었을 것이다. 포스탈을 먼저 해고했을 경우 또한 팀을 뒤흔들고 제품 발표에도 악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헤드라인은 하나 뿐이고, 그것도 순리적인 방식이었다. 냉혹한 사업과 홍보 측면에서 매우 인상깊었다. 팀은 애플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든 측면을 분명히 잘 알고 있었다.

포스탈은 낮은 직급에서 베르트랑 세를레와 나란히 설 정도로 부상(浮上)했다. 수 년간 포스탈은 베르트랑 세를레 밑에서 일했었다. 베르트랑이 애플을 떠났을 때 포스탈은 자신이 베르트랑의 영역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분명 영향력을 확대시킬 것이었다. 스티브가 떠났을 때도 마찬가지의 느낌을 받았다. 그의 스타일이 남들의 신경을 계속 거스리라는 점은 놀랍지 않았지만 자신의 자리마저 잃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난 쿡을 평가절하했었다. 지난 주 아이패드 미니 이벤트에서 스콧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마 모두에게 놀라웠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포스탈만이 문제였다면야 애플은 그를 교체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분명히 애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동 보도자료를 보면 브로웻의 후임을 찾고 있다는 언급이 분명히 나온다. 포스탈의 후임을 구하지 않으면, 최고 간부진 세 명의 책임이 상당히 늘어날 뿐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애플의 조직 또한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맥 팀과 애플 팀, 맥오에스텐과 클래식, 아이포드 부, iOS와 맥오에스텐 등, 애플의 미래에 중요한 분수령 격인 제품을 분리시키기는 애플의 오랜 패턴이었다. 팀 쿡은 갑자기 고삐를 잡아 당겼다. 페더리기는 소프트웨어, 아이브는 디자인, 큐는 서비스를 차지했다. 끝.

애플의 미친 성장이 이런 미친 상황을 낳았다. 너무나 큰 크기와 분리는 결국 정치와 혼란, 손가락질을 낳을 뿐이다. 이 어느 것도 애플 제품이나 고객에게 좋지 않다. 다만 부담이 한층 심해진 큐와 페더리기, 아이브가 앞으로 상황을 어떻게 개선시킬지는 모르겠다. 이들은 이미 맡은 일이 충분히 많다. 좋은 리더쉽이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처리할 때 다른 모든 것은 다 시달릴 수밖에 없다. 진정한 고통이 자라날 것이다. 이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다.

4억 대의 기기, 5천억 달러의 회사 애플은 (이전과) 다른 기업이다. 이제서야 그렇게 보이기 시작했다.

Apple Outsider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조너선 아이브, iOS와 오에스텐의 미래를 맡는다.

Wednesday, August 29, 2012

Jony Ive’s minimalist designs could reshape the future of iOS, OS X

By Daniel Eran Dilger

Published: Tuesday, October 30, 2012, 07:59 pm

Apple’s chief executive Tim Cook announced a new role for Jonathan Ive, the company’s senior vice president of industrial design: taking the lead in directing the design of the company’s software, too.

Apple has always been strong on design

애플은 사소한 디테일에 너무 집착한다는 비판을 받을 때가 종종 있을 정도로 컴퓨터의 혁신적인 디자인이라는 명성을 빠르게 쌓았다. 좋은 디자인 제품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열정은 애플 II와 리사에 반영됐지만, 1984년의 매킨토시에는 그 열정이 한층 강화됐다. 잡스는 매킨토시를 퀴진아트 조리도구처럼 우아하면서 쓰기 쉽게 만들기를 원했었다.

잡스는 애플을 설립한지 얼마 안 되어서 1977년, 디자이너인 제리 마녹(Jerry Manock)에게 컨설팅을 의뢰했고, 결국 그를 고용하여 애플 컴퓨터의 대표적인 디자인을 개발할 애플 산업디자인그룹을 새로이 개설했다.

애플은 디자인을 제품의 중대한 요소로 계속 간주했다. 유명 디자이너와 협력하여(Frog Design의 하트무트 에슬링어(Hartmut Esslinger)를 포함) 애플 Iic의 “백설공주(Snow White)”와 플래티넘(Platinum) 산업디자인 언어를 개발했다. 이들 디자인은 오리지날 매킨토시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반영됐다. 잡스가 애플로부터 쫓겨나 80년대 중반 넥스트를 세웠을 때에도, 잡스는 Frog를 고용하여 넥스트 컴퓨터 디자인을 개발했었다.

