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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이 전자 결제 서비스인 Apple Pay를 미국에서 10월 20일부터 서비스를 진행 할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500개의 새로운 은행과 제휴 해, 소매점 및 온라인 스토어 역시 추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서비스 시작과 함께 iOS 8.1도 함께 릴리즈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http://www.apple.com/iphone-6/apple-pay/

FEATURES November 17, 2011, 5:00 PM EST

What Is Sony Now?

At 69, Sir Howard Stringer’s time as CEO of the unwieldy electronics giant is running out. Can he and heir apparent Kazuo Hirai turn it around?

By Bryan Gruley and Cliff Edwards

하워드 스트링거 경(Sir Howard Stringer)은 2011년이 “훌륭한 해가 될 것이다”라 했던 자신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올해야말로 성과를 나타내는 첫 번째 해가 될 것이고, 내년은 두 번째 해가 될 것입니다.” 소니의 사장이자 CEO로서 스트링거는 일본의 아이콘, 소니를 예전의 영광으로 되돌리고 새로운 성장시대를 열어주기 위해 6년동안 노력했다. 소니는 올해 적어도 20억 달러의 영업이익을 올릴 예정이었고, 이는 지난 3년간 최대 실적이다. 소니 최초의 태블릿과 컴팩트한 24-메가픽셀 카메라, PSP 등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기 직전이며, 영화와 음악, 비디오 게임과 텔레비전, 태블릿, 컴퓨터, 휴대폰을 모두 한데 묶는 네트워크망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튠스와 같은 디지탈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의미다. 뉴욕의 한 조찬 모임에서 스트링거가 한 말이다. “솔직히 올해가 정말 기억에 남을 듯 합니다. 실제로 기억에 남겠죠. 하지만 잘못된 쪽으로요.”

승리의 예감은 3월11일에 갑자기 끝났었다. 갑작스러운 등 수술을 받기 전, 그는 뉴욕에 있었고, 오전 4시 30분에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쓰나미가 일으킨 지진이 동부 일본을 강타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동경으로 되돌아갈까 했으나, 일단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 때 저를 거기서 필요로 하지 않았거든요.” 스트링거는 일본어를 할 줄 모르며, 자기가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되리라 판단내렸다. 전화로 대표와 대화를 나눈 끝에 그는 소니 직원 중 피해자가 없으며 오히려 구호작업에 긴급투입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센다이에 있던 기술센터 직원들은 제품을 싸는 발포고무로 보트를 만들어서 희생자와 물자를 날랐다. 스트링거는 감동을 받고 일본인의 “불굴의 정신(不屈の精神)”을 극찬하는 칼럼을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할 정도였다.

지진과 쓰나미는 일시적으로 블루레이 디스크와 건전지 등을 만드는 소니의 플랜트 10곳의 문을 닫게 만들었다. 수익에도 큰 부담이 생겼다는 의미다. 스트링거가 예상하던 20억 달러의 영업이익은 31억 달러의 총손실로 돌변하고, 소니는 16년만에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소니의 재앙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해킹 공격 때문에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가 문을 닫아야 했고, 엔화 강세 또한 이윤을 끌어내렸으며, 세계적인 경기불황도 매출을 악화시켰다. 런던의 CD와 DVD 창고는 폭도들로 인해 화재에 휩싸였고, 태국의 홍수 때문에 부품공장을 닫아야 했다.

스트링거의 후임 물망에 오르고 있는 히라이 카즈오(平井 一夫) 대표집행역 부사장(代表執行役副社長)은 가을에 “위기감”을 느낀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었다. 소니는 내년 3월에 끝나는 회계연도 손실액을 12억 달러로 추산하고 있으며, 주가 또한 24년 동안 최저가로 폭락했다. 시가는 스트링거가 CEO가 됐을 무렵의 절반인 170억 달러에 불과하다.

