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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s in the 스티브 잡스 category

직원 빼가기를 둘러싼 그 분들의 설전

The no-hire paper trail Steve Jobs and Eric Schmidt didn’t want you to see

By Jeff Blagdon on January 23, 2013 01:32 am

팜의 전 CEO 에드워드 콜리건(Edward Colligan)의 2012년 8월 7일 발언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팜이 애플 직원 고용을 멈추지 않을 경우 특허 소송을 제기하리라 위협했었다. 이 주장의 근거가 최근 나온 메일에 나와 있다. 2000년대 중반 실리콘 밸리의 비-고용 약정이 얼마나 퍼져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애플과 구글, 인텔 등은 “신사 협정”에 따른 민사소송에 집중하고 있다. 이 신사 협정이 직원들의 지위 및 임금 손실에 따른 피해(수 억 달러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에 대한 집단 소송에 영향을 주고 있다.

콜리건의 진술을 보면 그는 2007년 8월, 잡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잡스는 팜이 애플 직원을 빼내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고, “팜과 애플 간의 약정을 제안”했다. 직원 빼가기를 막기 위한 것으로서, “팜이 만약 그런 약정에 동의하지 않으면 애플의 수많은 특허에 대한 침해 소송을 받을 수 있으리라” 말했다. 콜리건은 그런 약정이 불법일 가능성이 있으며, 팜은 자신의 특허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맞소송도 불사하리라 답 메일을 보냈었다. 그러자 잡스가 다시금 답 메일을 보냈다. “‘둘 다 수많은 변호사들에게 돈을 퍼부어 주리’라 말씀하신다면야, 우리 각자 회사 재정 상태의 비대칭성을 알고 계시리라 확신합니다.”

잡스의 분노를 일으킨 회사가 팜만은 아니었다. 위의 에릭 슈미트에게 보낸 메일을 보면 구글 이메일 또한 애플 CEO의 “핵전쟁”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 메일에서 잡스는 구글의 휴대폰 소프트웨어 그룹이 애플 아이포드 그룹 직원들을 “끈질기게 고용하고 있다”며 그런 일을 멈추도록 요구했다. 구글 내부 메일에 따르면 구글의 전 고용전략가였던 암논 게슈리(Amnon Geshuri)가 슈미트에게 한 보고가 나온다. 애플의 한 직원을 구글로 오라 설득하는 모집자(recruiter)가 한 명 있었고, 그를 “한 시간 내에 해고”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인력운용실의 전 책임자였던 쇼나 브라운(Shona Brown)은 “적절한 대응”이라면서 게슈리에게 “이 해고를 그룹 전체에 알려서 본보기로 삼으라”고 요청했다.

이런 종류의 비-고용 약정(pact)에 전략적 이익이 있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메일을 보면 최고 수준의 간부들이 법적 파문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위에서 보면 구글의 에릭 슈미트는 약정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증거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회사가 “나중에 고소를 당할 수 있어서”였다. 별도의 이메일에서 인텔 CEO 폴 오텔리니는 약정의 존재를 “널리 알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표현했다.

아래 링크를 보면 어도비와 인텔 등과 같은 곳에서 고용하지 말아야 할 회사 목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은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주된 내용은, 목록에 있는 기업 직원들 중 누군가 직접 지원하는 경우야 인사 부서가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금지시킨 회사 직원을 인사 부서가 직접 접촉해서 고용을 시작하지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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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hire paper trail Steve Jobs and Eric Schmidt didn’t want you to see | The Verg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9to5 Mac에 따르면, 고 스티브 잡스의 타계 2주년를 맞이하며, 팀 쿡 CEO가 Apple 직원들에게 관련 메시지를 담은 E 메일을 전달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메시지 중 “내일 (10월 5일)은 스티브가 죽은지 2년되는 날입니다. 여러분은 그가 우리 모두와 세계에 어떤 존재였었는지를 생각해 줄 수 있으면 생각합니다.” 라고 의미있는 한마디도 전달 하였습니다.

-전문
Team-
Tomorrow marks the second anniversary of Steve’s death. I hope everyone will reflect on what he meant to all of us and to the world. Steve was an amazing human being and left the world a better place.I think of him often and find enormous strength in memories of his friendship, vision and leadership. He left behind a company that only he could have built and his spirit will forever be the foundation of Apple. We will continue to honor his memory by dedicating ourselves to the work he loved so much. There is no higher tribute to his memory. I know that he would be proud of all of you.
Best,
Tim

http://9to5mac.com/2013/10/04/tim-cook-reflects-on-second-anniversary-of-steve-jobs-passing-in-letter-to-employ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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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초기 본사로 사용됐였던 잡스의 옛집이 사적 보호지가 되었다고 CNN이 전하고 있습니다. 로스 알토스역사위원회가 2년간 면밀한 조사를 벌였으며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http://edition.cnn.com/2013/09/23/tech/steve-jobs-childhood-home/index.html

팀 쿡의 CEO 첫 1년

Tim Cook’s Freshman Year: The Apple CEO Speaks

By Josh Tyrangiel on December 06, 2012

Tim Cook’s Freshman Year: The Apple CEO Speaks – Businessweek

Dec. 6, 2012, 7:00 a.m. ET

2011년 10월5일, 사망 이전에 스티브 잡스는 오랜 애플의 운영책임자이자신뢰하는 대리자였던 팀 쿡을 CEO로 승진시키는 일이 당연하다 말했다. 쿡은 이렇게 회상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절대로 스스로 되묻지 말아요. 올바른 일을 하면 됩니다.’ 그는 이토록 분명했죠.” 이제 쿡이 CEO를 맡은지 16개월이 흘렀고 애플은 차세대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선보였으며, 주가 또한 43% 상승했다. 아직 완전히 새로운 제품 영역으로 확장하지는 않았지만(애플 티비 셋은 아직 없다), 애플은 쿡의 조용하고 안정적인 영향력으로 여러모로 크게 변화하였다. 쿡은 CEO로서 제일 폭넓은 인터뷰를 했고, 애플이 현재 어떻게 돌아가는지, “로봇같은” 자신의 이미지, 그리고 미국 내 애플 공장의 복귀선언에 대해 말해줬다.

비지니스위크: 2011년 10월 5일 이후로 애플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뭣보다 먼저 아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애플을 그토록 특별하게 해 준 모든 것들이 언제나처럼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요. 그렇다고 애플이 똑같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애플은 제가 여기 온 이래로 매일같이 변화해 왔습니다. 단 우리의 심장을 박동시켜주는 애플의 DNA가 따로 있어요. 세계 최고 제품을 만들도록 해주는 미친듯한 집중력이죠. 좋은 수준의 제품이라거나 대량 생산이 아닌, 절대적으로 최고의 제품입니다.

이런 훌륭한 제품을 만들 때 우리는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에 집중합니다. 제품을 만드는 제일 큰 이유니까요. 이런 거대한 집중력이 애플을 움직입니다. 안 바뀌었어요. 안 바뀔 겁니다. 우리의 중심은 안 바뀔 것이고 허용하지도 않을 것이에요. 우리를 이토록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이유니까요.

하지만 변화하는 것도 대단히 많고, 앞으로 또 변화할 자그마한 일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것에 대해서는 보다 투명해지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가 이전에는 투명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에요. 하지만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따라하길 바래요. 자, 다른 일들이 있습니다만 제일 중요한 것은 뿌리가 같다는 겁니다.

공급 체인망을 보다 투명하게 한다거나 직원들의 기부를 회사가 돕는 등, 제시하신 결정은 “이걸 회사 문화로 끌어들이고 싶다. 빨리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하셨을 듯 합니다. 그리 생각하신 계기가 있었나요?

기부에 대한 제 개인적인 철학은 케네디 대통령의 “축복을 받은만큼 환원시키라(To whom much is given, much is expected)”에서 제일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항상 신봉했던 것이죠. 애플과 애플 직원들은 이제까지 정말 좋은 일을 많이 해 왔고 더 많이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일단 우리 직원들의 기부(원하는 곳을 자기가 택할 수 있습니다)에 매치시켜주는 것을 했죠. 이건 기업 이사회의 결정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 8만여 직원들의 결정입니다. 그래서 한 것이죠.

아시겠나요? 제가 분명히 원하던 바였습니다. 다른 분들도 원하더군요. 공급업체 책임에 대한 우리의 투명성은 우리가 보다 투명해지고, 우리가 더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례입니다. 제품만큼이나 공급망에 대한 책임의 혁신도 이루고 싶습니다. 높은 목표죠. 우리가 더 투명해질수록, 더욱 공개된 목표도 더 많아집니다. 그럴수록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조치를 취하겠죠. 모두가 다 그렇게 하면 결국 모두가 다 좋아집니다.

우리 제품과 로드맵에 대해서는 수퍼-비밀 정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습니다만, 다른 분야에서는 완전히 투명해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큰 차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시각이 바로 그러하죠.

이전에도 임시 CEO를 두 번 지내셨는데요. 정식 CEO로서의 경험이 이전과는 어떻게 다른지요?

실제로는 세 번이었습니다. 스티브의 첫 번째 수술이 04년에 있었죠. 반 년간의 병가가 있었고, 그 다음에는 11년에도 했었습니다. 그 때는 대중적인 관심이 없었어요. 빠르게 스티브로 몰려갔죠. 이 점이 다릅니다. 아시다시피(침묵), 이점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적응해야 하죠. 저는 사생활을 중시하는 사람이기에, 저로서는 놀라울 따름입니다. 예상했던 바가 아니었어요. 예상했었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치가 높은 회사 엑손(Exxon)의 CEO인 렉스 틸러슨(Rex Tillerson)이 있습니다. 우리 독자들 중 10%는 그가 누구인지 알 텐데요. 실제로 그의 외모가 이렇다 할 수 있는 이들은 1%도 채 안 되리라 예상합니다. 스티브 잡스도 그렇고, 모두들 주머니 안에 애플의 가치와 그의 작품이 들어 있기도 하죠. 당신은 유명합니다. 정말이에요. 전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그런 느낌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단순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제 인생은 정말 단순합니다만 바뀐 게 있어요. 예. 사람들이 절 알아본다는 것이죠. 아마 “저 사람 본 적 있어. 애플 CEO야”라는 생각들을 할 겁니다. 그동안 전 익명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점을 좀 적응해야 했습니다. 사생활을 중시한다면 특혜도 있긴 합니다. 좀 다른데요. 전 애플을 깊게 사랑하며 제 생활도 갖고 있습니다. 시계를 되돌릴 수 있다면 분명 스티브가 여기 제 자리에 있었겠죠. 그는 정말 직장 상사 이상으로 좋은 친구였어요. 다만 저는 애플 CEO도 좋아합니다. 예. 제가 해야 할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 적응해가며 해야 할 일이죠. 더 좋게 할 아이디어가 있다면 좀 알려 주십시오. (웃음)

자신을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으로 보시나요? 그렇다면 유명인물만이 아니라 8만여 직원에게 감화가 될 수 있는 방법을 혹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수줍음을 많이 타느냐? (침묵) 아닙니다. 전 수줍어하지 않아요. 수줍어 하는 인물이 무대 위에 서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여러 사람들과 회의를 하는 이런 일을 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누가 알아본다고 하여 그것으로 가치를 매기는 사람도 아닙니다. 제가 그런 것으로 움직이지는 않죠. 저는 훌륭한 일,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을 해내는 분들을 보고 참여하는 것으로 움직입니다. 따라서 절 움직이는 것은 느낌에 가까워요. 누가 알아봐 준다가 아니고요. 그게 저를 좀 다르게 할 겁니다.

엑손 CEO를 언급하셨는데요. 그거 재밌네요. 저는 오늘 이 탁자에 우리가 앉아 있고, 마치 집에 가서 저녁을 먹는 양, 당신처럼 얘기하는 고객들로부터 날마다 수 백, 수 천 통의 이메일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애플 CEO입니다. 애플의 특혜(privilege)죠. 고객들은 애플에 너무나 관심을 깊게 가지셔서 이것 저것을 제안하고 싶어합니다. “이 점은 안 좋아해요’라든가 ‘이 점은 정말 좋아요”라든가 말을 하죠. 페이스타임이 자기 삶을 바꿨다는 메일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어떤 고객이 수 천 마일 바깥에 사는 암 걸린 어머니와 얘기를 할 수 있었으며, 다른 방법으로는 만날 수가 없다는 메일도 주셨더군요.

말하자면, 너무나 신경쓰는 나머지 뭔가 말할 시간을 가진다는 거죠. CEO에게 보낸다고 생각지 않는 메일입니다. 무슨 형식을 갖춘 것도 아니에요. 당신과 저와 같은 분들이 말을 하는 것이에요. 우리는 20년간 알아왔죠. 제가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회사가 지구상에 또 있는지 모르겠어요. 미국만이 아니고 전세계에서 다 오죠. 제가 편지들을 보고, “이것이야말로 특혜”라 생각합니다.

고객들이 너무나 신경 쓴 나머지 이렇게 메일을 다 보내는 회사가 또 있을까요? 또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제가 일해 봤던 회사들은 6개월에 하나 꼴로 메일이 옵니다. 뭐, “돈을 돌려받고 싶소”같은 긴장감 섞인 메일이죠. 이모티콘도 없었어요. 정말 놀랍다고밖에 말씀드릴 수 없네요.

제가 스티브에게 면접을 받을 시절, 그러니까 15년도 더 전에 애플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이 하나 있어요. 애플은 온갖 고난의 세월을 거쳐 온 회사였습니다. 애플에 대해 분노하고 고함치는 소비자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계속 애플을 구매해줬어요. 컴팩에 대해 분노한 고객이 있다면 델을 사고 맙니다. 감정이 없어요. 그냥 거래죠.

Headline from April 6, 1998, when Apple dropped the Newton

애플은 달랐습니다. 애플에 들어온지 첫 번째 날, 그러니까 피켓라인을 넘어서서 빌딩에 들어 온 날이었어요. 그 때 데모를 벌이고 있는 고객들의 피켓 라인이 있었습니다. 스티브가 뉴튼을 죽이기로 결정해서였어요. 너무나 뉴튼을 신경쓴 나머지 데모까지 벌였던 것이죠. 정말 놀랍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요. 엘레베이터에 타고 생각했죠. 하느님 맙소사. 인생이 달라졌군, 하고 말이죠. 너무 근사했어요. 정말이지 너무 훌륭했습니다. 아시겠어요? 저는 수 백여 가지의 신제품 발표와 수 백여 가지의 제품 취소에 관여해 왔어요. 제가 일했던 회사에서 신제품이 나오면 로비에 갖다 놓아요. 직원들에게 와서 보라고 사내방송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안 와요. 직원들조차 신경 안 쓰죠.

예. 당신이 맞습니다. 엑슨 CEO가 누구인지 저는 몰라요. 하지만 거기서도 우리같은 일이 일어날 일은 없을 겁니다. 매일같이 고객들로부터 수 백~수 천 통의 메일을 받는다고 다른 CEO들에게 말하면 그들은 저를 무슨 머리가 세 개 달린 양 여기더군요. 이건 특혜에요. 부엌 탁자에 앉아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가족의 일원이죠. 계속 존중해야 합니다.

대단히 책임감 있는 듯 합니다. 맞나요?

애플을 사랑합니다. 제 인생의 큰 부분이에요. 제 전부라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큰 일부라 말해 두죠. 아시겠지만 굉장히 사랑하고 굉장히 큰 책임도 느낍니다. 이 회사는 보석이에요. 세계에서 제일 믿을 수 없는 회사이기에 저는 저 자신 모두를 애플에 던지고 싶습니다.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이요.

Cook in 1979, his freshman year at Auburn University

CEO의 이력만큼 그를 잘 알려주는 것이 없을 텐데요. 당신에 대한 모든 이야기에 꼭 들어가 있는 사항이 있습니다. 남부 출신 신사에 Auburn 대학교 미식축구 팬이며, 항상 일찍 시작하여 제일 늦게까지 남아 있다는 내용이에요. 부정적인 것이 전혀 없는데요. 이 이야기들, 알고 계시는지요? 혹시 좀 왜곡된 면이 있나요? 있다면 고쳐주실 사항이 있겠습니까?

스스로에 대한 기사를 읽기 시작할 때는 거의 무슨, 캐리커쳐 같은 느낌입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요. 실제로 저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에게 묻는 편이 더 나을 겁니다. 전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것을 혐오해요. 아시다시피 제가 잘 한다거나 많이 하는 일이 아니죠. 보통은 그런 이야기를 피합니다.