단 디자인 문화는 애플에 계속 남아 있었다. 80년대 후반부, 애플의 산업디자인 책임자였던 로버트 브러너(Robert Brunner)는 소니와 함께 1991년 파워북 노트북을 개발한다. 파워북은 키보드를 화면 쪽에 배치하여 손목 놓을 공간을 앞에 마련하고, 중앙에 트랙볼을 놓는 등, 포터블 시스템에 대한 디자인을 급진적으로 바꾼 기종이었다. 처음에는 짧게나마 비난을 받았지만 결국 전 업계가 파워북 디자인을 따라했다.

이와 동시에 애플은 세계 최초의 주류 태블릿 시스템이었던 뉴튼 메시지패드를 개발한다. “수프(soup)” 소프트웨어 개발 개념과 산업 디자인, 완전히 새로운 휴대용 칩 아키텍쳐로서의 ARM 디자인, 아름답고 기능적인 제품을 만들기로 유명한 애플의 운영체제가 결합된 제품이 뉴튼이었다. 설사 너무 비싸서 반향을 끌지는 못 했서도 말이다.

2007년,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애플 디자인 그룹을 이끌었던 브러너가 컴퓨터 역사 박물관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애플에서 아이브를 고용하기 위해 했던 세 가지 노력을 설명했다. 결국 그는 1992년 아이브를 고용했었다. 아이브의 첫 번째 임무는 오리지날 메시지패드 디자인의 수정이었다.

Robert Brunner: the man who hired Jonathan Ive… thrice! – YouTube

Ive struck by Apple’s design focus

아이브를 이끌었던 것은 진보적인 디자인으로서 애플이 가진 국제적인 명성이었다. 2007년의 한 인터뷰에서 아이브는 “컴퓨터에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가 기술 문외한이었기 때문인지 디자인의 여러가지 측면을 다룰 때 컴퓨터를 사용할수록 좌절했었죠.”라 설명했다.

“대학이 끝나갈 무렵 맥을 발견했습니다. 이제까지 써 보려 했던 것보다 얼마나 더 좋은지 알고 놀랐던 기억이 나요. 전체적인 사용자 경험을 주의깊게 다뤘다는 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맥이라는 객체를 통해서 애플 디자이너들과 교감하는 듯 했어요.”

“그래서 애플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애플이 어떻게 생겨났고, 애플의 가치와 구조는 어떠한지를 말이죠. 거의 반항적이면서 건방지기 짝이 없는 애플이라는 회사를 알아볼수록 더 매력적이더군요. 무사안일주의에 빠지고 창조성이라고는 바닥난 업계에서 타협적이지 않은 곳이 애플이었습니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한 회사가 아닌 이유가 있다고 봤어요.”

아이브는 1992년 애플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컨설턴트였지만 곧 정규직 직원이으로 들어갔으며, 컨설턴트로 일하는 것은 좌절스러웠다고 설명한다. “제품을 진정 혁신시키거나 중대한 영향을 주기가 힘들었거든요. 핵심적인 사항은 이미 다수 결정이 이뤄진 상태에서 컨설팅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뭔가 근본적인 일을 하려면 조직 내 여러 부문에서 급진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이브가 애플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애플은 하락세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브의 말이다. “애플은 업계가 세워 놓은 어젠다를 두고 경쟁을 시작했었어요. 목표를 절대로 공유하지 않은 업계가 세운 어젠다를 말이죠. 디자이너로서 결정이 어디서 이뤄지는지는 꽤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컨설턴트로 있기보다 직접 뛰어드는 편이 더 효과적이고 영향력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Jobs struck by Ive’s design focus

1996년 잡스가 애플로 복귀했을 때 아이브는 잡스가 애플을 처음 세울 때 만들었던 핵심 가치를 다시 세웠다고 평가했다. “애플은 다시금 다른 기업들과 다르고 분명한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디자인과 혁신은 새로운 방향의 중대한 부분을 형성시켰죠.”