자연재해와 환율 말고도 소니의 문제는 더 많이 있다. 워크맨과 트리니트론을 만들던 소니는 이제 팝문화를 상당기간 이끌지 못 하고 있다. 소니는 전자제품의 시대를 거쳐왔지만 인터넷과 디지탈 연결이 붐을 이루면서 아이포드가 대중의 오락생활의 중앙을 차지했고, 그 다음에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뒤를 이었다. 소니는 이제서야 만들고 있는데 말이다. 심지어 소니 하면 떠올리는 핵심제품인 텔레비전 부문에서 소니는 8년간 85억 달러의 적자를 봤고 적어도 2013년까지는 계속 적자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소니 간부에 따르면, 소니는 몇 년 전의 출하비용보다 더 저가로 텔레비전을 팔 수 없을 정도로 삼성과 Vizio 등 다른 업체들이 워낙 저가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한다.

소니는 적어도 한 10년동안 인터넷 시대를 뒤쫓아가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거대 제조업체로 남아 있으며 직원 수는 16만 8,200명, 공장은 41개소, 헤드폰에서 의료용 프린터, 헐리우드급 3D 영화제작장비에 이르기까지 2천여 항목이 넘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동경의 매쿼리 캐피탈 증권사의 수석 분석가 제프 로프(Jeff Loff)는 소니가 미국에서 46인치 텔레비전만 9종류를 팔고 있으며, 에릭슨과 공동으로 판매하고 있는 휴대폰의 종류는 40가지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연구개발 비용이 얼마나 분산될지 상상이나 하실 수 있겠습니까?” 소니 대변인은 휴대폰 종류를 현재 감축중에 있으며, 삼성은 15가지 종류의 46인치 텔레비전을 판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CEO로서 스트링거의 임기는 끝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기사를 위해 인터뷰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는 현재 69세이고 지난 3개년 계획 또한 2013년 3월에 끝난다. 그 때가 되면 아마 히라이가 다음 회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소니가 쉽게 변화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점은 스트링거도 인정하는 바이다. 종신고용을 보장하려는 일본의 오래된 문화와 국내법때문에 일본 내 플랜트를 없앨 수가 없었으며 그에 따라 비용감축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만장일치가 돼야 뭔가를 할 수 있는 일본의 전통도 강력한 리더의 민첩한 대응이 요구되는 경쟁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스트링거의 말이다. “대부분은 제게 이건 할 필요가 없다, 왜 하려 하느냐라 묻습니다. 안정적이고 안전한 미래를 가진 회사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죠. 제 나이에서 승리를 예견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만, 우리 자산을 잘 조합해서 활용할 수 있다면 소니는 강력한 회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다국적 기업의 CEO는 출장이 매우 잦지만 스트링거만큼 마일리지를 많이 올린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동경에서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런던(그의 부인은 영국에 거주한다), 파리, 런던, 그리고 동경으로 되돌아온 최근 출장은 모두 1주일 안에 이뤄졌다. 다행스럽게도 북경 일정은 취소됐다. “수면제를 정말 많이 복용합니다.”

하지만 그가 고민하는 것은 수면부족이 아니다. 소니가 더 이상 혁신기업의 이미지를 갖고있지 않다는 점이다. “제기랄,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만들고 있어요.” 올해에도 3D 비디오게임과 영화를 시청할 수 있는 고글과 비디오를 녹화할 수 있는 쌍안경 등 신제품이 꽤 나온다. “소니기술이 훌륭하지 않다는 말씀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소니는 제2차세계대전의 참화를 딛고 세계 경제강대국으로서 일본의 회복과 부활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사례가 됐다. 소니는 원하는 것 거의 전부를 스스로 만들 수 있었던 카리스마적인 창립자 두 명이 만든 회사다. 이부카 마사루(井深大)는 소니의 엔지니어를 기술대가로 숙련시킨 성실한 혁신가였다. 마찬가지로 전자기기를 좋아한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종종 소비자 스스로가 알기도 전에)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고, 오디오와 비디오 기기를 소니의 효자상품으로 만들어냈다.

