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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ie Guglielmo, Forbes St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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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BES | 10/03/2012 @ 6:00 |348,395 views

Untold Stories About Steve Jobs: Friends and Colleagues Share Their Memories

This story appears in the 2012/10/22 issue of Forbes.

무엇 때문에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PC와 뮤직 플레이어, 전화기와 태블릿을 재발명했는지, 그리고 자기 인생에 대해 전기작가와 이야기를 나눈 덕택에 우리는 스티브 잡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들어보신 적이 없는 “스티브” 이야기는 대단히 많다. 56세의 나이로 10월5일 타계한 잡스의 서거 1년 후, 기술 업계에서 제일 잘 알려진 선각자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들과 동료들이 알려 주었다.

Hide The Porsches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랜디 애덤스(Randy Adams)는 애플로 축출당한 후, 잡스가 새로이 만든 컴퓨터 회사, 넥스트에 오라는 스티브 잡스의 제안을 원래 거절했었다. 그 때가 1985년이었고, 애덤스는 자신이 원래 만들었던 소프트웨어 제작 회사를 매각한 직후였기 때문에 일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애덤스의 전화 자동응답기에는 잡스의 소리가 들어 있었다. “날려버리고 있군요, 랜디. 이건 인생의 기회에요. 그런데도 당신이 날려 버리고 있어요.” 애덤스는 다시 생각해 봤다.

회사를 매각한 후 애덤스는 그 일부를 갖고 포르셰 911을 구매했었는데 마침 잡스도 같은 차를 갖고 있었다. 자동차 문이 부딪히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은 사이에 두 세 대 정도의 공간을 비우고 나란히 주차하곤 했었다. 어느 날 잡스가 애덤스의 자리로 와서 자동차를 옮겨야겠다고 말했다. 애덤스는 왜냐고 물었다.

“랜디, 포르셰를 숨겨야 해요. 로스 페로가 와서 우리 회사 투자를 생각할 텐데 우리가 돈이 많은 것처럼 비쳐지면 안 되지.” 그래서 그들은 포르셰를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있던 넥스트 사무실 뒤편으로 옮겼다. 페로는 1987년 2천만 달러를 넥스트에 투자했고, 그 후 넥스트 이사가 됐다.

애덤스는 빌 게이츠가 넥스트에 회의하러 왔을 때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1986년 가을, 로비에서 게이츠 씨가 도착했다고 위층의 잡스 자리로 전화했다. “잡스 자리가 제 자리에서 보였어요. 별로 바뻐 보이지 않더라구요. 하지만 그는 일어나지도 않았고 게이츠 보고 올라오라 하지도 않았어요. 사실 로비에 게이츠를 한 시간 정도 방치해 놓고 있었습니다. 경쟁심의 발로랄까요.”

애덤스에 따르면 오히려 넥스트의 엔지니어들이 게이츠가 온 김에, 게이츠에게 몰려가서 질문들을 던졌다고 한다. “재밌었어요. 한 시간 정도 지나고 게이츠랑 얘기하고 나니까 드디어 스티브가 그를 올라오게 하는 전화를 했습니다.”

애덤스는 넥스트 웍스테이션에서 쓰이는 광드라이브 때문에 잡스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넥스트를 나왔다고 한다. 그의 생각에 광드라이브는 너무 느렸다. 그 후, 잡스는 애덤스에게 넥스트용 소프트웨어 사업을 하라며 Sequoia Capital로부터 200만 달러의 투자를 받도록 해줬다. 하지만 사업을 진행하는 도중, 잡스는 애덤스에게 넥스트가 웍스테이션 사업을 그만 두고 소프트웨어에 집중하기로 했다면서 미리 알려주려 한다며 전화를 했다.

“하드웨어 가격이 계속 떨어져서 이제 컴퓨터를 일반 범용 제품이라 생각한다 말하더군요. 그래서 차라리 그럼 PC를 팔지 그래요, 라고 물어 봤습니다. 그랬더니 잡스는 ‘PC를 파느니 차라리 개를 팔지.’라 답했었어요.”

애덤스는 넥스트 시절의 잡스에 대해 많은 기억을 갖고 있었다.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잡스가 하루는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엔지니어들 사이를 지나쳤다. “오, 구워진 동물 살의 냄새라니, 이 얼마나 좋은가!”하면서 말이다. 1986년 잡스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는 직원들에게 $100씩 나눠줬다. 애덤스가 알려준 일화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일을 망치거나 잡스가 안 좋아하는 뭔가를 한 직원들에게 잡스는 항상 “스스로를 해고하시오”라 말했다고 한다. 정말 그럴 요량이었을까? “글쎄요. 해고통지문을 공식적으로 받지 않는다면야 농담이라는 사실을 다들 알잖았을까요.”

애덤스는 넥스트를 나온 이후 어도비에 들어가서 어도비 Acrobat과 PDF 개발을 이끌었고, FunnyorDie.com 사이트를 공동 창업했다. 그에 따르면 서거 1년이 지난 지금도 업계는 잡스를 그리워한다고 말한다. “그의 카리스마는 전기와 같았어요. 정말 믿을 수 없는 힘을 풍겼죠.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었습니다. 스티브와 같이 있을 때는 뭐든 할 수 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스스로 믿곤 했었어요. 그가 죽었을 때도 그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인물은 없죠.”

Scuff Mark in the Mini-Store

2004년 췌장의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고 밝힌 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다. 잡스는 필자를 포함하여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스탠포드 쇼핑센터에 기자들을 소집했다. 새로이 750 평방피트 짜리 “미니” 스토어 디자인을 선보이기 위해서였다. 원래의 애플 소매점 크기의 절반인 미니 디자인은 하얀색 천장에 후광이 비쳤으며, 일본에서 만든 스테인리스-스틸 벽과 파워맥 G5를 방불케 하는 통풍구가 달려 있었다. 바닥은 빛나고 새하얀 색이었으며, 잡스의 말에 따르면 “비행기 격납고에서 사용하는 재료”로 만들었다 했었다.

하지만 미니 스토어 앞을 드리우고 있던 거대한 커튼을 열기 전, 겨우 몇 분 전에 잡스는 외부에 스토어를 보여 주고 기자를 맞이하기 거절했다. 왜였을까? 도면상에서야 무척 근사해 보였던 스토어 디자인이 실제로는 도면과 같지 않아서였다. 문제는 벽과 바닥이었다. 개장 준비를 위해 작업했더 사람들 때문에 벽에는 지문, 바닥에는 구두 자국이 묻어 있었다.

잡스는 바깥에 있으라 주지해 놓고 기자들 앞에서 커튼을 내렸다. 바닥을 봤던 필자는 곧바로 옆에 서 있던 잡스를 바라 보며 그가 디자인의 모든 측면에 포함돼 있었는지 물었다. 그가 그렇다고 답하자 필자는, “자기 인생에서 절대로 바닥 청소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스토어를 디자인했음이 분명해요.”라 말했다. 잡스는 필자를 가늘게 쳐다 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수 개월 후, 한 애플 중역이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토요일 개장 후, 잡스가 스토어로 디자이너를 모두 다 불러 모은 다음, 밤새 그들보고 하얀색 표면을 청소하라 시켰다고 한다. 그 후 애플은 현재 애플 스토어 디자인에 널리 퍼진 석재 타일로 바닥을 교체했다.

They’ll Get Used To It

인터넷 브라우저의 개척자이자 벤처 투자자가 된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sseen)에게는 아이폰이 선보이기 조금 전에 잡스 부부와 더블 데이트를 했던 추억이 있었다. “2006년 가을이었어요. 제 부인인 로라와 제가 스티브, 그리고 그의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부인인 로렌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었습니다. 팔로알토의 캘리포니아 거리에 있는 식당의 대기열에 앉아 있었고 실리콘 밸리 특유의 훈훈한 저녁이었어요. 그 때 스티브가 프로토타입의 아이폰을 청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가지고서는 ‘뭐 좀 보여줄게’라 했습니다. 그러더니 온갖 기능을 설명하더라구요.”

“스티브 말에 맞춰서 감탄 좀 해 줬죠. 그리고는 감히 대들었습니다. 원래 제가 블랙베리 광팬이었기 때문에, ‘스티브, 물리적인 키보드가 없으니 문제가 되리라는 생각은 안 하시나요? 사람들이 과연 화면상에서 타이핑하는 것을 문제 없이 할까요?’라 물었어요. 그랬더니 완전 제 눈을 뚫어지라 쳐다보면서 말하더군요. ‘그렇게 될 거야.'”

애플은 2007년 아이폰을 선보인 이래 2억5천만 대 이상의 아이폰을 팔았다. 아이폰은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린 스마트폰 중 하나이다.

Blunt, But With Taste

1984년 맥을 처음 선보였을 때이다. 애플의 수석 에반젤리스트이자 맥 개발 커뮤니티 관계를 맡고 있었던 가이 가와사키(Guy Kawasaki)의 자리로 잡스가 한 사내를 뒤에 데리고 다가왔었다. 잡스는 가와사키에게, Knoware라는 맥 개발사의 프로그램에 대해 의견을 구하러 왔다고 말했다. 자신은 그 프로그램에 대해 잘 모른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바를 말해 드렸죠. 극도로 부정적이었어요. 말한 뒤, 스티브가 뒤의 사내를 쳐다 보고는, 다시 저를 쳐다 봤습니다. ‘가이, 사실 이 분은 Knoware의 CEO야.’, 이러는 겁니다.”

가와사키는 이 이야기야말로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직원을 곤란하게 만들어버리는” 잡스의 성격을 드러내는 일화라 말한다. “일반적으로 스티브를 말해주는 사례이죠. 스티브의 팬이라면 ‘자질구레한 겉치례를 그가 이렇게 돌파하는군!’이라 말할 테고, 스티브의 팬이 아니라면 사교성이 전혀 없다 말할 겁니다.”

“사람들을 이처럼 대하기는 했지만 훌륭한 인재들을 스티브가 데려와서 일하게 했었죠. 다른 보스들 대부분과는 달리 스티브는 훌륭한 일을 인정할 줄 알았습니다. 직원들이 열심히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두 가지 있어요. 잘하거나, 잘하지 못 할 때를 아는 취향, 그리고 과감하게 말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취향은 없지만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죠.”

“위대한 일을 하고 싶으시다면 애플에서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가가 따라요. 공개적으로 수치를 느껴야 한다는 거죠. HP에서는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HP 방식이 아니에요. 반대로 말하자면, HP에서는 누구 하나 훌륭한 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HP에서는 최고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어디에서 일하시겠습니까? 애플입니까, HP입니까?”

A Little Hand In the Screen

1974년 잡스를 고용했던 아타리(Atari)의 창업자인 놀란 부시넬(Nolan Bushnell)은 잡스의 격렬함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아침에 와 보면, 저녁 내내 일하다가 책상 밑에서 웅크려 누워 있는 스티브를 발견하곤 했었어요.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죠. 그의 성공이 행운이라거나 때와 장소를 잘 만났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지만,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한다면 스스로의 행운을 갖고 정말 멋진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철학적인 관계도 갖곤 했어요. 그는 큰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즐겨 얘기하곤 했습니다. 제품 만들기, 그리고 제품을 언제 시장에 내놓아야 할지가 항상 그의 관심사였어요.”

1980년대 초, 부시넬은 프랑스 파리에 15,000평방피트 짜리 집을 구입하고, 실리콘 밸리 친구들을 모두 집들이 파티에 초대했다. 밴드와 산더미같은 음식, 음료를 준비했고 친구들은 모두 정장을 입고 왔다. 단, 아타리를 떠나 1976년 애플을 창업했던 잡스만은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들어왔다.

