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 글래스의 탄생

고릴라 글래스의 탄생

고릴라 글래스의 탄생


Glass Works: How Corning Created the Ultrathin, Ultrastrong Material of the Future

By Bryan Gardine September 24, 2012 | 6:30 am


Molten glass cools to become so gummy it can be cut with scissors.
Photo: Max Aguilera-Hellweg

돈 스투키(Don Stookey)는 알고 있었다. 실험을 자기가 망쳐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1952년의 어느 날, 코닝글래스웍스(Corning Glass Works)의 화학자 돈 스투키는 감광성 유리의 샘플을 용광로에 넣고 온도를 600도로 맞춰 놓았다. 용광로가 돌아가자 불완전한 컨트롤러가 온도를 900도로 올려버렸다. 스투키는 녹은 유리 방울과 폐허가 된 용광로를 예상하고 문을 열어 보았는데, 수상하게도 그의 리튬 규산염은 우유 빛깔의 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판을 제거하려 하자, 그가 집어 넣었던 샘플은 집게에서 떨어져 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깨졌을까? 아니다. 튀어 올랐다.

미래의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될 화학자 스스로는 몰랐지만, 그는 막 최초의 인조 유리-세라믹을 발명했고 코닝 측은 나중에 이 인조 세라믹을 강화 내열 유리, 즉 파이로세럼(Pyrocerum)이라 이름 붙였다. 알루미늄보다 가볍지만 고탄소강보다 더 단단하고 보통의 소오다 석회 유리보다 수 배는 더 강력한 유리로서, 파이로세럼은 미사일 노즈콘에서 실험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쓰였다. 심지어 파이로세럼은 전자렌지에도 사용할 수 있었으며 1959년 코닝은 우주시대의 접시, 코닝웨어(Corningware)의 라인을 선보였다.

카이로세럼은 코닝의 효자 상품이었으며 코닝은 곧 머슬(Muscle) 프로젝트를 발족시켰다. 유리를 강화할 다른 방법을 찾아내는 거대 연구개발 프로젝트였다. 과학자들이 고온의 칼륨 소금 안에 유리를 적시는 등, 강화 작업을 수정해 보자 또다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칼륨 소금 안에 적시기 전에, 알루미늄 산화물을 집어 넣자 유리의 내구성이 한 층 더 강화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곧 9층 짜리 연구소에 설비를 갖다 넣고 유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내부적으로 0317, 얼린 치킨이라 알려져 있던 이 유리는 1평방인치 당 10만 파운드의 압력도 견딜 수 있었고 어떠한 각도로도 굽히거나 휠 수 있었다. (보통의 유리는 7천 파운드 정도만 견딜 수 있다.) 1962년, 코닝은 켐코(Chemcor) 브랜드로 이 유리를 마케팅하기 시작했다. 공중전화기의 유리나 감옥의 창문, 안경 등에 쓰이리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관심은 많이 받았지만 실제 매출은 느렸다. 안경용으로 소량 주문한 기업들이 있기는 했어도 안경이 깨질 경우 어떻게 될지 몰라서 리콜하는 경우 또한 있었다. 켐코는 좋은 자동차용 바람막이 창이 될 수 있었으나 American Motors의 Javelin에 실제로 달려 나왔을 때, 제조업체 대부분은 새로운 강화 유리에 더 돈을 써야 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30년대에 개발한 합판유리로 충분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코닝은 아무도 원치 않은 값비싼 업그레이드를 발명한 셈이었다. 충돌 테스트에서 탑승자 가속도가 현저히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켐코의 판매에는 도움이 되지 못 했다.

포드 자동차나 다른 업체에 대한 판매 노력이 무산되자, 머슬 프로젝트는 문을 닫았고 켐코 역시 1971년 생산이 중단됐다. 올바른 문제가 나타날 때까지는 아직 기다려야 할 솔루션이었다.