1946년, 이부카가 손수 적은 소니의 “설립취지(設立趣意書)”는 “기술자들이 기술의 깊은 기쁨을 느끼고 그 사회적 사명을 자각하며 마음껏 일하는 안정된 직장(技術者たちが技術することに深� ��喜びを感じ、その社会的使命を自覚 して思いきり働ける安定した職場)”이다. 소니는 또한 엔지니어 우선적인 소니의 문화를 확립했다. 소프트웨어가 적어도 하드웨어만큼 중요해진 세기의 전환이 왔을 때 소니의 문화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된 전조가 그 때부터 존재한 것이다. 그러한 엔지니어들은 휴대용 뮤직플레이어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을 때에도 모리타 아키오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Sony: The Private Life“의 저자인 존 네이선(John Nathan)은 “모리타는 요지부동이었어요.”라 말한다. “그는 일본과 미국에서 휴가 때의 10대들을 관찰했습니다. 라디오를 갖고 해안이나 산으로 가더라 이거죠. 그렇다면 운동하거나 놀 때, 아니 거기를 그저 걸어갈 때 음악에 몰입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1979년 소니 워크맨이 탄생했다.

비디오 포맷 전쟁에서의 베타맥스처럼 실수도 있었지만 소니 브랜드는 스타일이 있는 디자인과 높은 기술품질로 경쟁사보다 더 높은 값을 매길 수 있었다. 워크맨이 태어났을 때의 소니 매출액은 30억 달러였고, 5천만 대의 워크맨이 팔린 11년 후, 소니의 매출액은 250억 달러로 올라갔으며, CBS Records와 Columbia Pictures까지 갖게 됐다. 소니는 자신이 부동의 1등을 차지하고 있는 듯 행동했고, 그 때문에 샤프와 삼성 등이 2000년대 초, 업계 표준화된 평면화전 텔레비전을 만들 때에도 트리니트론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고집했었다. 결국 소니도 반응을 보이기는 했지만 오늘날 삼성과 LG는 양사 모두 전세계적으로 소니보다 더 많은 텔레비전을 팔고 있다. 2006년 닌텐도가 모션-센서가 달린 위 게임을 발표했을 때에도 소니는 닌텐도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후에 블룸버그 뉴스는 스트링거가 닌텐도 위를 “틈새시장용 게임기기”이지 경쟁자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말을 인용했다. 위는 대히트작이 됐고 오늘날에도 베스트셀러 게임콘솔로 남아 있다. 플레이스테이션3는 3위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애플 아이포드만큼 소니에게 치명상을 입힌 제품은 없었다. 애플은 2001년에 아이포드를, 2003년에는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를 소개했지만, 소니는 음악 다운로드에 대해 다른 업체들과 협력하고 있었다. 스트링거의 말이다. “스티브 잡스가 이 부문을 이해하고 있었어요. 우리도 알고 있었지만 실행을 못 했습니다. 음반사들이 CD가 사라지는 꼴을 보고싶어하지 않았거든요.”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이 적은 스티브 잡스 전기에 따르면, 소니는 음반사를 포함하여 스스로의 아이포드를 만들어낼 “모든 자산”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실패했는지 나와 있다. “소니가… 각 부서로 나뉘어져 있는 회사이기 때문인 부분이 있을 것이다. (부서라는 단어 자체가 불길한 단어다.) 부서끼리 협력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회사는 보통 찾기 힘들다.”

