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킨토시 30주년 (스티븐 프라이)

매킨토시 30주년 (스티븐 프라이)

매킨토시 30주년 (스티븐 프라이)

Mac at 30

By Stephen Fry
January 24th, 2014

30년 전 오늘, 잡스 병장님이 밴드가 어떻게 연주하는지를 알려 줬었다. 스미스와 앳킨슨, 카와사키, 에스피노사 일병 및 다른 애플 매킨토시 팀원들은 물론, 제록스 PARC 사람들과 최초의 컴퓨터 마우스를 만들었던 스탠포드 사람들, 당연히 스티브 워즈니악과 고든 무어같은 천재들부터 폰 노이만과 앨런 튜링과 같은 오리지널 개척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잡스 병장님이 불러들였다.

그 해 1월, 나는 유럽에서 팔린 두 번째 매킨토시 컴퓨터를 구입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30년 전, 나의 친구이자 영웅, 더글라스 애덤스가 나보다 앞에 섰기 때문이다. 누군가 어디에선가 10분 전에 한 대 샀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 가게는 1984년 1월 24일, 매킨토시를 판매한 유일한 가게였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수퍼볼 이벤트가 끝난지 한 참 뒤, 영국 텔레비전 화면에 스며들어 오기 전까지는 리들리 스콧의 전설적인 매킨토시 광고를 못 봤었지만, 매킨토시의 판매에 이어 잡스가 거대한 적, 빅 블루 IBM과 싸우기 위해 삼고초려하여 모셔왔던 애플 사장 존 스컬리에게 잡스가 잘렸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스티브 잡스는 많은 사건을 봤겠지만, 그는 QDOS라 불리우는 5만 달러 짜리 운영체제를 사들여서 마이크로소프트가 80-90년대를 장악하여 애플과 IBM을 압도하는 한편,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세계 최고의 부자에 오르리라는 사실을, 빌 게이츠의 조작과 교묘한 사업을 잡스는 알아보지 못했다. IBM은 이제 심지어 PC 사업을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레노버라는 중국 업체에게 컴퓨터 사업부를 매각했고, 그로 인해 빌 게이츠의 승리는 확고해졌다.

게이츠는 QDOS(Quick and Dirty Operating System)의 이름을 MSDOS(Microsoft Disc Operating System)로 바꾸고 새 OS가 필요했던 IBM에게 라이선스를 줬다. CP/M과 그 창업자와의 협상이, 까놓고 말해서 깨졌기 때문이었다. 결정적으로 빌 게이츠는 자신의 MSDOS를 IBM만이 아니라 다른 컴퓨터 제조업체들에게도 라이선스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우겼고, 결국은 IBM을 떨어뜨릴 방법을 헤아릴 수 있었다. IBM은 OS가 아니라 컴퓨터 하드웨어로 돈을 벌리라 생각했었다.

반면 매킨토시는 하나의 혁명이었다. 그렇다. 모델 T 포드와 Spitfire가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다른 아이디어 중 최고만을 갖고 만들었지만, 천치가 아니고서야 직관적으로 알아내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그러니까 GUI를 채용한 최초의 가정용/소규모사무실용 컴퓨터였다. 여러분의 화면은 가상적인 책상과 오피스 아이콘, 휴지통 바구니의 하얀색 화면이었다. 폴더와 창, 풀다운 메뉴가 있었으며, 이 모두를 동작 시키고 조작할 수 있었다. 키보드 명령이 아니라 신비스러운 마우스로 말이다. 굴러가면서 찍고 클릭하는 이 마우스는 컴퓨터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의 방식을 바꿔버렸다.

최초의 매킨토시는 흑백 모니터였으며, A4 종이 크기의 바닥 면적에 128K의 RAM, 하나의 디스크 슬롯을 채용했다. IBM, 그리고 게이츠의 IBM 라이선스를 우회하면서 MSDOS를 돌리는 새로운 IBM 호환기종이 쓰던 검정색 카드보드 플로피 디스크와는 달랐다. IBM 호환기종은 명령을 치기 위해 키보드로 녹색이나 오랜지색 커서로 타자 쳐야 했었다.

