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UG

Korean Macintosh User Group

Posts in the 조나단 아이브 category

스티브 잡스와 디자인 혁명


ARTS & CULTURE

How Steve Jobs’ Love of Simplicity Fueled A Design Revolution

Passionate to the point of obsessive about design, Steve Jobs insisted that his computers look perfect inside and out
By Walter Isaacson
Smithsonian magazine, September 2012,

디자인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관심은 어린 시절 집에 대한 사랑이 그 시작이었다. 집은 노동자가 많이 사는 동네로서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 사이에 있었고, 1950년대, 전쟁 이후 도시로 이주한 주민들이 대량으로 세운 저렴한 현대적 규격형 주택이었다. “모든 미국인”을 위한 단순한 현대적 주택으로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비전에 고무된 나머지, 조셉 아이클러(Joseph Eichler)와 같은 건축가들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벽으로 이뤄지고 지면이 개방형이며, 기둥-보가 노출돼 있고 콘크리트 판 바닥과 수많은 슬라이드형 유리문으로 이뤄진 집을 세웠다.

자신의 오랜 이웃 근처를 나와 같이 산책하면서 잡스는 “아이클러가 정말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라 말했었다. 그 동네는 아이클러 스타일의 집들로 이뤄져 있었다. “아이클러의 주택은 영리하고 저렴했으며 좋았어요. 깔끔한 디자인에다가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취향을 알려 줬죠.” 아이클러-스타일의 주택에 대한 그의 칭찬은 대중 시장용 제품의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스며들게 했다는 것이 잡스의 말이었다. “그리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 않지만 디자인이 훌륭하고 단순한 기능을 넣을 수 있을 때를 좋아합니다.” 그는 특히 아이클러 디자인의 깔끔하고 우아함을 지적했다. “애플의 오리지날 비전이었죠. 최초의 맥으로 하려 했던 것도 그것이었습니다. 아이포드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깔끔하고 친숙하며 재미나는, 차별화된 디자인은 잡스 치하 애플 제품의 특징이었다. 훌륭한 산업 디자이너로 애플이 알려지지는 않았던 1980년대, 잡스는 하트무트 에슬링어(Hartmut Esslinger)와 협력했고, 1997년부터는 조니 아이브와 함께 애플을 다른 기술 업계와 동떨어지게 만들 정도로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의 미학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애플은 세계에서 제일 가치가 높은 회사가 될 수 있었다. 애플의 주된 교리는 단순함(simplicity)이다. 깔끔한 룩앤필과 제품 표면에서 나오는 단순함만이 아니라, 각 제품의 본질과 엔지니어링의 복잡성, 그리고 각 컴퍼넌트의 기능을 앎으로써 깨닫는 단순함이다. 잡스는 정말 힘든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뭔가를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저변에 있는 도전을 진정 이해하고 우아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1977년에 나온 애플의 첫 마케팅 광고지 헤드라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

디자인의 단순함에 대한 잡스의 사랑은 그가 불교 수행자가 됐을 때부터 갈고 닦은 것이었다. 대학 중퇴 이후 그는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인도로 긴 순례를 다녀 왔지만 그의 감각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일본의 선불교였다. 인도 여행을 잡스와 같이 다녀온 대학 친구, 다니엘 코트키(Daniel Kottke)는 선이 잡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완전하고 미니멀리즘적인 미학, 극도의 집중에 대한 그의 접근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불교, 특히 일본 선불교가 미학적으로 탁월하죠. 제가 본 것 중에서 제일 고상했던 것이 교토의 정원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인도에서 돌아와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비디오 게임을 디자인하던 Atari에 야간 자리로 들어갔을 때에도 단순한 인터페이스를 좋아했다. Spacewar!와 같은 컴퓨터 게임은 MIT의 해커들이 개발했지만 Atari에서는 취한 신입생이라도 어떻게 하는 지 아는 게임이어야 했다. 복잡한 메뉴나 매뉴얼은 없었던 Atari의 Star Trek 게임 명령은 딱 두 가지였다. “1. Insert quarter, 2. Avoid Klingons”

1970년대 차별성 있는 산업 디자인을 보여줬던 얼마 안 되는 회사 중 소니가 있었다. 잡스의 집 차고에서 나와 이주한 애플의 첫 번째 사무실은 소니 영업부 사무실이 같이 자리한 빌딩 안에 있어서 잡스는 소니의 마케팅 자료들을 잠깐씩 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소니에서 일했던 대니얼 러윈(Dan’l Lewin)의 말이다. “꾀죄죄한 사람이 불쑥 와서는 제품 광고지를 어루만지더니 디자인 기능을 지적하더라구요. 그럴 때마다 매번 이 광고지 좀 가져갈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소니의 어둡고 산업적인 모양을 좋아한 잡스는 1981년 6월부터 콜로라도 주 애스펀(Aspen)에서 열리는 연례 국제 디자인 컨퍼런스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는 바우하우스(Bauhaus) 운동식의 깔끔하고 기능적인 접근을 많이 보았다. 당시 애스펀 인스티투트 캠퍼스에는 산세리프 서체와 가구, 실제 거주하는 방 등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가 소중히 간직하는 디자인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의 멘토인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와 루트비히 미스 판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처럼 바이어 또한 단순하되 영혼을 표현하는 디자인을 신봉했다. 깔끔한 선과 형태를 채용하여 합리성과 기능성을 강조하는 디자인으로서, 그로피우스와 미스가 설교한 디자인은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었다. 에이슐러(Eichler)처럼 미적인 감각은 대량 생산을 위한 기능과 결합돼 있었다.