2004년, 소니는 새로운 리더를 찾아나겄다. 총수입은 1999년의 15억 천 만 달러에서 8억 5,100만 달러로 떨어져 있었고 본지의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 가전업계에서 최초로 삼성이 소니를 브랜드 인지도에서 앞서나갈 때였다. 스트링거는 소니의 미국 내 영업 대부분을 운영하고 있었고, 스파이더맨 프랜차이즈와 9천 명의 정리해고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영화부문의 이윤을 달성했었다. 키 큰 웨일즈 인으로서 붉은 쟃빛 머리카락을 갖고 있는 스트링거는 일본 기업 CEO에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미국 내 사업에 만족해 있었다. “저는 미국에 있는 편이 좋습니다.”

그러나 소니는 큰 변화가 필요했다. 핵심 사업인 소비자 가전제품 부문은 적자를 보고 있었다. 당시 소니의 CEO 찾기를 도와줬던 Blackstone Group의 수석사장인 피터 피터슨(Peter G. Peterson)에 따르면 “대인관계가 매우 뛰어난 인재”를 찾았다고 한다. 예전에 CBS의 사장을 지냈던 스트링거는 “상냥하지만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Asia Case Research Centre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자기가 해고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나기도 했었다. 친구와 지인 모두 스트링거를 매력적이고 똑똑하며 유머감각도 뛰어나다고 봤다. 그는 부자라는 사실을 드러낼까봐 자기 아파트에서는 센트럴파크 조망을 내보이기 꺼려했다고도 한다. (아무튼 그는 보여줬다.) 맨하탄 중심부에 있는 소니 미국지사의 사무실에 가 보면 11개의 에미상 중 9개가 CBS 저널리스트로 일 할 때 받은 것이라 말하면서 활짝 웃기도 했던 그이다. “나머지는 인생의 업적이며 이제 끝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세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가까이에는 버트 레이놀즈(Burt Reynolds)의 스트링거에 대한 글이 새겨진 야생마를 타고 있는 카우보이 조각상이 있다. “여전히 어울릴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송국 사장에게”.

스트링거는 2005년 6월 소니의 회장 겸 CEO가 됐다. 단 그는 사장의 직함을 달지는 않았는데, 그것이 문제가 됐다. 각자 책임을 지지 않고 심지어 서로 대화도 하지 않는 제품 부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소니의 전자제품사업에는 스트링거가 CEO가 됐을 때 전자제품 CEO이자 이사회가 사장으로 임명한 추바치 료지(中鉢良治)에게 보고를 올리는 여덟 개의 그룹으로 구성돼 있었다.

스트링거는 마케팅과 소프트웨어, 그 외 다른 업체에서는 일반적인 사업부를 창설하여 소니를 간결하게 만들 계획을 세웠지만, 그 과정은 느렸다. 그 이유는 그가 전자제품을 맡고 있지 않아서였다. 전자제품의 책임자는 추바치 사장이었다. 사장(社長)은 서구세계에서 보통 수석운영책임자(COO)가 맡는 일상적인 관리를 맡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대단히 강력한 직함이다. 스트링거는 멋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게 통제권이 없는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워낙에 일본이 합의체제로 흘러가는 것니 그러려니 했었죠. 저 또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투입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 년을 낭비했다.

스트링거는 또한 하드웨어를 숭상하는 문화때문에 그가 괄시받는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엔지니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음악과 영화 일에나 전문가이지 기기 제조에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콘텐트” 위주의 인물이었다. “제가 콘텐트를 언급할 때마다 ‘여기는 전자제품 회사이고 콘텐트는 그 다음이다’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런 분위기는 일본 내의 엔지니어와 일반적으로 더 보수가 좋은 캘리포니아의 영화와 음악 부문 직원들과의 오랜 경쟁관계를 낳기도 했다. 소니의 가전제품 부문은 종종 소니 영화부문에게 제품도 안 보낼 때가 있었다. 오히려 매트릭스와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에 삼성이 자사 휴대폰을 넣어서 홍보하는 형편인데도 말이다.

