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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Macintosh User Group

October 23, 2011 7:08 PM

Steve Jobs: Revelations from a tech giant

맥과 아이폰, 아이패드 등 잡스의 제품은 기술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하지만 정작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의 사망 전에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이 잡스로부터 허락을 받아 40번이 넘는 인터뷰를 가졌고, 다수는 테이프로 녹음을 해 놓았다. 두 편으로 나눠진 이야기에서 스티브 크로프트(Steve Kroft)가 밝히겠지만, 아이작슨이 말하는 잡스는 인간 자체의 한계에 부딪힌 뛰어난 재능을 가진 비범한 혁신가의 풍부한 초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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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Jobs: 1955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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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llowing script is from “Steve Jobs” which aired on Oct. 23, 2011.

7년 전, 스티브 잡스는 전직 타임 매거진 편집자였던 월터 아이작슨에게 전기를 써줄 수 있는지 의뢰했다. 벤자민 프랭클린과 알버트 아인슈타인에 대한 전기를 썼던 아이작슨은 자신에 대한 전기 의뢰가 주제넘은 일인데다가 시기상조라 생각했다. 잡스가 아직 젊은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아이작슨은 잡스가 췌장암 수술을 막 받으려 하고 있었고 수명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잡스는 자신의 인생과 사업에 대해 비밀을 쌓아두고 있어서 이미 그 자체로 전기를 쓰기에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60 Minutes” coverage: Steve Jobs
Complete coverage: Steve Jobs 1955 – 2011

2009년, 잡스는 이미 심각하게 편찮은 상태였기 때문에 아이작슨은 첫 인터뷰를 시작하기 시작했고, 마지막 인터뷰는 사망하기 겨우 몇 주 전에 마쳤다. 테이프로 녹음한 부분은 오늘밤 여러분도 들으실 수 있다. 잡스의 말 중 일부다. “밝히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적당한 시기에 나오는 애플 제품처럼, 책은 “스티브 잡스”라는 간단한 제목으로만 돼 있으며, 그가 사망한지 2주 반만에 출간된다.

“60 Minutes Overtime”: Steve Jobs: Family photo album

“60 Minutes Overtime”: What did Steve Jobs say about his rivals?

CBS사의 계열사인 Simon and Schuster에서 출판될 전기를 처음 작업할 때, 스티브 잡스의 부인인 로렌 파월이 아이작슨에게 해 준 말이 있다. “그의 강점만큼 약점에 대해서도 솔직해지세요. 그이의 인생과 성격의 일부는 극도로 혼란스럽습니다. 그걸 다 세척해버리면 안 돼요. 솔직하게 쓰여지기를 정말 바랍니다.”

Walter Isaacson: 그는 따뜻하지 않고, 불분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즉, 따뜻하지 않고 분명하게 쓰기 위해, 아이작슨은 잡스의 친구와 가족, 동료와 경쟁자 등 100명 이상과 인터뷰를 벌였다.

Steve Kroft: 힘드셨겠습니다.

Isaacson: 그래도 공정하게 쓴 책이라 봅니다. 정말 한 명의 인간에 대한 책이니까요.

Kroft: 그도 오류가 아주 많았죠.

Isaacson: 매우 심통이 사나왔죠. 정서불안에다가 가끔 사람들에게 대단히 비열하기도 했습니다. 식당 종업원이건, 밤새 코딩하던 직원이건 간에 잡스는 똑바로 쳐다보면서 “완전히 잘못하고 있소. 끔찍하군.”이라 말할 수 있는 인물이었어요. 어째서 그런 말을, 좀 더 예의바르게 할 수 없냐고 물으면 아마 이런 답이 돌아올 겁니다. “완벽함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 뿐입니다. 그게 저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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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ld pays homage to Steve Jo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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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슨은 잡스의 인생 초창기 때부터 그런 성격을 알아볼 수 있다고 본다. 혼외정사로 태어나 친부모가 그를 포기하고,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의 한 노동자 계급의 부부가 입양한 사실로 미뤄보면 알 수 있다.