다만 말씀드릴 게 있어요. 로봇같다는 거 있죠. 장점도 있습니다. 아마도. (웃음) 원칙적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하지만 감정이 없다는 말처럼 들려요. 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말 안 할 겁니다. 저는 분명 로봇이 아니에요. 제 스타일도 아닙니다만, 그것과 감정은 다른 얘기에요. 기본적으로 하나의 표현이죠. 뭐 그렇습니다.

지금 애플 제품은 몇 개나 되나요?

몇 개 안 됩니다. 모든 제품을 이 탁자 위에 올려다 놓을 수 있어요. 자세히 보시면 진짜입니다. 아이포드 4대, 아이폰 2대, 아이패드 2대, 맥 몇 대가 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뭘 할지에 대해 우리 스스로 거의 싸우는 수준이에요. 우리만이 훌륭한 뭔가를 몇 가지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들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정말 좋고 재미나는 일을 아주 많이 할 수는 없다는 뜻이죠.

몇 가지만 할 것이라는 우리의 기본 원칙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중대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일만 할 겁니다. 재무적인 이야기가 아니에요. 사회 전체적으로 큰 기여를 말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돈만 버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이 세상 끝날 때까지 풍부하게 해 주고 싶어요. 돈벌기는 부산물일 따름이며 우리의 북극성이 아닙니다.

제품 쇄신과 새로운 제품 라인을 고려하실 때 어떻게 계산을 하시나요?

기존 제품과 새 제품 라인 둘 다 논의하고 토론할 겁니다. 이게 우리 방식이죠. 충분히 훌륭한 아이디어가 나오면 온 에너지를 다 아이디어의 실행에 투입합니다. 우린 운이 좋아요. 당장 제일 빠르게 성장하고 극단적으로 거대한(휴대폰과 태블릿) 시장 두 군데 모두 들어서 있으니까요. PC 시장도 크기는 하지만 성장이 멈췄습니다. 우리의 점유율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아직 여지는 많이 있지만요.

MP3 시장도 줄어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이제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크기는 해요. 지난 해에 판매한 아이포드가 3,500만 대이고 우리는 음악을 사랑합니다. 저 또한 여전히 뮤직플레이어를 체육관에서 매일 사용합니다. 그러는 사람 많다고 봐요. 우리가 판매하는 것으로 하는 일이 분명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각 제품 라인 모두 나름 훌륭한 미래를 갖고 있지만, 우리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무엇이냐입니다. 항상 있기야 하죠. 주장하고 토론하고 협력할 겁니다. 제일 큰 범위에서의 주장과 토론을 말씀드렸어요. 절대로 지우지 않을 훌륭한 문화입니다. 우리가 더 할 수 있음도 분명하죠. 올바른 시기에 우리는 언제나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지도 몰랐을 새로운 것을 발견하여 세상을 뒤바꿀만한 것을 유지할 겁니다.

존재하는지, 언제 나오는지 당연히 말씀 안 하실 테니 애플 티비를 묻지는 않을 텐데요. 알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당신에게나 팀에게나 계속 대단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감이 있을 것이에요. 그런 압박감이 영향을 끼치나요?

외부에서보다는 내부에서의 압박이 더 큽니다. 우리의 고객들 또한 우리에게 극도로 높은 수준을 기대하죠. 우리 스스로의 목표치도 훨씬 더 높습니다. 따라서 위대한 일을 하기 원하죠. 예. 사람들은 항상 우리가 다음에 뭘 할지, 언제 그 일이 일어날지를 얘기합니다만, 솔직히 우리는 훌륭한 일을 하고 싶어하는 훌륭한 우리 내부 사람들로 돌아가는 곳입니다. 경영팀을 돌아보면, 뭐 제 의견이기는 합니다만, 우리에게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와 세계 최고의 실리콘 전문가, 세계 최고의 운영전문가, 최고의 마케팅,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서비스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어요. 이분들의 기준은 매우 높습니다. 다른 사람들 생각 이상이죠. 그러한 야심과 욕망, 훌륭함에 대한 갈증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고 봅니다.

이 점에 대해 한 번 더 파고 들어가 보죠.

그러시죠.

수퍼히어로도 걱정을 합니다. 맞죠? 기적같은 일을 하는데 익숙한 수퍼파워를 가진 사람들도 걱정을 해요. 그들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면 말이죠. 대중이 애플에게 사랑을 주는 까닭은, 애플이 행동을 바꾸는 기술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애플 사람들도 그 점을 한 번쯤은 고려하잖을까 합니다. “프로세스를 신뢰하라. 우리를 신뢰하라”고 직원들에게 말할 줄 아는 것이 당신 임무일 테고요.

두 가지를 말씀 드리죠. 우선 전 그 과정을 프로세스라 부르지 않습니다. 창조성이 하나의 프로세스는 아니잖습니까? 제일 단순한 방법을 알아낼 때까지 뭔가에 대한 생각을 끝까지 해 보는 사람들이 가진 것입니다. 최고의 방법을 찾아낼 때까지 생각을 계속 하죠. 제일 단순하고도 최고의 방법을 알아내면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환상적인 뭔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창조성이 있다고 부를만 하죠. 창조성은 서로를 북돋아주고 성장시켜줄 환경을 제공합니다.

그러니 확실히 합시다. 저는 그런 과정을 프로세스라 부르지 않겠습니다. 창조성과 혁신은 순서도로 그려낼 수 없는 겁니다. 당신이 할 수 있고 우리가 하는 것인데 우리는 매우 원칙적이죠. 그렇지만 창조성이 뭔가 정해진 것 중 하나는 아닙니다. 혁신 부서가 있는 회사가 아주 많은데요. 혁신이라든가 뭔가의 부서장이 있다 함은 회사에 뭔가 잘못된 점이 있다는 것이에요. 내놓음이라는 간판이 집 문에 달린 것과 마찬가지이죠. (웃음)

회사 운영 일을 하건 제품 일을 하건 소비자 서비스 일을 하건 간에, 우리 회사 모두들 혁신에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압박감으로 말씀드리자면, 우리 모두가 우리 스스로에게 압박감을 주고 있어요. 예. 치어리더 역할, 사람들이 잠시 일 자체에 대한 모든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제 임무 중 일부입니다.

올해만 말씀드리자면, 알죠? 지난 60일 동안 아이폰 5와 완전히 새로운 아이포드(새 아이포드 터치와 아이포드 나노), 4세대 아이패드, 새로운 아이패드 미니, 정말 갖고 싶은 맥북프로(우리가 만든 최고의 맥입니다)가 나왔습니다. 이 제품들을 보시면, “이럴 수가, 한 회사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나요?”라 말씀하실 수 있어요. 우리 직원이 그리 많지도 않잖아요. 사실 비밀이기는 합니다. 아시다시피 소규모 팀이 한데 모여 정말 놀라운 일을 해냅니다.

탁자에 둘러앉은 모두가 다 들어온지 좀 된 사람들이고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성숙한 동시에 과감함도 갖고 있죠. 지금도 다리를 불사를 각오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게 훌륭해요. 그런 회사가 달리 또 없으니까요. 제 말씀은, 그러니까 우리가 올해 해낸 것을 해 낼 회사가 따로 없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하루 사이에 우리 아이폰의 절대 다수를 바꿔버렸어요. 우리는 아시다시피 여기 저기 조금씩 손 봐서 바꾸는 그런 회사가 아닙니다. 아이패드에 대해서도 하루 사이에 전체 라인업을 바꿔 버렸어요. 소비자 가전제품 역사상 최고로 성공적인 제품을 하룻만에 바꿔버려서 아이패드 미니와 4세대 아이패드를 내보냈습니다.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매출의 80%는 60일 이전에 존재하지도 않던 제품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다른 어느 회사가 이런 곳이 있나요?

그렇지만 저 또한 기술 고객과 사용자로서, 그것도 상당한 사용자로서 언제나 새로운 것에 흥미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P&G처럼 의존적인 요소가 있는 곳하고는 다릅니다. 애플 브랜드는 “뭔가 새로운 것이 나왔습니다. 여러분의 행동을 다시 바꿀 겁니다.”에요.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에요. 우리가 계속 일하는 이유이자, 사람들이 애플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Forstall was senior vice president of iPhone software until Cook relieved him of his duties on Oct. 30

최근에 당신은 수석 경영진 두 명을 교체했습니다. 모바일 소프트웨어 책임자인 스콧 포스탈과 소매점 책임자인 존 브로웻 말씀인데요. 이들이 떠남으로써 애플의 어떤 점이 좋아질까요? 그냥 막말로, 뭐가 문제였나요?

변화의 핵심은 협력이 혁신의 필수요소라는 제 깊은 믿음입니다. 이제서야 그렇게 믿기 시작했다가 아니에요. 항상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언제나 애플의 핵심 믿음이었죠. 스티브 또한 이 점을 깊게 믿었습니다.

따라서 변화, 변화는 협력이 없다가 갑자기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애플 내부적으로 대단히 다양한 수준의 협력이 있습니다만, 변화는 협력의 수준을 다른 수준으로 바꾸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잘 하나 보세요. 많습니다만 우리가 하고 남들은 하지 않는 일 한 가지만 뽑는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한 데 통합시키는 겁니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경험이 환상적인지만 신경 쓰도록 말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계속 그런 일을 할 수 있고, 한 층 더 높은 수준으로 어떻게 하면 끌어 올릴 수 있을까요? A-플러스 수준의 협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협력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변화가 생깁니다. 우리는 서비스를 모두 한 곳에 몰아 넣었죠. 서비스에 있어서 훌륭한 기술을 가진 책임자가 운영합니다. 그가 믿을 수 없는 실적을 지니고 있어요. 앞으로도 환상적인 일을 해내리라 봅니다.

조니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최고의 취향과 최고의 디자인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조니가 이제 휴먼 인터페이스 책임을 맡게 됐어요. 제 말씀은, 우리 제품을 보시면(쿡은 자기 아이폰을 꺼내들었다.) 말이죠. 얼굴이 바로 소프트웨어잖습니까? 아이패드의 얼굴 역시 소프트웨어이죠. 그러니까 조니는 우리의 하드웨어 디자인을 훌륭하게 이끌어왔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요. 조니가 소프트웨어 책임을 맡았고 소프트웨어의 룩앤필을 맡았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저변에 깔린 아키텍쳐가 아니라 룩앤필이죠.

그보다 더 좋은 취향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는 그토록 특별합니다. 그가 오리지날이에요. 우리는 또한 봅 [기술부 수석 부사장, 봅 맨스필드]은 실리콘과 무선 기술을 모두 관장하는 책임자가 됐어요. 우리는 꽤 급속도로 성장했기에 무선 그룹이 제각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대단히 멋진 아이디어가 있고, 매우 야심찬 계획도 가지고 있어요. 이를 한데 모아서 끌어갈 책임자로 봅을 맡긴 것이죠. 엔지니어링 면으로 봐서도 이 세상에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그 스스로가 비길 데가 없어요.

그리고 크레이그[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수석 부사장 크레이그 페더리기]도 정말 믿을 수 없으리만치 훌륭한 인물입니다. 우리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OS가 맥과 똑같아야 한다는 비전을 가진 않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iOS와 맥오에스의 기반은 같죠. 그리고 크레이그는 언제나 공통요소를 관리해 왔기 때문에, iOS와 맥오에스는 논리적인 확장입니다. iOS와 맥오에스텐 고객은 둘 간을 별 탈 없이 사용할 수 있죠. 같지 않지만 부드럽게 연동할 수 있습니다.

협력으로 보자면 이 또한 완전히 다른 수준의 협력이 필요한 조치입니다. 우리는 이미, 제가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지만 최고의 품종(best of breed)이었어요.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협력을 해야 합니다. 그게 다예요. 여기에 대해서는 쓰여진 바가 많음을 압니다. 실제로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죠.

당신과 조니 아이브 간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무엇이 당신과 그를 이어주나요?

조니를 좋아합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친구에요. 정말 그를 매우 존경합니다. 우리를 무엇이 잇냐고요? 우리 모두 애플을 사랑하고 애플이 위대한 일을 하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같은 원칙을 갖고 있죠. 복잡하지 않은 단순함을, 협력을 믿습니다. 우리 둘 다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곳으로 애플을 보고 있죠. 우리의 가치가 같습니다.

“팀과 조니”라거나 “조니와 봅” 등등, 어떻게 질문을 하시건 간에 제 답은 언제나 같을 것이에요. 애플의 톱 100 인물 면면을 보시면 정말 다른 사람들을 찾아내실 겁니다. 다들 정말 다른 개성을, 스타일을 지니고 있어요. 우리는 획일화된 곳이 아니에요. 기계에 집어 넣어서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말하며, 똑같이 보이고 똑같이 생각하게 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양성에 가치를 두는 회사에요. 다양성을 다시 강조하고 싶군요.

우리는 사고(思考)와 스타일의 다양성을 원합니다. 있는 그대로 있기를 바래요. 이것이 바로 애플의 훌륭한 점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될 필요가 없어요. 출근해서는 다른 누군가가 될 필요가 없죠. 하지만 우리 모두를 묶는 것은 있습니다. 모두가 생각하는 가치 때문이에요. 올바른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겁니다. 솔직하고 직설적이기를 바래요. 우리가 틀렸을 때면 용기를 내서 바꾸는 것을 우린 인정합니다.

정치가 있을 수 없죠. 저는 정치를 경멸합니다. 사내 정치는 있어서는 안 돼요. 그런 문제까지 다루기에는 제 인생이 너무 짧아질 겁니다. 관료주의도 없어요. 우리는 정치나 어젠다가 없는,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회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내 정치나 어젠다가 사라지면 일이 꽤 단순해지죠. 이런 방해요소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에요. 회사가 일반적으로 걱정해야 할 바가 다 사라지는 겁니다. 모두들 자기 영역을 든든히 만들고 확대시킬 궁리를 할 영역 자체가 없어요. 그러면 우리 일이 쉬워지기에, 진짜 문제가 될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전 다른 기업에서도 근무해 봤습니다. 애플은 보석이에요. 애플과 같은 환경에 있는 것은 특혜입니다. 애플처럼 하지 않는 곳의 결과를 본 적이 있죠. 재미있지가 않아요. 인생이 재미 없어지기 때문에 제가 지키는 겁니다. 사내 정치와 어젠다를 없애기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해 두죠.

디자인은 어떻게 처리하시나요? 회의가 없고, 정해진 프로세스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냥 내려가서 당신과 조니가 제품을 보고 결정내리나요?

회의가 없다뇨.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습니다. 아이디어의 핵심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말씀드리는 것이에요. 8만여 직원 모두에게서 아이디어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대 여섯 명이 아니고요. 훨씬 더 적은 수의 사람들이 디자인을 결정하고 수정하며 진전시킵니다만, 아이디어 자체는 어느 곳에서든 나와야 해요. 다들 아이디어를 내기 바란다는 것인데, 이건 이전에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Cook, Ive, and Foo Fighter Dave Grohl at the iPhone 5 launch on Sept. 12

수석 경영팀 회의는 매주 월요일 오전 9시에 열립니다. 우리 모두 종교처럼 참가하죠. 4시간동안 같이 있으면서 회사에서 중요한 모든 일을 다 논의합니다. 생산중인 모든 제품이 어떠한지를 살펴 보고, 로드맵 상에 있는 모든 신제품을 검토합니다. 현황과 팀이 어떻게 작업하고 있는지, 핵심 문제가 무엇인지 등 모두를 논하죠. 현재 문제와 미래 로드맵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하기도 해요. 그리고는 “여러분 아시다시피 이 문제는 여기를 떠나서 더 크게 브레인스토밍할 필요가 있어요”라는 말이 나올 때도 있죠. 그정도 말이 나올 때면 마치 종교처럼, 출장도 안 하고 모두가 모여서 누가 무엇을 대표하지도 않은 채 모입니다. 그러면 회사가 훨씬 더 부드러워지죠. 끊임 없이 한데 모여야 싱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그거고, 사례 하나 더 알려 드리죠. 매주 수요일 우리는 제품 부서들과 회의를 합니다. 경영팀의 일부가 맥 부를 만나서 맥을 전반적으로 살펴 보죠. 그 다음 수요일에는 아이폰을 전반적으로 살펴 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당신 스스로에게 중요하기는 하지만 스스로를 위해서 하는 회의가 아니라 회사 운영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하는 회의이죠.