스트링거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스스로 한 번도 못 본 여러가지 제품용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그래서 그는 칵테일 파티를 개최하여 서로 만나게 하여 명함과 아이디어를 주고 받도록 조치했다. 2006년 동경의 Grand Prince Hotel New Takanawa에서 개최한 연간 관리자 컨퍼런스에서 그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상석을 안배하여 소니의 미래에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아마 소니 부서 중에서 제일 소통이 안 되는 곳은 소니 컴퓨터엔터테인먼트 부일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 비디오 게임을 만드는 곳이 이곳이다. 1994년에 나온 플레이스테이션은 소니와 닌텐도 간 협력이 잘 이뤄지지 않아 태어난 제품이었다. 엔지니어이자 게이머였던 쿠타라기 켄(久夛良木健)은 닌텐도 없이 해보자고 우겼고, 상사는 마지못해 플레이스테이션을 결재해줬다.

2000년 플레이스테이션 부문은 소니 영업이익의 1/3을 차지했다. 그 해에 나온 플레이스테이션2는 웹사이트의 분당 방문객이 10만 명이 넘어서 사전예약 사이트를 닫아야 할 정도였다. 이 때 소니의 주가는 주당 $300을 뛰어 넘었고 사상 최고치였다. 그래서 차기 CEO는 쿠타라기가 된다는 말도 나돌았다.

소니의 통큰 플레이스테이션 마케팅도 전설급이었다. 매년 열리는 E3 게임 엑스포에서 소니는 로스앤젤레스의 다저스 스타디움을 임대하여 거대한 텐트를 설치했다. Chavez Ravine와 시내 스카이라인의 경관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스시와 미니 핫도그, 중국음식, 술, 게이머와 헐리우드 유명인사까지 모두 El Circo의 불 댄서를 보고 Incubus와 Black Eyed Peas의 공연을 보고 있던 중, 쿠타라기와 그의 핵심 부하인 히라이는 VIP 방에서 줄담배를 피워댔다.

돌이켜보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간의 우아한 결합인 플레이스테이션 시스템은 소니에게 애플 아이튠스에 필적할만한 플랫폼을 이미 만들어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스트링거 스스로도 쿠타라기를 “컨버전스의 완벽한 사례”라 칭했을 정도이며, 쿠타라기는 “컴퓨터와 엔터테인먼트 간의 결합”을 만들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소니 내 다른 부서와 협력하려 하지 않았고 자신의 휘하에 있는 능력있는 엔지니어와 같이 일하려는 간부나 부서를 대부분 무시했다. 쿠타라기는 소니 내에서 반항아의 이미지를 구축했으며, 1999년 당시 본지에 소니가 “대기업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소니는 탈이 많았던 플레이스테이션 3가 나올 때까지만 그를 참아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360은 2005년에, 플레이스테이션3는 2006년에 나왔고, 히라이는 “우리가 하기 전까지는 차세대가 시작도 안 할 것이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블루레이 플레이어와 그 외 값비싼 주변기기를 단 새로운 플레이스테이션은 한 대가 팔릴 때마다 각각 $240과 $307씩 손해를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Suppli에 따르면 PS3의 가격은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보다 100달러 더 비쌌다고 한다. 스트링거는 쿠타라기를 축출하고 히라이에게 플레이스테이션의 책임을 맡겼다. 일본에서 전화로 접촉한 히라이는 자신이 “정말 멋진” 프로젝트를 작업하고 있지만 더 이상 밝히기를 거절했다. “소니 출신이라면 아마 다들 떠벌리고 싶겠지만요.”

스트링거의 움직임은 소니가 33억 달러의 영업이익을 올린 2008년에 그 값을 해낸 것으로 보였다. 스트링거가 세웠던 목표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 구조조정을 더 하고 플랜트를 폐쇄하며, 공급업체를 줄였다면 20억 달러의 이익을 더 봤을 것이다. 1년 이후, 소니는 출발점으로 되돌아갔다. 총손실이 거의 10억 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당시 스트링거가 물러나야 한다는 루머도 나돌았다. 그 대신 스트링거는 자신의 힘을 더 모아들여서 드디어 사장의 직함을 얻어냈다. 그는 더 많은 구조조정과 함께 “4총사”라 부르는 간부진에게(히라이를 포함한다) 텔레비전과 플레이스테이션 등 가전제품의 통제권을 넘길 계획을 세웠다.

