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나오지 않는 스티브 잡스의 애플복귀 드라마

영화에 나오지 않는 스티브 잡스의 애플복귀 드라마

잡스의 애플 복귀, 영화에 나오지 않는 드라마

映画「スティーブ・ジョブズ」を観る前に知っておくと10倍楽しめる
ジョブズ復帰とMac OS X、映画にないドラマチックな秘話とは
2016年02月10日 09時00分更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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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4년만에 두 번이나 영화화된 전설의 사내

“슬럼독밀리어네어(2008년)”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 8개 부분을 수상한 대니 보일 감독의 최신작, “스티브 잡스”를 봤다. 조슈아 마이클 스턴 감독의 “스티브 잡스”는 2013년에 공개됐으며, 잡스 본인이 사망했던 때가 2011년이었다. 불과 4년 사이(보일 판의 “스티브 잡스”는 미국에서 2015년에 공개됐다) 애플 창업자이자 맥, 아이팟, 아이폰을 탄생시킨 전설의 사내는 두 번이나 영화화된 셈이다.


「スラムドッグ$ミリオネア「127時間」「トレインスポッティング」などで知られるダニー・ボイル監督による映画「スティーブ・ジョブズ」。ジョブズ役にはマイケル・ファスベンダー。2月12日(金)より全国公開

 

그 밖에도 “스티브 잡스 1995, 잃어버렸던 인터뷰”나 “스티브 잡스: The Man in the Machine”과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도 있기 때문에 “모두들 잡스를 좋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잡스가 개인용 컴퓨팅 세계를 개척하고 이끌어온 것만은 확실하다. 물론 허와 실은 확실하지 않으며, 신화적이거나 전설적인 에피소드를 빼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점 또한 부정할 수 없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또한 오랫동안 “맥파워”라는 잡지의 편집장을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맡았다는 경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간 애플의 흘러온 역사 그리고 잡스라는 인물과 적잖은 관계를 갖고 있다. 1992년 취직 당시 처음으로 받았던 보너스를 갖고 “센트리스 650″이라는 기종을 첫 구입하였고, 지금은 “맥북에어”로 원고를 작성하고, “아이폰”을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생의 절반이 잡스 때문에 흐트러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스턴 판의 “스티브 잡스”도, 보일 판의 “스티브 잡스”도, 다양한 경위로 업계 사람들에게서 보고 들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감성으로는 솔직하게 즐길 수 없었다.

물론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을 생방송으로 몇 번이고 본다 하더라도, 그와 직접적으로 만나 대화를 한 적은 없으니까 필자가 알고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잡스가 애플에 복귀할 때까지의 상황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번 영화를 계기로 필자가 체험했던 잡스 복기 전후의 애플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장-루이 가세, 잡스를 추방하다

보일 판의 “스티브 잡스”는 말하자면 3막 연극과 같은 구성으로서, 1막은 1984년 “매킨토시” 발표회 직전, 2막은 1988년의 “넥스트 큐브” 발표 직전, 그리고 3막은 1998년 “아이맥”의 발표 직전 드라마로 돼 있다.

스턴 판의 주연배우인 에시튼 커처는 상당히 잡스의 풍모를 닮았지만, 보일 판의 주연배우인 마이클 파스벤더는 잡스와 닮지 않았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픽션”이라는 대니 보일 연출의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보일 버전의 “스티브 잡스”는 전기에서 본듯한 충실성을 요구하지 않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설명했듯이, 영화는 3가지의 역사적인 프리젠테이션 무대 뒤가 주요 이야기이기 때문에, 2막과 3막 사이의 10년을 뉴스 영상에 삽입하는 모양새로 매끈하게 설명하고 있다. 즉, 어떤 우여곡절이 있어서 잡스가 애플에 복귀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영화의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으며, 실제로 그 과정을 그렸을 경우 영화가 너무 장황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실시간으로 맥 업계에서 일하고 있던 필자에게 “영화에서 그리지 않고 있는 잡스 복귀까지 수년간”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고 흥분에 찬 격동의 시기였다. 1990년대 전반 인터넷의 여명기를 그대로 경험했던 것과 1996년 애플 넥스트 인수의 전말을 실제 체험으로 알고 있는 이 두 사람은 지금까지도 자신의 큰 재산이라 생각하고 있다.