When glass is hardened and strengthened it can withstand huge amounts of force from a lever press.
Photo: Max Aguilera-Hellweg

하늘에서 보면, 북부 뉴욕에 있는 코닝의 본사는 Space Invaders의 외계인 같은 모습이다. 90년대 초, 케빈 로슈(Kevin Roche)라는 건축가가 디자인한 건물로서 블럭을 여기저기 펼쳐 놓은 형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상에서 보면 색깔이 들어간 창문과 처마때문에 본사 빌딩은 빌딩이라기보다는 화려한 미래형 일본 궁전같은 느낌이 든다.

2층에 있는 코닝 CEO인 웬델 윅스(Wendell Weeks)의 사무실에서는 셔멍 강이 보인다. 바로 이 사무실에서 스티브 잡스는 당시 53세였던 윅스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의뢰했었다. 존재하지도 않던 초박형이면서 초강력 유리를 수 백만 장 만들라는 주문이었다. 아, 그리고 6개월 안에 하시지요.

자기가 주문한 기능이 가능하다면서 아예 유리의 원칙에 대해 윅스에게 강의까지 했던 잡스와 윅스 간의 협력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그런데 코닝이 실제로 어떻게 이 유리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윅스는 1983년에 코닝에 들어왔고 2005년 최고 지위에 올라서기 전에는 텔레비전과 특수 유리 사업을 맡고 있었다. 유리에 대해 물어 보면 그는 유리를 뭔가 아름답고 이국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과학자들이 이제서야 유리의 잠재성을 열어 보기 시작했다는 투이다. 그 이야기는 감동과 진심을 담아 라디오-주파수와 투명 성질에 대한 강의로 이어진다. “유리의 디자인적 가치에는 근본적인 진실같은 면이 있습니다.” 그는 말끔한 조약돌을 들어 올렸다. “오브제-트루베(objet trouvé, 발견된 사물의 의미로서 일상적인 물건을 미술작품으로 대할 때 사용하는 단어)같은 것입니다. 부드럽지만 표면이 있죠. 이걸로 정말 원하는 바는 바로 살아 있는 겁니다. 완벽한 제품이에요.”

윅스와 잡스는 디자인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둘 다 디테일에 집착했으며, 둘 다 큰 도전과 아이디어를 중시했다. 그러나 잡스의 경영 스타일이 독재적인 데에 반해, 윅스는 코닝사의 여러 전임자들처럼 불복종을 어느 정도 독려하는 경향을 지녔다. 그의 말이다. “과학 연구원과 저 사이에는 구분이 없습니다. 여전히 고도의 긴장감이 존재하지만 매우 느슨한 방식으로, 작은 팀에서 같이 일할 수 있죠.”

코닝은 큰 기업이다. 2011년만 해도 79억 달러 매출액에 29,00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닝은 여전히 작은 기업처럼 생각하고 움직인다. 상대적으로 좀 떨어진 지역에 위치해서 더 쉬운 구석도 있다. 이직률이 거의 1% 대에 머무른 덕분에 구조적인 자산이 거대하게 쌓여 있다. (현재 97세인 스투키와 그 외 코닝의 전설과 같은 여러 인물들은 지금도 코닝의 연구개발 설비인 설리반파크의 연구소를 돌아다니고 있다.) 윅스의 설명이다. “우리는 모두 평생 코닝에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서로 알아 왔고 성공과 실패를 같이 여러 번 경험했죠.”

윅스가 잡스를 처음 만났을 때의 대화 주제는 유리와 관계 없었다. 코닝의 과학자들은 합성한 녹색 레이저 광선을 더 낫게 사용하기 위한 마이크로프로젝션 기술을 다루고 있었다.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볼 때 조그마한 휴대폰 화면으로 보고 싶어 할 사람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영사(projection)는 자연스러운 해결책이었다. 그러나 마이크로프로젝션에 대해 잡스와 얘기를 나눌 때, 잡스는 영사는 멍청한 아이디어라 일갈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더 나은 것을 작업하고 있으며, 표면 전체가 화면인 기기라 언급했다. 아이폰이었다.