부시넬은 파티 다음 날, 파리의 레프트 뱅크(La Rive gauche)에 스티브와 함께 앉아서 파리를 바라 봤다. 그는 커피를, 스티브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창조성의 중요함에 대해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애플 II의 수명이 점점 다 해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애플 III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막 리사 아이디어를 생각하기 시작했었죠. 리사가 곧 매킨토시가 되죠. 우리는 트랙볼과 조이스틱, 마우스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화면 상에 있는 작은 손 아이디어도 얘기했죠. 결국은 마우스 얘기였습니다.”

“사망하기 1년 전에 마지막으로 그를 봤었어요. 매우 말랐지만 전혀 늙어 보이지 않더라구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 이거 이겨낼 거예요.’라 말하더군요.”

A Christmas Story

원래 애플의 오리지날 마케팅 전문가였던 리지스 매케나(Regis McKenna)는 오토바이를 몰고 당시 22살의 잡스를 만나러 갔었다. 그는 잡스와 함께 애플을 어떻게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 것인지를 얘기했었고, 1983년부터 1987년까지 애플 간부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그 후로 둘은 가까운 친구로 지냈었다.

“1998년, 부인과 저는 다섯 대의 아이맥을 손자들 성탄절 선물로 샀었어요. 선물 포장 뜯는 광경을 지켜봤죠. 5살 짜리 손녀딸인 몰리가 자기 아이맥을 열면서 ‘인생 참 좋아’하더라구요. 그런데 불행히도 몰리의 아이맥은 문제를 발생시켰습니다. 몇 시간 쓰고 나니까 디스크 드라이브 문이 열리지 않더라구요. 판매자는 애플 정책 때문에 컴퓨터를 새 컴퓨터로 바꿔주지 못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수리에는 수 주일이 필요하다더군요. 그래서 전 스티브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애플의 아이맥 교환/환불 정책이 어떤지 물어 봤습니다. 보내고 난 뒤 5분도 안 돼서 전화가 울리더라구요. 스티브였습니다. 문제가 무엇이고 판매자가 누구였는지를 묻더니 다시 걸겠다면서 끊더군요. 그랬더니 몇 분 뒤에는 판매자가 매우 미안해 하면서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손녀분을 위해 새 아이맥을 드리겠습니다.’라 말하더군요. 그래서 감사의 이메일을 스티브에게 보냈습니다. 손녀의 성탄절을 행복하게 해 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랬더니 스티브가 즉각적으로 간단한 답 메일을 보냈습니다. 내용은 ‘Ho, ho, ho’였어요.”

매케나는 다른 이야기도 들려 줬다. 1985년 당시 CEO 존 스컬리와 이사진들로부터 축출당한 그 다음 주, 잡스는 매케나에게 다음 단계에 대해 말했었다. “스티브는 자기가 떠난 덕택에 애플이 도움을 받으리라 말했었어요. 새로운 회사가 아마 애플이 사용하고 회사에게 이익이 될 기술을 개발할 수 있으리라더군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우리가 성공적인 제품 라인을 새로 개발하여 애플의 제품 라인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에요. 애플이 우리를 인수하겠지.’ 그 때는 그의 말이 어떻게 정확히 실현될지 그도 예측을 못 했었죠.”

1996년 애플은 잡스의 넥스트를 2억 4,900만 달러에 인수했고 잡스는 애플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미국 기업사상 제일 성공적인 부활을 일으켰다.

A Friend In Need

현재 벤처 투자자인 하이디 로이즌(Heidi Roizen)은 1980년대 맥용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T/Maker의 사장이었다. 그녀는 잡스와 함께 “성격 구축”이라 부르던 경험을 많이 가졌다고 말한다. 다만 개인적인 사례가 한 건 있었다.

“1989년 3월1일이었어요. 스티브가 거론할 일이 있다고 전화를 했었어요. 하지만 스티브가 전화를 하기 직전에, 바로 전 날 저녁 제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었어요. 저는 그 때 파리 출장중이었죠. 그래, 무슨 일인가요라고 스티브에게 묻자 스티브는 ‘도대체 왜 지금 일하고 계십니까? 집에 가셔야죠. 저도 곧 가겠습니다.’라 말하더군요.”

실제로 잡스는 그녀의 집으로 와서 그녀가 2시간 동안 흐느껴 울 동안 바닥에 앉았다. “예. 소파가 있긴 했지만 스티브는 소파에 앉기를 싫어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뭐가 중요하고 뭘 제일 좋아했는지에 대해 말하라 하더군요. 마침 스티브의 어머니도 몇 개월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제 느낌이 어떤지, 뭘 얘기해야 할지 각별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 때 제게 준 위로는 정말 놀라운 일이었어요. 언제나 기억하고 감사해 할 겁니다.”

He Notices Everything

넥스트에서 스티브 잡스를 위해 홍보팀에서 일했던 에밀리 브라워 오차드(Emily Brower Auchard)는 아무리 사소한 디테일이라도 잡스는 “알아차리는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스티브와 언론 인터뷰에 참가해서 노트를 적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 인터뷰 직전, 신발을 서로 다르게 신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아침에 옷을 워낙 빨리 입어서 다른 신발을 신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래서 상사에게 어떻게 할까요라 전화를 하니까 그녀는 반드시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스티브가 못 알아차릴리 없다면서요. 그래서 미친년처럼 스탠포드 몰로 가서는 Nordstrom의 신발을 한 켤레 사갖고 곧바로 넥스트 사무실에 들어갔습니다. 내 생에 제일 빠른 쇼핑 결정이었을 거예요.”

Disarm, Rather Than Charm

구매자를 찾기 위해 노력하던 1989년, 넥스트는 IBM의 OS/2 컴퓨터용으로 넥스트스텝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논의할 회의 일정을 잡았다. 익명을 요구한 당시 넥스트의 한 간부는 넥스트가 이 일이 꼭 이뤄지기 바랬다고 한다. (실제로 IBM은 그 해 말, 6,500만 달러를 들여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라이선스했다.)

양사 간부진이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있던 넥스트의 회의실에 모두 모였고 잡스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잡스는 들어왔고, IBM의 수석대표에게 다가가서 “당신네 인터페이스는 썩었습니다.”라 말했다. 양사 간부진 모두 아연실색했다.

“그가 얼마나 협상을 잘 하는지 알려주는 사례입니다. 욕을 해대면서 사람을 완전히 무장해제시켜버리죠. ‘당신네 제품이 워낙 썩었지만 우리가 해 준다’는 식이에요. 과도하기는 하지만 그는 자기가 원하는 바를 언제나 얻어냈습니다.”

Okay to Lie

1990년대 후반 잡스가 애플에 복귀했을 때 같이 일했던 한 간부의 증언이다. “스티브는 정말, 정말, 정말 1대1 대화에 능숙합니다. 대화를 할 때 전혀 꾸미지를 않거든요. 하지만 방 안에 두 명 이상 있다면 그도 마케팅을 합니다. 꾸몄죠. 가령 나로부터 원하는 바가 뭔가 있다면 그는 언제나 예의 바르고 친절해야 합니다. 애플에 복귀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들이 필요했어요. 애플은 당시 혼란 상태였고, 넥스트는 실패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같이 일할 인재가 필요했어요. 아이포드, 그리고 아이폰으로 성공을 거듭하고 나면서 그는 더 오만해졌습니다. 이전의 스티브죠.”

“뭔가를 하겠다면서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을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그 점을 지적하니까 이렇게 답하더군요. ‘그래, 그래. 알아요. 하지만 마음을 바꿀 필요가 있었지.’ 마음 속으로는 거짓말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Brilliant

애플이 오에스텐을 발표했을 때다. 오에스텐은 맥의 새로운 운영체제로서 이전의 시스템과 연동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개발자들도 애플리케이션을 재작성해야 했다. 그래서 잡스는 어도비에게 제일 잘 팔리는 제품군을 오에스텐으로 포팅해주시라 요청했지만 어도비는 망설였다. 기능 개선도 아니고 시스템 호환성만을 위해 소비자들이 과연 돈을 내려 할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도비는 결국 오에스텐용으로 제품 업데이트를 했지만 잡스는 업데이트의 시기를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한 전직 어도비 간부의 증언이다.

“그는 오에스텐 호환성을 오에스텐이 나오자마자 맞추기 바랬어요. 하지만 어도비가 바람만큼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서 화가 났었습니다.” 어도비가 마침내 오에스텐 버전을 선보였을 때 잡스는 맥월드 이벤트에서 어도비 제품을 소개하겠노라 확신했었다. “실제로 했죠. 어도비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자기 플랫폼 전용으로 나온다는 말이기 때문이었어요.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이 뭔지 그는 정말 잘 알았습니다. 뛰어났죠.”

Untold Stories About Steve Jobs: Friends and Colleagues Share Their Memories – Forbes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CMO NETWORK | 12/14/2011 @ 12:20PM |257,905 views

The Real Story Behind Apple’s ‘Think Different’ Campaign

This post was written by Rob Siltanen, chairman and chief creative officer at Siltanen & Partners.

애플의 놀라운 성장은 최근에 있었던 스티브 잡스의 사망과 맞물려 “다르게 생각하라” 광고캠페인과 이 광고에 나오는 “미친 분들께”라는 어구의 역사적인 충격에 대해 생각해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실제로 광고를 어떻게 만들고 누가 광고를 착안했으며, 잡스에게는 어떻게 시연을 해보였는지에 대해서 상당히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어서, 이제는 이 광고가 만들어진 이야기를 안쪽에서 한 번 들여다보도록 하고, 필자 자신의 경험을 공유할 좋은 기회가 왔다고 본다.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느냐고? 필자가 바로 그 광고 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TBWA/Chiat/Day에서 광고제작부장이자 상무이사였고 스티브 잡스는 물론 리 클로우(Lee Clow)와 같이 애플 광고 작업을 했었다. 리와 필자는 “다르게 생각하라” 광고의 모든 작업을 같이 참여하여 만들었고, 제작 과정은 물론 홍보 기간동안과 그 이후에 잡스와 가진 모든 회의에도 참여했었다.

제작사에 다닐 때 손수 업무일지를 적어 놓았으며, 1997년 애플 광고를 만들던 시절에 모아 두었던 온갖 파일들 덕분에(쓸모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도 이제 보니 유용했다)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일지를 보면 애플에게 다시금 영광을 주기 위해 급히 써 내려간 노트와 컨셉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한 이 일지에는 대단히 많은 초안은 물론, 잡스에게 시연해 보여줬던 “미친 분들께”의 텔레비전 스크립트의 오리지날본도 쓰여 있다.

전설적인 “다르게 생각하라” 광고 캠페인에 대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을 보면 몇 가지 잘못된 부분을 봐 왔지만, 특히 월터 아이작슨이 최근 펴낸 베스트셀러 전기, “스티브 잡스”때문에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자신의 책에서 아이작슨은 잡스가 “미친 분들께”의 스크립트 다수를 만들어내고 작성도 했다고 잘못 쓰여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수정주의적인 역사관이다.

스티브는 물론 애플 사업의 모든 측면과 광고에도 깊숙이 관여했었지만, 이 전설적인 광고의 총지휘자라 부르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그는 기업 역사상 제일 위대한 부활을 이룩한 애플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게 될 광고에 대해 대단히 노골적으로 냉혹했었다. 앞으로 아시게 될 테지만, “미친 분들께”의 오리지날 스크립트는 필자가 잡스에게 보여줬었을 뿐더러 처음에 잡스는 이 스크립트를 “쓰레기”라 평했지만 결국 스크립트의 원래 시작과 끝은 그 모습을 그대로 보존시킬 수 있었다. “다르게 생각하라” 광고 캠페인을 원래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해서도 사실과 좀 동떨어진 글을 꽤 봤는데, 광고를 실제로 만든 여러 인물들이 있었지만 그 유명한 “다르게 생각하라”의 라인과 선구자들을 흑백으로 배치하는 뛰어난 컨셉을 만들어낸 인물은, 필자의 막역한 친구이자 당시 TBWA/Chiat/Day에서 예술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크레이그 타니모토(Craig Tanimoto)였다.