Isaacson: 폴 잡스(Paul Jobs)는 훌륭한 정비공이면서 고결했습니다. 그는 아들, 스티브에게 훌륭한 것을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줬죠. 가령 한 번은 울타리를 만들 때 폴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울타리 앞에서만이 아니라 뒤에서 봐도 멋지게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보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너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완벽한 것을 추구한다고 보일 수 있다”고요.

잡스는 자신이 입양됐다는 사실을 항상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이 그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었다. 잡스는 아이작슨에게 테이프로 녹음한 수많은 인터뷰 동안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 가지 들려줬다.

[Steve Jobs, audio: 잔디밭에서 거리 저편에 있던 리사 맥모일라에게 내가 입양됐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그럼 너네 친부모가 널 원치 않았다는 말이니?" 우, 머리 속에 번개가 확 때렸죠. 집에 뛰어들어가서 울었어요. 부모님께 물어봤더니 절 앉히고서는, "아니, 네가 모르는구나. 우리가 특별히 너를 골랐단다."라 말씀하시더군요."]

Isaacson: 잡스는 “그 때부터 친부모가 날 저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받았다. 난 특별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를 이해하기 위핸 핵심이라고 봐요.

또 다른 핵심은 지역이다. 잡스는 팔로알토에서 멀지 않은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자라났으며, 재능이 뛰어나 성적도 좋았다. 게다가 그 동네는 엔지니어들이 밀집된 곳이었다.

Isaacson: 예. 실리콘을 어떻게 금으로 만들지 배우는 장소에서 자라난 겁니다. 당시는 아직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고, 방위산업체가 모여 있었죠. 막 HP가 나타났고요. 하지만 반-문화의 결성지인 배이-에이리어도 옆에 있습니다. 이 모든 분위기가 스티브 잡스를 키워냈죠. 그는 히피와 같은 반체제적인 아이면서 딜런의 음악을 듣고 환각제도 먹어봤으며, 전자제품을 사랑하게 됐죠.

잡스는 버클리의 컴퓨터 천재이자 5년 위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합세하여 자기 길을 택했고, 빠르게 친구가 됐다. 그들은 권위를 싫어하고 하이테크 장난을 같이 좋아했다. 그 중 하나가 “블루박스”라 불리는 불법 통신기기였다. 블루박스는 전화회사의 발신음을 흉내내서 장거리 전화를 무료로 할 수 있게 해줬다.

Isaacson: 워즈니악은 “블루박스”를 좋아했는데, 그저 장난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스티브는 “팔 수 있다, 마케팅을 해 보자”였죠. 그래서 판매한 블루박스가 100대 가량 됐습니다. 잡스가 이런 말을 해줬어요. “애플의 시작이었습니다. ‘블루박스’를 시작했을 때 워즈니악의 뛰어난 디자인과 저의 마케팅 능력으로 뭐든 팔 수 있다는 사실을 전 알고 있었죠.”

하지만 중간에 약간의 공백기가 있었다. 잡스는 오레건 주에 있는 리드(Reed) 대학교에 들어갔다. 전(前) 하버드대학 교수인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 박사가 미국 전역의 학생들에게 “Turn on, Tune in, and Drop out!”( LSD에 취하여, 함께 어울리고, 기존질서에서 이탈하자!)를 외치던 시기였다. 잡스도 한 학기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Steve Jobs, audio: 우리가 자랐던 시절은 정말 마술같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인생에 있어서 대단히 영적인 시기였죠. LDS 흡입은 제일 중요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중요한 것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도 거의 1등으로 중요했어요.]

그는 결국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 비디오 게임 업체인 아타리(Atari)사의 첫 50명 직원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잡스는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Kroft: 그는 신발을 절대로 신지 않고 장발이었으며 목욕도 안 했어요. 아타리에 갔을 때도, 야근으로 밀려난 이유가, 냄새때문이라더군요. 너무 고약해서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고 했으니까요.