차이점은 거대했다. 하지만 기업의 시스템 분석가들은 매킨토시가 너무나 직관적이기 때문에 매킨토시를 거절했고,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스티브 잡스와 결혼하지는 않았다. 애플에 무슨 지분도 없다. 나는 그저 사람들이 책을 작성할 때 어째서 못생기고 비효율적이며 두통이 나는 IBM 기종들을 사용하며 땀을 흘리는지 이해할 수 없을 뿐이었다. (그해 말, 애플 레이저프린터는 데스크톱 출판의 세상을 열었다.) 심지어 그런 일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다. 동시에 재미도 보고 일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매킨토시는 아니었다. 비웃음 받았던 우리의 매킨토시는 돈이 엄청 많거나 사업적 감각이 없을 때 사용하는 장난감 취급을 받았었다. 윈도와 아이콘, 메뉴, 포인터를 가리키는 WIMP PC 사용자들은 몇 년이 지나도록 내게 맥은 윔프(겁쟁이)용이라 말했었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는 “수 년” 후에서야 윈도라 불리우는 새로운 운영체제를 소개했으며, 윈도는 맥의 모든 면을, 나쁘게만, 복제했었다. 알아서 영광이었던 스티브 잡스는 항상 빌 게이츠의 사업적인 능력에 대해서는 거대한 존경심을 표하지만, 그가 자신의 취향에 대해서는 경멸을 아끼지 않았었다.

최초의 매킨토시 팀에는 고고학자와 그리스/로마 연구자는 물론, 그 유명한 서체의 출력 예술에 대한 스티브의 열망도 포함돼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매킨토시와 사랑에 빠지기에는 충분했다. 스티브는 컴퓨팅과 장비에 대한 자신의 비전이 기술과 과학, 그리고 미국인들이 부르는 교양과의 접점이라 즐겨 말했었다. 달리 말해서, 기능과 혁신, 미학이 모두 동등하다는 얘기다. 다른 어떤 기업도 이런 관점을 갖지 않았다. 다른 어떤 기업도 이런 리더가 없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는 매킨토시가 시장에 나온지 1년 후인 1985년에 축출됐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컴퓨팅의 미래가 네트워킹이라는 강력한 신념에 따라 넥스트 컴퓨팅을 설립했고, 멀티태스킹과 다중 사용자용 유닉스 운영체제를 진정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최종 기기의 완성으로 여겼었다.

인간 역사에서 헨리 모턴 스탠리가 리빙스턴 박사를 결국 못 만났던 사례에 비견될 만한 사례가 있다. 그것도 정말 드라마틱하면서 코메디스러운 일이었다.

90년대 초, 영국의 한 젊은 컴퓨터과학자, 팀 버너스-리는 CERN(유럽핵물리연구소)로부터 플랜트의 수 백명 물리학자들이 쓰고 있는 온갖 컴퓨팅 플랫폼의 바벨탑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라는 지령을 받았다. 서로 “얘기”할 수 있도록 하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그는 The Information Mine이라는 메타텍스트 기술을 사용하여 뭔가를 고안했다. 매우 겸손했던 그는 그 약자가 자기 이름인 TIM과 같음을 깨닫고, 마지막 순간에 이름을 월드와이드웹으로 수정했다. 그는 HTML 언어를 작성하였고 커뮤니케이션 프로토콜인 http를 설정했으며, 브라우저라 불렀던 애플리케이션도 작성했다.

제네바에 있던 그는 스티브 잡스의 검정색 큐브 넥스트 컴퓨터상에서 이 혁명적인 코드를 계획/고안하고 프로그래밍했으며, 완성했다. 옆사람과 껴안은 후, 그는 잡스가 넥스트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나타나기로 돼 있던 파리로 기차를 타고 갔다. 역사상 제일 중요한 컴퓨터 코드가 들어간 광디스크를 갖고 말이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기다렸고, 스티브가 희망적인 프로그램과 애플리케이션을 알아보러 여기 저기를 다니고 있었다. 스티브의 판단은 쓰레기, 아니면 미치도록 훌륭함 둘 중 하나였다. 꽃 전시회의 네덜란드인처럼, 잡스는 홀을 걸어다니며 콧방귀를 뀌거나 얼굴을 찌푸리곤 했었다. 그러다가 버너스-리가 앉아있는 곳 조금 앞에서 섰다. 우리 세상의 모든 것, 말그대로 모든 것을 바꿔 놓을 코드를 만든 사람 앞에서 말이다. 그때 비서가 잡스의 귀에 속삭였다. “미안해요, 스티브. 비행기를 타려면 지금 여기서 나가야 해요.” 그래서 스티브는 떠났다. 월드와이드웹을 보여 주기 위해 CERN을 나온 최초의 사내를 두 발자국 앞에 두고 말이다. 둘은 그때 이후로 못 만났고, 이제는 스티브가 사망했으니 앞으로도 못 만나게 됐다.