잡스가 녹색 레이저를 일축했을 지는 모르겠지만 녹색 레이저는 코닝 하면 떠오르는 혁신을 대표하는 기술이었다. 워낙에 코닝의 대표적인 혁신 기술이었기에 코닝은 매년 매출액의 10%를 레이저 연구개발에 투입해 오고 있었다. 경기가 좋건 나쁘건 말이다. 2000년 통신사 거품이 터지고 광통신 주가도 폭락하자, 코닝의 주가 역시 2002년 주당 $100에서 $1.50으로 급락했다. 당시 CEO는 과학자들에게 제아무리 주가가 떨어져도 코닝은 연구를 계속 할 터이고, 연구개발이야말로 번영으로 되돌릴 길이라고 안심시켜 줬다.

코닝이 일으킨 혁신의 역사를 연구해 온 하바드 비지니스스쿨의 레베카 헨더슨(Rebecca Henderson) 교수는 코닝이 기술기반 기업으로서는 정말 보기 드문 사례라고 말한다. “스스로를 정기적으로 재발명하는 보기 드문 사례에요. 말하기야 쉽지만 실제로 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성공의 이유가 무엇일까?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만이 아니라 신기술을 대규모로 어떻게 만들어내느냐도 할 줄 알기 때문인 이유가 있다. 실제로 코닝이 어떠한 성공적인 신기술을 개발했을 때에도, 지속가능한(그리고 이윤도 가능한) 혁신 시장을 찾기에 수 십 년이 걸릴 때도 종종 있었다. 헨더슨의 지적에 따르면 코닝의 혁신은 실패한 아이디어를 기꺼이 받아들여서 다른 곳에 응용했기 때문이다.


Glass starts out as a mixture of very fine powders like limestone, sand, and sodium borate.
Photo: Max Aguilera-Hellweg

2005년에 실패한 켐코의 샘플에 얹혀 있는 먼지를 걷어 내보자는 아이디어는 애플이 등장하기 이전에 나왔다. 당시 모토로라는 레이저 V3이라는 폴더형 휴대폰을 선보였었고, 전형적인 내충격성 플라스틱 대신 유리 화면을 장착하고 있었다. 코닝은 소규모 그룹을 결성하여 0317과 같은 유리를 휴대폰과 시계와 같은 기기에 넣어서 기술을 되살릴 수 있는지를 조사하도록 했다. 예전의 캠코 샘플은 두께가 4밀리미터 정도밖에 안 됐지만 더 얇게 만들 수도 있었다. 시장 연구를 하고 나자, 코닝의 간부진은 코닝이 이 특별한 제품으로부터 돈을 좀 벌어들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때 탄생한 프로젝트가 바로 고릴라 글래스(Gorilla Glass)였다.

잡스로부터의 전화는 2007년 2월에 있었다. 그당시 고릴라 글래스의 진척도는 그리 나아가지 않은 상태였지만 애플은 갑자기 1.3-mm 두께 유리의 대량생산을 요구했다. 게다가 그 유리는 화학적으로 강화된 유리로서 대량생산은 커녕 아직 만들어진 적도 없었다. 역시 대량생산된 적이 전혀 없었던 켐코를 과연 그 정도 규모로 생산해낼 수 있을까? 자동차 바람막이용으로나 생각했던 유리를 갑자기 초박형으로 만들면서도 그 강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화학적 강화 공정이 그런 유리에 대해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CEO라면 으레 그러하듯 윅스는 해 보겠다고 말했다.

유리는 너무나 친숙해서 실질적으로 안 보일 정도이지만, 현대적인 유리는 어마어마하게 복잡하다. 표준형 소다 석회 유리는 병이나 전구용으로 적합하지만 그 외 용도로는 대단히 부적합하다. 날카로운 조각으로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파이렉스(Pyrex) 유리와 같은 붕규산염 유리는 온도 변화에 강력하지만 녹이는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게다가 평판 유리를 대량생산하기 위한 방법은 단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퓨전드로(fusion draw)이고, 다른 하나는 플로우트 프로세스(float glass process)로서, 둘 다 녹인 유리를 녹인 주석에다가 붇는다. 단 유리 회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 가지 있다. 원하는 특성을 다 갖춰서 조합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이를 실제 생산공정에다가 돌려야 한다는 점이다. 즉, 어떠한 한 유리를 만들어내는 산식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나온 유리를 실제로 생산하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이다.