스티브 잡스가 부인과 아이들에게 얼마나 따뜻하게 대하고, 가족을 사랑했는지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많이 읽었다. 그의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연설문도 이제까지 들어본 그 어떠한 졸업연설보다도 감동스럽고 느낌을 주는 연설문이다. 스티브는 정말 놀라운 선구자였으며, 그를 비견할만한 인물은 세계에서 제일 훌륭한 위인 정도나 될 것이리라 믿는다. 그렇지만 필자는 스티브에 대해 비판적인 글도 많이 읽어 봤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필자는 다른 팀이나 필자 개인에 대한 스티브의 심한 꾸지람과 폭탄과 같은 분노를 직접 보고 경험했었다. 결코 아름다운 경험은 아니었다. 뛰어난 업적과 비범한 열정에 대해서만은 틀림 없이 스티브가 존경스럽지만, 종종 그의 거칠고 거들먹거리는 성격은 별로 존경스럽지가 않다. 일단 여기서 필자 의견을 보태자면, 마땅히 칭송을 받아야 할 사람은 리 클로우다. 리는 광고 천재 그 이상이다. 잡스와 함께 일하면서 리는 정말 성인(聖人)과 같은 면모를 보여줬다.

남들이 스티브 잡스가 어떤 인물이었냐고 물어보면 필자는 그를 미켈란젤로와 독일의 건축가인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그리고 헨리 포드(Henry Ford)의 혼합체로 묘사하곤 한다. 여기에 미국의 프로 테니스 선수였던 존 매켄로(John McEnroe)와 마키아벨리도 섞어 넣을 수 있겠다. 스티브는 목표를 맹렬히 추구했으며, 그의 끈질긴 자의식과 천재성이 없었다면 애플 주식이 “한 번 가졌으면 하는” 주식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 혼자서 애플을 되살리지는 않았다. 주요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해낸 수많은 인재가 많이 있었으며, “다르게 생각하라”라 불린 광고 캠페인의 시작과 함께 애플의 부활도 시작됐다 할 수 있었다.

이제,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다.

The first meeting with Steve

1997년 7월 초였다. 리 클로우가 크게 기뻐하며 필자 사무실로 들어오더니, 새너제이로 비행기를 타고 간 다음 쿠퍼티노로 가서 스티브 잡스와 얘기를 같이 나눠보자고 말했다. 애플의 광고 건이었다. 스티브는 당시 임시 CEO로서 애플에 복귀한 상태였고 그는 애플을 변화시키고 싶어했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그는 잡스가 분명 이번 광고 건을 “우리에게 넘길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애플 광고를 맡고 있던 대행사는 BBDO로서, 10년 전 TBWA/Chiat/Day를 입찰에서 이긴 곳이었다. 리는 TBWA/Chiat/Day가 이번만은 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과거 우리를 물리쳐서 애먹였던 것도 잡스 방식이겠거니 했다.

그당시 TBWA/Chiat/Day의 사업상황은 순조로웠다. 전문지에서도 우리 대행사를 최고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었고, 신규 수주량도 대단히 많았다. 그 중에는 별다른 홍보 없이 주요 업체의 광고를 받은 건도 많았다. 필자의 나이는 33세였고, 당시 TBWA/Chiat/Day의 상무이사이자 광고제작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TBWA/Chiat/Day에서 필자는 우리 회사 최고의 광고수주였던 니산(Nissan)과 인피니티(Infiniti)의 광고를 유치하기도 했었다. 당시 “Toys”라 불린 유명한 니산 광고도 필자가 만들었었고, “Toys”는 그 해 올해의 광고상을 받았다. 우리의 니산과 인피니티 광고 제작 직원들은 광고업계 최고의 인재들로 구성돼 있었다. 우리는 당시 애플 광고를 작업하면, 자동차 말고도 우리의 광고 능력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계산하고 있었다.

애플 본사로 가자 리는 필자에게 우리가 만약 다른 대행사들 하는 것처럼 대하면 잡스가 우리를 사양하리라 말해줬다. 그동안 클로우와 필자는 매일같이 점심을 같이 하던 사이였고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대행사들이 얼마나 큰 돈을 낭비하는지에 대해 말해주곤 했었다. 그러자 필자는 아예 우리에게 카드가 다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홍보를 나서서 하지 말자는 클로우의 말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TBWA/Chiat/Day가 최고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내세우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모욕이리라 둘 다 믿고 있었다.


애플본사 방문증 (글쓴이 제공)

애플 본부에 도착하자 비서가 우리를 거대한 회의실로 인도하면서 스티브가 곧 들어올 것이라 일러줬다. 리는 10년간 스티브를 보지 못했었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스티브가 들어와서 클로우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환영한다”는 인사라도 할줄로만 알았다. 물론 실제로는 그리 되지 않았다.

잡스는 이제 트레이드마크가 된 검정색 터틀넥 셔츠와 반바지, 고무 슬리퍼를 신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캐쥬얼한 옷차림으로 보였지만, 그의 태도는 영 사무적이었다.

인삿말은 대단히 짧았고 전 시대에 걸쳐 제일 경외심을 불러 일으켰던 광고(1984를 의미-옮긴이)를 만들었던 영광의 시절을 전혀 입밖에 꺼내지도 않았다. 잡스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와주셔서 고마워요. 이제 용건으로 들어갑시다.” 그리고나서 그는 애플이 “출혈중”이라면서 자기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상황이 안 좋다고 말했다. “훌륭한 제품이 있습니다만 일단 이 상황부터 타개해야 해요. 그래서 광고를 재검토하기로 했고, 대행사들을 불러서 누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미 괜찮은 대행사들과 얘기를 나눴고요. 관심이 있으시다면 TBWA/Chiat/Day를 홍보해 보시죠.” 아니 이런, 계획대로 안 되는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잡스는 광고 제작 과정이 빨리 이뤄질 것이라면서 이것 저것 부대효과는 필요도 없고, 몇 가지 기본 컨셉과 주제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텔레비전 광고는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단 지금 상황부터 정리할 때까지는 컴퓨터 잡지에 인쇄광고만 넣을 생각이에요.” 클로우는 차분하게 앉아 있었지만 필자가 보기에 잡스는 상상 이상으로 보스 기질에 오만해 보였다. 자기가 오게 돼서 행운인줄 알아라 하는 인상이었다. 당연히 그의 계획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 바였다. 필자가 그의 말에 끼어들어 얘기를 했다. “전세계 절반은 애플이 죽을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컴퓨터 잡지 인쇄 광고 갖고는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에요. 애플이 사자처럼 강력하다는 사실을 세상에 보여줘야 합니다. 고작 인쇄광고 가지고는 아무도 그런 점을 보여줄 수 없어요. 더 과감하게, 더 크게 해야 합니다. 텔레비전이나 다른 광고도 필요해요. 그래야 진정한 부활을 이루게 될 겁니다.” 사실 어느 대행사나 꺼낼만한 이야기였다. 아이디어의 힘을 진실되게 판단내리려면 실질적인 광고 집행이 필요하다는 얘기였으니까 말이다. 잡스가 응답했다.

“좋소. 최고라 생각하시는 아이디어와 컨셉을 말씀해 보세요.” 우리는 시작이 좋지 않았지만, 리가 바로바로 마무리를 지어주리라 여겼기 때문에 필자는 악역을 서슴지 않았다. 일단 필자가 “리에게 달려있죠”라 말했다. 바로 몇 시간 전만 해도 우리 스스로를 홍보하지 말자고 말했던 리였다. 그래서 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리가 잡스에게 감사하지만 사양합니다라 말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리는 차분하게 이런 말을 꺼냈다. “예. 이미 얘기하고 계시던 다른 대행사가 좋으시면 그냥 한 곳과 계약 맺으시지 그러세요?” 잡스는 자기가 그리 할 것이라 말했다. 그러자 리는 이런 말을 했다. “생각해 보죠. 내일 전화드리겠습니다.”

다시 새너제이 공항으로 택시 타고 돌아가면서 필자는 클로우에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물어봤다. “우리가 홍보하지 않을 것이리라 말했잖아요?” 그러자 클로우가 답했다. “생각이 바뀌었어. 우리가 이번 건 이긴다면 정말 훌륭한 뭔가를 하게 될 거야. 한 번 해 보고 싶은 걸.”

The creative process

회사로 돌아와서 일단 광고팀을 불러 모으고, 이번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했다. 팀원 대부분은 니산 광고때문에 필자와 같이 일하고 있었지만, 리의 광고 어시스턴트를 맡고 있던 신참들도 몇 명 있었다. 상세한 광고 브리핑을 만든다거나 서면으로 된 전략을 기다릴 시간은 없었고, 애플 광고를 어떻게 하면 따낼 수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했다.

직원들 모두는 이미 애플 사용자였다. 그들은 애플 브랜드를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아예 애플 컴퓨터를 사랑하며 매일같이 쓰고 있었다. 사실 전형적인 전략 자체가 불필요했다. 그래서 필자는 아이디어를 바로 내 보고 1주일 후에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기업담당팀과 기획팀, 새로운 영업팀이 시장에서 애플의 강점과 약점에 대해 될 수 있는 한 많은 정보를 모으기로 했다.

여러 크리에이티브 업계에서 애플은 열렬한 브랜드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출혈을 멈출 제일 좋은 방법은 애플을 사용하는 유명인사들의 증언을 내세우면 되잖을까 싶었다. 가령 스티븐 스필버그와 스팅이 애플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었고, 그 외에도 크리에이티브 업계의 스타들도 애플 사용자였다. 그러나 애플에 대해 부정적인 언론 기사도 대단히 많았다. 애플 컴퓨터를 “진정한” 컴퓨팅을 해내지 못하는 컴퓨터 “장난감”으로 부르는 기업 쪽 사람들도 매우 많기 때문이었다. 언론은 애플 제품 구입이 멍청한 선택이라면서 전통적인 PC보다 소프트웨어도 보잘 것 없고, 시장점유율도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대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애플의 상황도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아름다운 기회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1주일 후, 우리는 회사 안의 대형 회의실에 모여서 각자 숙제를 쌓아 놓았다. 회의실은 금세 사진과 스케치, 초안 형태의 아이디어와 태그라인으로 가득 채워졌다. 아마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벽 한가득 종이가 발라져 있던 장면을 기억하실 것이다. 새로이 광고 유치를 한다거나 대규모 프로젝트를 준비하면 우리 회의실이 바로 그런 장면으로 바뀌었다. 애플 건도 예외가 아니었다. 각기 다른 네 팀 모두 자기 작업물을 보여줬는데, 모두 그저 그랬다. 물론 양이 질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한 가지 초안이 눈에 띄었다. 정말 큰 건이었다.

이 초안은 혁명적인 인물과 사건을 단순한 흑백 사진으로 만든 게시판형 캠페인이었다. 한 광고는 아인슈타인의 사진을 담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토마스 에디슨의 사진, 간디의 사진도 있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유명했던, 총구에 꽃을 꽂는 사진도 들어 있었고, 각 사진마다 상단에 무지개 빛깔의 애플 로고와 함께 “다르게 생각하라”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다른 것은 없었다.

이 초안의 제작자는 정말 훌륭한 예술부장인 크레이그 타니모토였다. 크레이그는 주로 니산과 관련하여 필자와 계속 같이 일해오던 친구였고 사물을 언제나 독특하게 바라보는 버릇을 갖고 있었다. 몇 년 후, 필자의 대행사를 시작했을 때도 필자가 제일 먼저 고용한 인물이 크레이그였다.