잡스는 1983년 애스펀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디자인에 대한 칭송을 발표 했었다. 잡스 연설의 제목은 “미래는 예전과 같지 않다”였고, 소니 스타일 대신 바우하우스의 단순성이 지지를 얻으리라 예언했다. “현재의 산업 디자인은 소니 식의 하이테크적인 외양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포금 회색, 어쩌면 검정색으로서 이상한 것들을 하는 디자인이죠. 그렇게 하기는 쉽습니다만 위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대안을 제시했다. 제품의 성격과 기능에 보다 충실한 대안이었다. “우리가 할 것은 하이테크 제품이며, 그들을 깔끔하게 만들어서 제품이 최첨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작은 패키지 안에 맞게 만들고 아름다우면서 하얀색으로 할 수 있겠죠. 브라운이 전자제품에서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잡스는 애플의 만트라가 단순성이라고 계속 강조했다. “우리는 하이테크에 대해 밝고 순수하면서 솔직하게 만들 겁니다. 소니처럼 오로지 검정색 밖에 없는 중공업 스타일 말고요. 우리가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과 우리가 하는 제품 디자인, 광고는 모두 단순하게 만들자. 정말 단순하게로 모아집니다.”

잡스는 디자인 단순성의 핵심 부분이 제품을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단순성과 쉬운 사용이 항상 함께 하지는 않는다. 디자인이 너무나 매끈하고 간단해서 오히려 사용에 장애가 되거나 생경스러울 때도 있기 때문이다. 애스펀에서 잡스는 디자인 전문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직관적으로 분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디자인의 중심입니다.” 가령 그는 새 컴퓨터 매킨토시용 그래픽 화면을 만들 때 사용한 데스크톱 메타포를 칭송했다. “모두들 데스크톱은 직관적으로 다룰 줄 압니다. 사무실로 걸어 들어가면 책상 위에 종이가 놓여 있죠. 제일 위에 놓인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선권을 조정하는 방법 또한 다들 알고 있죠. 이미들 갖고 계신 경험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우리 컴퓨터를 데스크톱과 같은 메타포로 만든 이유라 할 수 있어요.”

잡스는 당시 산업디자인 업계에서 별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리하르트 자퍼(Richard Sapper) 램프를 좋아했지만 찰스(Charles)와 레이(Ray) 임스(Eames)의 가구, 디터 람스(Dieter Rams)의 브라운 제품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와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가 이룬 식으로 산업 디자인 세상에 힘을 줄 만한 거장은 없었다. 워싱턴의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디자이너인 마야 린(Maya Lin)의 말이다. “산업 디자인에서 뭐가 딱히 없었어요. 실리콘 밸리는 특히 전혀 없었죠. 그래서 스티브는 상황을 정말 바꾸고 싶어 했어요. 그의 디자인 감각은 매끈하지만 번드르르하지 않았습니다. 장난기도 많았죠. 그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했어요. 단순함에 헌신하는 선불교에서 나온 감각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자기 제품을 차갑게 만들지도 않았어요. 그의 제품은 재미 있었습니다. 그는 디자인에 있어서 열정적이었고 정말 심각했지만 그와 동시에 놀 줄도 알았어요.”

1984년에 나온 오리지날 매킨토시용 케이스를 만들 때, 잡스는 두 명의 젊은 디자이너와 같이 작업했다. 제라 마녹(Jerry Manock)과 테리 오야마(Terry Oyama)이다. 그들은 디자인안을 만들고 실제 석고로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맥 팀이 주위에 모여서 들여다 보고 자기 생각을 말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던 앤디 허츠펠드(Andy Hertzfeld)는 “귀엽다”고 칭했고, 다른 사람들도 만족해 했다. 그러자 잡스는 비판을 쏟아 부었다. “너무 상자 모양입니다. 곡선미가 더 있어야 해요. 첫 번째 사각면의 반경이 좀 더 커야 합니다. 그리고 비스듬한 면이 마음에 안 들어요.” 산업 디자인 용어에 대한 새로운 유창함과 함께, 잡스는 컴퓨터 측면과 연결된 각과 곡선 모서리를 언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잡스는 상당한 찬사도 곁들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매달 마녹과 오야마는 잡스의 비판에 맞춰 만든 새로운 모델을 들고 나왔다. 마지막 주물 모델은 정말 뛰어나서 이전까지의 모델은 모두 그 뒤에 서야 할 정도였다. 워낙 발전해서 잡스로부터 비판이나 주장을 못 하게 만들어버릴 정도였다. 허츠펠드의 말이다. “네 번째 모델부터는 세 번째와 거의 구분도 할 수 없겠더라구요. 그래도 스티브는 항상 비판적이었고 결정적이었어요. 전 알아보지도 못할 디테일에 대해 좋다 싫다 하면서 말이죠.”

어느 한 주말, 잡스는 다시금 팔로알토의 메이시 백화점에 가서 특히 퀴진아트 등의 주방기기를 연구했다. 그는 월요일, 맥 오피스로 들어와서 디자인 팀에게 퀴진아트를 사라 시키고, 퀴진아트의 선과 곡선, 사면에 따라 새로운 주문을 했다.

잡스는 매킨토시가 친숙해 보여야 함을 고집했다. 그 결과 맥은 인간의 얼굴과 유사해졌으며, 화면 바로 밑에 디스크 드라이브를 놓았고, 대부분의 컴퓨터보다 더 키가 크고 좁았다. 머리를 강조하는 형태였다. 밑부분 가까이의 구석은 온화한 턱을 방불케 했고, 잡스는 상단부의 플라스틱을 더 좁게 만들어서 크로마뇽인의 이마처럼 보이지 않게 했다. 이 매킨토시 케이스의 특허자는 마녹과 오야마만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도 올라가 있다. 오야마가 나중에 한 말이다. “스티브가 직접 선을 그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아이디어와 영감으로 이 디자인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려서 우리는 스티브가 말해주기 전까지 컴퓨터가 ‘친숙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몰랐었어요.”