Corning is working on new flexible glass formulations that will ship on spools.
Photo: Max Aguilera-Hellweg

조합을 어떻게 하건 간에 거의 모든 유리에서 제일 많이 들어가는 요소는 이산화염 규소(즉, 모래)이다. 단 1,720도에 달하는 용해점을 갖기 때문에 산화나트륨과 같은 화학물질은 유리 혼합물의 용해점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그래야 생산 비용이 떨어지고 제품 만들기가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화학물질 다수는 엑스레이에 대한 저항성이라든지, 고온에 대한 저항성, 빛 굴절성, 색상 분산성과 같은 특수한 성질을 유리에다가 입혀 준다. 물론 문제점은 있다. 유리 조합이 바뀌면, 즉, 조금이라도 조합을 수정한다면 대단히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가령 바륨이나 란타늄과 같은 밀집적인 원소(dense elements)가 들어가면 용해점은 낮출 수 있지만 균일한 조합을 얻지 못 할 위험성이 생긴다. 게다가 유리의 전체적인 강도를 최대화시킬 경우, 상처가 생길 때 격렬하게 금갈 가능성도 높아진다. 유리는 등가교환의 재료이다. 이 때문에 특정 제조 공정용으로 유리 조합을 수정하는 방법을 기업들마다 최대의 비밀로 다루고 있다.

유리 제조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단계는 바로 냉각이다. 표준형 유리의 대량 생산에 있어서 유리를 점진적으로 냉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내부적인 스트레스틑 최소화시켜야 깨질 가능성을 줄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담금질(annealing)이라 한다. 하지만 강화유리의 목표는 유리의 안쪽과 바깥쪽 레이어 사이에 스트레스를 추가시키기이다. 역설적이지만 스트레스를 추가시키면 유리가 더 강력해진다. 유리에 열을 가하여 외부 표면이 부드러워지면 급속도로 냉각시키거나 불을 끄는 식으로 스트레스를 집어 넣는다. 그러면 외부는 빠르게 수축하지만 내부는 녹아 있는 상태로 남는다. 유리의 중앙부분은 냉각하면서 수축되려 하고, 외부를 잡아당기게 된다. 그러면 중앙 부분에는 팽팽한 부분이 생겨나되, 바깥 표면은 한층 더 압축된다. 단, 단단해진 외부 압축 레이어를 팽팽해진 구역으로 집어 넣으면 강화 유리도 결국 깨지며, 내열 강화에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냉각으로부터 유리를 얼마나 수축시키느냐에 따라 내구성이 정해지게 마련이고, 대부분의 조합은 보통 정도로 수축할 것이다.

압축과 팽팽함 간의 상호 작용은 루퍼트 왕자의 구슬(Prince Rupert’s drop)으로 제일 잘 설명할 수 있다. 용해된 유리 방울을 냉수에 부어 형성시키는데, 급속 냉각 및 압축된 올챙이같은 유리는 망치로 직접 여러 번 두둘기는 등, 대량의 힘을 가해도 견딜 수 있는 유리가 된다. 단, 꼬리 부분 말미에 있는 얇은 유리 부분은 취약하며, 깨뜨리는 경우 금이 시간당 2,000 마일의 속도로 퍼져 나간다. 내부 장력을 배출시키기 위해서이다. 격렬한 반응이 아닐 수 없다. 루퍼트 왕자의 구슬 실험을 하다 보면 섬광 효과를 배출할 정도로 격렬하게 폭발할 때가 있을 정도다.