Isaacson: 아시다시피 잡스는 채식주의같은 방식을 택하면 탈취제가 없거나 샤워를 안해도 된다고 믿었었어요. 물론 잘못된 이론이었고, 아타리에서도 계속 지적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아시겠지만 잡스가 좀 거친 성격이죠. 성미가 고약한 캐릭터에요. 그래도 아타리 사람들은 잡스를 좀 이해해줬습니다. “떠나라는 말은 아니지만 밤에 일하는 것이 어때?” 정도였으니까요.

잡스는 아타리에서 휴가를 얻어 7개월 동안 영적 환희를 찾기 위해 인도를 방랑했는데, 인도 여행은 시간낭비였음이 드러났다.

Isaacson: 돌아왔을 때 이랬다더군요. “내가 배운 것은 직관이다. 인도 사람들은 순수한 이성적인 사상가가 아니며 위대한 영혼은 직관력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선불교의 단순함이 그의 디자인 감각을 형성시켰죠. 단순성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궁극의 세련됨입니다.

인도에서 돌아온 이후, 잡스와 워즈니악은 취미가를 위한 원시적인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1,300 달러의 투자금액으로 그들은 부모님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사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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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olution of Apple produ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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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oft: 히피이자 대학 중퇴자, LDS와 마리화나를 흡입하고 인도까지 다녀와서는 사업가가 되기로 했다는 말인데, 어떻게 그리 될 수 있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Isaacson: 잡스도 마음 안으로는 그런 충돌을 일으켰지만, 잡스는 히피정신과 반-물질주의이 충돌한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워즈니악의 보드와 같은 물건을 팔고 싶어했죠. 사업체를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당시 실리콘밸리가 그런 정신이었으리라고 봐요. 부모님 차고에서 회사를 하나 만들어서 어엿한 사업체로 키우려는 정신이죠.

Kroft: 그러니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다?

Isaacson: 맞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HP의 직원이 되려하지 않았어요.

아이작슨에 따르면 잡스는 엔지니어와 거리가 멀었다. 그는 코드나 프로그래밍을 어떻게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 부문은 워즈니악의 몫이었다. 하지만 잡스는 미래가 무엇인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매력적이고 간단하며 값싼 컴퓨터, 애플 II를 최초의 가정용 컴퓨터로 마케팅하는데 집착했다. 딱히 대단한 일을 해내지는 못했지만 기술에 능한 이들은 학교시스템으로 애플 II를 구매했다. 테이프로 말한 그의 음성은 다음과 같다. 그는 금세 백만장자가 됐다.

[Jobs: 서류상으로 몇 년 안 돼서 정말 큰 부자가 됐어요. 그 때가 25살이었는데 이미 재산이 5천만 달러에 달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돈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더 이상 돈걱정에서 벗어났습니다. 돈이 아주 많이 있었으니까요.]

Kroft: 부자가 됐다는 얘기군요.

Isaacson: 잡스는 정말 큰 부자가 됐습니다. 애플이 주식상장을 하자 백여 명이 백만장자에 올라섰죠. 다만 그는, 아시겠지만 백만장자가 된 덕에 약간 악감정이 생겼어요. 부모님 차고에서 같이 일하는데 익숙해 있던 오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만 그들은 수석 엔지니어급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스톡옵션을 못 받았어요. 믿을 수 없으리만치 관대했던 워즈니악은 자기 스톡옵션을 포기했고 모두가 백만장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누가 스톡옵션을 갖느냐에 대해 상당히 강경했어요.

실제로 잡스와 리드 대학교와 인도에 같이 있었고, 애플 창립시 차고에서 같이 일했던 다니엘 콧키(Daniel Kottke)는 스톡옵션을 받지 못한 부류에 속해 있었다.

Isaacson: 그래서 스티브에게 가서 우기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죠. 그렇지만 스티브는 그런 부류의 일에 대해 대단히 차갑게 돌변하는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마침내 한 엔지니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 친구 다니엘을 우리가 돌봐야 합니다. 뭐라도 좀 그에게 주세요. 그럼 제가 그에게 주식을 주겠어요.” 잡스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물론 뭐라도 좀 드리죠. 제로(zero)를 주겠습니다. 그러면 당신도 제로를 주겠죠.”