잡스는 화면상에 나타나는 외양에 대해 강렬하게 집착했다. 특히 그는 각기 다른 레터링 스타일, 즉 서체에 신경 썼다. 신입생 때 리드 컬리지를 중퇴했을 때,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수업을 청강하면서 캠퍼스를 돌아다녔는데 그가 좋아하는 과목 중 하나가 서예였다. 잡스의 말이다. “세리프와 산-세리프에 대해 배웠어요. 각기 다른 문자의 조합이 얼마나 다양한지, 위대한 글씨체를 무엇이 위대하게 만드는지를 알았습니다. 아름답고 역사적이면서 예술적으로 묘했어요. 과학이 캡쳐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더 매혹적이었습니다.” 잡스가 스스로를 예술과 기술의 접목에 세웠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또다른 사례이다.

매킨토시는 비트맵 화면(화면상 각 픽셀을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켜거나 끌 수 있다)이기 때문에 우아한 서체부터 괴상한 서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체를 만들어서 화면상 픽셀별로 렌더링할 수 있었다. 이들 서체를 만들기 위해 잡스는 필라델피아 출신의 그래픽 아티스트, 수잔 케어(Susan Kare)를 고용한다. 그녀는 Overbrook, Merion, Ardmore, Rosemont 등 필라델피아의 Main Line 통근열차 역 이름에 따라 서체 이름을 지었다. 잡스는 이 과정을 대단히 마음에 들어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케어 사무실에 들러서 서체 이름에 대해 물었다. “그런 이름들은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서체 이름은 당연히 세계적인 도시이어야 하지!” 그래서 서체는 각자 시카고와 뉴욕, 제네바, 런던, 샌프란시스코, 토론토, 베니스로 바뀌었다. 나중에 잡스가 했던 말이다. “대학교 다닐 때 그 서체 수업을 안 들었더라면 맥에는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자간 맞춤 기능이 없었을 겁니다. 윈도가 맥을 그대로 베낀 이후로는, 어떠한 개인용 컴퓨터도 그렇지 못할 것 같군요.”

젊은 엔지니어, 크리스 에스피노사(Chris Espinosa)는 매킨토시용 계산기를 디자인할 때 잡스의 요구를 충족할 방법을 알아냈다. 그래서 첫 번째 시도를 해 보이자 잡스는 그에게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기본적으로 역겹군. 배경 색상이 너무 어두워. 두께가 잘못 나온 라인도 있고 버튼이 너무 커.” 에스피노사는 잡스의 비판에 따라 수정을 거듭했지만 수정을 할 때마다 비판도 새로워졌다. 그래서 어느 날 오후, 잡스가 지나갈 때 에스피노사는 해결책을 선보였다. “The Steve Jobs Roll Your Own Calculator Construction Set”였다. 이 셋트는 사용자가 선 두께와 버튼 크기, 각도, 배경 등의 속성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잡스는 웃지 않고 자신의 취향에 맞춰서 외양 설정을 하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흐르고 나자 그는 드디어 자기가 좋아하는 모양을 설정할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의 디자인은 향후 15년간 맥에 계산기로 탑재됐으니 말이다.

그의 초점이 매킨토시이기는 했지만 잡스는 모든 애플 제품을 관통하는 일관성 있는 디자인 언어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세계 정상급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브라운의 디터 람스처럼 누가 애플의 디자이너가 될지 콘테스트를 개최했다. 수상자는 소니 트리니트론 텔레비전 디자인을 책임졌던 독일 출신의 하트무트 에슬링어(Hartmut Esslinger)였다. 독일인이기는 했지만 에슬링어는 “애플의 DNA에 있을 미국의 유전자”가 있어야 한다면서, “헐리우드와 음악, 반항과 자연스러운 섹스 어필”이 가미된 “캘리포니아 풍”의 모양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가 제안한 지침은 형태가 기능을 따른다는 유명한 격언에서 따온, “형태가 정서(emotion)를 따른다”였다. 1980년대에 그가 애플용으로 개발한 제품으로는 하얀색 케이스가 있다. 견고하고 곡선형 모서리를 가졌으며, 통풍과 외양 모두를 위한 얇은 선으로 이뤄져 있었다.


Searching for a personal uniform, Jobs asked designer Issey Miyake for some black turtlenecks. He kept around 100 of them in his closet.

디자인에 대한 잡스의 열병에는 단점도 있었다. 1985년 애플로부터 축출당한 이유로 그의 예술적 감각을 채워주기 위한 과도한 비용과 일정 연기가 있었고, 뒤이어 그가 만들어낸 회사인 넥스트도 거대한 시장 실패를 경험했다. 다만 1997년 애플로 복귀를 요청받았을 때 그는 본능을 제어할 줄 알았고 합리적인 교환조건 세우기도 배웠다. 하지만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한 열정만은 버리지 않았었다. 네모난 베이지색의 범용 컴퓨터와 뮤직플레이어, 휴대폰과 같은 소비자 가전제품으로 채워진 시장에서 애플을 다시금 세우기 위해서였다. 거의 우즈베키스탄에서 디자인한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잡스가 애플로 돌아온 직후, 격려 연설을 위하 최고 관리자들을 소집했다. 그 중에는 애플 디자인 팀을 맡고 있었던 30대의 영국인, 조너선 아이브가 앉아 있었다. 조니는 애플을 그만 둘 계획이었다. 제품 디자인보다는 이윤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는 애플에 대해 진절머리가 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잡스의 이야기때문에 그는 퇴사를 다시 생각했다. 아이브의 말이다. “우리 목표는 돈벌기만이 아니라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던 스티브의 발표를 정말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철학에서 내린 결정은 우리가 그동안 애플에서 해 오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죠.” 곧 아이브와 잡스는 제일 훌륭한 산업 디자인 협력을 이끄는 관계를 형성했다.