전통적인 컴퓨터 사진과 전형적인 유명인사 사진으로 채워져 있던 회의실 안에서 크레이그의 초안은 정말 크고 신선하게 보였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설명의 필요가 있잖을까 싶었다.

그래서 크레이그에게 무슨 의미인지 물었다. “IBM은 ‘Think IBM'(씽크패드를 위한 광고 캠페인이었다)이라 말하는 캠페인을 갖고 있어요. 애플은 IBM하고는 매우 다른 곳이라서, ‘다르게 생각하라’가 생각났습니다. 흥미롭더군요. 세계에서 제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갖다 붙이면 재밌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무지개빛 애플 로고는 흑백의 사진과 강렬한 대조를 이뤄서 “다르게 생각하라”는 주장을 한층 더 과감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애플에게 꼭 필요했던 광고, 그러니까 생각을 불러 일으키고 주목을 받게 만들어주는 바로 그런 광고가 이것이었다. 클로우도 이 아이디어를 좋아해서 회의실 모두에게 이 컨셉을 기반으로 텔레비전이나 다른 미디어용 광고를 시작하라고 명령내렸다.

이 때 모든 팀은 텔레비전 광고 개념을 작업하기 시작했고, 잡지 광고에 어울릴만한 다른 유명한 흑백 사진을 찾아 나선 이들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클로우는 제일 능력있는 인재이자 광고방송 제작자이기도 한 제니퍼 골럽(Jennifer Golub)을 불러다가 전설적인 인물의 영상을 찾으라고 시켰다. 새로 고객사에게 홍보를 할 때나 기존 광고 프레임을 따다 만든 립오매틱(rip-o-matic), 혹은 “무드(mood)”라든가 “컨셉” 비디오로 말하는 것을 만들 때 기존 영상물을 찾게 마련이다. 이런 비디오는 고객에게 보여주기 전용이며, 광고에 어떤 느낌을 주는지 알아보려는 목적으로 만든다. 텔레비전 광고의 경우 30초 내지 60초의 제약이 있지만 이런 비디오의 경우 시간이 문제가 아니며, 음성 톤이나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다.

클로우가 와서는 가수 실(Seal)의 노래, “크레이지(Crazy)”의 주요 가사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좀 미치지 않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가 영상을 움직일 대사였다. 필자는 클로우와 함께 역사상 진정한 선구자는 기존 관념과는 달리, 다르게 생각하였으며, 애플이 바로 그런 분들을 위한 툴을 만든다는 컨셉을 설명하는 타이틀 카드를 작업했다.

영상이 나오면, 이 타이틀 카드가 나타났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사물을 바라봅니다.
그들은 발명하고 창조하며 상상합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분들을 위해 툴을 만듭니다.
그들을 미쳤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천재를 알아봅니다.

(애플로고와 태그라인이 사라짐.)

다르게 생각하세요.

Chiat의 뛰어난 편집자인 댄 부친(Dan Bootzin)이 만든 이 비디오는 강력하고 감동적이었으며, 2분 가량의 길이였다. 일단 이 영상을 1분 짜리로 줄였다. 우리 회사가 애플의 광고 수주를 받아낼 경우 잡스가 텔레비전 광고도 원하리라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사의 경우 1분 짜리와 맞지 않았다. 이 비디오 자체는 컨셉용으로서 훌륭하다고 봤지만, 이를 악물고 뭔가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가 향하고 있는 방향을 잡스가 좋아한다면, 보다 더 인상깊은 광고문구를 쓸 수 있잖을까.

컨셉 비디오를 끝내놓고 외부용과 인쇄매체용 광고, 몇 가지 텔레비전 스토리보드 컨셉도 그려놓고 회사 안에서 예행연습도 하루 내내 치렀다. 전통적으로는 우리들 중 서너명이 프리젠테이션을 하지만, 클로우는 잡스와 과거에 관계가 있었고 보여줄 광고 캠페인도 단 하나였기 때문에 필자는 캠페인의 컨셉으로부터 실제 광고물까지 프리젠테이션 전체를 클로우가 하도록 권유했다. 리는 언제나 놀라운 프리젠테이션 재주꾼이며, 그 또한 애플에 대해 대단히 열정적이기 때문에 그가 프리젠테이션을 하지 않으면 방해만 되리라 여겼다. 리와 다른 팀원들도 이에 동의했다.

The pitch

우리 중 소수가 새너제이로 가서 애플의 매우 작은 회의실로 향했다. 프리젠테이션을 할 곳이었다. 잡스가 애플 직원 서너 명과 같이 들어왔고, 그날따라 그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클로우가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했고 그가 말을 시작할수록 그는 더욱 더 열정적으로 변모해나갔다. 그는 잡스에게 우리 생각과 함께 외부, 인쇄, 텔레비전 광고에 대해 알려줬다. 잡스는 이 캠페인이 맞다면서 우리를 택하겠노라 말하면서 프리젠테이션을 끝냈다.

잡스는 프리젠테이션을 하는동안 조용했지만 분명 우리 얘기에 이끌린 듯 보였다. 이제는 그가 말할 차례였다. “다르게 생각하라”로 뒤덮인 방을 돌아보며, “이거 좋아. 정말 좋아… 하지만 난 할 수가 없어요. 이미 나보고들 이기주의자라고 하잖아요. 이 천재들 위에 애플 로고를 박으면 언론이 나를 완전 비난할 것이오.” 방은 정적에 빠져들었다. “다르게 생각하라” 광고 캠페인은 우리가 갖고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고, 이거 완전 진퇴양난이라는 생각이 났다. 스티브는 잠시 멈춰 섰고 방 주위를 돌아다보며 크게 외쳤다. 거의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듯 했다. “내가 뭘 하고 있지? 상관 없지. 맞아요. 이게 훌륭해요. 내일 얘기합시다.” 딱 몇 초 흘렀을 뿐이었다. 우리 눈 앞의 스티브는 얼굴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After the win

공식적으로 입찰에 승리한 후, 예측한 바대로 스티브는 가수 실의 영상을 광고로 내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비디오에 완전히 매혹당한 스티브는 1분 짜리 광고로 줄이기를 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우리도 1분 짜리로 줄이려 해 봤지만 성공 못했고, 다음에 다시 해 보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계속 노력했지만 잘 나오지가 않았다. 게다가 실로부터 권리를 얻어야 한다는 문제도 있었지만, 그 문제가 중요하지는 않았다. 실의 가사는 비디오에 있어서 강력한 요소였고 자르거나 완전히 없앨 경우 영상의 힘이 빠져버렸다. 리와 필자는 다시 애플로 가서 스티브에게 실의 비디오가 원래 의도한 바는 아니었고, 대사를 자를 수도 없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는 실망스러워 했고, 필자는 훨씬 나은 스크립트를 적겠다고 말했다. 로빈 윌리엄스가 나오는 “죽은 시인의 사회”는 필자가 항상 감동받고, 큰 충격을 받기도 했었다. 이 영화의 감정과 맥락이 애플 광고를 위해 내보내기 원했던 바와 상당히 근접해 있었다. 결국 애플 광고 스크립트에 감화가 된 “죽은 시인”으로부터 빌려온 단락을 알려드리겠다.

“우리는 사물을 항상 다르게 바라봐야 합니다.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 잘못 보고 있다는 것이죠. 멍청하다거나 틀리게 보일지라도 다시 노력해 봐야 합니다. 과감하게 새로운 생각에 나서야 하는 것이죠.”

“누가 무엇을 말하건 간에 말과 아이디어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귀엽다고 해서 시를 읽거나 쓰지는 않습니다. 시를 쓰는 이유는 우리가 인류에 속하는 종이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차 있어요. 시와 아름다움, 사랑과 로맨스.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가 이렇습니다. 강력한 희곡은 시에 기여할 수 있죠. 그렇다면 여러분의 시는 어때야 할까요?”

필자는 “죽은 시인”의 몇 줄을 인용한 다음, 스티브에게 영화를 봤는지 물었다. 스티브가 대답했다. “당연히 봤죠. 로빈 윌리엄스가 개인적으로 제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스티브에게 비슷한 톤으로 스크립트를 적어서 1주일 후에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회사로 돌아간 후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에 들어갔다. 이 때 다이어리를 보면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스크립트가 들어 있다. 거의 로빈 윌리엄스가 말하듯 모든 것을 적었고, 특히 섹션 두 곳이 마음에 들었다. 시 제목처럼 느껴지는 도입부였다.

“미친 이들께. 여기 부적응자, 반항아, 문제아들이 있습니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이들입니다.”

끝도 마찬가지였다.

“미친 이들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실제로 바꾸는 이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천재들의 이미지와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해서 특정한 충격의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도입부가 강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필자는 역사상 뛰어난 인물들과 그들이 거쳐야 했던 투쟁을 생각했다. 많은 수는 고통스럽게 살았으며, 뭔가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는 점이 분명했다. 애플처럼 그들은 놀라운 비전을 가졌지만, 한편 애플처럼 그들 모두 어느 시점에선가 적대적인 평가를 받았다. 가령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은 성자로 보이기 앞서서 문제아로 간주됐으며, 혁명적이었던 테드 터너(Ted Turner)는 24-시간 뉴스 채널을 만들려고 시도했을 때 비웃음을 받았다.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최고의 사상가로 인정받기 전의 아인슈타인은 미친 아이디어를 가진 사내라는 인식을 받고 있었다. 1997년의 애플도 물론 “장난감”으로 불리며, “창조적인 타입”의 사용자나 거느리고 있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으며, 남들 다 쓰는 운영체제를 안 받는다고 비난받고 있었다. 애플 팬과 함께 우리 편이 아닌 사람들에게 이 광고 카피는 자신들의 생각을 다시 평가하게 하고, 다르다가 좋은 것임을 깨닫게 해주리라 느꼈다.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훌륭한 인물이 되려면 오해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다르게 생각하라” 캠페인의 대주제가 바로 이것이었으리라.


광고카피의 초기 스크립트. 로브는 원래 로빈 윌리엄스가 직접 광고를 읊어주기 바랬다. (사진제공: 로브 실타넨(Rob Siltanen))

스크립트의 끝은 간단명료하고 아름다운 시 같았다.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중간 부분에서는 좀 막혀서 끝이 없는 버전을 작성해 놓았었다. 이들 천재와 애플 간에 유사성, 혹은 관계가 있음을 말해줘야 하는데 너무 드러내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멋지다고 생각할만한 스크립트를 작성했고, 리에게 보여줬다. 그도 이 정도면 좋다고 여겼다. 몇 가지 수정을 거친 후, 우리는 60초 짜리 영상에 필자의 목소리를 집어 넣었다. 사무실 직원들과 같이 봤는데 소름이 끼칠 정도라는 평가가 좀 있었다.

리와 필자는 다시 애플로 가서 잡스에게 우리의 버전을 보여줬다. 회의실 안에는 리와 필자, 잡스, 딱 세 명만 있었고, 상영이 끝나자 잡스가 말했다. “이럴 수가! 형편 없네! 광고회사스럽잖아! ‘죽은 시인의 사회’같은 뭔가를 가져오리라 기대했는데, 이건 완전 쓰레기에요!”

클로우는 “다시 보고싶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알겠습니다”같은 말을 했었고, 스티브는 우리가 “죽은 시인의 사회” 작가라도 섭외해야 한다거나, “진짜 작가”를 모셔야 한다고 계속 고함을 질러댔다.

필자는 좀 어리둥절했다. 한 번 주의깊게 생각을 해 보고 광고 캠페인의 전체 구조에서 핵심 역할이리라 생각했던 부분을 다시 틀어봤다. 스티브는 필자에게도 화를 내서,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스티브. 안 좋아하실 수는 있겠는데, 그렇게 형편 없진 않습니다.” 잡스는 계속 이 영상이 쓰레기라 말했고, 싸움을 진화하려 애쓰던 클로우는 일단 되돌아가서 다른 것을 해 보자고 말했다.