회사 내를 돌아다니는 시간은 따로 잡나요?

네, 중요합니다. 그저 어슬렁거리는 것만이 아니에요. 우리는 스토어도 매우 많습니다. 제가 스토어에 걸어들어갈 때가 있죠. 스토어에서 배울 점은 대단히 많습니다. 아주 많은 이메일을 받기도 하지만, 스토어 안에 들어가서 직접 고객을 만나 보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이에요. 현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죠.

편협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마 CEO로서 제일 중요하잖을까 싶네요. 이제는 다행히도 애플 CEO가 편협적으로 되는 것 자체가 대단히 힘들리라고 봅니다. 물론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죠.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고객과 직원, 언론 사이에서 대단히 많은 피드백을 받습니다. 임무 수행과 함께 무엇이 방해요소이고 무엇이 소중한지 가려내기가 더 큰 임무죠.

애플의 태블릿 전략이 삼성이나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와는 어떻게 다른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북극성을 보시죠. 우리는 최고의 제품 만들기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우 제품-중심적이죠. 우리는 모든 디테일을 신경쓰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통합도 신경씁니다. 안드로이드를 생각해 보시면, 안드로이드는 윈도 PC 모델과 더 비슷해요. A 회사가 운영체제를 내놓고, B 회사가 통합 작업을 하죠. 서비스는 또 다른 곳에서 나올 테고요. 소비자 경험같은 것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제까지 나온 모든 태블릿을 보면 지난 해에 나온 아주 많은 수의 태블릿도 마찬가지이지만 태블릿 사용량 자체가 매우 낮아요. 제가 보고 있는 데이터에 따르면(모두 써드파티 데이터입니다), 태블릿 웹-브라우징 트래픽의 90%는 아이패드에서 발생합니다. 주말에 IBM에서 나온 데이터를 보셨다면, 이번 블랙 프라이데이 판매에서 볼 때 아이패드가 그 어떤 기기보다 전자상거래로 많이 사용됐다는 점을 알 수 있어요. 태블릿과 스마트폰 등 모든 안드로이드 기기를 합친 것 이상입니다.

이런 통계는 판매량과 상호관련성이 없기에, 아이패드의 사용자 경험이 경쟁사 것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아이패드가 그들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사 놓고 서랍 안에 놓아 두는 물건아 아니고요. 그러니까 경쟁이 있어서 우리에게 좋은 점은, 더 많은 제품이 시장에 나와서 태블릿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더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이죠. 주목을 더 많이 받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구매를 고려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경쟁은 사실 우리에게 좋다고 봅니다.

서피스나 갤럭시를 사용해 보셨나요?

예. 둘 다 갖고 있습니다. 다른 태블릿들도 갖고 있죠. 제가 보기에 다중의 OS와 다중의 UI는 혼란스럽습니다. 그들은 단순함에서 떨어졌어요. 우리는 소비자들이 어수선한 것을 다 제거하기 원한다고 봅니다. 소비자가 모든 것의 중심이기를 원하죠. OS과 UI 간 왔다갔다 하기 시작하는 것이 소비자가 찾던 바는 아니라고 봅니다. 소비자는 태블릿에 특화된 앱을 원해요. 아시다시피 우리에게는 태블릿용으로 특화된 앱 27만 5천 개 이상이 있습니다. 스마트폰 앱을 태블릿용으로 쓰는 것은 정말 끔찍한 경험이죠. 소비자들이 원하는 바가 아닐 겁니다. 다른 태블릿의 사용량이 그토록 낮은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다른 태블릿도 팔리는 물량이 있겠죠.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일단 싸니까 구입해서 써야지 하고 집에 가져와서 쓴 순간, 별로 만족스럽지가 않은 것이에요. 이런 경우가 많으리라고 봅니다. 좋았던 느낌은 사라지고, 다시는 재구매하지 않겠죠.

사례를 한 가지 말씀해 드리죠. 요전 날에도 생각했었는데요. 넷북을 보십쇼. 넷북이야말로 제일 멋진 기기라 여기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넷북을 부풀렸죠. 사실 판매량이 늘기는 했지만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결국 추락했습니다. 끔찍했기 때문이에요! 넷북은 비좁고 형편 없는 키보드를 갖춘 조잡한 제품이었어요. 힘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끔찍했죠.

그래서 우리는 넷북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죠. 훌륭한 제품이 꼭 비싼 제품은 아닙니다. 공정한 가격대이겠죠. 아이패드 미니는 $329부터 시작합니다. 비싼 제품이 아니에요. 훌륭한 제품을 훌륭한 가격대에도 만들 수 있으니 정말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서서 “이 가격대에 뭔가를 만들어냈으니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봅시다”라고 말하진 않겠죠. 우리의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도 사용하고 싶어할 훌륭한 제품 만들기를 생각합니다. 또다른 가격 포인트에서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습니다만, 우리 고객들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가 높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절대로 그러하지 않으리라 행세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 곳이 아니에요.

애플 지도야말로, 애플이 소비자 경험을 생각하기에 앞서서 회사의 전략을 생각하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상당히 드문 사례가 아닐까 싶은데요. 올바른 관측입니까?

아뇨. 아닙니다. 저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겟어요. 잠시만요. 저라면 아마. 우리가 지도를 했던 이유는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가? 소비자에게 무엇이 훌륭하겠는가?”였습니다. 우리는 고객에게 턴-바이-턴 내비게이션을 제공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고객에게 음성인식과 플라이오버를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소비자 경험에 훌륭하리라 생각한 아이디어 목록이 굉장히 많았어요. 우리 스스로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는 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전략적으로 우리가 다른 회사와 협력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말할 문제가 아니었어요.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을 주기 위한 뭔가를 소비자에게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단 우리 기대에 못미쳤죠. 망쳤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 우리의 온 힘을 들여서 올바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미 몇 번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거쳤죠. 우리에게는 더 좋아질 거대한 계획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도가 더 좋아지고 더 나아질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소비자가 아닌 전략을 결정했다는 문제는 아니었어요. 우리가 망쳤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제일 큰 공급업체 중 한 곳이 삼성인데요. 삼성은 애플 최대의 경쟁사이기도 하고 소송 상대방이기도 합니다. 그 점이 좀 곤란하신가요?

인생은 복잡하고 가끔은 곤란하기도 합니다. 예. 곤란해요. 전 소송을 혐오합니다. 절대적으로요. 우리에게는 가치의 문제거든요. 완벽한 세상이라면 모두가 각자의 것을 발명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죠. 우리는 경쟁을 좋아합니다만 각자 자기 아이디어를 스스로 발명해서 하기를 원합니다. 온갖 시도 끝에 우리에게는 별다른 선택이 없었어요. 우리는 다른 모든 방법을 시도했기 때문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 볼 겁니다.

삼성의 이씨 가족을 아실 텐데요. 그들과 연락하는데 영향이 있나요? 파트너로서 얘기해야 할 때 어떻게 마음을 가다듬나요?

그들의 회사의 각 다른 부분에 대해 우리 마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기업이고 각자 다른 부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려 노력하죠.

똑같은 사례는 아니겠습니다만 그동안 경쟁하면서 협력해온 곳이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이죠.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피스를 제공하니 마이크로소프트는 개발-파트너입니다만, 그들은 경쟁사이기도 합니다. 인텔은 맥에서 파트너이지만, 그들은 모바일 사업에 진입하려 분명 노력중이죠. 따라서 우리에게는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 독특한 문제도 아니죠. 경쟁하면서 협력하는 것이 처음이 아닙니다. 매일같이 일어나서 하는 일이죠. 다른 사항은 법종소송이 추가됐다는 점이에요. 이것도 시간이 지나 해결되기 희망합니다.

제조 공정에 있어서 투명성을 부가시키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셨는데요. 특히 애플 제품을 만드는 노동자 조건같은 곳에서 말이죠. 당신은 20년간 폭스콘의 테리 구(Terry Gou)를 알아 왔습니다.

매우 오랜 기간이죠.

그에게 뭔가 바꿔보라 요구할 때, 특별히 무엇을 바꾸라고 하셨는지요? 그의 반응은요?

그는 선뜻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감사를 거치고 매년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우리가 발견한 사실들을 매우 열심히 수정했습니다. 여전히 엄청난 양의 감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지만, 감사 목록에 더해서 공정노동협회(Fair Labor Association)의 추가적인 감사도 받기로 했습니다. 여러 다른 업계에서 데려 온 전문가들이 왔더군요. 완전한 투명성이었습니다. 스스로 결과 보고서를 제출했죠. 그렇게까지 하는 기술 기업은 애플밖에 없습니다. 공정노동협회 감사와 우리의 감사 모두를 받기 위한 공장시설 개방을 테리도 동의했습니다. 요구사항이었지만 그도 동의했죠.

Cook visiting the iPhone production line at Foxconn’s Zhengzhou technology park in March 2012

우리 웹사이트를 보시면 공급망에 있는 거의 100만 명에 달하는 인력의 노동시간까지 제출했음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무도 이런 일을 하고 있지 않아요. 우리는 미시적인 수준에서도 이렇게 관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중요하니까요. 그들의 권리를 위해 노동자들을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2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공장에 대학교 수업을 유치하여 각자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정말, 정말 훌륭하고 다르면서 업계 지도적이라 여기는 일을 여러 가지 하고 있는 것이죠. 아무도 우리만큼 공급망에 대해 신경쓰는 곳이 없다고 봅니다. 처음부터 되돌아가서 처음 부분만이 아니라 모든 면을 다 함께 하는 것이죠. 여기에 더해서 우리는 극도의 투명성을 선택했습니다. 모두가 우리를 베끼도록 초대할 겁니다.

애플 직원들이 공장 기숙사에 머무른다는 점을 이해하겠군요.

기숙사에 머무는 간부들도 있습니다. 이상한 일이 아니죠. 솔직히 말씀드려서, 기숙사 생활이 어떤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은 아니에요. 공장 협력사들과 긴밀히 협력한다는 것이죠. 직접 제조 설비 안에서 하는 편이 더 편리하죠. 실제로는 그러기를 멈춘 경우도 몇 건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중국 내 플랜트에 정규적으로 거주하는 직원이 수 백 명 있는데요. 제조 작업과 공정을 돕는 역할입니다. 제조를 우리와 연결이 끊긴 곳으로 간주하면 이 정도 속도로 혁신할 수가 없다는 점이 진실이에요. 통합돼 있습니다. 우리 공정의 일부에요.

처음부터 추적해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공급망에서 알 수 없는 부분도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알 수 없는 부분도 항상 있습니다. 모두를 다 안다고 말하면 충분히 깊게, 열심히 안 본다는 의미라고 봅니다. 기준이 높지 않다는 의미도 되겠네요. 우리의 관점에서 문제점이 전혀 없기를 바라진 않습니다. 문제점이 전혀 없다면 우리 기준이 잘못됐다는 의미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문제를 찾기 위해 기준을 높여서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한다면 언제나 뭔가 찾아낼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는 방법입니다.

기부 매치에 대해 인용했던 케네디 말과도 관련이 있을 텐데요.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받아 왔습니다. 그것으로 많이 벌었지만, 우리는 세상을 보다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할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애플의 제조 공정을 사업에서 없애버리셨었는데요. 제조 공정을 특히, 미국으로 다시금 불러들이면 어떨까요?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엔진을 미국에서 만든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수가 수출되죠. 엔진이란 프로세서를 말씀드림입니다. 유리는 켄터키에서 제조하죠. 내년이면 맥 일부를 미국에서 생산할 겁니다. 이 작업을 오랜동안 해 왔고 이제 거의 성사 단계에요. 2013년에는 일어날 겁니다. 매우 자랑스러워요. 아마도 조립 공장만이라면 빠르게 만들 수 있었겠습니다만, 실제로는 범위가 더 넓습니다. 뭔가 더 중요한 것을 하고 싶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말 그대로 1억 달러를 투자할 겁니다. 애플 스스로 하리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사람들과 협력할 테고, 우리 돈을 투자할 겁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요. 2012년입니다. 애플은 다국적 기업이죠. 애국적이려면 미국 기업의 의무가 무엇일까요? 세계화 시대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침묵) 정말 좋은 질문이군요. 저는 우리가 일자리를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우리가 특정 종류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일자리를 만든다는 책임이 있습니다. 커뮤니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해서 되돌려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어요…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환경 친화적인 훌륭한 제품을 만들 책임도 있어요. 제품을 한 층 더 훌륭하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뭣보다도 그 점이 중요하죠. 담배 회사라면 환경친화적으로 제품을 만든다든가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바꿀 제품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우리는 대단히 많은 에너지를 교육에 맞추고 있습니다. 아이북 오서를 만들어서 무료로 뿌렸죠. 교과서를 재발명하여 교실을 바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학생의 참여 문제를 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요. 교육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 하겠지만, 매우 중요한 문제 하나는 고칠 수 있잖겠어요?

저는 또한 우리에게 이 모든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단 일자리 창출을 직접적으로 그 회사 직원이 몇 명이나 늘어났느냐로 국한시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매우 옛날 방식의 측정방식이죠. 우리의 iOS 플랫폼은 개발자들이 기업가처럼 일하도록 하고, 그들의 애플리케이션을 이전까지 존재하지도 않던 시장에서 팔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모바일 소프트웨어 산업은 아이폰 이전에도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수 십만 개발자들이 모바일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기업들과는 달리(적어도 제가 아는 한 대기업 중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연구개발 인력 거의 모두가 캘리포니아에 있습니다. 우리 모델의 일부죠. 서로 직접 만나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협력하려면 이 점이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현재 수 십억 달러를 투입해서 새로운 본사를 건축중인데요. 그곳이 바로 우리 창조력의 중심이 될 겁니다. 텍사스 직원들을 위한 오스틴의 캠퍼스도 짓고 있고요. 데이터센터는 노스캐롤라이나의 메이든에 있는 센터에 더하여 네바다와 오리건 주에도 세울 계획입니다.

따라서 일자리는 여러가지 다른 방식으로 창출될 수 있어요. 잘 보시면 다른 업체가 조사한 수치가 있는데요. 우리가 미국 내에서 창출한 일자리가 60만 곳입니다. 이들 모두가 애플에서 일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전세계 경제의 일부에요. 우리 매출의 60% 이상이 미국 바깥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나라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의 홈시장이고, 저는 미국 내 일자리와 교육, 그리고 환경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애플에게 해지펀드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죠. 브래번 캐피탈(Braeburn Capital) 말씀입니다.

브래번 캐피탈을 헤지펀드사라 부르진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설명하실 것인가요?

브래번 캐피탈은 애플 현금을 관리하는 독립사업체입니다. 적어도 제가 생각하는 헤지펀드의 정의와 같지 않아요. 브래번이 어디에 투자하는지를 보시면 그 어떤 곳보다도 그곳이 보수적으로 투자한다는 사실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웃음)

수익에 대해 듣는 것을 보면…

의도적이에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투자은행이나 무슨 공격적인 뮤츄얼펀드사로 여기지 않습니다. 목표는 자본의 보존이에요. 말씀드리자면 지난 몇 년 간 자본의 보존이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브래번이 정말 잘 해냈다고 봅니다.

얼마나 자주 확인해 보시나요?

주 채권이나 사채, 재무부 채권 투자 같은 부문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재무부서가 있고 CFO도 있습니다. 아주 환상적인 분이죠. 그들이 관련 업무를 합니다. 현금 사용처에 대해 저도 분명 깊이 관여돼 있기는 하지만 채권 등의 투자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몇 가지 있기는 합니다. 당신이 제품 전문가가 아니라 유통 전문가이자 시스템 전문가라는 시각이죠. 공학 학위가 있기는 하지만 당신이 제품 전문가가 아니라는 시각이 부당하시나고 보시나요? 반박하고 싶으십니까?

저를 어떻게 묘사하느냐는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봅니다만 제가 뭘 하는지 말씀드릴 수는 있겠네요. 제가 정말 잘 알거나 전혀 모르는 것이건 상관 없이(큰 차이가 있습니다만), 저는 언제나 주위에게 협력을 요청합니다. 탁자 주변에 앉은 분들이 정말 뛰어나니까요. 제가 정말 잘 안다 여기던 부문에서도 뭔가 더해지거나 잘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항상 발견하죠.