애플에서의 디자인은 전문 디자이너들에게만 맡기지 않는다. 애플의 독특한 디자인이 아이브 덕분이라고들 하지만, 아이브 스스로는 자신의 업적은 애플이 그간 지지해온 디자인-중심적인 포커스의 문화덕분이라 말한다.

“회사의 리더쉽에서 제품과 디자인 역할에 대해 분명히 이해한다는 사실은 중요할 뿐만 아니라, 개발과 마케팅, 판매 팀 또한 같은 목표를 지닌다는 점이 중요해요. 디자인에서 우리가 이룬 것은,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다른 수많은 팀에게 달려있는 부분이 대단히 많으니까요.”

“디자인보다 뭔가 더 큰 것의 일부라는 점이 좋아요. 애플에 대한 충성심이 있고, 중요하다 느껴지는 디자인만이 아니라 그 너머에도 충격을 줄 수 있는 회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다만 저도 정말 책임감을 느낌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결과때문에 고통스러울 때가 종종 있으니까요.”

아이브는 특히 자신의 디자인 팀에 대해서도 말을 했다. “천상의 디자인 팀을 조직했습니다. 핵심 팀을 적게 유지하고 툴과 프로세스에 투자를 많이 함으로써,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수준의 협동을 할 수 있어요. 우리의 물리적인 환경은 그러한 협력적 접근을 반영하고 또 가능케 해 줍니다. 거대하고 열린 스튜디오와 육중한 사운드 시스템이 공용 디자인실을 지원해 주죠. 개인 공간은 거의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어떻게 같이 하느냐에 대한 기억이 우리 제품 이상으로 오래 남죠.”

14 years of design

1998년, 잡스가 애플을 다시 만들기 시작한 두 번째 해에 아이브는 산업디자인부 부사장으로 임명받는다. 그는 또한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의 아이맥을 선보였다. 아이맥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개인용 컴퓨터를 완전히 다시 생각한 컴퓨터였다. 설정이 간단하고 쉬웠으며(광고에서 제프 골드블럼(Jeff Goldblum)이 “세 번째 단계는 없음!”이라 외친다), 믿을 수 없으리만치 차별성을 갖고 있었다. 8년 전의 파워북처럼 기술업계는 일단 아이맥의 투명한 플라스틱과 증빙이 안 된 USB의 사용에 불만을 터뜨렸다가, 곧바로 급속하게 복제하기 시작했다.

Apple iMac Commercial – 3 Steps – YouTube

아이브는 새로이 타이태니엄 파워북을 디자인했고, 이 파워북은 디자이너의 툴이라는 애플의 이미지를 훨씬 더 광범위하게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냈다. 아이맥과 새 파워북의 성공으로 잡스는 나이를 먹어가는 “클래식 맥오에스”를 대체할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클래식 맥오에스는 80년대 후반 이후 크게 변한 사항이 없었다. 잡스는 맥오에스를 보다 진보적이고 세련된 넥스트 플랫폼으로 교체하려 했고, 심지어 맥의 소프트웨어 룩앤필마저 “아쿠아(Aqua)”로 교체하기로 했다. 아쿠아는 아이맥의 투명 플라스틱을 반영한 디자인 언어였다.

그러나 향후 “오에스텐”이 될 넥스트스텝을 작업하는 와중에 2000년 닷컴 거품이 터지고 만다. 애플 디자인을 사랑하던 자유분방한 신규 기술 기업들만큼이나 애플도 심각하게 영향을 받았다.

닷컴 거품 붕괴의 특별한 희생자는 아이브의 G4 큐브였다. 큐브는 비싼 가격에 평범한 성능을 가진 우아한 제품이었다. 이듬 해 애플은 아이브의 참신한 아이포드 디자인을 선보인다. 아이포드는 윈도 PC 사용자들 사이에도 애플을 확산시킨 효자 제품이었다. 여기에 2002년 이글루 아이맥이 나왔고, 이 아이맥은 애플의 디자인 상상의 (아마도) 정점에 도달한 아이맥이었다.

2003년, 미니멀한 12″와 17″ 알루미늄 파워북과 함께 애플의 아이브 디자인 팀은 단순하고 우아한 디자인으로 애플의 이미지를 안착시키기 시작했다. 뒤이어 나온 새 파워맥(맥 프로가 아니다) 케이스와 슬림한 새 맥 미니, 새로운 아이포드, 맥북 에어라는 새 디자인, 아이폰과 가장 최근의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그의 팀이 만든 제품은 애플의 제일 성공작 개인용 컴퓨터였다.