다른 디자이너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아이브는 특정 디자인으로 들어가는 단계별 사고 과정과 철학 분석하기를 즐겼다. 잡스는 그 과정이 보다 직관적이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스케치와 모델을 지적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들은 짓밟았다. 아이브는 단서를 발견하여 잡스가 칭찬할 개념을 만들어냈다. 잡스는 아이브 안에서 표면적인 단순함 이상의 진실을 추구할 소울메이트를 발견했다. 디자인 스튜디오 안에서 아이브는 자신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단순함이 좋다고 가정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리적인 제품이 있으면 우리가 그것을 지배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복잡성에 대해 질서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제품이 주인에게 경의를 표하죠. 단순성은 시각적인 스타일만이 아니며, 미니멀리즘만도 아닙니다. 깔끔함만도 아니죠. 복잡함의 깊숙한 끝까지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진정 단순해지려면 정말 깊게 들어가야 해요. 가령 나사를 없애려면, 대단히 난해하고 복잡한 제품이 나올 수가 있어요. 제품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어떻게 만드는지를 이해해야 단순함을 가지고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을 없앨 수 있으려면 제품의 본질을 깊게 이해해야 합니다.”

잡스와 아이브가 공유했던 원칙이다. 디자인은 표면의 외양만이 아니며 제품의 본질을 반영해야 한다. 그 결과 애플에서 제품 디자인 과정은 엔지니어링과 제조방법까지 모두 통합돼 있다. 아이브는 애플 파워맥을 예로 들었다. “우리는 정말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 없애기를 바랬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이너와 제품 개발자, 엔지니어, 제조팀 모두가 전체적인 협력을 해야 하죠. 우리는 몇 번이고 시작을 되풀이했습니다. 이 부품이 필요한가? 다른 네 가지 부품으로 한 가지 기능을 할 수 있는가?”

산업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이 동일한 과정의 일부이어야 한다는 잡스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긴장은 있었다. 잡스가 산업디자인을 아이브의 팀으로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팀(존 루빈스타인이 맡았다)과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원래는 루빈스타인이 아이브의 상사였다. 분리는 둘 간의 사이를 좁히지 못했고 긴장감의 대립 관계가 터져 싸울 때도 종종 있었다. 다른 기업 대다수의 경우 엔지니어들이 요구사항을 적은 후에서야, 산업 디자이너들이 제품의 외양을 정할 수 있다. 잡스에게는 이 과정이 반대로 움직였다. 애플 초창기 시절, 잡스는 애플 III와 오리지날 매킨토시 케이스의 외양을 먼저 정하고, 그 다음에 엔지니어들에게 케이스에 맞는 부품과 보드를 주문했다.

축출당한 후, 애플 내 제품 제조 과정은 엔지니어-위주로 돌아갔었다. 애플의 마케팅 책임자인 필 실러의 설명이다. “엔지니어들은 프로세서와 하드드라이브같은 사양을 말하고 디자이너들에게 집어 넣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끔찍한 제품 밖에 안 나와요.” 그러나 잡스가 복귀하고 아이브와 협력한 끝에 균형감은 다시금 디자이너들에게 옮겨갔다. 실러의 말이다. “스티브는 우리를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것에 디자인이 통합적이라 말하곤 했어요. 디자인이 다시 엔지니어링을 통솔했습니다. 그저 반대로만 한 것이 아니고요.”

잡스-아이브 협력 하에 처음으로 나온 훌륭한 디자인적인 성공작은 가정용 소비자를 노린 데스크톱 컴퓨터, 아이맥이었다. 잡스는 조건을 특별히 정하였다. 올-인-원 제품으로서 키보드와 모니터, 컴퓨터를 모두 하나의 단순한 유닛으로 조합해야 하고, 상자에서 꺼내자마자 바로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 컴퓨터는 브랜드를 내세울 수 있는 차별화된 디자인이어야 했다.

아이브와 그의 최고 부하인 대니 코스터(Danny Coster)는 미래적인 디자인을 스케치하기 시작했지만 잡스는 그들이 만들어낸 십여 가지의 조형물을 거절했다. 그러나 아이브는 어떻게 하면 부드럽게 잡스를 끌어내는지 알고 있어서 일단 만든 모델이 모두 올바르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다만 한 가지 모델을 지적했다. 곡선형의 쾌활한 모양이되 움직이지 않는 조각처럼 보이지 않는 모델이었다. 아이브는 잡스에게 말했다. “책상에 막 도착한 듯한 느낌이랄까, 아니면 아예 곧바로 떠나버릴 듯한 느낌의 모델입니다.”

그 다음, 아이브는 그 모델을 가지고 작업했다. 이중적인 세계관을 가진 잡스는 환호하고 그 모델을 좋아했다. 그는 조형물을 들고 본부에 갖고 돌아다니면서 이사진과 신뢰하는 부하들에게 은밀히 보여줬다. 애플은 당시 다르게 생각하라는 광고의 데뷔를 축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는 기존 컴퓨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만 있었고, 마침내 잡스는 새로운 것을 갖게 됐다.

아이브와 코스터가 제안한 플라스틱 케이스는 바다 빛깔의 청색이었고, 투명하기 때문에 본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이브의 설명이다. “우리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필요에 따라 교체가 가능한 컴퓨터를 만든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투명한 케이스를 좋아했습니다. 색깔은 있지만 고정되지 않은 느낌. 뭔가 건방진 느낌이었죠.”

개념이 모두 은유적이었다. 현실적으로 투명한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링의 문제가 있었다. 잡스는 언제나 컴퓨터 내부의 서킷보드의 칩 배열마저 말쑥해야 한다 주장해 왔었다. 아무도 안 쳐다본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이 컴퓨터는 내부가 보였다. 따라서 내부 부품과 접합 부분을 만들 때 신경써야 했다. 쾌활한 디자인은 단순함을 전달하는 동시에 진정한 단순함이 끌어내는 그 깊이도 드러내고 있었다.