제가 모든 일을 다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가슴에 S자를 그려 넣고 망또를 걸친다 하더라도 모든 일을 다 해낼 수는 없잖아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뭐 있을 수는 있다고 해도 그게 저는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엄청나게 많은 일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분들에게 의존합니다.

당신 자리에서 직관의 역할이 무엇인가요?

중요하죠. 대단히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건 전문적으로건 직관으로 결정하는 사항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합니다. 직관에 필요한 수많은 정보와 데이터를 얻을 수 있고 분석도 아주 많이 할 수 있죠. 자연상 계량화시킬 수 있는 수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만 결국에 제일 중요한 일은 언제나 직관입니다. 저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봐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리라고 봅니다. 독특하다고는 볼 수 없겠네요.

이제 당신의 일화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스티브 잡스가 당신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뭘 하리라 생각하지 말라”였죠.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실제 이야기는 어땠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네, 물론이죠. 한 번은 주말에 그가 제게 전화해서는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라 하시더군요. 그 때가 2011년 여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좋죠. 언제요?”라 물었어요. 스티브 답게 “지금”이라 답하시더군요.

“훌륭하군요. 바로 갈게요.” (웃음)

Jobs and Cook in May 2001 at the opening of Apple’s first retail stores

그래서 그의 집에 갔습니다. 그가 어떻게 얘기를 시작했는지 지금도 기억나요. “CEO의 전문적인 자리 이임(professional transition)이 애플에 한 번도 없었어. 우리 회사가 한 훌륭한 업적이 정말 많지만, 이런 건 한 번도 안 했다구. 항상 해고당하고 새로운 놈이 나타나서는 또 해고당했지. 그래서 전문적인 CEO 이임이 있으면 좋겠어. 그래서 결정한 게 있지. 이사진에게 널 CEO로 앉히라고 권유할 참이야. 내가 사장이 되고.”

물론 이전에도 저를 계승자로서 얘기한 적은 있었어요. 즉 처음 들은 바는 아니었지만, 그 때는 제가 마침, 스티브가 건강이 좋아지구 있구나 여기던 때였습니다. 따라서 그가 이런 걸 생각하다니 하고 좀 놀랐었어요. 그 때 관점에서 말이죠. 그래서 그에게 정말이냐고 다시 물어봤습니다. 그렇다고 말하더군요. 저는 다시 한 번 정말이냐 물었어요. 그랬더니, “아 맞다니까. 더 물어보지 마.”라 하셨어요.

그래서 이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스티브 건강이 호전되어간다 느낄 때 있던 대화여서, 앞으로 내가 CEO로 있고 스티브가 사장으로 오래오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이게 이뤄질지 이해하려 노력했죠. 그는 정말 깊게 생각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가 사장으로서 어떻게 일에 관여할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그에게 물어봤습니다. 이렇게 답하시더군요. “이 점만은 분명히 하지. 월트 디즈니가 죽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난 봤어. 사람들이 주위를 돌아보면서 월트라면 어떻게 했을지를 계속 묻더군. 그랬더니 사업이 마비되고 사람들이 그저 회의에 앉아서 월트라면 어떻게 했을지만 떠들어댔었지. 나는 네가 나라면 어떻게 했으리라 절대로 묻게 하지 않겠어. 올바른 일을 그냥 하라구.” 그는 그토록 명확했습니다.

제 질문에 대해서는 스티브가 확실히 답했죠. “내가 관여하기를 바란다면 알아서 내 말을 듣겠지. 그리 바란다구.” 저야 당연히 물론이죠라 말했습니다. (웃음) 그가 너무나 명확해서 마치 제게 있던 엄청난 부담을 그가 없애줬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는 죽음이 가까워 왔을 때에도 계속 그 말을 반복했습니다. 두 번째 들었을 때, 부담을 없애주려 하는구나라 생각했었어요. 애플이 과거의 부담에 짓눌리지 않게 하겠다는 나름의 방식이었죠.

제가 이때까지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도 스티브는 제 마음을 바꿀 능력을 갖고 있었어요. 정말 그 누구보다도 그의 힘이 훨씬 더 컸습니다. 말 그대로 (손가락을 세며) 나노세컨드 수준으로 마음을 바꿔버릴 수 있었어요. 완전히 관점을 바꿔버렸으니까요. (웃음) 초창기 시절 이거 정말 신기하다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제는 얼마나 큰 재능이었는지 생각합니다. 특히 너무나 많은 CEO와 최고 수준의 간부들은 너무나 옛날 아이디어에 박혀 있어서 잘못된 일을 거부하거나 바꿀 용기를 잃어버렸어요. 아마도 스티브의 재능 중에 제일 평가절하된 부분이 이점일 텐데요. 그는 자기 마음을 바꿀 용기가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건 정말 능력이에요. 그렇죠.

그리우시군요?

예. 매일같이 그립습니다. 그가 제 상사였다는 외부 시각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오랜 기간동안 같이 일했잖아요. 그는 친구였어요. 그 관계가 정말 중요합니다. 아세요? 저는 제가 안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아요. 인생은 너무 짧잖아요. 그러니까 친구가 되셔야 합니다. 인생에 친구는 너무 부족해요.

Tim Cook’s Freshman Year: The Apple CEO Speaks – Businessweek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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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fone은 애쉬튼 커쳐 주연의 JOBS 영화 포스터를 공개 하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 영화 JOBS는 미국 기준으로 8월 16일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http://news.moviefone.com/2013/07/02/jobs-poster-ashton-kutcher-steve-jobs/

스티브 잡스와 디자인 혁명


ARTS & CULTURE

How Steve Jobs’ Love of Simplicity Fueled A Design Revolution

Passionate to the point of obsessive about design, Steve Jobs insisted that his computers look perfect inside and out
By Walter Isaacson
Smithsonian magazine, September 2012,

디자인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관심은 어린 시절 집에 대한 사랑이 그 시작이었다. 집은 노동자가 많이 사는 동네로서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 사이에 있었고, 1950년대, 전쟁 이후 도시로 이주한 주민들이 대량으로 세운 저렴한 현대적 규격형 주택이었다. “모든 미국인”을 위한 단순한 현대적 주택으로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비전에 고무된 나머지, 조셉 아이클러(Joseph Eichler)와 같은 건축가들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벽으로 이뤄지고 지면이 개방형이며, 기둥-보가 노출돼 있고 콘크리트 판 바닥과 수많은 슬라이드형 유리문으로 이뤄진 집을 세웠다.

자신의 오랜 이웃 근처를 나와 같이 산책하면서 잡스는 “아이클러가 정말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라 말했었다. 그 동네는 아이클러 스타일의 집들로 이뤄져 있었다. “아이클러의 주택은 영리하고 저렴했으며 좋았어요. 깔끔한 디자인에다가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취향을 알려 줬죠.” 아이클러-스타일의 주택에 대한 그의 칭찬은 대중 시장용 제품의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스며들게 했다는 것이 잡스의 말이었다. “그리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 않지만 디자인이 훌륭하고 단순한 기능을 넣을 수 있을 때를 좋아합니다.” 그는 특히 아이클러 디자인의 깔끔하고 우아함을 지적했다. “애플의 오리지날 비전이었죠. 최초의 맥으로 하려 했던 것도 그것이었습니다. 아이포드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깔끔하고 친숙하며 재미나는, 차별화된 디자인은 잡스 치하 애플 제품의 특징이었다. 훌륭한 산업 디자이너로 애플이 알려지지는 않았던 1980년대, 잡스는 하트무트 에슬링어(Hartmut Esslinger)와 협력했고, 1997년부터는 조니 아이브와 함께 애플을 다른 기술 업계와 동떨어지게 만들 정도로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의 미학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애플은 세계에서 제일 가치가 높은 회사가 될 수 있었다. 애플의 주된 교리는 단순함(simplicity)이다. 깔끔한 룩앤필과 제품 표면에서 나오는 단순함만이 아니라, 각 제품의 본질과 엔지니어링의 복잡성, 그리고 각 컴퍼넌트의 기능을 앎으로써 깨닫는 단순함이다. 잡스는 정말 힘든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뭔가를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저변에 있는 도전을 진정 이해하고 우아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1977년에 나온 애플의 첫 마케팅 광고지 헤드라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

디자인의 단순함에 대한 잡스의 사랑은 그가 불교 수행자가 됐을 때부터 갈고 닦은 것이었다. 대학 중퇴 이후 그는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인도로 긴 순례를 다녀 왔지만 그의 감각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일본의 선불교였다. 인도 여행을 잡스와 같이 다녀온 대학 친구, 다니엘 코트키(Daniel Kottke)는 선이 잡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완전하고 미니멀리즘적인 미학, 극도의 집중에 대한 그의 접근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불교, 특히 일본 선불교가 미학적으로 탁월하죠. 제가 본 것 중에서 제일 고상했던 것이 교토의 정원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인도에서 돌아와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비디오 게임을 디자인하던 Atari에 야간 자리로 들어갔을 때에도 단순한 인터페이스를 좋아했다. Spacewar!와 같은 컴퓨터 게임은 MIT의 해커들이 개발했지만 Atari에서는 취한 신입생이라도 어떻게 하는 지 아는 게임이어야 했다. 복잡한 메뉴나 매뉴얼은 없었던 Atari의 Star Trek 게임 명령은 딱 두 가지였다. “1. Insert quarter, 2. Avoid Klingons”

1970년대 차별성 있는 산업 디자인을 보여줬던 얼마 안 되는 회사 중 소니가 있었다. 잡스의 집 차고에서 나와 이주한 애플의 첫 번째 사무실은 소니 영업부 사무실이 같이 자리한 빌딩 안에 있어서 잡스는 소니의 마케팅 자료들을 잠깐씩 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소니에서 일했던 대니얼 러윈(Dan’l Lewin)의 말이다. “꾀죄죄한 사람이 불쑥 와서는 제품 광고지를 어루만지더니 디자인 기능을 지적하더라구요. 그럴 때마다 매번 이 광고지 좀 가져갈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소니의 어둡고 산업적인 모양을 좋아한 잡스는 1981년 6월부터 콜로라도 주 애스펀(Aspen)에서 열리는 연례 국제 디자인 컨퍼런스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는 바우하우스(Bauhaus) 운동식의 깔끔하고 기능적인 접근을 많이 보았다. 당시 애스펀 인스티투트 캠퍼스에는 산세리프 서체와 가구, 실제 거주하는 방 등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가 소중히 간직하는 디자인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의 멘토인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와 루트비히 미스 판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처럼 바이어 또한 단순하되 영혼을 표현하는 디자인을 신봉했다. 깔끔한 선과 형태를 채용하여 합리성과 기능성을 강조하는 디자인으로서, 그로피우스와 미스가 설교한 디자인은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었다. 에이슐러(Eichler)처럼 미적인 감각은 대량 생산을 위한 기능과 결합돼 있었다.

잡스는 1983년 애스펀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디자인에 대한 칭송을 발표 했었다. 잡스 연설의 제목은 “미래는 예전과 같지 않다”였고, 소니 스타일 대신 바우하우스의 단순성이 지지를 얻으리라 예언했다. “현재의 산업 디자인은 소니 식의 하이테크적인 외양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포금 회색, 어쩌면 검정색으로서 이상한 것들을 하는 디자인이죠. 그렇게 하기는 쉽습니다만 위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대안을 제시했다. 제품의 성격과 기능에 보다 충실한 대안이었다. “우리가 할 것은 하이테크 제품이며, 그들을 깔끔하게 만들어서 제품이 최첨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작은 패키지 안에 맞게 만들고 아름다우면서 하얀색으로 할 수 있겠죠. 브라운이 전자제품에서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잡스는 애플의 만트라가 단순성이라고 계속 강조했다. “우리는 하이테크에 대해 밝고 순수하면서 솔직하게 만들 겁니다. 소니처럼 오로지 검정색 밖에 없는 중공업 스타일 말고요. 우리가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과 우리가 하는 제품 디자인, 광고는 모두 단순하게 만들자. 정말 단순하게로 모아집니다.”

잡스는 디자인 단순성의 핵심 부분이 제품을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단순성과 쉬운 사용이 항상 함께 하지는 않는다. 디자인이 너무나 매끈하고 간단해서 오히려 사용에 장애가 되거나 생경스러울 때도 있기 때문이다. 애스펀에서 잡스는 디자인 전문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직관적으로 분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디자인의 중심입니다.” 가령 그는 새 컴퓨터 매킨토시용 그래픽 화면을 만들 때 사용한 데스크톱 메타포를 칭송했다. “모두들 데스크톱은 직관적으로 다룰 줄 압니다. 사무실로 걸어 들어가면 책상 위에 종이가 놓여 있죠. 제일 위에 놓인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선권을 조정하는 방법 또한 다들 알고 있죠. 이미들 갖고 계신 경험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우리 컴퓨터를 데스크톱과 같은 메타포로 만든 이유라 할 수 있어요.”

잡스는 당시 산업디자인 업계에서 별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리하르트 자퍼(Richard Sapper) 램프를 좋아했지만 찰스(Charles)와 레이(Ray) 임스(Eames)의 가구, 디터 람스(Dieter Rams)의 브라운 제품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와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가 이룬 식으로 산업 디자인 세상에 힘을 줄 만한 거장은 없었다. 워싱턴의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디자이너인 마야 린(Maya Lin)의 말이다. “산업 디자인에서 뭐가 딱히 없었어요. 실리콘 밸리는 특히 전혀 없었죠. 그래서 스티브는 상황을 정말 바꾸고 싶어 했어요. 그의 디자인 감각은 매끈하지만 번드르르하지 않았습니다. 장난기도 많았죠. 그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했어요. 단순함에 헌신하는 선불교에서 나온 감각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자기 제품을 차갑게 만들지도 않았어요. 그의 제품은 재미 있었습니다. 그는 디자인에 있어서 열정적이었고 정말 심각했지만 그와 동시에 놀 줄도 알았어요.”

1984년에 나온 오리지날 매킨토시용 케이스를 만들 때, 잡스는 두 명의 젊은 디자이너와 같이 작업했다. 제라 마녹(Jerry Manock)과 테리 오야마(Terry Oyama)이다. 그들은 디자인안을 만들고 실제 석고로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맥 팀이 주위에 모여서 들여다 보고 자기 생각을 말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던 앤디 허츠펠드(Andy Hertzfeld)는 “귀엽다”고 칭했고, 다른 사람들도 만족해 했다. 그러자 잡스는 비판을 쏟아 부었다. “너무 상자 모양입니다. 곡선미가 더 있어야 해요. 첫 번째 사각면의 반경이 좀 더 커야 합니다. 그리고 비스듬한 면이 마음에 안 들어요.” 산업 디자인 용어에 대한 새로운 유창함과 함께, 잡스는 컴퓨터 측면과 연결된 각과 곡선 모서리를 언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잡스는 상당한 찬사도 곁들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매달 마녹과 오야마는 잡스의 비판에 맞춰 만든 새로운 모델을 들고 나왔다. 마지막 주물 모델은 정말 뛰어나서 이전까지의 모델은 모두 그 뒤에 서야 할 정도였다. 워낙 발전해서 잡스로부터 비판이나 주장을 못 하게 만들어버릴 정도였다. 허츠펠드의 말이다. “네 번째 모델부터는 세 번째와 거의 구분도 할 수 없겠더라구요. 그래도 스티브는 항상 비판적이었고 결정적이었어요. 전 알아보지도 못할 디테일에 대해 좋다 싫다 하면서 말이죠.”

어느 한 주말, 잡스는 다시금 팔로알토의 메이시 백화점에 가서 특히 퀴진아트 등의 주방기기를 연구했다. 그는 월요일, 맥 오피스로 들어와서 디자인 팀에게 퀴진아트를 사라 시키고, 퀴진아트의 선과 곡선, 사면에 따라 새로운 주문을 했다.

잡스는 매킨토시가 친숙해 보여야 함을 고집했다. 그 결과 맥은 인간의 얼굴과 유사해졌으며, 화면 바로 밑에 디스크 드라이브를 놓았고, 대부분의 컴퓨터보다 더 키가 크고 좁았다. 머리를 강조하는 형태였다. 밑부분 가까이의 구석은 온화한 턱을 방불케 했고, 잡스는 상단부의 플라스틱을 더 좁게 만들어서 크로마뇽인의 이마처럼 보이지 않게 했다. 이 매킨토시 케이스의 특허자는 마녹과 오야마만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도 올라가 있다. 오야마가 나중에 한 말이다. “스티브가 직접 선을 그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아이디어와 영감으로 이 디자인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려서 우리는 스티브가 말해주기 전까지 컴퓨터가 ‘친숙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몰랐었어요.”