60년대 개발된 강화 유리 제조기법 중 하나인 화학 처리(chemical strengthening) 기법도 이온교환을 통해 강화 레이어를 만들어낸다. 고릴라 글래스처럼 알루미노규산염의 조합에는 이산화규소와 알루미늄, 마그네슘, 나트륨이 들어가 있다. 고릴라 글래스를 용해된 칼륨염 안에 집어 넣으면, 고릴라 글래스는 온도가 올라가면서 확장된다. 나트륨과 칼륨은 둘 다 원소 주기율표에서 같은 열에 위치하기 때문에 움직임도 비슷하다. 칼륨염에서 나오는 고열은 나트륨 이온을 유리에서 계속 빼내며, 나트륨 이온과 유사한 칼륨 이온이 떠 다니다가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나 칼륨 이온이 나트륨 이온보다 거대하기 때문에 이들은 공간으 더 타이트하게 차지한다. (소형차로 가득찬 주차장을 대형차로 채워 넣는다 생각하시라.) 유리가 냉각되면 이들은 좁아진 공간에서 서로를 쥐어 짜고 유리 포면상에 응력(compressive stress) 레이어를 형성시킨다. (코닝은 시간과 열과 같은 요소를 조절해서도 이온 교환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열로 강화시킨 유리와 비교해 볼 때, 화학 처리에 따른 “stuffing”이나 “crowding” 효과는 고도로 높은 응력을 낳는다. (보통의 강화유리보다 내구성이 네 배까지 올라간다.) 게다가 어느 모양이든, 어느 두께이든 만들 수도 있다.


Engineers at Corning use an array of torture devices to test the limits of its products.
Photo: Max Aguilera-Hellweg

3월 말, 코닝은 제조법 공식을 거의 마쳐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대량 제조법이 아직 남아 있었다. 완성에 수 년이 필요한 새로운 제조 공정의 발명은 가능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애플이 제시한 기한을 맞추기 위해 코닝의 과학자, 애덤 엘리슨(Adam Ellison)과 매트 데즈네카(Dejneka)에게 임무가 떨어졌다.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공정을 수정하고 조절해서 대량 생산 기법을 알아내라는 임무였다. 대량의 얇고 깨끗한 유리를 몇 주 안에 대량생산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선택은 단 한 가지, 퓨전드로(fusion draw)였다. 퓨전드로 기법은 일단 탱크에 있던 용해된 유리를 꺼내서 아이소파이프(isopipe)라 불리는 구유로 보낸다. 이 아이소파이프 안에 모인 용해된 유리가 아이소파이프를 넘쳐나면, 아랫쪽에서 다시 합류하여 정해진 요율에 따라 롤러가 매끈한 면으로 밀어낸다. 더 빨리 밀어낼 수록 유리도 더 얇아진다.

퓨전드로 공법이 가능한 코닝의 공장은 켄터키 주의 해로즈버그(Harrodsburg)에 있다. 2007년 초, 코닝의 플랜트에 있는 15-피트-높이의 탱크 7기 모두가 가동돼 시간당 1,000 파운드 이상의 텔레비전 패널용 LCD 유리를 찍어내고 있었다. 애플의 초기 요구사항에 맞는 탱크가 1기 있었는데, 우선은 예전의 켐코 조합식을 다시 구성해야 했다. 이제 두께 1.3mm만이 아니라, 말하자면 공중전화 박스보다 더 나은 선명도도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엘리슨과 그의 팀은 6주 안에 그 일을 완수해야 했다. 퓨전드로 공정과 맞추기 위해 유리는 꽤 낮은 온도에서 츄잉검처럼 신축성을 가져야 했다. 단, 신축성을 높이려면 보통, 용해시키기가 더 어려워진다. 조합의 개별 부분 7개를 동시에 변형(여러 가지 산화물 수준을 바꾸고, 비밀 첨가물을 새로 집어 넣는 등)시킨 끝에 과학자들은 더 빠른 이온교환과 압축력을 지닌 유리를 생산하는 동시에 점착력도 늘릴 수 있음을 발견했다. 탱크는 2007년 3월, 생산을 시작했으며, 6월경, 코닝은 축구장 7곳의 필드를 채울 만한 고릴라 글래스를 생산해냈다.