심지어 플라스틱 케이스의 단순성 그 자체도 상당히 복잡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아이브와 그의 팀은 애플의 한국 제조업체들과 협력하여 케이스 제조 공정을 완벽하게 만들고, 사탕 공장에 가서 어떻게 투명하면서 유혹적인 색상을 만드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 케이스 비용은 일반적인 컴퓨터 케이스 값의 세 배인 $60 이상이었다. 다른 회사에서는 아마 투명한 케이스가 판매량을 늘릴 것이기 때문에 더 높은 비용을 정당화시킬 수 있노라고 프리젠테이션하겠지만 잡스는 그런 분석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이맥 디자인의 끝마무리는 머리에 달린 핸들이었다. 기능성이라기보다는 보다 쾌활하고 기호적인 의미였다. 이 컴퓨터는 데스크톱 컴퓨터이며, 옮기면서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었다. 아이브의 설명은 아래와 같다.

“당시는 기술에 별로 친숙해 하지 않던 때죠. 뭔가 두렵다면 손도 대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도 무서워서 컴퓨터에 손대지 않을 걸요. 그래서 생각했죠. 손잡이가 있다면 관계 형성이 가능하다. 접근이 가능하다였죠. 직관적이기도 하고요. 만져도 된다는 허락의 의미였어요. 당신을 존중한다는 느낌도 줍니다. 불행히도 손잡이를 붙여서 제조하려면 돈이 매우 많이 들었어요. 예전의 애플이라면 손잡이를 고집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스티브는 정말 위대했어요. 그걸 보고는 ‘정말 멋지네!’라 말했으니까요. 구구절절 제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는 직관적으로 깨달았어요. 아이맥의 친숙함과 쾌활함의 일부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 후로 잡스와 아이브는 모든 애플의 미래 컴퓨터의 디자인을 이끌었다. 오렌지 조개와 같은 소비자용 노트북과 얼음덩이 비슷한 전문가용 데스크톱 컴퓨터도 나왔다. 벽장 뒤에 나타난 나팔바지처럼, 돌이켜 보면 그 당시로서 더 나아 보였지만 그러한 제품들은 너무 활기가 넘쳤다. 디자인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애플의 컴퓨터 디자인은 애플을 다른 컴퓨터와 다르게 만들었고, 애플로서는 윈도 세상에서 생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도 터져 나왔다.

평면 화면을 사용 가능하게 되자 잡스는 이제 아이맥을 대체할 때가 됐다고 결정내린다. 아이브는 뭔가 전통적인 모델부터 제시했다. 평면화면 뒤에 컴퓨터를 덧붙인 모델이었다. 잡스는 이 모델을 좋아하지 않았다. 순수함이 결여된 디자인이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잡스는 아이브에게, “뒤에다가 다 갖다 붙여서 할 거면 뭐하러 평면 화면을 내세웁니까? 각 요소가 서로 진정성을 갖게 해야 해요.”라 말했다.

잡스는 그날 아이맥 재편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집에 일찍 귀가하고는 아이브보고 오라고 했다. 그들은 잡스의 부인, 로렌과 함께 정원을 거닐면서 해바라기를 많이 심었다. 로렌의 말이다. “매년 정원일을 하는데 그 때 유독 해바라기가 매우 많았어요. 애들을 위한 해바라기 집이었죠. 조니와 스티브가 자기들 디자인 문제를 말하다가 조니가 갑자기 그이에게 묻더군요. ‘해바라기처럼 화면을 본체와 분리시키면 어떨까요?’ 조니는 바로 흥분하더니 스케치를 시작했어요.” 아이브는 이야기가 있는 디자인을 좋아했다. 그는 해바라기 모양이야말로 태양을 받을 수 있도록 평면화면을 유동성 있고 반응성 있게 할 수 있다고 봤다.

아이브의 새 디자인에서 보면, 아이맥의 화면은 움직일 수 있는 크롬 목에 붙어 있어서 해바라기만이 아니라 귀여운 램프처럼도 보였다. 애플은 이 디자인의 많은 부분을 특허화시켰고 대부분은 아이브를 발명자로 거명했으나, 한 가지만은 유독 잡스가 자기 이름을 주-발명자로 등재했다. “플랫패널 디스플레이에 붙어 있는, 움직일 수 있는 조립을 가진 컴퓨터 시스템”이다.

디자인으로서 단순함의 힘에 대한 잡스의 믿음은 2001년부터 그가 만들어낸 세 가지 소비자용 기기 성공작으로 정점을 이뤘다. 아이포드와 아이폰, 그리고 아이패드이다. 그는 오리지날 아이포드와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기 위해 매일같이 작업했다. 그의 주된 요구는 “단순하게!”였다. 그는 각 화면을 검토하고 엄격한 테스트를 했다. 노래나 기능을 원하는 경우, 클릭 세 번으로 가능해야 했다. 네 번이 넘어가는 경우에는 잔혹해졌다. 아이포드 팀의 리더였던 토니 퍼델(Tony Fadell)의 말이다. “사용자 인터페이스 문제를 두고 정말 고민할 때가 있었죠. 모든 옵션을 다 제시했다 여겼는데, 스티브는 ‘이건 생각해 봤지?’라 했었어요. 아예 문제나 접근법을 다시 정해버리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의 작은 문제는 사라져버렸어요.”

아이포드, 그리고 후의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긴밀하게 결합시킴으로써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 디자인의 단순성이라는, 1980년대 초반 잡스가 갖고 있던 통찰력의 성공이었다. 윈도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를 IBM과 Dell과 같은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라이선스를 준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달리, 애플은 처음부터 끝까지 견고하게 통합시킨 제품을 만들었다. 아이포드 첫 번째 버전의 경우 정말 그랬다. 모든 면면이 다 매끄럽게 결합돼 있었다. 매킨토시 하드웨어와 매킨토시 운영체제, 아이튠스 소프트웨어, 아이튠스 스토어와 아이포드 하드웨어/소프트웨어가 다 결헙돼 있었다.