잡스는 화면상에 나타나는 외양에 대해 강렬하게 집착했다. 특히 그는 각기 다른 레터링 스타일, 즉 서체에 신경 썼다. 신입생 때 리드 컬리지를 중퇴했을 때,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수업을 청강하면서 캠퍼스를 돌아다녔는데 그가 좋아하는 과목 중 하나가 서예였다. 잡스의 말이다. “세리프와 산-세리프에 대해 배웠어요. 각기 다른 문자의 조합이 얼마나 다양한지, 위대한 글씨체를 무엇이 위대하게 만드는지를 알았습니다. 아름답고 역사적이면서 예술적으로 묘했어요. 과학이 캡쳐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더 매혹적이었습니다.” 잡스가 스스로를 예술과 기술의 접목에 세웠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또다른 사례이다.

매킨토시는 비트맵 화면(화면상 각 픽셀을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켜거나 끌 수 있다)이기 때문에 우아한 서체부터 괴상한 서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체를 만들어서 화면상 픽셀별로 렌더링할 수 있었다. 이들 서체를 만들기 위해 잡스는 필라델피아 출신의 그래픽 아티스트, 수잔 케어(Susan Kare)를 고용한다. 그녀는 Overbrook, Merion, Ardmore, Rosemont 등 필라델피아의 Main Line 통근열차 역 이름에 따라 서체 이름을 지었다. 잡스는 이 과정을 대단히 마음에 들어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케어 사무실에 들러서 서체 이름에 대해 물었다. “그런 이름들은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서체 이름은 당연히 세계적인 도시이어야 하지!” 그래서 서체는 각자 시카고와 뉴욕, 제네바, 런던, 샌프란시스코, 토론토, 베니스로 바뀌었다. 나중에 잡스가 했던 말이다. “대학교 다닐 때 그 서체 수업을 안 들었더라면 맥에는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자간 맞춤 기능이 없었을 겁니다. 윈도가 맥을 그대로 베낀 이후로는, 어떠한 개인용 컴퓨터도 그렇지 못할 것 같군요.”

젊은 엔지니어, 크리스 에스피노사(Chris Espinosa)는 매킨토시용 계산기를 디자인할 때 잡스의 요구를 충족할 방법을 알아냈다. 그래서 첫 번째 시도를 해 보이자 잡스는 그에게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기본적으로 역겹군. 배경 색상이 너무 어두워. 두께가 잘못 나온 라인도 있고 버튼이 너무 커.” 에스피노사는 잡스의 비판에 따라 수정을 거듭했지만 수정을 할 때마다 비판도 새로워졌다. 그래서 어느 날 오후, 잡스가 지나갈 때 에스피노사는 해결책을 선보였다. “The Steve Jobs Roll Your Own Calculator Construction Set”였다. 이 셋트는 사용자가 선 두께와 버튼 크기, 각도, 배경 등의 속성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잡스는 웃지 않고 자신의 취향에 맞춰서 외양 설정을 하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흐르고 나자 그는 드디어 자기가 좋아하는 모양을 설정할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의 디자인은 향후 15년간 맥에 계산기로 탑재됐으니 말이다.

그의 초점이 매킨토시이기는 했지만 잡스는 모든 애플 제품을 관통하는 일관성 있는 디자인 언어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세계 정상급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브라운의 디터 람스처럼 누가 애플의 디자이너가 될지 콘테스트를 개최했다. 수상자는 소니 트리니트론 텔레비전 디자인을 책임졌던 독일 출신의 하트무트 에슬링어(Hartmut Esslinger)였다. 독일인이기는 했지만 에슬링어는 “애플의 DNA에 있을 미국의 유전자”가 있어야 한다면서, “헐리우드와 음악, 반항과 자연스러운 섹스 어필”이 가미된 “캘리포니아 풍”의 모양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가 제안한 지침은 형태가 기능을 따른다는 유명한 격언에서 따온, “형태가 정서(emotion)를 따른다”였다. 1980년대에 그가 애플용으로 개발한 제품으로는 하얀색 케이스가 있다. 견고하고 곡선형 모서리를 가졌으며, 통풍과 외양 모두를 위한 얇은 선으로 이뤄져 있었다.


Searching for a personal uniform, Jobs asked designer Issey Miyake for some black turtlenecks. He kept around 100 of them in his closet.

디자인에 대한 잡스의 열병에는 단점도 있었다. 1985년 애플로부터 축출당한 이유로 그의 예술적 감각을 채워주기 위한 과도한 비용과 일정 연기가 있었고, 뒤이어 그가 만들어낸 회사인 넥스트도 거대한 시장 실패를 경험했다. 다만 1997년 애플로 복귀를 요청받았을 때 그는 본능을 제어할 줄 알았고 합리적인 교환조건 세우기도 배웠다. 하지만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한 열정만은 버리지 않았었다. 네모난 베이지색의 범용 컴퓨터와 뮤직플레이어, 휴대폰과 같은 소비자 가전제품으로 채워진 시장에서 애플을 다시금 세우기 위해서였다. 거의 우즈베키스탄에서 디자인한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잡스가 애플로 돌아온 직후, 격려 연설을 위하 최고 관리자들을 소집했다. 그 중에는 애플 디자인 팀을 맡고 있었던 30대의 영국인, 조너선 아이브가 앉아 있었다. 조니는 애플을 그만 둘 계획이었다. 제품 디자인보다는 이윤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는 애플에 대해 진절머리가 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잡스의 이야기때문에 그는 퇴사를 다시 생각했다. 아이브의 말이다. “우리 목표는 돈벌기만이 아니라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던 스티브의 발표를 정말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철학에서 내린 결정은 우리가 그동안 애플에서 해 오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죠.” 곧 아이브와 잡스는 제일 훌륭한 산업 디자인 협력을 이끄는 관계를 형성했다.

다른 디자이너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아이브는 특정 디자인으로 들어가는 단계별 사고 과정과 철학 분석하기를 즐겼다. 잡스는 그 과정이 보다 직관적이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스케치와 모델을 지적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들은 짓밟았다. 아이브는 단서를 발견하여 잡스가 칭찬할 개념을 만들어냈다. 잡스는 아이브 안에서 표면적인 단순함 이상의 진실을 추구할 소울메이트를 발견했다. 디자인 스튜디오 안에서 아이브는 자신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단순함이 좋다고 가정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리적인 제품이 있으면 우리가 그것을 지배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복잡성에 대해 질서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제품이 주인에게 경의를 표하죠. 단순성은 시각적인 스타일만이 아니며, 미니멀리즘만도 아닙니다. 깔끔함만도 아니죠. 복잡함의 깊숙한 끝까지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진정 단순해지려면 정말 깊게 들어가야 해요. 가령 나사를 없애려면, 대단히 난해하고 복잡한 제품이 나올 수가 있어요. 제품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어떻게 만드는지를 이해해야 단순함을 가지고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을 없앨 수 있으려면 제품의 본질을 깊게 이해해야 합니다.”

잡스와 아이브가 공유했던 원칙이다. 디자인은 표면의 외양만이 아니며 제품의 본질을 반영해야 한다. 그 결과 애플에서 제품 디자인 과정은 엔지니어링과 제조방법까지 모두 통합돼 있다. 아이브는 애플 파워맥을 예로 들었다. “우리는 정말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 없애기를 바랬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이너와 제품 개발자, 엔지니어, 제조팀 모두가 전체적인 협력을 해야 하죠. 우리는 몇 번이고 시작을 되풀이했습니다. 이 부품이 필요한가? 다른 네 가지 부품으로 한 가지 기능을 할 수 있는가?”

산업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이 동일한 과정의 일부이어야 한다는 잡스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긴장은 있었다. 잡스가 산업디자인을 아이브의 팀으로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팀(존 루빈스타인이 맡았다)과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원래는 루빈스타인이 아이브의 상사였다. 분리는 둘 간의 사이를 좁히지 못했고 긴장감의 대립 관계가 터져 싸울 때도 종종 있었다. 다른 기업 대다수의 경우 엔지니어들이 요구사항을 적은 후에서야, 산업 디자이너들이 제품의 외양을 정할 수 있다. 잡스에게는 이 과정이 반대로 움직였다. 애플 초창기 시절, 잡스는 애플 III와 오리지날 매킨토시 케이스의 외양을 먼저 정하고, 그 다음에 엔지니어들에게 케이스에 맞는 부품과 보드를 주문했다.

축출당한 후, 애플 내 제품 제조 과정은 엔지니어-위주로 돌아갔었다. 애플의 마케팅 책임자인 필 실러의 설명이다. “엔지니어들은 프로세서와 하드드라이브같은 사양을 말하고 디자이너들에게 집어 넣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끔찍한 제품 밖에 안 나와요.” 그러나 잡스가 복귀하고 아이브와 협력한 끝에 균형감은 다시금 디자이너들에게 옮겨갔다. 실러의 말이다. “스티브는 우리를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것에 디자인이 통합적이라 말하곤 했어요. 디자인이 다시 엔지니어링을 통솔했습니다. 그저 반대로만 한 것이 아니고요.”

잡스-아이브 협력 하에 처음으로 나온 훌륭한 디자인적인 성공작은 가정용 소비자를 노린 데스크톱 컴퓨터, 아이맥이었다. 잡스는 조건을 특별히 정하였다. 올-인-원 제품으로서 키보드와 모니터, 컴퓨터를 모두 하나의 단순한 유닛으로 조합해야 하고, 상자에서 꺼내자마자 바로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 컴퓨터는 브랜드를 내세울 수 있는 차별화된 디자인이어야 했다.

아이브와 그의 최고 부하인 대니 코스터(Danny Coster)는 미래적인 디자인을 스케치하기 시작했지만 잡스는 그들이 만들어낸 십여 가지의 조형물을 거절했다. 그러나 아이브는 어떻게 하면 부드럽게 잡스를 끌어내는지 알고 있어서 일단 만든 모델이 모두 올바르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다만 한 가지 모델을 지적했다. 곡선형의 쾌활한 모양이되 움직이지 않는 조각처럼 보이지 않는 모델이었다. 아이브는 잡스에게 말했다. “책상에 막 도착한 듯한 느낌이랄까, 아니면 아예 곧바로 떠나버릴 듯한 느낌의 모델입니다.”

그 다음, 아이브는 그 모델을 가지고 작업했다. 이중적인 세계관을 가진 잡스는 환호하고 그 모델을 좋아했다. 그는 조형물을 들고 본부에 갖고 돌아다니면서 이사진과 신뢰하는 부하들에게 은밀히 보여줬다. 애플은 당시 다르게 생각하라는 광고의 데뷔를 축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는 기존 컴퓨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만 있었고, 마침내 잡스는 새로운 것을 갖게 됐다.

아이브와 코스터가 제안한 플라스틱 케이스는 바다 빛깔의 청색이었고, 투명하기 때문에 본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이브의 설명이다. “우리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필요에 따라 교체가 가능한 컴퓨터를 만든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투명한 케이스를 좋아했습니다. 색깔은 있지만 고정되지 않은 느낌. 뭔가 건방진 느낌이었죠.”

개념이 모두 은유적이었다. 현실적으로 투명한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링의 문제가 있었다. 잡스는 언제나 컴퓨터 내부의 서킷보드의 칩 배열마저 말쑥해야 한다 주장해 왔었다. 아무도 안 쳐다본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이 컴퓨터는 내부가 보였다. 따라서 내부 부품과 접합 부분을 만들 때 신경써야 했다. 쾌활한 디자인은 단순함을 전달하는 동시에 진정한 단순함이 끌어내는 그 깊이도 드러내고 있었다.

심지어 플라스틱 케이스의 단순성 그 자체도 상당히 복잡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아이브와 그의 팀은 애플의 한국 제조업체들과 협력하여 케이스 제조 공정을 완벽하게 만들고, 사탕 공장에 가서 어떻게 투명하면서 유혹적인 색상을 만드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 케이스 비용은 일반적인 컴퓨터 케이스 값의 세 배인 $60 이상이었다. 다른 회사에서는 아마 투명한 케이스가 판매량을 늘릴 것이기 때문에 더 높은 비용을 정당화시킬 수 있노라고 프리젠테이션하겠지만 잡스는 그런 분석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이맥 디자인의 끝마무리는 머리에 달린 핸들이었다. 기능성이라기보다는 보다 쾌활하고 기호적인 의미였다. 이 컴퓨터는 데스크톱 컴퓨터이며, 옮기면서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었다. 아이브의 설명은 아래와 같다.

“당시는 기술에 별로 친숙해 하지 않던 때죠. 뭔가 두렵다면 손도 대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도 무서워서 컴퓨터에 손대지 않을 걸요. 그래서 생각했죠. 손잡이가 있다면 관계 형성이 가능하다. 접근이 가능하다였죠. 직관적이기도 하고요. 만져도 된다는 허락의 의미였어요. 당신을 존중한다는 느낌도 줍니다. 불행히도 손잡이를 붙여서 제조하려면 돈이 매우 많이 들었어요. 예전의 애플이라면 손잡이를 고집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스티브는 정말 위대했어요. 그걸 보고는 ‘정말 멋지네!’라 말했으니까요. 구구절절 제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는 직관적으로 깨달았어요. 아이맥의 친숙함과 쾌활함의 일부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 후로 잡스와 아이브는 모든 애플의 미래 컴퓨터의 디자인을 이끌었다. 오렌지 조개와 같은 소비자용 노트북과 얼음덩이 비슷한 전문가용 데스크톱 컴퓨터도 나왔다. 벽장 뒤에 나타난 나팔바지처럼, 돌이켜 보면 그 당시로서 더 나아 보였지만 그러한 제품들은 너무 활기가 넘쳤다. 디자인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애플의 컴퓨터 디자인은 애플을 다른 컴퓨터와 다르게 만들었고, 애플로서는 윈도 세상에서 생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도 터져 나왔다.

평면 화면을 사용 가능하게 되자 잡스는 이제 아이맥을 대체할 때가 됐다고 결정내린다. 아이브는 뭔가 전통적인 모델부터 제시했다. 평면화면 뒤에 컴퓨터를 덧붙인 모델이었다. 잡스는 이 모델을 좋아하지 않았다. 순수함이 결여된 디자인이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잡스는 아이브에게, “뒤에다가 다 갖다 붙여서 할 거면 뭐하러 평면 화면을 내세웁니까? 각 요소가 서로 진정성을 갖게 해야 해요.”라 말했다.

잡스는 그날 아이맥 재편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집에 일찍 귀가하고는 아이브보고 오라고 했다. 그들은 잡스의 부인, 로렌과 함께 정원을 거닐면서 해바라기를 많이 심었다. 로렌의 말이다. “매년 정원일을 하는데 그 때 유독 해바라기가 매우 많았어요. 애들을 위한 해바라기 집이었죠. 조니와 스티브가 자기들 디자인 문제를 말하다가 조니가 갑자기 그이에게 묻더군요. ‘해바라기처럼 화면을 본체와 분리시키면 어떨까요?’ 조니는 바로 흥분하더니 스케치를 시작했어요.” 아이브는 이야기가 있는 디자인을 좋아했다. 그는 해바라기 모양이야말로 태양을 받을 수 있도록 평면화면을 유동성 있고 반응성 있게 할 수 있다고 봤다.

아이브의 새 디자인에서 보면, 아이맥의 화면은 움직일 수 있는 크롬 목에 붙어 있어서 해바라기만이 아니라 귀여운 램프처럼도 보였다. 애플은 이 디자인의 많은 부분을 특허화시켰고 대부분은 아이브를 발명자로 거명했으나, 한 가지만은 유독 잡스가 자기 이름을 주-발명자로 등재했다. “플랫패널 디스플레이에 붙어 있는, 움직일 수 있는 조립을 가진 컴퓨터 시스템”이다.

디자인으로서 단순함의 힘에 대한 잡스의 믿음은 2001년부터 그가 만들어낸 세 가지 소비자용 기기 성공작으로 정점을 이뤘다. 아이포드와 아이폰, 그리고 아이패드이다. 그는 오리지날 아이포드와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기 위해 매일같이 작업했다. 그의 주된 요구는 “단순하게!”였다. 그는 각 화면을 검토하고 엄격한 테스트를 했다. 노래나 기능을 원하는 경우, 클릭 세 번으로 가능해야 했다. 네 번이 넘어가는 경우에는 잔혹해졌다. 아이포드 팀의 리더였던 토니 퍼델(Tony Fadell)의 말이다. “사용자 인터페이스 문제를 두고 정말 고민할 때가 있었죠. 모든 옵션을 다 제시했다 여겼는데, 스티브는 ‘이건 생각해 봤지?’라 했었어요. 아예 문제나 접근법을 다시 정해버리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의 작은 문제는 사라져버렸어요.”