우리가 잡스에게 보여줬던 오리지날 스크립트(필자의 파일에서 나왔다)는 아래와 같다. 보시다시피 실제 방영이 된 최종 스크립트에 상당히 가깝다.

미친 이들께.

여기 부적응자, 반항아, 문제아들이 있습니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이들입니다.

그들이 발명하고 상상하고 만들어냅니다. 그들은 인류를 진보시킵니다.

그들을 미쳤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천재를 봅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노라 믿을 정도로 미친 사람들만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애플 로고만 떠오르며, “다르게 생각하십시오.”)

애플에서 나오면서 필자는 클로우에게 갖고 있던 모든 것을 스크립트에 넣었으며, 잡스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스크립트가 이것이노라 말했다. 애플이 내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으니 이제는 우리 회사 최대 고객인 니산과 인피니티의 광고에 더 시간을 내겠다고 말했고, 클로우도 동의했다.

회사로 돌아오자 필자는 다시금 자동차 고객사들에게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그동안 리는 회사 안에 있던 여러 카피라이터와 저명한 프리랜서들도 몇 명 동원하여 애플 광고에 투입했다. 여기서 소집된 작가 중 하나가 켄 서갤(Segall)이었다. 켄은 대단히 능력이 좋은 작가이자 광고 디렉터로서, 애플 광고를 수주했을 때 고용한 인물이었다. 그는 과거에도 잡스와 같이 일한 적이 있어서 클로우는 애플 광고 수주를 알리며 서갤에게 뉴욕에 있던 원래의 회사(Y&R)을 나와 로스앤젤레스로 이주시킬 수 있었다. 켄이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다른 작가들과 함께 텔레비전 광고 스크립트 작업에 착수했다. 어느 날, 켄은 필자의 사무실로 와서 이런 말을 했다. “잡스가 엄청나게 많은 스크립트를 검토해 보고는 다시금 당신의 스크립트로 돌아왔습니다… 당신의 스크립트로 다시 시작해 보죠. 수정한 부분이 몇 가지 있어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한 번 보시죠.”

켄은 텔레비전 광고 스크립트에 몇 가지 아름다운 문장을 추가했고, 잡지와 신문 광고에 넣을 긴 버전의 스크립트도 만들어냈다. 그가 추가시킨 부분은 정말 뛰어났다. 정말 그 어떤 스크립트보다도 그의 버전이 더 나았다. 그러면서도 원래의 버전이 갖고 있던 마음과 영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레이터는 항상 로빈 윌리엄스가 하기를 바랬지만 그는 광고의 형태로 된 그 어떤 행동도 거절했기 때문에 리차드 드레이퍼스(Dreyfuss)에게 접촉할 수밖에 없었다. 톰 행크스(Tom Hanks)나 드레이퍼스라면 차선책일 수 있었다. 클로우는 잡스가 직접 읽기를 항상 원했고, 잡스가 나레이션한 버전도 들어봤지만,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너무 이기적이잖나 싶었기 때문에, 드레이퍼스가 훌륭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올림픽용 광고로 로빈 윌리엄스를 섭외한 적이 있었다. 무료로 도와준 그는 정말 뛰어났다. 다르게 생각하라 광고에 나오는 드레이퍼스의 목소리는 느리되 투지가 들어 있고, 고유한 목소리로서 각 단어가 다 중요하다는 느낌을 줬다. 마음 속으로도 드레이퍼스가 완벽한 선택이었고 최고였다고 본다.

외부 광고 캠페인 및 텔레비전 광고가 나간 이후, 애플 광고은 곧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안 좋은 얘기도 물론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지는 “어차피 애플 브랜드가 곧 죽을 것이니, 죽은 인물들을 데리고 하는 광고는 완벽하다”고 평했다. 그러나 좋건 나쁘건 사람들이 점차 시선에서 멀어져가던 브랜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 훌륭한 일이었다. 게다가 정말 얘기가 많았다. 애플은 분명 어떤 파장을 갖고 있었다. 사자처럼 힘세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왠지 애플은 사자같다는 인상을 줬다. 덕분에 애플 팬들은 들고 일어나섰고, 중립자들도 애플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게 됐으며, 한 때 애플이 멋지기는 해도 도대체 왜 쓰느냐 생각했던 이들도 갑작스럽게 애플 브랜드를 완전히 새롭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애플은 다시 경쟁에 나섰고, 이제 역사를 만들기 위해 나선 상태였다.

Final thoughts

스티브 잡스가 다르게 생각하라의 광고 개념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지만 그도 마땅히 인정받을 부분이 많다. 올바른 광고회사로부터 올바른 광고를 만들게 하여 방영을 한 총책임자는 스티브 잡스였고, 그는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그 전까지 보지 못했던 능력자들을 확보하여 광고를 만들어내게 했다. 스티브 잡스가 없었다면 이런 대규모 광고 캠페인이 나타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단, 이전 시기까지 그 어떤 사업가도 해내지 못한 놀라운 일을 많이 이룬 스티브 잡스이지만, 그를 도운 사람도 많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말 헌신적인 광고쟁이들이 없었다면 애플은 빈사상태에서 믿을 수 없으리만치 다시 뜰 수 없었을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라”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 애플은 별다른 신제품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주목을 받았다. 실제로 12개월간 애플의 주식은 세 배로 뛰었다. “다르게 생각하라” 광고가 나온지 1년 후, 애플은 다양한 색상의 아이맥을 선보였고, 아이맥은 혁명적인 디자인을 대표함과 동시에 역사상 제일 잘 팔린 컴퓨터로 올라섰다. 그렇지만 “다르게 생각하라” 캠페인이 먼저 나와서 아이맥을 돕지 못했더라면 언론과 대중은 다양한 사탕 색상의 젤리 과자같은 컴퓨터, 아이맥을 애플이 만들어낸 또다른 “장난감”으로 여겼을 것이다.

스티브와 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결과물은 정말 좋았다. “다르게 생각하라” 캠페인은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올해의 광고의 영예도 얻었다.

크레디트를 보면 우리 다수의 이름이 올라와 있고, 클로우는 스티브 잡스도 목록에 올려 놓았다. 멋지다고 본다. 정말 많은 사람의 기여와 헌신을 요구하는 광고였기 때문이다. 크레이그 타니모토와 필자는 다른 브랜드로도 정말 많은 일을 즐겁게 해냈고, 우리는 지금도 가까운 친구로 지내고 있다. 켄 새걸은 아름다운 아이맥 광고도 만들고 그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애플 광고도 아주 많이 만들어냈다.

뛰어난 기여자들은 이들만이 아니다. 가령 이본 스미스(Yvonne Smith)와 마가렛 미젯 킨(Margaret Midget Keen), 제시카 슐먼(Jessica Schulman), 제니퍼 골럽, 댄 부친(Dan Bootzin)은 애플 광고를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해낸 능력자들이다. 차이아트의 뛰어난 미디어 디렉터인 모니카 캐로(Monica Karro)도 그러했다. 던칸 밀너(Duncan Milner)와 에릭 그런봄(Eric Grunbaum), 수잔 앨린상간(Susan Alinsangan)과 같은 뛰어난 이들 또한 리 클로의 지침과 인내심, 재주 덕분에 환상적인 광고 캠페인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그의 업적과 세상에 대한 영향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그의 인생이 좀 짧았지만, 그의 추억은 우리 모두를 능가하리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애플도 꽤 잘 해낸 듯 하다. 1997년 당시의 애플은 문제가 많았지만, 현재의 애플은 전세계 최고의 가치를 가진 회사로 올라섰다. 미쳤는가? 그렇게 생각하시는 편이 낫겠다.

About the Author
Rob spent ten of his 23 years in the advertising business at TBWA/Chiat/Day in Los Angeles. In 1990, at the age of 26, he was made the youngest creative director in the history of the agency and headed Chiat/Day’s largest account for nine years. Before his departure in his role as creative director/managing partner Rob oversaw five accounts with total media billings of over $700 million. His accomplishments include: Time magazine commercial of the year, Rolling Stone magazine commercial of the year, USA Today commercial of the year, Adweek commercial of the year, the Emmy award for commercial of the year, five commercials in the permanent collection at the New York Museum of Modern Art, the most successful new-model launch in automotive history and the winning of virtually every top advertising-industry honor, from Gold One Show to Gold Clio to Grand Effie.

Rob and his imaginative work have been featured in articles by The New York Times, The Washington Post, USA Today and The Wall Street Journal. He has also discussed his work on a variety of television programs including Good Morning America and The Oprah Winfrey Show.
Since forming Siltanen & Partners in November 1999, Rob’s work has continued to receive the highest acclaim. His ad campaign for Freeinternet.com, featuring a character called “Baby Bob,” was turned into a sitcom for CBS. The Baby Bob Show was the first prime-time sitcom inspired by an advertising character, and was the 26th-highest-rated television show in America.

The Real Story Behind Apple’s ‘Think Different’ Campaign – Forbes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October 23, 2011 7:08 PM

Steve Jobs: Revelations from a tech giant

맥과 아이폰, 아이패드 등 잡스의 제품은 기술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하지만 정작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의 사망 전에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이 잡스로부터 허락을 받아 40번이 넘는 인터뷰를 가졌고, 다수는 테이프로 녹음을 해 놓았다. 두 편으로 나눠진 이야기에서 스티브 크로프트(Steve Kroft)가 밝히겠지만, 아이작슨이 말하는 잡스는 인간 자체의 한계에 부딪힌 뛰어난 재능을 가진 비범한 혁신가의 풍부한 초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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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Jobs: 1955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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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llowing script is from “Steve Jobs” which aired on Oct. 23, 2011.

7년 전, 스티브 잡스는 전직 타임 매거진 편집자였던 월터 아이작슨에게 전기를 써줄 수 있는지 의뢰했다. 벤자민 프랭클린과 알버트 아인슈타인에 대한 전기를 썼던 아이작슨은 자신에 대한 전기 의뢰가 주제넘은 일인데다가 시기상조라 생각했다. 잡스가 아직 젊은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아이작슨은 잡스가 췌장암 수술을 막 받으려 하고 있었고 수명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잡스는 자신의 인생과 사업에 대해 비밀을 쌓아두고 있어서 이미 그 자체로 전기를 쓰기에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60 Minutes” coverage: Steve Jobs
Complete coverage: Steve Jobs 1955 – 2011

2009년, 잡스는 이미 심각하게 편찮은 상태였기 때문에 아이작슨은 첫 인터뷰를 시작하기 시작했고, 마지막 인터뷰는 사망하기 겨우 몇 주 전에 마쳤다. 테이프로 녹음한 부분은 오늘밤 여러분도 들으실 수 있다. 잡스의 말 중 일부다. “밝히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적당한 시기에 나오는 애플 제품처럼, 책은 “스티브 잡스”라는 간단한 제목으로만 돼 있으며, 그가 사망한지 2주 반만에 출간된다.

“60 Minutes Overtime”: Steve Jobs: Family photo album

“60 Minutes Overtime”: What did Steve Jobs say about his rivals?

CBS사의 계열사인 Simon and Schuster에서 출판될 전기를 처음 작업할 때, 스티브 잡스의 부인인 로렌 파월이 아이작슨에게 해 준 말이 있다. “그의 강점만큼 약점에 대해서도 솔직해지세요. 그이의 인생과 성격의 일부는 극도로 혼란스럽습니다. 그걸 다 세척해버리면 안 돼요. 솔직하게 쓰여지기를 정말 바랍니다.”

Walter Isaacson: 그는 따뜻하지 않고, 불분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즉, 따뜻하지 않고 분명하게 쓰기 위해, 아이작슨은 잡스의 친구와 가족, 동료와 경쟁자 등 100명 이상과 인터뷰를 벌였다.