덕분에 애플은 아이포드 기기를 Rio와 같은 경쟁 MP3 플레이어보다 훨씬 더 단순하게 만들 수 있었다. 잡스의 설명이다. “Rio와 다른 경쟁품들을 무너뜨렸던 것은, 걔네들이 복잡했거든요. 컴퓨터 상의 쥬크박스 소프트웨어와 통합이 안 되어 있으니 재생 목록부터 만들어야 했어요. 반면 아이튠스 소프트웨어와 아이포드 기기가 있으면 컴퓨터와 기기가 연동이 되죠. 복잡한 부분은 있어야 할 장소로 보내버릴 수 있습니다.”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는 이런 말을 했었다. “자연은 단순함과 통일성을 좋아한다.” 스티브 잡스도 그러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합치면서 그는 둘 다를 이룰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서거하고 내가 쓴 그의 전기가 출판된 이후 나는 책이 야기한 두 가지 상반된 반응에 놀란다. 잡스가 얼마나 거슬리고 심술 부리는 존재인지 놀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특히 젊은 기업가들이나 사업을 운영해본 적이 있는 이들은 그의 심술이 예술적인 감각, 디자인 완벽주의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집중한다.

두 번째 관점이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물론 잡스는 모시기 매우 힘든 인물이고, 정말 얼간이일 때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보스와 얼간이가 매우 많으며, 그들 대부분은 그렇게 심하지도, 얼간이도 아니다. 잡스를 특별하게, 가끔은 천재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따로 있다. 아름다움에 대해 불타는 듯한 본능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능력,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신념이다. 그 때문에 잡스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위해 최대한 힘을 쏟는 회사를, 우리 시대에서 그 중요성을 나타내는 제일 좋은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How Steve Jobs’ Love of Simplicity Fueled A Design Revolution | Arts & Culture | Smithsonian Magazin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스큐어몰피즘이 애플의 디자인 문제가 아니다.

Apple’s design problems aren’t skeuomorphic

MON, NOV 5, 12

지난 주, 애플의 조직 변화에 대해 발표한 팀 쿡의 서한에서 인용한다.

조나단 아이브는 산업 디자인 리더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회사 전반적으로 HI(휴먼 인터페이스)에 대한 리더십을 보여주며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그의 놀라운 디자인 미학은 10년 이상 애플 제품의 외양과 느낌을 견인해온 주역이다. 수많은 애플 제품의 얼굴은 우리의 소프트웨어이며, 조니가 가진 기술의 확장은 애플과 경쟁사들 간의 간격을 넓힐 것이다.

Sir Jony Ive needs no introduction

아이브의 산업 디자인 작품은 애플 부활의 핵심 중 하나였다. 미학적인 면에서 끈질기고 반복적인 단순함 및 기능에 대한 집중은 이제 전설이다. 본다이 블루 아이맥에서부터 아이콘화 된 아이포드, 평면화면 아이맥에서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그의 흔적은 틀림이 없다.

다만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이브의 애플 소프트웨어에 대한 역할이다. 아이브가 백마를 타고 와 스콧 포스탈스러운 스큐어몰피즘에서 긱들을 구해내리라는 현재의 기대감은 상당히 우습다. 물리적인 기기의 산업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 또한 형태와 기능으로 나뉘어 있다. 미학적인 면과 경험으로 나뉜다는 의미다. 애플 소프트웨어가 가진 문제는 어두운 리넨 천이나 코린트 식의 가죽, 찢어진 종이와 같은 스큐어몰피즘이 아니다. 애플 소프트웨어가 가진 문제는 사실 미학적인 면과 거의 관계가 없다… 대부분 경험과 관련된 문제이다. 아이브의 전임 보스의 말을 인용하여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애플 소프트웨어가 가진 문제는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느냐이다. 슬프게도 우리 기대 이상으로 애플 소프트웨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 알림의 배경이 어두운 리넨이건 아니건, 비참한 디자인일 따름이다.
  • 모바일 기기의 배터리를 떨어뜨리는 여섯 가지(GPS, WiFi, 셀률러 라디오, 블루투쓰, 알림, 화면 밝기) 아이템을 조절하려면 지금도 열심히 뒤져서 클릭해야 한다. 간단하거나 주제별, 위치별 그룹화라도 있지 않으면, 익숙지 않은 사용자들은 켜고 끄는 곳이 어디인지조차 바로 알 수 없는 지경이다.
  • 아이클라우드-데스크톱 통합과 애플 기기 간의 직접 파일 공유는 말과는 달리 직접적이지 않으며, “It just works”에 못 미친다.
  • iWork 패키지와 같은 수많은 애플 앱들의 업데이트가 절실하다. 미리보기나 텍스트에디스, 주소록과 같은 다른 앱들 또한 UI와 UX를 아예 완전히 개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 사전이리든지 iOS 키보드 배치와 자동 완성 기능 같은 핵심기능들이 최고가 아니다.
  • 조그마한 “폴더” 안에 들어가는 iOS의 앱 조직화 기능을 보면, 현미경으로나 봐야 할 아이콘으로 앱을 모아 놓는다. 이름도 안 나오고, 뭐가 들어 있는지 알아보기 힘들고 확장성도 갖고 있지 않다.
  • iOS 앱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일은 우아하지 않고 불투명하며, 일반적으로 앱들 사이의 데이터 상호 교환(개발자에게는 상당히 힘 떨어지는 일이다) 또한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문제점 목록을 길게 쓸 이유는 별로 없다. “개선할 사항” 목록을 실제로 작성하면 10배는 더 길어질 것이다. 이 시점에서 누구의 잘못인지 논하는 것은 별로 유용하지 않다. 애플 소프트웨어(특히 스스로 미래라 밝힌 iOS)는 미학적으로나 경험으로나 심각한 개수 작업이 필요하며, 미학보다는 경험 쪽이 훨씬 더 절실하다.