2년 후, 스트링거는 스스로 “리만 쇼크(Lehman shock)”라 부르는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아니었더라면 2008년은 흑자였으리라 주장했다. 그는 소니에 “두꺼비와 전염병(Toads and Pestilence)” 말고는 다 있다는 말을 한 것으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많은 이들이(특히 월스트리트를 포함) 자신의 말을 변명으로 여기는 것을 불편히 여겼다. “이게 있고 저것도 있다는 식으로 항상 말할 수는 없잖아요. 태국에 홍수가 났을 때 생각했죠. 잠깐만. 홍수와 엔고까지 겹쳤으니, 너에게는 죄가 없다. 하지만 가끔은 말해야 합니다. 만약 경쟁사가 똑같은 일을 겪었더라면…”

소니가 텔레비전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링거와 히라이 모두 소니가 텔레비전 사업을 지속하리라 보고 있다. 스트링거는 소니의 풍부한 제품군을 오히려 영광의 훈장, 혹은 경쟁우위의 요소로 간주한다. 스트링거는 과장되게 말했다. “안 팔면 안 됩니까? 소니가 원래 그래요. 저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소니는 자기가 만든 하드웨어를 대단히 자랑스러워 합니다.” 히라이는 소니가 텔레비전 판매목표치를 낮췄고, 앞으로도 손실을 볼 것이며, 생산기지를 외주에 맡길수록 공장문을 닫고 구조조정도 해야 하리라 말했다. 스트링거는 소니에게 “다른 종류의 텔레비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소니가 보통의 LCD와 플라즈마 텔레비전을 대체할 프로토타입을 작업중에 있다고 말했다. 히라이의 말이다. “곧 신기술 텔레비전으로 움직일 겁니다.” 소니는 현재의 텔레비전보다 두 배의 해상도를 가진 초저전력에 유리가 3D용 안경이 없는 3D 텔레비전으로 자신의 명성을 되돌리고 싶어하지만, 주류용으로 제품이 나오려면 적어도 2013년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10월 경 소니는 소니와 휴대폰 사업을 합작했던 에릭슨의 지분을 사들였다. 급성장하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은 엄청난 기회를 보여줬지만 그동안 소니는 삼성과 애플에 뒤쳐져 있었고, 미국 시장에서는 거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다. 소니는 개선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이용한 태블릿과 스마트폰, 몇 가지 텔레비전을 통해 구글에 의존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소니의 모든 콘텐트와 기기를 한데 묶어둘 소니 엔터테인먼트 네트워크에 대해 더 듣고싶어 한다. 동 프로젝트를 관장하고 있는 히라이에 따르면 클라우드의 마법을 통해 제공할 영화와 음악에 더해, 추가적인 서비스와 독점 콘텐트를 결합시킬 것이라고 한다. 소니가 만든 텔레비전 드라마 전부와 스파이더맨, 아더 크리스마스와 같은 영화로 확장될 것이다. 히라이의 말이다.

“모두를 소니 엔터테인먼트 네트워크의 우산 아래에 모을 계획입니다.” 그는 여기에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의 4,500만 사용자도 포함된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텔레비전과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라는 화면 4개 모두에 소니 콘텐트를 제공할만큼 강력한 하드웨어를 이제 가질 것이라 덧붙였다.