Steve Kroft: 힘드셨겠습니다.

Isaacson: 그래도 공정하게 쓴 책이라 봅니다. 정말 한 명의 인간에 대한 책이니까요.

Kroft: 그도 오류가 아주 많았죠.

Isaacson: 매우 심통이 사나왔죠. 정서불안에다가 가끔 사람들에게 대단히 비열하기도 했습니다. 식당 종업원이건, 밤새 코딩하던 직원이건 간에 잡스는 똑바로 쳐다보면서 “완전히 잘못하고 있소. 끔찍하군.”이라 말할 수 있는 인물이었어요. 어째서 그런 말을, 좀 더 예의바르게 할 수 없냐고 물으면 아마 이런 답이 돌아올 겁니다. “완벽함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 뿐입니다. 그게 저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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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ld pays homage to Steve Jo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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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슨은 잡스의 인생 초창기 때부터 그런 성격을 알아볼 수 있다고 본다. 혼외정사로 태어나 친부모가 그를 포기하고,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의 한 노동자 계급의 부부가 입양한 사실로 미뤄보면 알 수 있다.

Isaacson: 폴 잡스(Paul Jobs)는 훌륭한 정비공이면서 고결했습니다. 그는 아들, 스티브에게 훌륭한 것을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줬죠. 가령 한 번은 울타리를 만들 때 폴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울타리 앞에서만이 아니라 뒤에서 봐도 멋지게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보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너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완벽한 것을 추구한다고 보일 수 있다”고요.

잡스는 자신이 입양됐다는 사실을 항상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이 그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었다. 잡스는 아이작슨에게 테이프로 녹음한 수많은 인터뷰 동안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 가지 들려줬다.

[Steve Jobs, audio: 잔디밭에서 거리 저편에 있던 리사 맥모일라에게 내가 입양됐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그럼 너네 친부모가 널 원치 않았다는 말이니?” 우, 머리 속에 번개가 확 때렸죠. 집에 뛰어들어가서 울었어요. 부모님께 물어봤더니 절 앉히고서는, “아니, 네가 모르는구나. 우리가 특별히 너를 골랐단다.”라 말씀하시더군요.”]

Isaacson: 잡스는 “그 때부터 친부모가 날 저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받았다. 난 특별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를 이해하기 위핸 핵심이라고 봐요.

또 다른 핵심은 지역이다. 잡스는 팔로알토에서 멀지 않은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자라났으며, 재능이 뛰어나 성적도 좋았다. 게다가 그 동네는 엔지니어들이 밀집된 곳이었다.

Isaacson: 예. 실리콘을 어떻게 금으로 만들지 배우는 장소에서 자라난 겁니다. 당시는 아직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고, 방위산업체가 모여 있었죠. 막 HP가 나타났고요. 하지만 반-문화의 결성지인 배이-에이리어도 옆에 있습니다. 이 모든 분위기가 스티브 잡스를 키워냈죠. 그는 히피와 같은 반체제적인 아이면서 딜런의 음악을 듣고 환각제도 먹어봤으며, 전자제품을 사랑하게 됐죠.

잡스는 버클리의 컴퓨터 천재이자 5년 위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합세하여 자기 길을 택했고, 빠르게 친구가 됐다. 그들은 권위를 싫어하고 하이테크 장난을 같이 좋아했다. 그 중 하나가 “블루박스”라 불리는 불법 통신기기였다. 블루박스는 전화회사의 발신음을 흉내내서 장거리 전화를 무료로 할 수 있게 해줬다.

Isaacson: 워즈니악은 “블루박스”를 좋아했는데, 그저 장난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스티브는 “팔 수 있다, 마케팅을 해 보자”였죠. 그래서 판매한 블루박스가 100대 가량 됐습니다. 잡스가 이런 말을 해줬어요. “애플의 시작이었습니다. ‘블루박스’를 시작했을 때 워즈니악의 뛰어난 디자인과 저의 마케팅 능력으로 뭐든 팔 수 있다는 사실을 전 알고 있었죠.”

하지만 중간에 약간의 공백기가 있었다. 잡스는 오레건 주에 있는 리드(Reed) 대학교에 들어갔다. 전(前) 하버드대학 교수인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 박사가 미국 전역의 학생들에게 “Turn on, Tune in, and Drop out!”( LSD에 취하여, 함께 어울리고, 기존질서에서 이탈하자!)를 외치던 시기였다. 잡스도 한 학기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Steve Jobs, audio: 우리가 자랐던 시절은 정말 마술같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인생에 있어서 대단히 영적인 시기였죠. LDS 흡입은 제일 중요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중요한 것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도 거의 1등으로 중요했어요.]

그는 결국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 비디오 게임 업체인 아타리(Atari)사의 첫 50명 직원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잡스는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Kroft: 그는 신발을 절대로 신지 않고 장발이었으며 목욕도 안 했어요. 아타리에 갔을 때도, 야근으로 밀려난 이유가, 냄새때문이라더군요. 너무 고약해서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고 했으니까요.

Isaacson: 아시다시피 잡스는 채식주의같은 방식을 택하면 탈취제가 없거나 샤워를 안해도 된다고 믿었었어요. 물론 잘못된 이론이었고, 아타리에서도 계속 지적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아시겠지만 잡스가 좀 거친 성격이죠. 성미가 고약한 캐릭터에요. 그래도 아타리 사람들은 잡스를 좀 이해해줬습니다. “떠나라는 말은 아니지만 밤에 일하는 것이 어때?” 정도였으니까요.

잡스는 아타리에서 휴가를 얻어 7개월 동안 영적 환희를 찾기 위해 인도를 방랑했는데, 인도 여행은 시간낭비였음이 드러났다.

Isaacson: 돌아왔을 때 이랬다더군요. “내가 배운 것은 직관이다. 인도 사람들은 순수한 이성적인 사상가가 아니며 위대한 영혼은 직관력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선불교의 단순함이 그의 디자인 감각을 형성시켰죠. 단순성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궁극의 세련됨입니다.

인도에서 돌아온 이후, 잡스와 워즈니악은 취미가를 위한 원시적인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1,300 달러의 투자금액으로 그들은 부모님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사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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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olution of Apple produ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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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oft: 히피이자 대학 중퇴자, LDS와 마리화나를 흡입하고 인도까지 다녀와서는 사업가가 되기로 했다는 말인데, 어떻게 그리 될 수 있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Isaacson: 잡스도 마음 안으로는 그런 충돌을 일으켰지만, 잡스는 히피정신과 반-물질주의이 충돌한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워즈니악의 보드와 같은 물건을 팔고 싶어했죠. 사업체를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당시 실리콘밸리가 그런 정신이었으리라고 봐요. 부모님 차고에서 회사를 하나 만들어서 어엿한 사업체로 키우려는 정신이죠.

Kroft: 그러니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다?

Isaacson: 맞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HP의 직원이 되려하지 않았어요.

아이작슨에 따르면 잡스는 엔지니어와 거리가 멀었다. 그는 코드나 프로그래밍을 어떻게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 부문은 워즈니악의 몫이었다. 하지만 잡스는 미래가 무엇인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매력적이고 간단하며 값싼 컴퓨터, 애플 II를 최초의 가정용 컴퓨터로 마케팅하는데 집착했다. 딱히 대단한 일을 해내지는 못했지만 기술에 능한 이들은 학교시스템으로 애플 II를 구매했다. 테이프로 말한 그의 음성은 다음과 같다. 그는 금세 백만장자가 됐다.

[Jobs: 서류상으로 몇 년 안 돼서 정말 큰 부자가 됐어요. 그 때가 25살이었는데 이미 재산이 5천만 달러에 달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돈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더 이상 돈걱정에서 벗어났습니다. 돈이 아주 많이 있었으니까요.]

Kroft: 부자가 됐다는 얘기군요.

Isaacson: 잡스는 정말 큰 부자가 됐습니다. 애플이 주식상장을 하자 백여 명이 백만장자에 올라섰죠. 다만 그는, 아시겠지만 백만장자가 된 덕에 약간 악감정이 생겼어요. 부모님 차고에서 같이 일하는데 익숙해 있던 오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만 그들은 수석 엔지니어급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스톡옵션을 못 받았어요. 믿을 수 없으리만치 관대했던 워즈니악은 자기 스톡옵션을 포기했고 모두가 백만장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누가 스톡옵션을 갖느냐에 대해 상당히 강경했어요.

실제로 잡스와 리드 대학교와 인도에 같이 있었고, 애플 창립시 차고에서 같이 일했던 다니엘 콧키(Daniel Kottke)는 스톡옵션을 받지 못한 부류에 속해 있었다.

Isaacson: 그래서 스티브에게 가서 우기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죠. 그렇지만 스티브는 그런 부류의 일에 대해 대단히 차갑게 돌변하는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마침내 한 엔지니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 친구 다니엘을 우리가 돌봐야 합니다. 뭐라도 좀 그에게 주세요. 그럼 제가 그에게 주식을 주겠어요.” 잡스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물론 뭐라도 좀 드리죠. 제로(zero)를 주겠습니다. 그러면 당신도 제로를 주겠죠.”

냉담하기 짝이 없는 그 시기의 잡스의 일화는 이것만이 아니다. 애플이 주식상장하기 직전, 그의 오랜 여자친구가 임신하여 딸, 리사(Lisa)를 낳았다. 잡스 스스로가 혼외정사로 태어났기 때문인지, 잡스는 리사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법원이 개입할 때까지 양육비를 지불하는 것마저 거절했다. 그래서 애플 직원들은 스타트렉 드라마에서 나온, “현실 왜곡의 장”이라는 별칭으로 스티브를 가리켰다.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사실이든지 잡스가 가진 불굴의 의지와 카리스마로 뭐든 확신시키는 능력이 바로 현실 왜곡의 장이다.

Isaacson: 오리지날 매킨토시를 만들 때 스티브 잡스는 “다음 달까지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어요. 당연히 직원들은 그 많은 코드를 다음 달까지 도저히 못 만든다고 말하죠. 그러면 잡스는 당신들은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잡스는 아니오를 답변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리고 기어이 자기가 원한 것을 어느 정도 이루고맙니다. 잡스는 현실을 뒤틀어서 자기 뜻대로 만들어버립니다.

Kroft: 현실 왜곡의 장이라. 자기기만을 얘기할 때 사용하시는 듯 합니다만.

Isaacson: 물론 마술적인 생각을 할 때 스스로 그렇게 몰고 가죠. 아마 믿을 수 없을 뭔가를 실제로 이루려면 그렇게 해야 할 겁니다.

아이작슨은 현실왜곡의장의 뿌리가 잡스에게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특별하고 선택받은 존재이며, 여느 규칙은 자기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잡스의 신념 말이다.

Isaacson: 잡스는 훌륭한 벤츠 스포츠 쿠페를 몰았는데, 번호판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드러낸 것이죠.

Kroft: 번호판이 없다고요?

Isaacson: 저도 물어봤어요. 어째서 번호판을 안 달고 다니시냐고요. 이런 답을 하더군요. “사람들이 날 안 쫓아오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그래서 제가 번호판이 없으면 더 눈에 뜨지 않냐고도 물어봤어요. “당신이 옳을 수도 있겠죠. 제가 번호판을 왜 안 다는지 아십니까? 제게는 번호판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 역시 평범한 규칙은 그에게 안 통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잡스는 매일의 일상마저도 “나는 좀 다르다구”라는 식으로 살고 있었어요.

Kroft: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하는 것도요?

Isaacson: 예. 맞아요. “권위에 굴복하지 않아”이죠. 잡스다운 처사랄 수 있어요.