아이포드, 그리고 후의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긴밀하게 결합시킴으로써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 디자인의 단순성이라는, 1980년대 초반 잡스가 갖고 있던 통찰력의 성공이었다. 윈도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를 IBM과 Dell과 같은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라이선스를 준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달리, 애플은 처음부터 끝까지 견고하게 통합시킨 제품을 만들었다. 아이포드 첫 번째 버전의 경우 정말 그랬다. 모든 면면이 다 매끄럽게 결합돼 있었다. 매킨토시 하드웨어와 매킨토시 운영체제, 아이튠스 소프트웨어, 아이튠스 스토어와 아이포드 하드웨어/소프트웨어가 다 결헙돼 있었다.

덕분에 애플은 아이포드 기기를 Rio와 같은 경쟁 MP3 플레이어보다 훨씬 더 단순하게 만들 수 있었다. 잡스의 설명이다. “Rio와 다른 경쟁품들을 무너뜨렸던 것은, 걔네들이 복잡했거든요. 컴퓨터 상의 쥬크박스 소프트웨어와 통합이 안 되어 있으니 재생 목록부터 만들어야 했어요. 반면 아이튠스 소프트웨어와 아이포드 기기가 있으면 컴퓨터와 기기가 연동이 되죠. 복잡한 부분은 있어야 할 장소로 보내버릴 수 있습니다.”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는 이런 말을 했었다. “자연은 단순함과 통일성을 좋아한다.” 스티브 잡스도 그러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합치면서 그는 둘 다를 이룰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서거하고 내가 쓴 그의 전기가 출판된 이후 나는 책이 야기한 두 가지 상반된 반응에 놀란다. 잡스가 얼마나 거슬리고 심술 부리는 존재인지 놀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특히 젊은 기업가들이나 사업을 운영해본 적이 있는 이들은 그의 심술이 예술적인 감각, 디자인 완벽주의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집중한다.

두 번째 관점이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물론 잡스는 모시기 매우 힘든 인물이고, 정말 얼간이일 때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보스와 얼간이가 매우 많으며, 그들 대부분은 그렇게 심하지도, 얼간이도 아니다. 잡스를 특별하게, 가끔은 천재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따로 있다. 아름다움에 대해 불타는 듯한 본능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능력,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신념이다. 그 때문에 잡스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위해 최대한 힘을 쏟는 회사를, 우리 시대에서 그 중요성을 나타내는 제일 좋은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How Steve Jobs’ Love of Simplicity Fueled A Design Revolution | Arts & Culture | Smithsonian Magazin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스큐어몰피즘이 애플의 디자인 문제가 아니다.

Apple’s design problems aren’t skeuomorphic

MON, NOV 5, 12

지난 주, 애플의 조직 변화에 대해 발표한 팀 쿡의 서한에서 인용한다.

조나단 아이브는 산업 디자인 리더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회사 전반적으로 HI(휴먼 인터페이스)에 대한 리더십을 보여주며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그의 놀라운 디자인 미학은 10년 이상 애플 제품의 외양과 느낌을 견인해온 주역이다. 수많은 애플 제품의 얼굴은 우리의 소프트웨어이며, 조니가 가진 기술의 확장은 애플과 경쟁사들 간의 간격을 넓힐 것이다.

Sir Jony Ive needs no introduction

아이브의 산업 디자인 작품은 애플 부활의 핵심 중 하나였다. 미학적인 면에서 끈질기고 반복적인 단순함 및 기능에 대한 집중은 이제 전설이다. 본다이 블루 아이맥에서부터 아이콘화 된 아이포드, 평면화면 아이맥에서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그의 흔적은 틀림이 없다.

다만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이브의 애플 소프트웨어에 대한 역할이다. 아이브가 백마를 타고 와 스콧 포스탈스러운 스큐어몰피즘에서 긱들을 구해내리라는 현재의 기대감은 상당히 우습다. 물리적인 기기의 산업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 또한 형태와 기능으로 나뉘어 있다. 미학적인 면과 경험으로 나뉜다는 의미다. 애플 소프트웨어가 가진 문제는 어두운 리넨 천이나 코린트 식의 가죽, 찢어진 종이와 같은 스큐어몰피즘이 아니다. 애플 소프트웨어가 가진 문제는 사실 미학적인 면과 거의 관계가 없다… 대부분 경험과 관련된 문제이다. 아이브의 전임 보스의 말을 인용하여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애플 소프트웨어가 가진 문제는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느냐이다. 슬프게도 우리 기대 이상으로 애플 소프트웨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 알림의 배경이 어두운 리넨이건 아니건, 비참한 디자인일 따름이다.
  • 모바일 기기의 배터리를 떨어뜨리는 여섯 가지(GPS, WiFi, 셀률러 라디오, 블루투쓰, 알림, 화면 밝기) 아이템을 조절하려면 지금도 열심히 뒤져서 클릭해야 한다. 간단하거나 주제별, 위치별 그룹화라도 있지 않으면, 익숙지 않은 사용자들은 켜고 끄는 곳이 어디인지조차 바로 알 수 없는 지경이다.
  • 아이클라우드-데스크톱 통합과 애플 기기 간의 직접 파일 공유는 말과는 달리 직접적이지 않으며, “It just works”에 못 미친다.
  • iWork 패키지와 같은 수많은 애플 앱들의 업데이트가 절실하다. 미리보기나 텍스트에디스, 주소록과 같은 다른 앱들 또한 UI와 UX를 아예 완전히 개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 사전이리든지 iOS 키보드 배치와 자동 완성 기능 같은 핵심기능들이 최고가 아니다.
  • 조그마한 “폴더” 안에 들어가는 iOS의 앱 조직화 기능을 보면, 현미경으로나 봐야 할 아이콘으로 앱을 모아 놓는다. 이름도 안 나오고, 뭐가 들어 있는지 알아보기 힘들고 확장성도 갖고 있지 않다.
  • iOS 앱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일은 우아하지 않고 불투명하며, 일반적으로 앱들 사이의 데이터 상호 교환(개발자에게는 상당히 힘 떨어지는 일이다) 또한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문제점 목록을 길게 쓸 이유는 별로 없다. “개선할 사항” 목록을 실제로 작성하면 10배는 더 길어질 것이다. 이 시점에서 누구의 잘못인지 논하는 것은 별로 유용하지 않다. 애플 소프트웨어(특히 스스로 미래라 밝힌 iOS)는 미학적으로나 경험으로나 심각한 개수 작업이 필요하며, 미학보다는 경험 쪽이 훨씬 더 절실하다.

One Man. One Company. One Aesthetics?

문제는 세계에서 제아무리 제일 뛰어난 산업 디자이너라 하더라도 아이브 혼자서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미학과 경험 모두)를 필요한 정도로까지 충분한 관심을 쏟을 수 있을까? 그럴 시간이 한 사람에게 있겠는가?

애플의 휴먼 인터래션 가이드라인(HIG)은 아이콘 그림자라거나 버튼의 배열만 다뤘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일반적인 애플리케이션 디자인의 행동적 측면의 분석도 HIG에 포함된다. 한 세대 이전, 웹디자인이 지배적이기 이전 시절, HIG는 애플 스스로는 물론, 애플 개발자들도 훨씬 더 존중하고 지켜왔던 준칙이었다. HIG를 안 지키는 점이 있으면 충성스러운 사용자들도 알아보고 불만을 드러냈었다. 공개된 포럼에서 HIG 토론이 일어났던 것 또한 일반적인 일이었다.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라디오 버튼이나 체크박스 정도로도 웹페이지 네비게이션이 가능하다. 네비게이션이 가능한 메뉴는 이제 원형이고 삼각형 팝업으로 뜬다. 사용자에게 기능을 해치지 않는 한 순수 제스쳐에 기반한 UI들이다. 미끄러지는 패널 레이어는 서로 연동되며 동작한다. 아이템 목록 슬라이드는 좌우로 움직이면서 드릴다운 액션을 일으키고 위아래로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내보낸다. 3D로 만든 UI도 있으며, 그림자가 없는 UI도 있고, 대부분은 여러 가지 스타일의 조합이다. 한 때 강력했던 HIG가 다 그러한 “혁신” 깊숙이 묻혀 있다.

그렇다면 현재 5억 명의 사용자가 있는 생태계를 한 명의 휴먼 인터페이스 황제가 호령하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가능하고 바람직하기도 하다면, 그토록 거대한 생태계의 시각적 미학과 기능적 경험을 한 사람이 모두 맡을 수 있겠는가?

  • 디스플레이 레이어에 떠오른 시리의 문제점이 의미(semantic)를 가진 토대로 음소 나누기, 어휘별 맥락, 데이터-제공자의 계약, 통신망 대기 시간 등이 깊은 관계에 있고, 그래서 그 해결방법은 이들 요소와 기능들의 협업에 달려있다라는 점을 단 한사람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 지도나 패스북 앱을 사용할 때에도, 유사한 기술적 및 운용의 제한때문에 사용자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사실을 과연 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기대하는 것이 공정하고 합리적일까?
  • 게임센터에 소셜 레이어가 없고 아이튠스나 앱스토어의 콘텐트 발견 레이어가 기능을 수많은 방법이 어떻게 방어하는가? 이를 한 사람에게 맡겨도 되나?
  • 사용자-수준의 파일 관리로부터 애플이 떠날수록 아이클라우드 문서 관리와 공유라는 인지적인 혼란은 어떠한가?
  • 아이튠스의 대대적인 재-디자인으로 알려진 엄청난 실험은 도대체 언제 나오는가?
  • 애플 티비에도 미학적이고 경험적인 재디자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업데이트할 때마다 iOS의 상태바와 오에스텐 메뉴바의 투명도/색상을 바꾸는만큼 오래 묵은 위의 문제가 가진 깊이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단 한 명의 황제가 해결할 수 있을까? 그가 해결할 수 있는 UI 코너와 UX 경로는 몇 가지나 될까? 이들 문제는 사실 미학적인 문제가 아니다.

Apple, quo vadis?

아이브의 임명이 스콧 포스탈의 퇴사, 혹은 단일 체제 하로의 애플 디자인 개편과 관계가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 명의 황제 휘하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을 합치는 것은 분명 미학적인 효율성을 안겨다 줄 수 있겠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내포할 수 있다. “빨고 싶을 정도”의 아쿠아 UI는 10년으로 수명을 다 했고, 좀 더 미학적으로 단일하면서 매력적인 디스플레이 레이어가 등장했다. 그렇지만 행위적이고 기능적이며 실험적인 소프트웨어 문제점 다수를 숨겨버리는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다음과 같다.

  • 더 현대적이고 덜 느끼한 게임 센터의 재-디자인이 나왔지만 소셜 레이어는 여전히 없다.
  • 미학적으로 단일한 아이튠스이지만 콘텐트 발견성은 더 나아지질 않았다.
  • 시리 앱에는 배경의 리넨이 없어도 iOS의 나머지 부분과 맥락적으로 깊은 통합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 지도 앱은 어색한 초현실적 시각효과가 없어도 견고한 검색 레이어를 여전히 갖추지 못했다.
  • 나무 책서랍이나 안쪽의 그림자가 없는 아이북 앱의 타이포는 보통 수준 이하이고 하이픈 연결하기와 행 맞추기는 무기력하다.
  • 테이프 덱의 스큐어몰피즘이 없다 하더라도 포드캐스트 앱의 네비게이션은 불투명하다.

마지막으로, iOS에서 잘못된 점은 앱 아이콘 뒤에 있는 어두운 리넨이 아니라, 훨씬 더 나은 애플리케이션-간의 관리와 내비게이션이다. 조그마한 아이콘을 헤집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애플이 아이튠스와 앱스토어에서 사용하는 애플 ID의 통일 문제, 혹은 성능과 신뢰성 문제만 훨씬 잘 해결할 수 있다면, 애플 사용자 대부분은 노트북이나 달력 앱에 스큐어몰피즘을 더욱 덧붙인다 하더라도 천 년 만 년 사용할 것임을 확신한다. 게다가 이 문제는 동일한 시스템 디자인이 야기하는 문제의 쌍둥이적인 측면을 의미한다. 표면에 드러나는 디스플레이 레이어, 혹은 그 내부에 힘을 숨기기, 혹은 점점 늘고 있는 두 이슈의 부족한 부분.

그렇다. 우리는 애플에게 다른 기업과는 다른, 별도의 기준을 두고 있다. 30년 동안 그래 왔으며, 그에 따른 보상도 충분히 받아 왔다. 애플이 계속 승리해 나아간다면 조니 아이브가 코린트 식의 가죽 소파 뒤에 있을 수퍼맨 망토를 잊지 않고 있기 바란다…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Apple’s design problems aren’t skeuomorphic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애플의 협상가이자 해결사 에디 큐

Right on Cue: Can iTunes chief fix Apple’s maps and Siri?

An executive shuffle has dropped two troubled services into the hands of Eddy Cue. CNET has a behind-the-scenes look at Apple’s master negotiator and product resuscitator.

Greg Sandovalby Greg Sandoval October 31, 2012 12:01 AM PDT


Few consumers know his name, but Eddy Cue, Apple’s iTunes chief, was instrumental in keeping those iPods, iPhones, and iPads loaded with movies, music and books — and that helped turned Apple into a $560 billion company. Cue, left, is pictured with News Corp. Chairman Rupert Murdoch

끝나지 않는 음반사들과의 협상에서 애플 아이튠스의 보스, 에디 큐는 당근 역할을, 스티브 잡스는 채찍 역할을 맡았었다. 하지만 현재의 CEO인 팀 쿡 휘하에서 큐는 해결사의 역할일 것이다.

월요일 애플이 발표한 놀라운 경영진 변화에 따르면 아이패드와 아이폰 소프트웨어 개발을 맡았던 스톳 포스탈이 소매사업을 맡았던 존 브로웻과 함께 회사를 떠나고, 23년간 애플에 있었으며 2003년 이래 아이튠스 책임을 맡았던 에디 큐가 이제 시리 음성인식 서비스, 그리고 실망스러웠던 애플 지도 서비스의 통제를 맡게 됐다.

사근사근한 큐는 듀크 대학교 농구팀의 열렬한 팬이자 스포츠카를 모으고 주목을 받지 않으려 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새로 맡은 일로 인해 큐는 애플 안팎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프로야구 인터넷 사업권을 관리하면서 아이튠스에서 야구 관련 앱도 판매하는 메이저리그 야구 미디어(MLBAM)의 CEO이자 사장인 봅 보우먼(Bob Bowman)의 말이다.

“안드로이드나 다른 경쟁사에는 에디 큐와 같은 인물이 없습니다. 에디는 천재이고 뛰어나요. 사려깊으면서도 터프합니다. ‘좋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달리 요청할 게 없었어요.”

48세이자 쿠바계 미국인인 큐는 애플의 웹스토어와 아이튠스, 아이포드의 제작에 큰 역할을 했었다. 인터넷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부 수석 부사장으로서 그는 주요 파트너들과 평화 관계를 유지하면서 제품의 문제 수정을 도왔었다. 5년 전, 그가 애플과 대규모 음반사들 간의 관계 붕괴를 막은 주역이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당시 애플과 음반사의 관계는 “핵전쟁” 직전이었다. 애플의 웹서비스와 소프트웨어 담당부서가 모블미 서비스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았을 때에도 이 서비스를 구조하여 아이클라우드로 변환시킨 인물은 에디 큐였다.

잡스 최고의 문제해결사이자 연예 업체들의 문을 열 줄 아는 인물로서 큐는 애플의 아이포드와 아이폰, 아이패드에 영화와 음악, 전자책을 공급하는 핵심적인 인물이다. 지적하건데 그런 콘텐트야말로 애플의 휴대기기에 대한 수요를 폭발시키는 주역이다. 달리 말해서 5,600억 달러 어치의 시가를 올리게 하여 애플의 가치를 세계 최대 급으로 올린 기기들을 뒷받침해준 인물이 큐라고 할 수 있다.