아마 2월 12일부터 공개되는 대니 보일의 “스티브 잡스”도, “영화에서 그리지 않고 있는 잡스 복귀까지 수년간”을 예비 지식으로 알고 있다면 어찌 됐든 영화를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최초로 맥을 구입했던 1992년 당시, 그러니까 잡스가 애플 CEO로서 영입했던 존 스컬리 펩시콜라 사장이 잡스를 꽂아냈던 때가 1985년이기 때문에 당시에는 잡스가 애플에 없었다. 당시 잡스는 넥스트의 CEO로서 1988년에는 고성능 웍스테이션 “넥스트 큐브”를, 1990년에는 저가격 모델인 “넥스트 스테이션”을 출시했다. 그러나 업계내 평가와는 달리 실적 면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 하여 1993년 넥스트는 하드웨어 사업으로부터 완전히 철수하고 오픈스텝이라 불리우는 객체지향 멀티태스킹 OS 개발에 특화한 회사로 변모한다. 이때 회사 이름도 넥스트 소프트웨어로 변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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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が1988年にリリースした高性能ワークステーション「NeXT Cube」。真っ黒な立方体のフォルムが特徴的。映画ではこのマシンの発表会直前が2つ目の物語の舞台となる。ちなみにWorld Wide Wedはこのマシン上で開発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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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Cubeが標準搭載していたオブジェクト志向のマルチタスクOS「NEXTSTEP」。この上位フレームワーク層のみを「Windows NT」や「Solaris」上で動作させられるようにしたものが「OPENSTEP」である

 

덧붙여서, 영화 안에서 중국 출장을 가지 않은 존 스컬리가 전화로 공항으로부터 애플에 돌아온 다음, 긴급히 이사회를 소집하여 잡스를 해임하는 장면이 있다. 잡스가 스컬리를 애플로부터 쫓아내기 위해 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밀고가 있어서였는데, 당시 제보자는 애플 프랑스법인장 장-루이 가세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세는 이 공적으로 미국 본사로 초빙되어 “매킨토시 포터블”의 개발책임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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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からジョブズ追放の影の立役者となり、のちにBeを創設するジャン=ルイ・ガセー。もしもAppleが次世代Mac OSの技術基盤に「BeOS」を採用していたら、いまごろ彼がAppleのCEOになっていたのかもしれない……

 

 

좌초된 차세대 맥오에스 개발 프로젝트

필자는 1994년부터 맥파워지 편집을 맡기 시작했는데, 당시 잡스는 당연히 애플에 없었다. 다만 당시 편집장 자리 옆에는 잡스 사진이 장엄하게 장식돼 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밖에도 당시 잡스에 얽힌 기억으로, 1995년 초, 필자는 맥파워지에 필자가 연재를 담당하고 있던 비평가, 粉川哲夫의 사무실에 자주 놀러갔었는데, 그는 갖고 있는 여러 대의 컴퓨터 중에서도 메인 머신으로서 넥스트 큐브를 사용하고 있었다.

영화 안에서도 잡스는 넥스트 큐브 본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모습은 정말 심상찮은 아우라를 내뿜고 있으며, 粉川는 물론 필자도 여러번이고 “한 번 사 볼까…”의 유혹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 무렵 애플의 CEO는 미하엘 스핀들러였다. 그는 스컬리 퇴임 후,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애플을 다스렸다. 당시 애플은 영화에서 잡스가 여러번 말했던 “맥은 당연히 폐쇄형의 상태이어야 한다”의 원칙을 어기고 맥오에스를 다른 기업들에게 라이선스했었다. “맥호환기종” 전략을 수행한 것이다. 맥호환기종은 미국의 Power Computing과 Radius, DayStar Digital, 대만의 UMAX, 일본에서도 파이오니아(パイオニア), 아키아(アキア), 반다이디지탈엔터테인먼트(バンダイ・デジタル・エンタテイメント)가 맥오에스를 탑재한 다양한 시스템을 판매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이 맥 호환기종은 당시 애플의 혼란스러운 상태를 상징하는 전략이었으며, 또한 그 혼란을 더 가속화했던 것은 차세대 맥오에스 개발 프로젝트의 좌절이었다.

1991년부터 출하됐던 OS인 “시스템 7″은 소수점이하 버전 업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여 진화했지만, 점차 최신 CPU로 적응이 어려워서 미래의 “선점형 멀티태스킹”이나 “메모리 보호”와 같은 기능을 완전히 실현하려면 아예 OS의 구조 변경이 급선무였다.

차세대 맥오에스의 개발 코드명은 “코플랜드”라 불렸으며 1994년부터 애플 내부에서 개발이 추진되고 있었지만 진행도가 좋지 않았고 1996년 스핀들러를 대신하여 애플의 재건을 맡은 길 아멜리오 CEO(스턴 판의 “스티브 잡스”에는 아멜리오가 등장한다)는 동 프로젝트의 중지를 결정한다.