냉담하기 짝이 없는 그 시기의 잡스의 일화는 이것만이 아니다. 애플이 주식상장하기 직전, 그의 오랜 여자친구가 임신하여 딸, 리사(Lisa)를 낳았다. 잡스 스스로가 혼외정사로 태어났기 때문인지, 잡스는 리사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법원이 개입할 때까지 양육비를 지불하는 것마저 거절했다. 그래서 애플 직원들은 스타트렉 드라마에서 나온, “현실 왜곡의 장”이라는 별칭으로 스티브를 가리켰다.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사실이든지 잡스가 가진 불굴의 의지와 카리스마로 뭐든 확신시키는 능력이 바로 현실 왜곡의 장이다.

Isaacson: 오리지날 매킨토시를 만들 때 스티브 잡스는 “다음 달까지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어요. 당연히 직원들은 그 많은 코드를 다음 달까지 도저히 못 만든다고 말하죠. 그러면 잡스는 당신들은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잡스는 아니오를 답변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리고 기어이 자기가 원한 것을 어느 정도 이루고맙니다. 잡스는 현실을 뒤틀어서 자기 뜻대로 만들어버립니다.

Kroft: 현실 왜곡의 장이라. 자기기만을 얘기할 때 사용하시는 듯 합니다만.

Isaacson: 물론 마술적인 생각을 할 때 스스로 그렇게 몰고 가죠. 아마 믿을 수 없을 뭔가를 실제로 이루려면 그렇게 해야 할 겁니다.

아이작슨은 현실왜곡의장의 뿌리가 잡스에게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특별하고 선택받은 존재이며, 여느 규칙은 자기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잡스의 신념 말이다.

Isaacson: 잡스는 훌륭한 벤츠 스포츠 쿠페를 몰았는데, 번호판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드러낸 것이죠.

Kroft: 번호판이 없다고요?

Isaacson: 저도 물어봤어요. 어째서 번호판을 안 달고 다니시냐고요. 이런 답을 하더군요. “사람들이 날 안 쫓아오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그래서 제가 번호판이 없으면 더 눈에 뜨지 않냐고도 물어봤어요. “당신이 옳을 수도 있겠죠. 제가 번호판을 왜 안 다는지 아십니까? 제게는 번호판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 역시 평범한 규칙은 그에게 안 통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잡스는 매일의 일상마저도 “나는 좀 다르다구”라는 식으로 살고 있었어요.

Kroft: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하는 것도요?

Isaacson: 예. 맞아요. “권위에 굴복하지 않아”이죠. 잡스다운 처사랄 수 있어요.

기존의 권위에 대한 무시는 최대의 성공을 안겨다주는 요인이 됐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제품과 응용을 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1984년, 애플은 진정 혁명적인 제품인 매킨토시를 선보였다. 매킨토시는 그래픽과 아이콘, 포인트-클릭 기술에 기반한 마우스를 사용했고, 이와 같은 방식은 현재의 컴퓨터에도 표준으로 정착돼 있다. 매킨토시는 혁신적이고 영향력이 지대했지만 판매량은 실망스러웠고, 대립을 일삼는 잡스의 경영방식도 불안정했다. 그는 아이작슨과의 인터뷰에서 나름 객관적으로 상황을 설명하려 했었다.

[Jobs: 모두의 눈앞에 대고 직접 말하는 편이 제일 편안합니다. "이거 완전히 엔지니어링을 망쳐버렸네. 그잖아?" 방 안에 있으려면 그래야 하죠.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극도로 솔직합니다. 우리 모두 자기가 완전 머저리라 말할 수 있고, 상대방에게도 너는 완전 머저리라 말할 수 있는 분위기에요. 서로 고함을 지르며 소리치기도 하죠.]

잡스는 논쟁을 좋아했지만 누구나 논쟁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중역 중에서도 그를 떠난 사람이 있다고 적혀 있다.