Taking on Human Interface design

이번 주, 쿡은 아이브가 원래의 역할인 산업디자인 리더에 추가하여 애플의 전반적인 휴먼인터페이스(HI)의 리더쉽과 방향제시를 맡으리라고 발표했다. “그의 믿을 수 없는 디자인 미학은 10년 이상 애플 제품의 룩앤필을 움직이는 힘이었습니다.”

아이브와 그의 디자인 팀의 포커스는 이제 더 넓어졌다. 항상 잘 매치가 되지는 않았던 애플의 여러가지 디자인을 대체하리라는 해석이 많다. 제일 분명한 사례는 잡스가 일궈놓은 또다른 스타, 스콧 포스탈(Scott Forstall)이 만든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 개념의 지나친 장식적 요소이다. 포스탈의 아쿠아 디자인 언어는 1998년 아이맥을 반영했지만 아쿠아 디자인 언어는 매우 긴 기간동안 남아 있었다.

아쿠아 이전에도 있었지만 아쿠아보다 수명이 더 길었던 “브러쉬드 메탈” 또한 잡스의 지지를 받았었다. 처음에는 퀵타임, 그 다음에는 아이튠스와 파인더 등 여러 맥 앱에도 브러쉬드 메탈이 도입됐다. 애플은 2005년, 오에스텐 10.4 타이거, 그리고 후계자인 10.5 레퍼드에 이르러서 여러가지 중구난방적인 요소를 합쳐 놓았다. 그러나 애플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그 다음 버전에서는 확장시키거나 죽이는 등,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한 실험을 계속 했다.

오에스텐 이외에 애플은 iOS도 만들었었다. iOS는 모바일과 터치에 최적화된 인터페이스를 갖췄으며, iOS의 많은 개념을 맥으로 되돌리기도 했다. 애플 데스크톱 플랫폼을 단순화시키고 맥과 iOS 간 더 많은 결합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Apple’s apps need a design leader

하지만 오에스텐과 iOS 외에도 애플에게는 iLife와 iWork, Pro Apps를 인수하거나 개발했고, 모두들 사용자 인터페이스 컨벤션을 새로 만들거나 수정했다. 가령 Logic을 인수한 다음, 애플은 보다 맥다운 모양을 주기 전에 PC-중심적인 인터페이스를 몇 번이고 놓아 뒀었다.

애플은 또한 Pro App 디자인을 소프트웨어 리더들에게 맡기기도 했다. 그 사례가 바로 원래 매크로미디어에서 파이널컷프로의 기반을 개발했던 랜디 유빌로스(Randy Ubillos)이다. 애플에서 유빌로스는 파이널컷과 몇 가지 지원 앱을 개조하여 사용이 보다 쉬운 아이무비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맥에 대한 iOS의 영향과 마찬가지로, 유빌로스는 당시 잡스를 끌어들여서 파이널컷프로의 완전한 재-디자인을 했다. 이미 소프트웨어가 작동하던 방식에 익숙한 사용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유빌로스는 또한 애플의 Pro Apps의 모바일 버전도 디자인했다.

그러나 앱과 플랫폼, 이니셔티브가 아이튠스처럼 더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관심을 덜 받는 애플 제품들도 있었다(오에스텐에 무료 번들되는 앱 대다수가 그러하다). 동시에 애플은 또한 단순히, 새로운 개념을 너무 빨리 적용하거나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디자인을 전격 채용한다는 식의 비판도 일으켰다.

특히 최근 애플이 수정한 바느질한 가죽과 나뭇결 디테일은 여러 비판의 초점이 되었다.

미래의 애플 소프트웨어 디자인은 오리지날 매킨토시의 경험을 규정지었던 휴먼 인터페이스 가이드라인의 사례집일 뿐만이 아닐 것이다. 애플은 iOS와 오에스텐 모두에 터치 제스쳐를 소개했으며, iOS의 터치에 대한 대안으로 음성-기반 시리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아이브의 임무는, 애플의 미래 제품이 가질 휴먼 인터페이스 디자인 방향을 제시하기이다. 그 임무에는 매우 많은 수의 규율이 포함될 것이다. 또한 애플 내부 전반에 퍼져 있는 단일하고 바뀌지 않는 극단적인 소프트웨어 외양(빠르게 쇠락하거나 지루해질 수 있다)과 실험적이고 유연하면서 발전적인 디자인 센스(특정 방법에 익숙한 이들로부터의 비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간의 균형을 지켜야 한다.