에디 큐가 승진하고 3,70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은지 얼마 안 되어, 애플 내부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이었던 포스탈이 애플을 떠난 것은 애플 관측통들에게 있어서 놀라운 소식이 아니었다. 한 전직 직원에 따르면 큐의 “사교적인 지능이 매우 높다”고 한다. 동종 업계 인사들에게 좀처럼 없는 성격이자 잡스에게도 없었던 것이다. 대변인을 통해 큐는 본 기사를 위한 코멘트를 거절했다.

The tough negotiator

그렇다고 하여 희끗희끗한 머리의 에디 큐가 다루기 쉬운 인물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잡스와 큐를 상대했던 기업들 중역에 따르면 큐가 당근만이 아니라 채찍 역할도 대단히 많이 했다고 한다.

2006년 4월, 톱 4개 음반사 중 하나인 워너 뮤직 그룹은 캘리포니아 팜스프링 근처에서 내부적인 이벤트를 개최했다. 워너의 “아티스트 및 레퍼토리” 부서와 그 외 크리에이티브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위한 이벤트였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큐가 초청연사로 등장했다.

Eddy Cue: The godfather of iTunes | CNET TV | Video Product Reviews, CNET Podcasts, Tech Shows, Live CNET Video

당시 워너는 애플과 함께 아이튠스 음악의 라이선스를 두고 협상중이었다. 워너 중역들은 이 이벤트에 참석한 큐를 설득하여 주요 협상 쟁점을 워너에 유리하게 설득하려 했다. 그러기 위한 이상적인 이벤트였다. 소식통에 따르면 큐가 무대에 서기 한 시간 전, 워너사 간부들은 그에게 반대할 수 없으리라 여긴 제안을 했다. 다른 주요 음반사들과 마찬가지로 워너는 아이튠스의 가격대를 다양하게 하고자 했고, 애플만이 아닌 다른 뮤직플레이어용 스토어도 열기 원했었다. 당시 아이튠스의 곡들은 모두 다 가격이 99 센트였고 아이포드에서만 재생 가능했다.

큐는 워너사 간부들의 말을 경청했다. 그들은 그에게 모든 노래가 똑같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가격도 그 배경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큐에게 애플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기존 계약이 곧 만료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도 일러뒀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끝나자마자 큐는 전혀 주저하지 않은 채 차분히 애플은 조건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갱신 없이 계약이 종료된다면 애플은 워너 사의 음악을 아이튠스에서 끌어 내리면 그만이었다. 큐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설을 마쳤다.

워너는 결국 아이튠스와의 계약을 갱신했고 그 후로 3년간 애플 뮤직 스토어 내의 가격은 변함이 없었다.

그렇다. 큐는 전혀 아이튠스 스토어를 양보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현재 애플은 그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경쟁적인 상황을 맞이했다. 아마존 킨들 태블릿과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로 움직이는 휴대폰들이 아이패드와 아이폰에게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과 안드로이드 모두 콘텐트 라인업에 대해서는 애플에 근접하고 있다. 월요일, 구글은 처음으로 안드로이드가 모든 메이저 음반사와 최고의 영화 제작사들로부터 노래와 영화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A tougher road ahead

더 격심한 경쟁은 중요한 연예 카테고리에서 애플이 지닌 영향력을 끌어내리고 있다. 음반업계 내부 관측통에 따르면 아이튠스 상의 음악 매출은 기존 상태 그대로이다. 구독형 온라인 주문 음악 서비스인 Spotify와 유명 웹 라디오 서비스인 Pandora와 같은 경쟁자들이 음악 청취자들을 빼앗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사와 방송사 간부들에 따르면, 아이튠스의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 판매 및 대여 또한 제작사와 방송국들에게 큰 수입을 올려준 적이 없다고 한다. 전자책에서는 애플의 전략 자체가 공격을 받았다. 잡스와 큐가 미국 주요 출판사들과 함께 애플 아이패드를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전자책 가격을 고정시켰다면서 미국 법무부가 잡스와 큐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소문만 무성한 애플 텔레비전이 현실화됐을 때 애플 티비를 위해 드라마와 영화를 끌어들이려는 협상을 밤낮으로 해야 한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마스타 협상가이자 제품 소생자이기도 한 큐는 이제 그 언제보다도 애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음악과 스포츠, 텔레비전 및 영화 업계의 중역들 10명과 가진 인터뷰로 판단해 볼 때, 큐는 일단 그들과 함께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그들의 사업방식을 배워서 그들을 감동시킨다고 한다. 게다가 가능한 경우, 큐는 협상 상대방 중역들이 목표 달성을 하도록 도와줘서 그들의 보스에게 좋게 보이도록 오히려 도움도 준다고 한다. 선물도 주고 문의에는 빠르게 응답한다. 그래서 큐와 친구가 된 주요 음반사와 헐리우드 제작사 전현직 간부들이 많다.

한 음반 업계 중역에 따르면, 주요 음반사와 함께 분기별 검토를 시작한 장본인이 큐라고 한다. 현재 분기별 검토는 이제 음반사 대부분에 퍼져 있으며, 애플과 음반사 간부들이 모여서 판매 현황과 출하 일정, 신인 아티스트와 홍보를 논의한다. 목표는 당연히 멋지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큐는 애플의 서비스가 경쟁사 서비스보다 앞서나갈 수 있도록 강력한 끈을 유지하려 노력중이다.

애플의 주요 경쟁 간부들과는 달리 큐는 음반사 중역들에게 주의 깊게 대한다고 한다. 가령 잡스는 음반사 간부들이 “기술에 대해 무식하다”는 말도 했었다. 그 대신 큐는 그들에게, “여러분은 훌륭한 콘텐트를 만들어내는 전문가입니다. 우리는 소비자가 그 콘텐트를 맛볼 수 있도록 하는 전문가이고요.”라 말했다고 한다.

The Apple agenda

심지어 큐는 애플의 의도를 숨기려 하지 않아서 신뢰감을 얻었다고 한다. 2004년, 큐는 애플이 애플 기기 판매 수단으로 미디어 판매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분명히 말했었다. 큐는 전문 잡지인 Music Week에 이렇게 말했다. “음반 사업보다 아이포드의 마진이 더 좋습니다.”

그동안 음반사 측을 대표해 온 변호사로서 큐와 협상을 해 왔던 크리스 캐슬(Chris Castle)의 말이다. “큐는 분명 이타적인 분입니다. 당연히 어젠다를 갖고 있죠. 그는 애플의 이해관계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말한다는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만, 동시에 그는 공정하게 나오기를 바랍니다. 애플은 다른 업체들처럼 음악을 훔치려 든 적이 전혀 없다는 말이죠. 애플은 콘텐트를 신경 쓰며, 훔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을 에디가 하면, 매우 공정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가 애플과 주요 음반사 간의 전쟁을 막았을 때가 아마 전성기였으리라는 말도 있다 2007년, 당시 유니버설 뮤직 그룹의 CEO였던 더그 모리스(Doug Morris)는 유니버설이 더 이상 다년간 계약을 맺지 않겠으며, 월별로 계약을 갱신하겠노라고 애플에게 통보했었다.

유니버설의 움직임이 가진 의미는 분명했다. 아이튠스가 음반사에게 가격 통제권을 더 주지 않으면, 그리고 아이튠스가 자신의 생태계를 다른 음반 판매자에게도 개방하지 않으면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얼마 있지 않아 소니 뮤직 또한 아이튠스에서 노래를 빼겠다 위협했다. 2009년 큐는 애플이 월별로 모든 음반사들과의 라이선스를 갱신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로써 애플과 음반사들은 30일 이전의 통보로 계약을 종료시킬 수 있었다.

그 후 큐는 이런 벼랑끝 전술이 상호파괴적이라 말했다. “우리 모두 핵을 갖고 있고 어느 때이건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분쟁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서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한 음반사 간부의 말이다.

“그가 그 말을 한 이후로 관계가 훨씬 나아졌어요. 모두들 무기를 들려할 때 그가 정말 기민하게 대처했어요. 그 결과 모두들 무기를 내려 놓았습니다. 이 정도면 아시겠죠.”

2009년 12월, 애플은 음반사들이 노래 가격을 $1.29로 올리거나 $0.79로 내릴 수 있도록 허용하겠노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반대급부로 음반사들은 비판을 많이 받아 온 디지탈 권리 관리의 상당 부분을 없애는 데에 동의했다.

단 에디 큐와 출판사들의 관계는 음반사들처럼 따뜻하지 않았다. 큐와 협상한 후 한 좌절한 출판사 간부는 Adweek에 애플이 “보통의 표준에 따라 돌아가지 않는다”며 불평했었다.

The Duke guy

큐는 연예 업계 최고의 체스 플레이어만이지만, 그의 이력을 보면 지금 하고 있는 연예 업계의 허브 역할이라거나 잡스와 같은 보스를 모시는 일과 별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큐는 마이애미에서 자라났다. 플로리다 코랄 케이블스의 Deerborne 고등학교를 나온 후, 그는 학교 대표 농구팀에서 선수로 뛰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다니엘 모라노 살먼(Danielle Morano Salman)에 따르면 그는 학교에서 유명했다. “그는 튀었어요. 고급반에 항상 있으면서 누구와도 친구가 됐고 항상 자기 비전을 갖고 있었어요… 항상 자기가 듀크 대학교에 가리라 알고 있었죠.”


Eddy Cue (sitting, second from left), is a graduate of Duke University and a huge Blue Devil fan. Coach Mike Krzyzewski joked that the night Cue sat on the team’s bench may have been ‘the first time in his adult life he’s worn a tie.’
(Credit: Duke Blue Planet)

큐는 듀크 대학에서 경제학과 컴퓨터학 전공으로 1986년 졸업했다. 그래서 그는 Blue Devils의 열정적인 팬이다. 그의 사무실에는 듀크 대학교의 유명한 선수들 사진과 포스터로 뒤덮여 있다. 한 번은 듀크 대학교의 전설적인 농구 코치, 마이크 슈셉스키(Mike Krzyzewski)와 듀크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이 찍힌 적도 있다. 그와 큐는 “가깝다”고 한다. 슈셉스키의 말이다.

“큐는 정말 열의가 넘치고 열정적입니다. 엄청납니다. 코치로서나 사업가로서나 성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죠.”

큐는 1989년 애플의 IT 부서에 입사하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과 소비자 서비스부로 빠르게 승진했다. 1998년, 그는 애플 온라인 스토어 창설을 도왔다.

2003년 4월 28일, 큐는 아이튠스 뮤직스토어(현재는 아이튠스 스토어로 불리고 있다)의 개장을 맡았다.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의 눈부신 성공은 실리콘밸리의 전설이 됐을 정도다. 약 1년 후, 아이튠스는 1억 곡 이상을 판매했고, 3년 후에는 10억 곡을 판매했다. 올해 9월 기준으로는 200억 곡 이상이 아이튠스를 통해 판매됐다.

음반사를 맡았던 캐슬 변호사에 따르면 잡스의 협상 스타일은 큐와 전혀 다르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가 여러분 보고 원시인이나 할 생각을 한다면 가만 있겠습니까?” 잡스는 애플 직원들에게도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아이튠스와 최초의 협상을 해낸 워너사의 전 중역인 폴 비딕(Paul Vidich)은 큐가 잡스의 완벽한 기질을 가졌다고 기억한다.

“스티브와 함께 성공하려면 산소를 두고 경쟁해서는 안 됩니다. 잡스가 잡스답게 있도록 해 주고, 스스로를 위해 찾던 더 위대한 영광을 비추도록 놓아 둬야 해요. 에디는 정말 차분한 태도를 가졌죠. 절대로 자기를 보라고 한 적이 없어요. 그저 훌륭하게 일을 해냈을 뿐입니다.”

큐와 협상했던 다른 중역의 말이다.

“에디는 다른 사람들을 신경 안 써요. 주목 받고 싶어하는 화려한 간부들 말이죠. 그는 모든 일이 잘 돌아가는지 엔진방에서 확인하는 것으로 족하는 사람입니다.”

큰 문제가 터졌을 때의 해결사로 큐를 잡스가 신뢰했다는 점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잡스는 문제투성이의 모블미 온라인 서비스를 2008년 큐에게 맡겼고, 2011년 10월, 그는 모블미를 아이클라우드로 바꿨다. 7월 애플 발표에 따르면 아이클라우드 사용자는 1억 5천만 명이라고 한다.


Apple CEO Tim Cook
(Credit: James Martin/CNET)

What’s next

큐는 이제 애플 콘텐트 사업을 홀로 맡게 됐다. 그를 아는 이들에 따르면 큐가 아이튠스의 앱과 연예 오락 콘텐트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할 정도로 똑똑하고 능력이 충분하다고 한다.

한 음반사 관계자는 애플이 아이튠스에서 거둬들이는 30% 수수료를 낮추라고 큐를 설득하려 했었던 일을 기억한다. 큐는 말 그대로 의자 깊숙이 앉아서 발을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그는 음반사에 대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그리고 아이튠스를 통해 팔고 싶어하는 이들에 대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알고 있습니다. 애플에게는 좋은 일이에요. 다른 이들로서는 협상하기 껄끄럽겠지만요.”

물론 그는 자기가 원하는 조건을 얻어내지 못했다.

비딕에 따르면 큐는 아마 잡스 없이 아이튠스를 이끌어 갈 기술을 터득하고 확실히 자리 잡은 서비스 감독의 혜택도 받았으리라고 한다. 비딕의 말이다.

“그와 그가 가진 사려 깊고 차분한 태도를 정말 본경합니다. 기술 업계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요. 그는 협상할 때 우리 말을 잘 듣습니다. 라이선스 협상에서 물론 그는 스티브의 그림자에 가려 있었지만… 지난 5년간 그는 정말 성장했어요.”

애플이 계속 나아가려면 큐는 계속 자라나고 협상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가 물려받은 문제도 해결하면서 말이다.

Right on Cue: Can iTunes chief fix Apple’s maps and Siri? | Apple – CNET News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Apple doing fine a year after Jobs’ death

James Temple, Chronicle Columnist
Updated 11:06 p.m., Thursday, October 4, 2012


This is a 1977 photo of Apple Computer Inc. founder Steve Jobs as he introduces the new Apple II in Cupertino, Calif. Apple Computer was formed 20 years ago, on April Fool’s Day in 1976.

저널리즘의 진정한 왜곡은 좌파냐 우파냐가 아니라 분쟁을 일으키는 법이다.

1년 전 금요일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이래 언론은 애플이 실수할 때마다 공동 창업가 잡스의 비전이 없기 때문이라는 만병통치약을 만들어 놓았다.

MarketWatch와 Huffington Post, Time, CNBC, PC World 등 모두가 똑같은 머리말을 두고 질문을 던져 놓았다. 애플이 자신의 길을 잃었는가?

저항할 수 없을 주제이기는 하다. 잡스를 축출했던 1985년 이후 애플은 발을 헛디뎠으며, 결국 사망의 문턱까지 가기도 했다가, 1997년 잡스의 CEO 등극으로 멸종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그리고 잡스는 애플을 제일 성공한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픽사 역시 부활시켰기 때문에 잡스는 실패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신화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영웅의 이야기에는 한 가지 통합적인 가정이 있다. 다른 영웅은 없다는 것이다. 즉, 다른 어떠한 리더도 잡스의 일을 해 낼 수는 없다.

저널리즘으로 말하자면, 사실들이 좋은 이야기를 방해하기 때문에 매우 나쁘다. 이 시점에서 애플이 부진하다고 말한다는 것은 터무니 없다. 잡스가 사망한 이래 애플 주가는 거의 80%가 상승하였으며, 시가 6,260억 달러로 올라섰다. 이로써 애플은 순수한 달러 기반으로 역사상 최대 가치를 갖는 회사가 됐다. 지난 달, 최신 기종으로 나온 아이폰 5는 24시간만에 200만 대 이상이 팔렸으며, 이는 이전 기록의 두 배 이상이었다.

애플이 길을 잃었다고?

답변: 아니다. 그리고 그만 좀 질문해라.

“Always On: How the iPhone Unlocked the Anything-Anytime-Anywhere Future – and Locked Us In.”의 저자이자 뉴욕타임스의 기자인 브라이언 첸(Brian Chen)의 말이다. “그런 식으로 하면 이야기를 만들기가 정말 쉽거든요. 진부한 논평입니다. 잡스 사망시에 애플은 세계에서 제일 성공한 기업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The real questions

흑백논리를 벗어나 보면 완벽하게 적절한 질문이 없지 않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이래로 애플에게 새로운 도전이 생겼는가? 애플이 혹시 실수를 지절렀는가? 애플은 변했는가?