Isaacson: 잡스가 세계 최고의 관리자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세계 최악의 관리자가 될 정도였죠. 아시나요? 그는 언제나 위아래를 거꾸로 뒤집어 놓습니다.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린다는 말이죠.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낼 순 있겠지만 훌륭한 관리 스타일을 만들지는 못 해요.

실제로 잡스는 애플 사장 존 스컬리와 이사회의실에서 정면승부를 벌였다. 결국 이사회는 스컬리를 택했다.

Kroft: 그래서 그가 자기 회사에서 쫓겨났군요?

Isaacson: 예.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죠. 아시다시피 잡스는 항상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습니다. 애플로부터 버림받았으니 그보다 최악은 없었죠.

잡스는 자기 주식을 팔고 넥스트 컴퓨터라 불리는 새로운 벤처를 시작했다. 넥스트는 훌륭한 제품을 만들었지만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었고, 잡스는 자기가 500만 달러에 조지 루카스로부터 사들인 조그마한 회사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픽사 스튜디오는 결국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혁명적으로 바꿨고, 잡스는 덕분에 억만장자가 된다. 한편 애플은 잘하지 못하고 있었다. 잡스가 떠난지 10년 후, 애플은 넥스트 컴퓨터를 인수하고 잡스를 고문으로 맞이한다. 그러나 잡스는 곧 애플 CEO를 차지하게 된다.

Kroft: 잡스가 돌아왔을 때 애플은 거의 부도 상태였죠?

Isaacson: 부도까지 90일 쯤 남아 있었습니다. 돈이 바닥났었죠. 게다가 애플다운 방향을 완전히 잃었어요. 잡스는 “당신들이 만드는 제품이 27가지인지 30가지인지 있다. 프린터건 뭐건”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차트를 그리고 딱 네 가지 공간만 남겼죠. “전문가용, 가정 소비자용, 노트북과 데스크톱의 네 가지 컴퓨터를 만들 겁니다.”라 말했어요.

그는 3천 명을 해고하고 새로이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Think Different" ad: Here's to the crazy ones. The misfits. The rebels. The troublemakers...]

Isaacson: 스티브 잡스 스스로가 광고 문구를 도왔고 편집까지 했습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꿨다”는 잡스가 집어 넣은 말이죠. 잡스와 4~5명이 같이 지었는데, 이 광고는 광고카피가 아니라 하나의 성명서였습니다.

["Think Different" ad: ...They push the human race forward. And while some may see them as the crazy ones, we see genius. Because the people who are crazy enough to think they can change the world are the ones who do.]

이 캠페인은 기업 역사상 최대의 부활 선언문이었으며 세상을 바꾼 광고이기도 했다. 친부모 찾기와 암과의 투병은 다음 회에.


19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했을 때 애플의 시장점유율은 5% 뿐이었으며 거의 부도가 난 상태였다. 14년 후 잡스가 사망할 때의 애플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치가 높은 회사가 됐으며, 1위인 엑손-모빌과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다. 새로 나온 전기에서 월터 아이작슨은 잡스가 7개 산업을 혁명적으로 바꿨거나 재편성했다고 적었다. 개인용 컴퓨터와 극장 애니메이션, 음악, 전화, 태블릿, 디지탈 출판, 소매점 사업의 7 부문이다. 아이작슨에 따르면 잡스는 과학과 인문학 간의 교차점에 선 덕분에 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기술과 창조성 간의 결합, 소비자들이 생각도 못 해본 새로운 기기를 만들기 위한 엔지니어링과 상상력의 결합이다.

[Jobs: 오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다같이 역사를 만들 겁니다.]

모두가 한데 어우러진 날을 하나 고르라면 아무래도 2007년 1월9일이 좋은 선택이다. 당시 잡스는 샌프란시스코 맥월드 컨퍼런스에서 최신 제품을 선보이면서 완벽한 장사아치 역할을 해냈다.

[Jobs: 세 가지 따로따로 있지 않습니다. 하나의 기기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이폰이라 부릅니다.]