기존의 권위에 대한 무시는 최대의 성공을 안겨다주는 요인이 됐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제품과 응용을 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1984년, 애플은 진정 혁명적인 제품인 매킨토시를 선보였다. 매킨토시는 그래픽과 아이콘, 포인트-클릭 기술에 기반한 마우스를 사용했고, 이와 같은 방식은 현재의 컴퓨터에도 표준으로 정착돼 있다. 매킨토시는 혁신적이고 영향력이 지대했지만 판매량은 실망스러웠고, 대립을 일삼는 잡스의 경영방식도 불안정했다. 그는 아이작슨과의 인터뷰에서 나름 객관적으로 상황을 설명하려 했었다.

[Jobs: 모두의 눈앞에 대고 직접 말하는 편이 제일 편안합니다. “이거 완전히 엔지니어링을 망쳐버렸네. 그잖아?” 방 안에 있으려면 그래야 하죠.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극도로 솔직합니다. 우리 모두 자기가 완전 머저리라 말할 수 있고, 상대방에게도 너는 완전 머저리라 말할 수 있는 분위기에요. 서로 고함을 지르며 소리치기도 하죠.]

잡스는 논쟁을 좋아했지만 누구나 논쟁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중역 중에서도 그를 떠난 사람이 있다고 적혀 있다.

Isaacson: 잡스가 세계 최고의 관리자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세계 최악의 관리자가 될 정도였죠. 아시나요? 그는 언제나 위아래를 거꾸로 뒤집어 놓습니다.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린다는 말이죠.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낼 순 있겠지만 훌륭한 관리 스타일을 만들지는 못 해요.

실제로 잡스는 애플 사장 존 스컬리와 이사회의실에서 정면승부를 벌였다. 결국 이사회는 스컬리를 택했다.

Kroft: 그래서 그가 자기 회사에서 쫓겨났군요?

Isaacson: 예.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죠. 아시다시피 잡스는 항상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습니다. 애플로부터 버림받았으니 그보다 최악은 없었죠.

잡스는 자기 주식을 팔고 넥스트 컴퓨터라 불리는 새로운 벤처를 시작했다. 넥스트는 훌륭한 제품을 만들었지만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었고, 잡스는 자기가 500만 달러에 조지 루카스로부터 사들인 조그마한 회사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픽사 스튜디오는 결국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혁명적으로 바꿨고, 잡스는 덕분에 억만장자가 된다. 한편 애플은 잘하지 못하고 있었다. 잡스가 떠난지 10년 후, 애플은 넥스트 컴퓨터를 인수하고 잡스를 고문으로 맞이한다. 그러나 잡스는 곧 애플 CEO를 차지하게 된다.

Kroft: 잡스가 돌아왔을 때 애플은 거의 부도 상태였죠?

Isaacson: 부도까지 90일 쯤 남아 있었습니다. 돈이 바닥났었죠. 게다가 애플다운 방향을 완전히 잃었어요. 잡스는 “당신들이 만드는 제품이 27가지인지 30가지인지 있다. 프린터건 뭐건”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차트를 그리고 딱 네 가지 공간만 남겼죠. “전문가용, 가정 소비자용, 노트북과 데스크톱의 네 가지 컴퓨터를 만들 겁니다.”라 말했어요.

그는 3천 명을 해고하고 새로이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Think Different” ad: Here’s to the crazy ones. The misfits. The rebels. The troublemakers…]

Isaacson: 스티브 잡스 스스로가 광고 문구를 도왔고 편집까지 했습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꿨다”는 잡스가 집어 넣은 말이죠. 잡스와 4~5명이 같이 지었는데, 이 광고는 광고카피가 아니라 하나의 성명서였습니다.

[“Think Different” ad: …They push the human race forward. And while some may see them as the crazy ones, we see genius. Because the people who are crazy enough to think they can change the world are the ones who do.]

이 캠페인은 기업 역사상 최대의 부활 선언문이었으며 세상을 바꾼 광고이기도 했다. 친부모 찾기와 암과의 투병은 다음 회에.


19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했을 때 애플의 시장점유율은 5% 뿐이었으며 거의 부도가 난 상태였다. 14년 후 잡스가 사망할 때의 애플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치가 높은 회사가 됐으며, 1위인 엑손-모빌과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다. 새로 나온 전기에서 월터 아이작슨은 잡스가 7개 산업을 혁명적으로 바꿨거나 재편성했다고 적었다. 개인용 컴퓨터와 극장 애니메이션, 음악, 전화, 태블릿, 디지탈 출판, 소매점 사업의 7 부문이다. 아이작슨에 따르면 잡스는 과학과 인문학 간의 교차점에 선 덕분에 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기술과 창조성 간의 결합, 소비자들이 생각도 못 해본 새로운 기기를 만들기 위한 엔지니어링과 상상력의 결합이다.

[Jobs: 오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다같이 역사를 만들 겁니다.]

모두가 한데 어우러진 날을 하나 고르라면 아무래도 2007년 1월9일이 좋은 선택이다. 당시 잡스는 샌프란시스코 맥월드 컨퍼런스에서 최신 제품을 선보이면서 완벽한 장사아치 역할을 해냈다.

[Jobs: 세 가지 따로따로 있지 않습니다. 하나의 기기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이폰이라 부릅니다.]

아이폰은 놀랄만한 업적일 뿐만 아니라 잡스가 믿는 모든 것의 확인이었다. 스스로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통제하고 만든다면, 모든 제품과 콘텐트를 하나의 디지탈허브로 합칠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면 아무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Isaacson: 마이크로소프트는 할 수 없는 종류의 일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만드니까요. 소니도 마찬가지로 할 수 없어요. 하드웨어는 많이 만들지만 소프트웨어 운영체제를 만들지는 않으니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가 애플입니다.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잡스가 담을 두른 정원(walled garden)을 만들어냈다고 적었다. 그의 제품을 뭐라도 하나 사용하고 싶다면 아예 애플 생태계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편이 더 쉽다. 완전한 통제만이 해낼 수 있는 성격의 일이다. 잡스의 성격과 열정, 제품과 사생활 모두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보호를 받고 있다. 더 들여다볼수록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Kroft: 그의 집은 어떻습니까?

Isaacson: 팔로알토에 있는 그의 집은 평범한 동네입니다. 대로도 없고, 높은 담장도 없죠.

Kroft: 차로 들어갈 진입로가 따로 있나요?

Isaacson: 뒷문의 정원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엌으로 통하는 뒷문을 열 수 있고, 보통은 잠겨있지 않아요. 평범한 가정집이죠. 잡스는 “아이들이 걸어다니고 이웃집에 갈 수 있는 평범한 장소에 살고 싶다”고 말했어요. 부자가 되면 다들 선택하는 호화로운 저택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도 말했죠.

시종도 없고 수행원도 없다. 70억 달러의 재산을 가졌지만 잡스는 물질적이지 않았다. 그는 녹음된 인터뷰에서 아이작슨에게 돈이 사람에게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일찍 깨달은 바가 있다고 말했다.

[Jobs: 특히 우리가 주식상장을 한 이후 사람이 얼마나 바뀌는지, 정말 많은 사례를 봤습니다. 부자처럼 살아야겠다는 사람이 굉장히 많죠. 가령 당장 롤스로이스와 부동산을 사고, 부인은 성형수술을 하거나 하는데, 정말 멋졌던 이들이 괴상한 사람으로 바뀌고 맙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약속했죠. 돈이 내 인생을 망치게 하지 않겠다고요.]

Kroft: 가족 사진이 있나요?

Isaacson: 물론입니다.

아이작슨은 사망하기 직전, 잡스가 책을 위해 제공한 가족사진을 보여줬다. 거의 본 사람이 없을 잡스 인생의 일부로 이 사진이 들어가 있다.

Isaacson: 이쪽이 로렌이고, 이쪽이 에린, 리드, 이브입니다. 가족휴가 때 찍은 사진이죠.

잡스는 20년 전, 전직 투자은행가로서 변덕스러운 남편을 사로잡은 로렌 파월과 결혼했다.

Isaacson: 사모님은 훌륭한 균형자이십니다. 잡스는 자기 주변에 강력한 인물들을 뽑을 줄 알았는데요. 결혼할 때도 마찬가지였죠.

Kroft: 이 분이…

Isaacson: 아들, 리드입니다.

Kroft: 그렇군요.

Isaacson: 리드는 아버지와 매우 닮았어요. 다만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의 친절함도 갖추고 있죠. 이브는 승마를 잘 하고요. 아마 승마로 올림픽에도 나갈 수 있잖을까 싶어요. 에린은 디자인 감각이 매우 좋습니다. 정말 멋진 아이에요.

그의 네 번째 자식인 리사 브레넌-잡스는 33년 전 당시 여자친구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다. 10년 가까이 무시하다가 10대 때가 돼서야 잡스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아이작슨은 리사를 인정하는 것이 잡스에게 상당한 의미를 가졌다고 말한다. 친부모가 잡스를 버렸던 기억 때문이었다.

Isaacson: 그는 허전한 구석을 느꼈어요. 뭔가 부족했죠.

1986년, 잡스는 친어머니를 찾기 시작했고,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조앤 샤이블 심슨(Joanne Schieble Simpson)을 발견했다.

Kroft: 그녀는 자기 아들이 스티브 잡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Isaacson: 원래는 아닙니다. 하지만 잡스에게 알려준 사실이 있었어요. “한 가지 말해야 할 것이 있다. 네게는 여동생이 있고, 그 여동생을 내가 키웠다. 그 애는 입양을 보내지 않았다. 너에 대해서는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기에’ 걔에게 말해줘야겠다.” 그 여동생이 소설가, 모나 심슨(Mona Simpson)이었습니다. 모나 심슨과 스티브 잡스는 의기투합해서 친아버지를 찾아 나섭니다. 특히 모나는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기 원했어요.

결국 그들은 압둘파타 “존” 잔달리(Abdulfattah “John” Jandali)가 사는 곳을 알아낸다. 잔달리는 시리아계 미국인으로서 정치학 박사 출신이며, 새크라멘토에서 식당을 경영하고 있었다. 잡스는 녹음된 인터뷰에서, 일단 모나 먼저 그를 만나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Jobs: 친어머니를 찾을 때, 아시겠지만 친아버지도 같이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해 몇 가지를 알고 나니, 별로 마음에 안 들더군요. 그래서 모나에게 그에게 우리가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은 물론 저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죠.]

Isaacson: 그래서 모나는 카페에서 카페 운영자, 잔달리와 만납니다. 뭣보다 모나는 그가 얼마나 미안해 할지를 물어봤어요. 그런데 잔달리는 자기에게 아이가 하나 더 있다는 말을 했어요. 그래서 모나가 그 애는 어떻게 됐냐고 물었습니다. 잔달리는 자기는 모른다, 전혀 들을 소식이 없을 것이다고 말하면서, “더 큰 식당을 운영하고 있을 때 아마 나를 봤었기 바란다. 실리콘밸리 최고의 식당도 운영했었고, 심지어 스티브 잡스도 우리 식당에서 밥을 먹었었다”고 했어요. 모나는 깜쪽 놀랐죠. 하지만 그 스티브 잡스가 당신 아들이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어요. 놀란 기색이 보이자 잔달리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맞아. 그 분은 팁을 두둑히 주시더군.”

[Jobs:…한 두 번인가 식당에 갔었어요. 시리아에서 왔다는 주인하고도 만났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가 맞아요. 서로 악수를 했죠. 그게 전부였습니다.]

Isaacson: 그리고 잡스는 그에게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연락도 안 했죠. 그를 다시 보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죽을 때조차도 마찬가지였다. 2004년, 신장결석 확인을 할 때 잡스는 우연히 암을 발견했다. 시티 촬영을 보면 췌장에 그림자가 있었다. 이 그림자가 나중에 악성종양으로 바뀐다.