스트링거는 교체가 유력하지만 히라이는 소니의 미래에 핵심적인 존재다. 키가 큰 50세 일본인으로서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히라이는 가족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와 동경을 통근하다시피 급한 사람처럼 왕래하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사업과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에서의 경험 덕분에 그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서로를 필요로 하는지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그와 스트링거는 소니 직원 모두 이제는 같이 움직인다 말한다. 지난 해 히라이는 플레이스테이션 직원 수 백명을 동경 아오야마(青山)에서 소니 본사가 있는 시나가와(品川)로 이주시켰다. 고립돼 있던 플레이스테이션을 깨뜨리는 상징적인 조치는 물론, 모두가 협업하여 예산을 절약시킬 수 있는 실용적인 조치이기도 했다. 히라이는 덕분에 자신의 평판이 일시적으로 나빠졌다고 말한다.

매쿼리의 분석가인 올해 34세의 제프 로프는 소니가 텔레비전 사업에 대해 대규모의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등의 과감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 이유를 궁금히 여긴다. “저는 소니가 뭘 어찌할지 모른다고 봅니다.” 로프는 올해 초, 일본에서 지진이 났을 때 소니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일단 초기의 평가는 소니에게 우호적이었으며, 소니 주식을 “시장 수익률 상회(outperform)”로 평가내리기도 했다. 그래서 매쿼리 증권의 직원들은 그가 어떻게 된 것 아니냐 물었다. “소니는 항상 약속만 거창하고 결과는 보잘 것 없다고 말하더군요.”

여름이 지나자 제프 로프는 매쿼리 내 다른 직원들의 의견에 더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의 보고서는 소니를 점점 부정적으로 다뤘다. 8월30일에 나온 그의 보고서 제목은 “Pushing Reset”으로서, 소니의 주식평가를 “중립”으로 낮추고 주목할만한 코멘트를 적었다. 지난 9년간 소니의 전 부문의 이익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낸 곳이 재무 서비스(대부분은 생명보험)와 자동차 보험, 은행업무였다. 로프의 말이다. “소니는 적자인 텔레비전 사업부문도 갖고 있는 생명보험 회사입니다.”

이 분석을 알게 된 스트링거는 어깨를 으쓱였다. “예. 보험 부문이 효자이기는 했죠.” 아침이 끝나자 스트링거는 앤디 루니(Andy Rooney)의 추도식에 들렀다가 소니 사무실로 향했다. 그의 사임이 임박했다는 루머는 다시 떠돌았지만 스트링거는 루머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곳을 좋아하기에 아직 여기에 있습니다. 소니의 비전을 완전히 믿고 있으며, 곧 실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들 인내심을 기대할 수는 없죠.”

Gruley is a reporter for Bloomberg News in Chicago. Edwards is a reporter for Bloomberg News in San Francisco.

What Is Sony Now? – Businessweek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Apple은 독일의 전자 제품 제조 업체 Loewe AG를 인수할 계획으로 보인 다고 합니다.

인수 제시 금액은 8730만 유로라고 합니다. 또한 Loewe AG의 주요 주주로, 샤프 28.83%와 LaCie 11.17%가 포함 되고 있습니다.

http://www.appleinsider.com/articles/12/05/12/apple_reportedly_in_talks_to_acquire_german_hdtv_maker_loewe.html

GimmiQ는 얼굴의 움직임으로 페이지를 넘길 수있는 iPad 전자 서적 리더 애플 리케이션인 MagicReader 를 발표 하였습니다. 또한 가격은 무료입니다.

MagicReader는 요리 중이나 악기 연주시 등으로 양손 사용이 어려울때 얼굴을 좌우로 흔들어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고 합니다. PDF, Zip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http://itunes.apple.com/kr/app/magicreader/id505117386?mt=8

Patently Apple은 Apple의 NFC 시스템인 iWallet에 관한 새로운 특허 정보가 발견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특허 정보는 금융 거래 규칙에 대해 자세히 설명이되어 있고, 트랜잭션 제어 등 구체적인 설명이되어 있습니다.

http://www.patentlyapple.com/patently-apple/2012/03/apple-wins-patent-for-iwallet-the-one-that-will-rule-the-worl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