답변: 예스, 예스, 예스.

모두 예스라고는 해도 사과가 썩고 있다는 기미는 아직까지 전혀 없다.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통해 스마트폰과 태블릿용 소비자 시장에 숨결을 넣어 줬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범주 안에서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지금까지 최대로 많이 팔린 제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바일, 혹은 “포스트-PC” 세상의 경쟁은 날로 심화되어가는 중이다. 구글과 삼성, 아마존과 같은 경쟁사들이 턴-바이-턴 길안내와 음성 검색, 4G 속도 등, 특정 기능을 먼저, 더 좋게, 더 저렴하게 선보여 왔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기술 언론과 소비자들은 애플의 품질 기준이나 단순성이 미끄러졌는지를 요란하게 논의해 왔다. 쉽사리 당황하게 만드는 애플의 개인 디지탈 비서, 시리의 단점을 지적하는 것은 거의 스포츠가 됐을 지경이다. 더군다나 애플이 이제 막 내놓은 지도 앱의 터무니 없는 실수는 일 주일 내내 부정적인 기사의 단골 주제였으며, 결국 CEO 팀 쿡의 공개사과까지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모두를 적절한 맥락으로 생각해 보자.

첫째, 모바일 시장은 성숙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경쟁 심화와 느려지는 발전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둘째, 잡스가 있을 때에도 애플은 실수를 저질렀다. 모블미와 핑, G4 큐브를 기억하시는가?

셋째, 시리와 지도의 오류는 일단 애플이 전통적으로 보여 온 제품 디자인과 쉬운 사용성 등 원래 애플이 보여준 분야가 아니다. 시리와 지도는 애플이 온라인 서비스로 서비스를 확장해 나가면서 받는 성장의 고통을 반영한다. 인공지능과 검색과 같은 일은 애플로서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다.

Insufficient data

지도와 시리와 같은 제품에서 나오는 특정한 결점은 일단 충분치 못한 데이터 때문이다. 정보를 쌓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품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시켜서 사람들이 사용하고, 서로 반응하게 하여 서비스를 꾸준히 개선시키는 것이다.

설사 지도가 대실패작이라 하더라도 실패라는 결론까지 내리면, 그것은 하나의 데이터 포인트로부터 차트를 그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직 아무데도 안 갔는데 말이다.

포천지의 수석 편집자이자 “인사이드 애플”의 저자인 애덤 라신스키(Adam Lashinsky)는 “이번 지도 일을 갖고 ‘사례’로 삼기에는 너무 일러요. 너무 작기도 하죠.”라 말한다.

여기에 보다 큰 주안점이 있다. 기존 기기의 업데이트와 소소한 기능상의 조짐이나 개선 가지고 애플의 지속적인 훌륭함의 잣대로 삼을 수는 없다. 애플이 과연 대중의 인상을 사로잡을 만한 혁명적인 신제품을 계속 소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을 알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함이 당연하다.

우선 혁명적인 신제품은 자주 나오는 법이 없다. 잡스가 애플에 수 십 년 있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혁명적인 신제품이라 할 만한 제품은 손에 꼽힌다. 애플 II와 매킨토시, 아이포드, 아이폰, 아이패드 정도이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애플은 적어도 2년 앞서서 제품 로드맵을 세워 놓기 때문에, 잡스는 아마 다음 큰(big) 제품이 무엇이건 간에 손을 댔을 것이다. (가장 가능성 높은 후보는 차세대 텔레비전이다.) 첸의 말이다.

“팀 쿡 하의 애플이 어떨지 분명한 추론을 내릴 수 있으려면 아마 한 해 정도는 더 지나야 할 겁니다.”

Double-edged sword

라신스키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1등 애플에게 있어서 최대의 도전은 아마 애플 자신일 수 있다고 한다. 애플은 더 이상 언론과 팬보이들 사이에 뿌리박은 채, 마이크로소프트의 발목을 꼬집는 잠재력 있는 회사가 아니다. 애플 자체가 이제 일류 기업이 됐다.

역사를 보면 회사가 더 커질수록 “혁신의 딜레마”를 탈출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파괴적인 기술에 운을 맡겨서 현재의 돈벌이를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으려 들기 때문에 오히려 덫에 걸리고 만다는 의미다.

애플은 대체로 그 덫을 피해 왔다. 아이폰은 아마도 아이포드를, 아이패드는 아마도 맥북의 판매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플은 미래의 승리에 더 많은 것을 걸었다.

스스로를 희생시켜 가는 일이 계속 일어날지야말로 애플 문화의 변화를 가늠해 보는 주요 테스트가 될 것이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애플처럼 팀 쿡의 애플이 될 리 만무하지만, 팀 쿡은 이미 애플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More flexible

지도에 대한 사과에서 보듯, 쿡 치하의 애플은 보다 유연해지고 덜 오만해졌다. 그는 그동안 숙원이었던 현금 배당을 투자자들에게 실시했고, 중국 내 공장 노동조건의 개선을 추진했으며, 기업 자선 기부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애플은 권력을 보다 수석 간부진에게 더 넘겨줌으로써 독재적이라기보다는 과두체제로 변모했다. 애플 캠퍼스를 채우던 공포감은 소문에 따르면 거의 소멸됐다고 한다.

더 행복해진 직원들이 더 나은 제품을 만들까? 부하를 질책하고 직원들 아이디어를 자기 것으로 만들며, 실패의 희생양을 찾는 것으로 악명 높던 잡스의 의지야말로 애플 “매직”의 필요한 자양분이었을까?

필자의 경우 어떤 대답을 원할지는 알고 있지만, 사실 어느 누구도 그 대답을 하기에는 너무 이르며, 필자는 그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James Temple is a San Francisco Chronicle columnist. E-mail: jtemple@sfchronicle.com Twitter: @jtemple

Apple doing fine a year after Jobs' death – SFGate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Who Designs Apple’s Incredible Stores?


Apple Store: 5th Ave., New York

5번가의 “큐브”와 상해에 있는 실린더형 유리 타워. 루브르에 있는 지하 스토어, 등 애플의 대표적인 소매점은 독보적이다. 하지만 그 디자인은 모두 같은 건축가가 하였다.

애플의 유리형 스토어의 모든 모양과 크기는 펜실베니아에 있는 건축사무소인 Bohlin Cywinski Jackson에서 디자인했다. BCJ는 십여 명의 건축가 및 디자이너를 고용했지만 애플 스토어 디자인에서 제일 책임을 질만한 팀원 한 명이 누구인지에 대해 중지를 모으지는 못했다. (위키피디어는 이 모든 것을 창립 파트너인 피터 볼린(Peter Bohlin)에게 돌렸지만 이 정보는 확인이 안 됐다.)


Apple Store: Carrousel du Louvre

애플의 놀라운 소매점은 BCJ를 얼마나 높여 놓았을까? 실제로 애플스토어의 유명세때문에 BCJ의 국제적인 명성이 올라갔다… 1965년에 설립된 BCJ는 프린스턴과 예일 대학교 등 전세계 주요 대학의 시설, Falling Water의 “the Barn”, Grand Teton National Park Discovery와 방문센터, 어도비 샌프란시스코, 애플의 자매사인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본부 등을 작업했다.

BCJ는 애플 스토어의 위치에 걸맞게 스토어 디자인을 책임졌다. 가령 루브르에 있는 애플 스토어를 보면 카루셀 뒤 루브르(Carrousel du Louvre) 지하의 거꾸로 매달린 유리형 피라미드에 맞도록 공간을 디자인했다. BCJ에 따르면 “카루셀 벽의 조형물이 애플 스토어로 확장되어서 공간을 틈 없이 통합시킵니다.” BCJ는 뉴욕 5번가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리 큐브 스토어의 원통형 유리 엘리베이터도 별도로 디자인했다. 큐브는 GM 빌딩 맞은 편의 플라자와 어울리도록 만들어졌다.


Apple Store: Grand Central Station, New York

제약이 있는 공간인 Grand Central 기차역 중앙 홀의 위쪽 발코니를 점유한 애플 스토어도 BCJ가 디자인했다. 손님들 머리 위로 달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디자인에 제약이 좀 있었다. BCJ는 제품이 놓여 있는 탁자에 별도로 제작한 전등을 달았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 할 디자인이었다. 이런 식으로 BCJ는 어떻게든 기차역의 역사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미니멀리즘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BCJ의 창조적인 자세도 자세이지만, 큐브나 원통형과 같은 애플의 고유 디자인을 애플이 모두 특허화시켰거나 출원중이라는 사실을 지적해야겠다. 그리고 그 특허의 발명자로 맨 위에 올라와 있는 이름은? 다름 아닌 스티브 잡스이다. 특히 디자인 디테일에 대해 신경쓰는 것으로 잘 알려진 잡스는 애플의 소매점에 관한 모든 부분에 대해서도 집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구조적인 엔지니어링같은 큰 일 대부분은 BCJ가 했으리라 생각하지만 전체적인 디자인을 그가 손봤음은 분명하다. 가령 BCJ는 완전히 유리로만 만든 회전형 계단(한 층 이상 있는 스토어에 쓰이는 계단이며, 정말 놀라운 공학적 기적이다)의 직접 책임자는 분명 BCJ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스티브 잡스는 쿠퍼티노의 “모선(母船)”이라 불리는 새로운 애플 본사 디자인을 맡을 사무소로 BCJ를 택하지 않았다. 그는 거대한 현대 구조물에 특화되어 있는 Foster & Partners에게 디자인을 의뢰했었다.

Who Designs Apple’s Incredible Stores?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apple faster than you

Someone is Coming to Eat You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애플 제품 발표회 중 하나가 2005년 7월의 뮤직이벤트였다. 이 발표회에서 스티브 잡스는 무대 위에 올라 평상시처럼 사업실적 소식을 알렸는데, 이전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발표를 그가 했었다. 대성공을 거두고 있던 제품을 죽여버린 일이다.

아이포드 미니는 당시 제일 유명한 소비자용 가전제품 중 하나였다. 미니는 당시 급성장중이던 아이포드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었다. 아이포드 미니는 제일 소비자에 친숙한 가격대에서 크기와 세련된 금속 재질, 여러가지 색상으로 사랑받던 기기였다. 그런데 애플이 그것을 죽여버렸다. 애플은 플래시 메모리로 아이포드를 완전히 재디자인했고 미니의 이름과 디자인을 없애버렸다.

미니의 뒤를 이은 제품은 플래시-기반의 아이포드 나노였다. 플래시 메모리 가격이 아마 나노를 나오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미니를 없앴을까? 미니는 1년 반동안 시장에 있었고 그 당시에도 애플은 미니의 재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정도로 잘 팔리는 제품을 어째서 없애는가? 생각컨데 그 이유, 더 중요하게는 애플의 새로운 전략이 기조연설 일부에 등장했었다. 스티브는 미니의 경쟁자들을 몇 가지 슬라이드로 보여줬다. 별로 놀랍지 않았다. 여러모로 미니와 닮은 제품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따라오게 놔두느니, 차라리 게임 자체를 바꿔버린 것이다.

스티브 잡스 스스로가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지 그 비밀을 보여준 순간이 있었다면 아무래도 이 때였을 것이다.

Faster Than You

히트작이 있다? 축하한다. 아마도 최고라는 제품을 만드셨을 것이다. 중대한 순간이니 그대로 가시라. 하지만 다음에는?

“매우 오랜 기간동안 성공을 누리고 있으니, 이제는 좀 숨 돌릴 시간을 가져야겠다.”

여러분의 목표가 이런 한 번의 승리라면? 이루고자하는 바를 모두 다 이뤄냈다면야 괜찮다. 1회전으로 끝이다. 하지만 성장이 목표라면? 이번 승리를 바탕으로 더 많은 성공을 원한다면 일단 숨 돌릴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발상은 틀린 전략이다. 정말로 잘못된 전략이다.

여러분의 성공은 여러분 경장자의 전쟁계획이기도 하다. 또한 여러분의 성공은 한 전략이 먹혔다는 인식을 공식 인증해준 것이다. 참 잘 했고 팀이 지치기도 했을 테지만 쓴 소리를 좀 하겠다. 여러분의 성공이 여러분 최악의 적이다. 그만큼 힘들여 거둔 성공일수록 그 성공은 저주이다.

성공은 물론 달콤하다. 경쟁자들은 여러분의 성공을 보고, “이야, 저들이 해냈으니 당연히 누구라도 할 수 있겠다.”라 여기게 마련이다. 불행히도 그들이 옳다. 여러분의 성공은 성공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을 다 드러냈다 할 수 있으며, 그렇다. 악마는 디테일 안에 숨어 있다. 성공을 이루기 위해 발품을 팔았던 일이 다 경쟁자를 위해 했던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은유를 통하면 나쁜 뉴스는 더 있다. 성공때문에 경쟁자가 이제 당신을 쫓게 됐으며, 정의상 당신보다 더 빠르고 열심히 뛰어야 따라잡을 수 있다. 그렇다. 잠재적인 수많은 경쟁자들이 합법적인 위협을 야기하기도 전에 실패하고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정말 따라잡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들의 가속도는 어떨까? 당신보다 빠를 것이다.

이런 제길.

승리의 보상은 당신이 이겼다는 인식 뿐이다. 재능을 자축하고 더 이상 결승선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다음 목표를 놓칠 것이다. 그냥 그대로 안주하면서 기존의 성공을 누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략적인 태만이다. 누군가 다가와서 여러분을 앞지르리라는 사실을 잊고 있어서 그렇다. 그냥 그들이 오는 광경을 보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이미 늦었다. 노키아나 RIM을 보시라.

The Devil in the Details

현재 애플 최대의 경쟁사는 애플 그 자신이며 스티브 잡스는 이 사실을 쫓겨났을 때 힘들게 배웠으리라고 본다. 복귀했을 때 그가 제일 먼저 고용한 사람이 바로 팀 쿡이었다. 팀 쿡이 산업공학 학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엔지니어나 디자이너, 혹은 시인이 아니다. 팀 쿡은 실행머신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덕분에 애플은 과감하게 아이포드 미니를 죽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제조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하고 그 대신 공급망에 집중하면서 그는 실로 마진을 대단히 많이 개선시켰다. 대차대조표가 매력적으로 바뀌었으니 그만큼 베스트셀러를 죽이기는 훨씬 더 쉬웠다. 하지만 쿡이 애플에게 한 더 거대한 기여는 신제품을 정말 빠르게 만들고 선적시킬 수 있도록 한 운영팀이었다.

가을에는 새 아이폰 하드웨어가 나오고 내년 봄에는 새 아이패드가 나올 것이다. 경쟁사보다 디자인만 앞서나가는 것이 아니라 실행도 앞서나가야 한다는 점을 스티브 잡스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애플은 제품 디자인만큼이나 수 백만 대의 제조를 원하는 때에 바로 만들어낼 줄 아는, 일종의 양손잡이(ambidextrous) 조직이다.

최근 WWDC에서 혁명적인 제품이 전혀 없었다 여기신다면, 혹은 전혀 그런 소식을 못 들으셨다면 애플이 얘기하던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말하고 싶다. 이번 맥북프로를 발표할 때 필자가 느꼈던 것이 바로 아이포드 미니였다. 맥북프로는 지구상에서 제일 섹시한 금속 판때기임은 분명하지만, 애플이 끊임 없이, 고통스럽게 실행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 제품이 맥북프로이다.

그렇다. 모두 다 전에 들어보셨을 것이다. 레티나 화면에 더 얇고 더 빠르다 등등, 하지만 애플이 디자인에 있어서 모든 것을 다시 상상했다는 말을 필자는 믿는다. 맥북프로에서 이룬 디자인 중에 분명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도 들어갈 못 들어본 부분이 있으리라 기대한다. 경쟁우위를 줄 디자인이다. 또한 그런 디자인을 실행하면서 배운 교훈으로 애플은 성공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계속 성공을 구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경쟁사들로서 애플을 따라잡으려면 얼마나 걸릴까? 과거에 대해 개똥만큼의 관심도 안 주는 사람들이야말로 미래를 발명한다. 모르긴 몰라도 그 사실을 애플이 알고있다는 점만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다.

Rands In Repose: Someone is Coming to Eat You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