5년만에 고릴라 글래스는 하나의 재료로부터, 우리가 주머니에 지니고 다니는 디지탈 현신(現身)이라 할 수 있을 기기의 물리적인 부분을 미학적으로 나눠주는 하나의 칸막이로 바뀌었다. 외부 유리를 손대고, 움직임이 데이터로 전환되면서 화면과 몸체 사이, 전자가 흐르는 서킷에 우리의 몸을 댄다. 노트북과 태블릿, 스마트폰, 텔레비전 등 그러한 기기가 전세계적으로 33개 브랜드에 750개 제품으로 나와 있다. 일상적으로 손대고 스치며 어루만진다면, 여러분도 고릴라 글래스를 만지는 것이다.

고릴라 글래스로 벌어들이는 코닝의 수입은 2007년 2천만 달러에서 2011년 7억 달러로 치솟았다. 고릴라 글래스는 비단 터치스크린에만 쓰이지 않는다. 올해 런던 디자인 페스티발에서 주요 애플 스토어 디자인 책임자 중 하나인 에커즐리 오캘리헌(Eckersley O’Callaghan)은 고릴라 글래스로만 제작한 구불구불한 조각상을 선보였다. 심지어 고릴라 글래스는 바람막이 창으로도 다시 쓰이고 있다. 코닝은 현재 스포츠카 모델에 고릴라 글래스를 장착시키는 협상중에 있다고 한다.

오늘날, 두 대의 노란색 로보트 팔이 5 평방피트 너비의 고릴라 글래스 패널을 집어 든다. 여기에 잔여물을 소거하는 석션컵(suction cup)이 유리를 나무로 만든 상자에 넣어 놓는다. 해로즈버그로부터 루이즈빌(Louisville)까지 운송된 유리는 서쪽행 기차에 오른다. 서부 해안에 도착하면 유리는 화물선에 오르거나, 중국에 있는 코닝의 “최종공장(finisher)”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고릴라 글래스는 용해 칼륨 안으로 들어가서 만질 수 있는 사각형 유리로 잘린다.

이와 같은 마술과 같은 성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 보면 고릴라 글래스도 깨진다는 소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종종 심하게 깨지는 경우도 있다. 휴대폰을 떨어뜨리거나 굽힐 때 깨지고, 깔고 앉으면 부숴진다. 어찌 됐건 고릴라 글래스도 유리이다. 그 때문에 코닝의 소규모 팀에서 고릴라 글래스를 박살내는 데에 시간을 하루 종일 보내고 있다.