이야기 나머지는 잘 알려져 있다. 조지 루카스가 떠난 후, 말할 나위도 없이 능력 있는 컴퓨터 그래픽 이미징 그룹을 스티브가 거느려서 픽사를 세웠다. 1997년 애플은 무너지고 있었으며 재고는 하늘을 찔렀고, 주가는 곤두박질 쳤으며, PC 친구들은 나를 놀려댔었다. “하! 맥을 계속 쓰려면 장난감 가게에 가야 할 걸!” 정말 사정이 암울해 보였다. 그러다가 최후의 일격으로 애플은 넥스트를 인수했고, 물론 그 창업자이자 애플의 원래 공동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도 같이 모셔왔다. 잡스는 연봉 1 달러로 주식과 완전한 권력을 갖고 애플에 휘둘렀다. 프로젝트가 폐쇄되고 애플은 프린터와 카메라 제조를 중단했다. 한 젊은 영국인 디자이너 역시 몸을 떨며 사무실에 들어와 사직서를 내려 했었다. 자기 주위가 살 떨리게 해고되는 마당에 적어도 자존심을 지키면서 회사를 떠나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호출이 떨어져서 잡스의 사무실로 갔더니, 스티브는 유니바디에 투명하고 파란 플라스틱 컴퓨터를 가리키며, “이거 당신이 했소?”라 물었다. 그렇다고 말한 그 영국인 디자이너 이름은 조너선 아이브. 잡스는 “올해 만들어서 팔 컴퓨터가 이것이오. 끝.”이라 말했다.

조니는 “어떻게 비쳐지고 싶어하는지 정말 아시나요? 그러니까, 투명 플라스틱과 모든 것이요.”라 반문하자 잡스가 답했다. “바로 그대로 보여져야 합니다. 다만 미치도록 훌륭한 USB라 불리는 포트도 갖게 될 것이오. 아직 이 세상에 그걸 단 컴퓨터가 없기는 하지만.” 상업 컴퓨팅 역사상 최고의 팀이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아마 기업 역사상 최고의 팀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나서 아이콘이 된 본다이 블루, 아이맥이라는 이름의 컴퓨터는 1998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 다음은 당연히 말할 필요 없이 다른 색상이 나왔고, 또 당연하게도 컬러 아이북이 나왔으며, 타이태니엄 파워북, 아이포드, 아이폰, 아이패드가 나왔다. 거의 부도 직전이었다가 세계에서 제일 거대하고 제일 가치가 높은 회사가 된 애플은 세상을 다시금 바꿨다. 1970년대에 제일 유명한 가정용 컴퓨터 애플 II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 비밀은 언제나 스티브의 미학에 대한 감각이었다. 애플 제품이 그저 내용물이 아니라 디자인의 승리라 여기는 경쟁자와 사람들은 애플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그들도 잘 이해하고 있다. 애플 제품의 놀라운 디테일, 비스듬한 면, 희미하게 빛나는 매끄럽고도 순수한 아름다움을 그들도 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물론, 그들은 자기들의 기술을 모르고 감각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며 그저 싫어할 수도 있다.

애플은 기술 세상을 탁월하게 분리해냈다. 훌륭하고 완전히 공정한 BBC의 로리 케쓸런-존스가 애플 제품이라도 들고 있는 장면이 보인다면, 그는 아마 미친 애플 증오자들의 욕설을 엄청나게 받을 것이다. 만약 그가 삼성 제품을 든다면, 설사 핥은들 아무도 신경 안 쓸 것이다. 곤란한 일이 돼버렸다. BBC는 기술 부문에 맥의 30주년을 언급하는 기사가 전혀 없다. 아마 애플이 돈을 준다고 생각하는 기묘한 족속들이나 미친 놈들 때문에 무서워서가 아닐까 싶다. 세상이 충분히 괜찮으며, 도저히 화를 낼 구석이 없다면 애플에게 으르렁대도 좋다. 가서 해라. 여러분의 분노이니, 여러분이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최초의 매킨토시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매킨토시는 내가 “글을 쓰게” 만들었다. 매일 아침마다 글 쓰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을 정도다. 컴퓨터를 사무실에 비교한다면 맥은 제일 아름답게 디자인됐고, 화려한 카펫이 오크 마루 바닥에 깔려 있으며, 당구대가 놓여 있고 카푸치노 머신에 포스터, 훌륭한 음악이 흘러 나오는 컬러풀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의 나머지는 쟃빛에 영혼이 없고 파티션으로 이뤄진 사무실에 나일롱 카펫, 깜빡이는 램프에 축축한 냄새가 나는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의 사무실이다. 건축학적인 비유를 매번 하곤 하지만, 아무도 못 알아듣는 듯 하다. 그저 내가 허세를 부린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조차도 아이패드가 나오고 새로운 오에스텐 운영체제가 나오면서 애플의 유쾌함과 색상, 느낌, 기쁨, 즐거움, 그리고 취향의 진정한 길을 디디기 시작했다. 물론… 기능적이지 않은 기능의 취향이지만 말이다.

다른 컴퓨터 제조업체나 디지털 장비 업체들이 아프지 않기 바란다. 그렇지만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을 바꿔 놓은 한 기계의 30 주년 생일을 인식할 가치가 있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난 당신을 이상하고도 고약하며 고집센 겁쟁이라 생각할 것이다.

Sx

The New Adventures of Stephen Fry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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