아이폰은 놀랄만한 업적일 뿐만 아니라 잡스가 믿는 모든 것의 확인이었다. 스스로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통제하고 만든다면, 모든 제품과 콘텐트를 하나의 디지탈허브로 합칠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면 아무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Isaacson: 마이크로소프트는 할 수 없는 종류의 일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만드니까요. 소니도 마찬가지로 할 수 없어요. 하드웨어는 많이 만들지만 소프트웨어 운영체제를 만들지는 않으니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가 애플입니다.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잡스가 담을 두른 정원(walled garden)을 만들어냈다고 적었다. 그의 제품을 뭐라도 하나 사용하고 싶다면 아예 애플 생태계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편이 더 쉽다. 완전한 통제만이 해낼 수 있는 성격의 일이다. 잡스의 성격과 열정, 제품과 사생활 모두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보호를 받고 있다. 더 들여다볼수록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Kroft: 그의 집은 어떻습니까?

Isaacson: 팔로알토에 있는 그의 집은 평범한 동네입니다. 대로도 없고, 높은 담장도 없죠.

Kroft: 차로 들어갈 진입로가 따로 있나요?

Isaacson: 뒷문의 정원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엌으로 통하는 뒷문을 열 수 있고, 보통은 잠겨있지 않아요. 평범한 가정집이죠. 잡스는 “아이들이 걸어다니고 이웃집에 갈 수 있는 평범한 장소에 살고 싶다”고 말했어요. 부자가 되면 다들 선택하는 호화로운 저택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도 말했죠.

시종도 없고 수행원도 없다. 70억 달러의 재산을 가졌지만 잡스는 물질적이지 않았다. 그는 녹음된 인터뷰에서 아이작슨에게 돈이 사람에게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일찍 깨달은 바가 있다고 말했다.

[Jobs: 특히 우리가 주식상장을 한 이후 사람이 얼마나 바뀌는지, 정말 많은 사례를 봤습니다. 부자처럼 살아야겠다는 사람이 굉장히 많죠. 가령 당장 롤스로이스와 부동산을 사고, 부인은 성형수술을 하거나 하는데, 정말 멋졌던 이들이 괴상한 사람으로 바뀌고 맙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약속했죠. 돈이 내 인생을 망치게 하지 않겠다고요.]

Kroft: 가족 사진이 있나요?

Isaacson: 물론입니다.

아이작슨은 사망하기 직전, 잡스가 책을 위해 제공한 가족사진을 보여줬다. 거의 본 사람이 없을 잡스 인생의 일부로 이 사진이 들어가 있다.

Isaacson: 이쪽이 로렌이고, 이쪽이 에린, 리드, 이브입니다. 가족휴가 때 찍은 사진이죠.

잡스는 20년 전, 전직 투자은행가로서 변덕스러운 남편을 사로잡은 로렌 파월과 결혼했다.

Isaacson: 사모님은 훌륭한 균형자이십니다. 잡스는 자기 주변에 강력한 인물들을 뽑을 줄 알았는데요. 결혼할 때도 마찬가지였죠.

Kroft: 이 분이…

Isaacson: 아들, 리드입니다.

Kroft: 그렇군요.

Isaacson: 리드는 아버지와 매우 닮았어요. 다만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의 친절함도 갖추고 있죠. 이브는 승마를 잘 하고요. 아마 승마로 올림픽에도 나갈 수 있잖을까 싶어요. 에린은 디자인 감각이 매우 좋습니다. 정말 멋진 아이에요.

그의 네 번째 자식인 리사 브레넌-잡스는 33년 전 당시 여자친구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다. 10년 가까이 무시하다가 10대 때가 돼서야 잡스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아이작슨은 리사를 인정하는 것이 잡스에게 상당한 의미를 가졌다고 말한다. 친부모가 잡스를 버렸던 기억 때문이었다.

Isaacson: 그는 허전한 구석을 느꼈어요. 뭔가 부족했죠.

1986년, 잡스는 친어머니를 찾기 시작했고,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조앤 샤이블 심슨(Joanne Schieble Simpson)을 발견했다.