애플 디자인의 미래는 세련되고 미니멀리즘적이면서 실용적인 디자인과 기발하면서 풍부하고 사용자화가 가능한(많은 이들이 좋아할 것이다) 디자인 간의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아이브는 깔끔하고 전문적인 레이아웃을 향하는 애플의 전통적인 디자인을 보다 좋아할 것으로 보인다. 야단스럽고 괴짜같은 달력과 주소록의 이전 디자인을 더 선호한다는 의미다.

Rethinking the status quo

하지만 디자인 기풍에 대한 아이브 스스로의 언급으로 봤을 때, 그는 애플이 소프트웨어 플랫폼 간 단일한 디자인 언어 이상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브는 처음 시작 때부터 제품을 다시 생각하고자 하며, 이제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은 것에 대해 신선한 관점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가령 2007년 아이폰을 선보였을 때의 청중은, 아이폰의 날씨와 주식 위젯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나 그동안 모바일 업계가 애플 및 애플 스토어를 중심으로 급변하면서 애플은 진정 생각을 다시 한 앱을 선보이지 않고 있다.

지도 상에 날씨 예보를 곧바로 보여주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애플은 지금도, 일정 지역 날씨를 보기 위해 단조로운 날씨 위젯에 사용자가 직접 지역을 입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가 지역별로 날씨가 대단히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써드파티 앱들이 이미 존재한다. 애플은 왜 이를 인정하지 않을까?

그리고 애플의 주가 위젯은 여전히 야후의 스팸-파이낸스에서 나오는 한심한 뉴스피드를 계속 내보내고 있다. 2007년보다 상황은 더 악화됐다. 최근에 회사 주가를 확인해 본 사람이 애플 내부에 아무도 없단 말인가? 주식 위젯은 시리 통합 외에 가치 없는 링크 이상 제공하지 않는다. 위젯이 제공하는 링크는 파이낸스라는 복잡한 세상에 대해 그 어떠한 분석도 제공하지 않는 사이트들 뿐이다.

애플이 오에스텐과 iOS에 새로운 앱 번들을 유지할 수 없다면 신선함과 기능 유지를 위해 자원을 확대 투입시키거나 아예 끊어야 한다. iOS와 비교해 볼 때 오에스텐은 더 심각하다. (이미지 캡처로 알려진 이상한 가방처럼) 최신 버전과 연동만을 목표로 한, 미완성품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아이챗과 아이메시지, 페이스타임이라는 이상한 조합처럼 여러가지 방식으로 합쳐지거나 분리되거나 한 것도 많다.

애플 앱중에 제일 유명한 혼란덩어리의 사례는 아이튠스일 것이다. 최근 수 주일 늦춰진 아이튠스 11은 적어도 앱의 작동방식을 다시 생각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어떻게 뭔가를 고치는지 회사가 알고 있다는 매우 좋은 신호다.

메시징과 정보 접근, 혹은 사파리와 같은 무료 앱의 성능과 유용성을 어떻게 늘리는지, 어떻게 다시 생각하는지가 더 큰 문제이다.

쿡은 애플이 하드웨어 제품을 만들 때 “노”라 말할 줄 안다는 언급을 여러 차례 해왔다. (모든 애플 제품을 탁자 위에 올려 놓을 수 있다는 자랑도 같이 말이다.) 그러나 애플 소프트웨어는 중구난방이고 방향도 없다. 아이브의 그룹이 맡아야 할 큰 임무이다.

다만 아이브는 그동안 소프트웨어를 개선시킬 기회를 기다려 왔던 것으로 보인다. 포스탈의 임무를 아이브에게 배정됨으로써 아이브는 드디어 그가 하드웨어에서 이룩했던 것만큼 애플 소프트웨어를 다시 디자인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Jony Ive’s minimalist designs could reshape the future of iOS, OS X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