One Man. One Company. One Aesthetics?

문제는 세계에서 제아무리 제일 뛰어난 산업 디자이너라 하더라도 아이브 혼자서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미학과 경험 모두)를 필요한 정도로까지 충분한 관심을 쏟을 수 있을까? 그럴 시간이 한 사람에게 있겠는가?

애플의 휴먼 인터래션 가이드라인(HIG)은 아이콘 그림자라거나 버튼의 배열만 다뤘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일반적인 애플리케이션 디자인의 행동적 측면의 분석도 HIG에 포함된다. 한 세대 이전, 웹디자인이 지배적이기 이전 시절, HIG는 애플 스스로는 물론, 애플 개발자들도 훨씬 더 존중하고 지켜왔던 준칙이었다. HIG를 안 지키는 점이 있으면 충성스러운 사용자들도 알아보고 불만을 드러냈었다. 공개된 포럼에서 HIG 토론이 일어났던 것 또한 일반적인 일이었다.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라디오 버튼이나 체크박스 정도로도 웹페이지 네비게이션이 가능하다. 네비게이션이 가능한 메뉴는 이제 원형이고 삼각형 팝업으로 뜬다. 사용자에게 기능을 해치지 않는 한 순수 제스쳐에 기반한 UI들이다. 미끄러지는 패널 레이어는 서로 연동되며 동작한다. 아이템 목록 슬라이드는 좌우로 움직이면서 드릴다운 액션을 일으키고 위아래로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내보낸다. 3D로 만든 UI도 있으며, 그림자가 없는 UI도 있고, 대부분은 여러 가지 스타일의 조합이다. 한 때 강력했던 HIG가 다 그러한 “혁신” 깊숙이 묻혀 있다.

그렇다면 현재 5억 명의 사용자가 있는 생태계를 한 명의 휴먼 인터페이스 황제가 호령하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가능하고 바람직하기도 하다면, 그토록 거대한 생태계의 시각적 미학과 기능적 경험을 한 사람이 모두 맡을 수 있겠는가?

  • 디스플레이 레이어에 떠오른 시리의 문제점이 의미(semantic)를 가진 토대로 음소 나누기, 어휘별 맥락, 데이터-제공자의 계약, 통신망 대기 시간 등이 깊은 관계에 있고, 그래서 그 해결방법은 이들 요소와 기능들의 협업에 달려있다라는 점을 단 한사람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 지도나 패스북 앱을 사용할 때에도, 유사한 기술적 및 운용의 제한때문에 사용자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사실을 과연 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기대하는 것이 공정하고 합리적일까?
  • 게임센터에 소셜 레이어가 없고 아이튠스나 앱스토어의 콘텐트 발견 레이어가 기능을 수많은 방법이 어떻게 방어하는가? 이를 한 사람에게 맡겨도 되나?
  • 사용자-수준의 파일 관리로부터 애플이 떠날수록 아이클라우드 문서 관리와 공유라는 인지적인 혼란은 어떠한가?
  • 아이튠스의 대대적인 재-디자인으로 알려진 엄청난 실험은 도대체 언제 나오는가?
  • 애플 티비에도 미학적이고 경험적인 재디자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업데이트할 때마다 iOS의 상태바와 오에스텐 메뉴바의 투명도/색상을 바꾸는만큼 오래 묵은 위의 문제가 가진 깊이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단 한 명의 황제가 해결할 수 있을까? 그가 해결할 수 있는 UI 코너와 UX 경로는 몇 가지나 될까? 이들 문제는 사실 미학적인 문제가 아니다.

Apple, quo vadis?

아이브의 임명이 스콧 포스탈의 퇴사, 혹은 단일 체제 하로의 애플 디자인 개편과 관계가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 명의 황제 휘하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을 합치는 것은 분명 미학적인 효율성을 안겨다 줄 수 있겠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내포할 수 있다. “빨고 싶을 정도”의 아쿠아 UI는 10년으로 수명을 다 했고, 좀 더 미학적으로 단일하면서 매력적인 디스플레이 레이어가 등장했다. 그렇지만 행위적이고 기능적이며 실험적인 소프트웨어 문제점 다수를 숨겨버리는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다음과 같다.

  • 더 현대적이고 덜 느끼한 게임 센터의 재-디자인이 나왔지만 소셜 레이어는 여전히 없다.
  • 미학적으로 단일한 아이튠스이지만 콘텐트 발견성은 더 나아지질 않았다.
  • 시리 앱에는 배경의 리넨이 없어도 iOS의 나머지 부분과 맥락적으로 깊은 통합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 지도 앱은 어색한 초현실적 시각효과가 없어도 견고한 검색 레이어를 여전히 갖추지 못했다.
  • 나무 책서랍이나 안쪽의 그림자가 없는 아이북 앱의 타이포는 보통 수준 이하이고 하이픈 연결하기와 행 맞추기는 무기력하다.
  • 테이프 덱의 스큐어몰피즘이 없다 하더라도 포드캐스트 앱의 네비게이션은 불투명하다.

마지막으로, iOS에서 잘못된 점은 앱 아이콘 뒤에 있는 어두운 리넨이 아니라, 훨씬 더 나은 애플리케이션-간의 관리와 내비게이션이다. 조그마한 아이콘을 헤집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애플이 아이튠스와 앱스토어에서 사용하는 애플 ID의 통일 문제, 혹은 성능과 신뢰성 문제만 훨씬 잘 해결할 수 있다면, 애플 사용자 대부분은 노트북이나 달력 앱에 스큐어몰피즘을 더욱 덧붙인다 하더라도 천 년 만 년 사용할 것임을 확신한다. 게다가 이 문제는 동일한 시스템 디자인이 야기하는 문제의 쌍둥이적인 측면을 의미한다. 표면에 드러나는 디스플레이 레이어, 혹은 그 내부에 힘을 숨기기, 혹은 점점 늘고 있는 두 이슈의 부족한 부분.