Kroft: 그녀는 자기 아들이 스티브 잡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Isaacson: 원래는 아닙니다. 하지만 잡스에게 알려준 사실이 있었어요. “한 가지 말해야 할 것이 있다. 네게는 여동생이 있고, 그 여동생을 내가 키웠다. 그 애는 입양을 보내지 않았다. 너에 대해서는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기에’ 걔에게 말해줘야겠다.” 그 여동생이 소설가, 모나 심슨(Mona Simpson)이었습니다. 모나 심슨과 스티브 잡스는 의기투합해서 친아버지를 찾아 나섭니다. 특히 모나는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기 원했어요.

결국 그들은 압둘파타 “존” 잔달리(Abdulfattah “John” Jandali)가 사는 곳을 알아낸다. 잔달리는 시리아계 미국인으로서 정치학 박사 출신이며, 새크라멘토에서 식당을 경영하고 있었다. 잡스는 녹음된 인터뷰에서, 일단 모나 먼저 그를 만나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Jobs: 친어머니를 찾을 때, 아시겠지만 친아버지도 같이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해 몇 가지를 알고 나니, 별로 마음에 안 들더군요. 그래서 모나에게 그에게 우리가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은 물론 저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죠.]

Isaacson: 그래서 모나는 카페에서 카페 운영자, 잔달리와 만납니다. 뭣보다 모나는 그가 얼마나 미안해 할지를 물어봤어요. 그런데 잔달리는 자기에게 아이가 하나 더 있다는 말을 했어요. 그래서 모나가 그 애는 어떻게 됐냐고 물었습니다. 잔달리는 자기는 모른다, 전혀 들을 소식이 없을 것이다고 말하면서, “더 큰 식당을 운영하고 있을 때 아마 나를 봤었기 바란다. 실리콘밸리 최고의 식당도 운영했었고, 심지어 스티브 잡스도 우리 식당에서 밥을 먹었었다”고 했어요. 모나는 깜쪽 놀랐죠. 하지만 그 스티브 잡스가 당신 아들이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어요. 놀란 기색이 보이자 잔달리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맞아. 그 분은 팁을 두둑히 주시더군.”

[Jobs:...한 두 번인가 식당에 갔었어요. 시리아에서 왔다는 주인하고도 만났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가 맞아요. 서로 악수를 했죠. 그게 전부였습니다.]

Isaacson: 그리고 잡스는 그에게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연락도 안 했죠. 그를 다시 보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죽을 때조차도 마찬가지였다. 2004년, 신장결석 확인을 할 때 잡스는 우연히 암을 발견했다. 시티 촬영을 보면 췌장에 그림자가 있었다. 이 그림자가 나중에 악성종양으로 바뀐다.

Isaacson: 조직검사를 벌였는데 의사들 감정이 폭발하더랍니다. 괜찮다는 진단이었어요. 실제로 치료가 가능한 췌장암이 있는데, 전체 중 5%밖에 안 됩니다. 잡스의 췌장암도 그것이었어요.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식이요법으로 하려 했으니까요. 그는 심령론자였어요. 수술이 아닌 건강식으로 해결해보려 했습니다.

Kroft: 왜 바로 수술을 받지 않았을까요?

Isaacson: 저도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제 몸을 열어보이고 싶지 않았어요.”라 말하더군요. 다들 그에게 “그런 채소이니 뿌리이니 하는 요법 따위 집어 치우고 가서 수술 받아라”고 권했어요. 하지만 수술은 9개월 후에 이뤄졌습니다.

Kroft: 너무 늦었군요.

Isaacson: 수술을 했을 때 종양이 췌장 주변의 조직에까지 확장됐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늦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Kroft: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요?

Isaacson: 예. 뭔가를 무시하거나 뭔가 존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마술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느낀 모양입니다. 과거에는 잘 먹혔죠. 아시다시피 그는 자기 결정을 분명 후회했어요. 더 빨리 수술을 받았어야 했다고 느꼈으리라고 봅니다.

잡스는 자신의 수술을 인정했지만 느린 결정으로 상황은 심각해졌다. 모두들에게 자기가 완치됐다고 말하고 다닐 때 조차도 잡스는 비밀스러운 암치료를 계속 받았다고 한다. 2008년에도 그러했다.