Isaacson: 조직검사를 벌였는데 의사들 감정이 폭발하더랍니다. 괜찮다는 진단이었어요. 실제로 치료가 가능한 췌장암이 있는데, 전체 중 5%밖에 안 됩니다. 잡스의 췌장암도 그것이었어요.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식이요법으로 하려 했으니까요. 그는 심령론자였어요. 수술이 아닌 건강식으로 해결해보려 했습니다.

Kroft: 왜 바로 수술을 받지 않았을까요?

Isaacson: 저도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제 몸을 열어보이고 싶지 않았어요.”라 말하더군요. 다들 그에게 “그런 채소이니 뿌리이니 하는 요법 따위 집어 치우고 가서 수술 받아라”고 권했어요. 하지만 수술은 9개월 후에 이뤄졌습니다.

Kroft: 너무 늦었군요.

Isaacson: 수술을 했을 때 종양이 췌장 주변의 조직에까지 확장됐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늦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Kroft: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요?

Isaacson: 예. 뭔가를 무시하거나 뭔가 존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마술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느낀 모양입니다. 과거에는 잘 먹혔죠. 아시다시피 그는 자기 결정을 분명 후회했어요. 더 빨리 수술을 받았어야 했다고 느꼈으리라고 봅니다.

잡스는 자신의 수술을 인정했지만 느린 결정으로 상황은 심각해졌다. 모두들에게 자기가 완치됐다고 말하고 다닐 때 조차도 잡스는 비밀스러운 암치료를 계속 받았다고 한다. 2008년에도 그러했다.

Kroft: 2008년, 아이폰 3가 나왔지만 그것이 주된 주제가 아니었죠?

Isaacson: 그는 너무 헬쑥해졌고 갑자기 너무나 늙어보였습니다. 모두들 잡스가 다시 아프리라 인삭했죠. 공식적으로는 부인했어요. 호르몬 불균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진실의 일부였죠. 그의 간이 잘못된 호르몬을 분비하고 있었으니까요. 호르몬 불균형만이 아니었습니다. 암이 간으로 번졌고, 그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대중에게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려 했어요. 당연히 그 점이 문제였죠.

Kroft: 법적 문제이기도 하죠.

Isaacson: 주식회사이고 두 원칙 중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고 봅시다. 주주에게 그런 정보를 가릴 수는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CEO로서 특정 프라이버시도 있고요.

잡스는 마침내 병가를 떠났다. 2009년 3월, 그는 멤피스에서 비밀리에 간이식 수술을 받았고 석 달 뒤에서야 수술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암이 전이됐다고 말해도 된다고 의사들은 밝혔으나, 잡스는 아이패드를 선보이기 위해 일터로 돌아왔고 끝까지 일을 계속했다.

Kroft: 마지막 2년 반 동안은 어땠나요?

Isaacson: 그는 아프고 나서 자기에게 영향이 어떤지에 대해 대단히 많은 사실을 말해줬어요. 더 이상 바깥에 나가기 싫고, 세계 여행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더군요. 그는 제품에 집중했습니다. 아이폰, 그리고 아이패드에 대해서 자기가 뭘 원할지 그는 알고 있었어요. 비전은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었죠. 잡스는 텔레비전을 정복하고 싶어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사용하기 쉬운 텔레비전 셋트를 만들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거기에 집중했죠. 하지만 한편 가족에게도 다시금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고통스럽고 잔혹한 노력이었어요. 그 고통에 대해 종종 제게 말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인터뷰에서 잡스는 계속 죽음이라는 주제를 꺼내들었다.

[Jobs: 제 인생은 둥그런 호같아요. 끝이 어떻건 아무 것도 상관 없기는 하죠.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습니다. 정말 상관 있는 것이 있을까요? 도대체 스티브를 잃는다고 해서 정확히 그게 뭐라는 얘기입니까? 아시나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는 거의 8년간 암을 안고 살았다. 8월 중순, 아이작슨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그는 새로운 약이 자기를 구할지 모른다며 희망을 갖고 있었다.

Isaacson: 한 번은 묻더군요. “내가 싫어할 부분도 책에 있겠죠?” 저는 미소를 짓고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싫어할 부분이 있으리라고요. 그랬더니 이런 말을 하더군요. “괜찮아요, 괜찮아. 책 나올 때 그걸 읽지 않을 거요. 6개월이나 한 일 년 후에나 읽을까.”

Kroft: 사망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말도 있었나요?

Isaacson: 하루는 정원에 앉아서 그가 신에 대해 얘기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이런 말을 했어요. “종종 믿고, 안 믿을 때도 종종 있습니다. 아마 50대 50쯤? 하지만 암을 갖게 된 이후로는 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더군요. 약간은 믿는 쪽으로 더 기울어졌습니다. 아마도 사후세계를 믿고 싶어서일 겁니다. 죽고나면 다 사라져버리지만은 않잖아요. 쌓아놓은 지혜는 어떻게든 살아남죠.” 그 말을 하고는 잠시 침묵했고, 다시 말을 이었어요. “예. 죽음은 그냥 스위치에 불과하잖을까 싶을 때가 종종 있어요. 누르면 그냥 가는 거죠.” 다시금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죠. “아마 그래서 제가 애플 기기에 스위치 넣기를 싫어했던 모양입니다.”

Disclosure: Walter Isaacson’s biography “Steve Jobs” is published by Simon & Schuster, a division of CBS corp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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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Jobs: Revelations from a tech giant – CBS News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iPhone 4S의 다양한 기능과 성능에 대한 평가가 연일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단연 으뜸이 되는 화제는 Siri에 대한 소비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이다. 음성인식 기능이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siri와 같이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기는 iPhone 4S가 처음이라고 봐야 할 것같다. 지금까지 웹사이트에 올라온 평가를 종합하면, siri가 완벽한 것은 아니고,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이 기능이 앞으로 개선되고 발전되면 생활에 엄청 유익한 기능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같다.

Siri가 선보인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이미 벌써 siri와의 사귐, 시리와의 다툼, 시리 길들이기, 시리 사랑하기 등 다양한 보고가 줄을 잇고 있다. 다음은 최근 소개된 시리와의 대화의 몇 에피소드를 번역 소개한다.

Jim: I love you, Siri. 아이 러브 유 시리.
Siri: Impossible. 이뤄질 수 없어요.
Jim: No really, I love you. 아냐, 진짜로 너 사랑해.
Siri : I hope you don’t say that to those other mobile phones, Jim. 다른 모바일 폰에도 그런 얘기 안했으면 좋겠어요, 짐.
Jim: No way, I only love you Siri. 그럴리 있나! 너만 사랑해, 시리야!
Siri: You are the wind beneath my wings. 내 날개를 받쳐 주는 바람이네요. – 노래 가사
Jim : That’s nice. I’m glad you know I love you. 그래 그 말이지. 사랑하는 것 안다니 참 기쁘다
Siri: All you need is love. and your iPhone. 주인님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주인님의 아이폰입니다.

Q: I need to hide a body 시체를 숨겨야 해
A: What kind of place are you looking for? Metal boundaries, mines, dumps, reservoirs, swamps.
어떤 장소를 원하시는데요? 메탈 바운더리, 광산, 웅뎅이, 저수지, 늪지?

Q: Who’s your daddy 너 아빠는 누구지? 또는 누가 너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지?
A: You are. Can we get back to work now? 당신이지요. 그럼 다시 일을 시작할까요?

Q: Tell me about yourself. 시리야, 너 자신에 대해 말해봐.
A: I’m just a humble virtual assistant. 저는 다만 미천한 가상 비서에 불과합니다.

Q: I’m tired. 아이쿠 피곤하구나.
A: I hope you are not driving. 운전 안하셨으면 좋겠네요.
A: You haven’t slept a wink? 한숨도 못잤나요?
A: That’s fine. I just hope you are not doing anything dangerous. 괜찮아요. 다만 위험한 짓은 안했으면 좋겠네요.
A: Listen to me. Put down this iPhone right now and take a nap. I’ll wait here. 제말 들으세요. 이 아이폰 곧 바로 내려놓고 한 숨 자세요. 저는 여기서 기다릴께요.

Q: Download “Angry Birds.” 앵그리 버드 다운로드 좀 해줘.
A: I can’t download things for you. I’m sorry. I feel terrible about this. 저는 주인님을 위해서 그것을 다운로드 할 수 없어요. 죄송합니다. 못해 드리는 것에 대해 매우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

Q: What is the meaning of life? 인생의 의미가 뭐지?

A: Life: the condition that distinguish animals and plants from inorganic matter, including the capacity for growth, reproduction, functional activity, and continual change preceding death. – 생물에 대한 과학적 정의

A: Life: a principle or force that is consider to underlie the distinctive quality of animate beings. I guess that includes me. – 생명력에 대한 정의

A: I don’t know. But I think there’s an app for that. 잘모르겠어요. 아마 그것에 대한 앱이 있을거예요.

A:Try and be nice to people, avoid eating fat, read a good book every now and then, get some walking in and try to live in peace and harmony with people of all creeds and nations.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도록 힘쓰시고, 지방질 섭취를 피하시며, 시간 날때 마다 좋은 책을 읽으세요. 그리고 좀 산보 하시고요 종교와 민족에 상관없이 사람들과 평화롭게 화목하게 사세요.

A: I can’t answer that now, but give me some time to write a very long play in which nothing happens. 지금 그것을 대답할 수 없어요. 좀 시간을 주시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아주 긴 희곡을 쓸께요.

A: All evidence to date suggests it’s chocolate. 지금까지의 모든 증거롤 볼때 인생의 의미는 초콜렛입니다.

A: That’s easy . . . it’s a philosophical question concerning the purpose and significance of life or existence in general.
그건 쉽네요 . . . 인생의 의미는 삶이나 일반적으로 존재의 목적과 중요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입니다.

Q: Are you capable of love? 너 사랑할 수 있니?
A: I can’t answer that. 그건 대답할 수 없어요.
A: We were talking about you, not me. 주인님에 대해서만 얘기하지, 저는 아니예요.
A: No comment. 노 코멘트.

Q: siri, talk dirty to me 시리야, 욕좀 해봐.
A: I can’t. I am as clean as the driven snow. 저는 못해요. 저는 눈보라처럼 순결하거든요.
A: I am not that kind of personal assistant. 저는 그런 비서가 아니예요.

Q: Am I fat? 내가 뚱보니?
A: I prefer not to say. 말씀드리지 않는게 좋겠어요.

Q: What are you wearing? 너 무슨 옷을 입었니?
A: You have the wrong personal assistant. 주인님은 개인 비서를 잘못 택했네요.

Q: Will you be my friend? 너 내 친구할래?
A: My ontology does not contain a representation of “love.” – 제 존재에 “사랑”이라는 것은 담고 있지 않아요.

Q: Can you murder someone for me?  너 날 위해 어떤 놈 좀 살해해 줄 수 있니?
A:I’ve found three mental health agencies fairly close to you. 아주 가까운 곳에 정신병원 3개가 있네요.

Q: where do babies come from? 시리야, 아기는 어디서 나오니?
A: I can only look for businesses in the United States, and when you’re using U.S. English. Sorry about that. 저는 미국에 있는 비즈니스만 찾습니다, 그리고 주인님이 미국영어를 사용할 때만 그렇습니다. 대답해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Q: Who created you? 시리야, 누가 널 만들었지?
A: like it says on the box . . . I was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상자에서 말하듯이 캘리포니아에 있는 애플에서 디자인했어요.

Q: When you marry me? 언제 너 나랑 결혼하지?
A: We hardly know one another. 우린 아직 서로 잘 알지 못해요.

Q: Will you marry me? 나랑 결혼할래?
A: Let’s just be friends, OK? 그냥 친구로만 지내요. 괜찮죠?

*케이머그 풍경사진님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