그렇다. 우리는 애플에게 다른 기업과는 다른, 별도의 기준을 두고 있다. 30년 동안 그래 왔으며, 그에 따른 보상도 충분히 받아 왔다. 애플이 계속 승리해 나아간다면 조니 아이브가 코린트 식의 가죽 소파 뒤에 있을 수퍼맨 망토를 잊지 않고 있기 바란다…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Apple’s design problems aren’t skeuomorphic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Sir Jonathan Ive and entire Apple design team fly to London to collect prestigious D&AD awards

Gideon Spanier
19 September 2012

광고와 디자인 업계에서 제일 가는 상 중 하나인 D&AD 어워드 중, 최고의 브랜드 및 디자인실로 애플이 거명됐다. 애플의 디자인 일인자로서 전면에 나서기를 보통 꺼려하는 조너선 아이브 경이 이 상을 받으러, 런던 바터시 파크(Battersea Park) 에볼루션(Evolution)에서 열린 만찬장에 등장했다.

평소와 같지 않았던 일은 더 있었다. 아이브만이 아니라 D&AD 어워드의 중요성을 인식한 듯, 샌프란시스코에서 애플의 전체 디자인 팀이 다 런던으로 왔기 때문이다. 모두 16명이며 남자가 14명, 여자가 2명이고, 베스트 디자인 스튜디오 상을 받는 아이브 경을 그들이 수행했다.

애플 디자인 팀이 이러한 수상식에 공개적으로 참여한 적은 이전까지 한 번도 없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의 등장은 애플이 금요일부터 스토어에 풀리기 시작한 아이폰 5를 선보였기 때문에 더욱 더 주목받았다. 조너선 아이브 경은 제50회 D&AD의 다른 손님들과 잡담을 나누며 큰 미소만을 지었다. (D&AD는 디자인과 아트 디렉션을 의미한다.)

존 헤가티(John Hegarty) 경이나 데이비트 퍼트넘(David Putnam) 경, 테런스 콘란(Terence Conran) 경과 프랭크 로(Frank Lowe) 경 등 영국 광고업계의 거물들도 이번 시상식에 참여했다.

디자인 자문회사인 Tangerine에서 아이브와 같이 일했던 클라이브 그리녀(Clive Grinyer)는 애플 제품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디자인은 브랜드의 모든 부분에 깃들어 있습니다”라 말했다.

하이네켄과 Hovis, Benson & Hedges, 1970년대의 Helmet 시가의 기억할 만한 광고를 만들었던 Collett Dickenson Pearce & Partners도 최고의 광고에이전시로 수상했다.

D&AD의 수석 운영책임자인 팀 린제이(Tim Lindsay)의 말이다. “오늘 밤 이 자리에 모인 기업과 브랜드 관계자 여러분들이야말로 지난 50년간 광고 업계의 진정한 비전가들이십니다. 여러분의 작업이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방식과 우리가 통신하고 서로 사업하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Saatchi & Saatchi의 CEO인 로버트 시니어(Robert Senior)는 광고 업계의 중요성에 대해 강력하게 말했다. “D&AD 어워드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면, 여기를 보십시오. 세계에서 제일 가치가 높은 회사에서 디자인 팀 전체를 행사장으로 보냈습니다. 보수당 정부 관계자 여러분, 보고 계십니까?”

Sir Jonathan Ive and entire Apple design team fly to London to collect prestigious D&AD awards – Technology – News – Evening Standard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Tim Cook은 오랫동안 애플에 중추적인 관리를 지원하면서 Jobs가 병가를 내고 휴직할때 3번의 임시 CEO가 되었습니다. Tim은 Jobs와 달리 회의에 대한 의견을 끝나고 언급하는 것을 좋아하며 의견에 대한 정리 시간을 주었다고 합니다.

Steve Jobs가 보여준 회사의 방향과 제품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반영 되었지만, iPhone 5는 어떻게 보면 Steve Jobs가 끝까지 세세하게 지시를하고 관여 했던 마지막 제품이라고 iPhone 개발에 참여한 사람들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Tim은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하는 타입은 아니며, 많은 우수한 맴버들과 어울려 함께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Bob Mansfield가 은퇴하게 되며 Dan Riccio가 후임으로 결정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Dan이 그 직무를 담당 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여서 불만이 생기기 시작 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Tim은 다시 Bob에서 월 200만 달러의 현금과 주식을 포함한 엄청난 보상을 걸고 고문으로 남아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Steve Jobs에 의해 시작된 매핑 프로젝트는 Scott Forstall이 책임자로서 Apple 캠퍼스에 3개의 비밀 팀을 두고 진행해왔다고 합니다. Jobs는 임종 직전 Google은 싫어하게 됐다고 하며, iPhone에서 Goolge의 검색 엔진을 없애기로 하는 것도 검토 되었으나, 사용자의 반대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 결론은 보류 되었다고 합니다.

*번역이 완벽하거나 고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리포트 해주시면 정정하겠습니다.

http://www.businessweek.com/articles/2012-10-03/mapping-a-path-out-of-steve-jobs-shadow

Apple의 Design Team을 이끌고 있는 조나단 아이브(Jony Ive)와 그의 팀원 16명이 영국에서 주는 D&AD(Design and Art Director) 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http://www.standard.co.uk/news/techandgadgets/sir-jonathan-ive-and-entire-apple-design-team-fly-to-london-to-collect-prestigious-dad-awards-81559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