Kroft: 2008년, 아이폰 3가 나왔지만 그것이 주된 주제가 아니었죠?

Isaacson: 그는 너무 헬쑥해졌고 갑자기 너무나 늙어보였습니다. 모두들 잡스가 다시 아프리라 인삭했죠. 공식적으로는 부인했어요. 호르몬 불균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진실의 일부였죠. 그의 간이 잘못된 호르몬을 분비하고 있었으니까요. 호르몬 불균형만이 아니었습니다. 암이 간으로 번졌고, 그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대중에게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려 했어요. 당연히 그 점이 문제였죠.

Kroft: 법적 문제이기도 하죠.

Isaacson: 주식회사이고 두 원칙 중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고 봅시다. 주주에게 그런 정보를 가릴 수는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CEO로서 특정 프라이버시도 있고요.

잡스는 마침내 병가를 떠났다. 2009년 3월, 그는 멤피스에서 비밀리에 간이식 수술을 받았고 석 달 뒤에서야 수술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암이 전이됐다고 말해도 된다고 의사들은 밝혔으나, 잡스는 아이패드를 선보이기 위해 일터로 돌아왔고 끝까지 일을 계속했다.

Kroft: 마지막 2년 반 동안은 어땠나요?

Isaacson: 그는 아프고 나서 자기에게 영향이 어떤지에 대해 대단히 많은 사실을 말해줬어요. 더 이상 바깥에 나가기 싫고, 세계 여행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더군요. 그는 제품에 집중했습니다. 아이폰, 그리고 아이패드에 대해서 자기가 뭘 원할지 그는 알고 있었어요. 비전은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었죠. 잡스는 텔레비전을 정복하고 싶어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사용하기 쉬운 텔레비전 셋트를 만들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거기에 집중했죠. 하지만 한편 가족에게도 다시금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고통스럽고 잔혹한 노력이었어요. 그 고통에 대해 종종 제게 말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인터뷰에서 잡스는 계속 죽음이라는 주제를 꺼내들었다.

[Jobs: 제 인생은 둥그런 호같아요. 끝이 어떻건 아무 것도 상관 없기는 하죠.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습니다. 정말 상관 있는 것이 있을까요? 도대체 스티브를 잃는다고 해서 정확히 그게 뭐라는 얘기입니까? 아시나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는 거의 8년간 암을 안고 살았다. 8월 중순, 아이작슨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그는 새로운 약이 자기를 구할지 모른다며 희망을 갖고 있었다.

Isaacson: 한 번은 묻더군요. “내가 싫어할 부분도 책에 있겠죠?” 저는 미소를 짓고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싫어할 부분이 있으리라고요. 그랬더니 이런 말을 하더군요. “괜찮아요, 괜찮아. 책 나올 때 그걸 읽지 않을 거요. 6개월이나 한 일 년 후에나 읽을까.”

Kroft: 사망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말도 있었나요?

Isaacson: 하루는 정원에 앉아서 그가 신에 대해 얘기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이런 말을 했어요. “종종 믿고, 안 믿을 때도 종종 있습니다. 아마 50대 50쯤? 하지만 암을 갖게 된 이후로는 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더군요. 약간은 믿는 쪽으로 더 기울어졌습니다. 아마도 사후세계를 믿고 싶어서일 겁니다. 죽고나면 다 사라져버리지만은 않잖아요. 쌓아놓은 지혜는 어떻게든 살아남죠.” 그 말을 하고는 잠시 침묵했고, 다시 말을 이었어요. “예. 죽음은 그냥 스위치에 불과하잖을까 싶을 때가 종종 있어요. 누르면 그냥 가는 거죠.” 다시금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죠. “아마 그래서 제가 애플 기기에 스위치 넣기를 싫어했던 모양입니다.”

Disclosure: Walter Isaacson’s biography “Steve Jobs” is published by Simon & Schuster, a division of CBS corp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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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Jobs: Revelations from a tech giant – CBS News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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