즉, 맥오에스의 새로운 핵심 구조를 애플이 단념했다는 의미이며, 다른 곳으로부터 차세대 OS의 기반 기술을 조달해야 한다는 위기 상황을 의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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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が次世代Mac OSとして自社で開発してた「Copland」。「Mac OS 8」としてリリース予定だったが(のちに発売された「Mac OS 8」とはまったくの別物である)、開発は遅々として進まず、ついに1996年、プロジェクトの中止が決定された

 

 

잡스 회심의 프리젠테이션이 맥오에스텐을 탄생시키다.

1996년 당시 차기 OS의 필두로 주목받고 있던 것은 앞서 기술한 장-루이 가세가 이끄는 Be의 “BeOS”가 있었다. 가세는 애플로부터 나와 1990년에 Be를 설립, 1995년, BeOS를 탑재한 듀얼프로세서 머신, “BeBox”를 발표한다. BeOS는 당시 애플이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마이크로 커널과 64비트 파일시스템을 구현했고 그 후 PowerPC 버전도 등장하여 맥에서도 BeOS를 작동시킴으로써 동일한 시스템에서는 맥오에스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속도를 실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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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年、Beが発表したデュアルプロセッサーマシンBeBoxに標準搭載されていた「BeOS」。高度なマルチスレッド化/マルチタスク化によって圧倒的なパフォーマンスを誇っていた

이러한 경위 때문에 가세는 애플이 차세대 맥오에스의 기반 구조로서 BeOS를 반드시 선택하리라 얕잡아 봤던 듯 하다. 실제로 애플 수뇌부는 가세와 Be 매입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교섭을 여러 번 실시했고, 필자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애플은 동시에 잡스의 오픈스텝 또한 저울질하고 있었으며 결국 현재의 맥오에스텐 핵심 기술로서 오픈스텝을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잡스가 애플 경영진에게 했던 프리젠테이션은 한 번에 역전을 거뒀던 놀라운 프리젠테이션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6년 말 연말마감을 위해 편집부에서 숙박을 했던 필자는 새벽, 애플로부터 1장의 팩스를 받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애플, 넥스트 인수, 잡스의 애플 복귀”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1월 새해 초, “맥월드 엑스포/샌프란시스코 1997″에서 아멜리오의 기조연설 도중, 잡스가 무대에 등장했다. 필자는 운 좋게 이 이벤트를 취재했었고 언론의 특권으로 무대 바로 밑에서 잡스를 보고 있었는데, 처음 봤던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은 무릎이 떨릴 정도였다는 사실을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Appleに復帰を果たしたジョブズが初めてプレゼンを行なった「MACWORLD Expo/San Francisco 1997」。ギル・アメリオCEO(当時)による基調講演の途中、6分40秒あたりでスティーブ・ジョブズ登場。さらにApple創立20周年を記念した「Twentieth Anniversary Macintosh」が発表される際、38分30秒あたりでスティーブ・ウォズニアック登場。「Twentieth Anniversary Macintosh」に対するジョブズの無関心ぶりが笑える

그리고 잡스는 그해 애플의 임시 CEO에 오르고, 개발 코드명 “랩소디”의 이름 하에 오픈스텝의 맥 이식작업이 시작된다. 잡스는 아멜리오를 쫓아냈으며, 임원진도 넥스트 시절의 잡스 주변 인물들로 채워진다. (영화중에 여러 번 “에이비”라 불리며 등장하는 에이비 테바니언은 잡스 복귀 후 애플의 소프트웨어 부문 최고책임자로서 맥오에스텐의 개발을 지휘했다.)

2001년, 맥오에스텐이 출하되지만 영화 “스티브 잡스”는 어디까지나 하드웨어로서의 머신 발표회를 주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OS를 둘러싼 이런 에피소드는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애플로의 잡스 복귀는 위에 썼듯 풍부한 드라마로 존재하고 있다. 이번 원고가 앞으로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의 예비 지식으로서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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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STEPは開発コード名、RhapsodyとしてMacへの移植が開始される(初期はサーバー用OS向け)。前掲のNEXTSTEPのインターフェースに非常によく似ている。これが現在の「Mac OS」そして「iOS」の前身/原型となっていく

著者紹介――高橋 幸治(たかはし こうじ) 編集者。日本大学芸術学部文芸学科卒業後、1992年、電通入社。CMプランナー/コピーライターとして活動したのち、1995年、アスキー入社。2001年から2007年まで「MacPower」編集長。2008年、独立。以降、「編集=情報デザイン」をコンセプトに編集長/クリエイティブディレクター/メディアプロデューサーとして企業のメディア戦略などを数多く手がける。「エディターシップの可能性」を探求するミーティングメディア「Editors’ Lounge」主宰。本業のかたわら日本大学芸術学部文芸学科、横浜美術大学美術学部にて非常勤講師もつとめる。

http://ascii.jp/elem/000/001/116/1116687/

번역 : 위민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