나무 상자에서 금속제 실린더를 꺼내면서 제이민 아민(Jaymin Amin)은 “우리는 이걸 노르웨이 망치라 부릅니다”라 말한다. 보통은 비행기 엔지니어들이 비행기의 알루미늄 동체가 얼마나 견고한지 테스트할 때 쓰인다. 고릴라 글래스의 새로운 제품 개발을 관장하는 아민으로서는 스프링이 달린 이 망치를 갖다가 2줄(joule)에 달하는 힘을 1mm 두께의 유리에 내리쳐서 테스트를 해야 한다. 이 정도 힘이라면 나무에 큰 흠을 낼 정도의 힘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릴라 글래스의 성공때문에 코닝에게는 새로운 종류의 도전이 생겼다. 코닝으로서는 이렇게 빠른 회전율을 보이는 수요가 처음이다. 고릴라 글래스의 새 버전이 나올 때마다 실제로 사용할 때의 신뢰성과 견고성을 테스트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아민의 팀은 고릴라 글래스가 산산조각 난 휴대폰 수 백 대를 모아들였다. 수석 연구 과학자인 케빈 레이맨(Kevin Reiman)의 말이다. “크건 작건 한 번 깨지는 것은 어느 한 부분때문이에요.” 그는 거의 보이지 않는 칩을 가리켰다. 그의 앞에는 몇 개의 깨진 휴대폰 중 하나인 HTC Wildfire가 놓여 있었다. 어느 부분이 시작점인지를 알아내면, 압력이 어떻게 유리로 전파되는지를 알아내는데 도움이 된다. 그 과정을 되풀이할 경우 어떻게 막아낼 수 있는지도 연구해낼 수 있다. 조합을 바꾸든지 화학처리를 바꾸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보를 알고 나면, 나머지 그룹이 정확하게 같은 결함을 낼 때까지 반복해서 해당 결함을 다시 만들어낸다. 레버프레스를 사용하거나 화강암과 콘크리트, 아스팔트 표면에다가 떨어뜨리고, 자유낙하 실험 등 여러가지 다이아몬드 날로 만든 고문장비로 괴롭혀 본다. 심지어 굴곡과 오류가 어떻게 퍼져나가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초당 100만 프레임으로 촬영하는 고속 카메라를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파괴와 통제 실험은 성과를 냈다. 첫 번째 버전과 비교해 볼 때 고릴라 글래스 2.0은 20% 더 강력해졌다(세 번째 버전이 내년 초에 나올 예정이다). 코닝의 유리 성분 조합 과학자들이 압축력을 한계까지 추구함으로써 거둔 성과다. 첫 번째 버전의 고릴라를 만들 때에는 보수적이었다. 압축력을 늘렸을 때 일어나는 폭발적인 파손을 피하도록 관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리는 그 자체로 부러지기 쉬운 물질이다. 그리고 잘 부러지는 물질은 압축에 대단히 강력하기는 하지만, 장력이 증가하면 극도로 약하기도 하다. 유리를 굽히면 깨진다. 장력이 재앙적으로 유리를 점령하지 않도록, 그리고 금이 유리를 퍼져 나가지 않도록 막는 역할이 압축 레이어에 있으며, 그것이 바로 고릴라 글래스의 핵심이다. 처음에는 휴대폰을 떨어뜨려도 화면은 깨지지 않는다. 단 두 번째로 떨어뜨리면 심각하지 않다 하더라도 치명적일 수 있다. 모든 것이 등가 교환으로 이뤄지는 물질로 하는 작업의 불가피한 결과 중 하나일 텐데, 고릴라 글래스는 완벽하게 감지할 수 없을 물질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해로즈버그의 플랜트로 돌아가 보자. 검정색 고릴라 글래스 티셔츠를 입고 있는 한 남자가 100-미크론 두께의 유리판을 롤러 사이로 만들어내는 것을 지도하고 있었다. 기계는 마치 출력기처럼 보였고 유리는 투명하고 빛나는 거대한 종이를 구비구비 풀어내는 것과 같았다. 놀라울 정도로 얇고 두루말이를 할 수 있는 이 물질을 윌로우(Willow)라 부른다. 갑옷으로 쓰일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 고릴라 글래스와는 달리 윌로우는 비옷에 더 가깝다. 내구성이 있고 가벼우며 잠재력이 거대하다. 코닝은 윌로우를 말 수 있는 스마트폰 디자인, 그리고 초박형으로 말 수 있는 OLED 디스플레이에 사용할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신축성 있는 태양광 셀에 윌로우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코닝은 심지어 유리 페이지를 가진 전자책도 상상하고 있다.

결국 윌로우는 영화 필름처럼 거대한 실패와 같은 유리-패의 형태로, 패 하나당 500 피트의 유리를 둘둘 말 것이다. 이 패는 주문용이다. 지금으로서 유리-패는 해로즈버그의 공장 바닥에 놓여 있다. 올바른 문제의 올바른 해결책이 될 때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Bryan Gardiner (bgardiner@gmail.com) also writes about anatomical models made of borosilicate in this issue.

Glass Works: How Corning Created the Ultrathin, Ultrastrong Material of the Future | Wired Science | Wired.com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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